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구하지 않는 여자 블루문클럽 Blue Moon Club
유시 아들레르 올센 지음, 서지희 옮김 / 살림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 혹은 자주 황당한 표지를 가진 좋은 작품을 만난다. 이번 소설도 그런 부류 중 하나다. 표지만 보면 질 낮은 판타지나 로맨스 소설 같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책에 다가 간다면 대부분 선택하지 않을 책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소설의 소개글이다. 2012 배리상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이란 문구와 '디파트먼트 Q'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란 구절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다 읽은 후 띠지를 보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영화화한다는 것도 보인다. 이런 화려한 이력에 비해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표지를 가졌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먼저 이런 아쉬움을 쓴 것은 표지 때문에 이 매력적인 작품을 놓칠 뻔했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의 아성을 위협한다는 광고는 이제 많은 북유럽 소설들에 늘 사용되는 문구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나에게는 아직 조금 부족해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별로란 것은 아니다. 재밌다. 다만 예상한 것과 좀 다른 설정과 전개로 조금 혼란스러웠고 여자가 보여준 놀라운 생존력과 자존감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보면서 <올드보이>가 연상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쩌면 이 작품이 더 강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수사관 칼 뫼르크와 시리아 출신 조수 아사드 콤비의 탄생부터 이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기존의 추리소설과 좀 다르다. 칼 뫼르크는 얼마 전에 있은 살인사건에서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냈고 다른 한 명은 전신마비로 병상에 누워있다. 그 당시 자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과 약간 비겁한 행동으로 그 상황을 풀어내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찰서 내부에서도 그는 좋은 동료가 되지 못한다. 그러다 미결사건을 다룰 특별수사반 Q로 발령난다. 이 발령은 그를 해고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 부서로 인한 예산 확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총격 사건으로 의욕을 잃은 그에게 이 부서는 딱이었다. 5년 전 사라진 메레테 륑고르 사건을 발견하기 전까지.

 

그냥 놀려고 온 부서지만 예산이 얼마나 배정되는지 알게 되면서 그는 조수를 요구한다. 이때 온 사람이 시리아 출신 아사드다. 그는 오자마자 사무실을 정리하고 파일을 제대로 배열한다. 몇 개는 꺼내어 읽어본다. 그러다 선택된 사건이 바로 메레테 륑고르 사건이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던 동생를 데리고 독일로 가는 배 위에서 실종된 것이다. 정치계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어디에서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 잊혀졌다. 그 실종이 자발적이지 않다면 바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소설의 중심에서 칼 뫼르크가 움직인다면 또 다른 축으로 메레테 륑고르가 과거부터 현재로 넘어온다. 이 두 사람과 시간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이 교차가 그녀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극한 상황에 처한 그녀의 현재가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설정 안에서 경찰질에 의욕을 잃은 칼 뫼르크가 조금씩 자신의 일에 다시 열정을 불태운다. 뭐 알고보면 실제 발로 뛰면서 중요한 단서를 물어오는 것은 아사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되고 단련된 형사의 힘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사실 이 두 콤비가 제대로 된 협력을 하는 것은 거의 뒤에 와서다. 그전에 의욕을 잃은 형사는 대충 사건을 둘러보고, 아사드는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로 등장해 가볍게만 보인다. 이런 두 사람이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뫼르크는 그 당시 사건 기록을 훑어보면서 부족하고 부실한 자료를 발견하고 사건에 의문을 품게 된다. 하나씩 조사할 때마다 드러나는 의문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계단처럼 보인다. 읽다 보면 작가가 깔아놓은 단서에 의해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지만.

 

사실 누가 범인인가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제목대로 자비를 구하지 않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그녀다. 기압 조절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는데 한 번은 빛으로 가득하고 어떤 기간은 어둠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 겨우 먹을 음식과 생리현상을 해결한 통 둘 만이 그녀와 함께 한다. 그 방 밖에는 그녀에게 음식 등을 주는 사람이 있지만. 이때 영화 <올드보이>가 연상되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그녀의 시간 속에서 과연 그녀가 살아남을까 하는 것은 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다.

