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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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만 해도 황정은의 소설로는 두 번째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세 번째다.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잊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당시 쓴 서평을 찾아보니 두 번째로 읽은 <계속해보겠습니다>에서 느낀 문장에 대한 어려움을 같이 다루고 있다. 실제로 이번 작품을 읽을 때도 앞부분에서는 헤맨 부분이 많다. 집중력의 차이가 불러온 부분도 적지 않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등도 조금 낯설다. 내용 때문인지 아니면 익숙해진 덕분인지 모르지만 두 번째 소설을 읽을 때는 이야기 속에 가려진 부분들 외에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 제목은 <디디의 우산>이지만 책 속에는 이런 제목의 소설이 없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두 편이 담겨 있을 뿐이다. <d>의 경우는 전신이 되는 작품이 있다. <웃는 남자>이다. 이 연작소설에 같이 실렸다면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d>의 전신인 <웃는 남자>는 <디디의 우산>을 부숴 만든 단편이다.”라고 말한다. 섣부르게 디디를 죽이고 d를 남긴 뒤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이 책 속 두 중편을 썼다고 한다.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이 두 인물의 연결점도 보이지 않았던 나에게 연작소설이란 표지의 의미를 알려준 내용이다.

 

<d>는 dd의 죽음 이후 이야기다. 반려자의 상실과 삶을 풀어가는 과정은 회색빛이다. 이 회색빛은 세운상가란 건물과 그 속에서 일하는 여소녀란 기술자 할아버지마저 처음에는 삼켜버린다. 전신을 읽지 않아서 사실 d와 dd의 성별을 알지 못한다. 도입부 등을 읽으면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세운상가 택배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 남자라고 생각했다. 진공관 앰프로 LP판을 듣기 위해 dd에게 보낸 물건을 찾으러 간 집에서 만난 가족을 보면서 dd의 성별이 다시 모호해졌다. 곽정은이 내 동생이라고 칭했지 성별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혹은 그녀가 d에게 보여준 감정은 단순히 d가 냉정하게 보낸 택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의 관계 때문인지는 이 중편만 가지고는 모르겠다.

 

d는 방황한다. 상실은 삶을 고여 있게 만든다. d가 머문 집에서 주인할머니가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부분은 우리의 역사다. 하나의 배경으로 이 이야기는 계속 등장한다. 그 옛날 한국전쟁 당시의 경험과 북한 조종사의 귀순 등이 그들을 통해 흘러나온다. 이것은 현재의 역사와 마주한다. dd의 책 중에서 혁명을 다룬 책을 보고 원 주인 박조배를 만나 경험하게 되는 명박산성이 대표적이다. 이때를 살았던 내가 읽어도 이 장면은 낯설고 기이하다. 만약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 고인 공간을 떠나게 만든 것은 주인할머니의 병이다. 사위가 대리인으로 나서면서 d는 새로운 공간과 직장을 찾고, 고인 삶을 정리한다.

 

