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주 가는 길 - 사진가 김홍희의 다시 찾은 암자
김홍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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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홍희의 포토에세이다. 2년에 걸쳐 모토사이클을 타고 다니면서 암자 26곳을 찍고 기록했다. 사찰 이름을 보면 낯익고 가본 절도 상당히 있다. 하지만 암자로 한정하면 가본 곳이 없다. 어쩌면 한두 곳 정도 둘러봤을지 모르지만 기억에 남는 암자가 없다. 그리고 최근 내 마음 속에 가장 가보고 싶은 암자 한 곳이 나와 눈길이 갔다. 여수 향일암이다.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가 손에 꼽은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곳이었던 남해 보리암보다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 평가라고 해봐야 한번 가볼만 한 곳 정도였지만.

 

기독교 신자인 그가 불교 사찰 등을 찍게 된 인연을 설명한 부분은 재밌다. 일 때문이지만 시간과 관계가 쌓이면서 불교와 예수에 대한 이해의 폭은 오히려 넓어졌다. 단순히 이 책만 보면 그가 크리스천이란 사실이 믿기질 않을 것이다. 오다가다 만나고, 여기저기에서 들은 몇 가지 지식이라고 해도 그 깊이가 예상을 넘는 곳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이 깊이가 너무나도 낮은 나의 관점에서 본 것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색이 빛이고, 공이 그늘이란 대목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가 나에게 다시금 다가왔다.

 

스물여섯 암자를 찍었는데 모두 흑백사진이다. 컬러 사진만 보다 이런 흑백사진을 보면 느낌이 조금 색다르다. 전문사진가가 아닌 내가 구도를 잘 알지도 못하니 얼마나 잘 찍었는지 알 수 없다. 흔히 보는 반듯한 사진은 아니다. 이 사진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이야기 속에 잠시 녹여내었는데 시간의 흐름 속에 생각의 흔들림이 조금씩 보인다. 예술로서의 사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데 이것은 단순히 기술을 넘어선 부분이다. 시간과 공간을 한순간 포착해 셔터를 누르는 그 작업은 감안해야 하는 것도 많다. 거기에 자신의 철학도 담아야 한다. 아직 그 단계를 알 정도의 수준까지 내가 나아간 것은 아니다.

 

많은 사진들 속에서 나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향일암에서 찍은 바다 사진이다. 빛과 그림자, 바다와 햇살, 그 눈부심을 흑백이란 색대비로 포착했을 때 단순히 눈부신 바다가 아닌 색다른 바다로 내게 다가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는 다양한 문양을 보여주고, 높고 낮은 파도는 질감을 드러내었다. 무심코 보다 그 강한 인상에 계속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른 사진들도 빛을 통해 사물의 다른 모습을 포착하고, 원근법으로 사물의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흔히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잘 놓치는 모습들이다. 절에 갈 때 일반 관광객들이나 참배객들이 눈여겨보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많은 암자를 다니다보니 많은 스님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다시 찾아오다보니 옛 스님이 선종하신 경우도 있다. 이런 만남과 기억들은 그의 글 속에서 하나의 추억이 되고, 그 암자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하게 만든다. 최근 절 입구에서 생기는 주차 문제도 잠시 다룬다. 욕망을 벗어던져야 하는 절 아랫마을은 그 욕망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커피 좋아하는 스님이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방에 가서 일곱 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는 에피소드에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질기고 강한지 살짝 엿본다. 더불어 나의 욕심도 같이 잠시 돌아봤다.

 

사실 김홍희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한 팟캐스트 때문이다. 그곳에 나온 그의 입담과 이 책을 생각하면 잠시 괴리감이 생긴다. 그 당시 그의 이름을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고 대부분 절판인 것을 봤고, 중고가가 상당히 높은 것에 깜짝 놀랐다. 이 사진가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하고. 그리고 그가 팟캐스트에서 한 말 때문에 착각하기도 했다. 우매한 중생이 자신이 듣고자 하는 말만 들은 것이다. 이렇게 쌓인 기억들 속에서 사진과 글로 다시 만난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잘 아우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가 암자를 다시 찾은 것처럼 나도 언젠가 절에 가면 암자로 발걸음이 옮겨질지 모르겠다. 그때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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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8-10-2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팟 캐스트 들었는데 재밌는 분이신 것 같더라구요. 책은 어떨지 궁금.. 향일암은 제가 갔다 온 2-3년 정도 후에 불에 타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울 정도로 아쉬웠던, 그만큼 좋았던 곳이네요. 다시 복구한 듯 하니 시간 되시면 꼭 다녀오시길요!
 
