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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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 중 한 권이 바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에 많이 주저했다. 어려울 것이란 생각과 보수적인 내용으로 진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개념적으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해소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일독을 권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박날 것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연말에 많은 매체에서 이 책과 함께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같이 다루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말한 내용은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왜 이런 책이 많은 지식인들 사이에 화두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 자신도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닌 이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것으로 생각 못했고, 주변에서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을 때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제목부터 비슷했고, 전작의 인기에 편승한 졸속 번역의 후속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먼저 읽은 독자들의 평을 보면서 이런 생각은 달아났다. 다만 전작과 달리 어렵다는 말이 많아 고민이 되었다. 특히 파트2의 내용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글이 많아 긴장도 많이 했다. 이런 고민과 긴장감을 가지고 펼쳐든 책은 역시 쉽지 않았다. 파트1이 현실적 문제를 다루면서 쉽게 다가가게 했다면 파트2는 이론과 논쟁 등으로 대충 읽기를 전혀 용납하지 않았다. 덕분에 진도는 더디게 나갔고, 문장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모두 3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파트1은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정치적 도덕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하나의 현실적인 사안을 가지고 도덕적 현안을 다루는데 이것들이 오랜 세월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던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의 현실에 대입하려는 노력을 자주하게 된다.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에 많은 돈을 쓰는 국가기관들은 자신의 본래 임무를 곧잘 망각한다.”(41쪽)는 문장은 현 정부와 서울시의 과거와 현재가 그대로 겹쳐보이게 만들었다. 이것은 바로 밑의 “국민은 고객이 아니다.”란 문장으로 정치와 사업의 차이를 표현한다.

파트2에 오게 되면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한다. 저자의 전공인 롤스의 <정의론>을 바탕으로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정의와 논쟁은 잠시만 집중력을 놓치면 엉뚱한 길로 빠지게 만든다. 솔직히 고백해서 자주 엉뚱한 길로 빠졌고, 제대로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삶에서 그렇듯 철학에서도 새로운 신념은 머지않아 낡은 통설이 되기 마련이다”(162쪽)란 문장에서 왜 당연한 듯 보이는 이론들을 왜 다시 분석해서 해석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유명 철학자들의 명단에서 미국 철학자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놀라게 되는데 조금만 생각해도 고개들 끄덕이게 된다.

