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홀릭 1 - 내가 제일 좋아하는것은 몬스터
에밀 페리스 지음, 최지원 옮김 / 사일런스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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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책을 넘겨볼 때 그림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한 컷 한 컷을 보며 감탄했다. 일반적인 그래픽노블을 생각하고 접근했기 때문이다. 매끈하고 잘 정돈된 그림에 익숙하다보니 처음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이 거부감을 지나면 생각보다 많은 글자들에 또 한 번 놀란다. 예상한 시간보다 읽는데 더 걸렸다. 그래도 이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즐거웠다. 다만 몇몇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한 번 더 뒤적이면서 놓친 부분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1968년 몬스터를 좋아하는 캐런 윗집의 앙카 실버버그가 죽었다. 밀실로 처리되어 자살로 결정났지만 몇 가지 의혹이 있다. 이것을 조사하는 탐정 역할을 캐런이 한다. 이 조사 과정에는 한 소녀의 삶과 가족과 역사가 뒤섞여 있다. 작가는 나중에 앙카의 삶을 액자구성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엄마가 매춘부가 되었고, 자신도 매춘부로 팔렸는지. 어떤 일이 있어서 그곳을 떠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는지. 유대인이란 이유로 홀로코스트의 대상이 되었다가 한 독일 거부의 도움을 풀려난다. 1차 대전 이후 독일의 모습과 2차 대전 전까지 다루면서 빠르게 바뀌는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떤 일을 겪는지 잘 보여준다. 역사와 개인의 비극이 같이 나아가는데 이것은 다시 캐런의 삶과 이어진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유명한 암살 사건이 둘 있다. 하나는 JFK이고, 다른 하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다. 이 책에서는 킹 목사가 죽는다. 작가는 이 사건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JFK가 암살당했을 때는 엄마가 술에 취했고, 킹 목사가 암살되었을 때는 오빠가 취한다. 어린 소년 캐런에게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 단지 이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관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하지만 이 기억들은 성장했을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시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그래픽노블은 그 결과물이다.

 

몬스터를 가장 좋아하는 소녀가 평소에 하는 것은 몬스터 잡지를 그리는 것이다. 이 책에는 상당히 많은 손으로 그린 몬스터 잡지들 표지가 나온다. 내 눈에 익숙한 모습인데 아마 이 시대 영화 표지를 많이 봤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놀라운 것은 그 섬세한 디테일이다. 이 그래픽노블 전체적으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 아는 것이 많고, 더 들여다보면 볼수록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활자와 더불어 나의 독서 시간을 늘인 것도 바로 이 그림들이다. 몬스터 잡지를 먼저 말했지만 사람들 얼굴과 표정, 거리의 풍경 등도 결코 그냥 보고 지나갈 수 없다. 어디까지 시대의 재현인지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몬스터홀릭 캐런의 이미지를 늑대소녀에서 빌려와 계속 표현했다. 실제 모습이 나오는 장면을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녀가 몬스터가 되고 싶은 것은 언데드의 특성 때문이다. 엄마가 암에 걸렸을 때는 이것이 더 절실해진다. 현실은 이 희망을 짓밟는다. 그리고 매력적인 오빠 디즈가 있다. 혼혈이지만 그의 매력에 빠진 여자들이 줄을 잇는다. 캐런 다음으로 출연 빈도가 높은 인물이 바로 오빠다. 그의 행동에는 섹스가 들어있다. 자신도 절제를 할 줄 모르지만 여자들도 그를 너무 유혹한다. 그의 무분별한 욕구 분출은 휘험도를 점점 높여간다.

 

앙카를 죽였을 가능성 있는 인물들 목록에 엄마와 오빠도 있다. 이 미스터리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다. 아니면 내가 놓쳤다. 그녀의 학교생활은 아웃사이드다. 함께 몬스터 영화를 보던 친구는 엄마의 등살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새롭게 사귄 친구들도 하층민의 삶을 대변한다. 엄마를 힐빌리라고 부르는데 얼마 전에 읽은 책 때문에 이 단어의 의미를 안다. 현재의 삶과 문제들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는 과거로 올라가 현재와 연결시킨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오빠가 있지만 역시 나의 낮은 이해도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이나 다시 들춰보면서 그 단서를 찾아야 할 것 같다. 6년에 걸친 작업이라고 하는데 읽고 난 후 공감했다. 노트 속 펜으로 그린 그림체는 어디까지 연출인지 모르지만 감탄을 자아낸다. 한국 인쇄와 한진해운 사태를 겪었다는 것에 왠지 더 정감이 간다. 한마디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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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도
박완서 외 지음 / 책읽는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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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의 작가가 쓴 인도 여행 에세이다. 각각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여행한 후 쓴 글들을 편집한 책이다. 아홉 편의 에세이가 책 마지막에 출처가 나온 것을 보면 다른 글들은 이번에 쓴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11명의 작가 중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은 몇 명되지 않는다. 고 박완서, 고 법정, 신경림, 강석경, 이해인 수녀 등을 제외하면 한두 번 이름을 들은 정도다. 물론 이것은 나의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이 떨어진 최근의 지식 때문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인에 대한 정보 부족이다. 시집을 거의 읽지 않으니 오며가며 이름을 본 시인을 제외하면 모두 낯설다.

