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의 유령 에프 그래픽 컬렉션
베라 브로스골 지음, 원지인 옮김 / F(에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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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민 온 러시아 1.5세대의 성장 이야기다. 다른 문화 환경에 적응하고, 차별받지 않기 위한 아냐의 노력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주류에 포함되기 위한 노력들, 다른 사람과 달라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들, 이민자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마음 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작가는 이런 행동을 평가하지 않고 아냐의 말과 행동 속에 조용히 녹여내었다. 10대의 심리 상태를 아주 간결하게 표현하면서 한계선을 분명하게 지킨다. 그리고 후반으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지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농구팀 숀과 엘리자베스는 공인 커플이다. 잘 생기고 예쁜 이 커플을 보면서 아냐는 질투한다. 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등굣길에 이 둘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서 숲속 길을 걷다가 오래된 우물에 빠진다. 누군가가 찾아오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우물 속에 사람 뼈가 있다. 유령도 있다. 100년 전에 빠져 죽은 아이다. 아니 처음에는 유령의 모습을 보고 아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10대 소녀다. 유령이 지나가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자는 아냐를 깨워 도움을 받게 한다. 다시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온 것은 아냐만이 아니다. 유령도 같이 나왔다. 뼈 조각이 있으면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움직일 수 있다. 어떻게 그 뼈가 들어갔을까? 유령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아냐를 도와준다. 특히 시험 컨닝에서는 확실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숀의 정보를 알려주고, 그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더 만들어준다. 아냐 인생에 갑자기 빛이 비춰진다. 쇼반에게 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말했는데 쇼반은 숀의 나쁜 정보만 제공한다. 이 때문에 어쩌면 유일한 친구였던 쇼반과 멀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감정은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에밀리. 유령의 이름이다. 이 이름을 묻고 알게 된 것은 유령의 도움을 받고 난 뒤다. 그녀가 왜 그 우물에 들어갔고 죽게 되었는지 에밀리에게 듣는다. 그녀의 약혼녀가 1차 대전에서 죽었다는 사실까지. 이 살인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봐주겠다고 하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숀이다. 이런 아냐를 에밀리는 열정적으로 돕는다. 이때부터 유령의 모습이 조금씩 변한다. 이 형태의 변화는 심리와 욕망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숀과 엘리자베스와 함께 파티에 간 아냐는 아주 불편한 사실을 알게 된다. 밖에서 볼 때 완벽해 보이는 커플의 어두운 면도 같이. 여기에 유령의 폭주가 가세한다. 반전이 펼쳐진다.

 

십대 청소년들의 열등감과 불안감을 기본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날씬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고열량 음식을 버리고, 같은 이민자 출신인 다미를 멀리 한다. 자신의 성을 숨기기도 한다. 진짜 친구는 한 명밖에 없지만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녀가 이민 온 후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려주는 장면이 도서관에서 다미와 만났을 때다. 이 장면은 다시 다미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것을 예상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다미가 체육 시간에 도서관에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할 때 다미의 불안과 걱정이 살짝 드러나고, 그가 친구를 갈구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아냐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린다. 물론 다른 문화 환경이니 다르지만 짝사랑의 감정은 비슷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집에서 엄마에게 성질을 부리는 모습은 똑 닮았다. 시대의 변화를 담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이런 섬세한 감정과 행동을 작가는 세밀하고 길게 표현하기보다 간결한 그림과 장면 몇 개로 드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에밀리는 십대들의 심리를 잘 말해준다. 그것은 이해해주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이에 아냐는 자신이 경험한 다른 삶의 고민과 불안을 말한다. 그들도 자신과 다를 것 없다고. 이 부분은 이 만화가 한 소녀의 성장을 그린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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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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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데 무려 <베어타운> 그 이후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작가의 최고 작품으로 손꼽고 그 재미와 감동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다. 사실 이번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작 <베어타운>을 읽어야 한다. 물론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렇지만 전작을 읽고 이번 작품을 읽으면 그 재미와 감동과 여운은 더 오래간다. 전작에서 몇 명의 미래를 알려주지만 이 미래로 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빠져 있다. 삶은 바로 이런 과정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번에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베어타운 하키팀이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정치가 전면에 나선다. 정치인 리샤르도 테오가 바로 그다. 그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인맥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 인맥과 지저분한 정치 행동을 통해 뒤에서 목적을 달성한다. 그가 일을 이루는 과정을 보면 정치에 혐오를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지만 목적을 달성한다는 측면을 보면 아주 유능한 정치인이다. 그가 어떻게 페테르와 그 일당을 대립하게 만들고, 갈등하고 고민하게 만드는지 보여줄 때 현실 정치의 한 모습을 그대로 본다.