코하루 일기
마스다 미리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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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마눌님의 십대 이야기가 가끔 떠올랐다. 아마 이 글을 쓴 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할지도 모른다. 잠시 자신의 소녀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길 바라면서. 다른 시대와 나라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공통점이 별로 많지 않겠지만 십대 소녀라면 공감할 부분들이 많을 것 같다. 만화고, 분량이 많지 않아 공감하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전의 경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한국 중년 남성의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코하루의 생각 중 몇 개는 십대의 나도 한 것들이다.

 

마스다 미리. 한때 카페 등에서 그녀의 이름을 자주 봤다. 덕분에 마일리지 등으로 몇 권을 사놓았다. 늘 있는 일이지만 그냥 묵혀뒀다. 만화의 경우 금방 읽을 수 있는데도 다른 책 때문에 뒤로 밀렸다. 사실 책을 살 때만 해도 이 작가의 작품이 어떤 성향인지 몰랐다. 그 당시는 한참 장르 문학 등에 빠졌고(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일상의 소소함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다. 아마 여성 독자들의 칭찬에 무턱대고 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과부터 말하면 그때 산 것이 잘 한 행동이지만 한동안은 그때 사지 않은 다른 책들이 더 아쉬웠다.

 

기억이 맞다면 처음 읽었다. 기억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예전에 읽었던 만화나 에세이에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스다 미리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미리를 ‘마리’로 기억한 적이 대부분이다. 아마 잘못된 이름의 기억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계속해서 이 미리의 책을 읽고 이름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이 나왔다고 하거나 서평이 올라오면 찰떡같이 알게 된다. 이것만 보면 이름 난독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잘못 읽고, 잘못 불러 큰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다 보니.

 

소개글에서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모두가 지나왔지만 이미 잊어버렸던 바로 그때 그 시절 우리 모두의 이야기’란 문구다. 남자인 내가 십대 소녀의 기분과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마는 나도 십대를 거쳤지 않은가. 작가의 십대 시절을 엿보고 싶은 마음과 지금 십대의 생각을 알고 싶은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코하루 일기를 시작하는 대목에선 한때 열심히 일기를 쓴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 일기장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알 수 없고, 예전에 다시 읽었을 때는 몇 가지 단어 등은 전혀 알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알 수 있으려나? 하지만 코하루의 일기는 그 시대만의, 그녀들만의 용어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열다섯 소녀가 고등학생을 지나 스무 살 전날 밤까지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내용들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 이야기다. 하나의 키워드를 정하고 그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간결한 그림으로 표현했다. 솔직히 말해 잘 그린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부족한 그림을 내용이 충분히 채워준다. 예전에 이런 그림이 별로인 만화를 싫어해 읽지 않았다가 내용에 반해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림보다 내용에 더 눈길이 간다. 물론 내용에 빠져서 그림의 훌륭함을 잊는 경우도 있다. 뒤늦은 감탄을 자아낸 적이 적지 않다. 언젠가 마스다 미리의 그림을 보고 감탄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짝 엿보기와 공감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왕따 이야기에 놀란다. “이야기 중에 갑자기 시작되는 이곳에 없는 아이의 ’단점 이야기‘. 가벼운 시작이 예기치 못한 왕따로 발전한다는 것. 학교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배운 것.“ 놀랍고도 슬픈 현실이다. 이런 성찰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코하루의 상상은 학교와 교육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어른이 만든 것을 받았을 뿐이야.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어.“ <5교시>의 상상은 그냥 상상만은 아니다.

