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0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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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 시리즈 10번째 작품이다. 전작 <팬텀> 이후 사건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 해리는 거의 3분의 1 정도의 분량이 지난 후 등장한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등장하지 않은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오슬로에서 미제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들을 노리는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살해당한 경찰들의 공통점을 따라가면 용의자가 살짝 보인다. 그런데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해리의 동료들은 해리를 그리워하면서 수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이 죽지 않고 탈옥했다는 정보를 듣는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나타났다.

 

전작 <팬텀>의 마지막 장면은 경찰들이 비밀리 보호하는 중환자의 정체를 오해하게 만든다. 해리가 해결한 사건에 연결된 정치인과 경찰청장은 이 환자의 처리가 필요하다. 의도적인 연출은 전작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해당되는 설정이다. 많은 해리의 동료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장면을 넣으면서 이 오해를 더욱 부추긴다. 부정과 불륜과 정치적 야합 등은 이 시리즈에 계속 되는데 이 작품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경찰의 보호 아래에 있던 환자가 어떻게 됐는지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를 지키던 경찰이 잠들고, 그 사이에 환자는 죽음 속으로 빠진다. 순진하게 나는 이 환자가 해리인 줄 알았고, 뭐지? 하는 의문에 잠시 빠졌다.

 

사라진 해리는 경찰학교 강사로 일한다. 오슬로의 전설적인 형사가 아니었던가. 동료들이 찾아와 경찰 연쇄살인수사에 합류할 것을 요청한다. 거절한다. 그의 학생 중 한 명이 해리를 유혹한다. 아주 저돌적인 유혹이 거절된다. 이 상황이 잘못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해리는 동료의 도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이전 동료ㄹ르 만나러 갔다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다. 처참하게 살해된 동료의 시체를 발견한다. 경찰을 떠났던 그가 다시 자문역할로 이 수사팀에 합류한다. 해리의 주변에는 언제나 나쁜 일이 가득하다. 이런 상황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된다. 작가의 노련한 연출과 이전 경험들이 이 불안감에 동조한다.

 

이번 작품은 제목대로 경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해리의 출연 빈도가 준만큼 경찰들의 개인사가 많이 나온다. 이번 이야기에서 경찰청장 미카엘은 초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등장은 정치적 야합과 친구인 트룰스의 삐걱거리는 관계가 나온다. 경찰들이 어떻게 시간과 상황을 조작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미카엘에게 찝쩍거린 게이 경찰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면서 한 예를 든다. 이 시리즈에서 그냥 나오는 장면들은 거의 없다. 이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책을 모두 읽은 후에 알 수 있다. 작은 스포일러다.

 

해리는 다른 형사들과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본다. 운 좋게 범인을 잡는 경우도 있지만 경험과 직관과 통찰이 어우러져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라고 바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의 실수도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몰론 이 모습이 그의 실수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다. 반복적인 살인은 하나의 규칙을 발견하게 만들고, 그 살인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게 한다. 그 의미가 사랑이라고 할 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증오도 사랑의 한 갈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시각들이 해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 시리즈의 가독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순서대로 나오지 않아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지만 독립적으로 읽어도 문제가 없다. 미카엘과 트룰스는 해리에게 어떤 숙명적인 적이지만 해리는 경찰이다. 아니 경찰이었다. 이것은 그의 정체성 문제다. 그의 연인이었던 라켈과 관계는 다시 아주 좋아졌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경찰 연쇄살인범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고조된다. 이 소설에서 몇 번 그런 장면들이 나온다. 스노우맨 사건처럼 라켈에게 또 이런 일이 생길까? 그리고 처음 연쇄살인범으로 추정했던 인물의 은밀한 접근은 또 다른 긴장감을 불러온다. 현재까지 나온 시리즈가 열두 권이라고 하니 다음 이야기에서 그 결과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번 작품에서는 유난히 몇 가지 문장을 이용해 독자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경찰이 보호하는 중환자로, 나중에는 연쇄살인범과의 만남에서 말이다. 그리고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다른 상황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경찰들이 이렇게 위험한 직업이라면, 연쇄살인이 이렇게 많이 일어난다면 노르웨이는 얼마나 위험한 나라일까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작품 마지막에 가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과연 다음 이야기에서 이것이 어떤 작용을 할지도 궁금하다. 언제나처럼 역시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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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상실사
청얼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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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감독이다. 이 단편집 속 세 작품을 영화 <라만대극소망사>에 녹여내었다고 한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읽고 무슨 말인가 했다. 어떻게 단편 세 개를 한 작품에 연결시켰을까 하는 호기심과 더불어 말이다. 그리고 이 책 속 일곱 편의 단편을 모두 읽은 후 고개를 끄덕였고,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장쯔이가 나온다니 더욱. 청얼이 만든 영화는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낯선 듯 익숙한 분위기 때문에 잠시 혼란을 겪었지만 간결한 이야기 속에서 그 시대를 추측할 수 있었다.

