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원서능력자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서를 읽을 수 없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시리즈나 미출간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요즘엔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좋은 작가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쌓여 있는 책도 많은데 원서까지 읽고 쌓아야 한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공간과 돈이 더 부족해질 것이다. 버나드 콘웰은 이 책 포함하여 두 권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나에게 안타까움과 다행을 동시에 줬다.

스톤헨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다. 이곳을 두고 수많은 학설이 오고 간다. 이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각 방위가 천체운행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등과 결합하여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떤 작가들은 이곳에서 비밀 종교 의식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었고, 현재도 이곳에선 종교의식이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확한 용도나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이 없다. 

작가는 불가사의한 스톤헨지의 비밀을 선사시대로 우릴 인도하고 그 거대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그 속엔 그 시대의 삶, 사랑, 탐욕, 마법, 음모, 전투, 모험, 과학 등이 담겨있다. 그 중심엔 해와 달의 신이 있고, 배다른 세 형제가 얽히고설킨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그 시간은 현대의 것과 다르다. 특히 형제 중 사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의 삶은 굴곡이 심하다. 부족장이었던 아버지가 큰형에게 죽은 후 노예로 팔려가고, 그 상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노예로 변한 것이 또 다른 음모임이 드러난 후에도 그의 삶은 계속해서 수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데 가장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면서 인도적인 인물이다.

이야기는 사반이 큰형 렌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사연에서 시작한다. 성인식을 아직 치르지 않은 소년 사반이 큰형에게 사냥 등을 배우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가 이방인을 발견한다.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을 예상하지만 이 시대 이방인은 약탈자이자 도둑이다. 이방인을 뒤쫓아 가서 그를 죽인다. 그가 가진 물건 중 황금이 있다. 형은 자신이 가지려고 하고, 동생은 부족장인 아버지에게 가져다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충돌이 생기고, 이 기회를 노려 사반을 죽이려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황금이 이 거대한 상상력을 움직이는 동력원이고,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다.

렌가가 호전적인 전사로 폭력과 죽음을 보여준다면 둘째 형 카마반은 영악하고 음모와 마법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인물이다. 사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신비하면서도 광기에 찬 인물이다. 불구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태양신 슬라올의 사제임을 자청해 나서고, 달의 신 라하나를 숭배하는 여마법사 사나스에게 마법을 배우고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식을 쌓은 후 명성을 떨친다. 미신이 넘실거리던 그 시절 어느 정도 자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고, 슬라올에 대한 광신은 스톤헨지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모든 폭력과 광기의 또 다른 표출이다. 

한 소년의 성장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수많은 부족의 삶과 사랑과 종교가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자연 현상은 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오고, 현재에서 보면 아주 조그마한 지식이 거대한 저주와 마법으로 둔갑하여 그 시대를 지배한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설정은 성인식에서 실패하여 전사가 되지 못한 아이들이 사제가 되는데 이들이 점점 또 다른 권력을 잡고, 전사들에게 공포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육체적 능력이 부족한 그들이 지식으로 지배계급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조금은 알게 된다.

전작에서도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손에서 떼기가 쉽지 않다. 하나의 돌을 옮기기 위해 그들이 들이는 공력과 시간을 생각하며 한 장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이 세 형제의 대립과 갈등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찬양은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임을 보게 되고, 고대인의 삶에서 시간의 옷을 벗겨내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과 거대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이 지닌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갑자기 스톤헨지를 보러 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중국 관련 책을 읽다보면 그곳에 나오는 수많은 신들과 괴이한 동물들에 놀라고 신기하게 생각했다. 특히 <산해경>을 인용할 때면 언제 꼭 한 번 읽어야지 마음을 먹지만 왠지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여기저기에서 읽은 책들 속에서 중국 신화와 역사를 통해 많은 인물과 이야기를 만났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지 못했다. 역사의 흐름은 알게 되었지만 단순히 중화주의의 부산물로 가득했기 때문에 살짝 거부감이 생겼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최근에 나온 연구결과가 이 사실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최근 엄청난 역사 왜곡을 실현하고 있다. 한때 전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동북공정을 비롯해서 얼마 전까지 그렇게 오랑캐 족이라고 욕했던 만주나 몽골에 대해서도 자국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이 거대한 영토와 수많은 소수민족을 중국이란 하나의 국가 속에 통합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방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사라져 가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유물과 유산은 왜곡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작업이 완료된 시점에서는 원 나라나 청 나라가 중국이란 거대한 제국 속에서 분열과 통합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 과정이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는 그 민족의 거대한 업적이나 실패는 역사 속에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이다.

