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 리스트 컨선 안전가옥 오리지널 5
이산화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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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기 전 이산화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 여러 곳에서 앤솔로지나 단편선에 참여했는데 내가 읽은 책은 없었다. 하지만 카페나 게시판 등을 통해 그의 작품에 대한 좋은 평을 봤고,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하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 ‘안전가옥’에서 장편으로 나온 것을 보고 선택했다. 그런데 이 책을 선택할 때 왠지 모르지만 선입견의 작용으로 이 소설을 SF로 분류했다. 책을 펼쳐 읽으면서 언제 SF적인 전개가 펼쳐질까 기다렸다. 이 기대는 중반부터 완전히 접게 되었고, 빠르게 전개되는 범죄 액션 스릴러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두 명의 여성이다. 한 명은 조도화이고, 다른 한 명은 리 펭란이다. 조도화는 홍콩 동물원 선배였던 누리 언니가 맡긴 파충류를 이구아나라고 생각하고, 3년을 돌봤다. 3년이 지나 더 이상 돌보기 힘들어 새로운 사람에게 입양시키려고 한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갔다 갑자기 꿈틀이를 데리고 나온다. 이때 만난 인물이 리 펭란이다. 리 펭란은 센티넬라 신디케이트 소속 야생동물 밀수업자다. 그냥 도화를 죽이고, 이구아나로 잘못 알고 있는 전 세계에 단 한 마리 남은 무지개꼬리 포카이카하를 가지고 오면 끝이다. 하지만 3년 전 그녀가 이 포카이카하를 잃었을 때 배송팀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도화의 정체와 어떻게 이 포카이카하를 얻게 되었는지 알게 되면서 함께 동행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희귀종, 멸종 위기 같은 단어는 수집가들의 수집욕에 불을 지른다. 이전에 희귀한 새 깃털을 둘러싼 엄청난 불법과 거래를 다룬 책을 읽은 적 있기에 쉽게 이해가 된다. 펭란 일행은 방콕으로 가 3년 전 배송했던 업자 제러미를 만난다. 그는 새로운 희귀종을 거래하려고 한다. 펭란 일행에게 사건 현장 사진들을 보여주고, 이 살인자를 찾는데 돕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3년 전 그 살인자에게 죽는다. 이전과 같이 현장에는 L과 C라는 알파벳 철자가 적혀 있다. 제러미의 수하들을 닦달하니 3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런 흔적을 남긴 살인자가 있었다고 한다. 제러미가 신디케이트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물론 이 상징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인물은 도화이고, 살인자의 이름을 알아채고 뒤좇는다. 결국 만나지만 죽기 직전에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산다.


