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 사건 - 상식의 탄생과 수난사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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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전 토머스 페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책 날개에 나오는 소개만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그의 영향력이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간략한 정보를 가지고 읽으면 그의 말년과 사후의 행적에 쫓는 이 책이 말하는 바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물론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토머스 페인이란 이름이 낯설고, 저자는 과거의 시간 흐름 속에 현재를 집어넣어 서술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잠시만 방심해도 헛갈린다. 이런 약간의 수고와 집중력을 가지고 읽기 시작하면 19세기 미국과 영국의 정치변화를 조금씩 알게 된다. 

<상식>이란 책 제목만 보면 예전에 보던 <시사상식> 같은 책들이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다. 그렇게 두껍지도 않다. 100쪽도 되지 않는데 그 시대를 생각하면 10만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다. 책 속에 핵심이 인용되어 나오지만 더 간략하게 요약된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토머스 페인을 검색하니 <상식>의 핵심 요약 정보가 나온다. 그것은 영국 왕실로부터 완벽하게 독립적인 아메리카의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야 하고, 미국독립이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란 주장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는 아직도 영국의 식민지였고,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도 독립에 반대하던 시기다. 그의 상식이 얼마나 앞서 나갔는가. 또 얼마나 대단한가!

저자는 단순히 토머스 페인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그의 유골을 둘러싼 행적과 미스터리를 통해 그 시대와 선구적인 인물들과 정치 변화 등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 전개 방식은 현재의 내가 과거 토머스 페인의 유골이 이동한 경로를 쫓아가면서 그것을 소유한 사람들과 그들과 관련된 삶과 시대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그 유골을 파헤치고 소유한 사람들을 뒤따라가면 몇 가지 공통점이 생긴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노예제 폐지, 여성의 권리, 채식주의, 평화주의까지 온갖 대의를 위해 싸운 활동가였다는 우연이다. 어떻게 보면 우연이지만 페인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존경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페인의 비참했던 말년부터다. 그가 끼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의 말년은 비참하다. 가난하고 술에 찌들고 병으로 고생하면서 남에게 얹혀산다. 그에 대한 비난은 정확한 근거 없는 모략에 가깝다. 그의 죽음이 어쩌면 조그마한 평화인지 모르겠다. 죽음이 휴식이 되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한 인물이 그의 유골을 파헤쳐 가져간다. 그가 바로 윌리엄 코빗이다. 그도 처음엔 페인을 공격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후 페인의 유골을 들고 다니면서 처음과 다른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다. 진보한 것이다. 

그처럼 초년의 사고방식이 중간에 바뀐 인물이 있다. 몬큐어 콘웨이다. 처음에 그는 순회설교자였고, 노예 옹호자였다.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벌거벗고 순진무구한 흑인 아이들을 보면서 변화의 조짐이 시작된다. 이 변화는 에머슨을 만나면서 더욱 빨라지고, 그의 철학과 사고는 앞으로 나아간다. 예전에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을 바로 잡고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알게 된 페인은 그의 자서전을 쓸 정도로 빠졌다. 이런 그가 코빗에서 시작한 유골의 행적에 관심을 가지고 쫓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저자 혹은 역자의 부드럽게 이어지는 문장에 빠졌다.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읽었다. 거기에 수없이 등장하는 유명인사와 지금 기준에서 보면 황당한 사건들이 나온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은 숨겨진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 시대의 상식이나 진보가 황당하거나 상식으로 변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인상이 더 강하게 든다. 또 하나의 의문은 단지 하나의 유골일 뿐인데 왜 그렇게 집착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하나의 존경 혹은 상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가치들을 생각하면 조금 반감이 생긴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면 흥미로운 구성이다. 이 행적을 통해 페인의 유산이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는지 조금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쉽게 ‘그것은 상식이다’라고 말한다. 그 상식이란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상식은 아니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상식은 긴 세월을 거쳐 검증과 반론을 통해 다져져 온 것들이다. 나중에 바뀔 가능성도 많다. 변기나 전주 등의 에피소드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시대에 혁신적이고 진보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낡은 것 혹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또 정치적으로 여성 참정권이나 노예 해방이나 평화주의 등도 처음엔 아주 진보적이고 혁명적이었다. 당연히 지금은 상식이다. 이런 정치적 철학적 변화는 이 책의 재미다. 시대의 벽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싸우며 그 한계를 넘으려는 그들의 행적은 지금도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마지막에 “토머스 페인이 어디에 있는가? 독자여, 그가 없는 데가 어디인가?”(272쪽)라고 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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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미궁호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6
야자키 아리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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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돼지 씨 귀엽다. 사랑스럽다. 처음엔 단순히 하나의 별명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손끝과 발끝에 귓속과 똑같은 진분홍색 헝겊을 댔고, 꼬리는 매듭을 지었다.”는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돼지 인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조그마한 돼지 인형의 모습만 가진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이런 그의 모습은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떤 사람에게는 환각처럼, 또 다른 사람에겐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아니면 그냥 돼지인형으로.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지만 다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져있다. 봄에서 시작하여 한 계절이 돈 후 다시 봄에서 마무리된다. 다시 온 봄 이야기에서 앞에 나온 이야기들이 하나씩 정리되고, 고민이나 갈등이 해결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첫 이야기에 나온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연극을 통해 각각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풀어놓으면서 웃고 울게 만든다는 점이다. 거기에 악당 이아고 역을 귀여운 돼지돼지 씨가 맡았다는 점은 뭔가 섬뜩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귀엽고 순진한 표정 뒤에 숨겨진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계략이 이것을 더 부채질한다. 

