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
윤영수 지음 / 열림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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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두툼한 책이다. 거기에 한쪽의 분량도 최근에 나오는 책들보다 많다. 한쪽 분량을 적게 편집한 책대로 하면 천 쪽도 넘을 것이다. 아마 최근에 읽은 한 권짜리 책 중에서 가장 두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통 이 정도 분량이면 일주일을 꼬박 읽어야 한다. 가독성이 좋다면 3~4일 정도 걸린다. 처음 며칠은 생소한 내용과 설정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해 지루했다. 실제로 이 책은 일주일 이상 걸렸고, 지루함 속에 다른 책도 두 권 정도 읽었다. 그러다 설정에 익숙해지고, 전개가 바뀌면서 가속도가 조금씩 붙었다.

 

한국형 판타지라는 말해 혹했다. 예전에 읽은 <착한 사람 문성현>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두툼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잘못된 선택이었다. 작가가 풀어내는 세계를 나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설정한 세계를 작가 자신도 제대로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작가 나름대로 단풍동과 다른 나라를 창조해내었지만 그 속에 풀어낸 이야기들과 충분히 어우러지는 느낌은 없다. 특히 단풍동의 풍경과 그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종족들은 초반에 이해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맑은이, 하얀이, 황인, 햇빛족, 땅옷족 등은 개별 설명이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에야 겨우 감을 잡았다.

 

검은머리짐승이 우리 기준에서 인간인데 이 세계에서는 짐승으로 불린다. 다른 세계로 떨어진 준호가 바로 검은머리짐승이다. 그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는 의사였다. 그것도 70대의 노인이었다. 보통 단풍동에 이 짐승들이 나타나면 바로 죽임을 당한다. 이 이유는 마지막에 가서 풀린다. 준호는 연토가 운명이라고 생각했기에 살아남았다. 그가 가진 지식은 동굴국에서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하지만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맑은이 등에게 그는 냄새나고 더러운 짐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토가 짚을 내어주고, 음식을 먹고, 씻을 수 있게 해주면서 생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연토를 통해 이 동굴국을 조금씩 이해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살던 셰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어른이와 어미산에서 캐어오는 자식들 이야기는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이다. 이들이 자식을 얻는 방식은 우리와 다르다. 다 자란 아이를 어미산에 부부가 올라가 칠성함에 넣어 데리고 온다. 이후 이 크기를 유지하다가 늙게 되면 크기가 줄어든다. 보통 우리의 성장과 반대다. 이 다름을 작가는 꾸준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른이들은 빛이 없어도 문제없다. 연토가 장대한 여행을 떠나면서 경험하는 밝은 빛의 세계는 그에게는 고통이다. 물론 익숙해진다. 그런데 빛과 색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이들은 색깔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하고. 현대 과학을 뛰어넘는 방법이 있는 것일까?

 

이들은 물이 없다면 생존할 수도 없다. 이런 점은 나무 인간에 가까운데 이야기 속에 나무 인간들이 별도로 나온다. 준호가 누워서 자는 것을 보고 죽은 것으로 착각하는데 이것이 이들의 삶의 방식 일부를 보여준다. 집안에는 물길이 있고, 샘물을 소유한 집안은 세금을 받는다. 옛날 하나의 물길에 독이 풀려 많은 어른이들이 죽었다. 이 독초 사건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이것 또한 마지막으로 가면서 풀린다. 작가는 이렇게 앞부분에 많은 것을 만들고, 설명하고, 그려내고, 차이를 드러내야 했다. 그 사이 사이에 작은 이벤트를 집어넣어 긴장감과 재미를 불러왔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 부분이 부족하다.

 

