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뉴스
안형준 지음 / 새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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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들이 기레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다. 교과서에서 봤던 언론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진실을 지키기 위한 기자들의 노력은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언론은 엄청난 퇴보를 했다. 늘 이런 현상의 선두에는 권력의 시녀가 된 그 무리의 일부가 있다. 이런 현상이 비단 기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예전 보았던 언론인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대담함과 끈질김과 뒤끝 있는 실행력은 오히려 이전 군사독재 시절을 능가한다. 이 소설은 그 시대를 겪은 기자들 삶의 일부를 빠르게 진행한다.

 

딥뉴스는 하나의 사건을 추적 보도하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 이름이다. 사회 곳곳에 자리 잡은 부정부패를 찾아내 집중 취재한 후 보도한다. 화려한 보도 이력은 그 프로그램이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원양어선에서 받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전화가 의미하는 바가 밝혀지는 것은 거의 끝 무렵이다. 그리고 파랑새라고 불리는 유흥업소로 장면이 바뀐다. 속칭 텐프로 룸살롱이다. 한 여기자가 위장취업해서 탈세한 부유층의 비리를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정보를 얻고, 이것이 나중에 하나의 큰 줄기로 바뀐다. 바로 대권유력후보인 조경혜 의원의 비밀 출산설이다. 출판사는 은연중에 조윤선, 나경원, 박근혜 이 세 사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알린다.

 

시사 고발 방송이 승승장구할 때 무엇이 방송될지 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정보다. 내부자가 흘리지 않는다면 알 수 없지만 어디에나 권력지향의 인물이 한 명씩 있다. 그리고 이 정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인물들은 그 대상의 수족이 된다. 아직 방송국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이라면 이런 시도가 어느 정도 막아지겠지만 독립성은 언제나 멀고 먼 일이다. 이들이 파고드는 소재가 현실과 더 밀착되고, 권력과 가까워질수록 반대쪽의 저항은 더 강하다. 결국 딥뉴스의 폐지가 결정되고, 그 프로그램에 소속되었던 기자들과 방송작가들은 흩어진다. 하지만 투철한 기자의식을 가진 이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앞부분이 딥뉴스의 성공을 다루면서 방송국 내부 권력 변화를 다루었다면 후반부는 한 정치인의 숨겨진 과거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바로 조경혜의 비밀출산이다. 개인사로 치부할 수 있는데 유력 정치인이다보니 문제가 된다. 흔히 말하는 검증이다. 여기에 최고위층의 비밀 쇼핑과 외환거래법 위반과 로비 등이 엮이면서 단순한 기사의 수준을 넘어선다. 후반부에 이것을 파헤치는 과정은 한 편의 멋진 스릴러 영화처럼 이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 쉽게 이루어진다. 정해진 수순을 따라 그대로 흘러간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의 말처럼 우주의 기운이 이들을 돕는 것처럼 보인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 시사 고발 이야기 속에 로맨스가 빠질 수 없다. 사내커플로 썸을 타는 두 기자가 나온다. 이세진과 김다혜다. 이들의 썸은 왠지 80년대 로맨스처럼 다가온다. 눈치를 보고, 감정을 알아채고, 관계의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하려는 모습이 요즘과 조금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쉽게 사귀고 헤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만 왠지 현실성이 없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반면에 해직방송기자의 삶을 다루고, 고뇌를 보여주고, 현실의 참담함을 드러낼 때 조금 더 깊이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떤 이유와 변명이 있었는지 등도.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많이 넣으려다보니 전체적으로 균형이 무너진 느낌이다. 재밌고, 빠르게 읽히지만 조직과 개인의 고뇌와 문제가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각 인물을 평면적으로 밖에 드러낼 수 없는 한계가 된다.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몰입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간결하고 빠른 전개와 사실을 많이 다루려고 한 부분은 지난 시간 동안 한 방송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어떻게 언론이 망가지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MBC의 숨겨진 이야기나 권력의 방송국 장악에 관심이 있다면 재밌는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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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당 사건수첩
정재한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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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를 떠올리는 것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가장 먼저 영화가 떠올랐다. 조금은 진부한 듯한 설정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함께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영상 이미지로 바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출판사가 추구하는 바와도 맞아떨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출판사에서 내는 책들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완성도와 별개로 재밌기 때문이다. 최소한 현재까지 나온 모든 책은 그랬다. 아마도 앞으로 나오는 책들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살리는 시리즈도 살짝 기대해본다.

