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하는 운명 카드
윤현승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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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윤현승의 소설이다. 처음 만난 것이 <다크문>이었는데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그 당시 쏟아져 나온 수많은 판타지소설 중에서 특히 시선을 끈 몇 작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작가를 새롭게 평가하게 된 것은 역시 대표작인 <하얀 늑대들>이다. 그 당시 이 작품은 온라인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었다. 전작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호평을 생각할 때 그냥 지나가기 쉽지 않았다. 당연히 찾아 읽었고 그해 본 장르문학 중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 후 윤현승이란 이름은 나에게 각인되었고 출간되면 늘 관심을 가지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사놓고 읽지 못하는 작품들이 점점 늘어난다. 어쩔 수 없는 책 욕심이다. 수많은 책 중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가볍고 빠르게 읽기 위해서다. 요즘처럼 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는 시점에 딱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면 그 선택을 틀리지 않았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 커피숍에 앉아 단숨에 읽었다. 앞부분은 이 설정이 어딘가에서 본 듯하고, 한정된 공간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약간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지루함은 사라지고 몰입하게 되었다.

신용불량자 서른다섯 살 종민의 이야기다. 그가 일하는 곳은 주유소다. 이런 그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종민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이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할 제안을 한다. 그를 보낸 사람을 만나보라는 것이다. 그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간략하게 보여주면서 약간 고민을 한다. 말한 장소에 가니 그가 평소 바라던 아우디 R8가 있다. 이 차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차에 올라탄다. 그 남자는 안대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이 가는 곳을 모르게 하기 위해서다. 몇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그 이외에 네 명이 먼저 와 있다.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임을 암시한다. 

종민을 비롯한 다섯 명은 그곳에서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바로 운명을 거스르라는 것이다. 어떤 운명이냐고? 그것은 이 모임을 주재한 사람이 제시한 카드 속 문구가 지정하는 운명이다. 그리고 몇 가지 규칙을 말한다. 서로의 과거에 대해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카드를 보려고 하지 말고, 매일 세 끼의 식사와 매일 밤 포커를 해야 한다 같은 것이다. 종민이 선택한 카드는 누군가를 살해할 운명이다. 만약 일주일 동안 그가 누구도 죽이지 않는다면 카드에 적힌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어떻게 보면 너무 쉬운 운명이다. 하지만 이렇게 쉽다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어떤 식으로 그가 이 모든 난관을 돌파할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운명카드는 어떤 것인지도.

다섯 명 앞에 놓인 운명카드는 분명 하나의 미끼다. 이 게임을 마지막까지 탈락하지 않고 운명을 거스른다면 최소 20억 원을 가질 수 있다. 중간에 탈락자가 있다면 총 100억에서 남은 사람 수로 나눈 금액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최후의 한 사람이 남는다면 100억을 가질 수 있다. 종민이 가진 운명카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니 마지막까지 규칙을 지키면서 누군가를 죽이지만 않는다면 최소 20억을 가질 수 있다. 이 돈이면 그의 모든 빚을 갚고도 남는다. 너무 거스르기 쉬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바로 그 때문에 긴장감이 생긴다. 다른 누군가 반대되는 운명카드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온한 하루의 일상이 먼저 펼쳐진다. 사건의 조짐이 보이는 것은 밤에 펼쳐지는 포커판이다. 포커판은 첫날 이 장소에 온 모든 사람이 수고비 대신 받은 칩으로 이루어진다. 이 칩을 현금으로 바꿔 집으로 간다면 그냥 수천만 원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수십억의 유혹은 너무나도 강하다. 단순한 시간때우기 같았던 포커판에 변수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은 종민이 그냥 모두 잃기 위해 던진 패 때문에 생긴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운명은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의 숨겨진 과거와 연결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먼저 죽으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포커판을 제외하고 이어져오던 평화롭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작가는 이 지점을 계속 찌르고 파고든다. 

