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의 질량 한국추리문학선 6
홍성호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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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제목, 출판사를 보고 선택한 소설이다. 현대적 감각과 살인자의 강한 모습 등을 예상했다. 그런데 실제 내용을 보면서 조금 실망했다. 예상과 다른 전개와 구성이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8~90년대 한국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인 김내성의 소설 <마인>에게 헌상하는 처절한 오마주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아직 <마인>을 읽지 못했다. 집에 재간된 책 중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읽게 되면 이 소설이 새롭게 다가올지는 모르겠다. 기대와 다른 전개와 구성이지만 가독성은 상당히 좋다.

 

오상진. 추리소설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희귀본 수집가다. 신작 출간기념회에서 이 작품의 동기를 설명한다. 노숙자가 된 친구의 아버지가 살인했던 이야기다. 출간기념회라고 하지만 그의 팬 카페 회원들과 출판사 관계자와 지인들이 모인 작은 모임이다. 첫 장면이 마인의 블로그인데 이 모임 속에 마인이 존재한다. 김내성 작가의 원작을 읽지 않아 마인이 어떤 인물인지 모른다. 김내성 작가에게 바치는 소설이고, 작중 주인공 이름이 김내성이고, 여러 차례 재간된 <마인>의 희귀본을 둘러싼 이야기를 감안하면 읽은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설 같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출간기념회는 잘 마무리된다. 오상진은 회장 정진영과 함께 집으로 간다. 주인공 김내성도 후배와 함께 한 잔 더 한다. 다음 날 오상진이 아버지 시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중에는 그가 살인용의자로 체포된다. 사망추정시간 동안 그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고 말한다. CCTV로 확인하니 누군가가 후드에 모자를 쓴 채 오상진의 차를 타고 아버지집으로 간 것이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의 살인을 강하게 주장한다. 아직 한국에서 가중처벌되는 존속살인 용의자다. 하지만 김내성이 볼 때 이 사건은 허술한 부분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여기에 오상진이 모은 추리소설 희귀본이 많이 비어있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오상진이 살인을 했는가 하는 전반부고, 후반부는 마인의 정체를 둘러싼 이야기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 김내성이 탐정 역할을 한다. 아인 김내성과 이름이 똑 같은데 이것도 사연이 있다. 이 사연이 후반부에 예상하지 못한 작은 재미를 준다. 작가 능력보다 탐정 능력이 더 좋은 김내성은 오상진을 함정에 밀어 넣은 사람을 금방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추리를 들려준다. 하지만 왜 이런 함정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것은 그들만 안다. 이 과정은 고전 추리의 한 장면과도 닮았다. 이 장면은 마지막에 다시 한 번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된 후 베스트셀러 작가인 오상진의 본모습이 아주 잘 드러난다. 양형조사관인 작가가 설정한 장면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김내성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김내성이 오상진에게 범인들의 탄원을 위해 내 건 책은 <마인>의 초판본이다. 아직 한국에서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첫 장면에 나온 마인은 아직 제대로 활약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김내성은 마인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장면도 사실 고전적이다. 홍성호 작가가 아인 김내성의 <마인>을 오마주하기 위해 이런 문장과 구성을 했다면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아니라면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은 여담이지만 예전에 김내성 전집을 친구가 가지고 있었다. 세로본이었다. 솔직히 그때는 김내성이란 존재를 잘 몰랐었다. 알았다면 아마도 내가 달라고 했을 것이다. 이 친구가 자기 선배에게 양도했다고 했는데 아마 그분은 그 가치를 아시는 분일 것이다. 다른 책들까지 읽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마인>은 빠른 시간 안에 읽어보고 싶다.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런 오마주 작품이 나왔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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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붓다
이응준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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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응준의 글을 읽었다. 그의 두툼한 산문집 <영혼의 무기> 이후 처음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응준으로 검색하면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나온다. 소설, 에세이, 시집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다. 이 중에서 읽은 것은 몇 권 되지 않고, 몇 권은 집에 있다. 옛날에 헌책방과 대할인 시대에 사놓은 것이다. 이 책들은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다가 그의 글을 읽을 때 잠시 떠올랐다가 다시 잊혀진다. 모아놓은 책이 늘어나면서 이런 작가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늘 정리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욕심은 많고 게으른 탓이다.