곳곳에 한자를 한글로 풀어내었는데 한국어의 태생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단지 한글로 풀어낸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기존의 판타지를 많이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이 세계에 그렇게 감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규모나 설정에서 아쉬움을 느낄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하지만 다른 세계 속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아마 개인의 경험과 이해 정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그리고 연토가 준호를 만나고,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들은 한 편의 성장소설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다. “당연한 것이 기적이오. 하루하루 해낼 일을 사고 없이 해내는 것이 기적이오.”라는 평범한 말이 더 큰 울림을 준다. 그들 세계에 대한 집착은 현실적이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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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울다
거수이핑 지음, 김남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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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넷을 담고 있는 중편집이다. 이 중에서 표제작인 <산이 울다>는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중편집에 실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생활한다. 마지막 작품인 <시간을 넘어>만 현대의 시간을 직접 다루고 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전에 읽었던 중국 작가의 시골 풍경이 이 작품 속에서도 느껴졌다. 순박하지만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과 작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들 말이다. 위화나 모옌의 작품 속에서 느낀 것과 전체적인 분위기도 다르다. 아마 이 네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삶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산이 울다>는 한 산마을에 라홍 가족이 이사 온 후 생긴 일을 다룬다. 여자 홍샤는 예쁘지만 벙어리고, 가족은 구걸을 하면서 산다. 마을 청년 한충이 살 곳을 내줬는데 오소리를 잡기 위해 설치한 폭발물에 라홍이 죽는다. 마을 간부는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한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홍샤 등을 돌보고 배상해야 한다. 한충에게는 내연녀가 있었는데 그녀는 한충을 이용만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은 틀어지고, 홍샤의 비밀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어처구니없지만 참혹한 과거 이야기는 평범한 듯한 이야기에 한 인간의 숨겨진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뒤로 가면서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하늘 아래>는 긴 세월을 다룬다. 롼친이 항일전쟁 당시 무장대 리만탕을 구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수십 년이 흐른다. 남편 훠창뤼는 은전을 벌기 위해 일본인들의 내기에 발을 내딛는다. 이 때문에 돈은 벌지만 몸이 망가진다. 리만탕은 차용증을 쓴 후 은전으로 식량을 구해 돌아가고, 훠창뤼가 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그녀의 친정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돈이 있다는 소문은 빌려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지지만 실제 그들 손에 돈이 없다. 비난만 가득하다. 그들은 이후로도 평범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재밌는 대목들은 리만탕이 성의 높은 지위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려는 그녀를 말리는 마을 간부들이다. 문제 거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함축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마지막 리만탕소학교에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채찍돌림>은 읽으면서 불길한 예감을 품게 만든다. 한 편의 추리소설과도 같다. 왕인란의 남편 마우가 고환 두 쪽이 묶인 상태로 죽고, 이후 결혼한 남편마저도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기구한 운명이다. 이런 왕인란의 곁에는 마우의 종이었던 테헤이가 있다. 테헤이는 왕인란이 마우의 둘째 부인으로 올 때부터 관심을 둔 인물이다. 마우가 인민재판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사실 마우는 열심히 노력해서 재산을 모았지만 지주라는 낙인을 피하지 못했다. 출신성분은 그 가족에게도 이어진다. 이런 시대상과 더불어 하나의 무서운 욕망이 삶에 끼어든다. 예상한 것처럼 잔혹한 행위는 없지만 의도는 잔인하다. 마지막 장면은 채찍돌림처럼 큰 울림을 전해준다.

 

<시간을 넘어>는 딸의 실종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린 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열여덟 살의 리리다. 이 딸의 실종은 쑤홍 가족에 많은 문제를 불러온다. 리리가 남편 야오량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과 쑤홍이 도시에서 몸을 판 것이다. 여기에 도시에서 발견된 조각난 사체의 주인이 리리일 줄 모른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이야기가 풀려가면서 나오는 쑤홍의 과거와 리리의 도시행은 살짝 닮은 모습을 가진다. <산이 울다>의 홍샤가 겪었던 일도 리리와 이어진다. 여자라서 겪어야 했던 비극들이다. 하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쑤홍이 선택한 문제 해결은 현실 도피다. 자신이 만든 환상 속 세계다. 이곳이라면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리콴청의 생각은 남자의 또 다른 현실 도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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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읽는 시간 - 죽음 안의 삶을 향한 과학적 시선
빈센트 디 마이오 외 지음,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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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를 미친 듯이 본 적이 있다. 죽음의 원인을 찾고, 과학적 증거를 발견하여 범인을 쫓는 그 드라마는 정말 대단했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검시관이 주인공인 책도 읽었다. 대부분의 범죄소설에서 검시관이나 병리학자들은 조연이었다. 이런 기억들 가지고 실제 현장의 볍의병리학자이자 총상 전문가가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 호기심과 기대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많은 부분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진실이 가진 무게와 그 이면들을 들여다보게 했다.

 

빈센트 디 마이오가 법의학자고, 론 프랜셀은 작가다. 이 책을 생각한 것보다 편하고 재밌게 읽게 된 것은 론 프랜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 속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사람은 당연히 디 마이오다. 이 책의 한 장은 바로 디 마이오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왜 병리학자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당연히 이 글들 속에는 그의 경력도 같이 다루어진다. 더불어 부족한 병리학자 문제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검시관 중에는 장의사도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죽음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전문적인 일인지 알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의 살인 사건에서 인종 문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첫 이야기도 바로 인종 문제로 발전한 사건을 다룬다. 서로 엇갈리는 증언은 이 문제를 더 키운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일관되게 하나를 주장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진실을 말할 뿐이란 것이다. 이 진실은 죽음과 관련된 것이지, 유죄의 판단이나 정치적 문제는 고려의 대상의 아니다. 지머맨의 무죄를 돕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그의 증언은 단지 하나의 사실만 알려줄 뿐이다. “무죄 선고가 항상 용서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란 문장은 그의 마음을 잘 대변해준다. 그가 왜 그 트레이본 마틴을 따라갔는지, 그들의 싸움은 어떻게 시작했는지 등은 증거자료를 보는 그에게 참고자료일 뿐이다.