 

한 마을의 하키팀이 없어진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일까? 그렇다. 최소한 이 소설 속 베어타운은 그렇다. 베어타운 하키팀은 그들의 삶이다. 아이들이 자라면 하키팀 선수가 되길 바란다. 다른 삶이 있다고 해도 일순위는 하키다. 아맛의 친구가 프로게이머로 나아갈 때 그의 부모가 보여준 모습이 대표적이다. 그들의 삶은 갇혀 있다.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다른 삶이, 다른 스포츠가 있다. 하지만 삶은 공간 속에 묶여 있다. 그 공간을 박차고 나가려면 그 곳에 머물지 말고, 더 성장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결국 이 소설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하나의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비난하는 것이 더 쉽다. 마야의 사건이 일으킨 문제들을 비난자들은 기준점을 옮기면서 비웃는다. 남탓을 한다. 찌질하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한때, 아니 지금도 나에게 이런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이런 비난은 갈등을 불러오고, 갈등은 어떤 문제를 만들지 모른다. 순간적인 갈등의 폭발이 만들어내는 비극 중 하나가 이 소설에 나온다. 의도하지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이어지면서 벌어진 비극이다.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기억해야할 특별한 러브 스토리이진지도 모르겠다.

 

생존자. 마야는 자신을 그렇게 말한다. 학교에서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남겨진 쪽지와 문자와 댓글 속에서 아주 힘겹게 생존한다. 벤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마야에게 한 말에서 그녀가 얼마나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타인의 시선, 암묵적인 무시, 노골적인 욕설 등에 먹히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단어가 생존이다. 전작에서 그녀의 성공을 말했기에 잊고 있던 사실을 이번 소설에서 아주 잘 보여준다. 깨어지기 쉬운 아주 얇은 유리와도 같은 상태의 그녀를 보여줄 때 아나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아나는 큰 실수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순간의 실수다. 하지만 이 실수가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인터넷은 순간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녀가 올린 하나의 동영상은 베어타운에 폭풍을 몰고 온다. 작가는 결국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벤이를 믿고 좋아했던 그 일당들이 보여준 반응이 대표적이다. 마야가 아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도 그녀 자신이 피해자였기 때문에 겪었던 일을 아나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검은 재킷을 입은 일당에 대한 이야기가 이번에 전면에 나온다. 티무와 그 일당들이다. 훌리건이지만 베어타운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웃이다. 하나의 모습에서 나쁜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쁜 모습도 같이 본다. 정치인은 이것을 이용하고, 하키팀 단장은 이 문제로 고민한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이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잘 포착해서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눈시울을 붉힌 것도 이 대목들이다. 그 속에 우리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의 집을 찾아와 서로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진한 감동이 몰려온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궁금한 것도 있다. 베어타운과 헤어의 두 번째 경기 결과다.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상위 리그로 간 후의 이야기다. 아맛이 성공한 후 그가 자란 동네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 작가는 결코 장밋빛으로 그리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요약한다. 전지적 시점으로 미래의 삶 일부를 알려주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청소년들은 이 소설 속에서 점점 자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보도, 빌리엄도 조금씩 성장한다. 남탓하기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면서 생긴 변화다. 배크만은 말한다. “삶은 항상 공평하고, 항상 불공평하다.”고.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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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 - 오랑캐, 난을 일으키다
김은미 지음 / 채륜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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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이 돋보이는 역사 소설이다. 물론 작가의 상상력은 역사의 가능성을 살짝 열어 펼쳐보인다. 사실 이 가능성에 큰 무게를 두고 싶은 마음은 없다. 포로로 잡힌 한 여인이 경험하는 일들이 그렇게 크게 현실성 있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성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일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다만 이 소설 속에서 허임의 딸로 등장하는 윤성의 존재가 너무 큰 것은 시대와 상황에 비춰 너무 로맨스적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너무 유명한 장면이지 않은가.

