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트로폴리스
존 스칼지 외 지음, 홍인수 옮김 / 책세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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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다. 존 스칼지 때문이다. 이 선집에 나오는 작가 중 내가 아는 유일한 작가이자 그가 최근에 본 sf소설 중 최고의 작품을 썼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장 뜨거운 작가 4인의 상상력이 탄생시켰다는 책 소개는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뜨거운 작가라고 하지만 신작 sf소설이 잘 번역되지 않는 한국에서 이런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다. 뭐 원서능력자고 sf소설 마니아라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의 편집자는 존 스칼지다. 편집자 서문에서 그는 이 선집에 대한 놀라운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오디오북으로 먼저 나왔다는 것이다. 다음은 주제를 던져주고 각자 집필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세계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세계를 가지고 각자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들이 세계를 건설할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책을 읽으면서 하나의 세계와 개념을 떠올려주었다. 비록 정확한 시대 구분이 없어 우선순위에 대한 확신이 없고 이 세계가 그려내는 중요한 몇 가지를 나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각 이야기 앞에 편집자의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첫 작품은 제이 레이크의 <밤의 숲속에서>다. 사실 이 단편에서 다루고 있는 도시 캐스케디아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한계 때문에 충분한 이미지를 그려내지 못했다. 소설은 이 도시와 이 도시를 방문한 한 남자 타이거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것이다. 도시 이미지를 충분히 형상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배경에 집중하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단편적인 이야기에 더 빠졌다. 그리고 왠지 생략된 듯한 이야기는 한 편의 완결된 단편이 아닌 다음 이야기를 위한 안내서처럼 다가왔다. 이것이 다른 작품에 충분한 안내서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작품은 존 스칼지의 <꿀꿀대는 소리 말고는 버릴 것이 없다>다. 이 소설은 화자의 결혼식 사진에 돼지가 왜 있는지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펼쳐 보여주는 신세인트루이스는 나도 모르게 기존에 나온 sf영화를 재빠르게 뇌리 속에서 훑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작가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영화와 어느 정도 비슷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해프닝과 사건은 결코 무겁지 않고 유쾌하다. 그것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비어스 버켈의 <확률 도시>는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조금 어둡게 만들어지겠지만 기존 장르소설이 갖춘 장치를 많이 가지고 있다. 바의 기도인 주인공 스트래턴이 해병대 출신이라거나 디트로이트를 관리하는 사설경비단체 에지워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소득의 대부분을 교통비로 지출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나 이 세계를 바꾸려는 집단의 노력 등이 그것이다. 시위대를 이끌고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에지워터에 대항하는 스트래턴의 활약은 약간 긴장감이 부족하지만 재미있다.

 

엘리자베스 베어의 <하늘의 붉은 것은 우리의 피>는 마피아의 손에서 벗어난 한 여성의 고군분투기다. 주인공 캐디는 어느 날 사람들의 팔에 걸려 있는 인식표를 발견한다. 무엇일까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일상은 이런 호기심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녀는 한 보호시설에 자신의 양딸 피루자 맡겨두고 가끔 찾아간다. 그런데 한 남자 호머가 찾아와서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낯선 자의 말을 믿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이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녀가 남편을 벗어나기 위해 이용한 탈출 경로다. 그리고 이들의 삶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약간 평온한 듯한 분위기 속에 사건이 발생한다.

 

