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척도
마르코 말발디 지음, 김지원 옮김 / 그린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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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광고 문구를 내놓은 책이다. 다 빈치 사후 500주년 기념작이란 광고다. 사실 이런 광고 문구는 누구나 사용이 가능하다. 다 빈치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라면 누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광고에 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역사소설과 미스터리의 완벽한 결합이란 문구는 팩션으로 간단히 치환가능하다. 하지만 매혹적인 르네상스 인물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면 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는 <다 빈치 코드>란 소설이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했던가. 그가 남긴 노트가 얼마나 높은 가격에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던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구다.

 

처음에는 <다 빈치 코드> 같은 빠른 전개와 미스터리로 가득할 줄 알았다. 이 기대는 몇 쪽을 읽지 않아 사라졌다. 다른 서평에서 본 것처럼 20쪽까지 등장인물 소개가 나온다. 이런 친절한 소개가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찾아보며 누군지 확인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게을러졌다. 만약 한두 쪽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몇 쪽에 걸친 소개라니. 낯선 이름과 역할 등은 솔직히 쉽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당시 역사를 좀 안다면 이 소개가 소설을 이해하는데 더 쉽고 더 많은 도움을 줬을 것이다. 단편적으로 이 시대와 인물을 기억하고 있기에 이 등장인물이나 상황이 체계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1493년 가을 루도비코 일 모로의 궁중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외상이나 독물 중독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전염병을 의심한다.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것은 전염병이다. 과학이 현재처럼 발전하기 전이다 보니 점성술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20세기 초까지 의사들의 주 치료 방법이 사혈법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 시대를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행이라면 해부를 해본 레오나르도가 그 곳에 있었다는 것 정도다. 그는 시체가 어떻게 죽었는지 해부를 통해 안다. 시체의 정체도. 나중에 이것이 잠깐 그에게 의심을 불러온다.

 