 

많은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다양한 트릭들과 특이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하나의 진실 너머의 또 다른 의도가 풀려나올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법의학적 증거는 정의의 기반이다. 법의학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기억을 변주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자신도 ‘인간성에 대한 더욱 거대한 질문을 해결한 데’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추리소설이 단순한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고의 확장을 도와주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법의학자가 밝힌 하나의 진실이 늘 그것을 담고 있는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그의 진실 추구가 현실을 완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자신이 참여한 사건들을 다룬다. 이 사건들 중 몇 개는 가십 같은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JFK살인범 오스왈드가 가짜라는 주장과 조금은 놀라운 고흐의 자살설에 대한 반박 등이다. 이런 죽음에 대한 법의학자의 의견은 죽음 그 자체만 놓고 본다. 오스왈드는 재검시 결과 동일인으로 판명나고, 고흐는 그의 의견에 따르면 자살이 아니다. 특히 고흐 같은 경우는 미술계와 대중의 호기심이 결합한 결과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지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 두 장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지만 하나의 주석으로 처리해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유명 음악 프로듀스인 필 스펙트의 살인 사건이나 웨스트멤피스 살인의 경우는 그의 검시 결과와 판결의 상관관계가 같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무죄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이처럼 그의 검시 결과와 판결은 그 당시의 상황만 알려줄 뿐이다. 범인은 다른 증거와 같이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동수사다. 아기들을 죽이는 여자 이야기는 초동수사로 그 정체를 밝힐 수 없지만 최소한 그 반복적인 행동을 제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밖으로 드러난 흉악범죄보다 숨긴 채 이루어지는 범죄들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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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의 레퀴엠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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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3편이다. 이 시리즈 중 처음 읽는다. 변호사이지만 그가 조사하는 일들을 보면 유명 탐정 이상의 능력을 보여준다. 발로 뛰면서 직관적으로 통찰하는 능력은 정말 놀랍다. 시리즈 중 최근작이다 보니 그의 이력 등이 이야기 속에 조금씩 흘러나온다. 물론 전작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이 소설의 도입부에 나온 사고는 그냥 무심코 보기 힘들다. 한국 여객선 블루오션호의 이미지에 세월호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작가는 일본의 위안부 기족 조작 사건을 말했다. 작품과 달리 그의 정치 성향이 궁금해진다.

 

한국 여객선 블루오션호의 침몰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배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탈출용 보트도 구명조끼도 없다. 한국 선원들은 구조용 보트를 타고 떠났다. 배는 침몰하는 중이고, 구명조끼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 한 여성이 바다로 뛰어내릴까 고민한다. 이것을 본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자기가 살기 위해 여자의 구명조끼를 뺏은 것이다. 이 장면이 촬영되어 남자는 폭행죄로 기소되지만 형법의 ‘긴급피난’이 적용되면서 무죄로 풀려난다. 그리고 다른 법정으로 넘어간다. 미코시마가 변호한 폭력단 인물이 낮은 형량을 받는다. 성공이다. 폭력단 고문변호사가 되어주길 바란다. 약간 뜸을 들인다. 이때는 미코시마의 과거가 완전히 드러난 상태다. 십대에 소녀를 죽이고 토막낸 전력이다. 시체배달부란 별명도 이 때문에 생겼다.

 

그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사건 의뢰도 끝어졌다. 악덕 변호사지만 승소율이 높아 인기가 많았는데 과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의료소년원 시절 교관이었던 이나미가 살인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아는 이나미는 결코 살인을 할 사람이 아니다. 이미 다른 국선 변호사가 선입되었지만 폭력단의 고문변호사를 승낙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이나미의 변호사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 법의 한도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한다. 변호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 왜 악덕 변호사란 별명이 붙었는지 잘 보여준다.

 

살인자였던 자신을 변호사로 성장할 수 있게 이끈 이가 이나미 교도관이다. 이나미가 하반신 불구가 된 것도 그의 탓이다. 요양원에 들어갈 때 몰래 돈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자신이 살의를 가지고 살인했다고 주장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코시바에게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나미를 무죄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요양원을 먼저 방문한다. 경찰 조서만으로 상황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이질적이고 끈끈한 공포를 느낀다. 요양원 직원들이 노약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나미가 죽인 도치노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이다. 그런데 도치노의 전력이 하나 떠오른다. 바로 10년 전 긴급피난으로 무죄 석방되었다는 것이다.