흔히 우리는 협력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 속에서도 서로 협력하면 충분한 금액을 서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서로의 운명카드가 무엇인지 모르고 자신들의 숨겨진 욕망이 자라면서 개인적으로 변해간다. 가장 먼저 탈락한 사람의 운명카드 내용이 드러날 때 왜 그렇게 악착같았는지 알게 되지만 뒤에 나오는 설명처럼 웃자란 욕망이 평온한 길을 용납하지 않는다. 거기에 이어지는 죽음은 긴장을 고조시키고 마지막 날까지 규칙을 지키며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누가 과연 살인자인지도 의문이 생기고, 변함없는 환경은 공포심을 유발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일본 만화 <도박묵시로 카이지>의 설정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 결말은 예상을 뒤엎었고, 몇 가지 추론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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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과 기도
시자키 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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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는 부분에 먼저 혹했다. 예전에 이우혁이 <퇴마록 - 세계편> 에서 이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적이 있다. 물론 판타지 소설에서 주목한 것은 세계 각지의 전설과 괴담이다. 각 나라의 풍경과 더불어 풀어낸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그곳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소설은 그것과 좀 다르다. 잡지사 기자 사이키를 등장시켜 낯선 풍경과 문화를 먼저 보여주고, 그 속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미묘한 서술 트릭을 사용하여 반전을 그려내는데 마지막 장면들은 긴 여운을 남긴다.

어떻게 보면 미스터리라고 할 수 없는 대목으로 가득한 단편들이다. 하지만 꼼꼼하게 그 상황들에 다가가면 사이키의 추리가 빚어내는 결과가 탐정의 그것과 닮아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그가 경찰이나 다른 조력자의 도움 없이 홀로 모든 사건을 마주하고 풀어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물론 이것은 그가 여행자로 방문한 장소가 과학수사를 진행할 여건이 전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사막 한 가운데, 밀림 깊은 곳 등이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것은 곧 한정된 사람들이 추리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외생변수가 전혀 없다는 전제 조건 아래에서 말이다.

<사막을 달리는 뱃길>은 사하라 오지에서 운반되는 암염을 운반하는 상인들을 다룬다. 이들은 사막을 달리는 배로 불리는 낙타를 타고 움직인다. 그런데 이 사막이라는 곳이 시시각각 바뀌는 지형 때문에 정해진 길이 없다. 상인들의 대장만이 이 길을 제대로 알고 있지 나머지 상인들은 몇 차례 온 것으로 이 길을 알 정도는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 발생하는 죽음들은 의문을 불러온다. 이 연속된 죽음 속에서 진실을 꿰뚫어보는 한 명이 있는데 그가 바로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사이키다. 인상적인 대목은 상인들이 암염 한 장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다면서 그 가격을 말하는 순간이다. 가격은 5달러다. 그가 얼마나 풍족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 말하는 순간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 단편은 제5회 미스터리즈! 신인상 수상작이다.

스페인으로 달려간 <하얀 거인>은 사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대목이 있다. 사쿠라의 여자 친구가 사라진 트릭이 바로 그 부분이다. 전설과 교묘하게 엮어놓았는데 트릭이 밝혀지는 순간 아! 하고 감탄하기보다 응? 이란 의문이 더 들었다. 여기도 미묘한 서술트릭이 들어있는데 앞부분을 세밀하게 읽어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풍차 전설에 대한 해설은 관광이나 필요에 의해 왜곡되고 날조되는 역사에 대한 일침이다. 지금도 많은 곳에서 이런 날조와 왜곡이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하면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 수 있다.

<얼어붙은 루시>는 낯선 러시아 정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 수녀원의 리자베타 님으로 불리는 시신을 시성하러 가는 일행에서 시작한다. 이 시신은 성녀로 불리는데 썩지 않고 생전의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이것을 정교 신부가 확인하러 간다. 신부와 사이키의 대화는 정교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대목이 많이 나오는데 낯설지만 유익하다. 그리고 앞의 이야기들과 달리 두 사람의 시점을 교차하면서 풀어낸다. 확인되지 않는 시체를 두고 벌어지는 추리와 어스스한 반전은 앞의 작품들과 다른 여운을 남긴다.

