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4 : 풍자 편 - 사기술 외, 최신 원전 완역본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4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단편집은 재미있다. 나의 취향과 잘 맞는다. 이미 다른 작품집으로 그의 글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다. 어떤 단편을 읽을 때는 이것과 과연 19세기에 쓰인 소설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 비슷하게 다가온다. 이 단편집만 놓고 보면 왜 포가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는지 잘 이해된다. 내가 알던 미스터리와 공포 작가란 이미지가 퇴색할 정도다. 물론 어떤 작품은 잠시만 집중하지 않으면 그 흐름을 놓치고 재미를 못 느낀다. 약간의 억지 같은 것도 없지 않다.

 

첫 단편 <사기술>은 현대에도 통용될 듯한 수법이 꽤 있다. 어떤 것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사람의 욕심과 단순한 믿음이 허점을 만든다. 이것과 비슷한 작품이 <비즈니스맨>이다.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은 읽으면서 의심이 살짝 생겼는데 결말에서 그대로 맞았다. <안경>은 한 청년의 안경 혐오가 우연히 오해와 만나 만들어내는 최악의 상황을 풍자적으로 그려내었다. 그 결말을 읽고 너무나도 예상을 초월해 그럴 수도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오해를 통해 재미난 결말을 만들어내는 단편들이 이 책 속에는 여러 편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일요일>은 포의 자전적인 부분이 들어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에 이 제목에 대한 해답이 나왔을 때는 살짝 웃게 되었다. 이런 기발한 답이라니, 아니 이것을 그대로 인정하다니 하고. <소모된 남자>는 끝까지 이들이 말하는 바를 전혀 공감하지 못했는데 끝에 나온 장면으로 단숨에 이해되었다. <싱검 밥 명인의 문학 인생>, <블랙우드식 기사 작성법>, <곤경>, <X투성이 글>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다. 글쓰기에 대한 포 식의 풍자가 잘 드러나는데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X투성이 글>에서 X는 알파벳 X이고 다른 어떤 약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다. 모를 때는 오해하기 딱 좋다.

 

<멜론타 타우타>는 처음에 읽으면서 환상 편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음에 나온 <미라와 나눈 대화>도 마찬가지다. 전작이 현재보다 더 먼 미래 이야기를 다루는데 과학 기술의 발전이 너무 더디다. 이 단편집들을 읽으면서 포의 과학적 상상력이 그 시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후작은 고대인과의 대화가 너무 수준 낮아 어쩌면 이런 부분에서 풍자 편에 어울리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스핑크스>는 사람들의 착시 효과가 어떤 환상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데 그 이면에 깔린 공포를 한 번은 더 생각하게 된다.

 

<봉봉>, <기괴 천사>, <악마에게 머리를 걸지 마라>, <오믈렛 공작>는 악마나 천사 등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비현실적인 상황을 만들고 황당한 전개로 이어지면서 악마나 천사가 그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 물론 이들이 충동질하는 것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인간들의 욕망과 허영심이 깔려 있다. <봉봉>에서 인간 영혼의 맛을 표현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함축적인 풍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하나의 장면이 약간 잔혹한 느낌도 있지만 전체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해가 된다. 환상 편에 어울리는 악마 등이지만 내용이 풍자 편에 더 맞는 것 같다.

 

여기에 말해지지 않은 몇 편은 나의 집중력이 깨진 상태에서 읽었거나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단편이다. 전체적으로 환상 편보다 더 집중했고, 더 재미있었고, 현실과 더 맞아떨어졌다. 풍자라는 것이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현실 문제를 잘 관찰하고 분석한 후 비틀었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우리의 현실에 대입했을 때도 큰 무리가 없는 것도 바로 이런 통찰력이 곁들여졌기 때문이다. 포의 이력에 풍자가 더해져도 전혀 놀랍지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3 : 환상 편 - 한스 팔의 환상 모험 외, 최신 원전 완역본 에드거 앨런 포 소설 전집 3
에드거 앨런 포우 지음, 바른번역 옮김, 김성곤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집으로 포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릴 때 여기저기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제대로 된 완역본은 처음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 출간된 한 권짜리 두툼한 포의 단편집을 산 적은 있다. 읽지 않았고 사기만 했다. 늘 마음속으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두께에 놀라 시작도 못했다. 이 포 전집도 만약 1권부터 읽어야했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1권과 2권이 미스터리와 공포를 소재로 해서 낯익은 제목들이 많았는데 이번 책은 조금 낯선 환상 편을 다루었다. 목차를 읽으면서 단 한 편도 낯익은 제목을 발견할 수 없었다. 포가 환상 소설을 썼다는 것도 약간은 낯설다.