 

“엄마는 엄마로만 있어주면 돼. 왜냐면 엄마는 나랑 언니만의 엄마니까.” 이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마음 뒤의 현실을 알고 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그녀도 한 명의 여자이고 싶다는 것을.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 수많은 부모의 모습들 중 하나다. 읽다 보면 이 생각을 십대에 했던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있다. “아빠와 엄마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고. 언젠가 아빠랑 엄마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가족’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지”라고 언니가 있어 다행이란 표현에 덧붙인 내용이다. 남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릴 때 추억 이야기를 많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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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그렉 올슨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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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 그대로다. 리즈가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친 후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냥 차로 친 후 911에 연락하고 병원에 보냈다면 그것으로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한 변호사 시험과 스트레스가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 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방수포로 덮어둔 후 시험장으로 떠났고, 자신의 눈앞에 있던 아이가 사라진 엄마는 패닉에 빠진다. 강변 집에 살다 보니 아이가 물에 빠졌을 것이란 추측을 한다. 경찰에 실종 신고하고, 남편에게 연락한다. 유괴의 가능성도 있다. 작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이 두 가족의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낱낱이 보여준다.

 

리사는 어릴 때 죽을 뻔한 적이 있다. 이웃의 댄 부자와 오빠와 함께 간 여행에서 갑자기 내린 폭우로 차가 물에 떠내려갈 뻔했다. 실제 차는 떠내려갔다. 하지만 그 전에 리사와 오빠는 탈출했지만 댄의 아들은 차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문제는 이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경찰의 유도 심문에 리사가 넘어간 것이다. 마을의 유명한 의사가 악의 가득한 소문의 희생자가 된다. 아들을 잃은 후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의 용기와 희생을 감안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할 텐데. 자라면서 이때의 정확한 기억을 잃고 있던 리사지만 가끔 이 기억들은 리사가 저지른 일과 엮어 하나씩 풀려나온다.

 

리사는 큰 실수를 했다. 아이를 차로 쳤으면 바로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덮어두었다. 남편에게만 연락했다. 문제는 이 남편에게도 있다. 성공을 눈앞에 둔 그는 이 사실이 남들에게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다. 한 번 더 바로 잡을 기회를 놓친다. 이런 잘못된 선택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성공에 모든 가치를 둔 오웬은 이 사실이 알려지길 두려워하면서 아내를 단속한다. 반면에 리사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모르는 아이를 차로 치었다고 해도 생길 텐데 친한 이웃의 아이를 쳤다. 여기에 이 사실을 숨긴다. 캐롤을 볼 때마다 울음을 터트린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 같이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생긴 울음이다.

 

캐롤과 데이비드 부부는 밖에서 보면 화목하다. 캐롤은 구글의 임원으로 있다가 스톡옵션으로 큰 돈을 벌어 은퇴했다. 한 번 아이를 낙태한 적이 있다. 이때를 되돌아보면 자신의 성공을 위한 선택이었다. 찰리는 포기 직전까지 간 상태에서 임신했다. 늘 집 앞에서 놀던 아이를 새로 지은 집의 누수 보험 처리 전화 때문에 잠시 눈밖에 뒀다. 사고는 이때 일어났다. 남편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의심의 불꽃이 피어난다. 요리사인 남편은 레스토랑을 경영한다. 자신의 가게에서는 폭군이다. 그런데 이 날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아내가 볼 때 남편은 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사건은 이 가족의 조그만 균열 속에 파고들어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드러낸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또 한축은 경찰이다. 경찰은 열정적이지만 단서가 부족하다.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지만 그 어디에도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첫날은 리사의 차고에 있었고, 그 다음에는 오웬과 리사가 아이를 먼 어딘가에 유기했다. 관광지인 마을에서 대규모 수색대를 꾸리는 것도 무리다. 강을 수색하고, 주변을 탐문한다. 차에 치인 아이는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유괴라면 납치범의 전화라도 있겠지만 독자는 사실을 알지 않는가. 이런 상황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가는 능숙하게 상황을 꼬고, 죄책감을 쏟아내고, 숨겨져 있던 과거의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면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경찰이 내놓은 수많은 가설들은 과거 사건들의 기록들이다.