실제 개별적인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여름부터 겨울까지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처음엔 이야기의 문을 열고, 다음 봄에 겨울동안 얼어붙어 있던 관계들이 녹으면서 새롭게 되살아난다. 그 사이에 있는 세 계절은 한 쌍의 연인이 겪는 한여름 밤의 꿈같은 시간과 오랫동안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던 부녀 사이를 떨어지는 낙엽처럼 보여주고, 마지막 겨울은 호러작가를 등장시켜 자신이 만든 허상에 매몰되면서 일어나는 으스스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이 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돼지돼지 씨는 그 어떤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데 그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각각 다르게 다가온다. 만약에 지금 내가 돼지돼지 씨를 호텔에서 본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생각해본다. 

각 단편들이 모두 따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작품만 으스스하다. 겨울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인 <앨리스의 미궁호텔>이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단편 다음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으스스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사실 독자 입장에서는 전혀 으스스하지 않다. 오히려 코믹하다. 단지 화자로 나온 호러 작가 구마노이의 시선과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돼지돼지 씨의 정체를 알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 구마노이의 이런 착각이 허둥지둥하고 오버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색다른 재미를 준다. 오해와 공포로 인해 만들어진 허상이 힘을 발휘할 때 그는 두려워하지만 독자는 웃는다. 또 그가 두려워하면서도 돼지돼지 씨의 외모 때문에 좀처럼 강력하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가 느끼는 두 감정의 괴리감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책 뒷면을 보면 야마자키 돼지돼지 씨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40대 남자라지만 핑크빛 봉제인형의 외양을 가진 그를 그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쁜 아내와 두 딸이 있다고 했는데 아직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 실제 이 작품이 시리즈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하는데 다른 작품에서 그녀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10년 이상 장수한 시리즈라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하니 <크리스마스의 돼지 돼지>란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있다. 읽고 싶다. 올 겨울에 인연이 닿는다면 산타로 변신한 돼지돼지 씨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돼지돼지 씨, 기분 좋은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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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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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권의 책 <고백>으로 작년 한국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한국보다 일본이 더한 모양이다. 300만 부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렸다니 말이다. 이 작품에 대한 감흥이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이 나오기 전 다른 작품이 몇 권 더 번역 출간되었는데 <고백>을 넘지 못한다는 평이 대세였다. 그래서인지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있다. 이런 걱정을 뒤로 하고 이 책을 선택한 것은 회사 직원 중 한 명이 책을 사서 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괜한 호승심이랄까. 그리고 조금은 무거운 책 읽기에 지친 나에게 주는 조그마한 선물이기도 하다.

