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싹 - 오늘의 한국 인문학을 있게 한 인문고전 12선
김기승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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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인문학을 있게 한 인문고전 12선 ’이란 부제가 달린 책이다. 실제 이 책은 인문학박물관 ‘우리 인문학의 역사교실’ 1기 강의를 묶어 내놓은 책이다. 강사 중 눈에 익은 사람은 진중권을 제외하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강의 대상이 되는 책과 저자를 보면 낯익은 책과 사람이 몇몇 보인다. 하지만 역시 낯선 책과 저자가 더 많다. 나의 지식이 얕아서 그런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더불어 대상이 되는 인문고전들이 일제 시대와 해방 전후에 출간되었고, 저자 상당수가 월북한 인사나 사회주의자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이들을 거의 만날 수 없던 것도, 이 저서들이 출간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후반인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강의는 연대순으로 이어진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그 유명한 이중환의 <택리지>(1751)다. 이후 안확의 <조선문명사>(1923), 이여성·김세용의 <숫자조선연구>(1931), 이만규의 <조선교육사>(1947), 박열의 <신조선혁명론>(1948), 신남철의 <역사철학>(1948), 김동석의 <뿌르조아의 인간상>(1949), 백남운의 <쏘련인상>(1950), 배성룡의 <농민독본>(1953), 김태오의 <미학개론>(1955), 홍기문의 <조선신화연구>(1964), 이종화의 <우리민중의 노동사>(2001) 등이 강의 대상이 된다. 비슷한 다른 제목들과 이름이 연상되지만 아마 그것은 해방 전후사를 읽으면서 본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목차를 보면서 <택리지>를 가장 먼저 올린 것을 보고 조금 의아스러웠다. 이 책을 단순히 지리서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사 양보경 씨의 설명을 듣다보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특히 현대적인 측면에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통찰한 부분을 설명할 때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비판적 책읽기다. 다른 저자들이 이 책을 비판한 것도 같이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편적인 것으로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이 강의들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현재 나오는 학설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나왔다는 점이다. <조선문명사>에서 통일신라 대신 남북조시대라는 말을 쓴 것이 대표적이다. 고등학교 시절만 해도 통일신라로 교과서에 표기되었고, 발해가 점점 비중을 높여가는 중이었는데 이미 이 시대에 이런 시대 구분을 한 것이다. <숫자조선연구>는 통계자료가 지닌 의미와 해석 방법이 왜 중요한지 알려주는데 이것은 요즘도 유효하다. 실제 통계나 도표들이 가끔 사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두 저자가 조선총독부의 통계로 보여준 해석과 분석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많은 것을 보여준다. 

조금 낯선 <조선교육사>에 대한 학계의 평을 읽다보면 반드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약점에 비해 장점이 너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대구분과 실증사학에 입각한 교육사라는 점과 민족사학에 기초한 교육사이자 민중을 강조한 사회경제사학의 교육사란 평가 등이 더욱 부채질한다. 그 유명한 가네코 후미코와의 열애와 천황 일가 테러 음모 혐의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한 박열의 <신조선혁명론>은 책 내용보다 그의 해방 후 행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강사가 인문학은 항상 상상하는 것이라고 할 때 더 많은 것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그 상상력이 비루할지라도.

개인적으로 한 번 도전하고 싶은 의욕만 있는 책이 바로 신남철의 <역사철학>이다. 대학 때 멋모르고 강의를 들었던 철학자들이 나오고, 가장 부족한 부분 중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실제 손에 든다고 해도 수박 겉핥기나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청중 중에 신남철의 강의를 직접 들은 분이 있다고 했을 때 이 강의에 참석하신 분들의 연세를 세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이분들의 놀라운 학구열과 지식은 이후 강의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목이 강렬한 <뿌르조아의 인간상>은 새로운 지식인 김동석을 알게 되었고, 그의 실천적 삶과 월북 후의 비극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쏘련인상>은 당대 지식인의 대소 인식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사실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에 대한 내용보다 비판적 사고를 통한 냉철한 현실인식을 가졌던 그가 어떻게 그 학문적 성과를 반감시켰는지에 더 관심이 갔다. 어쩌면 당파성을 지니고 조직에 가담했을 때 지식인이 가지는 한계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농민독본>에 대한 소개를 읽으면서 마오쩌뚱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그가 레닌과 달리 농민과 연대해서 사회주의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정국에서 왜 토지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했고, 현재의 농협이 지닌 원천적인 문제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미학은 언제나 한 번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다. <미학개론>에서 어느 정도 지식을 얻고 싶었는데 나의 지식이 얕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진중권의 글은 재미있고 유쾌했다. 나중에 그 핵심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가 항상 있지만. <조선신화연구>는 신화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우리의 신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언제 한 번 읽어봤으면 한다. 가장 최근에 나온 <우리 민중의 노동사>는 민중과 노동의 의미를 다시 되짚는 기회가 되었고, 왕조사가 아닌 민중 주체의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옛날에 왜 이순신 장군은 그렇게 추대를 하면서 그 밑에서 싸운 이름 없는 병사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냐고 했던 것처럼.