펭란은 이 살인자를 잡기 위해 잘 만들어진 함정을 판다. 누리 언니를 만나려는 도화는 그녀를 돕는다. 도화는 유일하게 그 살인자를 만난 인물이다. 이 함정은 수집가들을 이용해 덫을 놓는 것이다. 성공한다면 이야기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실패한다면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서로의 이익과 이해가 교차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때 이 함정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도화다. 도화의 선택이 전체적인 흐름을 바꾼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택이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의 머릿속에서는 ‘셰인 콤플렉스’가 작동한다. 혹시 누리 언니가 실제는 도화가 아닐까? 도화가 엄청난 능력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 소설을 읽다보면 수많은 멸종 위기종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 동물이나 파충류 중 몇 종이나 실제 존재할까? 최소한 포카이카하는 실존하지 않는다. 이런 가상의 생물체가 나온다는 사실을 힐끗 본 것이 이 작품을 SF로 착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밀수업자를 죽이는 살인자가 남긴 LC는 최소 관심 등급에 해당하는 동물을 의미하는데 인간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살인자의 논리는 비정상적이지만 인간이 동물 등에게 저지른 만행 등을 생각하면 잠시 주춤하게 된다. 처음 만난 작가 이산화는 이 작품으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속도감, 구성, 캐릭터 등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의 본래 영역인 SF는 어떨지 궁금하다. 올해가 가기 전 이 작가의 작품을 한 권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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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흐르는 꽃 - Novel Engine POP
온다 리쿠 지음, RYO 그림, 이선희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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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었다. 처음 읽은 <밤의 피크닉>으로 열렬한 환호를 보냈는데 그 다음 작품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고 ‘뭐지?’하는 의문이 생겼다. 나의 기대와 너무 다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읽은 몇 편의 소설은 취향 저격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책을 사 모았다. 도코노 이야기니, 간바라 메구미 시리즈 등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늘 그렇듯이 책들을 사놓고 묵혀두었다. 책장 정리 도중 한 곳으로 정리한 듯한데 몇 권은 얼마 전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한두 권 정도 더 읽고 싶은데.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라이트노벨로 분류되었다고 해도 분량이 좀더 있을 줄 알았다. 이 부분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다. 그리고 실제 온다 리쿠의 작품에 분량이 큰 의미가 있을 리 없다. 그렇게 펼쳐든 이야기는 녹색남자와 여름성의 비밀을 차분하게 풀어낸다. 학원물로 분류 가능한지 생각하면서 읽는데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알 수 없는 비밀이 발견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 알게 되는 진실은 작가가 꼭꼭 숨겨둔 설정을 하나씩 터트리는 시간이다. 약간 스포를 감수한다면 코로나 19와 비슷한 상황이다.


6월이라는 어중간한 시기에 전학 온 미치루는 이 마을 사람들이 말을 삼가는 존재가 자신을 따르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 장의 초대장을 받는다. 여름성 여름 캠프 초대장이다. 이 초대장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여름성에 가야 한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반 친구 스오가 내리는 모습을 본다. 다섯 명의 소녀들이 기차에서 내린다. 녹색에 총안마저 없는 여름성에 이들은 들어간다. 여름 캠프라고 하지만 이 소녀들을 제외하면 어른은 없다. 무더운 여름 다섯 소녀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 은연중에 이 소녀들 중에서 스오가 리더가 된다. 몇 가지 간단한 규칙만 지키면 상당히 자유로운 캠프 생활이다. 소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조금씩 친해진다.


이 평온한 캠프에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종소리가 한 번 울리면 식당에 모이고, 세 번 울리면 지장보살 앞에 모여 합장해야 한다. 또 수로에 흘러내리는 꽃잎을 기록한다. 테니스 코트가 있어 짝이 맞으면 테니스를 치고, 방학 숙제도 한다. 규칙만 지키면 자유롭고 평화로운 생활이다. 이런 생활에 파문이 생기는 것은 미치루가 불분명하게 들은 대화의 일부와 갑자기 사라진 학생 한 명 때문이다. 여름성이란 갇힌 공간과 사라진 소녀와 알 수 없는 대화의 일부는 조금씩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작가는 결코 자극적인 설명이나 대사를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녹색남자의 진실이 드러난다. 솔직히 말해 이 부분을 읽으면서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소품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온다 리쿠란 이름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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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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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영화를 먼저 봤다. 한참 일본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 이 영화를 봤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배우가 주연이라 재밌게 봤던 것 같다. 하지만 기억 속 영화는 조금 가벼운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은 아마 여주인공 나카마 유키에의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검색해 찾은 이 영화에 대한 후기를 보면서 기억에 오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작 소설과 영화는 결말 부분이 다르다. 이 다른 결말이 기억에 다른 이미지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광고기획사에 다니는 사쿠마의 기획은 광고주인 닛세이자동차의 새로운 부사장 가쓰라기에 의해 중단된다. 이 일에 열 받아 가쓰라기 집을 찾아갔다가 집밖으로 도망쳐 나오는 한 여자를 본다. 그녀를 뒤쫓는다. 시내 호텔에서 숙박이 거절되던 그녀에게 다가가 정체를 확인한다. 가쓰라기의 딸 주리라고 한다. 주리는 혼외자의 딸이다. 배 다른 동생과 싸운 후 홧김에 가출한 것이다. 하루 이틀 정도 재워주고 집에 보내면 되는데 그녀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바로 유괴다. 가쓰라기에게 나쁜 감정이 있던 사쿠마는 주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이 유괴를 하나의 게임으로 생각하고 이길 계획을 세운다.


