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천사
키스 도나휴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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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작 <스톨른 차일드>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많은 기대를 했다. 이번 소설에 대한 호평 중 ‘<해리 포터>보다 신비롭고, <스톨른 차일드>보다 매력적이다’는 문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전작의 잔영이 아직도 남아있는 상태였기에 이런 표현은 더 강하게 다가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절반만 맞는 표현이다. 아니 신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풍성한 볼거리와 멋지고 쾌활한 캐릭터를 원한다면 아니다. 하지만 풍부한 여운과 해석을 즐긴다면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이 소설은 어떤 것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취향에 따라 많은 변화를 준다.

추운 날 한 소녀가 만약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즉흥적으로 집안으로 들인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어떨까? 아마 빨리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가기를 바랄 것이다. 이 소설 속 마거릿은 소녀를 집안으로 받아들이고, 이때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아이의 이름을 묻지만 아이가 노리엘이라고 말하기 전에 미리 짐작한 이름 노라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아이의 이름은 노라가 된다. 홀로 추운 겨울을 뚫고 나타난 소녀는 사라진 딸 때문에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던 마거릿의 집으로 온다. 이 소녀의 등장은 단순한 출현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삶에 새로운 희망의 바람을 몰고 왔다.

노라가 중심에 있지만 그녀의 주변은 마거릿과 숀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딸이 가출을 한 후 남편마저 죽고, 외롭게 홀로 살아가는 마거릿. 아버지가 떠난 후 엄마와 함께 살면서 아빠를 그리워하는 숀. 남편이 떠난 후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숀의 엄마. 그 외 삶 속에서 믿음과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스스로 천사라고 말하는 노라를 통해 이들의 현재를 이야기한다. 그 현재는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나의 현재와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소설은 모두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노라의 등장과 함께 1985년 1월 현재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두 번째는 마거릿의 딸 에리카가 가출한 후 방황하는 시간인 1975년 10월의 여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은 다시 1985년 2월 이후 구원받는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다. 현재에서 과거로 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이 속에서 시대의 변화, 철학, 가치관, 21세기 현재를 보고 느끼게 된다. 그것은 이미 과거 이야기이지만 현재에도 유효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의 흐름은 노라의 존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희망이 어떤 힘을 지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에서 끝까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 둘 있다. 그들은 바로 노라와 그녀를 주시하는 한 신사다. 노라를 천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존재로 볼 것인가는 읽는 내내 의문의 대상이었다. 이런 의문을 계속해서 품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그녀 주변에 맴도는 신사의 정체다. 어떻게 보면 앞에 나온 이 둘의 관계가 뒤로 가면서 흐지부지되는 듯한 느낌도 상당히 많다. 이것이 의도적인 연출인지 아니면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탓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이들의 정체는 희망과 믿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달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히 이번 작품은 전작보다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 읽은 후 하루가 지난 지금 읽을 때 느끼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 몇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의문의 대상이었던 두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숀과 마거릿이 산 삶과 에리카가 가출 후 지나온 여정이 대부분이다. 흔히 예수가 현세에 재림해도 다시 그를 십자가에 매달 것이란 표현이 난무하는 요즘 노라의 존재는 이성적으로 감성적으로 제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것과 상관없이 지치고 외로운 그 시간 그 곳에 나에게 따뜻한 온기와 희망의 씨앗을 뿌려줄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그 혹은 그녀는 천사가 분명하다. 그리고 희망의 씨앗을 싹틔우고 키우는 사람은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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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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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박범신의 소설을 읽었다. 90년대 그의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나의 관심사는 다른 사람이었다. 특히 이청준과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빠져 있던 나에게 그의 소설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평론가들의 평마저 그렇게 좋게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그 당시 취향 탓에 그의 많은 책이 독서 목록에서 빠졌고, 그 이후 머릿속에선 왜곡된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런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게 된 것은 최근에 나온 <은교>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인터넷에 올라온 평을 보니 노작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손에 넣은 <비즈니스>는 한국과 중국 동시연재라는 호재와 더불어 새롭게 그를 인식하는 계기를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 기대는 적중했다.

