굿잡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해원의 두 번째 소설이다. 전작 <슬픈 열대>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번 소설도 전작처럼 속도감이 대단하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여성이다. 전작에서 북한 특수요원 순이가 강렬한 액션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우리 사회 이면의 삶을 보여준다. 주인공 연희가 일하는 미래 클리닝은 범죄 현장의 시체를 처리하고 경찰이 알아챌 수 없도록 범죄 흔적을 지우는 조직이다. 그녀가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와 관련 있다.  1998년대 IMF 시절이다. 국가 부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고,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닐 때다. 이후 한국 사채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고, 불법 추심 문제가 늘 불거지던 시절이었다. 연희도 아버지의 부채를 껴안고 허우적거리던 시절이다.


미래 클리닝의 일자리를 알선한 것은 채권업자다.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이자 빚은 점점 늘어나고, 일자리는 아무리 주변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청소업체가 한계에 부딪힌 그녀에게 아주 큰 일당을 주겠다고 한다. 한 건 할 때마다 60만 원이다. 처음 이들을 따라 간 현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범죄 현장의 시체를 처리하고, 현장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다. 놀라 달아나려고 하지만 바로 잡히고, 돈 앞에 어쩔 수 없이 일한다. 돈의 마력은, 높은 일당은 그녀가 이 회사로 출근하게 한다. 이렇게 연희는 점점 불법 세계에 발을 담근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처럼 건물 붕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성수를 만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성수와 알콩달콩한 사연을 만들거나 이 일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깊게 파고들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거절한다. 미래 클리닝의 원칙은 불법적인 현장만 처리하고, 일반 아이와 여성은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황일 때 이런 원칙은 잘 지켜지지만 불황이 되면 원칙은 점점 무너지게 된다. 재밌는 점은 IMF 이후 한국이 외국에 자본 시장을 열어준 것처럼 이런 불법 청소도 외국에 시장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업체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가격 경쟁이 벌어진다. 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 틈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구축한 사회는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누군가가 사람을 죽이면 청소 업체에 의뢰하고, 청소 업체는 깨끗하게 청소한 후 시체를 황천에 보내 분쇄한다. 만약 누군가를 죽일 일이 있다면 망나니라 불리는 조직에 의뢰하면 된다. 이 청소업도 고수익 업종이고,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래 클리닝은 강남을 맡고 있다. 업체는 협회에서 배정해준 지역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업체 간의 다툼이 생기면 협회가 조정하지만 증거가 없다면 그냥 유야무야된다. 이 소설 속 에피소드 하나가 바로 이 업체간의 경쟁이다. 한참 궁지에 몰린 것 같은 미래 클리닝의 반격은 순식간에 벌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이끌어낸다. 통쾌하다고 말한다면 너무 잔인한 것일까?


작가가 감상을 제거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 중 하나가 청소하던 중 발견한 목격자를 데리고 황천으로 가는 대목이다. 연희마저도 그를 구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다. 다만 그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아주 섬세하고 특별한 능력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이 능력이 앞으로 벌어질 중요한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들이 무심코 보고 지나간 곳을 그녀는 이상함을 느끼고 파헤친다. 후반부에 이 능력은 빛을 발한다. 앞에 조금씩 깔아둔 설정과 관계가 어느 순간 하나씩 엮이면서 그녀의 일을 쉽게 만들어준다. 쉽다고 했지만 이 표현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까지 오기 전 그녀가 소소하게 해결한 에피소드가 바탕이 된다.


읽다 보면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연희 동생이 죽은 붕괴 사고는 삼풍 백화점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누구나 바로 연상할 수 있는 사건이다. 박정희 독재 시절 중앙정부부장을 한 김형욱 사건은 후반부에 중요한 이벤트다. 거대한 비자금을 둘러싼 탐욕의 굴레가 여러 조직과 사람들을 둘러싸고 맴돈다.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몰아치는 이야기는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시체가 계속해서 생긴다. 일상의 작은 틈새로 벌어지는 살인의 원흉이 드러날 때 그것을 덮는 세력가의 모습도 보인다. 지독하게 어두운 사회의 이면이다. 처음 시체 청소란 설정을 보고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 속 여성들을 떠올렸는데 이 소설이 작가의 이번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궁금하다. 재미와 속도감 모두 대단한데 모두 읽은 지금 씁쓸함도 같이 따라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리턴즈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을 재미있게 읽었다. 재밌게 읽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세한 기억을 사라졌다. 이 글을 쓰기 전 이전 글을 읽었는데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역시 저질 기억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소설도 재밌다. 네 개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면서 펼쳐진다. 3장을 읽을 때까지는 몰랐는데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각 장이 형제자매가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각 장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펭귄철도 분실물센터의 소헤이도 물론 있지만 다른 인물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인물을 보면서 처음에는 ‘뭐 이런 놈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뭐지?’하는 의문을 바뀌었다.


