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즈 웨이워드파인즈 시리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변용란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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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트윈픽스>를 좋아했다. 이 기이한 분위기의 미국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중단되었다. 영화로도 나왔지만 그 의문은 다 풀리지 않았다. 덕분에 그 드라마를 찍은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들을 열심히 보기는 했다. 뭔지도 모른 채. 갑자기 이런 글로 시작하는 것은 이 소설 속 분위기 중 일부분이 <트윈픽스>를 연상시켰고, 작가 자신도 후기에서 강한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트윈픽스>를 노골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가장 먼저 <트루먼 쇼>를 연상했을 것이다. 아닌가?

 

한 남자가 부상당한 몸으로 강에서 깬다.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 신분증도 지갑도 없다. 있다면 작은 스위스 군용 칼 하나 정도. 걸어서 마을 쪽으로 간다. 몇 가지 사실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정확한 것은 없다. 차 사고를 당한 것은 기억난다.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병원으로 가야 한다. 마을을 걷는다.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다. 갑자기 떠오른 단어 하나. MACK. 자신과 동료가 타고 있던 차를 덮친 차의 마크다. 사람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쓰러진다. 병원으로 옮겨진다. 하지만 이 병원 왠지 이상하다.

 

병원에서 기억을 되찾는다. 자신은 미합중국 비밀수사국 특수요원 에단이었다. 동료의 실종을 수사하기 위해 아이다 호 웨이워드파인즈라른 마을로 가던 중이었다. 차 사고가 났고 부상을 당했지만 아직 살아있다. 상사와 집에 연락을 하고 싶다. 번호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부상당한 몸이 정상이 아니다. 쉬고 싶다. 하지만 돈도 카드도 없다. 보안관 사무실도 가야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너무나도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 마을과 그의 모습이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다. 이상한 마을이다.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소설은 에단이 웨이워드파인즈 마을 속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한 과정을 그려내었다. 외부와 단절된 마을 속에서 밖으로 나가려는 그와 이를 막는 사람들의 대결이다.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베벌리라는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가 준 집 주소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동료였던 스톨링스의 시체다. 보안관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그 어떤 후속 조치도 없다. 그리고 차 사고가 났다는 것은 알지만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제대로 전해주지 않는다. 신분증이나 지갑을 줘도 될 텐데 자꾸 딴 소리를 한다. 수상한 행동이다.

 

에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도중에 그의 아내가 등장한다. 갑자기 사라진 그의 생사를 궁금해 하고 그리워한다. 비록 같은 요원과 바람을 피웠다고 해도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두 장면 속에서 시간이 살짝 엇나간다. 에단은 사고 후 며칠인데 아내 테레사는 1년 이상 지났다. 예상 가능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본다. 하나도 맞지 않는다. 이 시간 차이는 이 마을의 탄생과 운영에 관한 가장 큰 비밀을 담고 있다.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후반부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개인의 취향에 달렸다.

 

짧은 문장과 빠른 전개와 많은 장면 전환은 가독성을 높인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묘하게 엇나간 일상과 사람들의 반응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후반부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보여주는 살인은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어느 부분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산을 넘어 다른 도시로 이동하려는 그의 노력은 처절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은 가장 앞에 나온 인용구를 곱씹게 한다. 모든 것이 다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이 3부작 중 첫 권이라고 한다. 다른 두 권은 또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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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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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글을 참 오랜만에 읽었다. 가끔 그의 글을 마주하는 것은 대부분 인터넷 신문을 통해서다. 이때도 만나는 글들은 그의 SNS에 올라온 것을 옮겨 적은 것이다. 그의 활발한 사회 참여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그의 글을 읽게 된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더 좋아한다. 한때는 짧은 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그의 소설만 빌려서 읽은 적도 있다. 그 후 몇 년에 한 번씩 나오는 장편에 큰 갈증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나에게 소설 대신, 아니 더 자주 출간되는 이런 우화집은 사실 아쉬움 덩어리다. 소설을 한 편 더 써주면 좋을 텐데 하는 마음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실 이런 종류의 글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 너무 말랑말랑하고, 좀더 치열하게 살아야한다는 생각에 괜히 멀리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나이가 먹고, 세상을 조금더 알면서 이런 글들이 가슴 한 곳에 조용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마 이렇게 읽게 된 것이 고등학교 국어선생의 말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젊을 때는 시와 소설과 인문학 서적을, 나이가 든 후는 에세이 종류를 읽어야 한다는 그 말. 이 말이 금과옥조가 되어 책읽기에 빠진 나에게 유연성을 빼앗아갔다. 뭐 그 덕분에 다른 것을 배운 것도 많지만.