 

읽으면서 손에 놓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형사들이라면 이런 실수도 하고 이렇게 범인에 다가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내부 알력과 비난에 찬 시선을 생각할 때 더욱 이런 생각이 강해졌다. 그가 느낀 죽음의 공포와 동료에 대해 가졌던 죄책감은 책 전체에 깔려 있는데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공감했다. 그리고 아사드의 존재는 해결되지 않은 몇 가지 사건과 그의 과거 등으로 인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만든다.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는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이야기가 만들어질지도 역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총통각하
배명훈 지음, 이강훈 그림 / 북하우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5년간 참 많이도 참았다!’ 이 문장을 읽고 즉시 떠오른 그분이 있다. 바로 각하다. 이 노골적인 광구 문구를 생각하고 읽은 연작소설은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풍자와 sf가 결합하면 어떤 식으로 풀려나오는지 알려준다. 배명훈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격하게 공감한 것이 처음 아닐까 생각한다. 웃음과 아! 상황을 이렇게 비틀어서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동시에 자아내었다. 물론 몇 편은 나의 부족한 지력으로 그 재미를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모두 10편이다. 첫 작품 <바이센테니얼 챈슬러>에서 시작해 <chanrge!>로 끝난다. 이 순서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바이센테니얼 챈슬러>가 동면 과학을 소재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charge!>는 중세 판타지 설정을 통해 진행된다. 미래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과거로 역행하는 듯한 구성인데 혹 과한 상상인지 모르겠지만 지나온 5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살짝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멋대로 상상해본다. <charge!>는 바로 앞의 두 편 <초록연필>과 <내년>과 더불어 총통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예언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초록연필>은 악에 대한 신선한 반전이 펼쳐지고, <내년>은 알 수 없는 미래에서 매번 반복되는 2012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문을 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세 편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charge!>다.

 

한때 진심으로 각하가 당선되면 다른 나라로 이민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소설 속 천재 주인공의 남편은 아내의 도움으로 동면을 선택한다. 그런데 각하의 임기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런 끔찍한 상황을 풍자와 유머로 풀어낸 작품이 바로 <바이센테니얼 챈슬러>다. <새벽의 습격>은 읽으면서 뭐지? 하는 기분이 먼저 들었다. 전쟁터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어떤 전쟁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 이 낙하산 부대의 정체가 드러난다. 상상력이 상황을 이런 식으로 풍자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그리고 ‘총통의 말에는 요지가 없었다.’(45쪽)고 말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에서 ‘지키려고 마음먹은 건 등 뒤에 두는 거구나.’(81쪽)하고 말할 때 이 땅의 군경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국민이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강하게 다시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 평범한 사실이 상황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발자국>은 실제 하지 않는 것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고 유지하려는 세력의 존재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의 이해력이 이 단편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공감하면서 읽은 단편은 <혁명이 끝났다고?>다. 주인공의 감정과 추억이 겹치고 현실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을 때 특히 그랬다. 이제는 486세대가 된 그들을 생각하면 더욱더.

 

<위대한 수습>은 좀더 노골적이다. 대운하를 중심에 놓고 있는데 말장난으로 시작한다. 절대권력 앞에 충심을 담은 직언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만든다. 파라면 파야지 하는 상황은 군대의 그것과 닮아 있고, 아무런 효용도 효율도 없는 작업은 좀더 노골적으로 다루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냉방노조 진압작전>은 은유와 풍자로 가득하다. 토론을 통해 얼음신의 축복을 받는다는 설정은 전횡과 획일과 독재로 진행되는 현실의 수많은 일들을 비틀고 있다. 토론이 가치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논쟁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효능을 보여주는지 알려줄 때 이때까지 놓치고 있던 재미가 살짝 다가온다.

