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월드>를 리뷰해주세요.
인터월드 -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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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게이먼이란 이름 때문에 눈길이 간 소설이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닌데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솜씨가 대단하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을 만들어내고, 정교하면서 흥미로운 구성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한쪽만 때어내어 보면 그렇게 재미나다는 느낌이 약한데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보면 대단히 즐겁고 흥미롭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연걸이 주연한 <원>이란 영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에서 이연걸은 일인다역을 한다. 그는 악당으로 전 우주에 걸쳐 존재하는 자신의 분실들을 하나씩 죽이면서 오직 하나만 남게 되어 유일무이한 힘을 가지려고 하는 동시에 이를 막는 역할을 같이 연기한다. 이 영화 속 우주는 평행우주로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 나의 존재는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차원 속에 존재하고 있다. 영화는 이 각각의 나가 모두 동일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 속 나는 모두 비슷하지만 다르다. 나이도 다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구의 환경에 따라 외모도 다르다. 이것은 개인의 능력 차이로도 표현된다. 이런 설정이 하나의 주인공을 다양한 활약을 펼치게 만드는 것이다.  

 

 화자이자 주인공은 조이 워커다. 그는 엄청난 방향치다. 집에서도 길을 읽을 정도다. 그런데 숨겨진 재능이 있다.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는 대단한 워킹 능력을 지니고 있다. 워킹이란 한 차원이나 세계에서 다른 차원이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물론 지독한 방향치인 그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우연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그의 몸속에 존재하는 능력을 탐내는 무리에게 납치된다. 그를 구하기 위해 인터월드에서 그의 또 다른 분신인 제이가 나타나 구출된다. 그  과정에서 조이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부상을 입은 제이는 죽게 된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에 빠져 있던 조이는 그를 대신해 인터월드의 대원이 된다. 하지만 결코 이 임무들이 쉽지 않다. 이렇게 해서 본격적인 모험이 펼쳐지고, 위험과 도전과 용기와 협력에 의해 어려움을 하나씩 뚫게 된다.  

 

 이야기는 복잡하고 다양한 물리학 이론을 배경으로 풀어지지만 이 이론들을 몰라도 상관없다. 작가가 만든 설정을 즐기면 그만이다. 마법과 과학에 대한 설명도 역시 그렇다. 조이가 성장하는 과정은 한 소년에서 전사로 발전하는 모습이자 이야기의 전개다. 화려한 장면들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각각의 장면 속에 담긴 이야기와 상황들은 재미있다. 조이와 휴의 우정이나 제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분신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조이의 모습은 뒤에 펼쳐질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끝으로 오면서 다음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그런데 후기를 보니 텔레비전 시리즈를 생각하고 쓴 소설이란다. 현재 시리즈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애니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 마법과 과학이 충돌하고, 무시무시한 악당이 등장하여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물론 끔직한 장면도 있다. 워킹 능력을 가진 조이의 분신들을 삶아서 차원을 나는 배를 움직인다는 설정이다. 이런 설정과 구성을 바탕으로 어린 전사들의 모험담을 펼친다면 각각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재미가 상당할 것 같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현대 과학이론을 배경으로 흥미롭고 재미난 설정을 만들고, 그 속에 독특한 등장인물을 등장시켜 즐거운 모험을 보여준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닐 게이먼을 좋아하고, sf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나는 내 아이들이 옳고 그런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특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바랐지. 나는 너를 믿는다. 조이. 그리고 너는 옳은 일을 하려고 하잖아. 내가 너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니?”(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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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1>을 리뷰해주세요.
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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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의 고전이라고 뒤표지에 나와 있다.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소설이다. 일본에서 발간될 당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는 글이 있다. 현재 일본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교사의 추천사를 보면 한 번 출간된 적이 있는데 아쉽게도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한 모양이다. 홍보가 부족했거나 책이 너무 두꺼웠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책을 읽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총 5부로 되어 있는데 1권이 2부까지만 다루고 있고, 이 같은 분량의 책이 두 권 더 남은 것이다. 그러니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렇지만 1권을 읽은 사람이라면 2권이 읽고 싶어질 것이다. 한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1권의 제목은 세 어머니다. 주인공 지로에게 세 명의 어머니가 있다.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 오타미, 자신의 젖을 먹이며 키운 유모 오하마, 생모가 죽은 새엄마로 들어온 오요시다. 생모는 아이를 낳자마자 유모 오하마에게 아이를 맡긴다. 아이의 첫 인상을 보고 유모는 첫 째 교이치를 떼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상황이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게 키운 아이가 지로인데 젖을 먹이고 키우다 보니 정이 생긴다. 이후 말썽장이 지로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쏟아 붓는 존재가 된다. 그녀는 지로가 생모에게 받지 못한 애정을 경험하게 하고, 자신의 성장을 측정하는 가늠자가 역할을 한다.  