그 당시 경제, 정치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밀라노 공국은 경제 호황과 정치적 번영기를 거치고 있고, 다른 국가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불러온다. 재밌는 것은 레오나르도가 발명한 장치가 와전되어 상대국에 공포로 자리잡았다는 설정이다. 다 빈치의 공책을 노리는 무리가 등장한다. 그의 아이디어가 담긴 공책이다. 이것을 얻으면 밀라노 공국을 쉽게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 편으로 밀라노의 경제를 파탄 내려는 세력이 있다. 가짜 신용장을 바탕으로 하는 작전이다. 이 부분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을 잘 보여준다. 화폐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환가치란 사실을 말이다.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레오나르도의 일상을 보여준다. 그의 노트를 훔치기 위해 남색가란 소문을 이용해 남자가 유혹하는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이렇게 소소한 재미를 준다. 계속해서 나의 관심을 끈 것 중 하나는 그가 일 모로를 위해 만들고 있던 청동기마상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그는 실패했다. 청동의 가치와 계산 착오 때문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해 하나의 사건으로 만든다. 현대 과학에 너무 익숙한 우리가 가끔 망각하는 몇 가지 일들 중 하나가 이런 기계 장치나 조각상들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빠른 전개도 장면 전환이 빠르지도 않다. 비슷하고 낯선 이름은 기억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느리지만 점차 의도가 드러나는 상황들은 읽는 재미를 조금씩 높여준다. 그 시대에 대한 충실한 설명과 해설은 이런 이해를 높인다. 물론 가끔 작가가 너무 상황을 현대 용어로 해석하면서 생기는 돌출이 아쉽지만 말이다. 화려한 광고 문구에 비해 레오나르도의 위대함은 그렇게 부각되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인간의 척도란 제목과 다 빈치의 청동기마상 제작 실패는 왠지 이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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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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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놀라운 설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민주주의 국가로 포장된 미국이 갑자기 퇴행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억압하게 만든다. 여성들에게 허락된 하루의 단어 숫자는 고작 100단어다. 이 숫자를 넘어가면 그들의 팔찌가 전기 충격을 준다.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느니 의문이 들지만 작가는 몇 가지 설정을 통해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 가능성의 첫 번째가 바로 소설 속 주인공 진 매클렐런의 친구 재키의 정치 투쟁이다. 하나의 흐름이, 하나의 세력이 강대해지는 데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이다. 투표의 중요성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빼앗았다는 설정을 보았을 때 오래된 뒤틀린 속담인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가 떠올랐다. 여성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대표적인 속담 중 하나다. 작가가 설정한 이 세계는 이것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목소리를 빼앗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직장에서 몰아낸다. 고전적인(?) 여성의 지위로 내려놓는다. 바로 엄마, 아내, 주부 등의 역할이다. 투표권도 물론 없다. 100년 전 세계로의 후퇴란 표현이 소설 속에 나오는데 실제는 더 퇴행한 설정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는 설정은 더욱 놀랍다. 이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거대한 벽을 세웠다는 것은 또 다른 정치 현실에 대한 역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 중 하나가 독일 나치다. 불과 수십 년 전 독일이 어떻게 나치화 되었는지 보았지 않은가. 가까운 시기로 오면 아프리카의 인종 대학살이나 보스니아 사태나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중국 천안문 사태까지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가능성이 일어났다. 이 소설 속 순수운동이 정치권력을 삼켰을 때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고 그 탄압에 도망치거나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변한다. 재키가 방송에 나와 다른 패널들과 싸울 때 상대방이 내민 왜곡된 정보를 믿고 투표한 이들이 어떻게 피해자가 되었는지 보여준 장면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진은 실어증 치료에 혁신적인 혈청 개발 전문가다. 한때 박사였지만 엄마와 아내로 집에 머문다. 하루에 말할 수 있는 단어의 개수는 100개다. 아이에게 자기 전 동화도 읽어줄 수 없다. 이 정책의 무서움은 성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 아이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잠을 자다 잠꼬대를 해도 카운트된다. 이 팔찌가 얼마나 무서운 장치인지 보여주는 장면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장치를 이용한 자살 시도다. 엄청난 고통을 견뎌야만 가능한 자살이지만 그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이 소설의 놀라움 중 하나가 이런 극단적 상황을 연결해 이 현실의 무서움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런 정책의 바탕이 되는 것의 이름을 ‘순수운동’이라고 한 부분은 언어와 정치를 잘 엮어 표현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정치 표어나 단체들이 실제 행동과 다른 단어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진이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바로 대통령 형이 실어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팀이 연구했던 혈청이 필요하다. 베르니케 실어증 연구를 계속하라는 압박이 온다. 이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그녀는 몇 가지 계약을 하지만 이런 독재 국가에서 이런 계약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그녀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성공할 때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이 과정 속에 일어나는 가족의 갈등과 외도와 현실의 문제들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런 정치적 흐름 속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열광적으로 호응하는 무리 중 하나는 십대 청소년들이다. 엄마와 고등학생 아들 스티븐의 갈등과 대립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실제 이런 정치적 억압 시기가 길지 않고 상황도 미국만으로 한정되어 있으면서 전체 구성에 약간의 어색함이 생긴다. 나중에 딸에 대한 부성애가 하나의 돌파구처럼 작용하는 것은 이 전체 설정이 약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상황을 뒤집기 위한 반전이 내가 예상한 것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조금 아쉽다. 한 국가의 디스토피아 상황을 멋지게 설정하고 사고 실험을 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개인에게 수렴되는 해결방식은 재키의 외침과 동떨어져 있다. 아마도 내가 이 소설의 놀라운 설정과 전개에 감탄하면서도 뭔가 저항에서 아쉬움을 느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 생각할 거리와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굉장히 지적이고 위험하고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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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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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하드보일드 소설이란 말에 혹했다. 읽으면서 하드보일드 소설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무뚝뚝한 택배기사란 사실을 지우면 택배기사의 고단한 삶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빠르게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그가 만난 진상들이,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행운들이 이 일과 관련되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서울 상경과 동시에 택배기사가 되고, 몸을 놀리기 바빠 딴 생각할 틈도 없는 택배의 고됨이 나열된다. 이전에 본 만화 <까대기>가 연상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인물 몇 명이 나오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뀐다.

 

가장 이상한 인물은 그에게 담배 한 대를 빌려 피우는 여자다. 이 여자는 자신이 우울증 환자였다고 말한다. 나중에는 자신과 하루 동안 만나면 일당 백만 원을 주겠다고 한다.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다. 이 만남 속에서 그는 그녀의 과거 사연을 듣고, 예상하지 않은 만남을 만들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동네 바보도 한 명 등장한다. 그가 마이클이라고 부르는 인물이다. 택배 운송 중 고등학생들에게 구타당하던 그를 구해준다. 이때 그가 보여준 침착함과 과장된 지식은 눈길을 끈다.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모습을 보여줄까. 하지만 사건해결은 공권력에 맡기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같은 구간을 계속 배송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한 인물을 만난다. 유명한 경제학 교수가 그렇다. 그에게 자신에게 수업을 받으라고 말한다. 나의 눈길이 간 부분은 이 상황이 아니다. 그가 어떻게 그 교수의 정체를 알았을까 하는 것이다. 정치인이었거나 방송에 자주 나오는 교수가 아니면 보통 알기 힘들다. 여기에 특정 시간에 배송해달라는 바의 주인이 있다. 알고 보니 그 바가 게이바다. 이 바를 통해 그가 위스키를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냑은 싫어하고. 위스키라면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주기 충분하다. 한 택배 기사의 사연도 이 술 때문에 들어주었다.