 

엄마의 자책과 불안과 공포는 작은 희망을 뒤덮는다. 남편의 이상한 행동은 분노를 자아낸다. 이 과정은 과거에 덮어둔 일들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절망 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사라졌던 아이들이 다시 돌아온 경우뿐이다. 그리고 옆집 리사가 곁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리사는 죄책감과 두려움에 짓눌린다. 남편의 거짓말과 협박과 약물과 술이 없었다면 사실을 말했을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이 부부의 진짜 관계가 드러난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관계의 파탄과 그 속에 담긴 심리 묘사다. 꼬이고 꼬인 관계와 욕망에 휘둘리는 사람들의 심리 묘사는 정말 매력적이다. 모든 사건이 해결된 후 리사가 내뱉는 마지막 문장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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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려준 이야기 - 호손의 인생 수업
너새니얼 호손 지음, 윤경미 옮김 / 책읽는귀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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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한참 헌책방을 돌 때 한두 권 정도 샀지만 읽지는 않았다. 그 유명한 <주홍 글자>도 영화로 봤지 책은 읽은 적이 없다. 최소한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덕분에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이 나왔다고 했을 때 손이 나갔다. 이번에는 한 번 읽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대충 훑어본 책소개에 따르면 처음 번역된 작품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읽을 수 있지 모른다. 나의 독서 생활에 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원래 단편집에 실린 글 중 일부만 담았다고 한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편집도 너무 구식이다.

 

인생 수업이란 편집 방향을 잡고 1교시부터 7교시까지 각 하나의 주제로 엮었다. 행복, 운명, 사랑, 미래, 가치, 진실, 낭만 등이다.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부분과 다른 내용일 때마다 편집자가 분류한 단어를 다시 돌아본다. 과연 작가가 이것을 의도하고 쓴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말이다. 물론 작가에게 묻는다면 자신을 이런 의도로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할 가능성이 더 높다. 실제 그런 식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자기계발서 분위기를 풍기기 위한 하나의 구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나의 취향은 아니다.

 

일곱 편의 단편은 다양한 분위기를 풍긴다. <거대한 석류석>은 다양한 인간들의 욕망을 다룬다. 신기루와도 같은 그 거대한 석류석을 쫓는 모험의 이유도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의 이유를 말하는 부분과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자기만족이다.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삶이다. 결코 쉽지 않다. <히긴바텀씨의 비극>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한 사람의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소식을 전달하는데 아직 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과연 이 소식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말로 그 사건이 일어날지 호기심을 계속 자극한다. 편집자가 해석한대로 운명이라면 과연 그 비극은 어떤 결말일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샘의 환영>은 샘 속에 비친 여성에 대한 사랑을 다룬다. 환영 같은 존재였던 그녀를 만나는 것도 우연이다. 하지만 운명 같은 사랑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의 노력과 열정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예언의 초상화>는 한 위대한 화가가 그린 그림 이야기다. 그는 초상화 속에 그 사람의 특징을 잘 잡아낸다. 한 커플의 초상화를 그려주는데 이들의 숨겨진 모습이 눈에 보인다. 마지막 반전은 갑작스럽지만 그녀의 말은 강한 울림을 준다. <마을 펌프가 들려준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다. 마음 펌프가 자신의 물을 마신 동물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의인화한 이야기는 한 마을의 성장사를 보여준다.

 

<피터 골드스웨이트의 보물>은 행운을 좇는 피터의 이야기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지 않던 그가 선택한 것은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가 집안에 숨겨 놓은 보물을 찾는 것이다. 추운 겨울 가구를 부수고, 땅을 파헤치는데 과연 보물은 존재하는 것일까? 피터가 알지 못한 진실은 어쩌면 그가 외면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하이데거 박사의 실험>은 젊음과 연륜에 대한 이야기다. 노쇠한 등장인물들이 젊음의 샘물을 마시고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이것을 관찰하는 하이데거 박사의 시선은 대비된다. 재밌는 부분은 하이데거 박사의 교훈보다 그 순간의 황홀함에 취한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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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
조승원 지음 / 싱긋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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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을 보고 크게 끌리지 않았다. 많은 저자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자신의 분석으로 해석하면서 어렵게 풀어내었기 때문이다. 가끔 대담으로 하루키의 소설 한두 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담기도 한다. 이때도 이 한 편의 소설을 위해 과거 작품들이 인용된다. 어쩔 수 없다. 한 작가의 작품은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작업들이 가끔 원작을 읽었거나 읽으려는데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된다. 어쩌면 이해를 돕지만 그 방향으로 이미지가 왜곡되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책소개를 좀더 유심하게 보면서 저자가 음악과 술을 사랑하는 미주가에 하루키스트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키하면 술과 음악이 빠질 수 없지 않은가.