 

 생모 오타미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자 사무라이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 그녀의 교육관은 냉철하고 이성적이다. 하지만 어머니란 존재에서 느낄 수 있는 자애로움과 따스함이 부족하다. 자신의 젖으로 키우지 않고, 자란 후 데리고 가면서 지로의 행동 하나 하나가 자신의 이성에 부합하지 않아 지로와 충돌을 일으킨다. 그녀는 어른의 잣대에서 아이를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하길 바란 것이다. 이런 감정이 서서히 깨어지고 무너진 것은 그녀가 병이 들면서 이성이 조금씩 감정과 결합하면서부터다. 이후 그녀에 대한 지로의 이미지는 처음의 보기 싫고 두려웠던 어머니에서 관세음보살처럼 인자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새 엄마 오요시는 자신이 지닌 우유부단함과 용기 부족으로 자신도 모르게 지로와 벽을 쌓아간다. 지로가 오요시의 아버지인 오마키 노인와의 만남을 통해 엄마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지만 혼다 가에서 할머니의 기세에 눌리면서 감정을 숨기고 현재에 그냥 눌러 앉게 된다. 아이의 껍질을 벗고, 소년으로 성장하던 지로에게 안락한 가정과 편안함을 주기보다 고민거리를 더 얹어준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만나게 되는 오마키 노인과 데쓰타로는 혼다 가와 외가에서 받은 부자연스러움을 털어내고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세 어머니란 부제가 있지만 사실 이 세 여인보다 지로의 일상과 그 일상을 통한 조그마한 변화들을 쌓아올리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지로의 감정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더디고, 어떤 점에서는 섬세하고,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아이의 감정이 표현되는 곳에선 나 자신도 잠시 아이가 되고, 그런 아이를 다시 어른의 시선에서 보게 된다. 이런 시선의 교차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동시에 보는 효과를 가져온다. 자세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주는 장점이다. 물론 가끔은 아이나 소년의 행동이 어른의 사고에서 비롯한 듯한 곳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지로의 행동과 생각들은 그만의 것이 아닌 그와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와 가족과 선생님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직 어린 지로의 시절을 다루다보니 실수도 많고, 감정의 기복도 심하다. 또 개구쟁이처럼 친구나 친척들과 돌아다니며 활기차고 즐겁게 노는 모습이나 친구 누나에 대한 앳된 감정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가끔 기특한 행동을 할 때면 이제 의젓해진 그를 만나지만 금방 철부지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실패와 실수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는 그를 보면 이 소설이 소걸음으로 한 소년의 성장을 그려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직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어떤 식으로 나올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한 소년의 성장을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천천히 들여다 보게 되고, 동시에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감동을 주기 보다 사실적인 성장소설을 원하거나 아주 긴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어른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의 세계를 규정한다고 믿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아이들이다.”(6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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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을 모셨지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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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조금은 무겁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의 유럽문학에 대한 선입견이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가져왔다. 체코 작가하면 먼저 밀란 쿤데라를 떠올리고, 그를 좋아하지만 신나고 즐겁게 읽은 다른 작가를 만난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명한 작가인 경우는 더욱 이런 경향이 많다. 요즘 같이 집중력이 약해진 경우라면 더욱 읽기가 지지부진한데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작은 웨이터 디테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소설은 디테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 방식이다. 첫 문장이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 좀 잘 들어보세요!”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하나의 경험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괜찮았나요? 오늘은 이 정도로 할께요.”라고 말하면서 마무리한다. 이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그는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게 된다. 이 과정은 그가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그를 둘러싸고 변하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처음 그가 호텔에서 일하던 순간부터 백만장자가 된 후 공산화된 체코에서 모든 재산을 잃고 산 속으로 칩거하는 순간까지 이야기는 이어진다. 이 길을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그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소박한 꿈을 가진 웨이터에서 호텔 주인으로, 욕망에 충실했던 삶에서 욕망을 자제하는 삶으로, 삶을 하나씩 배우는 단계에서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유창하게 삶을 말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상당히 딱딱해 보이는데 사실은 아주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그 각각의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독특하고 기발하면서 재미난 행동들은 이야기를 풍성하고 재미나게 만들어준다.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가 있다. 처음 그가 견습 웨이터로 입문한 곳에선 발덴 씨를 통해 성공에 대한 꿈을 꾸고, 첫 경험의 강렬함과 매춘부에 대한 숭배와 존중이 가져온 달콤한 열매를 보여준다. 그리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정체된 듯하면서 희극적인 풍경은 인간의 위선과 숨겨진 욕망을 잘 드러내어준다. 그곳을 떠나 호텔 티호타에선 정식 웨이터로 승진하고, 부유한 사람들의 무절제한 욕망의 표출과 거짓이 만들어낸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들의 부를 더욱 굳건히 하고, 그들의 사회에 다른 사람이 갑자기 뛰어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고 무시하려는 마음이 담겨있다.    