 

택배기사이다 보니 주변 동료가 없을 수 없다. 택배기사들의 사연 몇 가지가 나오고, 이들의 만남 속에 그의 일상이 드러난다. 일이 끝난 후 책을 읽고 술을 마신다. 그가 읽는 책들이나 인용하는 문구들은 내 취향과 비슷하다. 좋아하는 장르 이야기는 눈길을 끈다. 작가 후기에 켄 브루언의 <런던 대로>가 나왔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 속에 그의 실명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행운동 담당이라 행운동이라고 불린다. 다른 택배기사도 별명으로 불린다. 택배 배송 중 생긴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읽으면서 통쾌함을 느꼈다. 단돈 몇 천 원에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에게 정확한 일침을 가하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에 바뀌는 그의 행동을 보면 또 다른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간결한 문체에 군더더기 없는 진행과 까칠한 캐릭터는 재밌고 잘 읽힌다. 몸으로 움직이면서 딴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 노동자인 택배기사를 내세워 우리 주변 인물들을 삶을 보여준다. 다양한 사연들과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소설 제목의 침입자들은 주인공 행동동의 삶 속으로 침입한 수많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가 바란 것은 업무 후 술 한 잔과 독서일 뿐인데. 이런 분위가 뒤로 가면서 조금씩 뒤틀리고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다. 어떻게 보면 과장되었거나 뜬금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숨겨진 과거는 언제나 설레고 기대하게 된다. 영화 <셰인>처럼.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검색되지 않는데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행운동이 주인공인 소설이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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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거짓말 마틴 베너 시리즈
크리스티나 올손 지음, 박지은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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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틴 베너 시리즈 2편이다. 1편 <파묻힌 거짓말>을 읽지 않았다. 속편 격이라고 하는데 읽지 않아도 이 작품을 따라가는데 큰 무리가 없다. 물론 1편을 읽었다면 이해하는 깊이가 더 깊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이 끌렸던 것은 표지와 북유럽 스릴러란 이유 때문이다. 전편에 대해 특별한 정보를 크게 얻지도 않았다. 책을 선택할 때 책 정보를 읽었겠지만 이런 정보는 희발성이 강해 그 후 금방 잊어버린다. 물론 전편을 읽었다면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 책 앞부분에 전편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 나온다. 덕분에 어떤 이야기와 이어지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이야기는 사라의 실종된 아들 미오를 둘러싼 미스터리다.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사라진 미오의 존재는 미스터리 그 자체다. 미오는 미국 암흑가 갱 루시퍼의 아들이고, 그가 이 미오를 찾길 바라면서 문제가 생긴다. 이 일을 할 사람은 마틴 베너다. 도입부의 몇 가지 내용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해결되었다. 거구의 성공한 흑인 변호사가 주인공인데 만약 이 부분의 설명이 없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여자 친구이자 파트너인 루시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삶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마틴은 몇 가지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하나는 뺑소니 사건을 일으킨 차의 주인으로, 다른 하나는 살해된 시체가 그의 차 트렁크에서 발견된다. 이 두 사건 모두 증인과 시체가 있다. 물론 이 사건에 대한 반론을 제시할 자료를 마틴이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밀고 나간다. 증거는 조작되었고,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모든 죄를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갱인 루시퍼의 협박까지 곁들여진다.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찾지 못한 미오를 찾아야만 한다. 이미 루시퍼는 그의 조카인 벨을 납치한 전력이 있다. 그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또 어떤 비극이 생길지 모른다.

 

그는 한때 미국 텍사스에서 경찰 생활을 했다. 전편에서 어느 정도 그의 가족사와 과거가 나왔겠지만 왜 경찰을 그만 두었는지는 말하지 않은 것 같다. 생매장 당하는 악몽을 꾸는데 왜 이런 악몽을 꾸는지 루시에게 말한다. 경찰이었던 시절 저지른 실수 때문이다. 범인을 착각하고 살해했는데 이 일은 내부적으로 묻어버렸다. 이런 과거가 그로 하여금 한 여자에게, 한 가정에 정착하지 못하게 만든 것 같다. 루시와 사귀면서도 그는 다른 여자를 만나 섹스를 한다. 만약 이런 사건들이 생기지 않았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조카이자 딸이 벨과 함께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루시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그가 묻어둔 비밀들이 하나씩 밖으로 드러난다.