유괴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납치만 한다면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른다. 돈을 받아야 한다면 상당히 어려워진다. 경찰의 개입이 없다면 사람과 돈의 교환이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경찰이 개입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흔히 일어나는 인질의 죽음이나 납치범의 체포 등이 생길 수 있다. 작가는 이 유괴를 성공하기 위해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 등에 나온 방식을 참고한다. 물론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는다. 가장 먼저 유괴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인질의 안전을 알려주고, 지속적인 연락을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돈을 받기 위해서는 돈 가방 등에 붙어올지 모르는 위치 추적기나 표시 등을 주의해야 하고, 몸값을 받은 후 혹시 있을지 모를 추적자를 따돌려야 한다. 주의하고, 긴장하고, 대범해야 성공이 가능하다.


이 유괴를 게임으로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사쿠마는 주리에게조차 자신의 완전한 계획을 말해주지 않는다. 호텔에서 집으로 데리고 와 숨게 한다. 당연히 누구와도 연락하지 말고, 집 전화도 받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주리가 친구에게 전화를 한 통 했다고 한다. 미국에 가 있어 자동응답기 녹음을 지우면 된다고 말한다. 그 동네를 찾아간다. 여자들만 머무는 집이라고 말하며 사쿠마를 밖에 머물게 한다. 녹음을 지운 후 사쿠마는 그녀가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모텔에 들어간다. 전화 도중에 뱃고동 소리가 들어가게 만든다. 당연히 이 일은 경찰 수사에 혼란을 끼치기 위해서다. 이 전화 한 통이 두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끈다. 산 속 차 안에서 정사를 나눈다.


사쿠마는 일상 업무를 진행하면서 닛세이자동차 신차 기획에 잠깐씩 참석한다. 가쓰라기의 반응을 그때마다 본다. 차분한 듯하다. 딸이 유괴된 아버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연락과 몸값 지불일 등이 갑자기 확정되면서 바빠진다. 사쿠마는 돈을 받기 전 경찰의 미행이 있는지 확인한다. 당연히 가쓰라기는 경찰에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런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주리는 사쿠마의 집에 머문다. 어느 날 사쿠마는 주리의 사진을 한 장 몰래 찍는다. 그때 카메라가 그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둘은 연인 아닌 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히 한시적이다.