사실 열두 권이지만 열두 명의 저자 이야기를 통해 아주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강의 속에 나온 인물이나 책등을 통해 더 많은 공부를 할 재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상 지면상 제약에 의해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한 시대를 이해하고 현재와 과거를 연속적으로 생각할 때 이 저서들과 강의 내용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 우리의 인문학이란 것과 남북분단의 특수성 때문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강사보다 더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청중과 그들의 나이다. 그들의 질문과 지식을 보다 보면 아직 배워야할 것이 너무 많이 남아 있고 조금도 긴장을 풀 수 없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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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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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폰이 쓴 최고의 책 <바람의 그림자>를 읽었기 때문인지 그 후에 읽은 몇 권은 사실 아쉬움을 많이 느끼게 만든다. 안개 3부작의 첫 권 <9월의 빛>도 그랬다. 미스터리 모험 소설이란 것과 사폰이란 이름에 이끌렸는데 만족도가 많이 떨어진다. 큰 기대를 했기에 더욱 그런지 모르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은 개연성도 긴장감도 모두 떨어진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도 미숙한 부분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일정한 재미를 유지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말이다. 특히 미스터리보다 판타지 성격이 더 강한 장면들로 가득한데 이 부분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이야기는 회상으로 시작한다. 본격적인 시작은 1916년 5월 인도 캘커타 거리에서 영국인 피크 중위가 두 아기를 데리고 도망하면서부터다. 그를 쫓는 암살자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데 쉽지 않다. 아기를 둘이나 데리고 말이다. 아기들을 어느 노파에게 맡기고 그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 의해 죽는다. 아기들을 살리기 위해 노파는 아이 하나를 고아원에 맡긴다. 간략한 설명을 더불어 남긴다. 원장은 편지를 보고 아기를 기르기고 마음먹는다. 이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이 그를 찾아온다. 혹시 버려진 아기가 없었느냐고 하면서. 이 질문에 거짓 대답을 하지만 그는 16년 후 나이가 차면 사회로 나가는 관례를 들고 그때를 기약하며 물러난다. 이렇게 과거의 한 사건은 마무리된다.

16년 후 그때 버려진 아이 이름은 벤이다. 그는 고아원 동기들과 함께 ‘차우바 소사이어티’란 조직을 만들어 활약한다. 모두 일곱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들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들이 고아원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때 한 노파가 찾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아르야미 보세, 16년 전 쌍둥이의 할머니다. 그녀가 쌍둥이를 떼어놓고 도망다니기 시작한 것은 자와할이 지닌 능력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정체를 정확하게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정확한 정보를 숨기고 왜곡하면서 아이들을 위험으로 몰아간다. 그 진실이 밝혀졌을 때 충격적이어야 하는데 조금 밋밋하다. 

한밤의 궁전이란 제목만 보면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차우바 소사이어티’ 아이들의 아지터일 뿐이다. 실제 모든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은 지터스 게이트 역사다. 이곳은 옛날 쌍둥이의 아버지 라하와즈 찬드라 차테르기가 인도의 독립을 꿈꾸며 건설한 기차 역사다. 하지만 화제 사고로 폐쇄되었고, 사고 당시 죽은 영혼의 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변했다. 마지막 결투의 장면이 이곳에서 펼쳐지는데 사실 영상으로 옮긴다면 어떨지 모르지만 문장만으로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조금 허무한 결말이라고 해야 하나?