단순히 일만 반복할 때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약 여소녀가 ‘나 알지?’란 말을 건내지 않았다면 또 다른 고인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 작은 접촉이 d로 하여금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로운 관심을 불어오게 만든다. 더불어 세운상가란 공간이 만들어내는 무거움을 조금씩 걷어낸다. d와 여소녀가 대화를 하고, 짜장면을 시킬 때 외로워만 보였던 이들에게 친구가 있음을 알려준다. 내가 경험했던 활기 넘쳤던 그 시절의 세운상가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건물은 관리되고 임대되고 다양한 삶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한 인물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많은 의문과 여운을 남긴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도 역시 처음에는 성별 때문에 고민했다. 아직 내 안에 담긴 성별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화자와 서수경이 중학생 때 첫 만남을 가졌지만 인연을 만든 것은 1996년 연세대에서 열린 제6회 8.15통일대축전 행사다. 아니 정확하게는 경찰에게 끌려가던 순간이다. 이 짧은 순간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둘은 다시 만나고 같이 산다. 이 중편에서 화자의 이름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관계가 동성애임을 분명하게 말한다. 이 관계 때문에 생긴 불편함도 여러 부분에서 다룬다. 점점 이런 부분이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화자는 니체에 집착한다. 아니 그가 시력 저하를 겪고 난 후 이룬 업적과 종이와 타자기에 시선을 먼저 준다. 처음에는 뭐지? 했지만 뒤로 가면서 ‘나’가 겪는 문제를 알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앞부분 몇 부분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이야기가 풀려간다. 화자가 읽고 있는 책과 몇 번 씩 읽어야할 책과 간단한 평가 등은 읽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이라 눈길이 갔다. 성차별이 내가 살았던 학창시절과 회사 초년기에 얼마나 심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이 부분은 현재 진행형이다. 화자의 조카가 오줌 누는 자세 때문에 놀림을 받는다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니체와 책과 함께 정면에서 이 시대의 큼직한 사건을 다룬다. 1996년 연세대에서 분화된 인식의 문제가 그 다음 집회 등에서 어떤 모습을 강박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는지 말할 때 어색했지만 공감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2016년 촛불 집회와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탄핵까지 그 현장을 화자는 수경과 함께 한다. 촛불집회에서 기분 나쁜 경험을 하는데 이것은 이 집회가 하나의 목적으로 모인 것이지 참석자 모두가 같은 정치적 의견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화자는 탄핵의 순간 혁명이 도래했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그 혁명을 이루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거대한 역사의 시간들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한 모습을 녹여내고 이어가는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황정은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었다. 다시 이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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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카멜레온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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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초기작들을 좋아한다. 아마 장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아닌 것을 깨닫고 약간 실망한 적이 있기에 초기작을 더 많이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작가 생활 10주년 기념작이자 대중적 요소가 강화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을 읽고 초기작을 떠올렸다. 결과만 말하면 그 당시 작품 성향과 많이 다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문장 등은 내가 기억하는 초기작보다 훨씬 좋지만 초기작들의 강렬함은 조금 떨어진다. 특히 시작하는 부분이 조금 흡입력이 개인적으로 약했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쉼 없이 달렸다.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울컥하게 만들었다.

 

라디오 디제이인 기리하타는 아주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이것이 문제가 되어 등교 거부를 하기도 했다. 이때 그의 친구가 라디오였다. 처음부터 디제이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그를 이 길로 인도했다. 반면에 목소리와 달리 외모는 볼품없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처음부터 나온다. 이 외모 콤플렉스가 그의 단골 바 IF에 찾아온 미지의 여성을 속이게 되고, 이 속임수가 들통나면서 괴상한 작업에 그를 비롯한 IF의 단골들이 끌려들어간다. 처음에는 영문도 몰랐지만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그 미지의 여성 미카지 케이의 복수극이다.

 

케이가 바 IF에 들어와서 처음 한 말은 코스터였다. 컵받침으로 알아듣고 바의 코스터를 내줬는데 힐끔 보고 다시 나갔다. 그런데 이 바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가 말한 코스터가 다른 단어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말한다. 죽였다는 비슷한 발음의 일본어다. 밖을 내다보니 어디에도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 착각일까? 다음날 그녀가 다시 와서 코스터를 보여달라고 말한다. 이것을 보는 것이 취미라고 말하면서. 그러다 기리하타의 목소리를 듣고, 옆에 앉은 게이바의 남장 여자 레이카의 외모를 보고 설레발을 친다. 생각한 그대로의 외모라고. 기라하타는 레이카에게 대역을 시키면서 케이를 속인다. 이렇게 행동하게 된 속내는 당연히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설픈 연기와 상황은 금방 케이에게 들통난다. 덕분에 이 바의 단골들은 케이가 꾸미는 작전에 동원된다. 이시노자키는 선글라스 하나로 조폭 같은 외모를 풍기고, 기리하타는 알 수 없는 유니폼을 입고 이 작전에 동원된다. 한 명은 쫓는 역할, 한 명은 쫓기는 역할이다. 이 작업 중에 대상자가 차에 치일 뻔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 장면을 보고 다시 그녀가 처음 등장하면서 한 단어가 코스터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누군가를 죽이거나 위협을 가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업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작전까지 계획된다. 평범한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그녀의 사연을 들은 단골들은 적극적으로 돕는다.

