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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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적으로 종교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게 된다. 좋은 일을 하는 종교인들도 보지만 언론이나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쁜 면을 부각시켜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인 종교관이 결코 좋게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종교의 긍정적인 면이나 위대한 부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편협한 종교인들의 말과 행동은 나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고 생각하고 느끼게 만든다. 결코 그것이 종교의 모든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던 중 이 책 저자에 대한 글을 읽고 목차를 보면서 나 자신의 종교관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결론부터 말하면 능력부족으로 제목처럼 심층을 보지는 못했다. 

“종교는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이 문장은 어릴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믿음이란 것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성의 영역이란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 알게 되었다. 특히 학창시절 종교를 두고 논쟁을 벌일 때면 늘 서로의 주장이 겉돌고는 했다. 이것은 둘 다 다른 곳을 보면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과학과 이성 등을 무기로 경전을 해석한 나와 이 모든 것을 역사이자 사실로 아니면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상대와의 대화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흔히 하는 말로 종교와 정치는 이야기하면 답이 없다는 말처럼. 하지만 이것은 두 사람의 종교관 차이도 있지만 이해의 폭과 깊이의 차이가 더 크게 작용했다. 이것을 알게 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단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다. 이것에 대한 대담집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가 이미 나와 있는데 나중에 읽을 예정이다. 이 둘의 차이에서 시작하여 심층 종교의 신비주의로 나간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우면서 종교의 발전에 필요한 단계로 저자는 말한다. 이 용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도를 높인 후 저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에서 시작하여 현대 한국의 두 철학자로 이어지는 긴 종교 여행을 떠난다. 많은 인물들이 낯익지만 낯선 이름도 적지 않다. 편협한 교육과 특정 종교인의 세계로 나아간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지만 이 낯설음이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 것은 사실이다.

다루어지는 종교인의 숫자만 단순히 보아도 그리스도인이 가장 많다.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어떤 기준에서 이런 분배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정말 낯선 종교의 선각자를 제외하면 그리스도교 선각자 중에서도 낯선 인물이 곳곳에 보인다. 비종교인이거나 그 종교에 관심이 없다면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인이 적은 것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아쉬움을 넘어가면 나 자신이 잘 몰랐던 종교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재미이자 가치는 이런 인물들에게 있지 않나 생각한다. 각 종교 선각자들의 주장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해설과 더불어 말이다.

한국 종교의 한탄과 걱정에서 시작한 이 책이 다른 영성가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는 깨달음은 우리의 나아갈 바를 잘 보여준다. 물론 이 영성가, 선각자 모두가 한 시대나 종교 그 자체를 모두 바꿀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깨달음과 실천이 가슴과 머리에 많은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신문 연재라는 특성 때문에 가끔 중복되는 내용이 나오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이 하나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나의 지식과 깨달음이 부족하여 그 진수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소화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의 분발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리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동아시아의 사상가들, 인도의 영성가들, 불교, 한국 등에 대한 핵심 정보다. 각 개별로 들어갔을 때 이 종교들이 어떤 내용인지 핵심을 집어주지만 결국 개인의 노력과 깨달음이 핵심이다. 늘 마찬가지지만 좋은 책들은 새로운 책들을 읽게 만든다. 비록 나 자신이 종교는 없지만 그들이 깨달은 세계의 한 조각이나마 얻기 위해 책을 읽고 명상에 잠기고 느끼고 경험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식의 확대가 아닌 지혜의 깊이를 더 많이 얻고, 마음속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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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게임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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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부 3년생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이 소설에서 말하는 콜드 게임이 야구 용어(called game)가 아닐까 미리 짐작했다. 그런데 다 읽고 난 후 맞는지 원제목을 확인하니 다른 콜드 게임(cold game)이다. 야구에서 콜드 게임은 운동경기에서 일몰, 폭우, 분쟁 등의 이유로 심판이 경기종료를 선언하는 것이고, 소설 제목인 콜드 게임은 부정직한 카드 또는 주사위 게임이란 의미다. 하지만 다른 의미의 두 용어가 한글의 똑같은 발음 속에서 겹쳐 보이는 것은 역시 고등학교 야구 선수가 주인공이고, 그들이 지닌 한계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는 조금 다르게 일본의 3학년들은 여름이 끝나면 운동부에서 은퇴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가을부터는 2학년들이 주축이 되는 모양이다. 뭐 정확한 것은 팀 내부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본 만화나 드라마나 소설에서 자주 만나는 3학년 대부분이 그렇다. 고시엔을 꿈꾸며 야구에 열정을 태우던 와타나베 미츠야도 지역 예선 탈락으로 야구부를 은퇴한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중학교 단짝이었던 료타에게서 연락이 온다. 아주 급하게 만날 일이 있다고. 평소 이런 메일을 보내지 않는 료타의 성격을 생각하면 낯설다. 하지만 이 만남이 앞으로 펼쳐질 사건의 원인과 진행을 알리는 시발점이 된다.