피곤한 몸 상태와 멍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잘 읽혔다. 역시 전작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마 앞으로 <고백>을 뛰어넘는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전에 머릿속에서 그런 가능성을 지워놓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과 비교하게 된다. 좀더 냉정하게 판단을 해야 하는데 아직 그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모양이다. 뭐 책을 잘 읽지 않는 동료에게 <고백>이 내가 빌려준 책 중 최고였다는 평을 얻었을 정도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작품도 만만치 않은 재미와 무게로 다가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과 함께.

구성은 세 집안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엔도 가족, 다카하시 가족, 고지마 사토코 순이다. 이 반복을 통해 각각의 집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노출시킨다. 엔도 가족의 문제는 딸 아야카다. 아야카의 문제는 부모에게 히스테리를 끊임없이 부린다는 것이다. 부자 동네로 이사 오고 사립중학교 입시에 실패한 후부터 히스테리는 시작되었다. 역자의 말처럼 그녀의 행동을 보면 정말 다리를 똑 부러트리고 싶을 정도다. 청소년기의 일시적인 반항이나 히스테리로 분류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그녀의 심리 깊은 곳으로 다가가면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이 느껴지지만 말이다.

다카하시 가족은 남들이 볼 때 평온하고 멋지고 화목하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일이 벌어진 곳은 바로 이 집이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큰 아들은 의대에 다니고, 둘째 딸은 사립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까지 걱정 없다. 막내아들은 뛰어난 외모에 사립중학교에 다니며 농구도 잘한다. 아무 걱정도 없을 것 같은데 사건이 발생했다. 보통의 작가라면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깊숙하게 파고들었을 텐데 미나토 가나에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단순히 살인사건에 집중하기보다 두 집안 사람들에게 더 초점을 맞춘다. 이 방식을 통해 현대 가족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노출시키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떻게 보면 강렬함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사고와 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 넓혔다.

한 가족이 삐걱될 때 그것을 바로 잡기는 쉽지 않다. 교과서적인 방법을 통해, 다른 사람의 조언을 통하면 쉬울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아야카의 고민과 불안은 자신의 의지를 넘어선다. 그녀의 히스테리에 엄마인 마유미가 잠시 정신을 놓을 정도로까지 발전한 것은 수동적으로 받기만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남편 게이스케의 비겁한 도망은 그것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 가정은 현대 핵가족이 지닌 문제와 입시경쟁과 왕따와 추악한 인터넷 댓글 같은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자기 안에 쌓인 스트레스를 남탓으로 돌리고, 집안과 밖의 삶을 분리시켜 그 정도를 더 심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폭발은 다른 사람의 제지가 없다면 다카하시 가족 같은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성의 벽은 언제나 감정의 파도에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가족의 세 남매는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해 다른 시선을 받게 되었다. 언제나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집안 식구들 모두를 매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볼 때마다 안타깝다. 특히 이번처럼 가족 내 살인인 경우라면 더욱 더. 그리고 왜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혹시 다른 범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전을 기대한다. 하지만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것이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각의 가족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숨겨진 속내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 속내가 밖으로 드러나면서 왜라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엔도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그런 일이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실패한 삶으로 인식하고, 좋은 동네에서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대화를 통한 소통보다 일방적인 감정의 전달만이 이 소설 속에 넘쳐난다. 하나의 꿈을 이룬 것에 만족하지만 다른 문제가 생길 때 참기만 하고, 직접 부딪혀 해결하기보다 도망가기를 더 선호한다. 자꾸 자신을 남과 비교하고, 자신의 영역만 고수하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만 파고든다. 삶에 여유는 사라지고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이 두 가족과 한 명의 할머니를 통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사는 곳과 다니는 학교와 직장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평가하고 만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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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 전 세계를 감동시킨 아론 랠스톤의 위대한 생존 실화
아론 랠스톤 지음, 이순영 옮김 / 한언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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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제목만 보아서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책 소개를 보면 이 시간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것은 저자가 오른팔이 돌에 깔린 채 협곡에 갇혀서 보내야 한 시간이다. 거의 6일에 가까운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직접 돌에 깔린 팔을 절단한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광경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끔찍함과는 거리가 있다. 갇히고 절단을 한 후 무사히(?) 돌아온 결과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오히려 갇힌 후 그 극한의 상황을 대처하는 과정과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순간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차분함과 열정은 냉정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론은 열정적이고 행동적인 삶을 산다. 어릴 때 그는 겁이 많았다. 스키를 타기 전만해도 그랬다. 하지만 스키를 타고 난 후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바뀌었다. 새로운 삶이 그 앞에 펼쳐진 것이다. 이 변화는 그를 현실에 편안하게 안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한 후에도 그의 삶은 높은 산과 협곡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결국엔 그 직장도 그만두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대단하다. 경제적인 안정과 부족은 있을지 모르지만 좀더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 삶의 도중에 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 이후로도 그 삶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 유타주의 말발굽 협곡으로 그는 휴가를 간다. 협곡에 있는 암각화 사진을 찍고, 그곳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 순간만 해도 그냥 보통의 협곡 경험담 정도다. 그 길을 가다 여자들도 만나고, 협곡을 오르내린다. 콩다방이나 영화관 예고편에서 본 암벽 사이를 미끄러져 물에 풍덩 빠지는 장면도 없다. 그냥 평범한 일정이다. 하지만 갑자기 변한다. 그가 떨어진 돌덩이와 협곡 벽 사이 오른 손이 낀 것이다. 이때만 해도 그냥 재수 없는 일 정도다. 그런데 손이 빠지지 않는다. 협곡 사이에 몸을 지탱하면서 손을 빼야만 한다. 쉽지 않다. 이 사고로 그는 127시간 동안 협곡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책 구성은 그가 협곡 사이에 낀 하루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할지 고민하고, 그 사이사이에 과거로 옮겨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현재가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라면 과거는 살아온 발자취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곳에서 보내는 긴 하루라는 시간이 그에게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일상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라면 하기 쉽지 않은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 중 가슴에 와 닿는 것은 “행동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156쪽)에서“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각이 옮겨간 것이다. 위험을 즐기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성향일 뿐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이 깨달음이 그가 빠진 위험을 구해줄 수는 없다.