 

솔직히 이 책은 얇아 선택했다. 200쪽이면 하루에,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얄팍한 생각이 있었다. 실제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지 않아 읽으면서 ‘뭐지?’ 하는 의문을 계속 떠올렸다. ‘몽유병의 여인’이란 바의 주인은 F형이란 가명으로 불리는데 시인 함성호,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 등은 실명으로 등장한다. 내가 이들의 이름을 몰랐다면 그냥 등장인물이구나 하고 지나갔겠지만 말이다. 이들을 악마라고 부르는 것은 또 무엇인가. 출판사 은행나무를 그대로 말하고, 편집장도 말하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읽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붓다란 제목이 들어가 있어 불교 이야기가 나올 것이란 추측을 먼저 했다. 그런데 부처는 거의 나오지 않고 기독교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온다. F형을 말할 때는 나치에 부역한 적이 있는 시인을 다루고 있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이야기 속에 넣어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지만 분명한 이야기의 흐름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답답하다. 정한심이란 여성의 존재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실체가 있는 존재일까? 그녀가 그림자 정부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이야기와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김봉석은 또 무엇인가? 혹시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망상인가? 마지막에 롯데월드로 돌진하는 그의 모습은 돈키호테와 다름없다. ‘뭐지?’

 

많은 의문과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풍자와 비유와 은유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어떤 대목에서는 반복적인 문장이 나온다. 이때는 다시 ‘뭐지?’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해피 붓다를 말하지만 그 실체를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실제 많은 정보 속에서 몰랐던 것도 상당히 있다. 러시아 혁명의 해당 월이 우리가 알고 달과 다르다는 것이다. 10월 혁명이 우리 달력 기준으로 11월이란다. 뭐 이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다. 이런 재미들 속에 던지는 수많은 질문과 단순한 이야기 속의 알 수 없는 일들은 쉽게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는다. 또 어느 선까지 자신의 경험과 현실을 연결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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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독일 동화 여행 - 독일 메르헨 가도를 가다
정유선 지음 / 뮤진트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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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출신의 저자가 열 살 먹은 딸과 함께 독일 메르헨 가도를 다녀온 것을 기록한 책이다. 메르헨 가도란 이름은 들어본 듯하지만 독일 동화 여행이란 말에 더 끌렸다. 실제 이 여행의 목적이 바로 독일 동화 여행이다.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하나우에서 시작해 북부의 도시 브레멘까지 이어지는 600킬로미터인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이 동화 여행의 대부분은 차지하는 것은 역시 그림 형제의 동화들이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재밌게 읽었지만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진 동화들이다. 몇몇 이야기들은 원작보다 디즈니의 영화로 더 기억에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요약된 몇 편을 다시 읽고 기억을 새롭게 했다.

 

퓌센의 성은 표지에도 나오지만 사진만 봐서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백조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디즈니 로고 성으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나의 인지 능력은 둘을 제대로 연결하지 못한다. 실제 가서 보면 닮을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메르헨은 독일어로 민담이란 의미다. 우리에게 독일 동화하면 그림 형제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메르헨 가도 여행 속에 그림 형제의 동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목차만 보고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는 작품 몇몇이 있는데 내용을 읽으니 금방 알 수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 세계 동화를 얼마나 열심히, 재밌게 읽었던가. 뭐 이 동화의 원작이 다시 각색되었다는 사실에 잠시 분노한 적도 있지만 말이다.

 

이 책의 핵심은 열 살 딸과 독일 동화 여행이다. 저자는 이전에 더 어린 딸과 함께 영국과 크로아티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이것은 두 권의 책으로 이미 나와 있다. 처음에 더 큰 딸과 함께 하는 여행이 더 쉬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현실은 달랐다. 자아가 더 커진 아이가 엄마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시차 문제도 있고, 맨 마지막에 말했듯이 저자 자신이 나이 든 것도 있다. 읽으면서 딸이 즐겁고 재밌어 하는 모습도 많이 나오지만 짜증과 힘들다고 말하는 대목도 적지 않게 나온다. 자식이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기 바라는 욕심이 곳곳에 드러나는데 이것이 아이의 바람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600킬로미터란 거리를 보면서 차로 여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부 구간에서 차를 빌려 여행을 하지만 전체적으로 기차와 버스를 이용한다.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장점도 많지만 좀더 여유 있는 일정이라면, 둘러볼 곳이 조금 더 적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열일곱 도시는 솔직히 말해 쉽지 않은 일정이다. 하지만 이 두 모녀는 자신들의 일정을 잘 소화하면서 무사히 여행을 마무리했다. 저자가 감탄한 작은 도시의 풍경들이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은 아쉬움은 있지만 나름의 해석으로 들려준 이야기들과 정보는 독일 동화의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나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이 여행 과정 속에서 두 모녀가 느낀 감정의 차이와 일치다. 엄마의 마음과 아이의 행동 차이, 같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행복해하는 마음들, 어른과 아이의 시선 차이,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 방법이나 대상이 다른 경우 등은 내가 나중에 아이와 함께 여행하게 되면 느낄 수 있는 것의 선행학습이 아닐까. 원작 동화 속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상당히 잔혹하다고 말하는데 그 시대의 현실을 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이미 디즈니 영화 등으로 기억이 왜곡된 부분이 상당해서 나도 모르게 비교하는 장면들이 상당히 있다. 물론 이것도 작은 재미들 중 하나다.