청춘 미스터리라고 분류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왕따다. 왕따라는 사회문제가 늘 다루어지고 있지만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고, 많은 작가들이 이 소재로 소설을 썼다. 다른 서평에서도 말했듯이 나의 과거가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미츠야의 행동과 비슷하거나 가해자였기에 너무 쉽게 잊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늘 그렇지만 당하는 사람에게 이 문제는 결코 쉽게 잊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그 왕따가 더 길고 더 잔인하고 더 폭력적이고 더 무신경할수록 강하게 오랫동안 몸속에 기억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고 평생 두려움과 아픔과 공포로 남기도 한다.

처음 미츠야가 료타를 만났을 때 그 당시 반 친구들의 사건들은 그냥 귀찮은 일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왕따의 대상이었던 토로요시, 본명 히로요시 다케시 이야기가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히로키의 쇄골 골절 사건이나 칸노 아오이의 과거사 전단지 사건과 시노부에게 온 협박 메일 등이 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료타의 부탁이니 주변 친구에게 혹시 비슷한 사건이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 당시 반 친구들 주변에 이상한 사건들이 많이 생긴다. 토로요시가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것 같은 분위기다. 이때만 해도 이 둘은 학창시절 있었던 왕따에 대한 단순하고 조금 위협적인 보복 정도로 생각했다. 이 둘과 함께 기타중학 방위대를 구성했던 시미즈가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왕따 당하던 소년이 복수한다는 내용인데 누구의 시점이냐에 따라 독자의 감정이입이 달라진다. 만약 토로요시의 시점에서 차근차근 복수를 준비한다면 통쾌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최고 가해자 료타의 친구이자 당시 방관자였던 미츠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 시점의 변화는 대단히 큰 차이를 보여준다. 비록 미츠야가 한때 왕따의 대상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가 어느 정도 왕따 학생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말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도 왕따 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방관자로 남았다는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부모 모임에서 한 어머니가 왕따 당하는 학생이 문제라고 말했다가 그 모임에서 왕따 당했다는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또 4년 전 가해자였던 친구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는 장면은 이 문제가 두 입장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곳곳에 함정을 파놓고 독자가 착각하게 만든다. 범인이 다른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하면 다른 사건을 만들어 시선을 돌려놓는다. 좋다. 이 소설에서 누가 범인인지 중요하지 않기에 그렇다. 물론 이 과정이 빠지면 너무 무거운 소설이 된다. 그래서 미츠야를 중심으로 뭉친 학생들을 등장시켜 탐정놀이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토로요시가 어떤 집단 괴롭힘을 당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현재 그때와 비슷한 공격을 받게함으로써 문제의 심각성을 약하게 만든다. 하지만 복수의 광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경찰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이 직접 해결하려는 의도도 역시 찬성할 만하지 않다. 그 이유는 경찰을 통하면 그들이 과거 히로요시에게 가한 왕따 문제가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과거의 왕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청춘미스터리라는 말처럼 젊음이 곳곳에 넘쳐난다. 학생들의 두려움, 진로문제, 과거의 서열, 치기, 만용 등. 기타중학 방위대는 확신을 가지고 히로요시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의 복수를 막으려는 노력한다. 이 노력은 공권력을 불신하는 불량학생의 단순한 마음도 있지만 역시 자신들의 과거사 때문이다. 문제를 예상외로 쉽게 풀 수 있는데 고등학생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 역시 그들의 용기와 만용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마지막에 의지하는 것이 경찰이라는 것은 현실적 대안이 없다는 것도 있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뭐 소설 속 료타의 말처럼 그들이 진지하게 상대해줄 때 이야기지만. 속도감 있게 왕따 문제를 재미있게 의미심장하게 녹여내었다. 마지막 반전은 조금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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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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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읽은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최초 전작 장편소설이었는데 이 작품 <낯익은 세상>도 생애 최초 전작 장편소설이다. 두 거장이 처음으로 전작 장편을 썼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비슷한 제목으로 책을 내놓았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낯익은’이란 단어는 똑같지만 두 거장이 현재 바라다보는 곳은 다르다. 최인호가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서 자기 내면으로 파고들어갔다면 황석영은 낯익은 세상의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이 두 노장의 시도를 정확하게 가름하기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반갑고 즐거운 일이란 것이다.