파트3은 자유와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묻고, 시장중심주의가 시민의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보여주고, 앞으로 시민의식이 회복하기 위한 과제가 말한다. 그 후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다루고 주장했던 부분이다. 특히 “최근 자유주의는 공동선의 비전을 제시하는 과제에 실패해 비틀거렸고, 이는 보수주의자들에게 미국 정치의 가장 잠재성 있는 자원을 양보하는 결과를 낳았다.”(318~319쪽)는 주장은 한국의 진보정당들도 각별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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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엄마
서미애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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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미애란 이름을 본격적으로 기억하게 된 것은 단편집 <반가운 살인자> 때부터다. 각각 다른 분위기와 인물들을 등장시켜 나를 매혹시켰다. 물론 그 이전에 장편 <인형의 정원>을 읽었다. 이 작품은 왠지 어설픈 구석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다. 이야기의 호흡과 구성이 나와 맞지 않고, 낯익은 구조로 이끌어 나가면서 만족도가 떨어졌다. 그런데 아직 단편집에서 받은 감흥이 남아 있다. 지금 그녀의 새로운 장편 <잘 자요 엄마>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결과는 결론부터 말하면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심리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 이 장편은 비교적 잘 읽힌다. 하지만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범죄심리학자 이선경의 캐릭터가 너무 약하다. 그녀가 약한 만큼 그 상대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악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 긴장감을 고조시켜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안절부절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다. 초반에 <양들의 침묵> 속 여주인공 스털링에 비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물론 작가도 그녀가 그런 정도의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악의 화신 같은 연쇄살인범 이병도를 만날 정도라면 좀더 강한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 아니면 이병도를 좀더 잔혹하고 무섭게 그려서 평범함을 더 부각시켰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가 왜 이런 인물을 중심에 세웠는지 조금은 이해한다. 두 악역의 내면세계로 들어가고, 그들이 왜 그런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그 원인이 유전적인지 아니면 환경적인 것인지 알고자 하는 마음 말이다. 대결구도가 아닌 ‘왜’에 더 많은 비중을 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악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과정과 그 바닥을 마주할 때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그런 점이 약하다. 악이 너무 강해서 이선경이 약한 것이 아니라 그녀 자체가 너무 약한 것이다. 특히 그녀가 남편의 전처가 낳은 딸 하영을 대하는 모습은 너무 평범하여 오히려 현실성을 떨어트린다. 심리학자란 설정 때문인지 모르지만 너무 빨리 자신을 바르게 조정한다. 조금은 꺼려하는 마음이 있지만 말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성인이 된 연쇄살인범 이병도와 이제 새롭게 성장하는 어린 살인자 하영의 모습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병도의 과거를 하영의 현재에 대입하고 비교하는 과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작가는 이 둘의 어린 시절을 비슷하게 그려내면서 유전적인 요소를 부인하고 환경적인 요소를 더 강하게 부각시킨다. 이런 작업은 어떻게 연쇄살인범이 되었는지, 왜 그런 잔혹한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는 있지만 소설적 재미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재미를 위해서는 좀더 긴박한 구성과 이 둘의 동질성을 강하게 부각시켜주는 장치가 필요한데 사실 이 부분도 상당히 약하다. 오히려 감성적이라고 해야 할까?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런 점이 더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강한 자극과 긴장감을 좋아한다. 취향 탓이다. 앞에서 길게 불만을 늘어놓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강한 인물들의 대결이나 악당이 보여주는 섬뜩한 모습을 기대했기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충실한 자료 조사와 어쩌면 너무나도 현실적일 수 있는 묘사에 대해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지 않은 점은 아쉽다. 또 화재 사건 현장에 처음 등장한 화재조사관 상욱의 존재가 너무 쉽게 사라진 것도 역시 아쉽다. 아마 책을 읽으면서 이병도는 이선경이 맡고, 화영은 상욱이 맡는 것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둘이 맡은 인물들을 쫓고 분석하고 대결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진실이 밝혀졌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뭐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이 다른 작품의 영향 때문이란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약간 진부할 수 있는 구성이 더 쉽고 빠르고 무섭게 다가올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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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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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달리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다. 아니 역설적인 제목이다. 어쩌면 그 꿈이 악몽일 수도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본의 현재와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듯했다. 아니라고 조금은 부정하고 싶은데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 닿는다. 이성적으로 보자고 하지만 곧 이성도 고개를 끄덕인다. 빠르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다. <라라리포>에서 받은 느낌보다 세련되었고 깊이는 더 있다. 우리의 삶을 더 많이 더 자세히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각각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른 이야기지만 조각조각이 모이면 하나의 큰 그림이 된다. 이 조각들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감사 등을 대비해 생활보조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공무원 아이하라 도모노리, 도쿄에서 대학생활을 꿈꾸다 어느 날 납치된 여고생 구보 후미에, 폭주족 출신으로 노인들에게 사치 영업하는 가토 유야, 마트에서 좀도둑을 적발하는 보안요원이자 이혼녀 호리베 다에코, 현의원으로 나아가길 꿈꾸며 지역유지나 토건업자들과 유착된 시의원 야마모토 준이치 등이 바로 이 도시의 삶을 대표적으로 인물들이다.

공무원 아이라하 도모노리를 통해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은 복지정책의 허점이다. 연금수령자보다 생활보호비가 더 많이 나오고, 고액의 수령자들은 더 이상 구직활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대상자는 공무원을 하인 부리듯이 대한다. 그 과정은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신청을 했을 때 너무 쉽게 내준 것이 하나의 이유다. 수령자가 늘어나고 부담이 증가하자 부정수급자를 줄이려고 하지만 쉬울 리가 없다. 도모노리의 열성이 현실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그때 우연히 본 유부녀 매춘은 그의 억눌린 욕망을 부채질하고, 사회의 또 다른 모순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여고2년생 구보 후미에는 도쿄4년제를 꿈꾸고 있다. 그녀를 통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졸업 후 진로 문제다. 그녀가 도쿄로 가려고 하는 것도 삶이 정체된 유메노 시에서 어떤 성장과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에 벌어진 납치는 이런 꿈을 짓밟아버린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서 일본 공장에서 일하는 브라질 2세나 혼혈 등과의 대립과 문제 등이 밖으로 표출되고, 은둔형 외톨이와 가정 폭력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납치된 후 황색저널리즘을 걱정하는 모습에선 언론의 문제점이 그래도 드러난다.