 

각각의 작가들이 자신의 여행 경험을 다루고 있는데 인지도와 책의 재미는 별개다. 짧은 에피소드가 담긴 박완서의 <잃어버린 여행 가방>은 분량도 적고 이야기가 진행되다 만 듯한 느낌이다. 짧은 경험담은 좋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인도라는 지역의 여행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해인 수녀의 <소중한 만남>은 故 마더 테레사와의 만남을 보여준다. 우리가 인도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이미지 혹은 키워드 중 하나였던 분이다. 다른 위치에서 인도를 본다는 것은 우리가 그 나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분을 아는 사람에게는 짧은 추억을 전달해주는 시간이었다.

 

인도 여행이 한때는 로망이었다. 하지만 실제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로망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긴 시간을 빼서 여행한다면 김선우의 말처럼 ‘어딘가 아파지는 일’을 겪은 후 즐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현실적으로 뺄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 내외다. 넘쳐나는 삐끼와 혼란과 비위생적인 상황은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 여행을 ‘고행’으로 만들 이유가 내겐 아직 없다. 이 작가들 중 인도를 홀로 오랫동안 여행한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처음 갔다온 사람의 감상에서 진짜 힘겨움이 많이 빠져 있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아파하고 힘겨움을 지났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다는 것인지.

 

바라나시는 우리가 흔히 인도하면 떠올리는 갠지스강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당연히 많은 글들에서 이곳이 무대로 등장한다. 시체 타는 냄새에 익숙해진다는 동명의 글은 조금은 충격이다. 얼마나 많은 시체 타는 냄새를 맡았기에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취향에 맞는 에세이는 동명과 나희덕의 글이었다. 여행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이 글들 속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나를 태운다는 것과 인도의 속도에 대한 글은 짧은 글 속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다름을 이렇게 접근한다면, 인식하는 방법도 다르다.

 

북부 지방을 다룬 글들 중 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느 글이나 방송에서 이 지역을 다룬 것을 본 것 같기에 그렇게 낯설지 않다. 갔을 때 느낀 감정과 가는 과정에 느낀 감정이 사뭇 다른 곳이다. 사실 몇 시간 차를 타는 것이 지겨운 나에게 인도 여행은 하나의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라다크를 다룰 때 <오래된 미래>가 등장하는데 사놓고 묵혀둔 것이 몇 년인가. 이곳도 시간의 흐름 속에 변했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갈 때까지라도 변화가 조금 더 더디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욕심이다. 가보지 않는 나라에 대한 환상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다.

 

타지마할에 대한 감상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곳을 감탄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고, 생각보다 별로라는 상사의 말도 들었다. 사진으로 본 이미지는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본다면 어떨까? 며칠 전 뉴스에서 입장료를 올렸다는 내용에 클릭하고 들어가니 내국인 입장료다. 유적에 큰 관심이 없지만 실제 본다면 어떨지 알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다루어지지 않는 분야가 음식이다. 법정 스님의 글에서 남부 지역의 음식이 입맛에 맞다는 것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인도 출장 가면 음식 때문에 고생한다는 동료의 말은 그냥 듣고 넘어갈 수 없다. 음식은 여행의 재미 중 하나니까. 예전 해외여행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기에. 그리고 이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이었던 사진들이 글쓴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아쉽다. 글과 이어질 때 그 사진이 조금 서툴러도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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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가야 한다
정명섭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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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이 약하면 국민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다.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는 그 피해가 밑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최근 한국의 20여년 역사를 봐도 이것은 잘 드러난다. 이보다 더 심한 조선시대라면 어떨까?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앞장 서야할 양반은 돈으로 상놈의 자식을 사 대신 군대에 보낸다. 가끔 자신의 명예나 다른 목적 때문에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 속 두 인물 노비 황천도와 양반 강은태는 그렇게 여진족과의 전쟁에 내몰렸다. 그 결과는 누구나 알 듯이 조선의 패배. 둘은 노비로 살게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을 간결하면서도 빠르게 풀어내었다.

