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마이 로마이 1 테르마이 로마이 1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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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의 삶은 목욕이 아닌 샤워로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히 욕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공간이 비좁다는 이유로 철거하고 샤워 꼭지만 달아둔다. 이렇게 된 데는 점점 높아지는 주택비와 그와 비례해서 좁아지는 주거 공간이 가장 큰 이유다. 물론 그 이전의 삶을 보면 샤워 시설이나 욕조를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가 조금 생겼을 때 욕조는 당연한 필수품처럼 여겼다. 매주 목욕탕을 갔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그 속에서 몸을 불리고 때를 가끔 밀었다. 때를 밀지 않더라도 따뜻한 욕조에서 누리는 안락함과 나른함은 그 날의 피로를 충분히 풀어줄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여행이나 출장 중 몸이 피곤하면 호텔 욕조에 물을 받아둔 후 그 속에 잠긴다.

왜 목욕이야기냐고? 바로 이 만화가 목욕탕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테르마이는 고대 로마의 공중목욕탕이다. 유적과 사서를 통해 우리는 고대 로마의 목욕탕에 대한 기록을 많이 만난다. 또 그들이 얼마나 목욕탕을 좋아했는지도. 그냥 이런 사실만 가지고 재미난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만약 고대 로마의 목욕탕 설계기사가 현대 일본으로 타임슬립한다면 어떨까? 그 당시 제국 신민의 자부심으로 가득한 그가 현대 일본 목욕탕이 가진 특별함과 장점을 모방한다면 어떨까? 이런 설정을 가지고 목욕탕과 관련된 이야기를 작가는 재미나게 풀어낸다.

첫 장면은 목욕탕 설계기사 루시우스가 고대 그리스 방식의 테르마이를 설계했다가 짤리는 것이다. 고객들이 바라는 것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실망한 그가 친구와 목욕탕에 갔다가 우연히 현대 일본 목욕탕 속으로 타임슬립한다. 목욕탕에 그려진 후지 산은 폼베이의 베수비우스 산으로 착각하고, 욕탕에서 나온 후 마신 과일음료의 맛에 반한다. 그가 처음 본 일본사람을 평면족 노예로 생각한 것은 그 당시 로마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런 자부심은 평면족 노예가 보여준 놀라운 목욕탕 관련 문화와 장비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진다. 

이후 에피소드들도 기존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루시우스가 하나의 의뢰를 받고, 고민하다 타임슬립하여 간 일본의 목욕탕에서 그 해법을 찾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과연 몇 화가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한 회 한 회 보면서 어쩌면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현재 우리의 목욕 문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작가가 이런 기발한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 일본의 온천문화를 경험했고, 이탈리아 거주경력과 이탈리아인 남편을 둔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로마 시대 이런 목욕탕을 지을 정도의 과학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수로에 관한 그들의 유적은 현대인들도 감탄할 정도다. 거기에 로마 제국을 건설한 후 엄청난 부로 인해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사치스러운 목욕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화산의 발달로 온천문화가 발단한 일본의 목욕탕과 제국 건설 후 목욕탕을 지어 대중들에게 개방한 로마의 결합은 사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단순한 오락거리로도 재미있지만 목욕 문화와 목욕도구와 시설 등의 세부적인 사항과 내용들이 그것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리고 오늘날 유럽의 온천지대가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변했다는 지적은 로마 시대 목욕탕의 개방과 대조를 이룬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현재 자본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이런 것보다 더 기대되는 것은 역시 루시우스가 현대 일본에서 과연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서 고대 로마에 적용할 것인가다. 그리고 그를 버리고 떠난 아내를 다시 데리고 올 비책도. 단순히 목욕 판타지로 읽어도 좋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목욕 문화와 정치와 경제 등도 함께 생각한다면 더 많은 재미를 누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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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아저씨 제르맹
마리 사빈 로제 지음, 이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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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설이다. 제르맹의 행동과 심리 묘사를 통해 마흔다섯 살의 노총각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성장에는 아담한 할머니 마르게리트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들의 만남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진지함과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특히 그녀가 제르맹을 대할 때 그의 약간 모자라는 지능을 전혀 무시하지 않고 진지함과 친절함으로 다가가는 모습은 우리가 평소 잊고 있던 삶의 기본자세다. 큰 감동은 없지만 조용히 조용히 가슴 한 곳에서 여운과 감동을 키워준다.