아마존 오지 소수민족이 사는 곳을 방문한 이야기가 <외침>이다. 데무니 족을 방문하기 위해 영국 의사 애슐리와 함께 간다. 힘겹게 방문한 그곳은 알 수 없는 병으로 부족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애슐리는 증상을 보고 에볼라 바이러스를 의심한다. 무시무시한 사망률을 보유하고 있고 영화 속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바이러스 말이다. 당연히 사이키도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다. 도움 요청이자 피난을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다리가 쏟아진 비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본 죽음은 살인의 흔적이다. 그냥 둬도 죽을 사람들인데 왜 이런 살인이 벌어질까? 관념은 이유를 찾아 움직이고 문화의 충돌은 새로운 곳으로 원인을 찾아간다. 

<기도>도 역시 조그만 서술트릭을 사용한다. 화자와 모리노의 정체가 그것이다. 중간중간 모리노가 말하는 이야기는 앞에 나온 단편들이다. 모리노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화자도 마찬가지다. 섬 속에 있는 동굴과 그 벽에 있는 그림들 이야기는 하나의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누구에게는 감옥이고, 누구에게는 그곳이 기도와 염원의 장소다. 중간에 살짝 끼어든 영상과 이미지는 이야기 구조와 엮이면서 새롭고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화자의 노트는 영화 <메멘토>의 흔적이 살짝 보인다. 과연 기억을 찾아낼까? 의문이 생기는 마지막 장면은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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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재발견 - 다산은 어떻게 조선 최고의 학술 그룹을 조직하고 운영했는가?
정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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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꼭 공부해야할 숙제와도 같았다. 학창시절 그의 <목민심서>를 사서 읽어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아직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소설 <목민심서>는 읽었지만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그 이후 계속해서 다산에 대한 글을 만나게 되었지만 왠지 모르게 제대로 그의 글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단편적인 시나 글을 읽을 기회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다산 지식 경영법>을 썼고, 다른 책들로 이름난 정민 선생의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다산 지식 경영법>을 샀지만 아직 읽지 않았고 저자의 다른 책도 몇 권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 기회는 소위 말하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였다. 하지만 책 내용은 나의 생각과 조금 달랐다.

기대했던 책 내용은 다산과 그의 저작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해석이다. 그런데 이 책은 “4년 넘게 몰입해온 다산 관련 논문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머리글로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 논문들이 다산 관련 자료의 새로운 발견과 발굴로 더 발전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 글들은 대중적인 부분이 상당히 부족하다. 다산의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지 모르지만 나처럼 입문하거나 좀더 쉬운 해설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다. 가장 쉽게 읽은 부분이 서설에서 다산의 자취를 찾아 헤맨 여정을 다룬 부분이었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 부분이 저자가 어떤 사연과 노력을 통해 다산의 새로운 부분을 발견했는지 알려주면서 관심을 끌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두꺼운 책의 재미를 알려주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부제로 ‘다산은 어떻게 조선 최고의 학술 그룹을 조직하고 운영했는가?’란 글이 나온다. 처음에는 그냥 무심코 봤다. 그런데 책 내용으로 들어가면서 다산의 수많은 저작들이 단순히 혼자만의 작품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제자들의 초서가 있었기에 가능하고, 그의 교학 방식과 맞춤형 교육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저서에 제자들의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에서 현대의 학자들이 제자나 타인의 논문을 빈번하게 도용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과 비교된다. 이 내용을 다룬 1부는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웠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새로운 자료 발견 등에 의한 논문 형식을 가지면서 딱딱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아쉬움이 있지만 말이다.