판타지 성격이 강한 전개 속에 흥미를 끄는 것은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각각 개성이 강하고 강한 분야가 있는데 청소년 소설의 전형처럼 느껴지지만 대단히 흥미롭다. 상상력이 풍부한 벤, 의사가 되려는 이언, 탁월한 그림 솜씨를 가진 마이클, 정보와 학식이 뛰어난 세스, 미모에 행동력이 강한 이소벨, 이소벨을 사랑했던 시라지, 상업에 관심이 많은 로샨 등이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가세하는 벤의 쌍둥이 여형제 쉬어가 있다. 이들이 살인자이자 괴물 같은 능력을 가진 자와할을 상대한다. 이때만 해도 뭔가 긴장감을 고조시킬 사건들이 생길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무력하게 승부는 한쪽으로 기운다. 반전을 통해 다른 결말을 보여주지만 강한 인상을 줄 정도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와할의 정체를 통해 미스터리를, 그의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능력을 통해 판타지를, 그에 대응하는 아이들을 통해 모험을 보여주는 구조다. 이 구성물들이 나름 잘 짜인 것은 사실인데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세부적인 것을 살리지 못했고, 마무리가 너무 약하다. 아이들의 특징을 좀더 부각시키고 자와할과의 대결을 조금 더 긴장감 있게 그려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분량도 늘리고 말이다. 읽으면서도 읽고 난 후도 계속해서 <바람의 그림자>와 비교하게 되는데 모든 아쉬움이 바로 여기서 생기는 것 같다. 이 소설부터 먼저 읽었다면 조금은 달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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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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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 <간과 쓸개>는 2009 황순원 문학상에서 먼저 읽었다. 그 후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서 다시 만났다. 솔직히 한 번 읽었는데 예전 서평을 찾아보니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는 문구가 보인다. 아마 김숨이란 작가를 처음 만난 것도 <간과 쓸개>였을 것이다. 이 단편을 읽기 전 다른 사람들이 그냥 일상을 그려내는 작가는 아니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것이 선입견처럼 작용했기에 감정이입이 더 잘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데 이후 나오는 단편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사실 <모일, 저녁>만 해도 일상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혼식 때문에 내려왔다가 집에 다니러 온 화자의 시선을 통해 한 가족의 저녁 풍경을 그려낸다. 어떻게 보면 비루하지만 일상의 대화가 오고 간다. 단지 아버지가 뱀장어를 잡는 일을 하는 것을 통해 살짝 뒤틀린 현실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는 버스 정류장 간이 매표소와 동물원을 배경으로 현실 그 너머의 풍경을 그려낸다. 마지막에 현실에서 그녀가 선택한 코끼리처럼 제자리걸음 걷기는 최후의 희망이자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북쪽 방>은 한 전직 지구과학 교사 곽노의 퇴락한 삶을 보여준다. 북쪽 방은 아내가 그를 유폐시킨 공간이자 안식처다. 그가 가장 황홀했던 순간이 퇴적암의 단면과 마주하던 그 순간이다. 곽노의 삶이 유기질보다 무기질에 더 흥미를 가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자신의 몸무게가 자꾸만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미지와 단상들이 교차한다. <흑문조>는 단층 양옥을 장만한 아내의 시선으로 삶의 한 면을 그려낸다. 이 부부의 삶은 너무 건조하다. 보일러 배관 공사 현장이 이 부부의 현재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 없어 여기저기를 파헤치고, 다시 덮은 그 모습 말이다. 

<룸미러>는 참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끝난다. 뒤끝이 찝찝하다. 어떻게 보면 종말의 한 순간을 보여주는 것 같고, 아이들이 깨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왜?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다. 수많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그 어떤 이미지도 연상되지 않는다. <육의 시간>은 예상한 결말이지만 그 진행이 너무 메말라 있다.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여자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이 기묘한 동거는 기이한 방식으로 이어진다. 변하지 않는 육체가 만들어낸 균열이 조금씩 자리를 잡을 때 시간마저 정체된 듯하다.