낯익은 세상에서 다루어지는 시공간은 1980년대 초 난지도다. 시간은 딱부리 최정호의 아버지가 삼청교육대로 잡혀간 사실로, 장소는 쓰레기 매립지라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작가가 이 시공간을 배경으로 쓰게 된 데는 작가의 말에서 “모든 것을 쓸어버린 뒤의 폐허에 남아 있는 연민을 위한 것”이란 것으로 알 수 있다. 노년 문학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치열한 전위를 멀리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몇 년 전 갑자기 이명박을 칭찬하고 함께 했던 그가 떠오른 것은 왜 일까? 

그 옛날 가장 앞에서 낮은 곳에서 세상을 함께 보던 그다. 이번 소설도 그런 곳에서 시작한다. 꽃섬이란 예쁜 이름 뒤에는 쓰레기 매립지라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장소가 숨겨져 있다. 이제는 난지도라는 이름보다 하늘정원이니 발전소 등으로 바뀌어 예전의 더러운 모습이 사라졌지만 희미한 기억 속에 그곳이 아직도 뚜렷하게 생각난다. 그리고 얼마 전 동남아나 인도나 중남미 국가의 쓰레기 산을 본 것이 같이 떠올랐다. 그때 나의 반응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떻게 저런 데서 살 수 있지’ 하고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빼빼 마른 가족들의 처참한 생활을 보고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자마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2~30년 전 서울 난지도에서 그와 별다른 차이 없는 삶을 산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고 변하는 한국 현실에서 아름답지 못한 과거가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지워져 있었다. 이것을 보면 그 옛날 민주투사로 불렸던 사람들의 변심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생각도 동조할 생각도 없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가계를 책임지고 있던 가장이 사라지면 남은 가족들의 삶은 힘들어진다. 먹고 살기 위해 은밀한 유혹이 담긴 것을 알지만 이사를 한다. 그래서 딱부리와 엄마가 가게 된 곳이 꽃섬이다. 이 모자를 데리고 간 인물의 얼굴에 검은 반점이 크게 있는데 이 때문에 딱부리는 그를 아수라라고 부른다. 마징가Z에 나오는 악당이다. 그는 꽃섬 매립지에서 쓰레기차가 들어오면 그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차지할 권리를 가진 반장이다. 지금이야 아파트 등에서 분리수거를 잘 해서 쉽게 실어갈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분리수거가 없던 때다. 그러니 잘만 건지면 먹고 재활용할 것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어디서 오는 쓰레기냐에 따라 권리금이나 하루벌이가 달라진다. 당연히 최고는 미군부대고, 부자 동네일수록 높다.

이런 환경 속에서 딱부리는 아수라반장의 아들 땜통과 친해진다. 약간 어눌해 보이지만 그가 데리고 다니면서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딱부리는 한 수 접어준다. 낯선 환경에서 땜통이 보여준 풍경과 만남이 아이의 상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특이 빼빼엄마와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빼빼엄마는 이 소설 다른 사람들처럼 본명으로 불리지 않는다. 늙은 치와와 빼빼를 키우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데 신기가 살짝 있다. 어떻게 보면 미친 것이지만 그녀의 몸은 귀신이 잠시 들어왔다가 머물다 간다. 여기에 예전에 꽃섬에 살았던 귀신 가족을 등장시켜 쓰레기 섬 그 이전의 아름다웠던 꽃섬을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파괴하고 잊고 있던 세계와 현실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지금은 점점 사라지고 파괴되고 있지만.