 

영화의 원작이 된 세 편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네 편이 실려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작품들은 영화로 만들어진 세 편이다. <여배우>, <영계>, 표제작 <로맨틱 상실사> 등이다. 앞의 두 편은 그 당시 시대상을 몰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로맨틱 상실사>는 그 시대 배경을 알수록 재밌다.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면 더 재밌다. 아직 나의 이해도가 부족해 앞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부분과 잔혹한 복수가 먼저 와 닿았다. 암흑계의 거물들이 어떻게 일본군과 연결되고, 그들과 대립하는지 등은 그 시대를 알아야 더 잘 이해된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작가가 숨겨둔 반전과 그 잔혹한 복수다. 이 작품을 가장 뒤에 둔 이유를 알겠다.

 

<여배우>는 도박에 빠진 남편을 구하려는 노력이 그녀를 권력자의 편으로 만들었다. 암흑계의 권력자들이 어떻게 한 유명한 여배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지 보여준다. 그 큰 힘에 휘둘리는 그녀의 모습은 체념이 묻어있다. <영계>는 조폭 이야기다. 시골에서 올라온 청년이 중간 보스까지 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창녀 이야기다. 진한 낭만이 끼어들 것 같은 도입부이지만 현실은 냉정하고 비정하다. 청년의 순수했던 감정은 참혹한 현실에 쉽게 무너지고, 그도 세파에 시달리면서 그런 무리 중 한 명이 된다. 씁쓸한 이야기다.

 

<인어>부터 <세 번째 X군>까지는 현대 이야기다. 세 번째 X군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X군이란 인물이 세 명 나온다. 유일하게 없는 이야기는 <몸의 시편>이다. 이야기의 배경도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예술에 대한 단상이 나오고, 한 번 뜬 권력이 어떻게 되는지도 보여준다. 지친 육신이 가진 공허함이 강하게 다가온다. 마지막 장면은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인어>는 읽으면서 한국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과도한 임금 보도로 상상력이 이어졌다. 하루 몇 시간 동안 왕복해야 하고, 겨우 3시간 일하는 그녀의 말 속에서 말이다.

 