이어지는 논문들도 그냥 스치고 지나가기에는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와 관련된 서책과 편지와 시 등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한국 다도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초의 선사나 추사 김정희 같은 인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인물이 이 두꺼운 책의 중심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대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눈이 번쩍 떠이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또 불가와의 교유를 통해 조금은 색다른 다산의 모습을 보게 된다. 불교의 자료를 통해 다산초당의 사계와 일상을 엿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기존의 다산 이미지에서 진일보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3부로 와서는 다산의 공간 경영과 생활에 대해 다룬다. 이상주거론을 읽으면서 이런 집에 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주거 주변을 이용해 경제적 가치가 있는 활동을 펼친다는 내용에서는 왜 다산인가에 고개를 끄덕인다. 문장으로 된 다산초당의 모습을 머릿속에 재현하기는 사실 쉽지 않았지만 분명히 현재의 다산초당과는 다른 모습이었음을 알았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유적은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주고 역사와 인물을 이해하는데 방해만 될 뿐임을 다시금 느낀다. 강진에서 낳은 딸 이야기는 시대와 상관없이 그 흔적이 궁금해진다.

마지막은 다산의 글도 있지만 아들과 제자들의 글이 더 많이 다루어진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이인행과 남북학술논쟁인데 나의 생각과 공부 방식을 더 다듬을 필요를 느낀다. 뒤로 가면서 다산보다 관련자의 글로 다산의 삶과 흔적을 따라가게 되는데 조금은 밋밋하게 읽힌다. 하지만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물이나 유적이 시간의 흐름 속에 스러져갈 때 나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많은 부분에서 너무 심한 분석과 내용으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어떤 말을 덧불일까 고민된다. 지금 당장 이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조금 더 저자의 글이나 다산의 글을 읽는다면 더 깊고 넓은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한 것은 나에게 아직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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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조현 지음 / 민음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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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판타지의 외피를 뒤집어 쓴 시와 시인 이야기다. 물론 소설 전체에서 특정 시나 시인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각 단편에서 상위에 놓아두고 다루고 있는 것이 시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표제작<누구에게나 아무 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부터 시와 시인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마이클 햄버거라는 시인과 맥도날드의 마케팅이 결합되는 과정을 허구와 사실의 적절한 결합으로 풀어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읽게 되는데 중간부터 묘하게 뒤틀린다. 바로 상상력이 만들어낸 재미가 넘쳐나는 순간이다. 이것은 다른 작품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논문 같은 전개나 회고 등을 통해 사실처럼 풀어내다가 비약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이 소설 장르가 SF임을 알게 된다. 