협곡 사이에 낀 그가 생존을 위해 가진 도구나 식량이 너무 부족하다. 로프, 칼, 비디오카메라, 500밀리 물, 기타 몇 가지 소품만 있다. 하루 만에 탈출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그가 간 곳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실종 신고가 언제 들어갈지도 모르고, 어디서 그를 찾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길게 살아남아야만 구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의 이성은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돌아간다. 특히 물에 관해서는 더욱 빠르다. 실종 신고와 구조까지 머릿속에서 계산한다. 하지만 너무 부족하다. 결국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실 지경에 이른다. 거기에 허공에 자신을 지탱할 방법을 강구하고, 팔을 빼기위한 방법을 계속 시도한다. 첫날부터 팔을 잘라야 한다는 인식을 가장 먼저 하지만.

극한 상황에 빠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인 팔을 자르는 것도 그가 가진 조잡한 도구로 하기 쉽지 않다. 실제 그가 어떻게 팔을 절단했는지 묘사한 장면을 읽으면서 그 섬뜩함과 대담함과 용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피부 조직이 완전히 살아있는 팔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힘줄과 신경과 뼈가 남아있다. 읽으면서 나의 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했는데 나 자신이 그 아픔의 일부를 느끼는 것 같았다. 다행히 괴사한 조직 덕분에 그가 과다출혈로 바로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한 팔로 협곡을 내려가고, 계속해서 생존을 위해 움직였다는 것이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만날 때까지. 헬기로 병원에 옮겨져서도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는데 정말 놀랍다. 몸의 화학변화가 그런 상황을 이끌어내었는지 모르지만 이성과 용기와 결단력과 실천력이 없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대단함은 그 상황을 헤치고 나온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후에도 그는 계속해서 산을 오르고 스키를 탄다. 오른 팔을 자른 후 더 빠르게 산을 탄 것을 두고 두 팔을 자르면 더 빠르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신체의 조그마한 불리함을 딛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간다. 그가 겪은 127시간 속에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했다. 특히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힘 빠지게 하고 포기를 생각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미래가 현재가 되고 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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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개
미치오 슈스케 지음, 황미숙 옮김 / 해문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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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미스터리는 좋아하는 두 장르다. 뭐 워낙 좋아하는 장르가 많다보니 그냥 하는 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청춘소설로 볼 수 있는 것은 화자인 아키우치와 그의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미스터리는 당연히 이 네 명이 알고 있는 한 소녀 요스케의 죽음 때문이다. 시작은 뭔가 분위기가 묘한 카페에서 이 네 친구가 비를 피하기 위해 모인 순간부터다. 그리고 미스터리 소설에서 자주 본 듯한 “이 중에 살인자가 있는지 없는지.”같은 도발적인 문장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살인자 이야기에 비해 이어서 나오는 장면들은 한 순진한 청년의 풋풋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키우치는 짝사랑하는 치카의 연락을 받고 택배 아르바이트 사이에 친구들을 만나러간다. 그 친구들은 쿄야, 히로코 등이다. 이 네 명은 아키우치와 쿄야의 만남에서 시작하여 곧 쿄야와 히로코가 사귀고, 그녀의 친구 치카가 함께 하는 형태다. 물론 여자에게 말도 못 건네는 아키우치가 치카를 미남자로 착각해 자연스럽게 말은 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곧 여자임을 알고 그의 입은 자물쇠로 채워진다. 그녀에게 반한 것도 바로 그 순간이지만. 이런 관계를 설명하면서 한 청년의 청춘을 느끼게 만든다. 이 관계들은 이후 한 편의 청춘소설 같은 재미를 준다.