<내 비밀스런 이웃들>은 정말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온다. 남편이 늘 말하는 그들이 간 곳이 광화문 어디인 것 같은데 결코 도달하지 못하거나 되돌아오지 못할 공간처럼 보인다. 평범해 보이는 화자의 시선이 닿는 곳과 사람들이 결코 범상하지 않다. 일상이 비일상으로 변하는 것은 이웃들에 의해서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럭키슈퍼>는 동네 구멍가게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동시에 그 시절 그 공간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밑바닥부터 보여준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위조밖에 없다. 그것이 성공할지는 둘째 문제고 말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많이 곤혹스러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문장들이 불쑥 나오면서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이나 가족관계는 보이지 않고 병들거나 지리멸멸하다. <흑문조>의 부부가 늙으면 <북쪽 방> 노부부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되고, <룸미러> 속 아내의 불안이 <내 비밀스런 이웃들>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하다. 어쩌면 이런 연결이 억지일지 모른다. 현실을 뒤흔들고 뛰어넘은 장면들과 묘사가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김숨이란 작가에 대해 그 어떤 평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잠시 유보하고 다른 소설을 몇 권 더 읽고 판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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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인생 여행
대니 월러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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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른이라는 나이에 사람들이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다. 나의 서른이 한참 지난 후 후배 하나가 고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노래를 부르며 감상에 젖어있었다. 근데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감상이 아닌 모양이다. 영화 <파니핑크>에서 여주인공은 스물아홉 살이라고 외치며 우울해하였다. 그리고 <예스맨>의 작가인 대니 월러스가 서른이 된다는 것을 가지고 아주 긴 이야기를 한다. 그의 글을 보면서 나이 서른이 정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은 큰 의미없다다. 다만 육체의 노후가 조금 빨라진다는 것을 제외하고.

작가의 전작을 읽지 않을 상태에서 그에 대해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책 속 그의 생활을 보면 일반적인 삶을 살지는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삶은 매일 출퇴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직 퀴즈쇼 진행자였던 그는 엑스박스로 게임을 하고 집안 정리와 수선을 하면서 보낸다. 그의 생활이 살짝 부럽다. 이런 생활 속에 그의 서른 번째 생일이 다가온다. 그보다 먼저 서른이라는 나이와 어른이 된다는 생각이 먼저 다가온다. 결혼 후 먹는 것도 바뀌고, 다른 아이의 대부모 요청을 받는다. 기존 삶의 방식이 뒤흔들리고 있다. 이런 시기에 친한 친구 둘이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이제 그는 어린애 같은 삶에서 변신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그 첫 걸음으로 초등학교 친구를 찾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친구 찾기 하면 옛날에 열풍이었던 아이러브스쿨이란 사이트가 먼저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아 가입하지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만났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나라만 이런 것이 아닌 모양인데 작가도 한 번 시도해봤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열광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시 사이트에 자신의 정보를 수정하면서 그들과의 연락을 바라는데 쉽지 않다. 이제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자료와 정보와 인맥을 가지고 그 시절 친구를 찾기 시작한다. 물론 이렇게 친구 찾기에 빠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물건을 거의 버리지 않는 엄마가 그에게 보낸 상자들 속 편지와 추억들 때문이다.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 금방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의문이 그렇게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연락처를 찾고, 방문하는 순간 어릴 때 그 모습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행운일 수도 있지만 사전에 연락을 했기에 그럴 것이다. 오랜만의 만남에서 그들이 잠시 멈칫하다가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냥 길에서 스쳐지나갔다면 그냥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만 남았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그가 서른 살을 맞이하기 위해 이런 계획을 세우고 한 명씩 주소록을 갱신하는 과정은 어떻게 보면 추억여행이고, 또 다르게 보면 성장여행이다. 현재의 삶과 환경을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성장을 거부하는 어린 아이 같다. 다른 곳에서 다른 성장을 겪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어릴 때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에게 변화를 강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만남이 추억과 헤어진 후의 삶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고 해도 말이다. 어느 순간 계획이 목표에서 집착으로 변하고, 어느 순간은 그 목적을 상실할 때도 있지만 그의 주변에는 좋은 아내와 친구가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열아홉 시간을 날아가거나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으로 가기도 한다. 이런 여행을 보면서 시간과 금전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 듯한 그에게 부러움을 먼저 느낀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마음먹은 대로 옮기는 실천력이다. 시간제한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인터넷과 과거를 뒤져 기필코 찾으려는 노력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 그는 서른이라는 나이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이런 친구 찾기를 통해 한 가지 배운다. 지루하다고 했던 것이나 주변에 늘 그냥 있는 것들에게서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일상이 의미를 가지고 가족, 건강, 친구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소중한 옛 친구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가 인생 여행으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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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현태준 그림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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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 자신이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금방 주변에 나만큼 읽는 직장 동료가 보였다. 그후 백수로 살면서 그때보다 몇 배로 읽으면서 이제는! 하고 생각했다. 이런 조그마한 자부심이 깨지는 데는 불과 몇 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 북카페를 통해 나보다 더 고수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책을 한 권씩 모으는 습관이 심해진 것도 그때인데 몇몇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보다 많은 책을 가진 사람이 없을 것이란 착각이 깨어진 것도 바로 그때다. 또 나와는 달리 잘 정리된 책장과 책들을 보면서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책중독자의 고백에서 시작하여 치유하기 까지 모두 열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나보다 훨씬 더 중증인데 공감하는 부분을 처음부터 발견했다. 그것은 똑같은 책을 사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말이다. 가끔 산 것을 잊고 다시 산 책이 발견될 때면 좁은 집 공간을 생각하며 왜 샀지 생각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인 책 더미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이전에 읽은 책을 찾으려고 몇 시간을 뒤지다 포기하고 직장동료에게 빌린 적이 있다. 어느 날 책 더미가 무너져 정리하다 그 책을 발견하고 황당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책중독자 테스트를 해보면 상당히 중증으로 나온다. 사실이다. 집에 쌓여 있는 책 더미들에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이 수십 수백 권 있지만 새로 나오면 또 산다. 서점에서 받은 마일리지가 쌓여가면서 또 한 번씩 정리하며 산다. 이벤트가 벌어지면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산다. 반값행사를 하기에 마일리지 소진을 위해 목록을 보았는데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책들 중 가지고 있는 책이 더 많다. 혹시 또 같은 책을 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도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주문한다. 읽는 것은 나중이고 할인과 이벤트에 그냥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전혀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이유로 산다. 이유는 ‘언젠가 읽겠지’다. 