비즈니스. 이 영어 단어를 사용하면 뭔가 고급스러운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사업이란 단어 대신 비즈니스를 입에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 단어 하나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 덕에 사람들은 더욱 이 단어를 애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비즈니스보다 한 단어를 더 붙인 비즈니스맨이란 단어가 더 많이 사용된다. 자꾸 듣다보니 나 자신도 모르게 자주 이 단어를 말한다. 영어가 일상대화에서 더 늘어나고 있는데 가끔 깜짝 놀란다. 한글을 잃어가는 나 자신이 보여서 그렇다. 단순히 영어를 사용해서 문제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정체성. 한 사람을 알려주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내가 나로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나로 있기가 쉽지 않다. 나는 가만히 있고자 하지만 주변에서 너무 흔든다. 아무리 뿌리를 깊숙이 박고 바람을 마주한다지만 그들은 그 뿌리가 뽑힐 때까지 바람을 불고 흔든다. 그러니 어느 나무가 뿌리 뽑히지 않겠는가. 이 소설 속에선 화자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녀는 조용히 살고자 했지만 남편의 실패와 아들의 교육이 그녀를 매춘녀로 만들었다. 남편의 실패가 생존 속으로 그녀를 내몰 수는 있다. 하지만 아들이 외고 가기를 바라며 몸을 판다니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이 슬픈 악순환은 그녀와 아들의 관계를 멀리하게 만들고 삶을 더욱 고달프게 만든다.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왜 그런 짓까지 하느냐고. 사실 나도 그 혹자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과 공포와 원망 속에서 살아야 한다. 자신이 해주지 않아 자식이 처질 경우 그 원망을 감당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의 눈과 지탄을 정면에서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은 끝없이 그녀를 흔들어댄다. 이 때문에 그 혹자에서 잠시 벗어날 때도 많다. 그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들처럼 하층민으로 살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그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신분상승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믿고 있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어느 정도가 문제다.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매춘을 비즈니스로 포장하는 것은 양심과 불안을 숨기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그 속에 숨겨진 욕망을 이 단어 하나로 가리려는 것이다. 몇 가지 사업 원칙을 세워 감정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언제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던가. 자기합리화와 삶의 피곤함이 쌓여 있던 그녀가 한순간 무너지고, 잊고 있던 감성과 감정을 되살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대도 타잔과의 만남과 그의 아들과의 교류는 그녀가 주변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 만남이 정상적이지 않아 숨겨질 수밖에 없으니 더욱 그렇다. 

분량이 그렇게 많은 소설은 아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씩 복기를 하면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만나게 된다. 자본의 폭력성, 가족이란 무엇인가, 아이들의 교육 문제, 섹스 등으로 대변되는 큰 줄기 외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주리의 그 뻔한 결말을 마주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삶의 이면을 생각하게 된다. 또 타잔으로 불리는 한 도둑에 열광하는 시민들과 그에게 도둑맞은 물품을 숨기기 바쁜 부자들을 간단하게 대비시켜 우리 사회의 양극단을 보여준다. 이것은 한 도시 속에 자리 잡은 구도시와 신도시의 삶이기도 하다. 자본의 욕망에 자신을 팔아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달려가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 가족, 우정, 환경, 미래 등과 같은 단어는 자본이란 한 단어에 무릎을 꿇었다. 이 소설 속에선 그 단어가 바로 비즈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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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매월 나오는 신간들 중 늘 관심을 가지는 작가의 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특히 젤라즈니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이 소설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다소 무거운 분위기인 초.중기 작품들에 비해 훨씬 더 경쾌하고 위트와 풍자가 넘치는 이 소설은 '고딕소설, 탐정소설, 판타지의 절묘한 배합'이라는 찬사에 또 한 번 눈길을 준다. 추천글에 나오는 미친 혼합물이란 단어가 요즘 유행어의 단순한 인용인지 아니면 실제 표현인지도 궁금하게 만든다. 

 

 제48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자 엄청난 분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중 플롯과 다중 해결의 본격 미스터리물이라니 읽으면서 행복함과 머리 아픔을 동시에 느낄 것 같다. 긴 시간이 지난 후 벌어지는 사건이란 점에서 과거가 어떻게 펼쳐질지,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아직까지 이 작가의 작품에 실망한 적이 없다는 것도 매력이다. 

 

긴다이치 시리즈라면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특히 이번 작품은 긴다이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1인칭이니 당연히 처음부터 등장하는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까? 벌써 이 시리즈가 9권이나 나왔다는 사실에 첫 권 나왔을 때 바람이 조금은 이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 더 많으니 방심은 금물이다. 

 

견인도시 연대기 세 번째 작품이다. 전작에서 두 연인이 다시 결합했는데 이번에 아이까기 나온다고 한다. 이제 그들의 딸이 전면에 나서는 듯한데 또 어떤 모험과 사랑이 펼쳐질까? 1권에서 보여준 엄청난 무기를 생각하면 이번에 나올 악마의 무기는 어느 정도 위력일지 궁금하다. 이 시리즈는 은근히 사람을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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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 미친 여자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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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열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쑤퉁의 소설집이다. 처음 쑤퉁이란 작가를 만난 것도 사실 소설집이었다. 그때는 이 작가의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 매력을 알게 된 것은 장편이었다. 어느 문학 카페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호평을 보고 쌓여있던 마일리지로 몇 권을 샀다. 장편소설은 중단편과 달리 읽는 재미가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쑤퉁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조금씩 무너진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는 중국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주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었다. 

열네 편.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언제나처럼 모든 단편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표제작 <다리 위 미친 여자>, <토요일>, <좀도둑>, <슬픔의 춤>, <대기 압력> 등이다. 이 작품들이 좋았던 것은 개인적 경험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리 위 미친 여자>에선 정말 미친 여자와 하나의 물건에 빠진 여자의 신경전과 파국이 마음에 들었고, 그렇게 하나의 물건에 빠진 사람의 심리에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약간 정신이 나간 그녀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노가 일었고, 그녀가 보여준 마지막 몸부림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현대인의 무관심과 남의 일이란 사고가 그대로 드러나 가슴이 아팠다.