<반짝반짝 데이지>는 재혼가정의 남매 이야기다. 같은 학년이지만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에 따라 누나와 동생으로 갈라진다. 누나인 료카는 엄마가 요청한 이혼 신청서를 접수하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의 발 밑에 있는 펭귄을 발견한다. 급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넘어지고, 배낭 안 내용물이 쏟아진다. 내린다. 부끄럽다. 이런 그녀에게 모히칸 머리를 한 남자가 펭귄에 대해 묻는다. 봤다고 하자 손을 잡고 찾으러 가자고 한다. 이때 동생이 나타난다. 둘은 몇 년을 살면서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 같은 학교를 다니지만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속내를 드러내고 이야기한다. 그녀가 잃어버린 이혼 신청서를 찾기 위해 분실물센터를 찾아간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예상을 벗어난 현실적인 결말이다.


<나의 졸업여행>은 왕따당하는 오빠 신노스케와 축구부 에이스 여동생 미스즈의 작은 여행을 다룬다. 오빠는 홀로 가고 싶지만 여동생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둘은 전철을 타고 수족관에 간다. 펭귄철도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홀로 돌아다니는 젠투 펭귄을 본다. 그리고 이 펭귄을 훔치려는 듯한 모히칸 머리의 남자가 있다. 이 수상한 남자가 펭귄을 봤는지 묻는다. 둘의 대답은 갈린다. 오빠는 봤다고, 동생은 못 봤다고. 신노스케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 착한 아이다. 경비원이 이 아이들이 수상해 잡아서 정보를 캐려고 한다. 몰래 나온 것이 알려지면 문제가 된다. 달린다. 오빠가 넘어진다. 이때 모히칸 머리를 한 남자가 도와준다. 밖에서 동생을 만나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동생이 맡긴 파우치가 없다. 분실물센터를 찾아가고, 이 이야기 속에 숨겨진 남매의 애정과 사랑이 하나씩 드러난다.


<UFO와 유령>은 대학병원 핼액내과 의사 세이코가 화자다. 성이 같고 글자 하나만 다른 마이코란 환자가 외박을 나갔다고 다시 돌아왔다. 열쇠를 잃었다고 말한다. 남편은 출장을 갔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혹시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분실물센터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소헤이를 만난다. 소헤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녀는 인턴이었다. 반가운 만남을 뒤로 하고 혹시 열쇠를 찾으면 연락을 달라고 한다. 마이코의 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남편을 만난다. 왜 그녀가 집에 가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아픈 과거가 흘러나온다. 병원에서 수상한 모히칸 머리를 한 남자를 발견한다. 펑크족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남자 그녀를 아는 듯하다. 이후 마이코를 찾아가 사연을 듣고,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말한다. 그녀가 만난 펭귄 사진과 그녀의 사연과 갑자기 창밖에 보이는 UFO는 사라졌던 삶의 열정을 깨운다.