 

저자는 하루키의 소설을 자신의 이해로 풀어내기보다 술이 들어간 문장을 인용하는 구성으로 책을 썼다. 목차를 보면 잘 드러난다.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 등이다. 마지막에 음악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 재밌는 것은 술과 연결된 키워드다. 맥주는 허무와 일상이, 와인은 격식과 품위를, 위스키는 고독, 진정과 치유를 담고 있다고 봤는데 칵테일에는 특별한 키워드가 없다. 워낙 오래 전부터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었기에 소설 등에 나오는 술들이 어떤 상황에 나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맥주는 늘 머릿속 한 곳에 남았지만 그때 마신 맥주가 무엇인지까지는 솔직히 기억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자는 현재까지 나온 전작을 다시 읽고 술의 종류를 분류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하루키란 인물과 술을 엮었다. 하루키의 작품에 나온 술을 문장 그대로 인용한다. 하지만 하나의 술이 나오면 그 술이 어떤 작품들에 나왔는지까지 자세하게 기록한다. 최소한 이 책을 쓸 때까지 나온 책들은 모두 참고한 것 같다. 인터뷰 등도 참고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런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끈질긴 노력과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단순히 이런 나열만 있었다면 정보 분류 그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재밌고 놀라운 점은 이 작품 속 술들을 통해 술의 역사와 정보를 풀어낸 것이다. 최소한 이 책을 정독하고 좀더 세밀하게 읽었다면 네 종류의 술에 대한 기초 지식은 충분히 쌓을 수 있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금상첨화다.

 

저자를 소개하는 부분 중 음악과 술을 좋아한다는 대목이 있다. 특히 술을 좋아하는 미주가란 말은 책을 읽는 내내 공감한다. 이 작업이 술과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글 속에 나온 술에 집착(?)하는 모습은 이 부분을 특히 부각시킨다. 나 자신도 얼치기 하루키스트라고 말하지만 이 정도까지 가지는 않았다. 읽을 때 그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렇다고 술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가거나 다음에 술 마실 기회가 있으면 그 술을 기억해낼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처음 하루키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을 때는 책 속에 나오는 소설들이 한국에 소개조차 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술에 무지한 나 자신의 변명이 더 강한 부분이기는 하다.

 

솔직히 말해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전작을 현재까지 읽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가지고 있지만 비교적 최신작인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직 사지 않았다. <1Q84>는 사놓고 묵혀두고 있다. 그런데 이 책 속에는 이 작품들에 나오는 장면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대부분 나중에 읽을 때 나의 저질 기억력이 떠올리지 못하겠지만 술이 나올 때면 또 어떤 연쇄작용을 할지 모른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책이 주는 매력 중 하나는 과거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불러와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소설들을 술과 간단한 장면 소개로 기억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하루키 작품 전체가 꽂힌 서재를 상상했던가.

 

하루키의 작품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꼽으려만 당연히 맥주인데 이 책의 분량만 놓고 보면 칵테일이 가장 많다. 솔직히 칵테일에 무지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베이스가 무엇인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맥주, 와인, 위스키를 다룬 방송이나 책은 가끔 보지만 칵테일을 다룬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최근에 알게 된 몇 가지 칵테일이 나와 반갑기도 했다. 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가능하다면 각 장을 읽을 때 그에 맞는 술을 한 잔 옆에 두고 있으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나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의 재미는 훨씬 배가되었을 것이다. 다음 주에 담아둔 책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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