 

가볍게 읽을 수 있고 풍자와 은유는 아는 만큼 보인다. 개인적으로 많이 알지 못해 그 재미를 완전하게 누리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상황을 비틀고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이것을 재해석했을 때 감탄하고 큰 재미를 누린다. 이제 그 5년이 끝나가고 새로운 5년이 한 달 뒤면 시작한다.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다시금 이런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실용과 문화를 말할 때 가슴 한 곳이 뜨끔했지만 지난 5년이 이런 실용조차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아픈 현실에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 5년 덕분에 이 책이 탄생했다는 것은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류연 2012-11-23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잘보고갑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 - 세계적인 인문학자가 밝히는 서구문화의 근원 10 그레이트 이펙트 2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김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읽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보거나 들은 것만으로 읽은 것 같은 책들 중 한 권이 바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부정확한 기억력에 의지하면 원작을 읽은 적은 없지만 요약본이나 이야기로 풀어낸 것을 읽은 것은 기억난다. 그것은 아마 <오디세이아>일 것이다. 학창시절 멋도 모르고 그냥 유명하다는 말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은 적 있다. 자랑처럼 말하지만 사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가끔 소설이나 다른 책에서 이 작품을 극찬하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면 늘 부럽고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이런 기억 속에 오디세이아는 남아 있지만 아킬레우스를 다루는 <일리아스>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아킬레스근을 말할 때를 제외하면 더욱.

 

망구엘의 책을 처음 읽는다. 그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조금 의외다. 세계적인 인문학자란 소개를 들었지만 왠지 손이 가질 않았다. 어려울 것이란 짐작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언젠가 꼭 한 번은 읽어야지 마음 먹고 있던 두 책에 대한 해설서란 것에 눈길이 갔다. 원작을 먼저 읽어야 하지만 출간된 책들을 보면 과연 어떤 책이 제대로 된 번역인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기대가 망구엘이란 유명한 인문학자를 통해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만든 모양이다. 그리고 소설처럼 번역된 책과 서사시로 번역된 것들로 나누어져 있는 현실을 생각하고 좀더 정확한 번역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뭐 이 시간에 책을 사서 읽으면 더 좋았겠지만.

 

호메로스 혹은 호머로 불리는 그(녀)에 대한 수많은 가정은 생략하자. 저자는 이 작품들이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문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이것을 맡겨두고 왜 이 책이 서양문학사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지 들어보자. 저자를 통해 흘러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와 자료는 지금까지 이 두 작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단숨에 깨트린다. 단순히 고전으로 알고 있던 이 작품들이 서양문학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는지 보여줄 때 감히 성서와 그리스 로마 신화 옆에 놓아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영향력 때문에 영국 출판사 애틀랜틱북스에서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의 세계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명저 10권 중 한 권으로 꼽은 모양이다. 참고로 <성서>와 <종의 기원>과 <꾸란>도 그 중 한 권이다.

 

모두 22장을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은 기본적으로 시간 순이다. 1장이 두 작품에 대한 줄거리를 다룬다면 2장은 호메로스의 실존을 묻는다. 이후 이어지는 각 장은 철학자, 시인, 기독교. 이슬람, 단테 등을 거쳐 현대까지 이른다. 이 과정 속에서 이 작품들이 어떻게 해석되어지고, 읽혔고, 영향력을 행사했고, 하고 있는지 하나씩 밝혀낸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 사실 이 작품에 대해 익숙하지도 않고 제대로 읽은 적도 없는 나에게는 너무 낯선 정보들이다. 단순히 정보만 나열된 것이 아니다. 시간과 인물들을 하나로 엮어서 분석하고 깊숙이 파고들어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이 정보와 지식은 너무 대단해서 나의 지력이 따라가질 못한다. 아쉽다.

 