 

황천도. 엄마가 노비였기에 법에 따라 태어나자마자 노비가 되었다. 노동력이 귀했던 시절 남자 아이는 좋은 노동력이다. 출생 시 어머니는 죽고 아비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황천도가 옆집 훈장에게서 문자를 배운다. 이것이 가능한지 여부는 그냥 묻어두자. 이 교육이 나중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현실에서 문자를 안다고 그가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좋은 자리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릴지 모르지만 공고한 신분사회에서 위로 올라갈 가능성은 없다. 외거노비에서 솔거노비로 바뀌는 순간 그와 훈장이 나누는 사자성어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전조이자 현실이다.

 

강은태. 집안을 세우려는 아버지의 욕심에 여진과의 전쟁에 내몰렸다. 강은태가 책상물림의 말을 할 때 아비는 아주 현실적인 말을 한다. 이 현실 감각이 나중에 새로운 권력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아들은 신분이 기울어지는 결혼을 해야 했고, 전쟁에 나가야 했다. 이길 수 없고, 이길 마음도 없는 전쟁에서 그는 노예로 전락한다. 황천도와 만나고, 그의 도움으로 살아남는다. 동갑의 둘은 좋은 친구가 된다. 만주에서 노예로 살면서 그는 황천도에게 글을 가르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뜬금없는 일이다. 이것 또한 다음 이야기를 위한 하나의 장치다.

 

노예는 돈을 주면 사고 팔 수 있다. 돈 있는 양반에 자식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떨까? 광해군에서 인조로 넘어갔고,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 시기에 강철견의 현실감각은 아주 잘 작용했다. 아들을 속환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은 당연하다. 이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때부터다. 거의 20년을 같이 다니면서 얼굴이 비슷해 보인다는 말을 들은 둘 사이가 틀어진다. 속환된다는 말에 양반 기질이 밖으로 드러나는 은태와 자신도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 천도가 충돌한다. 욕망은 가지지 못한 자가 가진 것. 천도는 은태를 죽이고, 은태처럼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이 다음부터 벌어질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은태의 귀환을 둘러싼 의심과 갈등 등이 후반부에 펼쳐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혹시나 하는 의심과 이 의심을 넘어서려는 의지와 노력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상황들과 자신의 감정을 추슬러야 하는 천도의 모습은 극적 재미를 고조시킨다. 이렇게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는 아주 재밌는데 그 이야기를 묶는 데는 조금 힘이 딸린다. 허술한 초반부와 많은 감정과 이야기가 생략된 감정의 변화 등은 사실 집중력을 많이 떨어트린다. 아쉬운 부분이다. 작가가 쓴 다양한 장르 중에서 역사소설만 읽었는데 모두 아쉬웠다. 다른 작품도 읽은 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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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반다나 싱 지음, 김세경 옮김 / 아작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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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나 싱의 SF단편소설집이다. 모두 10편이 실려 있다. 인도 출신이란 것과 이론물리학자란 것이 소설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익숙한 지명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낯선 인도라는 공간을 SF라는 장르로 잘 녹여내었다. 어떤 작품은 과연 SF소설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작가 자신은 “SF소설은 무척 난해한 방법으로 위대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는 걸, 문학에 심취한 속물들을 속이고 무심한 독자들을 불러 세우기 위해 설계된 일종의 암호”라고 말한다. 이러니 외계인도, 우주로 나갈 필요도 없다. 첫 작품 <허기>를 읽으면서 생긴 의문이 이 문장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이 단편들에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있다. 그것은 인도라는 배경이다. 작가가 미국에서 학자 생활을 한다고 그 무대마저 미국으로 잡은 것은 아니다. 이 지역적 배경은 문화적 배경을 깔아놓고 진행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있고, 여자들은 결혼할 때 지참금을 가지고 간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고, 그 갈등이 폭발한 적도 있다. 이런 배경들이 단편들에 녹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건도 나온다. 작가는 이 갈등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얼마나 큰 문제인지 충분히 인지할 수 있게 보여주었다. 몇몇 이야기는 이 문제들이 이야기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흔히 생각하는 가장 SF소설 같은 작품은 <델리>와 <사면체>다. <무한>이나 <보존법칙>도 마찬가지다. 표제작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의 경우는 판타지 요소가 더 강하다. <갈증>과 <다락방>과 <은하수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등도 개인적으로 판타지로 읽힌다. ‘가장 덜 SF 같은 SF’로 부를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이 단편들 속에는 수많은 인도 신화와 신들이 등장한다. 당연히 전공분야인 과학 지식도 같이 나온다. 주석이 없다면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 소설들이 재미없는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상당히 재밌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의 성별이나 연령도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감정들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어쩌면 이 소설집의 가장 큰 매력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틈을 보는 <델리>의 화자는 혼자 살지만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의 화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다. 보수적인 남편의 시선과 아내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읽는 재미가 가득하고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를 보여준다. <무한>의 수학자는 자신의 재능을 펴보지 못한 채 살지만 종교 갈등 와중에 어릴 때부터 따라 다녔던 신비한 체험을 한다. 이때 엿본 우주와 비슷한 것이 <보존법칙> 속 우주 이미지와 연결된다. 나만 그런가?