 

크게 다섯 장으로 나눠 놓았지만 읽다 보면 살짝 비슷한 내용도 나온다. 정확하게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당장 찾을 수 없다. 거의 300쪽 분량 속에 수많은 제목과 이야기를 간략하고 함축적으로 풀어내어 하나하나 대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이 부분은 패스. 하지만 이 감성우화는 머리와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해학과 유머로 가득하다. 그냥 읽으면서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근조근 그 문장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읽어야한다. 그래야 이 책의 재미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책 속에 밑줄치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상당히 많은 잉크가 사라져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스마트폰 사진으로 겨우 몇 장만 찍어놓았다. 겨우 몇 장인 것은 귀차니즘 탓이다.

 

풍자와 해학, 유머와 날 섰지만 은근한 비평 등은 나의 지식 한계 안에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말이 이 책 속에 그래도 적용된다. SNS로 정치, 사회, 문화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의 이력이 이 길지 않은 글들 속에 잔잔하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굴곡진 인생을 산 작가의 경험이나 통찰이 표현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곳에서는 웃음이 절로 터진다. 간결한 문장으로 삶의 경험들이 함축적으로 표현될 때 인상을 찌푸리고 집중한다. 그 의미를 좀더 깊이 되새겨보고 싶기 때문이다.

 

“뱀이 나타나 선악과를 따 먹으라고 유혹했을 때 한국 사람이었다면 하나님이 따 먹지 말라고 하셨던 선악과 대신 정력에 좋다는 뱀을 먼저 잡아먹지 않았을까.” 했을 때 웃음과 함께 우리 문화의 씁쓸함이 동시에 다가왔다. “24시간마다 한 번씩 묵은 날이 가고 새날이 온다. 하지만 자신이 새롭지 않으면 어떤 날이 와도 결코 새날이 아니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삶에 대한 통찰을 보았다.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젊었을 때 개고생을 많이 해서 비만 오면 뼈마디가 쑤신다. 자연과 한 몸이 되었다는 뜻일까.”라고 했을 때는 도가의 천인합일이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구나 생각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재밌는 풍자와 해학이 아닌가.

 

전체적으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며칠 동안 조금씩 읽었다. 좀더 곱씹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고 했을 때 아직 그 깊이를 이해하지 못해 아쉬웠고, 세월호 사건이나 표절, 자살, 정치 등의 문제로 옮겨갔을 때는 가슴 한 곳에 분노의 파편들이 들끓어 올랐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쌓이는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책에 실린 정태련 화가의 그림은 낯선 놀람을 전해준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모두 다른 물고기들이 세상을 헤엄치고 있었다. 그 세밀함과 자유로움은 글과 글 사이의 쉼터가 되었다. 어떨 때는 조용히 그림만 본다. 이 책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다. 존버다. 지금 병상에서 암과 싸우고 있는 작가가 존버정신으로 일어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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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없는 나무 1 단비청소년 문학 9
크리스 하워드 지음, 김선희 옮김 / 단비청소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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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묵시론적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세계는 나무나 풀 같은 자연물은 사라졌고,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옥수수만 존재한다. 이 옥수수는 유전자 조작으로 황무지 같이 척박한 이 세계에서도 잘 자란다. 그런데 이 옥수수는 젠텍에 의해서만 재배된다. 누군가가 옥수수를 무단으로 재배하다가 걸리면 젠텍의 요원들이 잡아간다. 현대 기업들이 아예 옥수수 알을 심어도 자라지 않게 조작한 것에 비하면 아주 착한 설정이다. 작가도 이 부분을 잘 알 텐데 왜 이런 설정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포식집단이 있다. 바로 메뚜기 떼다. 이 메뚜기 떼들은 사람부터 나무까지 모두 달려들어 먹어치운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는 이 위협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식량이다.

 