책중독 중에 다행스러운 것은 희귀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책 상태가 좋은 것을 선호하지만 초판본이나 희귀본을 특별히 수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덜하지만 이전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장소는 꼭 서점이었고, 새로운 동네에 가면 헌책방을 둘러보았다. 싸게 나온 책 중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있다면 득템했다는 기쁨에 젖었고, 들고 간 가방만으로 부족해서 끈으로 묶어 들고 오기도 한다. 서점의 할인코너나 정액코너는 잠시 고민에 빠지게 하지만 지갑을 열게 한다. 언젠가 볼 것이란 이유로 말이다. 좁아지는 공간과 점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책구입을 생각하면 가끔은 희귀본으로 한정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뭐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내 손에서 책이 떨어진 적이 없다.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나 화장실에 갈 때면 늘 손에 한 권의 책이 있다. 혹시 들고 다니던 책을 다 읽게 되면 불안해하고 혹시 그때 누군가의 집에 있다면 그 책장의 책을 뽑아서 읽는다. 두 권을 들고 다니면서 읽으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책의 무게와 새로운 책을 사 넣어야 하는 공간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읽을 순서를 정해놓고 있기에 읽던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중이라면 다르지만. 언젠가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깨어나 심심해서 끄집어낸 책에 빠져 정신없이 읽은 적도 있다. 당연히 빌려서 그 날이었나 그 다음날 다 읽었다. 다른 친구에게 추천했는데 재미없었다고 한다. 

이전에 사진으로 지하실 공간을 책으로 가득 채운 사람들의 서재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나의 가슴 속에 그런 공간에 대한 열정과 열망이 샘솟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런 공간을 좋아하는 짝을 만나기도 힘들고, 그런 공간을 만들만큼의 재력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책들을 보고 너무 많다고 버리라고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요즘 e-북이 많이 나오는데 공간을 위해서 갈아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다. 예전에 업무 시간 중 시간이 남아서 다운 받아보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역시 손에 들고 읽는 맛이 아직은 좋다. 서점을 가면 수없이 많은 책들 사이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다행인 것은 역시 돈 부족이다. 공간 부족이다. 이렇게 나의 책중독 이야기는 간략하게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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