 

<갈증>의 변화와 <다락방>의 마지막 장면은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마법 같은 변화를 다룬다.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키다가 어느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변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가장 SF답지 않은 단편들인 <허기>와 <아내>는 여성의 심리 묘사가 아주 돋보인다. 인도에서 아내의 삶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유출할 수 있다. 이런 삶에 대한 거부감을 담고 있는 것이 <사면체>다. 전통적인 결혼관에 묶인 대학생 마야를 등장시키고, 갑자기 등장한 사면체의 존재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진출을 보여준다. 미지의 물체는 우리의 인식 한계를 넘어서 있지만 우린 우리의 지식 속에서 그것을 파악하려고 한다. 이 차이를 여러 단편에서 보여준다.

 

보통 SF소설은 가볍게 읽으려는 마음에서 선택한다. 하지만 꽤 많은 하드SF는 나의 뇌를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이 단편집 속 몇 작품은 그랬다. 읽으면서 가장 인도적인 소재를 가장 잘 다룰 때, 그것이 장르와 결합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문장 곳곳에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인도 문화의 이면과 문제점은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섬세하고 세밀한 관찰이 곁들여진 문장들은 가독성을 높여주고, 경험 속에서 우러나는 통찰력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좋은 SF작가 한 명을 만났다. 더 많은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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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손님
히라이데 다카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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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9장에 걸쳐 고양이 치비와의 만남과 헤어짐과 그리움을 그렸다. 이 치비와의 만남은 작가가 번개골목이라고 이름부친 곳에서 시작한다. 그 후 이 고양이는 작가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러다 치비는 교통사고로 죽고, 이 상실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아내와 옆에서 이것을 지켜보는 작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과정과 일상을 조금은 담담하게 그려낸다. 현대 우화라는 설명에 어떤 우화가 펼쳐질까 궁금해 하면서 계속 읽었지만 치비와 작가의 일상만 나올 뿐이다. 내가 이해하는 우화와 다른 것인지, 아니면 나의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

 

소설로 분류되었지만 읽다보면 일상을 적은 수필처럼 읽힌다. 강렬하고 격렬한 감정은 없고, 절제되고 평범한 일상만 나온다. 이 일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친구들이나 주인집의 문제 때문이다. 시간적 배경도 1980년대 말 일본 버블경제기에 있었던 것이라 그 시대의 단면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짧은 시간이 아니라 1년 이상의 긴 시간을 다룬다. 계절의 변화와 사는 공간의 변화가 너무 정적이라 일본 영화 거장들의 일상을 다룬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아마 이 부분이 외국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상을 표현하는 문장은 그 어떤 화려한 기교나 허세가 없다.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이 과정 속에서 치비는 알게 모르게 일상에 스며든다. 아내의 손을 물었을 때는 절교를 외치기도 하지만 집에 찾아오는 치비에게 전갱이를 구워준다. 작고 소소한 행복이다. 이렇게 쌓인 기억과 추억은 치비가 죽었다는 소식에 큰 상실감은 느낀다. 다른 고양이에게서 치비의 흔적을 쫓는 모습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추억은 공간과 함께 기억 속에 남는다. 그곳을 다시 갔을 때 추억의 문이 열린다. 이때 솟구치는 감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바뀐다. 누군가는 더 강해질 것이고, 누군가는 희미해질 것이다.

 

많지 않은 분량에, 상대적으로 큰 활자라 읽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한 장 한 장 읽다 보면 그 정적인 분위기에 조용히 휩싸인다. 작가가 그린 공간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뛰어노는 치비를 생각하고, 그 일상을 돌아보면 아파트에 살기 전 우리의 삶이 살짝 겹쳐진다. 이 공감 속에 작가의 생각을 곳곳에 풀어놓았다. 읽을 때 놓친 것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잠깐 들쳐보는 순간에도 많은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다시 읽게 되면 어떨까? 화자는 치비의 상실을 그렇게 아파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까? 아니면 아내의 감정에 너무 눈길이 간 것일까? 이 감정,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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