첫 시작은 한 소년, 반얀이 나무를 만들어주고 식량을 받기로 계약하는 장면이다. 이 식량은 당연히 옥수수다. 소년이 나무를 만든다고 했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나무는 제목처럼 뿌리가 없는 나무다. 즉 철이나 플라스틱 등을 이용해서 나무 모양을 만들 뿐이다. 사람들이 실제 나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시대에 이 뿌리 없는 나무는 부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품이다. 반얀은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이 나무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1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끌려가 사라졌고, 소년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려내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다보니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황무지 같은 분위기에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세계다. 옥수수로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하고, 옥수수를 튀겨 팝콘으로 만들어 먹는다. 계약의 대가도 역시 옥수수다. 반얀이 일하는 집에서 한 여인의 나신 속에 그려진 나무 문신은 집주인 프로스트가 바라는 나무 모양이다. 소년은 재료를 모으고 작업을 시작한다. 이때 이 집 아들과 딸처럼 보이는 소녀가 그의 곁으로 온다. 소녀가 가진 사진 속에서 나무와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렇게나 열심히 찾아다녔던 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단순히 한 소년이 디스토피아 세계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액션이 조금씩 늘어난다. 반얀은 프로스트가 나무를 찾아 떠난 후 그 집에서 식량을 챙기고, 프로스트의 아들 살과 함께 GPS를 구하기 위한 여행을 한다. 이때 옥수수 밭에서 한 무리의 해적들에게 잡힌다. 이들은 해적들의 교역대상으로 잡혔다. 이 시대는 사람이 하나의 식량으로 거래되기도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마지막 장면들을 위한 하나의 장치다. 그리고 이 해적 무리 속에서 한 소녀 알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빠르게 타오르지만 다른 적의 등장으로 제대로 성숙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

 

미래 디스토피아 세계 속에서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고찰이 이어질 것이란 나의 예상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사라졌다. 한편의 SF소설로 변했기 때문이다. 중반 이후 복제인간이 나오고, 거대한 옥수수 밭에서 액션이 펼쳐지고, 왜 메뚜기 떼들이 무서운지 섬뜩한 장면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설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느낌보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 같다. 이 낯선 등장은 갑작스러운 설정으로 이어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몰입도를 떨어트린다. 그리고 반얀의 친구 혹은 동료의 역할을 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죽는다. 가차 없이 진행된다. 살짝 놀란 대목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유기적이지 않다. 쉽게 몰입하지 못하게 한다. 작은 이야기에서 규모를 조금씩 키워나가는데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한 소년에게 너무 많은 행운과 기회가 찾아와서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한 편의 모험 소설로도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좀더 세밀하고 잘 짜인 구성과 설정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최근에 본 가장 최악의 분권이다. 한 권으로도 충분한 것을 무리하게 두 권으로 나눴다. 소재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그것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조금 아쉽다. 뿌리 없는 기계 등으로 만들어진 것도 과연 나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제 제목의 의미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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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모닝스
산제이 굽타 지음, 최필원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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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통의 호출 문자가 온다. ‘311. 6’ 이 문자가 호출기로 올 때 의사들은 긴장한다. 뭔가 사고가 생겼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문자의 의미는 월요일 새벽 6시 311호에서 모임이 있다는 통지다. 병원은 태생적으로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의사들은 그 사고 속에서 배우고 익히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사고를 낸 당사자는 이 호출문자가 좋을 리가 없다. 실수나 사고에 대해 다른 의사들의 질타와 비난을 견뎌야 하고, 자신도 언젠가 이 자리에 설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고나 실수는 병원의 절차나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소설은 한 명의 의사가 주인공이 아니다. 많은 의사들이 등장한다. 그들 모두가 실수를 한두 번씩 한다. 어떤 의사는 검사 하나를 놓쳐 죽음에 이르게 하고, 어떤 의사는 죽은 것으로 잘못 판단하여 장기 각출을 할 뻔한다. 또 누군가는 레지던트에게 믿고 맡겼다가 요리사의 후각를 마비시킨다. 누구보다 베테랑인 의사가 쉬운 수술을 실수해 환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실수들은 그 자신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다. 순간의 만용이, 아니면 믿음이, 아니면 편견이 실수를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을 여러 명의 의사들의 개성을 살리면서 빠르게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첫 시작은 응급실이지만 마지막은 외과수술실이다. 응급실에 한 번이라도 간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이 얼마나 정신없고 무력한지. 이 무력함은 바쁜 일정에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다가 생긴 일일수도 있지만 경험 부족도 한 몫 한다. 현대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의사들의 전문 분야는 더 세분화되고,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점점 더 작아진다.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지만 인간에 대해, 병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이전보다 더 작다. 물론 이런 의사가 있기에 환자들의 고통이나 상처 등이 줄어들고 사라진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작가는 이 한계와 실수를 중심으로 의사들의 세계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참 많이 나온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인 조지, 탁월한 외과수술 실력일 지닌 타이, 매력적인 외모에 한 명의 좋은 의사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티나, 무엇보다 일을 우선하면서 의사의 길을 강조하는 시드니, 부족한 영어 실력과 조직에 잘 동화되지 못하지만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한국인 성 박, 그리고 이 외과 의사들을 모두 총괄하는 하딩 등. 이들 모두가 한 명의 의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실수나 사고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뛰어난 의사지만 가정이나 연애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쉽게 생긴다. 그곳이 바로 병원이다. 이 병원의 이름은 첼시 제너럴이다.