가토 유야는 전직 폭주족이다. 그의 선배들처럼 사기영업을 하는 곳에 취직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누전차단기가 문제 있다고 겁주면서 비싸게 판다. 공포를 이용해 판매에 성공하는 것이다. 회사와 자신이 일정비율로 수익을 나누는 구조다. 자신이 많이 팔수록 떨어지는 이익이 크다. 같은 물건도 얼마에 파느냐에 따라 수입이 변한다. 재미난 것은 이런 조직을 만들어서 돈을 더 버는 사장 같은 인물이 있고, 판매원들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점이다. 조폭이나 폭주족의 구조가 회사란 외형을 뒤집어 쓴 것이다. 여기에 이혼한 아내가 보낸 이제 갓 돌 지난 아이는 잊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를 조금씩 깨닫게 한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현실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다에코의 삶은 이혼한 중년 이상 계약직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다. 혼자 살아 몸이 가벼울 것 같지만 적은 수입과 불안정한 고용은 늘 불안에 떨게 만든다. 그녀가 사슈카이란 종교단체에 빠져들게 된 것도 현실의 불안 때문이다. 이 종교를 그녀는 올바른 종교라 부르고 강한 믿음을 보여주는데 이야기 중간중간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사이비종교다. 신앙이란 강한 껍질을 뒤집어 쓴 그녀가 종교의 진면목보다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것이다. 그녀의 삶은 노년도 이제 결코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현실과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유일한 부자이자 시의원인 야마모토 준이치도 결코 쉬운 삶을 살지는 못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함을 누리지만 더 큰 욕심이 자라고 있고,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적들과 자신의 이익을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거기에 조폭형제 중 동생의 사고는 그녀의 삶 전체를 뒤흔들 정도다. 정경유착에 불륜에 살인 등을 저지르는 인물이지만 그 또한 이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하나의 인물일 뿐이다. 지역 유지 혹은 권력자였던 그가 변화하는 시대에서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은 구조의 변화라기보다 권력의 이동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각각 다른 이 다섯 사람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있지만 그들과 함께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뛰어난 이야기꾼의 실력을 발휘해서 어둡게 풀어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미 현실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면서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이 안고 있던 고민을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시켜버린다. 그 결과는 독자의 몫이다. 오랜만에 읽었지만 역시 오쿠다 히데오다. 그러나 다음엔 좀 밝고 유쾌한 소설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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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심장부에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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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감기 몸살로 고생을 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을 때였다. 맑은 정신으로 읽어도 제대로 이해를 할까 말까 하는 소설인데 말이다. 처음엔 간결한 문장이구나 하고 좋아라 했는데 금방 긴 호흡으로 바뀌면서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한 번 문장을 쉬고 나면 그 의미를 되새겨봐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집중력도 높지 않은 상태고, 이야기 자체도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면서 혼란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장에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추측하면 금방 뒤집어지고, 하나의 사건이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사건이 벌어지면서 바뀐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꾸준히 참고 읽은 나에게 점수를 줘야 할지 모르겠다.

역자의 해설에 기대지 않고 읽는다면 한 편의 연극 같다. 공간이 제약되어 있고, 등장인물도 몇 되지 않는다.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상황과 벌어지는 사건은 여주인공의 독백의 현실 혹은 환상이다.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겠다. 이 제약된 공간과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남자 주인이 하인의 어린 아내를 유혹하고 겁탈하거나 무너진 집안 경제와 고립된 위치 때문에 여주인공이 나중에 겁탈되는 상황 같은 이야기 말이다. 같은 공간을 오고 가고, 자신의 바람과 욕망을 살짝 숨기거나 뒤틀어놓는다. 어느 순간에는 한편의 포르노를 보는 것 같은 장면도 있다. 너무 노골적이지만 가장 은밀하고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앞부분에 아버지와 새엄마를 도끼로 죽이는 장면을 볼 때만 해도 참으로 엽기적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아버지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 고개를 가로 젓는다. 거기에 새엄마는 사라지고 흑인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하인 헨드릭의 어린 아내다. 화자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그려내기보다 오히려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이런 상상은 그녀가 결코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자 그녀들에 대한 질투다. 나중에 헨드릭에게 겁탈당하는 후 그녀가 그에게 바라는 행동을 생각하면 그녀의 삶의 깊숙한 곳을 살짝 들여다본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 장면들은 이 소설에서 가장 불편한 순간들이기도 했다. 