<원더매직>은 모히칸 머리를 한 하루캄의 이야기다. 앞에 나온 이야기들에 갑자기 나와 존재감을 드러낸 인물이다. 그의 등장을 읽다 보면 나쁜 사람 같지 않다고 느끼면서 그의 화에 놀란다. 각각 다른 만남에서 그가 보여준 행동과 그 이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가 펭귄을 찾으려고 하는지도. 그는 가출 후 마술사 스승을 만나 수련하는 중이다. 일본 전통 마술보다 현대 마술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지만 스승의 말은 잘 듣는다. 스승님은 잘 지적하지 않지만 갑자기 화를 내는 성격은 나무란다. 이 부분을 보면서 그가 보여준 이상한 행동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형과 관련된 사연이다. 전편과 이어지는 부분이 생기고, 앞에 나온 이상한 일들에 대한 설명도 가능해진다. 이번 장을 읽다 보면 그의 형이 누군지 쉽게 일 수 있고, 이전에 나온 이야기들도 잠시 머릿속에 떠오른다. 훈훈하고 가슴이 따스한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댄싱 걸스
M.M. 쉬나르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절모를 쓴 남자가 한 여자와 호텔 방으로 들어간다. 둘을 아주 친밀해 보인다. 유혹적인 몸 동작이 이어진다. 남자가 뒤에서 여자를 애무한다. 그러다 넥타이로 여자의 목을 감는다. 당긴다. 목을 파고든다. 여자가 저항한다. 밀착한 몸이 여자의 저항을 물리친다. 생명이 빠져나간다. 남자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좀더 조른다. 완전히 생명이 빠져나간 여자와 춤을 춘다. 그리고 결혼반지를 빼고, 자신의 흔적이 묻어 있는지 확인한 후 휴지로 문 손잡이를 닦고 나간다. 이미 CCTV의 동선은 확인했다.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게 살인자는 떠난다. 이 장면을 보면서 결코 초범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 인상적인 도입부다.


피해자의 이름은 지닌 해먼드다. 그녀는 유부녀이고, 회사 세미나로 낯선 도시에 왔다. 그녀의 시체를 발견한 호텔 직원이 신고해 조 푸르니에가 수사를 시작한다. 결혼반지를 제외하면 몸에서 사라진 것이 없다. 그녀는 얼마 전 경위로 승진했다. 이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지닌의 남편과 친구 등을 만난다. 일상적인 수사다. 그녀와 함께 호텔에 들어간 남자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그녀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남아 있지 않다. 남편은 돈을 절약하는 타입이지만 결코 아내를 죽일 인물이 아니다. 절친의 의견도 그렇다. 남편의 조카와 대립한 부분이 있지만 범인상이 맞지 않고 알리바이도 있다. 출장지의 하룻밤 일탈을 시도하다 살해당한 것일까?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면서 이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연쇄살인범 마크는 신중하게 자신의 목표물을 정한다. 목표물은 반드시 유부녀야만 한다. 대상을 고르는 장소는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세계다. 게임을 하지 않는 나에게 낯선 공간이지만 워낙 유명한 게임이라 이름 정도는 알고 있다. 마크가 어떻게 목표물을 정하는지, 그에게 끌리는 유부녀들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마크는 유부녀들이 남편이나 아이들 때문에 느끼는 상실감 등을 채워준다. 그녀들이 바라는 바를 온라인상에서 맞추어 준다. 그의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은 유부녀들이 더욱 조심하기 때문이다.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이 어쩌면 더 흥분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에밀리 카슨 사건은 그의 작업 방식과 그의 그물에 어떤 유부녀가 걸리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가 이런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도.


한 명의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지만 경찰은 연관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다. 단독 살인이나 우발적 살인 정도로 생각한다. 지닌의 사건 발생 후 몇 개월이 지났지만 단서조차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사건은 시건이 계속 일어나면서 단서가 쌓인다. 조 푸르니에 경위가 강제적인 휴가를 받아 뉴올리언스에 오지 않았다면, 신문을 보지 않았다면 결코 그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쇄살인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단숨에 범인을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서가 더 생겨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 뿐이다. 조는 에밀리 카슨이 죽은 모습을 본 후 춤 동작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발 더 다가간 듯하지만 독자들은 이미 어디에서 피해자를 유혹하는지 알고 있다. 답답한 기분이 든다.


연쇄살인범의 경우 살인의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다음 살인 대상을 온라인게임에서 물색한다. 이번 대상은 다이야니 몬턱이다. 이번 장에서 조는 온라인 게임의 단서를 발견한다. 작가는 게임에 대해 늘어놓는다. 마크가 게임 속 계정의 이름을 바꾼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탈퇴하고 새롭게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지만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당연히 등록된 전화번호나 주소는 가짜다. 한국의 본인인증제도를 생각하면 잘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새로운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살인범을 잡으려는 경찰과 새로운 피해자에게 작업이 들어간 연쇄살인범이 교차한다.