첫 장면에서 마르게리트 입양을 마음먹었다고 했을 때 그녀가 아기나 아이인 줄 알았다. 바로 다음 문장에서 그녀가 여든여섯 살이라고 했을 때 의아했다. 그것이 가능한가 하고. 하지만 제르맹에게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마르게리트와의 만남과 우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이 만남을 통해 인생이 어떻게 변했는지 들려줄 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특히 한 권의 책으로 그 만남을 시작할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책이 카뮈의 <페스트>이기 때문이다.

원제는 <미개발>이라고 한다. 제목만 놓고 보면 토건 관련 소설인가 싶다. 하지만 내용을 찬찬히 읽으면 제르맹의 개발되지 않은 지능임을 알게 된다. 이 미개발지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마르게리트다. 어린 시절 억압된 기억은 그로 하여금 글과 멀어지게 만들었고, 자라면서 단 한 권의 책도 읽은 적이 없다. 그는 189센티미터 키에 110킬로그램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외모는 아담한 마르게리트와 묘하게 어울리는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지능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마르게리트는 종자학 박사 출신으로 교양이 충만한 반면 제르맹은 거의 일자무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울리지 않는 조건들과 달리 그들이 우정을 쌓게 되는 데는 책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그녀가 카뮈의 <페스트> 중 한 문장을 읽어줄 때는 더욱. 그녀는 책 전체를 읽어주지 않고 선별해서 몇 줄만 읽어줬다. 그런데 이 문장 속 이야기가 제르맹의 관심을 끈다. 그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사실 지엽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책과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마르게리트와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우정을 쌓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만남을 통해 아주 조금 늦은 지적 성장을 경험하고 삶을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마르게리트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을 한다면 그의 친구들과 여자친구는 과거와 현재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속어와 욕설과 음담패설이 난무하고 너무 노골적인 표현들로 그의 내면을 드러낸다. 이 대비되는 두 장면을 통해 성장하고 변하는 제르맹을 보여주게 되고, 그에게 다가온 행복을 함께 느끼게 만든다. 또 그가 마르게리트가 읽어주는 책에서 자신이 읽는 것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책의 의미와 가장 기본적인 책읽기 자세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온 책 중 읽은 책이 단 한 권이란 사실에 즐거움과 아쉬움을 느낀다. 즐거움은 당연히 이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고, 아쉬움은 왜 아직 읽지 않았나와 과연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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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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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나오키 상 수상작이다. 이전까지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들은 모두 미스터리였다. 그래서 당연히 이번 소설도 미스터리로 생각했다. 책 소개를 읽으면서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하다보니 심한 착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아버지를 죽음으로 몬 암이라는 병에서 게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집게발로 엄마의 애인을 해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는 문장에서 선입견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선입견을 빨리 떨어내었어야 하는데 요즘 복잡한 마음과 피곤한 몸 때문에 계속 머릿속에 쥐고 있었다. 덕분에 이 책이 지닌 재미와 가치를 완전히 누리지 못했다. 빠르게 읽기는 했지만.

할아버지 쇼죠와 신이치가 밥상에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범해 보이는 가정의 풍경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없다. 아버지는 일 년 전 암으로 죽었다. 이 풍경 뒤에 있는 엄마의 다른 모습을 신이치는 낮에 봤다. 다른 남자와 함께 차에 앉아 있었고, 키스를 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겨우 일 년 전 아버지를 잃은 아이에게 이 장면은 너무 가혹하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 하는 아이에게 이런 환경은 적응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아버지의 실직 때문에 이사를 하면서 제대로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있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전학 온 하루야를 제외하면 말이다.

엄마의 밀애 장면을 보게 된 것도 하루야와 놀 던 중이었다. 둘은 바닷가에 조그마한 수제 통발을 놓아두고 여기에 잡힌 고기들을 가지고 논다. 작은 물고기, 조그만 새우, 게, 멸치 따위가 잡히는 통발이다. 그날 여기 잡힌 소라게를 보고 하루야가 말한다. 불로 지지자고. 그 당시는 단순한 놀이였다. 이 두 소년이 할아버지와 함께 신사를 다녀온 후 장난처럼 소라게를 소라검으로 부르고, 지지는 행위를 통해 소원을 빈다. 이 소원은 처음에는 아주 자그마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소원이 이루어지자 더 큰 바람을 가지게 된다. 이 소원은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들이다. 이 변화를 통해 소년들은 성장하고 그들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이 밖으로 드러난다.