80년대 도시 하층민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말한다. 빼빼엄마가 꽃섬에 큰 불이 난 후 못쓰는 물건들을 소중하게 감춰두고 쓰레기장 물건들은 버리면서 하는 말이 강하게 와 닿는다. “저것들은 사람들이 정을 준 게 아니잖아!”(225쪽) 아무리 좋고 깨끗한 것이라도 사람들의 정이 담겨 있지 않은 물건은 그냥 쓰레기일 뿐이다. 이것은 그 쓰임새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과도 연결할 수 있는데 그것은 너무 나간 것이고, 점점 각박해지고 매정해지는 소비적인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분명히 낯익은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각자의 욕망은 점점 더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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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아래
야쿠마루 가쿠 지음, 양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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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당했다. 책 중반 이후 ‘범인은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났다. 작가가 교묘하게 삽입한 문장 때문에 홀딱 속은 것이다. 이런 반전은 사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단지 이 반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의문만 있을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문은 반전 그 자체가 아니라 과연 이 상황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이런 의문이 더 드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미소와 더불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야쿠마루 가쿠. 그의 첫 작품이자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인 <천사의 나이프>만 읽었다. 이 작품도 소년 범죄에 대해 독자에게 과연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묻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번은 소아성애 성범죄와 살인이 그 대상이다. 점점 흉악해지고 잔인해지는 소년 범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것처럼 이 작품도 과연 성범죄자들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묻는다. 아니 묻기보다 오히려 연쇄살인자를 등장시키고 이 인물에 동조하는 사람을 보여주면서 피해자 가족이 느끼는 분노를 극대화시켰다. 이성은 반대를 하지만 감성은 어느 정도 동조하게 구성한 것이다. 특히 형사 중 한 명을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으로 설정하면서 이 감성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사건에 느끼는 무력감을 삽입하여 이런 감정을 더 고조시킨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사건을 좇는 형사들이 한 무리를 이룬다면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가 다른 한 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형사들 중 두 명이 그 중심에 있다. 한 명은 살해당한 성범죄자의 살인자를 쫓는 무라카미고, 다른 한 명은 어릴 때 여동생을 성범죄자에게 살해당한 적이 있는 형사 나가세다. 나가세가 담당하던 사건은 어린 소녀가 납치되어 살해당한 사건이다. 이 둘은 나중에 한 팀을 이룬다. 이 둘의 만남을 통해 뭔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것 같다. 사실 이 둘의 결합을 통해 다섯 살 딸을 둔 형사와 피해자 가족인 형사의 내면과 갈등을 더 많이 보기를 바랐다. 그런데 너무 간결하고 빠르게 진행되면서 그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속도감은 충분히 주었지만 문제의식과 논쟁거리를 많은 부분 삭제한 느낌이다.

상송. 이 소설 속 연쇄살인마의 별명이다. 자신이 먼저 그렇게 불렀지만 극장형 범죄로 만들면서 그 이름은 너무나도 유명해졌다. 작가가 깔아놓은 몇 가지 장치 중 하나가 바로 연쇄살인자의 일상이다. 이 일상을 통해 그가 느끼는 불안과 분노와 공포가 잘 드러난다.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귀여운 다섯 살 딸을 둔 아버지의 모습은 그런 분위기를 더 고조시킨다. 반면에 그를 쫓는 형사 무라카미의 심리를 충분히 다루지 않음으로써 딸 둔 아버지의 다른 감정을 차단한다. 개인적으로 나가세가 느끼는 감정과 또 다른 고민과 갈등이 무라카미를 통해 드러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범인과 형사의 같은 고민과 걱정이 다른 입장과 철학으로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 보여줬으면 한 것이다. 