소설은 사쿠마가 어떤 계획으로 몸값을 받을지, 그 과정은 어떨지, 이후 사쿠마와 주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지 등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른 작품들처럼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다. 이 소설 속 사쿠마도 주리도 가쓰라기도 모두 게임에 참석한 플레이어들이다. 이 게임에 맞는 가면을 쓰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한다. 사쿠마는 단순히 몸값을 받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경찰 조사까지 머릿속에 담고 있다. 주리에게 납치부터 풀려난 순간까지 상황을 되풀이해서 주입한다. 꼼꼼하고 철저하다. 하지만 진짜 게임은 이 유괴 너머에 있다. 반전과 진짜 게임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언제 시간나면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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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
존 마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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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매치란 방식으로 운명의 상대를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내 평생의 연인을 유전자 정보 바탕으로 손쉽게 찾아준다. 비용도 우리가 이용하는 결혼 정보회사보다 저렴하고, 필요 이상으로 만날 필요도 없다. 물론 상대방도 이 서비스를 신청해야 한다. 이 서비스가 상용화된 지 10년이 지났고, 초창기에는 수많은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이 매칭 시스템으로 상대방을 만나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결혼을 약속한 커플이 자신들의 사랑을 실험하기 위해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 매칭은 당사자가 상상도 하지 못한 사람을 이어줄 때도 있다. 이 소설은 이런 현실 속에서 다섯 명의 인물을 통해 DNA매치와 사랑 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이를 낳고 싶은 이혼녀 맨디, 런던 전역을 공포로 몰아놓고 있는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 결혼식을 앞둔 닉, 지구 반대편 호주에 연인이 있는 제이드, 대기업 CEO 엘리 등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들은 DNA매치를 통해 상대방을 소개받는다. 그런데 이 매칭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 맨디가 매칭된 남자 리처드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연쇄살인범 크리스토퍼의 연인은 경찰이다. 닉은 동성애자도 아닌데 남자가 매칭되었다. 제이드는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다. 엘리는 평범한 연애가 힘든 대기업 CEO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작가는 이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이 DNA매치로 운명의 상대를 소개받고, 이 매칭이 얼마나 강력한 끌림이자 유혹인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가면서 보여준다. 맨디는 직접 만나지도 못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엄마와 누나를 만나 친분을 쌓고, 결국 리처드의 냉동 정자로 인공수정한다. 닉은 또 어떤가.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자신들의 결혼이 운명인지 확인하려고 한다. 결과는 닉의 상대방이 남자라고 알려준다. 닉은 단 한 번도 남자에게 끌린 적이 없는데. 실제 그를 만나러 가서 자신의 변화를 확인해보려고 한다. 첫인상과 달리 어느 순간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이 정도만 해도 이 매칭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알 수 있다.


이 매칭의 실수처럼 보이는 커플도 있다. 바로 제이드다. 제이드는 오랜 인터넷 만남을 끝내고자 호주로 직접 가서 매칭 상대방을 만난다. 실제 마주한 그는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중환자다. 왠지 모르게 그에게 끌리지 않는다. DNA매치로 만났다고 해도 바로 운명의 상대임을 아는 사람이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제이드는 자신이 후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그녀가 끌리는 사람은 딴 사람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나중에 이 가설이 맞음을 확인했다. 동시에 DNA매치가 얼마나 강렬하고 유효한지 다시 확인시켜준다.


엘리는 DNA매치 유전자를 발견하고, 이것을 하나의 사업으로 키운 인물이다. 중반에 그녀의 정체가 드러난다. 일반적인 연애가 불가능했던 것은 그녀의 성공 이후 다가온 남자들 때문이다. DNA매치를 통해 데이트 상대를 찾는다.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 남자의 신원을 조사하고, 한 번 만난다. 두 번 만난다. 이 남자에게 끌리고 빠져든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긴장감을 불러온다. 그녀가 이 사업을 크게 만들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이 과정에서 생긴 문제점은 무엇인지 등이 나오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SF 로맨스에 가까운 이야기를 스릴러로 끌고 가는 두 이야기 중 하나다.


스릴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크리스토퍼다. 그는 사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범이다. 그의 분량이 늘어나면 스릴러에 더 가깝게 다가가지만 작가는 그의 살인 행각을 자세하게,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왜 그가 이런 연쇄살인을 저지르는지 알려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DNA매치로 만난 연인으로 인해 자신의 감점이 흔들리고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소설의 기본 설정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재밌는 점은 크리스토퍼의 연쇄살인이 엄청난 공포를 몰고 왔을 텐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가는 각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펼치는 순간의 시간 속도와 흐름을 제각각으로 다루면서 인물들의 연관성을 지운다. 이 편집과 구성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빠른 장면 전환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여기에 연쇄살인범과 DNA매치를 둘러싼 비밀 등이 나오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몇몇 뻔한 장면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 뻔함이 DNA매치의 과학성을 높여준다. 그리고 각 단계나 사건마다 스스로에게 질물은 던진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매칭의 허점은 무엇일까? 혹시 다른 반전이 나오지 않을까? 등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트집 잡을 부분들이 있지만 속도감에 열심히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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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지음 / 아작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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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너울의 SF 단편들을 열심히 찾아서 읽고 있다. 앤솔로지나 여러 작가의 단편모음집을 제외하면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많은 작품을 출간한 것 같은데 단편집은 딱 두 권이다. 장편이 한 편 있는데 올해 안에 시간내어 읽어보고 싶다. 심너울이란 작가를 처음 발견한 것도 안전가옥 앤솔로지 중 한 권인 <대멸종>이었고, 그의 단편집을 처음 읽은 것도 역시 안전가옥이었다. 그런데 이제 SF전문 출판사인 아작에서 단편집이 나왔다. SF 분야만 한정하면 배명훈, 김보영 이후 처음으로 깊은 관심을 가진 작가다.