신이치의 유일한 친구인 하루야의 가정은 평온하지 않다.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르고, 엄마는 이것을 전혀 막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루야에게도 신이치는 아주 특별하다. 전학 왔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감정적인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는 유일한 존재다. 신이치가 첫 번째 소원 성취하고 즐거워할 때 같이 있어주었고, 신이치의 책상 속 이상한 편지에 대한 상담역을 자처하면서 고민들 들어준 것도 그다. 하지만 이 소년의 이런 행위는 불안감에서 비롯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 어떤 평온을 가지지 못한 그였기에 신이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큰 것이다. 이 둘 사이에 나루미가 끼어들었을 때 그가 불안과 불편과 질투의 감정을 내비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나루미는 학교에서 엄청 인기 있는 여자 아이다. 왕따 같은 존재인 신이치와 그녀가 우연히 밤에 함께 걷게 된다. 간단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데 나루미의 가정사에는 한 가지 숨겨진 비밀이 있다. 그것은 할아버지 쇼조가 다리 하나를 잃은 사건과 관계있다. 그 사건 때 나루미의 엄마가 죽은 것이다. 비록 10년 전 사건이지만 엄마 없이 자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행동과 태도는 나무랄 데 없이 평화롭고 뛰어나다. 그녀가 신이치 등과 어울리고,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드러낼 때 아직 소녀임을 보여준다. 

이 세 아이들의 행동과 심리를 신이치 중심으로 풀어낸다. 그들의 현재와 과거가 밝은 미래를 낙관하기에는 너무 어둡다. 신이치와 나루미가 자신의 엄마, 아빠가 누군가를 사귄다는 사실을 알지만 숨기는 행동 속에 그들의 바람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바람이 더 과격한 것은 신이치다. 그것은 죽은 아버지와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고, 성장기에 엄마가 지닌 무게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좀더 무리하게 이 소설 속 인연을 삼각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 신이치와 엄마와 엄마의 밀애 대상이자 나루미의 아버지와의 관계, 나루미와 아빠와 신이치 엄마와의 관계, 신이치와 나루미와 하루야의 관계 등으로 말이다. 이 관계 속에서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고 악의를 품는 존재는 세 아이들이다. 이 세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는 과정을 담아낸 부분은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고, 그들의 감정을 숨기고 비튼 부분은 한 편의 추리소설로도 볼 수 있다. 마지막에 신이치가 우는 장면은 이 모든 감정을 씻어내는 것이자 조금 성장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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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와 함께 SF의 황금시대를 이끈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 세대우주선 SF의 고전으로 불리는 작품으로, 국내에서 처음 발간되는 정식 한국어판 완역본이다.  

요즘은 이전과 달리 장르문학에 올인하지 않지만 이전에는 미친 듯이 읽었다. 그중 한 장르인 sf문학은 상당히 귀한 편이었는데 하인라인의 작품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운 좋게도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어 그 재미를 만끽했는데 이 정식 완역본은 그 옛 추억을 되살려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인간과 개의 말을 알아듣는 우아한 고양이 마들렌 여사. 어른 세계에 호기심이 많은 초등학교 1학년 소녀 가노코. 그리고 오랫동안 가노코네 집 마당을 지켜온 늙은 개 겐자부로. 어느 봄날, 비를 피하려던 마들렌은 우연히 겐자부로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고 그들의 나른한 일상에 믿기 힘든 작은 기적이 찾아오는데… 

봄날의 백일몽처럼 아련하고 달콤한 일상 판타지의 세계란 말에서 그냥 빠지게 된다. 좋아하는 모리미 도미히코와 함께 ‘교토 2인방’으로 불린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그 동안 읽은 그의 작품들도 상당히 좋았다. 애묘가들에게 적극 추천한다고 했는데 고양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불안 요소다.  

 제115회 나오키상 수상작 <얼어붙은 송곳니>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작가 노나미 아사의 소설. '자백 받아내기의 달인'이라 불린 형사 도몬 코타로의 사건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쇼와40년(1965년)부터 60년(1985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중편 '낡은 부채', '다시 만날 그날까지', '돈부리 수사', '아메리카 연못'을 담은 연작 경찰소설이다.  

자백 받아내기의 달인은 과연 어떤 비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오랫만에 접하는 노나미 아사의 소설이란 점이 반갑다. 연작 경찰소설이란 점도 나의 취향과 맞아 떨어진다. 그녀의 특징인 심리묘사가 이번엔 어떤 재미를 줄지 기대된다. 