왜 중국의 역사 왜곡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느냐고, 이 신화 이야기가 이런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염제 신농의 동이계와 황제의 화하계의 대립을 중국 신화 속에 넣어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 고대 문헌의 원전 자료를 인용하고 연구한 결과물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저자는 기본적인 서술 방향을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라는 두 가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제3의 시각에서 볼 것을 제안하고, 이것을 중국 신화의 상호 텍스트성, 중국 신화의 해체 및 동양 신화적 시각에서 다시 읽기 등으로 구체화했다. 그 덕분에 놀랍고 신기하고 괴상하고 독특하고 과장되고 허황된 것 같은 이야기 속에서 숨겨진 의미와 변질된 역사를 조금씩 파악하게 된다. 단순히 신화의 나열이나 서술을 넘어 중국 신화와 서양 신화를 비교하고, 한국 신화와도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중국 신화가 중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동양 신화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신화란 무릇 인간이 잃어버린 태초의 본성으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아닌가!”(33쪽)란 문장을 통해 중국 신화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현재의 중국 한족이 하나의 민족이 수천 년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족들의 결합임을 말하고, 염제 신농 등을 통해 중국 문명이 처음에 동방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부분은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중국 원전 속에 가려진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해석하고 비교한 결과물이다. 한국인으로 단순히 기분 좋은 연구일 수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것도 또한 사실이다.

책은 11부 3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늘과 땅이 열리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신화 속 인물들과 영웅들을 거친 후 이상하고 괴상하고 신기하고 별난 사람이나 사물들을 보여준 후 낙원과 지하 세계로 마무리한다. 이 과정은 대부분 연대순으로 이어지는데 신화 속 인물이 후대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 알려주어 신화가 완전한 것이 아닌 시대 속에 변형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엔 중화주의나 유교의 이데올로기나 가부장적 사고 등이 깊이 작용하고 있다. 또 이런 신화를 서양 신화와 비교 분석하여 유사성과 차이점을 알려주는데 여기서 동서양의 철학 차이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동양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거대한 유산을 마주하고, 역사 속에 그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의 미스터리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이 책의 가치는 아주 많다. 중국 신화를 중국에 한정시키지 않고 동양으로 확대한 것을 비롯하여 서양 신화와 비교, 분석한 것이나 동양 신화를 잘 구분, 정리하여 그 흐름을 잘 파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풍부한 자료 사진은 과거와 현대의 상상력이 빚어낸 결과를 비교할 수 있게 만드는 동시에 활자로 묘사된 것을 실제로 볼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사진에 나 자신의 상상력을 덧칠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동양 신화로 읽어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다른 저서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이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래의 발소리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섀도우> 이후 두 번째로 미치오 슈스케의 책을 읽었다. <섀도우>에서 서술트릭을 사용하여 나를 완전히 속였는데 이번 단편집도 마찬가지다. 많지 않은 분량에 여섯 편의 미스터리가 담겨 있는데 그 한 편 한 편이 수준급이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뻔한 결말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솟아나는 소름은 멋지고 섬뜩하다. 반전과 더불어 인간의 심리 밑바닥을 훑고 지나가면서 어둠을 이렇게 잘 표현한 작품도 흔치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단편집이다.

<방울벌레>는 11년 전 죽은 친구S의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이야기다. 친구를 죽이고 묻은 그에게 들려오는 방울벌레 소리는 그의 신경을 건드린다. 하지만 이 소리 뒤에 숨겨진 사실은 과거의 회상을 거치면서 반전이 펼쳐진다. 방울벌레 소리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감정과 심리의 복잡한 흐름은 앞에 펼쳐놓은 단서들과 더불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짐승>은 개인적으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작품이다.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화자가 넘어진 의자 다리 속에 적힌 문장을 보고 S의 살인사건 내막을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뛰어난 가족들에 비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그가 신문기사 등을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모습은 어쩌면 전형적이고 뻔한 전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S의 살인사건의 전모가 짐작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반전에 있다. 반전은 섬뜩하고, 구성은 반전과 맞물려 제목과 소설 전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 사건을 둘러싸고 회상과 추억이 뒤섞이면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작품이 <요이기츠네>다. 학창시절 악행이 현재의 그를 휘감아오고, 이 때문에 환상 속으로 현실이 매몰된다. 나쁜 친구 S 때문에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것은 단순히 핑계다. 용기가 부족했고, 자신 속에 담겨 있는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축제와 짧게 결합한 작품인데 심리 묘사가 너무 혼란스럽다.