 

이 동화 여행을 읽으면서 어릴 때 읽었던 그림 형제의 동화들이 머릿속에 불쑥불쑥 떠올랐다. 이 기억들은 잠시 나를 동화의 세계로 이끌었다. 최근 아이와 함께 예전에 별로 재밌게 보지 않은 애니들을 다시 볼 기회가 있어 자주 여러 번 보게 되는데 그때 느끼지 못한 재미를 누리는 순간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런 재미를 일부 전달해준다. 많은 사진들이 실려 있지는 않지만 나의 시선을 잡아끄는 사진들도 보인다. 그 대부분은 건물들 사진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본 도시의 풍경들이다. 짙은 녹색의 나무들과 함께 한 도시의 풍경들 말이다. 나도 몇 년 뒤 아이와 함께 이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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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기담집 - 아름답고 기이하고 슬픈 옛이야기 스무 편
고이즈미 야쿠모 지음, 김영배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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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야쿠모란 이름만 보았을 때 누군지 몰랐다. 야쿠모란 이름만 놓고 보면 <야쿠모>란 소설이 먼저 떠오른다.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이란 이름을 보았을 때 집 어딘가에 있을 <괴담>이란 소설이 떠올랐다. 이 이름으로 검색을 하니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나온다. 뭐 중복도 많지만 묵혀둔 책이 보여 반가웠다. 이번 기담집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생겼기에 더욱 그렇다. 이 기담집의 문장을 읽고 조금 놀랐는데 다른 작품은 어떤지 모르겠다. 간결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강해 예전에 읽었던 일본 문학과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고, 스물 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오래된 이야기는 괴담이고, 2부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는 기담보다는 에세이에 더 가깝다. 사실 이렇게 바뀐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개인적인 취향은 1부의 간결한 괴담들이다. 고전 설화나 괴담을 적은 듯한데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작품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가득하다. 2부로 가면 기담 같은 내용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더 많이 늘어놓는다. 작가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읽었다면 좀더 쉽게 이해하고 다가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령폭포의 전설>은 예전에 읽었던 중국 민담과 분위기 비슷하다. 빠르고 간결하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는 점에서 깊은 밤 괴담으로 알맞다. <찻잔 속>은 이야기가 진행되다 그냥 끝났다. 작가가 더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중단되기 전까지 이야기는 정말 재밌었다. <상식>은 환각과 믿음을 돌아보게 만든다. 실체를 제대로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한다. <생령>은 걱정과 불안이 만들어내는 악의를 다룬다. <사령>은 죽은 자의 반격이다.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죽은 자의 빙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오카메 이야기>는 금슬 좋은 부부 이야기다. 자신의 사후 남편의 재혼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남편의 재혼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작가의 지적은 왠지 가능성을 남긴다. <파리 이야기>는 왜 파리를 등장시켰는지 의문이다. <꿩 이야기>는 효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아들의 욕심이라면 시대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츄고로 이야기>는 요물에게 홀린 남자 이야기다. 괴담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요물의 정체가 드러날 때 조금 놀랐다.

 

<어느 여인의 일기>는 정말 일기를 다룬다. 간결한 기록인데 한 여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일기 속 시들은 평범하지만 그 시대의 모습을 알려준다. <헤이케 게>는 게를 그린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반딧불이>는 한 편의 논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반딧불이 잡이들이 어떻게 반딧불이들을 잡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아주 놀랍다. <이슬 한 방울>은 짧지만 나의 옛 단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귀>는 자신의 현재 삶과 환생을 비롯한 윤회를 다룬다. 왜 매미일까? <일상사>는 간결한 기담이다. 서늘하기보다는 그럴수도 있지 하는 느낌이다.