하나의 좋은 작품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은 상당하다. 늘 그렇듯이 좋은 작품은 독자에 의해 다양하게 읽히고 분석되고 이해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중들에게 읽히는 것들은 충분히 납득할 자료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서양의 교육 과정 속에서 이 두 작품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게 될 때 이 이해도는 더욱 높아진다. 동시에 우리의 교육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어떤 문학과 함께 시작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전문적으로 파고들고 다양한 문헌을 인용하면서 나아가기에 좀 힘들게 읽었다. 많은 정보와 지식 덕분에 아직도 그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저자와 함께 이 시리즈에 관심이 간다. 나의 인식의 폭과 깊이를 더 넓고 깊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멸화 위원회 - 유령과 볼셰비키, 그리고 죽음을 극복하려는 이상한 시도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은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왜 이 속담이 생각났느냐 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의 저질 기억력이 맞다면 이때의 불멸은 명성이다. 그럼 이 책에서 다루는 불멸은 무얼까?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명성이 아니라 진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 속에 너무나도 불가능하고 덧없을 것 같은 이것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통해 불멸을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불멸화 위원회는 레닌 사후 레닌의 매장 절차를 담당하기 위해 조직되었던 장례위원회 이름이다. 불멸을 말하면서 왜 레닌이 나오냐고? 그것은 이 책 2장 다루는 건신주의자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죽음을 정복하려 한 사람들이란 의미의 그들 말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레닌과 스탈린 시대의 엄청난 학살과 숙청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에 놓여 있다. 읽으면서 옛날 학창시절 붉은 혁명 이후 러시아에 대한 환상을 품었던 학우와 선생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고 혁명을 맹신했는지 말이다. 또 그 시절의 참혹한 비극을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새발의 피임을 알게 되었다.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교차 통신, 2장은 건신주의자, 마지막 3장은 달콤한 필멸이다. 교차 통신은 유령과 나누는 대화를 의미한다. 이들이 꿈꾸는 것은 사후세계의 실존이다. 쉽게 우리의 개념으로 말하면 저승에서 이승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승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저승에 살아 있다는 의미다. 육체는 소멸했지만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천국을 말하며 불멸을 노래하는 것을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정확한 비유는 아니다. 그렇지만 도움은 된다.

 

유령과의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저자가 풀어내는 인문학적 통찰은 날카롭다. 유령과의 대화라고 단순히 미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세계를 탈주술화했다면, 과학만이 세계를 재주술화할 수 있을 것이다.”(33쪽)란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과학의 힘을 믿었고 과학적 증거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다윈 이후 진화라는 단어는 진보와 뒤섞여 사용되곤 했는데 이것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리가 흔히 진보라고 부르는 것 중 대다수는 우리의 바람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삶의 의미를 불멸에서 찾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과 교차 통신문이 지닌 의미를 분석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단순히 우리가 영화 속에서 재미로 봤던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려준다.

 

2장은 러시아로 무대가 옮겨간다. 핵심 인물은 고리키다. 그의 비서였던 모라다. H.G. 웰스다. 이들을 통해 20세 초 러시아의 상황과 불멸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 러시아 혁명의 기반이 영지주의의 한 분파란 설명에선 고개가 갸웃하지만 그들이 혁명의 달성 혹은 권력 쟁취를 위해 벌였던 어마어마한 숙청과 학살은 고개 숙이게 만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리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무참하게 깨졌다. 시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고 볼셰비키가 저지른 학살은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과학에 기댄 그들이 레닌의 사체를 보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가졌는지 보여줄 때 과학이 또 다른 신앙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는 인간 경험의 바뀌지 않는 특성들을 다루는 이야기이다.”(263쪽) 이 문장은 3장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불멸주의는 인간 소멸 프로그램이다. 자연스런 소멸 과정보다 더 완전하게 인간을 사라지게 하는 기획이다.”라고 할 때 인간과 불멸은 같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교차 통신을 통해 다른 세상에 사는 영혼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과 동일하고, 레닌처럼 보관된 사람이 다시 재생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닌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불멸의 정의로 “죽고 나면 이승에서건 다른 세상에서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데 있다.”(45쪽)고 말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세상을 다룬 판타지 소설 <펠릭스 캐스터> 시리즈를 참고한다면 과연 이런 불멸이 의미가 있을지 좀더 고민하게 될 것이다. 뭐 이때 부활한 자들은 좀비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트 LAST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 창작집단A.P 기획 / 애니북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넘긴 후 읽은 후기를 보니 영화 프로젝트를 감안하고 그린 만화다. 그래서인지 구성은 간결하고 속도감 있다. 실제 이 만화 설정을 제대로 다루려면 지금보다 몇 권은 더 늘이고 주인공의 특성을 좀더 살려야 한다. 이 부분이 많이 빠지면서 무력에 기대게 되고 조직 안의 순위 상승을 위한 대결이 중심에 놓인다. 이 때문에 ‘100억이 오가는 지하경제의 중심지’란 문구에서 기대한 것이 사라졌다. 그것은 주인공이 펀드매니저였던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펀드매니저 장태호는 조폭 돈 70억을 바탕으로 작전을 펼친다. 성공하면 대박이다. 작가는 이 작전이 펼쳐진다는 것만 알려준다.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세부적인 정보는 없다. 그리고 장태호에 집중한다. 그는 1등을 위해 살아왔고, 어느 정도 그것을 이루었다. 그가 이 작전의 성공을 자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그가 건 작전을 통해 또 다른 작전이 걸리면서 그는 무일푼이 된다. 성공의 가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이 추락이 그냥 돈을 잃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폭이 그냥 조폭이겠나. 그의 동료였고 여자친구의 오빠는 먼저 목을 메어 자살하고 그는 도망가다 잡혀 죽기 일보 직전이다. 겨우 도망가지만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달아날 때 가지고 있던 지갑 속 돈들도 3개월 만에 사라졌다. 배고픔이 찾아온다. 참을 수 없다. 집 밖으로 나온 짜장면 그릇의 단무지에 눈길이 간다. 또 다른 추락이 진행되었다. 그러다 본 것이 서울역의 무료 배급이다. 이제 그는 서울역 근처에서 흔히 보게 되는 노숙자 중 한 명이 된다.