<통에 담긴 글자>는 반전에 반전을 보여주는 단편이다. 거짓이 이어지고, 속임수가 계속되면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유감이다’란 이 짧은 문장에서 시작되는 사건의 전말은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무섭고 강렬한지 보여준다. 문장과 단어 하나하나가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실들을 펼쳐놓게 만든다. 그리고 살인 그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책제목 술래의 발소리가 나오게 된 <겨울의 술래>는 일기 형식이다. 약간 밋밋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밝혀지는 사실과 행동들이 가슴 한 곳을 서늘하게 만든다.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마음은 망가지지 않았다.’란 문장이 훈훈하고 따뜻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들의 웃음은 섬뜩하다. 그들의 행복이 나에게 행복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은 그들이 보여준 엽기적인 행동 때문이다. 불편한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 단편 <악의의 얼굴>은 친구 S에게 이지메를 당하는 나의 이야기다. 나의 이야기 속에 S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 공포를 몰아내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이웃집 여자다. 그녀가 말하는 황당한 일의 사실이 밝혀진 후 펼쳐지는 사건들은 인간 심리의 맹점을 그대로 파고든다.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 믿는 그 소년을 보면서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조용하면서도 갑자기 S의 웃음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 의미가 결코 순수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사건을 암시할 때 다시금 우리의 심리를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서 화자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의 약자가 모두 S다. 어떤 작품에선 작가를 내세우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혹시 작가의 이름과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어느 작품에선 오츠 이치의 단편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요즘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다고 하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다른 작품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관심이 간 것은 2010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데 가능하면 찾아서 읽은 문학상 중 하나가 바로 이 상이다. 책을 받아들고 표지 등을 보면서 처음 느낀 점은 얇다는 것과 소녀 취향의 그림이란 것이다. 바로 읽을 수도 있었는데 뒤쪽 심사평을 읽으면서‘치명적인 성애묘사’란 표현에 문학상 수상작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했겠는가 하고 내려 보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몇 쪽을 읽지 않아서 바뀌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사실적인 묘사 때문에 한 편의 포르노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문학을 통해 이런 경험을 했다.

사실 이런 표현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유명한 마광수 교수나 장정일의 작품 속에서 이미 표현된 적이 있다. 이 작품들이 세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시절에 이런 묘사는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정도는 아니었다. 몰래 보고 자신의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뒤섞어 표현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아예 유명한 문학상을 받았다. 대단한 변화다. 이런 변화가 인정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진보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청춘들의 삶과 방황이 현실의 한 면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리는 노래방 도우미로 온 남자의 이름이다. 그가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우연히 지명한 화자 나의 행동과 심리로 그려진다. 그녀는 노래방 도우미가 열심히 놀려고 할 때 오히려 즐겁기보다 어색하고 그 속에 몰입하지 못한다. 술로 시간을 때우고, 시간이 끝난 후 다른 파트너를 부르자는 동료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를 불러낸 것은 바로 이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들어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와의 시간 속에서 즐겁게 놀지 못하지만 그녀가 느낀 감정은 솔직한 성욕이었고, 이 감정은 꿈도 희망도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현실의 그녀에게 하나의 도피처가 된다.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20대는 도덕적 시각에서 보면 음탕하고 반도덕적이다. 술과 섹스와 일탈을 즐기려는 마음만 가득하고 미래에 대한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다. 미주가 나에게 꿈을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많은 20대의 현실이다. 추상적인 꿈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대부분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이들을 보면서 대학 도서관과 영어회화학원을 오가면 스펙을 쌓고 있는 대학생을 생각하면 완전히 딴 세상 아이들 같다. 이런 양극화는 현실 속에서 이미 벌어질 만큼 벌어졌고,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화자가 자신과 선후배의 미래를 생각할 때 현실의 높은 벽과 넓은 틈새는 결코 낮아지거나 좁아지기는커녕 더 커지기만 한다. 

현실 속 청년들은 이미 불공평한 경쟁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외모 차이, 부모의 재력 차이, 학력 차이 등을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현실의 이런 차이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다. 그 때문에 제리가 “그런데 내가 진짜로 무서운 건, 죽어서도 이대로일까 봐, 죽어서까지도 늘 이따위 신세일까 봐, 또다시 이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워.”(214쪽)란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그들에게 술과 섹스에 대한 갈증과 탐욕은 일시적이면서도 충동적일 수밖에 없다. 