마지막 작품 칼 슈뢰더의 <머나먼 실레니아에서>는 가상 세계를 다룬다. 이 세계가 낯설다. 존 스칼지를 제외하면 가장 유명한 작가인데 철학적 사유로 유명한 작가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그가 그려내는 세계가 어렵다. 현실과 가상 세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나만 그런가? 유능한 방사능 사냥꾼 겐나니의 활약이 가상 세계에 머물러 있게 되고 그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보니 단편으로는 분량이 충분하지 않다. 기존에 알고 있던 가상 세계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단편집에서 다루는 도시와 대상과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일상 생활에서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전복시킨다. 지적 재산권 대신 오픈소스를, 공동체의 활성화를 통한 빈곤의 극복을, 자본의 변함없이 지속되는 욕심에 대한 반발을, 도시 환경 변화를 위한 조금은 과격한 프로젝트를, 실용적 공동체를,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이런 전복은 이 미래 세계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데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제목처럼 저 너머의 도시는 이 작가들의 펜 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고 현재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를 그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다. 나의 얕은 지식이 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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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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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첫 작품 <경마장 가는 길>이 생각난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이해하지 못했다. 영화로도 보았지만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잘 읽혔고 그 이전까지 접해보지 못한 문장과 구성 때문에 신선했다. 아마 잘 읽힌 것 때문에 그의 다른 소설도 읽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다 한동안 한국소설을 멀리하던 그때 장정일의 <독서일기> 속에서 <진술>에 대한 극찬을 보았다. 그 당시 <독서일기> 속 소설들을 사고 읽고 하던 시기(대부분은 읽지도 사지도 못했지만)였는데 많지 않은 분량의 이 소설을 읽고 이전까지 몰랐던 하일지를 발견했다. 그 후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인 <경마장 가는 길>을 제치고 최고의 소설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을 안고 읽었다. 이전처럼 작가는 친절하지 않다. 처음 손님이 하원에 나타났을 때를 묘사한다. 간결하다. 그리고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본 허도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허도는 심한 폐결핵에 걸려 죽는 날만 기다리면서 고욤나무 밑 지렁이를 캐서 먹는 인물이다. 그가 지렁이를 먹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이런 그에게 가족이 없느냐 하면 아니다. 허표와 허순이라는 형과 누나가 있다. 단지 그들이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손님과 허도의 만남은 소설의 시작이란 점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손님 슈가 하원에 오게 된 것은 표면적으로 누나 허순의 무용반 팬이기 때문이다. 허순은 학교에서 춤을 가르치는데 서울 무용대회에서 손님을 만났다. 그 당시 손님은 허순과 무용반에게 크게 한 턱 쏘았는데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가 허도에게 허순의 집을 묻고, 허도는 그를 누나의 집으로 안내한다. 이때부터 허도는 손님과 동행하게 되고 손님을 둘러싼 가족과 학생들의 한판 낯간지럽고 부끄럽고 추악한 현장을 보게 된다. 그런 장면들을 보면서 손님이 왜 참고 웃으면서 넘어가는지 의문을 품는다. 물론 이것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게 될 때 이 모든 장면들을 이해하게 된다.

 

허약한 허도가 관찰자로 자신의 감정을 토해낸다면 허순과 다른 사람들은 행동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허순의 동거남 석태는 욕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손님을 벗겨 먹을까 생각하고 허순은 어느 순간 노골적으로 그를 통해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손님과 학생들을 데리고 간 개고기집에서 보여준 장면은 시작일 뿐이고 손님이 머물 호텔 앞 호수로 가기 위해 마트를 들렀을 때 보여준 행동은 ‘아! 사람이 이렇게까지 염치없고 비루해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더 심해진 원인 중 하나가 슈가 한국어를 모른다는 것이고 시작은 개고기집에서 돈을 계산한 후부터다.

 

허순과 석태의 끝없는 작은 욕심들이 이어지고 어느 순간에는 적반하장으로까지 번진다. 그 와중에 손님이 허도를 계속 데리고 가고 싶어한다. 덕분에 허도는 관찰자로 이 염치없는 장면들을 보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만의 환상을 투여한다. 아마 허도를 제외하면 이 소설 속 그 누구도 자신의 심리를 표현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들의 행동과 예측만 있을 뿐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저녁 무렵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다. 그런데 이 시간 속에 담고 있는 인간의 욕망은 다양하다. 거대한 욕망이 아니라 소시민의 자그만 욕심이지만 가슴 속에서 읽는 내내 분노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리고 왜? 그는 이것을 웃으면서 참고 넘어갈까 의문을 품는다.