<인어>의 X가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 장면과 밖으로 나오려는 욕구는 쉽게 연결되지 않는다. <닭>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자가 느끼는 살의가 강한 인상을 준다. <세 번째 X군>은 읽으면서 미로 속을 해매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가 풀어낸 이야기가 너무나도 간결하게 표현되었고 아주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 속 주인공들은 특별히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익명이나 성으로 불릴 뿐이다. 현대 이야기 네 편도 어떤 연관성이 있는 듯한데 아직 나는 모두 발견하지 못했다. 느리게 읽고 생각을 많이 하는 독자라면 많은 것들 발견하고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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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라파엘 몬테스 지음, 최필원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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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이코패스가 트렁크 속에 여자를 넣고 여행을 떠난다는 문구에 혹했다. 하지만 이 사이코패스는 내가 상상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나의 선입견에 의한 활약은 아주 잔혹하고 치밀한 살인이었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 테우는 그런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도입부에 그의 특이한 성격을 보여주는 섬세한 묘사가 나오지만 이것이 범죄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다. 다만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사이코패스 성격을 드러내줄 뿐이다. 그가 해부학 시체에게 게르트루드란 이름을 붙인 것과 그 시체에 감정 이입한 것은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테우의 엄마는 하반신을 사용할 수 없다. 자동차 사고 탓이다. 이 사고로 아버지가 죽었다. 어느 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바비큐 파티에 끌려간다. 가고 싶지 않은 파티다. 이 파티에서 145센티미터의 키 작고 그렇게 예쁘지 않은 한 여자를 우연히 만난다. 클라리시다. 그녀가 기습적으로 그의 입술을 훔친다. 이 작은 일이 그를 매혹시킨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침략당한 피해자’가 된다. 이 순간 그는 사랑에 빠진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그녀와의 몇 가지 대화를 통해 법대 학생인 것과 그녀가 바라는 삶에 대해 조금 알게 된다. 위험한 여행의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하는 행동을 테우는 한다. 그녀에게 직접 가는 방식 대신 그녀를 미행한다. 그녀를 잘 모르기에 설문조사처럼 전화도 한다. 이 미행을 통해 그녀의 친구와 연인이 누군지 알게 된다. 자신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는 아주 즐겁게 논다. 여자 친구와 진한 키스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늦은 밤 술에 취해 쓰러진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준다. 그녀의 엄마를 만난다. 딸이 술에 취해 들어온 것이 불만이다. 테우가 누군지 묻는다. 이때 클라리사가 남자 친구라고 말한다. 테우에게는 하나의 착각이 생긴다. 그녀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이다.

 

남자의 착각은 언제나 작은 호의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실을 말하지만 테우는 인정하지 못한다. 시나리오 집필을 위해 떠나려는 그녀를 기절시킨 후 집에 데리고 온다. 착각은 실수로 이어지고, 이 실수는 집착으로 다시 이어진다. 약으로 재운다. 엄마에게 들키지만 잘 둘러댄다. 그녀가 가고자 한 호텔로 떠난다. 그 이전에 그녀를 재울 약을 학교에서 훔치고, 그녀를 묶을 몇 가지 물건을 산다. 차로 이동하는데 그녀는 차 좌석이 아닌 트렁크 속에 들어있다. 표지의 그 트렁크다. 작은 몸의 키 145센티미터라면 가능할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사이코패스와 보통 성격이 아닌 납치된 여자의 동행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전문 범죄자가 아닌 테우이기에 서툴고 거친 모습이 많이 나온다. 그녀가 늘 가는 호텔 방에서 쉬면서 그녀는 자신의 시나리오를 손보려고 한다. 그 시나리오의 제목이 ‘퍼펙트 데이즈’이다. 결코 완성도가 높은 이야기가 아니다. 휴대전화가 통하지 않고, 별채의 숙소는 납치한 여자와 머물기 딱 좋다. 물론 가끔 시내에 나가 양가 부모님들에게 안부 전화를 해야 한다. 클라리시의 남친 브레누도 많이 연락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그가 갑자기 나타난다. 몸싸움 끝에 그를 죽인다. 테우는 이 시체를 해결할 방법은 찾는다. 숲에 뭍는 것도, 호수에 버리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시체를 해부해서 버리는 방식을 선택한다. 토막 살인의 이유 중 하나가 보통 이런 것이다.