화자의 삶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사회에서 루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삶을 만나게 된다. 학창시절엔 날라리란 이유 때문에 선생에게 성희롱 당하고, 이 사실을 믿어주기보단 그녀를 탓하는 현실을 만난다. 졸업 후 갈 대학이 없어 2년제 야간전문대에 들어갔지만 이것은 단지 다른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욕구가 아니라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외로움 때문에 술과 섹스를 제외하면 아무런 감정 교류도 없는 강을 만나고, 가족과의 단절은 타인과의 관계보다 못하다. 이런 그녀의 일탈과 방황 속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조그마한 깨달음과 감정은 이 시대 20대의 조그마한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노골적인 성교 묘사 너머에 있는 그들의 삶은 조용히 가슴 한 곳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비 2010-08-0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보았습니다^^
 
시튼 탐정 동물기
야나기 코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시튼 동물기>를 정식으로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책 내용 중 일부는 여기저기에서 듣거나 읽은 적이 있다. 이 유명한 작품을 작가는 원작의 범위 속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새로운 재미를 이끌어내었다. 그것은 바로 시튼을 탐정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이 소설 속 시튼은 셜록 홈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건들은 바로 그의 동물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한 편 한 편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동시에 <시튼의 동물기> 내용 중 일부를 알게 되는 부수입도 있다. 

<카람포의 악마>는 <늑대왕 로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도입부로 시튼과 기자인 화자의 만남과 인연을 설명하는 장이기도 하다. 화자가 시튼을 인터뷰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면은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주다. 시튼의 관찰력과 추리력을 보여주면서 현재가 아닌 과거 속으로 들어가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이후에도 이어지지만 각 단편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살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용한 인간들의 살인을 다루고 있다. 이런 설정은 자연주의자였던 시튼의 사상을 그대로 투영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연작으로 이어지게 만들기 위해 화자가 근무하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즈> 편집장은 첫 이야기에 대한 열렬한 호평으로 다음 이야기를 요구한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실버스팟>이다. 실버스팟은 까마귀다. 이 까마귀가 물고 온 다이아몬드를 배경으로 사건을 풀어내는데 사실 쉽게 범인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까마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이 소설이 얼마나 셜록 홈즈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한지 홈즈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여 보여준다.

<숲속의 다람쥐>도 역시 쉽게 사건을 쉽게 풀 수 있다. 작가는 어렵게 사건을 꼬아놓기보다 셜록 홈즈와 <시튼 동물기>의 결합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건이 아니라 도입부에 신문 기사를 비판하는 장면이다. 진실이나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기보다 사실의 일부만 도려내어 오해를 불러오거나 왜곡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몇몇 신문기자들과 신문사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다람쥐를 통해 드러난 진실이 범인을 알려주듯이 현실에서도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신문이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이 연작집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거꾸로 올라간 작품이 <외양간 밀실과 메기 조>다. 시튼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데 그의 탁월한 관찰력과 추리력이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알려준다. 두 개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나이 탓인지 다른 사건에 비해 조금 가볍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탐정 실력은 그 떡잎을 알 수 있게 만든다. 달걀 이야기에선 좋은 달걀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고,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의 명성 탓에 동물 탐정 비슷한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런 일 중 하나가 <로열 아날로스탄 실종사건>이다. 니카보카 고급고양이 및 애완동물협회 주간 품평회에서 만장일치로 일등상을 탄 고양이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추적하는 이야기다. 고양이의 놀라운 능력도 흥미롭지만 부유층의 헛된 욕망이 만들어낸 허상이 더 많은 재미를 준다. 요즘이라면 고가브랜드에 혹한 수많은 사람들이 아닐까?

<세 명의 비서관>은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적에 동조하는 내부의 적을 찾으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시튼의 친구로 테오도어 루즈벨트가 등장한다. 그리고 어떤 동물이 나라의 상징 동물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시튼의 주장이 상당히 재미있다. 이전에 대머리독수리 말고 다른 동물도 나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만약 시튼의 주장대로 그 동물이 상징동물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킥킥 웃었다. 스파이를 찾아내는데 일등공신이기도 하지만.

마지막 작품인 <곰의 왕 잭>은 첫 번째 이야기와 닮아 있다. 동물을 이용해 살인사건을 조작한다는 설정이다. 역시 범인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과학자가 아닌 사람이 과학적인 용어로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에는 과장이 있기 마련입니다.”(242쪽)란 문장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정확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곰에 대한 정보는 역시 편견을 넘어 사실에 도달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역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시튼 동물기>다. 아직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이 연작단편집으로 그 재미를 간접적으로 누렸다. 끈기 있는 관찰과 조사와 열정과 사랑이 만들어낸 그 결과물에 대해 관심이 자연스럽게 가고, 그 동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 이상의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그와 동시에 작가가 이 흥미로운 결합을 계속 이어가면서 속편을 만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직 다루지 못한 <시튼 동물기>가 많이 남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