 

 의심으로 호텔 티호타에서 쫓겨난 그가 간 곳은 호텔 파리다. 이 상황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 곳에서 디테는 대단한 지배인을 만난다. 그와 함께 한 순간들은 웨이터로 그가 더욱 성장하게 만든다. 그가 보여준 직관력과 경험은 소설의 제목인 ‘영국왕을 모셨지’란 말로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이 된다. 들어오는 손님이 어떤 음식을 찾고, 원하는 서비스가 뭔지를 미리 알고 움직인다. 그러다가 그도 황제를 모실 기회가 온다. 하지만 이 기회는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유발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여도 이젠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대단한 지배인처럼 ‘아비시니아 황제를 모셨지’란 말로 자신의 능력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2차 대전을 전후 체코의 상황과 그의 아내 리자의 만남과 공산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던 집단 최면과 그 속에 도취되었던 삶의 파편들을 만나게 된다. 전쟁 초기 승리에 도취되어 보랏빛 환상에 휩싸였던 그와 독일인들의 모습과 뒤로 가면서 패배로 인한 암울하고 비극적인 풍경이 그의 눈을 통해 드러난다. 이에 따라 디테 또한 살며시 시대의 분위기를 타게 된다. 그를 부자로 만들어준 것이 전쟁의 광기 속에서 탐욕이 빚어낸 결과물임을 생각하면 순수함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인간의 욕망을 직시하게 된다.    

 

 디테가 백만장자가 되어 그토록 원했던 호텔을 소유한 순간 그가 버린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괴롭힌다. 이것을 지워내기 위해 선택한 호텔이 유명인의 사랑을 받고, 이름이 알려지지만 그는 결코 프라하 호텔 주인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아니 그들은 갑자기 부자가 되고, 유명해진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무시한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그를 그리워한 산마을 사람들이 그를 대신해 배달을 해주던 셰퍼드를 총으로 죽인 것과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 속에 자신이 경험한 사실들을 말하고 진짜 끝을 낸다. 그리고 이 소설이 흡족했냐고 묻는다. 물론 흡족했다.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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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나이트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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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으론 두 번째다. 처음 읽은 책이 <제5도살장>이다. 출간 당시 엄청난 광고 문구와 sf란 소리에 혹해 읽었다. 일반적인 sf소설의 재미를 기대하고 읽었으니 이 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무미건조하게 줄거리만 따라가면서 읽다보니 그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 그렇지만 화려한 이력은 그를 포기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다른 책들을 몇 권 구입한 후 그에 대한 이해를 조금 높여보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의 소설에 대한 접근 방법을 조금 바꾸니 이전에 몰랐던 재미가 눈으로 가슴으로 다가왔다.  

 

 주인공은 하워드 W. 캠벨 2세다. 2차 대전 당시 그는 나치의 스타 방송 요원으로 나치를 찬양하고, 숭배하였다. 그의 방송은 열렬한 나치 찬양자들을 감동시킬 정도로 파급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동시에 미합중국 첩보원이었다는 것이다. 라디오 방송 도중에 암호로 정보를 제공하였는데 그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꽤 양질의 정보가 전달되었다. 미국의 첩보원이라고 하니 그가 자신을 희생하여 조국을 위해 한 몸 바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아니다. 단지 그가 아마추어 배우고, 나치당원의 외면과 내면을 탁월하게 해석하여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에 첩보원이 된 것이다.  

 

 이런 그의 첩보 활동은 전후 그를 악명에 반해 전범으로 처분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다면 그는 나치의 열렬한 찬양자로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란 점이다. 이런 상황을 그가 계산하고,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를 첩보원으로 만든 프랭크 위르타넨이란 자가 말했듯이 이런 행동은 상상력에 의해 이미 계산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장인이 그가 간첩이라고 하여도 독일에 봉사한 것만큼 적에게 봉사하지 못했을 것이고 생각한다고 했을 때나 뒤에 프랭크가 그를 나치라고 말한 장면은 그의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그 행위 속에 첩보활동이 있었다고 하여도 말이다.  