 

박수무당 한준은 가짜다. 영적 능력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FBI도 탐내는 최고의 해커인 여동생 혜준이 있다. 그녀는 온라인으로 뚫지 못하는 사이트가 없다. 발로 뛰는 정보가 아니라면 그녀가 어디에서나 구해올 수 있다. 여기에 발로 뛰는 탄탄한 체구의 친구 수철이 가세하면서 이 미남당은 최고의 콤비를 이룬다. 한준의 용하다는 소문은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열심히 일하는 혜준과 수철이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한준의 멋진 연기와 리딩 기술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단순한 하나의 정보 서비스로 그칠 수밖에 없다.

 

한준이 가짜 무당으로 돈을 번다면 형사로 힘들게 뛰면서 범인을 잡는 여형사가 있다. 한때 파쿠르를 했던 여행사 예은이다. 한귀라고 불리는 그녀의 촉과 놀라운 운동 능력은 영상으로 만들어지면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될 것 같다. 서로 다른 이 무리가 하나로 엮이는 계기는 한준의 고객 한 명이 집에서 움직이는 이상한 물체가 있다고 하면서부터다. 귀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도둑 형제다. 그런데 이 형제가 숨어 있던 곳에서 불탄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에 실종신고되었던 강은혜다. 가짜 박수무당과 진짜 형사의 만남은 그냥 하나의 이벤트로 끝날 수 있지만 한 인물이 등장하면서 서로 엮이기 시작한다. 바로 재벌 3세 박진상이다.

 

박진상은 언론을 통해 만나는 흔한 찌질이 3세다. 스캔들을 만들고, 그룹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전형적인 캐릭터다. 이런 그에게 아버지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나를 만들어준다. 그렇게 연예인들과 놀았으니 이 사업이라도 잘 해보라고. 그리고 그 옆에 한 괴물 같은 인물을 붙여준다. 구태수다. 거인증을 앓고 있는 그는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신뢰하는 인물이다. 대한민국 1%가 믿는 임 고모라는 무당의 직속이다. 임 고모의 말이라면 아버지는 무조건 신뢰한다. 당연히 아들이 임 고모와 만나려고 하지만 구태수는 거절한다. 한 집안에 한 명만이 운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지만 다른 꼼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다른 용한 점쟁이를 찾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미남당 한준으로 달려간다.

 

한준은 재벌과 연결되어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다. 카드도 받지 않고 현찰을 선호하고, 굿으로 큰돈을 번다. 하지만 재벌이 한 번 내는 돈에 비하면 너무 적다. 박진상이 만나자고 했을 때 1주일 뒤로 예약 잡은 것은 영업상 목적 때문이다. 자료를 모아야 하니까. 이 의뢰가 큰돈을 벌게 해주지만 언제나 큰돈 옆에는 위험이 뒤따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시 한귀 예은과 만나게 된다. 그 연결 고리 중 하나가 강은혜와 구태수다. 서로의 같은 대상을 조사하지만 아직 정보과 제대로 교환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위험도 발생하고, 숨겨져 있던 새로운 사실들도 드러난다. 우리 사회 어둠의 한 단면이다

 

이 모든 과정은 빠르게 진행된다.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사건을 단순하게 처리했다. 곁가지를 많이 쳐낸 작품이다 보니 가독성이 좋다. 진도가 휙휙 나간다. 적절한 액션과 사회 문제를 같이 버무려놓았다. 작은 에피소드이지만 큰 줄기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설정들이다. 이 설정들이 지루함을 모르게 만든다. 어지간한 외국의 스릴러보다 낫다. 물론 너무 뻔한 설정과 전개가 예상되는 부분이 있지만 이것은 캐릭터의 힘으로 덮어진다. 시리즈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괜히 누가 이 역할들에 맞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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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잘 먹겠습니다 1~2 세트 - 전2권 여행, 잘 먹겠습니다
신예희 지음 / 이덴슬리벨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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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는 몰랐는데 다른 분의 서평과 검색을 통해 <여행자의 밥>의 개정판이란 사실을 알았다. 보통의 여행기라면 그냥 ‘그랬구나’ 할 수도 있지만 음식 여행기이다 보니 조금 신경이 쓰인다. 초판이 나온 2014년과 지금의 차이가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는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아주 반가웠던 국내편은 좀 더 많은 검색이 필요하다. 그곳들이 너무 많이 바뀌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지역들의 환경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방송 음식 프로그램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도 감안해야 할 부분이다.