치카의 부름을 받아 간 곳에서 먼저 만난 사람은 쿄야다. 혼자 낚시를 하고 있다. 곧 대학 조교수인 쿄쿄 선생의 아들 요스케가 큰 개 오비와 함께 나타난다. 아이의 말과 행동은 상당히 똑똑해 보인다. 잠시 후 음료수를 사러간 히로코가 온다. 이들의 만남은 아르바이트 호출로 깨어진다. 그가 만나길 바랐던 치카는 아직 오지 않았다. 떠난다. 그때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녀가 온다. 하지만 그는 가야만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평범한 청춘소설이다. 그런데 그날 이 세 명이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나오고, 그 길 건너편에서 요스케와 오비가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그 순간 분위기는 바뀐다. 

쿄야가 소총으로 뭔가를 노리는 듯한 포즈로 로드케이스를 공중으로 향했고 참새들이 몇 마리 날아갔다. 그 순간 오비는 이빨을 드러낸 채 무언가를 듣는 듯 귀를 앞으로 하고 땅을 차고 나선다. 팽팽하게 당겨진 붉은 끈을 잡은 요스케가 끌려간다. 대형트럭이 달려온다. 다행히 오비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요스케가 없다. 소년은 차 밑에 깔려있다. 죽은 것이다. 바로 이 장면과 순간이 이 소설을 미스터리로 끌고 간다. 왜 오비는 갑자기 달려나갔을까, 왜 쿄야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하고 말이다. 단순히 이 장면만 보면 너무나도 범인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뻔한 범인을 내놓는다면 누가 미스터리를 읽겠는가. 여기서 작가는 한 번 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반전을 준비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내놓는다.

누가 범인인가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 편으론 한 순진한 청년의 순애보다. 짝사랑하는 치카에서 마음속으로 수많은 말을 하지만 정작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의미하는 듯한 두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 본 그.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사실들은 들으면서 의문과 의심만 깊어진 그.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알고 동물생태학자인 마미야 교수를 찾아간 그. 자신의 감정을 남들에게 들켰지만 잘 감추고 있다고 자신하는 그. 그의 주변으로 새로운 일들이 자꾸 벌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주동적으로 사건 속으로 뛰어든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건의 모든 단서를 기억하고 있던 그. 이제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꿰어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밝혀내야 한다. 

이 과정을 작가는 어떻게 보면 조금 황당할 수 있는 연출로 이어간다. 곳곳에 단서를 숨겨두고 독자를 힘겹게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불공정한 전개를 펼치면서. 특히 동물생태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들은 아쉬움을 준다. 마미야의 설명으로 모든 것을 알게 되지만 ‘아!’ 나 ‘오!’ 같은 감탄을 자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절하지만 상쾌한 여운이란 표현에 동의한다. 특히 아키우치 세이의 풋풋한 사랑을 볼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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