 

여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지나가듯이 욕망 한 자락을 내비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 소설 속에서 그녀들은 사실 들러리이기 때문이다. 허순의 염치없는 행동을 보면서 인상을 쓰지만 그들도 자신들이 누릴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단지 순간을 즐길 뿐이다. 재미난 것은 유일하게 이 상황에 위화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인물이 허도란 것이다. 그리고 허도에게만 손님이 한국말을 하는데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그것을 살짝 잊었다. 자연스런 장면의 이동과 상황 전개가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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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이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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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설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노통브가 동화를 새롭게 해석해서 쓴 소설이 있다. 그것처럼 이번 소설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새롭게 풀어내었다. 제목부터 자극적이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시킨다. 물론 여기서 아버지 죽이기는 실제 살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성장 단계를 말한다. 실제 중편 정도의 분량에 작가는 기존의 콤플렉스를 비틀어 놓는다. 마지막 장면은 반전으로 다가오는데 어떻게 보면 굉장히 섬뜩하다.

 

시작은 노통브가 클럽 릴레갈 개업 10주년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몰래 들어가면서다. 이날 밤은 전 세계 마술사들이 클럽에 왔다. 그녀는 마술사들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 포커 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이 느긋한 밤에 여유를 즐기지 못하는 두 남자가 있다. 한 명은 서른 살쯤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쉰 살 정도로 보였다. 젊은 쪽은 포커를 이기고 있었는데 이름은 조 위프고, 다른 인물은 노먼 테런스다. 이 둘은 모두 미국의 위대한 마술사다. 이 이상한 모습을 본 그녀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자 누군가가 이 둘의 이야기를 꺼낸다. 소설은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조 위프는 엄마와 단 둘이 산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엄마는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모른다. 열네 살. 한창 민감할 그 나이에 그는 누구도 오래 머물지 못한 엄마의 남자 친구가 오랫동안 머물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다. 한 달에 천 달러를 받고 그는 집을 나온다. 그는 학교도 다니지 않고 다른 것에도 별 관심이 없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마술이다. 그는 마술사가 되기 위해 비디오와 책을 통해 혼자 공부하고 연습한다. 아르바이트로 바에서 카드 마술을 한다. 팁은 그의 주요 수입원이다. 이런 그에게 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는 조가 살고 있는 도시 리노가 위대한 마술사들의 도시라고 말하면서 한 마술사를 추천한다. 그가 바로 노먼이다.

 

노먼의 집을 찾아간 그가 한 것은 선생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한 번도 제자를 둔 적이 없는 노먼은 당연히 거절한다. 하지만 이제 열다섯이 된 소년은 재능 가득하고 불우한 과거사가 있다. 노먼은 여자 친구 크리스티나에게 말하고 조를 제자로 삼는다. 이 선택이 처음에는 제자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로 조금씩 변한다. 여기에 크리스티나가 조의 환상이 되면서 본격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흘러간다. 환상은 순수함으로 시작하고 열정과 열망으로 가득하다. 이 순수함이 인내의 시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다.

 

소설은 조와 노먼, 조와 크리스티나, 노먼과 크리스티나 등의 구조로 진행된다. 조와 노먼의 관계는 아들과 아버지로 간략하게 규정할 수 있지만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흔히 말하는 아버지 죽이기는 노먼의 시각에서 비롯된 착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뒤로 가면서 이 둘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다시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은 첫 부분에서 왜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착각으로 인한 아버지 죽이기는 반전처럼 이어지면서 새로운 집착과 광기를 만든다. 이 일련의 과정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란 심리학 용어에 완전히 빠져들었을 때 일어난다.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반전을 위한 반칙이라고 말하겠지만 이 소설은 이 반칙 때문에 새로운 힘을 얻게 되고 고민이 깊어진다. 멋진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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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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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캠프에 참가한 딸이 연쇄살인범에게 죽었다. 그런데 시체를 찾지 못했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숲으로 들어가서 땅을 파헤친다. 이 행동이 오랫동안 이어진다. 아들은 이것을 몰래 지켜보았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아들에게 오늘은 따라오지 말라고 한 후 혼자 숲으로 들어간다. 20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것을 지켜보던 아들 폴 코플랜드의 현재가 나온다. 그는 성공한 카운티 검사다. 일상의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름 모를 한 시체가 그를 과거 속으로 불러온다.