 

호란이라고 하지만 조선의 사대부가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생긴 전란이다. 광해군의 외교 감각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반정으로 몰고 간 정치 세력은 굴욕을 당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사대주의가 백성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는 50만 노예란 표현에서 알 수 있다. 그 당시 조선의 인구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후금에서 청으로 발전하는 여진족의 발전은 단순히 한 위대한 지도자의 등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 국제 정세와 맞물려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작가는 이 부분을 글 속에서 아주 잘 녹여내었다. 사실 이 부분들을 읽을 때 소설이란 느낌보다 간결한 역사서를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허윤성, 봉림대군, 도르곤, 효장태후 등이 주요인물이다. 이 시대의 분위기를 가장 잘 요약해서 알려주는 인물은 도르곤의 노예로 잡혀온 량량이다. 여진족에서 속환되어도 관노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누가 지배자가 되어도 관계없는 민초의 속마음이다. 실제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것을 주장하는 것을 기득권층의 세뇌일 뿐이다. 물론 지배 민족의 일원이 된다면 다른 것을 더 누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는 것은 역시 백성이다. 역사서에 숫자로만 기록된 바로 그들이다. 전쟁은 이들을 숫자로 기록하고, 평화는 이들의 죽음을 하나의 기록으로 다룬다. 우리에게 평화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다.

 

누루하치, 홍타이지, 도르곤으로 이어지는 세대교체와 청의 명나라 정복 과정을 빠르고 간결하게 그린다.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 중요한 역사적 사실만 요약해서 집어넣었다. 이 과정 속에 네 사람들의 관계는 엮이고 꼬인다. 평민인 윤성을 옆에 두고 자신의 정신 질환을 돌보는 도르곤, 윤성의 대찬 모습에 위안을 얻는 봉림대군, 정략결혼으로 황제의 후비가 되었다가 태후까지 올라간 다위얼 등의 관계는 표면적인 로맨스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은근히 그 관계가 스며든다. 이 은근함이 어느 순간 폭발하는데 이것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뭐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역사의 의문을 작가의 상상력이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당시 동북아 국제 정세를 아주 잘 표현한 것이다. 이 시대를 처음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청의 도르곤을 주요 인물로 내세운 것은 실제 그가 명을 정복했기 때문이자 죽음에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르곤의 어머니가 죽게 된 이유와 그가 전쟁에서 느끼는 중압감을 질병으로 풀어놓고, 이 질병을 치료하는 인물로 초보 침술가 윤성을 등장시킨 것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작가의 이력에 한약학과 졸업과 허임에 대한 글을 쓴 것이 보이는데 이것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한때 북벌을 주장한 효종에게 강하게 끌린 적이 있다. 하지만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 주장은 단순한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실제 군대를 키워 청에 도전했다면 강희제 등으로 이어지는 청의 성세기에 조선은 두 번의 호란보다 훨씬 강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불운한 소현 세자의 삶은 이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 나라의 임금과 대제국의 실세에게 구애를 받는 윤성의 존재는 결국 사랑이란 감정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실제 한 여인이 역사의 전면에 나설 기회는 없고, 그 가능성도 없다. 효장 태후처럼 직접 권력과 맞닿아 있다면 다르겠지만. 이전처럼 몇몇 아쉬운 대목은 있지만 한 시대의 역사를 이렇게 재밌고 현실적으로 잘 요약하고 풀어낸 것은 박수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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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가족
오에 겐자부로 지음, 오에 유카리 그림, 양억관 옮김 / 걷는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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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었다. 에세이로 한정한다면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읽은 <개인적 체험>이나 이후 나온 몇 편의 소설은 솔직히 끔찍하게 재미가 없었다. 그 당시 나의 수준에서 그의 소설은 난해하고 천천히 그 문체를 따라갈 마음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우연히, 아니 전적으로 허영심 때문에 다시 읽은 소설과 단편집은 어렵게만 느껴졌던 오에 겐자부로의 장벽을 조금씩 허물어주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차분하게 음미하면서 읽고 싶은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에세이는 그의 장남 히카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미 다른 책에서 히카리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음악을 한다는 사실도 역시. 그의 소설 속에서 히카리를 등장시킨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에세이의 몇 편은 이전에 읽었던 소설의 기억과 맞물려 자전적 소설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의 소설에서 자신의 경험을 소설화한 것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간결하지 않은 문장과 난해한 문체는 집중력을 요구한다. 분량을 생각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역시 착각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시각이 예전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 에세이가 나온 1995년 일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 당시 나의 인식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지적 능력에 문제가 있고, 간질 증상까지 있다면 그 가족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단순히 힘들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머문다면 이런 에세이가 나올 수 없다. 여기에도 회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다양한 사람들 사례로 알려주고, 자신의 경험을 같이 녹여서 보여준다. 물론 이 과정이 힘들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히카리와 백화점에서 있었던 사연은 이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앞까지 잘 보여준다.