 

첫 이야기 <한스 팔의 환상 모험>을 읽으면서 괜히 과학적 사실과 너무 다른 이야기에 트집을 잡고 싶었다. 현대 과학에서 보면 말도 되지 않는 설정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사실을 비튼다. 앞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화가 났던 것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천일야화의 천두 번째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다. 말도 되지 않고 시대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뒤섞이는데 그 마무리가 놀랍다. 주석이 없었다면 은유적인 설명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 단편집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어느 부분에서는 놀라운 표현력과 상상력으로 즐겁게 만들었다. 많은 주석과 길게 늘어지는 문장은 꼼꼼하게 읽고 충분히 그 장면을 상상하지 않으면 그 재미를 누릴 수 없게 만든다. 덕분에 읽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길이가 다르고 시대도 뒤섞이고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읽기 호흡 맞추기가 쉽지 않다. 쉽게 몰입이 되지 않는다. 19세기의 과학을 기본으로 상상력을 가미했는데 환상소설보다는 오히려 SF에 더 가까운 작품도 보인다. 판타지의 설정을 끌고 와 이야기를 엮고, 악마를 등장시켜 포 작품의 분류를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다. 그리고 풍부한 고전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주석이 없다면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도 상당하다. 마무리가 급하게 이루어져 앞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면 그 결말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다. 물론 나의 집중력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장르적 특징인지 아니면 포만의 특징인지 알 수 없지만 상황이나 장면이나 풍경에 대한 설명이 엄청 자세하다. 이 표현을 읽으면서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그가 묘사한 장면에 등장한 꽃이나 나무나 건축물들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몰입도는 금방 흐트러진다. 여기에 구성이나 진행 방식도 다양하다. 어떤 작품은 대화로만 구성되어 있다. 한 편의 간단한 희곡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 이야기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연작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는데 이 시대에 단편이 이렇게도 발표되는구나 하고 놀란다. 솔직히 이번 단편은 그 재미를 완전히 누리지 못했다. 읽는 법과 그가 표현한 글이 맞지 않은 것도 있고, 나의 이성이 상황이나 설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탓도 있다. 이 단편집도 다음에 다시 천천히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관장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3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작가 시리즈 세 번째 편이다. 이전 시리즈는 읽지 않았다. 이 작가의 도조 겐야 시리즈를 몇 권 읽었는데 민속적 호러를 미스터리와 연결해서 풀어내는 능력이 아주 좋았다. 이번 작품도 약간 그런 종류다. 이전의 작가 시리즈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 <사관장>은 도조 겐야 시리즈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보면 호러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화자가 다섯 살 때와 성인이 된 후 겪었던 기이하고 괴상한 경험은 갑자기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의성어와 화자의 심리 묘사를 적절하게 섞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공포를 조성하는 동시에 ‘왜?’ 와 ‘어떻게?’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사관장(蛇棺葬). 처음에는 집 이름으로 착각했다. 장례할 때 사용하는 장(葬)을 장원할 때 장(莊)으로 잘못 생각한 것이다. 한자를 대충 본 것이다. 뱀 사(蛇)자의 강렬함과 백사당이란 다음 책 제목 때문에 집으로 그냥 넘겨짚은 것이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언제 사관장이 나올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기 진행되어도 그 장소는 나오지 않았다. 백사당에서 일어난 기묘하고 기이한 사건만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 햐쿠미 가의 장례를 중심에 두고 어린이와 성인의 각각 다른 경험을 어스스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성인되어 30년 만에 찾아온 화자가 어릴 때 느낀 공포와 의문을 다시 재현하면서 다른 위치 때문에 생긴 다른 경험을 들려준다.

 

화자 ‘나’는 다섯 살 때 처음 햐쿠미 가로 들어온다. 본처가 있는 아버지가 밖에서 ‘나’를 낳은 것이다. 어머니가 죽자 어쩔 수 없이 햐쿠미 가로 돌아왔는데 누구도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새엄마의 시선은 냉혹하고, 할머니는 정신이 있을 때나 없었을 때 모두 소년을 괴롭혔다. 얼마나 차가웠으면 그 나이에 그것을 알았을까. 이런 와중에도 그의 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 바로 다미 할멈이다. 아버지와 고모와 삼촌의 유모였던 다미 할멈이다. 유폐된 듯한 작은 방에서 결코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사는데 ‘나’가 나타나면서 이 둘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소년이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성인이 된 화자가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야기는 둘로 나누어져 있다. 다섯 살 소년의 이야기와 30년이 지난 후 이야기다. 무대는 동일하게 햐쿠미 가다. 소년의 이야기가 기억을 더듬어 과거의 감정을, 느낌을, 공포를 글로 표현했다면 성인이 된 나의 이야기는 자신의 직접 경험이 공포와 어우러진다. 읽으면서 소년의 글이 너무 성숙해 진짜 소년의 경험이자 실제 있었던 일인지 의문이 생겼다. 반면에 30년 만에 돌아온 후 이야기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중에서 최고는 역시 백사당 안에서 새어머니 시체를 염한 것이다. 이때 잘 만들어진 시설물에 감탄하지만 초가 꺼지면서 과거의 경험이 현실 속에서 재현된다. ‘그것’이 나타난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의문을 품은 대목이다. 과연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고.