 

이 소설은 코벤의 다른 작품처럼 정교하게 짜여 있다. 별개처럼 보였던 사건들이 이어지고 곳곳에 깔아둔 반전은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준다. 빠른 속도감과 감정 이입은 과연! 이란 단어를 내뱉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과거의 시체가 현재의 시체로 발견된 그 순간 잊고 있던 모든 일들이 떠오르고 가슴 한 곳에 묻어둔 감정들이 솟구친다. 이것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과거는 이제 현실이 된다. 과거 사건을 따라가면서 그 자신의 본업도 충실히 챙겨야 한다.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실력 있는 검사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수석 수사관 뮤즈가 있다.

 

여동생 카밀이 죽은 것은 20년 전 여름 캠프다. 이때 남자 둘, 여자 둘, 모두 네 명이 죽었다. 두 명은 시체가 발견되었지만 여동생과 길 페레즈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길 페레즈가 마놀로 산티아고란 이름의 시체로 발견된다. 폴에게 연결되는 것은 그가 폴의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지만 팔의 흉터로 그를 알아본다. 길의 부모에게 연락해서 확인하라고 한다. 하지만 길의 부모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부인한다. 분명 길 페레즈인데 뭔가 수상하다. 산티아고를 파헤치면서 과거 속으로 들어가 그날 밤에 있었던 사건을 새롭게 조사한다.

 

루시는 심리학 교수다. 그녀에게 한 익명의 리포트가 도착한다. 그것은 그녀 아버지 여름 캠프에 있었던 악몽의 밤에 대한 기록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그녀와 그때 그녀와 함께 있었던 폴 외는 없다. 누가 보냈을까? 조교이자 컴퓨터에 박식한 로니를 통해 조사한다. 헛짚는다. 누굴까? 그녀의 가족은 이 사고 이후 감독 부주의 때문에 모든 재산을 잃게 된다. 그녀는 성도 바꿨다.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그녀에게 이 리포트는 강력한 태풍으로 다가오고 필연적으로 폴과 이어진다. 이제 이 둘은 과거의 감정을 되살리고 숨겨져 있던 진실로 한 발 내딛는다.

 

폴과 루시의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면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면 폴의 강간 사건은 또 다른 한 축이다. 스트립댄서인 샤미크 존슨을 부자집 아들 둘이 강간한 사건이다. 돈 많은 부자 아버지는 합의를 통해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지만 폴은 법정에서 이것을 다루고 싶다. 이런 사건들이 늘 그렇듯이 부자들은 그들이 가장 잘 사용하는 돈이라는 무기를 통해 폴과 샤미크 등에 압력을 가한다. 이 법정 드라마는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자 어떻게 법이 금력 앞에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코벤은 이 소설을 쓰면서 휘황찬란한 기교를 부린다. 세 가지 설정을 기본으로 깔고 진실을 하나씩 밝혀내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숨긴다. 매끈하게 이어지는 구성과 매력적인 캐릭터는 다음 이야기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그의 다른 작품처럼 가족을 가장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충돌한다. 샤미크의 강간 사건, 길 페레즈의 가족들, 루시의 아버지, 폴의 가족 등이 바로 그렇다. 이 충돌은 과격하다. 자신들의 욕망을 달성하기 전에는 멈출 생각이 없다. 이성과 정의를 내세우는 인물은 폴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곳에는 그때 죽었던 여동생이 계속 살아있다.