 

그가 미오와 관련된 사건을 더 깊이 파고들수록 시체가 늘어난다. 동료나 친구나 가족 등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다. 경찰도 믿을 수 없다. 인맥으로, 뛰어난 판단력과 정보로, 행운으로 잠시 위기를 벗어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를 위기와 공포 속으로 몰아간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왜 루시퍼가 그에게 집착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가독성이 좋고, 군더더기는 없다. 마지막 반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전편을 읽었다면 가능했을까?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반전에 대한 것은 약간 유보해두고 싶다. 혹시 다음에 전편 <파묻힌 거짓말>을 읽게 되면 어떤 추론이 가능할지 조금 궁금하긴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포에 대처하는 두 남자의 삶을 바라본다. 한 명은 당연히 마틴 베너고, 다른 한 명은 그를 조작된 증거로 옭아매는 형사다. 형사의 공포는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회피하고, 자신이 보고 믿는 것에 집중한다. 그에겐 진실보다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하다. 마틴 베너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가족의 삶이 더 중요하다. 처한 상황도 다르다. 하지만 그는 사실을 바라보려고 했고, 과거와 마주하려고 노력하면서 진실에 한 발 다가간다. 비록 그 진실이 참혹하고 뒤틀린 관계와 오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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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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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란 참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생강빵과 진저브레드는 같은 의미인데 무심코 들여다보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런 일은 번역 책을 읽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된다. 외국 음식일 경우 그 나라 언어로 표기하면 완전히 낯선 음식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 단어를 익숙한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 하고 금방 아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이런 단어들에 관심이 많이 줄었지만 예전에는 나도 저자처럼 이 음식이 뭐지? 하는 의문을 많이 가졌다. 음식뿐만 아니라 의상이나 화장 등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외국어에 익숙해져 번역이 오히려 낯선 경우도 있다.

 

부제로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가 붙어 있다.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많이 다가온 것은 소설의 감상을 음식과 연결시킨 문학 에세이란 부분이다. 번역도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번역된 책 속에 나온 음식들과 그 출처인 소설을 엮어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각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소설의 한 부분을 인용하는데 그 속에 음식 이름이 들어 있다. 첫 음식인 검은 빵의 경우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 사모바르와 함께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끌었던 빵이다. 얼마나 딱딱하기에 먹기 힘들다는 표현을 썼을까 하는 의문과 그 시대를 몰라 나중에 몸에 좋은 최신 빵과 헷갈렸던 기억이 있다. 저자도 이 부분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책의 구성은 빵과 수프와 주요리와 디저트 등으로 꾸며져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 이야기는 나의 식성과 맞아 떨어지는데 왠지 이 샌드위치를 떠올리면 미국 영화나 드라마 속 학교 식당 풍경이 떠오른다. 단추 수프의 경우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민담이란 사실을 몰랐었다. 서양의 문학에서 자주 보게 되는 거위 구이는 한국에서는 아주 낯선 음식이다. 치킨이라면 모를까. 월귤도 마찬가지다.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이미지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저자도 지적했듯이 오히려 번역이 더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번역가의 고뇌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대가 바뀌면서 음식에 대한 대우가 완전히 달라진 두 음식이 나온다. 하나는 거북 요리고, 다른 하나는 바닷가재 샐러드다. 바닷가재의 경우는 다른 책 등에서 자주 봐 낯익지만 거북 요리를 서양인들이 먹었다는 사실과 대중적인 요리였다는 부분은 아주 낯설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용봉탕이나 자라탕이 떠올랐지만 다른 식감과 요리법이다. 뭐 이제는 약간 혐오 음식이 된 듯하다. 향신료 이야기는 독점무역과 연결된다. 향료전쟁이 벌어졌을 정도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도 이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제는 우리가 너무나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식재료들이 과거엔 엄청난 고가였다는 사실은 또 다른 기억으로 이어진다. 과학과 산업의 발전 등으로 예전에는 엄청난 고가였던 것들이 현재는 누구나 소유하는 물건으로 바뀐 경우가 주변에 허다하다.

 

음식과 번역 이야기로 읽어도 좋지만 읽다 보면 저자의 추억과 책에 대한 감상이 더 눈에 들어온다. 아쉬운 점 중 하나는 이 책들 중 내가 읽은 책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몇 권은 나중에 읽을 기회가 있겠지만 상당수의 책들은 취향과 멀리 떨어져 있다. 솔직히 이전에 관심을 두지 않았거나 몰랐던 책에 대한 호기심을 강하게 불어온 책도 있다. 애니 등으로 먼저 만나 소설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작품도 있다. 그때는 그 음식에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새로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 속에서 음식 하나는 작은 단어 하나일 수 있지만 이 작은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기도 한다. 소설, 음식, 번역에 대한 좋은 책 한 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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