 

해외편과 국내편으로 이루어진 이 두 권은 낯설음과 낯익음을 동시에 준다. 해외편에서 다룬 네 나라의 음식이 이제 그렇게 낯설지 않고, 국내편에서 다룬 지역들은 너무나도 많이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이다. 물론 해외 현지의 풍경과 삶은 아직도 낯설다. 얼마 전 다녀온 해외여행에서도 이 익숙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경험하지 않았던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삶의 풍경은 다른 여행지에서 본 덕분일 것이다. 얼핏 지나가듯이 볼 수밖에 없는 단기여행은 각 도시와 국가의 차이를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걸어서 동네 한 바퀴를 돌면 다른 삶이 보이지만 이 또한 피상적인 감상일 뿐이다. 하지만 이 책처럼 음식만 열심히 쫓아다닌다면 어떨까?

 

불가리아에서 시작하여 벨리즈로 끝나는 해외편은 꽤 많은 기억을 들추었다. 이 네 나라 모두 가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불가리아는 요구르트, 신장 위구르는 양고기, 한때 영국령 온두라스였던 벨리즈는 하바네로 때문일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호커 센터 때문이다. 이 음식들이 한국에 들어오거나 그 근처 국가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것이 기억속에 쌓여 있다가 책을 통해 하나씩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수많은 방송을 통해 이 나라와 비슷한 국가들의 음식과 문화를 봤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기억들은 열심히 먹고 다닌 저자의 깊은 공력 앞에 쉽게 허물어졌다. 더불어 나의 식욕을 마구마구 부채질했다.

 

여행기를 읽으면서 불가리아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 여행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 먹기 위해 떠나고 싶었다. 얼마 전 읽은 책 속 소피아가 떠오르면서 이 욕구는 더 커졌다. 터키와 함께 여행한다면 더 좋을 듯한데 현실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최근 방송에서 먹방으로 떠나는 신장위구르는 나의 상상력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준다. 낭에 붙은 시멘트나 딱딱함의 정도가 보는 것 이상인 것 같다. 몽고나 신장 지역을 다룬 여행 방송에서 본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나의 여행은 결코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못할 것이란 아쉬움을 느꼈다. 마나님이 허락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터키에서 양고기를 2주 정도 먹고 질렸다는 회사 동료의 이야기도 잠깐 스쳐갔다. 어린 양만 먹는 것이 아니라면 그럴지도.

 