 

이나미를 무죄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미코시바, 이런 미코시바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면서 속죄를 말하는 이나미. 이 둘의 대립 속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미코시바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재판에 활용해 승소한다. 이런 과정들은 법정 스릴러라기 보다 탐정물에 더 가깝다. 그 과정에서 법률과 언론의 문제와 한계점을 지적한다. “왜 가해자에게 무르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엄격하지?” 미코시바의 답은 상상력 부족이다. 자신이 당사자가 되리라고는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어느 부분 이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최근 일본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피해자의 시선이 이 속에 녹아 있다.

 

대단히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을 수 있다. 번쩍이는 아이디어와 통찰력과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실행력은 이 악덕 변호사가 어떻게 승소했는지 잘 보여준다. 도치노가 사용한 긴급피난을 이나미에게 적용해서 무죄를 주장한다. 과거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떠오르고, 이나미가 왜 그곳에 갔는지, 왜 그를 죽이게 되었는지 하나씩 밝혀진다. 이 과정은 양파껍질을 벗기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최종 판결이 내려진다. 진실을 알지만 그것만으로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법의 한계는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의 한계”라는 말을 한다. 이 문장을 보면서 한국의 사법농단과 대기업 총수들의 범죄들이 떠올랐다. 은수의 레퀴엠에서 은수는 은혜와 복수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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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의 퍼즐
최실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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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인 3세 소설가의 작품이다. 유명한 문학상도 3개나 수상했다. 이런 대외적인 정보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조금 낯선 재일 한인 3세가 경험했던 일들이다.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면 한인 3세나 4세가 나왔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언제나 읽었던 작품들의 작가가 2세까지였던 것 때문에 이 당연한 시간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동시대에 있었고 그냥 하나의 사건 정도로 생각했던 일들이 조총련 계열 학교 학생들에게 어떤 일로 다가왔는지 보여줄 때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야 했던 재일 한인들의 또 다른 삶이 눈에 들어왔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는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비록 나 자신이 이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재일 한인 3세 박지니가 미국에서 경험하는 일들이나, 왜 그녀가 그곳까지 가게 되었는지 보여줄 때 한 소녀의 방황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해의 폭은 깊지도 넓지도 않지만 작은 충격을 주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 이것은 다른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재일 한인의 삶과 일본에 있었던 북송사업 등과 엮이면서 좀더 깊어졌다. 정치라는 거대한 행동 속에 개인의 삶은 너무나도 무력하고 한계가 분명하다.

 

첫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온 존이란 존재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이후 펼쳐진 이야기들에 존은 등장하지 않는다. 왜 자신을 표현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존을 가장 먼저 내었을까? 지니를 비롯한 재일교포들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일까? 이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은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일이다. 이 사건은 전 일본을 긴장시켰다. 극우단체들의 폭력이 자행되던 시기다. 치마저고리로 대변되던 조총련계 학교 학생들이 체육복으로 등교해야 할 정도였다. 지니는 이 소식을 듣지 못해 폭행과 성추행을 당한다. 어린 소녀에게 이것은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공포로 기억된다.

 

오래전 한국도 교실에 박정희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1998년 일본 조총련계 학교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다른 학생들은 이 초상화를 풍경의 일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지니에게는 깨트려야 할 대상이다. 독재국가이자 재인교포들에게 위험을 주는 이들은 타도의 대상이다. 자신이 만든 선언문을 뿌리고, 초상화를 교실 밖으로 내던진다. 이 행동 때문에 그녀는 일본에 거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이 벌어지기 전 북송사업 당시 떠난 외할아버지의 편지가 중간중간 나온다. 편지 내용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북한의 실상이 드러난다. 그 또한 정치 문제의 희생자였다.

 

미국에서도 지니는 아웃사이더다. 홈스테이 주인이자 동화작가인 스테퍼니는 이런 그녀를 품고 세상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하늘이 무너질 때라는 가정에 ‘하늘을 받아들일 거야’라고 외친다. “언젠가, 누군가 날 용서해줄 날을, 무너지는 하늘을, 그것이 어떤 하늘이라 해도 허락하고 받아들일 날을. 괜찮아, 그걸로 됐어, 하고 누군가 인정해줄 날을 죽 기다려왔던 건지도 모른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지니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과 외로움과 공포 등이 가슴 속에서 흩어졌다. 정치문제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정치문제에 휘둘린 사람들이 어떤 폭력을 행사하는지 등은 현실의 삶을 잘 보여준다. 한 편으로는 그 현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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