 

케이를 둘러싼 작전이 하나의 중요한 축이라면 다른 하나는 기리하타의 라디오 방송이다. 그는 사연을 읽어주고, 그가 들은 이야기를 각색해서 이에 대한 답변을 해준다. 그가 IF에서 경험한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해서 방송할 때도 있고, IF의 단골들 사연을 각색해서 말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읽으면 유쾌하고 감동적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사연들은 작은 쉼터 역할을 한다. 물론 거짓인 경우가 더 많지만 이런 작은 거짓말은 늦은 밤 방송 청취자들을 위로해준다. 34세 모태솔로 기리하타의 숨겨진 재능이 꽃피운 경우다. 이런 작은 거짓말들은 작품 속에서 조금씩 쌓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크게 폭발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진실이 밖으로 드러난다. 이 장면 때문에 앞의 이야기와 상황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투명 카멜레온은 실재한 카멜레온이 아니다. 친구가 가진 카멜레온을 보고 기리하타가 상상한 카멜레온이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거짓말들은 이것을 대변한다. 마음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보여준 행동과 반응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덮으면서 이런 반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떠올리니 강하고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몇몇 장면에서는 웃음을 던져주고, 어떤 장면은 안타까움을, 약간의 어설픈 계획과 액션에서는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기리하타의 동정은 어떻게 될까? 중늙은이의 호기심을 쓸 데 없는 곳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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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항설백물어 - 하 - 항간에 떠도는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9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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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지 바빠 서평 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 시간 짜내기가 이전보다 어렵다보니 읽은 지 며칠 지나서 겨우 쓴다. 상권을 읽은 후 다른 책을 중간에 먼저 읽은 후 하권을 읽었다. 7년 시간을 두고 전작을 읽은 것에 비하면 아주 순식간이다. 이번에도 역시 세 이야기가 나온다. 구성은 상권과 별 차이가 없지만 요지로의 존재감이 점점 커진다. 그것과 함께 작가가 생각하는 요괴의 모습도 같이 풀려서 나온다. 티격태격하는 네 인물의 차이가 눈에 더 들어오고, 사요의 비밀도 한 꺼풀 벗겨진다. 그리고 예상했지만 아쉬운 한 장면을 마주한다.

 

원래 한 권이었던 책이다 보니 진행하는 앞부분은 같다. 누군가 괴담을 끄집어내고, 그 괴담을 조사하고, 토론하고, 잇파쿠 옹까지 가는 과정이다. <산사내>는 사람인지 짐승인지 요괴인지 불분명한 산사내의 아이를 낳은 여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토론은 이 산사내의 존재에 시작한다. 요괴처럼 묘사된 문헌이 나오고, 짐승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대목에 이르면 사람이란 설에 더 무게가 실린다. 이 토론 과정은 인간들이 어떻게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그것을 표현하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고, 두 사건이 해결된다.

 

<오품의 빛>은 푸른 백로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유명한 유학자인 기미후사 경이 어릴 대 직접 이 경험을 했다고 한다. 성인이 된 후 여행을 하다가 한 지역에서 다시 이 경험을 한다. 이 강렬한 기억이 불가사의한 문제를 해결한 겐노신에게 전해지면서 토론으로 발전하고 잇파쿠 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기억도 마타이치의 기묘한 행적 중 하나와 연결된다. 희미한 기억 속 존재인 마타이치의 놀라운 능력은 이번에도 빛을 발하고, 그 전설 같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아픈 사연이 조금씩 풀려나온다. 모모스케가 요지로에게서 자신과 같은 냄새를 맡는다는 표현이 나오면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바람신>은 달빛 어두운 밤 진행하는 백 가지 이야기를 다룬다. 마지막 이야기가 끝나면 재앙을 끌어당기고 요괴를 깨운다고 한다. 이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 속에 작지만 재밌는 에피소드가 일어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사요의 과거가 드러나고, 잇파쿠 옹이 백귀물어에 가담한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간략한 제목만 보면 이 항설백물어 시리즈 속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것도 작은 재미 중 하나다. 하지만 진짜 재미는 잇파쿠 옹의 의도와 요지로의 설정이다. 고조되는 이야기와 어두워지는 방과 무대장치가 결합해서 만들어낼 장면을 떠올리고, 이것이 어떻게 표현될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당연히 반전도 있다.