말레이시아는 한때 쿠알라룸푸르에 관심을 둔 적이 있다. 싱가포르와 함께 갔다오는 일정이었다. 싱가포르는 다녀왔지만 쿠알라룸푸르는 못 갔는데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더 관심이 불탔다. 그리고 락사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는데 얼마전 방송한 <짠내투어>를 보고 나의 입맛이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락사 맛이 두 가지 있다고 했는데 먹어보지 못한 다른 맛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생겼다. 벨리즈의 음식은 그렇게 다양하지 않지만 그 고열량 음식에 한 번은 도전하고 싶다. 한때 이런 음식을 아주 좋아했던 적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새로운 정보 하나를 더 얻었는데 그것은 메노나이트다. 한 신부(메노 시몬스)의 신념을 따르는 이들이 전 세계에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해외편이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라면 국내편은 늘 다녔던 곳과 한 번은 스쳐지나간 곳들이다. 물론 내가 한참 다닐 때는 그곳들은 아직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다. 개인적으로 방송을 보고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가리봉동 연변 거리다. 지리적 위치 탓에 쉽게 가지 못한 곳인데 올해는 도전하고 싶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자주 가는 곳이고, 이태원은 다른 곳만 다녔다. 건대는 지금처럼 뜨기 전에 잠시 맛을 보았고, 광희동과 창신동은 이제 그냥 지나가는 곳이 되었다. 예전에 알았다면 혼자 열심히 돌아다녔을 텐데. 중국집하면 쉽게 인천 차이나타운을 떠올리는데 명동 중국대사관 근처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혜화동 필리핀 벼룩시장은 어딘가에서 본 듯하고, 주한 필리핀인들이 매주 모인다는 사실을 듣고도 잊고 있었다. 먹방 때문에 관심이 생긴 안산 다문화 거리와 시흥 정왕시장은 주말 나들이용으로 한 번 다녀오고 싶다. 현실적으로 해외편보다 국내편이 더 친숙하고 알기 쉬운 것은 지리적인 가까움과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 기분과 음식 욕심이 조금 더 오래 간다면 몇 곳은 올해 중에 다녀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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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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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이 맞다면 두 번째로 만나는 서경식의 책이다. 물론 읽지 않고 소장하고 있는 책은 이보다 더 많다. 지난 번에 읽었던 책은 서양음악이었는데 그가 풀어낸 이야기는 문외한인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루키나 다른 작가의 글 속에서 가끔 보았던 음악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 후 하루키의 음악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다른 부분을 엿보았다. 이 경험이 아직 나를 서양음악으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시장, 문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 문학 등이 얼마나 얕은지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서경식이란 단어를 연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프리모 레비다. 그가 쓴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았는데 책장에 꽃힌 책을 볼 때마다 읽어야지 다짐을 하게 된다. 뭐 10년이나 된 결심이다. 이렇게 밀린 책들의 거대한 탑을 생각하면 신간엔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왠 책 욕심은. 이 책 때문에 이번 책에서 그가 다시 만나게 된 프리모 레비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읽지도 않아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그 당시에 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읽었던 단 한 권의 레비 책 <이것이 인간인가>와 비교할 뿐이다. 그 무거움과 작은 희망과 새로운 사실들은 아우슈비츠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했다.

 

인문 기행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처럼 한 편의 기행문이다. 그가 거쳐간 도시들과 그 도시 속 미술, 음악, 문학 등을 차분히 풀어내는데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도 대조, 비교한다. 첫 방문이 아니기에 그때 놓친 것을 다시 보거나 그 당시 본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 긴 시간이 흐른 후 삶 속에서 배운 것들은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거나 더 깊은 곳까지 사유가 뻗어나간다. 이것은 같은 것을 보아도 그때의 감정이나 상황 등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또 하나 덧붙여야 할 것은 저자의 체력이다. 60이 훨씬 넘은 나이는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없게 한다. 나이에 맞는 속도가 있다. 글 속에서 자주 보이는 대목이다.

 

프리모 레비가 가장 궁금했지만 이 기행은 인문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이탈리아 문화 등이 녹아 있다. 로마에서 카라바조의 미술을 설명할 때 예전에 본 그림과 해석이 떠오르면서 조금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미켈란젤로를 설명할 때 생략된 부분들이 궁금했고, 이 위대한 화가의 작품 중 일부만 그의 해설을 듣는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아마 이 부분은 저자의 다른 책을 통해 채워야할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낯선 이름들이 보이는데 언제나 이들이 나의 인식 세계를 확장시켜준다. 잔 에뷔테른, 조르조 모란디, 마리노 마리니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까지 확장하면 더욱 넓고 많아진다. 욕심만 자꾸 커지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흔히 잘 인식하지 못하는 역사의 사실 중 하나가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다. 이 부분은 번역된 책의 양이나 질 등에서 프랑스 등에 비해 월등히 적은 것과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이었던 사실 때문일 것이다. 길다란 이탈리아 남북의 문제를 2차 대전의 종결과 함께 풀어낸 간략한 문장은 제3의 입장에서는 명쾌하지만 당사자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 더 많은 자료와 함께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 파르티잔들이 과거의 여행 속에서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때 강한 울림을 전달해주었다. 거창한 구호나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책 한 권이 궁금했는데 2년 전에 번역되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이다. 이유는 저자가 가장 재밌게 읽은 책 10권 한 권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이탈리아 문화를 이 책을 통해 만나면서 언젠가 가게 될 이탈리아 여행의 몇 가지 부분이 조금 바뀌었다. 단순히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알던 토리노 등이 새롭게 인식되었다. 쇼핑만 생각했던 밀라노도 마찬가지다. 볼로냐는 또 어떤가. 몇 개의 관광지와 몇 개의 미술관 등으로만 인식했던 이탈리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탈리아 작가와 문화를 더 공부하면 할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저자가 미켈란젤로에게 선입견을 가진 것처럼 나도 이탈리아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인문 기행과 같은 폭 넓고 깊이 있는 여행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다른 시선으로 이 나라를 돌아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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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떠나올 때 우리가 원했던 것
정은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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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로 찍고, 만년필로 스케치하는 여행자의 글과 사진과 그림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히 만년필로 그린 그림이고, 다음은 사진이다. 마지막으로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게 되는 글은 잘 정제되어 있다. 이 정제된 글은 차분하고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가끔 그 당시의 흥분이나 기분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주 열정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이 책에서 여행안내서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은 간단한 단상과 몇 장의 사진과 그림은 여행안내서보다 훨씬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우리를 유혹한다.