 

<몽상>은 모성애로 시작해 인식의 공간이 확장된다. <고양이 타마>는 자신의 고양이를 관찰해서 기록한 짧은 글이다. 읽으면서 일본은 고양이 관련 글이 참 많다는 누군가의 글이 떠올랐다. <한밤중에>는 그림자와 감각을 말하는데 인식을 더 깊이 파고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있다. <풀종다리>는 자신이 산 곤충 이야기인데 일상을 다룬 에세이처럼 읽힌다. 재밌다. <꿈을 먹고 사는 짐승>은 꿈속 이야기가 아주 잔혹한 듯한데 마지막 해석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불교적 세계관이 보이는데 작가가 살면서 어떤 영향을 받고 살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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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프리메이슨 - 서양인 연쇄 살인사건
정명섭 지음 / 마카롱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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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의 작품을 몇 권 읽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한 시대에 한정되어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는다. 처음 읽었던 <적패>는 고구려를, 최근에 읽었던 <살아서 가야 한다>는 병자호란을, 이번 작품은 을사늑약 이후를 다룬다. 장르도 마찬가지다. 어떤 소설은 역사소설이고, 어떤 작품은 호러물이고, 이번 작품은 액션 추리물이다. 한 가지 공통점을 찾는다면 과거 역사 속에서 긴장감을 주는 작품을 쓴다는 정도다. 보통의 역사 소설가들은 특정한 시대를 파고들어가 그 시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데 이 작가는 조금 다르다. 어떻게 볼 것인가는 좀더 시간을 두고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을사늑약 후 1906년 봄날이 시간적 배경이다. 한성에 거주하던 외국인 마크 트래비스가 집으로 가는 길에서 시작한다. 다음날 그와 그의 아내가 죽은 채 발견된다. 친일파 경찰은 이 사건을 마크가 아내를 죽인 후 자살한 사건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평리원 검사인 이준은 출근한 사무실 책상 위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한다. ‘貞洞 洋人刺殺(정동 양인척살)’이란 편지가 들어있다. 사건 현장에 가서 현장을 둘러보고 집안에서 이상한 문양을 하나 발견한다. 그가 간단히 둘러본 결과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자살사건이 아니다. 타살이다. 이 사건을 그가 파고든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제국익문사란 조직의 요원이 활약하는 것이다. 그는 7호로 불린다. 7이란 숫자에서 그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쉽게 감이 온다. 007이다. 소설보다 영화로 더 익숙한 스파이 제임스 본드말이다. 실제 그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제임스 본드의 상위 버전처럼 보인다. 본드처럼 움직이지만 육체적 능력은 그를 훨씬 능가한다. 물론 본드처럼 그도 새로운 무기를 들고 정탐을 한다. 당연히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제공하는 인물이 있다. 오마주이자 패러디다. 제국익문사란 조직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실존했던 조직이라고 한다. 소설 속에서 이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말할 때 의문이 생겼다. 무협 속 비밀조직과 너무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이준과 7호의 이야기는 각각 진행된다. 나중에 둘이 만나 콤비처럼 활약하지만 그 과정까지 가는 도중에 또 다른 죽음이 펼쳐지고, 비밀조직 프리메이슨의 존재가 밝혀진다. 프리메이슨이란 조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수많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음모론의 주체로 나오는 소설도 있고, 당대의 유명인들이 가입한 계몽을 위한 비밀 결사로 한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은 이 둘을 다루면서 정확한 결정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이 살인 피해자들이 프리메이슨 소속이란 것만 알려준다. 지금이야 수많은 영화 등에서 프리메이슨을 다루어 익숙한 이름이지만 대한제국 시절이라면 낯설 수밖에 없다. 이 조직을 파헤치는 인물은 이준이다.

 

이준이란 이름을 보면서 헤이그특사 중 한 명을 떠올렸는데 맞았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절에는 정보가 아주 한정적이었다. 그러니 프리메이슨이란 단체를 알 수도 없다. 이준이 수사하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발로 하는 수사다. 가서 보고 묻고 의문을 품고 그 의문의 답을 찾는다. 반면 7호는 무술 등에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면서 만능 정보원이란 사실을 각인시킨다. 그가 처음 해결한 사건이나 이준과 함께 해결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인물들이 있는 제국익문사란 단체가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망국의 황제는 대세를 바꿀 힘이 없다. 그의 자리를 지키려는 의지는 외세에 기댈 수밖에 없고, 이 과정 속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좋아 잘 읽힌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시대와 액션 등이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은 없다. 과거의 역사를 알기에 역사 속에서 고종 황제가 어떤 의도를 가졌었는지 추측할 수 있지만 딱 그뿐이다. 속고 속이는 과정, 외교권을 잃은 나라가 얼마나 무력한지, 친일파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줄 때 가슴이 답답했다. 제임스 본드의 상위 버전인 7호의 액션과 활약에 놀라면서도 왠지 모르게 시대와 불화하는 모습에서는 아쉬움이 생겼다. 이준이 어떤 과정을 거쳐 헤이그특사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작가의 상상력은 재밌는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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