시와 시인에 대한 고찰 혹은 가공의 사실을 집어넣은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은 T.S 엘리엇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놀라운 정보가 될 수 있다. 정밀하게 짜인 구성과 사실과 허구의 적절한 결합이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중간에 나오는 반전이다. <옛날 옛적 내가 초능력을 배울 때>는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공한다. 불가의 일체유심조를 떠올려주는 수련법이 상상력과 맞물려 돌아갈 때 그 힘을 발휘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흔히 영화나 만화 등에서 만나게 되는 초능력이 여기서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인들이 사물의 본질을 보고 상상력을 덧붙이는 것을 보여주면서 살짝 초능력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그 가능성이 꽃을 핀다면 화자의 열망도 이루어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생의 얼룩을 건너는 법, 혹은 시학>은 좀더 노골적으로 시인을 말한다. 은유의 의미를 말하면서 랭보를 끌어들여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어 나오는 <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는 시인을 등장시켜 노래하게 만들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현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상태로 전개한다. 소울마스터란 존재는 다음 단편 <돌고래 왈츠>에도 등장하는데 작가의 연작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탐색해본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SF소설에서 돌고래들이 우주선을 조종했던 것이 떠올랐는데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왈츠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음악이 중요한 장치인 것도 이 책에서 유일한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초설행>은 가공의 역사 속에 시인을 등장시켜 삶의 비극을 그려낸다. 인연도 사랑도 욕망도 사그라진 현실의 높은 벽은 안타까움만 가득하다.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좋다. 문장력이 있어 잘 읽힌다. 가끔 동일한 부사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의도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단편들을 통해 드러난 풍부하고 다양한 지식은 상상력과 만나 멋진 이야기로 탈바꿈하였다. 진지한 설명 뒤에 숨겨진 반전과 농담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고 장르를 확신하게 만든다. 기존 SF와 분명히 차별된 내용은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나 장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진중한 문장을 넘어 조용히 퍼져 나오는 미래 세계는 이 작가에 대한 호평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말해준다. 작품은 탁월한 거짓으로 가득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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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차일드
팀 보울러 지음, 나현영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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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소년이 길에 누워있다. 사방이 온통 잿빛이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그에게 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가 들리지만 말을 할 수 없다. 그 앞에 한 소녀의 영상이 보인다. 그런데 목소리와 영상이 일치하지 않는다. 아무런 고통이 없다. 그러다 한 단어를 내뱉는다. 소녀는 이 소리에 놀란다. 소년은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엄청난 고통이 생긴다. 그 소녀는 사라지고 구급차가 와서 그를 살린다. 이렇게 독자는 윌과 처음으로 만난다. 이 사고는 윌에게서 과거를 빼앗아가고, 그가 잊고 있던 과거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열다섯 살 소년이 기억을 잃어버렸다. 이 아이의 과거는 그가 집으로 가는 과정에 결코 순탄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윌의 부모는 기억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자기들을 엄마, 아빠로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윌은 이것을 허락한다. 집에 도착해서 마주한 자신의 방은 낯선 이미지와 그림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조그만 답을 얻는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은 결코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그의 환영과 말들이 그들을 두렵게 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다른 사람들을 불안과 두려움에 잠기게 했던 환영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윌에게 나타나는 한 소녀의 이미지와 그림자들은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의문을 품게 한다. 그가 살고 있는 마을에 뭔가 잘못된 일이 있다고 그가 말하지만 정확한 실체는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 자기만의 환상에 빠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그의 이야기도 다른 사람들에게 한 소년의 미친 짓 그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다 발생한 사건들 중 방랑 노숙자 크로의 죽음이 반전의 계기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정편의주의에 묻히고 만다. 윌이 본 환상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는 사람들과 그 환상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민하는 윌의 관계는 갈등을 만들어내고 해결책은 어떤 것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윌이 본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금방 짐작하게 만든다. 마을과 관련된 추악한 비밀은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그 실체가 벗겨진다. 하지만 드러난 실체 뒤에는 또 다른 숨겨진 비밀이 있다. 윌에 대한 정체불명의 사람들 공격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서, 그 자신도 그 환상의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의문과 호기심만 깊어질 뿐이다. 그 환상은 윌이 가진 능력 때문에 생긴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윌을 선택했을까? 윌 가족의 과거를 생각하면 윌의 능력이 먼저일 것 같다. 하지만 이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한 소년이 본 것을 환영으로 몰아가며 무시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의 반응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라도 누군가 이런 말을 외치고 다닌다면 그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정확한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한 소년의 환영을 믿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소년이 보는 환영과 그 이면에 숨겨진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이야기다. 환영과 소년의 교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왜일까 의문이 생긴다. 좀더 빨리 정확히 밝혀졌다면 윌의 고통이 좀더 줄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마을에 끔찍한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소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소설은 많이 생략했다. 윌이 지나갈 때 시선과 반응으로 한정시켜 그들과의 갈등을 고조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부모와의 갈등과 이해부족 등이 더 중심에 놓여있다. 윌을 노리는 정체불명의 사내들도 역시 사건의 중심에 있지만 윌의 부모나 경찰에게 환영으로 다가간 것은 예상외의 전개다. 오히려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환영의 정체에 대해 고민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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