이 소설은 속도감이 아주 좋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구성과 조금 다르다. 등장인물들의 비중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다. 사건 해결을 위한 조에게도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크 중심도 아니다. 일탈을 꿈꾸는 유부녀들의 이야기도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다. 물론 이 이야기를 보고 왜 그녀들이 이런 일탈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은밀하고 친밀한 유혹은 단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펼쳐지는 반전은 어느 순간 ‘혹시나’ 하고 생각했던 부분이다. 모두 읽은 지금 이 소설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호불호도 갈릴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조를 비롯한 형사들이 답답하다. 조 푸르니에를 주인공으로 한 연작 소설의 첫 작품이라고 하니 다음 작품을 읽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 - 탐정 전일도의 두 번째 사건집
한켠 지음 / 황금가지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대 생계형 여성 탐정 전일도의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다. 전편을 읽고 다음 권이 나오길 바랐는데 2년 반만에 나왔다. 일단 반갑다. 전편이 10개의 이야기를 실었는데 이번에는 15편이나 된다. 전체 분량은 비슷하니 편당 분량이 조금 짧다. 하드보일드 누아르 탐정이 되길 바라지만 전문 분야는 실종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녀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의뢰 내용을 보면 우리가 흔히 보는 실종 사건과 많이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 일이 탐정의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소설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의뢰를 받아들이면서 탐정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의뢰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20~30대 청년들의 삶과 고민을 웃프게 풀어낸다.


탐정이라고 말하지만 아직 공인되지 않은 직업이다. 자영업자이다 보니 생계를 위해 열심히 홍보하고 뛰어다녀야 한다. 열 번 의뢰하면 한 번 공짜라고 외치지만 탐정에게 열 번이나 올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번 의뢰도 이상했지만 이번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의뢰는 그래도 나았다. 고3 수험생을 원하는 대학에 보내주지 못한 컨설턴트를 찾아달라는 것이니까. 뭐 실제 현실은 다른 쪽으로 흘러갔지만 말이다. 계약직 승희 씨의 차량 급발진(?) 사건은 또 어떤가? 그런데 이 사건은 의뢰받은 것이 아니다. 취업에 목맨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 아픈 현실이다. 취업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진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대한 희망을 품고, 정규직은 승진과 인증욕구에 시달린다.


30대 직장 여성이 고민을 털어놓는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이런 이야기를 왜 탐정에게 하지? 이 여성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중산층이란 허상에 매몰되어 일생을 살아온 우리의 삶이 보인다. 그녀의 엄마가 내뱉는 말이나 반려자와 함께 살기 보다 자기계발에 더 집중하는 모습은 뭔가 살짝 뒤틀린 것처럼 보인다. 좋은 직장에 취직했지만 우울증에 시달리고, 높은 급여 때문에 그만 두지도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귀신을 보는 친구를 등장시켜 사고사, 과로사, 자살 등으로 죽은 사람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사회에 의해 내몰린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다. 그리고 어린이 유튜버까지 등장해 우리가 가볍게 보는 영상 등의 이면을 파헤친다. 알면서 그냥 무심하게 본 것들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사람들의 다음 걱정은 무엇일까? 하나는 승진이고, 다른 하나는 재산증식이다. 재산을 불리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한국에서 권유되는 것은 주식과 부동산이다. 몇 년 사이에 부동산이 폭등해 영끌해서 집을 산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값이 영끌해서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기본 자산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기레기의 의도적인 부추김이다. 하지만 미래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언론을 보고 태평하게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등장인물 대부분은 이런 영끌보다 안정적인 직장이 더 우선이다. 그 이전에 장학금을 받아 무사히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구구절절한 장학금 자소서에 부담감을 느낀 의뢰인은 또 어떤가.


불안한 청춘들은 작은 위로에 쉽게 넘어간다. 의도하지 않은 임신은 불안감을 키운다. 흔히 임신 사실을 알리고 같이 해결하라는 조언 대신 이 소설은 혼자 처리하라고 말한다. 자기 좋자고 콘돔을 멀리한 남자라면 나중에 이 사실이 소문으로 떠돌 수 있다고. 한 대 맞는 순간이다. 이 소설 속에는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특단의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지만 현실을 그대로 직시한다. 택배노동자가 일을 그만두기 위해 10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하는 현실이나, 택배기사들의 까대기를 중단하기 위해 올린 택배 요금은 택배사의 수익이 되는 현실도 보여준다. 개인사업자라 4대보험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정규직 택배기사를 꿈꾸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도 나에게 택배를 배달하실 기사들이 다르게 보인다.