 

“죽음과 합병증은 의사들의 숙적이다. 그리고 가끔 그것이 운명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나쁜 일은 선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의사들에게도 찾아들 수 있었다. 가끔은.” 이 문장은 타이가 실수했을 때 나온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의사도 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가는 의사도 있다. 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될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자살보다는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가는 의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하나의 조건을 붙이자면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한 명의 의사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의학의 현실을 표현하는 문장이 있다. “의술은 세 걸음 발전할 때마다 꼭 두 걸음씩 퇴보했다. 의학 지식의 한계는 엄청나게 방대했지만 그에 비해 의사들이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은 굉장히 미비한 수준이었다. 의사도 가끔은 그냥 물러서서 몸의 자연 치유 능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할 때가 있었다.” 이 문장은 이전까지 읽은 몇 권의 의학 서적에서 혹은 다큐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이 말을 신봉하는 것은 미개한 짓이다. 현대 의학의 엄청난 발전 중 하나가 외과 수술이고, 이로 인한 혜택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먼데이 모닝에 일어난 논쟁 중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수술 현장에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들어와서 수술을 도와주는 것이다. 찬성하는 의사들은 이들이 이 기계를 더 잘 알고 더 잘 다룰 수 있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 논쟁을 보면서 의사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사의 정신이 사라지고, 기능인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다. 표결의 결과는 그들이 계속해서 수술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표결의 뒤에 숨겨진 경제와 정치 논리는 우리로 하여금 의사를 점점 더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멋진 의사들이 있어 우린 그들을 믿고 병원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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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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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부서져 죽은 소녀 이야기다. 남자 친구가 한 말 때문에 심장이 말 그대로 부셔졌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란 말이다. 그녀의 죽음이 이해되지 않은 유명한 심장외과의사인 그녀의 아버지는 해부까지 했다. 정말 심장이 부서져 있었다. 이 말도 되지 않는 설정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한 소녀의 죽음과 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풀어낸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다. 이것은 또한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실제 이 다섯 단계는 스위스의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레르로스가 제사한 도식이다.

 

작가는 이 다섯 단계를 통해 사랑을 잃은 슬픔 때문에 죽은 소녀 브리의 성장을 보여준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부정하게 되는 그녀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사건 때문에 분노한다. 그 바탕에는 오해가 있다. 이 분노가 소녀의 마음을 집어삼켜버린다.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후회가 밀려오고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들 때문에 우울해진다. 이 과정을 극복한 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이 도식에 이야기를 집어넣은 듯하다. 가끔 미국 영화에서 본 사후의 주인공들 모습과 겹쳐진다. 마지막 해피엔딩은 당연한 결말이다. 솔직히 이런 과정이 너무 빤해 긴장감과 흥미를 떨어트린다.

 

흔한 구성과 빤한 전개지만 몇 가지 설정과 영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들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 첫 번째는 패트릭이다. 사후 세계에서 브리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그의 정체는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80년대 영화 <탑건>의 톰 크루즈 복장을 한 그에게 은연중에 끌리는 브리의 모습은 둘만의 로맨스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흔들리는 가족과 아빠의 외도, 가장 친했던 친구들의 모습과 오해는 가장 순수한 분노를 터트리게 한다. 여기에 살짝 끼어든 악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이때 작가는 제이컵의 숨겨진 진실을 끄집어내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설정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영혼이 현실 세계를 간섭하기 위해 보여주는 몇 가지 설정은 이미 영화 등에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마치 영화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이다. 작가의 문장과 표현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건을 만들지도 않고, 복잡한 사후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도 적지 않은 페이지를 빠르게 끌고 나간다. 십대 소녀의 감정 기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사춘기 소녀의 속내를 살짝 드러내면서 새로운 로맨스의 분위기를 풍겼다. 가장 나쁜 빤함인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같은 설정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두 개라는 설정은 쉽게 알 수 있는 미스터리지만 재미있었다.

 

십대를 지나온 지 오래되었고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한 나에게 이 소녀의 과장된 사랑이 그렇게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이 과장된 설정이 심하다고 느껴지지만 어쩌면 가장 순수한 감정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세파에 찌들고 순수함을 잃어버린 나에게 현실이란 높은 벽이 이 과장된 감정을 받아들일 공간을 조금도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그때는 심장이 부셔지는 듯한 아픔과 고통을 느꼈다. 만약 소설처럼 상심증후군이 생겨 심장이 부셔지는 일이 일어난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금도 사랑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심증후군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랑이 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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