<토요일>을 읽으면서 그들을 도와준 사람을 서서히 배척하는 행동에 깜짝 놀랐다. 놀란 것은 그 행동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겪은 일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둘 모두였는데 나의 이기심이 살짝 부끄러워졌다. <좀도둑>은 어릴 때 돈 많은 친구들의 장남감이나 도구들에 가졌던 부러움과 가슴 한 곳에 꿈틀거렸던 욕심이 되살아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슬픔의 춤>은 추억과 현실 속에 드러난 옛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어릴 때 경험했던 일들이 현재 속에서 흥미롭게 펼쳐지고, 그 후일담이 삶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대기 압력>은 나라면 어떻게 그 선생을 대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과거의 추억과 현실의 대비가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수양버들골>은 자동차 사고가 과연 누구의 것인지 의문이 생겼고, <의식의 완성>은 현실과 환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궁금하다. <거대한 아기>의 실체가 허구인지 아니면 상상력의 결과물인지 호기심을 자극하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술자리>가 만들어내는 욕망과 질투의 감정들은 은연중에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들고, <신녀봉>을 앞두고 사라진 두 남녀와 한 남자가 마지막에 보여준 기묘한 미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8월의 일기>가 과연 나의 어린 시절 방학 숙제와 닮은 듯하면서도 너무 다른 모습에 놀란다. 하나의 미망에 사로잡힌 소녀의 행동과 심리가 긴장감을 주는 것이 <물귀신>이고, <하트 퀸>에 대한 집착은 <좀도둑>의 에피소드를 연상하게 만든다. <집으로 가는 5월> 역시 과거와 물건에 대한 집착을 다루는데 나의 모습이 조금씩 보여 놀랐다.

중국 현대의 삶을 현실적으로 다루고, 환상을 교차시키는 그의 재능이 이번 단편집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 많은 것은 그 속에 우리의 삶과 비슷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고, 낯설었던 것은 다른 문화 탓일 것이다. 과거를 이야기할 때 특히 문화의 차이를 많이 경험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화 이후 세계인들의 삶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읽는 재미는 곳곳에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아직은 개인의 취향 탓으로 완전한 재미를 누리기 힘들다. 아직은 그의 장편이 더 나의 호흡과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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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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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이 상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상이다. 하지만 이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학창 시절에 읽고 혼난 적이 있다. 그 이후 잘 읽지 않다가 최근에 읽으면서 감탄한 작품이 몇 있다. 이렇게 이 상은 개인 취향을 많이 탄다. 그럼 이번 수상작은 어떨까? 왠지 모르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이야기 구조인데 말이다. 책 분량에 비해 많은 시간이 걸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첫 문장 “조지 워싱턴 크로스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이 간결한 문장 속에 작가가 앞으로 할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환각은 허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여 조지와 그의 아버지 하워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과거는 현재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인물은 하워드다. 물론 이런 하워드를 과거 속에서 불러낸 인물은 그의 아들 조지다. 하워드의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정신병을 앓았고, 하워드 역시 간질을 가지고 있다. 이런 병력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나오지 않고 이야기 진행 속에 천천히 나온다. 이 과거 병력은 왜 조지가 죽기 전 환각에 빠지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 유년시절 이런 병은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이 병 때문에 아버지가 사라졌다면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 공포를 그려내지만 그의 떠남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하워드의 직업은 땜장이이자 행상인이다. 그의 행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대 민중들의 삶과 사고와 제조업체의 영업 전략이 드러난다. 공황 전이 시간배경인데 그 시대 사람들은 변화보다 기존 제품을 더 좋아하고, 쓸데없는 낭비를 경계할 정도로 근검절약하고 있다. 하지만 업체는 제품을 조금 손 본 후 다른 제품인 것처럼 광고하고 가격을 올린다. 이 수법을 보면서 현재 한국 제조업체들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적용하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조지의 환각은 시간 순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이 뒤섞인 시간이 바로 우리의 시간 감각인지도 모른다. 이 혼란과 환각 속에서 그가 만나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쩌면 그리움이고 어떻게 보면 공포인지 모른다. 아버지의 간질 발작을 보고 느낀 공포와 그가 떠난 후 만난 잠시 동안의 시간이 이것을 대변한다. 특히 그가 죽기 전 본 환각의 시간이 바로 아버지와의 짧은 만남임을 생각하면 그리움은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감정이다. 아내나 자식이나 손자들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들도 많을 텐데 말이다.

흥미로운 부분이 곳곳에 보이지만 계속 집중력을 유지하며 읽기엔 취향의 영향을 너무 받는다. 문장의 리듬을 쫓는데 그것이 단숨에 읽히지 않는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매력적일 수 있지만 맑은 정신을 계속 유지하면서 읽지 않으면 너무나도 힘든 책읽기다. 그래서 가끔은 집중력과 흐름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아무 쪽이나 펼쳐 조금 읽으면 그 문장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 멈춘다는 것이다. 언젠가 느리게 읽기에 성공한다면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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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1-01-07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