소설 속에 잠시 전일도는 탐정사무소를 개설한다. 혼자가 아니라 동업자가 있다. 전편에도 나온 사기꾼이다. 작은 사무실에 안마의자를 렌탈로 놓아두었다. 제대로 된 사무실 비품도 없다. 자신의 꿈이 살짝 이루어진 듯하지만 현실은 월세 등을 고정적으로 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둘이 함께 해결(?)하는 의뢰도 몇 편 나온다. 생각보다 케미가 나쁘지 않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면 다시 나올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치닫는 이야기들은 또 다른 현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은 불법인 동성혼과 계약 중단이란 암담한 현실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역시나로 바뀌고, 무거운 현실은 생계형 탐정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쉽게 좌절하고 무너진 것 같지는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엮이고, 위로하고, 뒤섞여 살아간다. 다음 이야기를 또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말 오랜만에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읽었다. 아주 오래 전 사강의 소설들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상당히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저질 기억이라니. 이번에 리커버 개정판이 나왔다고 했을 때 읽은 것이 분명한 책들 몇 권을 빼고 이 책을 선택했다. 책소개에 따르면 ‘소설과 에세이 형식의 중간을 넘나드는 특이한 작품’이라고 한다. 읽다 보면 사강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나온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창작자의 감정을 곁들이고 있다. 재밌는 설정이다.


무일푼으로 프랑스에 온 스웨덴 출신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가 주인공이다. 이 남매는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 외모와 특이한 윤리관 덕분에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살게 된다. 프랑스 68 혁명 뒤의 시기로 설정한 탓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 윤리관이 상당히 자유롭다.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유부녀가 애인과 그 여동생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한다. 재밌는 부분은 이 유부녀가 엘레오노르가 자기집 정원사와 잠을 자는 것에 대해 보여주는 의식이다. 남자를 노예로 만들 수는 있지만 노예를 자신의 남친으로 만들 수 없다는 계급의식이다. 읽으면서 뭐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남매의 파리 생존기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그렇다고 젊지도 않다. 세바스티앵은 나이가 40이나 된다. 하지만 뛰어난 외모는 여자들을 끌어당긴다. 동생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수영복을 입었을 때 모습을 작가는 완벽하다는 단어로 표현한다. 어떤 몸매일까? 세바스티앵은 특별히 어떤 외모에 끌리는 것 같지 않다. 자신의 생존방법인 것일까? 이 남매에게 섹스는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 작가는 미래 세대를 끌고 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읽으면서 이 부분이 오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가가 자기 작품의 분량에 대해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책들은 200~300쪽 분량인데 자신의 책은 실제 200쪽에 가깝다고. 몇 권 확인하니 그 범위 안에 들어 있다.


남에게 빌붙어 사는 것 같은 이 남매는 아주 특이하다. 엘레오노르는 늘 책을 들고 있는데 장르가 미스터리물이다. 아주 잘 생긴 양성애자 배우가 그녀에게 끌려 보여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홀로 집에 돌아오는 장면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남자에게 빠진 여자라면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해도 그냥 넘어가겠지만 이성이 남았다면 그 행동의 누적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를 전혀 만나지 않느냐 하면 아니다. 분노한 남자와 집에 찾아왔을 때 폭력을 휘두를 것 같았는데 그녀가 읽어준 문장에 웃고, 그녀 곁에 머문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전개다.


작가가 갑자기 한 남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같이 늘어놓는다. 이런 형식이란 것을 몰랐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의문을 품고 읽었을 것이다. 이 남매의 이야기를 창작하면서 생기는 문제와 어려움도 나오고, 독자와 사회문제에 대한 견해까지 적어 놓았다. 시대와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고, 왠지 모르게 그 단어들이 나에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아쉬운 대목이다. 자극적인 몇 곳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마지막은 예상 외의 장면이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자살과 만남이 이런 식으로 갑자기 튀어나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내가 중요한 뭔가를 놓친 것일까? 어릴 때 읽었던 재미를 누리지 못했는데 언제 그녀의 대표작들을 다시 읽고 기억을 새롭게 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