 

각각 다른 연령대의 주인공을 내세워 비슷한 전개와 구성으로 문을 열지만 모든 의문은 하나의 장례 속에 담겨 있다. 할머니의 장례식 때 아버지가 사라진 것과 새엄마의 장례식에서 새엄마의 시체가 사라진 것이 대칭을 이룬다. 과거엔 이야기였던 것이 이제는 자신에 닥친 현실이 된다. 햐쿠미 가의 장손은 어머니의 시체를 백사당 안에서 홀로 밤새워 염을 해야 장례 예법이 있다. 이 예법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놀랍게도 다미 할멈이다. 이때가 유일하게 집안사람들이 다미 할멈을 찾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수많은 기담과 괴담을 들려준 인물이기도 하다. 화자의 현재 직업이 민속관련 출판사 편집자인 것도 햐쿠미 가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적지 않은 분량에 대칭적인 구성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난다. <백사당>을 읽지 않으면 <사관장>에서 받은 공포와 의문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짝 펼쳐 본 <백사당>은 이번 소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민속 호러를 해결하던 부분만 살짝 분리한 듯한 느낌이랄까. 책 속의 책이란 구성을 가지고 있어 어떤 부분에서는 이 <사관장>이 미스터리한 문제를 제출한 듯한 느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 100엔이란 금액으로 물건을 맡기는 것이 그렇게 저렴한지는 잘 모르겠다. 전철역에 있는 코인로커에 보관하는 것도 가능한 금액임을 감안하면 더욱. 물론 부피가 큰 물건의 경우는 다르다. 하지만 간단한 서류라면 어떨까? 책이라면? 이런 간단한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아시타 마치 곤페이토 상점가의 보관가게 사토를 만났다. 실제 주인이 지은 가게 이름은 ‘기리시마’지만 가게에 걸린 포렴에 쓰인 글자 ‘사토’ 때문에 사토로 불리는 그곳 말이다.

 

사토의 주인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설정이 아니라 이곳에 물건을 맡기는 사람들이 그 물건에 엮여 있는 사연을 말하는 설정이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흔히 보게 되는 설정이다. 그렇다고 주인이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물건을 맡긴 사람들의 모든 것을 껴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100엔에 버릴 것을 맡기고, 누군가는 50년 동안의 장기 보관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곳은 그 물건을 맡긴 사람들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한다. 쓰레기장이 되거나 슬픔이나 아픔 등을 덜어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떤 것을 보관할까?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 편을 제외하면 모두 사물이거나 동물이다. 의인화된 이 사물과 동물들은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하나씩 풀어낸다. 첫 이야기는 포렴이 하고, 두 번째는 자전거가, 세 번째는 유리장식장이, 네 번째는 이혼하려는 여자가, 마지막은 고양이가 한다.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관찰자이면서 화자 역할을 한다. 이들은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오래된 사물에 귀신이 깃든다는 일본의 이야기가 무섭지 않고 따스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토의 주인 도오루가 있다.

 

도오루는 어릴 때 시력을 잃었다. 글을 읽을 수도 색깔을 구분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한 번 들은 목소리는 아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상관없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관한 물건을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감정 등으로 오랫동안 기억한다. 이것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17년이 지났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이적인 기억력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기억력이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단 한 번 그가 짝사랑했던 에피소드에서 나올 뿐이다.

 

감상적인 이야기다. 따스함이 조용히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보면 영리한 선택일 수도 있는 구성이자 전개인데 의인화된 물건들이 이것을 재미나게 살렸다. 직접적으로 사연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찰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사연을 말하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단지 몇 개월이 아닌 17년이란 시간의 흐름을 타고 나오는데 갑작스런 시간의 비약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의견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당사자들이 풀어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공감하게 되는지 모른다. 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혹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다면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게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스웨덴에 살고, 차는 사브만 몬다. 나이는 59세이고, 6개월 전 아내가 죽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은 칼 같이 지킨다. 거의 웃지 않았고, 평생 한 여자만 사랑했다. 식당에서 웨이터가 계산을 잘못한 것을 발견하고 같이 간 친구 루네와 이 웨이터를 고소할 것인지 1시간이나 논의할 정도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우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매일 아침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돌면서 확인한다. 지금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자살해서 죽은 아내 곁으로 가는 것이다. 이 남자의 이름이 바로 오베다.