 

이 책의 구성에 대한 설명이 책 속에 나온다. 겐노신의 이야기는 항상 계기가 모호하고, 들고 오는 화젯거리는 언제나 황당무계하다. 결과적으로 그 이면은 멀쩡한 사건이 숨어 있지만 항상 괴담 종류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실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잇파쿠 옹은 괴담에서 과거를 떠올리면서 그 당시 이면을 말하고, 겐노신은 이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아 사건을 해결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해결자의 신분이 바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존재는 공권력이 되었고, 이것은 어느 정도 신뢰가 쌓여가는 과정이다.

 

“요괴는 거짓이지만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거짓을 거짓인 줄 알면서 믿는다고 말한다. 머릿속에 산타크로스가 지나간다. 우리가 괴담을 즐기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무언가를 이야기해서 속이면 이야기가 된다고 말한다. 이 괴담을 몇 개씩 포개놓아 현실 자체를 속임수의 공간으로 옮기고 되돌려놓는 것이 백 가지 이야기다.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항설백물어 시리즈를 한 번에 읽어보고 싶다. 그러면 지금과 다른 느낌과 재미를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요지로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작가의 다른 소설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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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성역 1 - 노아즈 아크, Novel Engine POP
카지오 신지 지음, toi8 그림, 구자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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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멸망을 소재로 한 SF소설이다. 작년에 읽었던 <세븐 이브스>가 하드SF라면 이 작품은 SF 판타지에 더 가깝다. 지구의 선택 받은 3만 명을 태운 세대 간 우주선 노아즈 아크나 성간 전이 기술을 이용한 점프 등은 현실적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가가 관심을 둔 것은 이런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제목에서 나온 것처럼 지구를 버리고 몰래 떠난 미합중국 에디슨 대통령 외 3만 명과 이들을 저주하면서 위험한 기술인 점프를 통해 약속된 별로 온 인류의 갈등이다. 아직 이야기의 도입부에 불과하다보니 이 갈등을 극한으로 몰고 가지 않았지만 점프한 인류는 이것을 단결의 동력으로 삼는다.

 