 

 소설은 곳곳에 유머가 넘쳐난다. 그의 첩보 활동을 알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을 말하는 대목이나 그처럼 훌륭한 스파이를 어떻게 믿겠냐고 말할 때 입가에 자연스럽게 띄운다.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이나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러 가지 장면들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희극적 상황을 극대화한 장면들과 사람들은 그 과장된 표현으로 인해 더 재미있고, 섬뜩하다. 어떻게 보면 많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조그마한 불씨가 나중에 큰 불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점을 시사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가 악이 있는 곳을 말하는 대목이다.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한 부분이다. 이 문장이 나오게 된 상황이 나치였던 그를 오헤어가 찾아오면서다. 오헤어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술주정뱅이에 순간적 감정에 휩싸인 무리들이 함께 왔는데 그들의 행동이 나치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그를 적으로 삼고, 그 적을 증오하고 공격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장면은 그를 두고 벌어진 코믹하면서 섬뜩했고 가슴 아팠던 장면과 더불어 가장 인상적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매력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집 어딘가에 있을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겠다. 그가 만들어낸 상황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하나씩 찾아내고, 웃음을 짓게 된다면 나의 즐거움도 하나 더 늘어날 것이다. 반전에 대한 메시지가 강하게 다가오고, 희극적인 장면들은 이전에 누리지 못한 즐거움을 준다. <제5도살장>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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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검시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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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을 여러 권 읽었다. 전작들도 모두 재미있었고 이 책 또한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사라진 이틀’이 가장 마음에 드는데 그 속엔 다양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번 소설도 그 따뜻한 마음이 곳곳에 담겨있다. 각각의 단편들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와 검시관을 하나로 엮어낸다면 ‘사라진 이틀’과 비슷한 구성이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종신검시관이나 교장으로 불리는 검시관 구라이시와 관련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담고 있는 8편의 단편 소설집이다. 각 단편마다 화자나 주인공은 다르다.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구라이시 종신검시관이다. 수많은 사건과 수많은 인연이 빚어내는 사건들 속에 야쿠자를 닮았지만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검시관이 있다. 외관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보면 분명히 조직에서 윗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검시와 추리엔 빈틈이 없다. 그가 보여주는 실적은 경이적이라 그의 말 한마디가 수사의 방향을 바꿀 정도다.  

 

 처음 종신검시관이라는 제목과 책 소개 글에서 구라이시가 능동적인 주인공인줄 알았다. 하지만 각각의 단편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사람은 모두 다르다. 죽는 사연 또한 모두 다르다. 자살인 경우도 있고 타살인 경우도 있다. 그 각각의 사연을 짧지만 강력한 인상을 주는 등장인물들로 꾸려나가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중요하고 그 숨겨진 사연과 비밀은 안타까움을 준다. 그러나 그들 모두 종신검시관 구라이시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감정과 믿음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한다.  

 

 소설의 원제가 현장검증을 뜻하는 임장이라고 한다. 그 사건 현장에서 만난 인물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 8편의 이야기 중에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은 ‘눈앞의 밀실’과 ‘한밤중의 조서’와 ‘실책’이다. ‘눈앞의 밀실’은 이전에 읽은 ‘클라이머즈 하이’의 신문사를 떠올려 주면서 트릭이 주는 재미를 느끼게 하였다. ‘한밤중의 조서’는 부성애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한다. 혈액형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정한 그가 긴 시간이 흐른 후 DNA 조사로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마음엔 든 ‘실책’에선 기록이나 밖으로 드러난 업적보다 잠시 동안 자신과 함께 일한 직원의 사연을 더 중요시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과거로부터 그 기억을 담아온 ‘17년 매미’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종신검시관 구라이시에 대한 나의 솟구쳐 오르는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모두 단편이고 구라이시의 능력이 너무나도 특별하지만 각각의 사건이나 트릭 등은 재미있었다. 몇몇은 쉽게 맞출 수 있는 것이고, 몇몇은 일본사람이 아니면 전혀 알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일본인이기에 풀 수 있는 트릭은 한국 작가들도 좀 더 노력하여 한국 사람만이 풀 수 있게 만들어 내었으면 한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전에 한글을 암호로 이용한 일본추리소설은 본 듯한데 상당히 특이하였다. 물론 비교적 쉽게 이해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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