처녀작에 비해 문제의식이 조금 약한 것 같다. 강도는 더 세지고, 범죄는 더 흉악해졌지만 이런 종류의 사건에 대한 공감대와 해결에 대한 쟁점 사항이 부족하다. 피해자 가족들을 통해 살인자의 행동에 대한 감정을 잘 드러내었지만 고민의 흔적은 얕다. 너무 일방적인 부분도 있어 그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고뇌가 충분히 살아있지 못하다. 그리고 왜 그가 이런 살인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마지막 장면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약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단순한 추리소설로 반전이 주는 재미만 생각한다면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을지 모르지만 사회파 추리소설로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는 부분에서는 역시 아쉽다. 종장을 보고난 후 이 소설을 읽은 독자 사이에 많은 의견이 나오고 논쟁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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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일들
신재형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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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스릴러 소설을 읽었다. 범죄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다년간 취재한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이 돋보인다. 한국형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지만 기존에 본 한국 스릴러 소설들보다 나아 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진행과 결말은 예전에 읽었던 한국 추리소설의 한계를 조금은 벗어던진 것 같다.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을 수 있어 더 간결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연쇄살인범 유기훈의 프로파일링과 정보를 강의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최재준 형사의 강의가 끝난 후 새로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강의를 들은 소위 높은 분들이 그에게 식사 초대를 한다. 사건을 핑계되고 눈치를 받으면서 현장으로 달려간다. 이때 한 노인이 현장으로 달려가려는 최 형사에게 한 마디 한다. “흔한 일들에 연연하면 형사 생활 오래 못 해요.”라고. 이 장면을 통해 그의 아슬아슬한 정신세계의 일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도착한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보광동 모녀 살인 사건은 앞으로 벌어질 연쇄살인사건의 시발점이 된다.

이 소설은 기존 연쇄살인범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의 공식을 상당히 많이 따른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다음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고, 범죄 현장은 깨끗하게 정리된다. 증거는 단순히 형사들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기 위해 남겨진 것이고, 진범은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형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현장을 수사하고 주변을 탐문하면서 수집된 증거를 분석하는 것이다. 과학수사와 법의학적 정보들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 범인이 있으면 소용이 없다. 이미 그 유명한 미국 과학수사물 CSI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는가. 형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하면서 실수하기를 기다리거나 남겨진 증거나 상황들을 통해 하나의 범인상을 만드는 것이다. 

최 형사는 서울청 프로파일러다. 현장에 남겨진 증거를 통해 범인상을 만드는 것이 그의 직업이다. 하지만 이 직업이 쉬울 리가 없다. 끔찍한 현장을 계속해서 봐야 하고 범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참혹한 현장을 재구성하고 앞으로 펼칠 살인을 상상해야 한다. 이것도 단서와 증거가 충분히 늘어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사건이 늘어나면 심리적 부담감과 스트레스도 더 강해진다. 모녀 살인이 그 아버지 살인으로 이어지고, 또 다른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면서 경찰과 최 형사를 비롯한 팀의 업무는 과부하가 걸린다. 특히 최 형사는 더 심해진다. 여기서 첫 살인사건의 강력한 용의자인 차아령의 등장은 또 다른 참혹한 연쇄살인사건 속으로 독자를 데리고 들어간다.

가독성과 더불어 사건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피살자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재구성하는 장면이나 혈흔의 모양 등은 참혹한 현장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감정이입을 차단했다. 덕분에 더 빠르게 읽을 수 있었고, 감정 소모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 형사의 감정이 과도하게 분출되면서 충분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끔찍한 현장이 최 형사의 감정에 파묻히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이런 미묘한 균형감이 뒤로 가면서 사실성을 떨어트리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 대결에서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마 군더더기 없는 진행과 결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건과 사건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그 이외의 재미가 보이지 않는다. 같이 등장하는 형사들의 캐릭터가 분명한 윤곽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차아령의 심리를 좀더 세밀하고 깊게 다룬다거나 최 형사의 복잡하고 어두운 심리를 더 자세히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이런 추가 작업이 작품 전체의 균형을 깨트린다는 생각을 작가가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본 수많은 한국형 스릴러가 감정의 남발이나 반전에 너무 신경을 써 아쉬움을 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살인사건을 한두 개 줄이고 등장인물들 내면을 더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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