 

팟캐스트에서 그림이 여행을 좀더 세밀하게 보는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디지털카메라가 사진을 남발하면서 휙휙 스쳐지나가게 한다면 필름카메라는 셔트를 누르는데 좀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림은 그 풍경을 좀더 오랫동안 들여다보게 한다. 자신만의 그림으로 그린다고 해도 그 풍경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부분도 바로 이런 디테일이다. 선 하나 하나와 전화번호까지 그려진 그 그림은 정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여행의 속도와 함께 관점도 이제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한 장씩 넘기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사진과 글과 그림은 재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가 다닌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은 열정과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여행의 갈증을 지닌 나에게 ‘나는 언제나 가려나?’와 ‘가고 싶다’는 감정을 불러왔다. 이런 감정들은 언제나 여행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유럽과 미대륙과 아시아 등지를 돌아다닌 기록들이 한꺼번에 와 닿으면서 조금 더 늘었다. 특히 가까운 일본을 이렇게 디테일하게 들여다보았다는 것에서 이전에 읽은 에세이들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가까운 일본이라도 한 번 더 가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여행지에서 느낀 단상들은 정제된 문장으로 하나씩 풀려나온다. 화려하고 바쁘고 예쁘고 멋진 것만 추구하지 않고 느리고 게으른 것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여유가 있다. 자신이 여행자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즐길 때 그 여행은 좀더 여유가 생긴다. 여행자는 생활자와 다른 행동과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활자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시선과 속도를 맞춰야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찍고 그린 일본의 풍경은 낯설면서 동시에 낯익다. 낯선 것은 높이와 시야이고, 낯익은 것은 방송 등을 통해 본 그 장면이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대충 넘겨보면서 그 단상들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다른 책에서 읽은 것도 보이고,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말도 있지만 그가 느낀 여행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각 지역에 얽힌 간단한 에피소드도 나오고, 그가 발견한 소소한 장면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함께 나온 서울의 모습은 반갑고 낯익었다. 그의 작업실 풍경은 한때 나도 저런 공간을 가지고 싶어 했었던 모습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사진과 그림과 글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니라면. 방송 출연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웃음이 나오지만 방송작가들의 고된 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마 주변에 이 일을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곁에 있는 동반자의 존재는 읽는 내내 이 커플을 부러워하게 만들었다. 같은 감정과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 길고 많은 여행을 함께 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부러웠다. 그리고 해외여행만 다루고 있지 않아서 반가웠다. 아니 우리 주변을 둘러보고, 그곳을 기록할 때 내 삶이 여행의 한 부분임을 다시 깨닫는다. 정제된 문장 속에 담긴 수많은 사유와 이야기들은 한 번에 다 읽은 후 다시 넘겨보면 새롭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꽤 많다. 결론을 말하면 글을 잘 쓴다. 그림도 잘 그린다. 여행도 많이 다녔다. 부럽다. 그래도 나의 삶은 또 다른 곳을 여행하는 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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