 

오베가 컴퓨터를 사러 간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괴팍한 노인네가 직원들은 짜증나고 두렵기만 하다. 그가 쏟아내는 독설과 까칠하고 화난 말투는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이곳에 왔을까? 그 이유를 그 다음 장부터 하나씩 보여준다. 오베라는 남자가 어떤 성격이고, 어떻게 행동하고,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면서. 그리고 가장 원했던 것이 어떻게 방해받고, 외골수 삶을 살던 그가 주변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가 괴팍함을 보여줄 때마다, 그것이 더 완고해질 때마다 감탄하면서 이것을 간단하게 무너트리는 파르바네의 행동에 놀란다.

 

파르바네는 오베가 죽으려고 집 천장에 구멍을 뚫고 목매는 끈을 달 때 이사온 이란 출신 여자다. 남편과 두 딸이 있고, 현재 임신한 상태다. 남편 패트릭이 트레일러를 잘못 운전해 오베의 집 벽을 끍었다. 자신의 평온한 자살을 방해한 이들을 보러 나갔다가 트레일러를 후진시켜주고 인연을 맺게 된다. 이 인연이 오베의 자살을 끝없이 방해한다. 멍청한 남편이 창을 고치다 떨어져서 차고에서 자살하던 것을 중단해야 했다. 이전에는 목을 매달았지만 줄이 끊어졌고, 약을 먹으려는 순간이나 총으로 자살하려는 순간 등에서 파르바네나 다른 사람들의 방해로 시도조차 못했다.

 

그냥 죽으면 끝이 아니냐고? 무슨 소리! 그것은 오베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죽은 후 일어날 여러 가지 상황들을 정리해서 유서로 남겨두고 있다. 총으로 자살하려고 할 때 피가 사방으로 뛰는 것을 감안해 벽과 바닥에 비닐을 덮고, 정장을 입고 죽으면 매장할 때 입을 옷을 걱정하며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죽으려는 그의 시도는 늘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다. 이 실패가 우리에게는 큰 즐거움을 준다. 그의 실패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그 사이에 그의 과거가 하나씩 흘러나오면서 이 괴팍한 노인과 같이 산 아내 소냐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완고하고 원칙적이고 과묵한 그지만 소냐와의 만남은 이전까지 그의 삶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소냐와 살면서도 자신의 원칙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고, 주변사람들이나 권위주의와 싸웠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권위주의 집단은 공무원이다. 몸에 이상이 있다고 사랑하는 배우자가 있는데도 요양원에 넣으려는 집단이다. 오베도 아내 소냐의 사고 이후 이들과 싸워야 했고, 지금은 이전 친구였던 루네의 문제로 그들과 대립한다. 한때 루네는 그의 유일한 친구였지만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로 서로 갈라섰다. 루네도 완고하기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에 벌어진 대결은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

 

홀로 남은 오베는 매일 소냐의 무덤가로 찾아가서 그의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말한다. 아내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이기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 외로움과 괴로움을 산산조각내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는 이전보다 더 주변과 소통하고 살게 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아내 소냐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의 원칙에 살짝 벗어나도 소냐의 눈빛이 마음이 떠올라 그냥 지나간다. 차도 자전거도 다른 기계들도 전혀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어느 새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고양이 어니스트를 사랑했던 아내처럼 야생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이 고양이 또한 그의 평화로운 자살을 방해한다.

 

이 독특하고 괴팍하고 완고한 오베라는 남자가 나는 좋다. 그의 이웃이라면 어쩌면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그가 세운 원칙이 너무나도 완고하기에. 하지만 그가 투덜거리면서 보여준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가 경험한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있다. 파르바네의 운전 연습을 도와줄 때 보여준 그의 분노와 더불어 섬세하고 자상한 표현은 그의 또 다른 모습이다. 동성애자에게 호모라고 말하지만 그는 편견을 보여주지 않는다. 말자체가 편견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가 커밍아웃했을 때 재워주고, 아버지와 화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직설적이고 투덜거리고 누구나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삶의 균열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 파르바네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약하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삶을 산다. 그의 존재는 이제 그 동네 곳곳에 스며들고,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 파르바네의 말처럼 그녀는 소냐에게서 그를 가장 잘 빌려 썼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