 

약에 취한 클라리시, 엄마의 잦은 연락, 브레누의 죽음 등은 그 호텔을 떠나게 한다. 시나리오처럼 섬으로 간다. 이 과정에서 클라리시의 성격을 조금씩 드러낸다. 긴장감은 테우가 벌인 상황과 클라리시의 성격에서 비롯한다. 이 모든 장면은 철저하게 테우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그가 공감하지 못하는 그녀의 행동과 자신의 납치와 살인으로 인한 불안이 이어진다. 작가는 화려한 살인보다 이 두 남녀의 동상이몽을 통해 긴장감을 높인다. 고립된 공간은 이 둘의 성격을 드러내기 안성맞춤이다. 재밌는 것은 사이코패스인 테우가 아주 이성적이란 점이다. 살의를 절제할 정도로. 예상하지 못한 설정과 함께 마지막 이름 하나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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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10년 - Novel Engine POP
코사카 루카 지음, loundraw 그림, 최윤영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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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다. 죽은 것은 확실하지만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수많은 책들에서 정해진 수명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루의 중요함을 강하게 말한다. 이 소설은 걸리면 10년만 살 수 있는 불치병에 걸린 스무 살 마츠리의 이야기다. 10년도 타이머가 있어 그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조심하고 조심해야 살 수 있는 시간이다. 과격한 운동을 해서는 안 되고, 몸에 나쁜 음식도 먹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겨우 10년이다. 물론 이 시간이 결코 짧은 것은 아니다. 많은 제약이 있지만 살기에 따라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시작은 병원에서 그녀와 같은 병에 걸린 한 여성의 죽음이다. 건강하지 못한 몸과 시한부 삶이란 것이 그녀에게 학교, 직장, 연애 등을 포기하게 만든다. 2년의 치료 후 퇴원한다. 친구 사나에가 연락한다. 퇴원 후에도 집에 머물던 그녀를 세상에 나오게 한다. 그녀는 동인 만화를 그리고 코스프레를 한다. 이 덕후의 세계 속으로 그녀를 인도한다. 사나에는 상당히 인지도가 있다. 병원에서 즐겨본 애니의 주인공들 코스프레도 있다. 그녀의 관심이 여기에 쏠린다. 그녀의 퇴원은 대학 동기들도 알게 된다. 이미 결혼 후 부부의 식당에서 모임을 가진다. 병 때문에 백수로 지내고, 가끔 동인 만화와 코스프레를 하는 그녀에게는 동기들의 이야기가 낯설다.

 

마츠리란 단어를 보고 축제를 떠올렸지만 실제 이름은 들꽃에서 비롯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마츠리의 활달한 행동 때문에 축제를 먼저 떠올린다. 언니 키쿄 때문에 과장되게 행동한 부분이 있는데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한다. 친구 부부가 남자 친구를 소개해주려고 할 때, 그 이유를 듣고 바로 화를 내지 않은 것에 분노한다. 그들의 선의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평범한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은 언니의 결혼과 결혼 후 언니집으로 갔을 때 일어난다. 초등학교 시절 절친의 왕따를 도와주지 못한 일다. 그 친구를 만나 동창 모임에 나간다. 그곳에서 그녀의 첫사랑과 그녀를 첫사랑으로 생각하는 동기를 만난다.

 

시한부 인생이란 점이 그녀를 소극적으로 만든다. 그녀가 도와주지 못한 친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지금도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줄 때 솔직히 놀랐다. 동창회에서 그녀는 자신의 병을 숨기고, 직업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한 번 내뱉은 거짓말은 그녀를 따라다닌다. 짝사랑의 대상은 다른 여친이 있고, 반에서 신동이라 불렸던 다도종가의 카즈토는 그녀에게 마음이 있다. 그녀의 밝음과 작은 선의가 마음 한 곳에 사랑을 심은 것이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 두 사람의 조심스러운 만남과 감정의 교환이다. 맞다. 사랑 이야기다.