   

국내 첫 번역되는 조지 오웰의 장편소설. 조지 오웰은 작가로서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1936년을 거치며 그 이후 자신이 쓴 모든 글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라 술회한 바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러한 문학적 입장에 입각한 첫 소설 작품이자, 자신의 대표작 <1984>에 담긴 많은 문제 의식의 씨앗을 엿볼 수 있는 장편소설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조지 오웰의 작품인데. 중년의 뚱보 보험영업사원이 감행한 1주일간의 일탈 속에서 작가는 어떤 삼과 사회의 풍경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이번 소설이 다른 소설처럼 엄청난 상징과 은유 속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란 기대를 가져본다. 

 「시원의 책 The Books of beginning」3부작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으로 시간에 대한 마법이 깃든 지도책 ‘아틀라스’ 두고 삼남매가 펼치는 가슴 뜨거운 여정을 담고 있다. 2010년 볼로냐 북 페어를 가장 뜨겁게 달군 것은 물론,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미국 전역의 인디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시원의 책이다. 책에 대한 판타지란 점이 청소년물이라는 것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게 만든다. 다양한 사람들의 호평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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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트인 과학자 - 데이터 조각 따위는 흥미롭지 않아요. 특히 숫자!
랜디 올슨 지음, 윤용아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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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이력을 가진 저자다.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정년이 보장된 해양생물학 교수직을 그만 둔 후 남캘리포니아대학교(USC) 영화과에 입학했다. 말하기는 쉽지만 이런 안정된 직장과 직위를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적지 않은 나이에 말이다. 그럼 왜 그는 이런 행동을 했을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저자의 말에서 “대중과의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과학이 전문가와 과학자들끼리만 알아먹을 수 있는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님을 증명해주기를”(10쪽) 바라면서라고 말한다. 원제 ‘그런 과학자는 되지 말아요’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아주 가끔 과학서적을 읽는다. 거의 대부분 힘들게 읽었다. 저자들이 전혀 독자와 소통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서평을 보면 알기 쉽고 명확하다는 평들이 많지만 실제 일반 독자에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정말 아주 가끔 보게 되는 과학 다큐는 더 심하다. 순간 집중은 하지만 그 집중력이 계속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이런 현상에 대한 원인을 무조건 나에게서 찾았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저자 탓을 해도 될 것 같다. 과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그렇게 어려운지도.

부제를 보면 숫자가 흥미롭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숫자들과 그래프가 나열되면 경제학 전공인 나도 머리가 아프다. 전문용어나 약어가 남발할 때는 그 단어를 검색하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상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분야 종사자나 극소수의 일부만 그렇다. 이런 현실에서 누가 아주 쉽고 대중적인 과학 책을 쓴다면 어떨까? 아마 그를 뛰어난 과학자로 보지 않고 대중에 들러붙은 가벼운 과학자로 폄하할 것이다. 아니라고? 실제 대중적으로 엄청난 인기와 영향력을 보여줬던 칼 세이건의 사례로 알 수 있다. 연구 성과와 상관없이 그는 국립과학원에 들어가지 못했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그의 인기를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례를 읽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많은 이야기 중 예전에 과학자들은 대중의 관심을 받았는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정부 용역 등을 하면서 점점 멀어졌다고 지적하는 대목을 보면서 놀란다. 물론 텔레비전을 통해 새롭고 놀라운 과학 정보가 제공된다. 하지만 이 정보들은 극히 일부분이고 상업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다행인 것은 이 내용들은 비교적 쉽게 대중에게 다가간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발표가 돈이나 정지적 목적을 위해서란 것이다. 과학자의 표현을 빌리면 제대로 완전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낯익지 않는가. 불과 몇 년 전 한국을 휩쓸었던 사건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이다.

과학은 ‘아니다’에 핵심이 있다. “과학은 이미 정립된 요소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요소들을 걸러내는 학문”(185쪽)이라고 한다. 이런 특징은 그들을 비평적으로 만든다. 사실 이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문제는 그들이 자신들의 시선에서 과학을 설명하고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일반 사람들에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으면서 나도 수없이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머리와 복부에 대한 그의 설명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과학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을 개인에게 적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삶과 업무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자기계발서나 커뮤니케이션 책이었다면 조금 지루했을 텐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어 잘 읽힌다. 그가 만든 영화가 어떤 반응을 가져왔고, 그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려줄 때 과학뿐만 아니라 영화와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대중과 호흡하는 과학자가 되길 바란다. ‘그런’ 과학자가 되지 말고. 지나가듯이 간결하게 설명한 곳에서 드러나는 의미심장한 내용들은 광고나 홍보 등에 적용해도 될 것 같다. 그보다 가장 먼저 나부터 바꾸고 적용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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