 

읽으면서 예상한 연결들이 어느 순간 엇나간다. 이 엇나감이 바로 반전으로 이어진다. 이 반전은 정교한 설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조금의 낭비도 없는 짜임새와 전개는 코벤의 소설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은 최고다.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의문이 풀리는 그 순간 20년 전 비극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지속적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미국의 가족중심주의는 반발감을 불러오고 섬뜩하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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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고아 아시아 문학선 4
우줘류 지음, 송승석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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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만 소설이다. 대만 소설을 몇 년에 한 권 정도 읽는다. 예전에 번역된 소설들은 대부분 로맨스 소설이나 현대 소설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시아 문학선이란 기획 아래에 출간되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책과 저자에 대한 이력을 보니 이색적인 것이 보인다. 원래 제목이 이것이 아니라 주인공 이름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 주인공 이름도 바뀌었다. 책을 쓴 시기도 일제 치하 1943년부터다. 작가도 말했듯이 이 책의 3부와 4부 내용은 그 당시에 출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 출간된 것은 해방 후다. 현재 제목으로 바뀐 것은 1956년이다.

 

이 소설을 다 읽은 지금 일제시대 한국 소설을 떠올려본다. 과연 이 작품보다 낫거나 그 시대를 더 깊게 다룬 소설이 있는지. 당장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일제 말기에 이런 종류의 작품을 출간한다는 것이 불가능했고, 유명 작가들이 친일 행적을 펼치던 시기였다. 그러니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좀더 찾으면 없지 않겠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3부와 4부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노골적이고 충격적이다. 아마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시기를 살아간 한 지식인의 사실적인 삶은 억제된 분노와 함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친다.

 

주인공의 이름은 후타이밍(胡太明)이다. 초판은 후즈밍이었다고 한다. 소설은 타이밍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후 씨 집안의 차남인 그가 일제 치하 대만인으로서 어떻게 성장하고 살아갔고, 대만이 그가 방문한 두 나라 일본과 중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 시대와 어떻게 불화하고 고뇌하고 견뎌내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은 이전에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대만이 일제 치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와 어떤 비슷한 점과 차이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소설을 통해 이것을 조금을 알게 되었다.

 

일제 치하를 경험한 두 나라의 비슷한 것은 역시 친일과 차별이다. 이 소설 속에서 대만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에 비해 엄청난 차별을 당한다. 가장 기초적인 것은 급여다. 하는 일에 상관없이 그들이 받는 급여는 대만사람들의 몇 배다. 일본인이 요직을 차지하고 권력과 금력을 누릴 때 황민화를 외치던 대만인은 그들에게 아부하면서 기생한다. 이들이 보여준 작태는 일제시대 친일조선인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생존을 말하며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꾸고 권력에 기생하지만 그 알량한 권력은 일본인 앞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진다. 단지 그들은 대만사람들 위에서만 힘을 발휘할 뿐이다.

 

이 소설의 가치는 일제시대의 친일과 차별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면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고 상식과 사실 앞에 고뇌하는 타이밍에 있다. 일제 치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인에게 비하의 대상이 된 대만인의 아픔이 가슴 한 곳에 파고들 때, 무력한 한 지식인으로 시대의 거대한 파도 앞에 너무나도 무력할 때, 다른 친구들처럼 대만의 독립을 외치지 않고 중용을 외치며 자신의 길을 갈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의 선이 겹치는 몇몇을 경험한다. 시대의 거대한 변화 앞에 눈을 가리고 현실에 순응한 듯한 삶을 살아가는 민중의 모습은 또 다른 먹먹함을 준다.

 

이 아시아문학선의 책을 몇 권 읽었다. 재간된 것은 예전에 읽었고 새롭게 번역된 것은 최근에 읽었다. 사실 이 시리즈가 나올 때 읽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이야 이전에도 워낙 재미있게 읽은 터라 걱정이 없었지만 대만 소설은 어떨지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이 걱정은 쓸데없는 것이다. 타이밍의 삶을 따라 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고 자신을 그 위치에 대입하면서 읽게 된다. 특별한 영웅 행위도 없고 반일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지만 현실적인 그의 행동과 심리 묘사가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현재 대만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본에 대한 호의를 생각할 때 이 소설은 또 다른 감정의 폭을 경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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