 

작가는 이야기를 화려하게 표현하지도, 반전도 만들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감정의 충돌이 격렬하게 표출되는 것도 아니다. 덕후의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어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조금 답답한 점도 있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조심스럽고 사실적이다. 자신의 병을 숨긴 채 연애를 하지만 이것은 결국 밝혀질 수밖에 없다. 이미 병원에서 이 병의 마지막 장면을 본 그녀이기에 욕심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어쩌면 이 마지막이 그녀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실제 작가가 이 한 작품을 낸 후 죽었다고 하는데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만약 나에게 시한부 인생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처음 생각한 것과 다 읽은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의 좌절과 체념에 동의하지 못하고, 현실의 삶을 더 즐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지만 누구나 과도기의 시간은 필요하다. 앞부분에서 강한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 그녀의 마음과 연애 등으로 재밌었다. 첫사랑에 대한 작은 이벤트는 마지막에 꽃을 피우는데 살짝 미소를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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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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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작가수첩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솔직히 말해 이 부제를 보지 못했다. 작가 이름과 제목에 먼저 눈길이 갔다. 이 책을 펼쳐 가장 첫 문장을 읽고 <영혼의 무기>가 떠올랐다. 800쪽이 넘는 책은 그 책이 유일하다. 어떤 문장은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에서 그대로 인용되었다. 이 책의 구성은 <영혼의 무기>와 유사하다. 작가수첩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의 단상들을 나열해놓았다. 크게 다섯 꼭지로 나누었는데 마지막 토토 관련 이야기를 빼면 그렇게 강하게 공감할 수 있는 분류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책읽기가 너무 급했고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이응준의 소설도 두세 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산문집이 더 좋다. 그의 생각을 직접 적은 글들은 그의 냉소적인 감성과 이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변함없이 함성호 이야기가 나오지만 다른 책에 비하면 그의 출연 지중이 상당히 낮다. 사실 이응준의 글이 아니었다면 내가 함성호 시인의 시나 산문집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책읽기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부작용이 된다. 나처럼 책 욕심이 과한 사람에게는 언제 읽을지 모르는 작가 한 명이 늘어났고, 그 책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취향에 맞다면 즐거운 시간을 가지겠지만 소유하고 싶은 책은 더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난 책이 얼마인가. 작가가 말했듯이 내 것들도 아닌 것들인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회의주의와 냉소가 절로 느껴진다. 좌파와 우파의 양극단에 대한 그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선동에 약한 대중의 약점을 그가 말할 때 그들 중 한 명인 내가 보인다. 파시즘에 대한 경계는 당연하다. 역사가 그것을 이미 보여주었으니까. 이런 글들이 어떤 논리를 가지고 꾸준히 나오지는 않는다. 부제 그대로 작가의 단상들을 적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글은 한 쪽을 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날에 여러 개를 적은 경우도 있다. 이 역시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사실 이런 단상을 누구나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적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SNS에서 이런 일에 성공한 사람들이 책을 내기도 한다.

 

한국이 망한다면 한국 정치인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들 때문이란 글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투표로 정치인을 뽑고, 그 정치인이 잘못되었거나 정당이 잘못되었으면 바로 잡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문제로 넘어가면 이것이 더 심해진다. 작가의 글 중에 부모님을 간호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객관적 지표와 상관없이 그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 놀랐다. 납골묘나 산소를 찾아가지 않고 자신 속에 모시고 있다는 말에 불멸을 느끼다가 그에게 자손이 없다는 사실에 단절을 느낀다. 뭐 이것이 중요한가. 갑자기 불명이란 단어가 떠올라 적은 단상이다.

 

이 작가수첩에 나온 이야기가 소설 등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다. 최근에 읽은 <해피 붓다> 속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문, 무, 불, 성을 화두 삼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화두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그는 읽기보다 쓰기에 더 중점을 둔다. 읽기는 쓰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산 자들의 책보다 죽은 자들의 책을 더 읽는다. 이유는 생략. 한국 문학비평가에 대한 신랄한 비평은 왠지 모르지만 신경숙의 남편에게로 생각이 이어진다. 이 둘의 연관성은 없는데도 말이다. 책 속 글들을 읽으면서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계속 떠오른 것은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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