이야기는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당연히 점프한 사람들의 생존이다. 172광년 떨어진 약속의 땅으로 인류의 70%가 점프한다. 이 기술을 쉽게 이해하려면 스타트랙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무려 172광년이다. 자세한 과학으로 들어가면 거의 불가능하다. 별이 고정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물리적 거리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 소설에서 이런 과학적 가능성은 덮어놓고 가야 한다. 대신 이 점프를 통해 정상적으로 도착한 인류가 소수라는 설정과 이들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과학보다는 판타지에 더 알맞음을 잘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노아즈 아크에 딴 인류다. 에디슨 대통령의 딸 나탈리와 그녀의 연인 이안 애덤스의 로맨스나 노아즈 아크에서 일어나는 일 등은 현실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인류를 버리고 몰래 떠난 선택 받은 인류의 고민이나 폐쇄된 공간 속의 삶, 계급 차이 등은 그 속에 살고 있는 계층들의 시선을 풀어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이들은 태양의 플레어 확장에 따른 지구의 소멸을 사실로 믿는다. 처음에는 영상 조작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을 우주선에서 관측한다. 이때 에디슨 대통령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주 이중적이다. 세대가 지나면서 이야기는 우주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으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지구에 남은 사람들 이야기다. 당연히 작가가 다루는 국가와 사람은 일본이다. 인류의 70%가 점프한 후 남은 이들은 갑자기 바뀐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해피엔드라는 독약으로 자살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서로 돕고, 사랑하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버섯 따기와 자연 속으로 여행에서 지구를 파괴하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인구 과밀화 문제가 해결된 지구의 놀라운 재생 속도를 보여준다. 이런 풍경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가지고 자살 여행을 온 사람도 있고, 이들의 죽음을 보고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도 생긴다. 마지막 장면은 일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점프한 인류는 정보가 정말 불충분한 행성에 떨어졌다. 인류의 70%가 떠났지만 실제 도착한 인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점프한 곳에서 나무 등과 결합할 수도 있다. 이 과학 기술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점프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원시적인 도구를 만들고, 자신들이 살았던 문명을 다시 일구고자 한다. 하지만 자원이 너무 한정적이다. 다행이라면 중력이나 대기 상태가 지구와 같다. 이런 세부적인 과학 문제는 실제 이 소설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 미지의 존재와 싸우고, 공동체를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특히 미지의 존재인 스나크 사냥은 SF판타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작가의 설정 중 하나인 다른 지역으로 점프한 사람들 사이의 만남은 후반부의 재미다. 서로 오니와 식인이라 부르면서 경계하는 모습은 정보의 부재와 공동체의 결속이란 문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점프할 때 인류가 가지고 온 씨앗에 따라 경작할 농작물이 정해진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다 보니 공용어란 것이 만들어진다. 아직 한 세대 밖에 진행되지 않아 그 경계가 멀지 않다. 도구 등을 보면 원시 공동체에 가까운데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설정도 살짝 끼워 넣었다. 다음 이야기에서 어디까지 점프한 인류가 나아갈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세 곳의 사람들 이야기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는 같다.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는 행복과 희망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이 두 인류가 만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들의 과학 기술 차이가 어느 정도일지, 노아즈 아크에 대한 복수심은 세대를 지나면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빨리 다음 권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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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 허균에서 정약용까지, 새로 읽는 고전 시학
정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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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여덟 시인의 시론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책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허균,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을 넘어 이용휴, 성대중, 이옥까지는 알겠지만 이언진은 낯설다. 이 낯설음 탓인지 아니면 다른 시인 이야기에서 많이 나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가 많이 나온다. 시론을 다루면서 시인의 시가 한 편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정민의 글에 의하면 요절한 천재 시인이다. 아직도 시를 잘 모르는 나를 생각하면 이언진의 시가 지닌 매력을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론들은 모두 ‘나’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목소리로 낸다. 이 중에서 제일 이 부분을 강하게 표현하는 인물이 이용휴고, 정약용으로 넘어오면 원론적인 인간 공부로 넘어오면서 더 딱딱해진다. 책 전체가 분량이 많지 않고, 한 시인의 시론을 간략하게 다루다 보니 진중하게 앉아 집중하면서 읽어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의 시론 원문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저자의 이해로 풀이하는 방식이다. 이전 같으면 원문의 한자를 조금 해석해보려고 노력을 했을 텐데 점점 이런 노력이 사라진다. 당연히 한자 실력은 퇴보한다.

 

시 책을 읽다 보면 여덟 시인의 개성들이 간간히 보인다. 나이와 신분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언진이다. 역관에 비교적 젊은 그가 박지원의 호된 비평에 폭사했다는 글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울분을 조금은 이해한다. 그의 시가 지닌 재능을 염려한 선배의 에두른 비평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사후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따로 글로 지었다는 것을 보면 선배들이 그의 죽음을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아내가 그가 불 속에 던진 원고를 일부 건졌다는 이야기는 재밌는 에피소드다.

 

이용휴가 ‘나는 나다’라는 제목을 만들었다. 자신의 시를 짓겠다는 시인들의 시론을 읽다 보면 결국 그들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덕무와 박제가의 이야기는 서로 대비된다. 어린이와 처녀처럼 시를 짓고 싶은 이덕무의 순실함과 문체반정에 살짝 반격하는 박제가의 글은 개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성대중이 이언진의 병문안했을 때 부귀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사실 이 부분은 자신들의 생각을 토론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옥이 남녀의 정을 다룬 <이언인>을 내면서 고금의 시 형식들을 끌고 와 풀어낸 것은 그 시대의 완고함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정약용의 시는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이 한 편 있다. 전문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풍경을 잘 대변하는 그 유명한 <애절양>이다. 학창 시절 한문으로 이 시를 풀이해줄 때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강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어릴 때는 화려한 수식어에 눈길이 갔는데 이제는 그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간다. 며칠 전 읽었던 백석의 시를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남북 분단 이후의 시들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던가.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자신만의 표현으로 시를 지을 때 그 시가 더 빛나고 진정성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책은 나 자신이 좀 더 공부하고 읽는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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