 

이번 추락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서울역을 둘러싼 지하경제체계다. 폭력에 의해 순위가 정해지고 그 가장 위에 있는 인물이 모든 부를 독식하는 구조다. 그 돈은 소위 말하는 맹인이나 거지 등이 구걸해서 모든 돈이다. 더 심한 것은 장기 매매를 통해 얻은 수익이다. 이 100억이 장태호를 유혹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태호가 서열 6위를 때려눕힌 후 다가온 차해진이다. 이제부터 그는 100억을 얻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깨부수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물론 100억에 대한 수수료도 지불해야 하지만.

 

흔히 펀드매니저를 연상할 때 가장 떠오르는 지적이고 연약한 모습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적인 것은 그의 삶이 알려주지만 운동 등으로 다져진 체력은 연약함과 거리가 멀다. 서울역 노숙자들의 대형이 되었지만 겨우 서열 6위다. 100억으로 인생을 바로 잡으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1위와 만나야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바로 그를 만나기 위한 수련과 대결과 음모다. 그리고 그 속에 이 노숙자 세계로 내려온 사람들의 삶이다. 누구 한 명 사연 없는 사람 있냐고 할 때 그 사연 말이다. 그리고 서열 2위 류를 통해 싸움 실력을 키운다. 작전 성공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처음 지하경제 100억을 말했을 때 그 돈이 한 번에 흐르는 돈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그 돈은 서열 1위가 이제까지 모은 돈이다. 그는 만화 속 서울역 지하경제체계를 만든 인물이다. 처음에는 그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둠 속에 존재한다. 그러다 장태호의 서열이 올라가면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엄청난 파워와 공포를 다루면서 지하경제를 지배하는 어둠의 왕으로. 이제 주인공은 그의 이력 때문에 더 눈길을 받는다. 그 앞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작도 그의 이력과는 별 상관없이 진행된다. 이제 그는 조폭과도 같은 세계에 발을 담군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영화로서의 매력을 발휘하는 부분이지만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지점이다.

 

물론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작가는 섣부른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갑작스런 변화를 다루지 않는다. 장태호 인생에서 1등이 어떤 의미인지, 그가 거기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감성을 자극할 장면으로 역전을 만들 것 같은 순간에도 반전을 만든다. 모든 실패의 원인이 다른 작전이 아니라 그의 탐욕에서 비롯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욕망이 너무나도 강하게 표현될 때, 상황이 극에 달했을 때 이 반전은 그에게 무작정 감정이입하는 것을 차단한다. 그 흔한 할리우드 방식의 승리는 없어진다.

 

인터넷 만화들이 보여주는 역동성을 이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색이 주는 강력함과 감정과 액션을 통해 드러내는 연출은 시선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많지 않은 대사는 가독성을 높여 단숨에 세 권을 읽게 만든다. 개인적인 기대와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장 높이 오르려고 한 곳이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1위의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려줄 때도, 그가 이룬 부를 볼 때도 가슴 한 곳에는 그들은 지하 속에서 이전투구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돈은 엄청난 것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