과거의 남아공을 생각할 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항상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고, 인종차별이 없어졌다는 표면적 발표가 있지만 말이다. 이 정책은 현대에 벌어진 최악의 인종차별정책이다. 아마 이것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노예제도 정도일 것이다. 작가는 이런 현대 식민주의의 문제점, ‘서구 문명의 합리주의와 위선적 도덕성’을 한정된 공간 속에서 풀어낸다.(이것과 비슷한 설정의 소설이 <포우>다) 헨드릭이 화자를 겁탈하지만(상상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나중에 백인들이 주인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릴 것이라고 생각하며 도망간다. 이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백인들은 합리주의에 앞서 선입견과 편견이 먼저 작용한다. 이성이 제대로 작용할 것 같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위선으로 가득하다. 

아버지가 죽고 하인이 모두 떠난 후 홀로 남은 화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없다. 둘을 굴려 메시지를 쌓는 행동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이 외로움이 앞에 나온 모든 현실과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신 분열의 증세가 보이는데 이것은 자신의 정확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것도 있다. 유령이니 마녀니 메마른 노처녀니 하는 단어들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젊음과 열정이 메말라 버린 그녀가 어떤 것을 할 수 있겠는가! 어렵고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역시 곱씹으면서 문장 너머를 상상하면서 읽는다면 또 다른 세계가 보일지 모른다.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제대로 그 세계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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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 시모다
리처드 바크 지음, 박중서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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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갈매기의 꿈>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주인공이 사람이 아니고 갈매기라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았는데 그 책을 펴는 순간 정신없이 읽었다. 갈매기 조나단의 말과 행동과 도전과 용기는 가슴 한 곳을 뭉클하게 만들고 감동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후 늘 그렇듯이 그의 책은 나의 필독서 목록에 올라갔고, 여기저기에서 구해 읽고는 했다. 하지만 처음 받은 감동을 지속적으로 받기는 쉽지 않았다. 아마 그런 시기에 이 소설도 읽은 듯한데 지금 그 책을 찾을 수 없어 정확하게 비교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제목으로 나온 것 말이다.

사실 이 책을 나는 착각했다. 최근에 나온 신간으로 말이다. 그런데 1977년 작품이다. 분명히 90년대에 읽은 듯한데 최근작으로 착각하면서 읽게 되었다. 화려한 광고 글은 엄청나게 매력적이고, 예전에 좋아했던 작가의 최고 작품 중 하나라는 말에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읽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분명히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지 못한 재미를 지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시모다의 말을 지금은 조금씩 혹은 완전히 공감한다. 이런 변화는 좀더 삶을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문장 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대목은 필기체로 나오는 앞부분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 대부분이 여기에 나온다. 그 후에 나오는 것은 실용편 혹은 해설서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부분은 왜 기계공 시모다가 자신을 메시아로 떠받드는 사람들을 떠나 사람과 기계로 이루어진 일상 세계로 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이 행한 기적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시모다를 떠받들면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의 명령이라면 지옥불의 고난도 충분히 기쁘게 감당하겠다고 말할 때 나는 사라지고 광신만 남는데 아주 간결하게 이 상황을 보여준다. 

많은 분량의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문장을 곱씹으면 다르다.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고 불가의 일체유심조와 맞닿아 있으며 다중우주론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있다. 아마 예전에 읽을 때는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너무 이야기에 집중했을 것이다. 현실과 환상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우리가 사는 세계가 환상이 아닌지, 내가 바라는 바를 구체적으로 그려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답한다. 사실 이 부분으로 넘어오면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할지 말이다.

한때 화두로 삼고 있던 것이 ‘일체유심조’였다. 지금은 약간 퇴색했지만 이 말을 가슴속에서 외우고 외우고 또 외웠다. 내가 읽은 몇 권 되지 않는 자기계발서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단어로 집약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소설도 이 단어 하나면 많은 것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메시아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그의 말이 아니라 기적에 관심을 가진다는 이야기는 중국 선종의 고사가 떠올랐다. 한 고승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자 사람들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런 해석은 “이 책에 나와 있는 모든 것은 틀릴 수도 있다.”(227쪽)는 문장처럼 틀린 해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석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되짚어보게 한다면 다음에 읽을 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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