이 작품집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에 나오는 설정 한 가지 때문이다. 작가의 후기에 의하면 한국의 어느 회사와도 관련이 없다고 선을 긋는데 이 부분이 옛날 영화 <투캅스>의 오프닝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 연구소의 직원들이 인센티브 대신 동호회를 만들어 활동하게 만들고, 이들 중 몇 명이 SF 모임을 만들면서 생긴 이야기다. 이 모임 속에 한 명이 작가고, 이 작가가 클럽 사람들을 SF 덕후로 만든다. 그러다 쓰러진 채 죽지 않고 10년을 버틴 회장님과 상속세 등의 문제가 있는 부회장님 이야기가 겹친다. 누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가. 작가가 관계없다고 하니 우연으로 치부하자.


<초광속 통신의 발명>은 짧은 단편이다. 퇴근해도 퇴근이 아닌 현대인의 삶을 알 수 없는 과학과 연결시켰는데 솔직히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퇴근하고 싶은 기분이 시간을 초월해 과거로 흘러간다’는 부분에선 왠지 모르게 공감한다.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란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의 중년들이 홀로 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살짝 엿보고, 작은 조직 안에서 자신의 권위를 최대한 누리는 삶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한 놀라운 실험을 다루는데 이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했던 것임을 생각하면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흔적을 보고 안도하는 여성들의 모습에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는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자 있을 수 있는 해프닝을 다룬다. 읽으면서 광고로 봤던 수많은 시골의 학교 등이 떠오른다. 표제작 <나는 절대로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글이라고 한다. 우린 젊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하지만 늙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젊은이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다. 노년의 발버둥이 어쩌면 더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감정하기>는 다시 전자뇌 문제로 넘어가고,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 등에 대한 문제로 확장시킨다. 인터뷰 마지막에 밝혀지는 놀라운 사실과 여운은 역사를 한 번 가볍게 훑어보게 만든다.


<한 터럭만이라도>는 배양육과 인간의 지능을 가진 앵무새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인육을 배양육으로 만들어 판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광우병 문제가 떠올랐다. 아이큐 107인 앵무새가 화자와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는 부분은 인간의 시각을 뒤집는 부분이 있다. 배양육을 중심에 놓고 민감한 이야기를 주변에 풀어놓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하게 만든다. <거인의 노래>는 왠지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준다. 과연 그들이 본 것의 정체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그리고 우주선에 탄 두 사람의 출신 등도 앞으로 변할 한국의 미래 인구 구조를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는 불멸에 대한 이야기다. 쌍둥이 역설에 대한 변주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인간의 오랜 숙원인 영생에 대한 나름의 고찰을 담고 있다. 늙지 않는 것과 죽지 않은 것을 구분하여 진행하는 이야기 속에서 시간의 유한성은 불멸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불멸을 획득한 동생과 유한적일 수밖에 없는 언니의 갈등과 오해와 이해를 가볍고 단순하게 풀어놓았다. 가볍고 단순하다고 했지만 유한성을 가진 사람들의 욕망까지 단순하지는 않다. 광속과 시간의 상대성과 과학의 발전 등을 다시 한 번 더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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