 

작가가 많은 부분에 공을 들이는 부분은 히키리가 음악을 한다는 것과 그의 독특한 표현법이다. 클래식 음악에 집중하면서 작곡을 하고, 이 책을 발간할 당시 이미 두 개의 CD를 내었다. 이 CD를 낼 때도 아버지는 자신의 감상을 그 속에 담아놓았다. 마지막에는 산토리홀에서 히키라가 작곡한 곳을 연주할 기회마저 얻게 된다. 이 사실을 둘러싼 강한 질타나 지적에 대해 그는 한 장애인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답변을 보여준다. 단순히 결과가 아니라 자식의 삶을 함께 경험하면서 성장을 본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물론 유명세가 한몫했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가족 이야기는 그의 소설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 에세이에서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같이 나온다. 히카리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큰 도움을 주었다면 그가 큰 후는 퇴행기에 접어든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또 다른 문제로 나타난다. 오빠 때문에 속 깊은 딸은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어머니는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할머니까지 돌봐야 한다. 이때 작가가 집에 있으면서 잠시 도와준다고 해도 이 일들 대부분은 아내의 몫이다. 그가 여행을 떠났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더 분명해진다. 그의 글이 우리를 즐겁게 만들어 줄 재료를 제공한 시간이 다른 가족에게는 또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유명 작가의 삶이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그의 작품들이 많이 팔렸겠지만 일상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쉽지 않다. 요즘 많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말해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글을 썼고, 예순을 앞둔 몇 년 동안 가족과 회복이란 주제로 이 에세이를 썼다. 자신들의 경험을 알리기 위해 방송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이 에세이에 그대로 녹아 있다. 다만 그 표현이 완곡하지만 담백하다. 그리고 이 에세이에는 그의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 실려 있다. 그의 아내란 사실을 모르고 그 그림을 볼 때 혹시 했는데 사실이었다. 작가의 장편 3부작 중 마지막 장편을 아직 읽지 않았는데 올해는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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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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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진 시리즈다. <부서진 대지> 3부작이 모두 휴고 상을 연속으로 수상했다. SF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런 수상 이력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한때 SF 소설이 많이 번역되지 않았기에 이런 수상작이 나오면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헌책방을 뒤지면서 찾아 읽었던 시절도 있다. 이제는 그 시절에 비해 이런 작품들을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꾸준히 내주는 출판사도 있고, 인터넷 헌책방에 가끔 올라오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으로 거래되기도 하는데 다행히 읽은 책들이 많다. 이제는 상대적으로 그 당시보다 열정이 식었지만 관심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흔히 생각하는 SF소설의 설정보다 오히려 판타지에 더 가깝다. 완전히 새로운 대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력한 초능력인 조산력을 가진 오리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간다. 에쑨, 다마야, 시에나이트가 바로 그들이다. 오리진은 훈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강력한 능력자의 경우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오리진을 모아 교육을 시키는 곳이 펄크럼이다. 이들의 강력한 능력을 제어하는 무리가 있는데 그들은 수호자라고 불린다. 어린 능력자 다마야를 찾아서 펄크럼으로 데리고 간 인물이 바로 수호자 샤파다.

 

오리진의 조산력은 황당한 능력이다. 약간의 제약이 있지만 그 능력이 발휘되면 한 도시가 파괴될 수 있다. 실제로 이 소설 속에서 오리진이 능력을 발휘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가끔 나온다. 통제되지 않는 능력이 만들어내는 비극은 한두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십만 단위의 사람이 죽기도 한다. 이 숫자와 능력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왜 이런 종족을 작가는 등장시켰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었을까? 작가는 이 새롭게 창조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단어를 만들어 내었고, 이들을 둘러싼 냉대와 음모와 숨겨진 역사를 같이 하나씩 풀어낸다.

 

아들이 오리진이라는 사실을 알고 죽인 남편을 둔 에쑨, 학교에서 친구가 놀린 것 때문에 능력이 발현한 다마야, 펄크럼에서 능력을 키워가면서 고위직으로 가려는 시에나이트 등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순환적으로 등장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중반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머릿속에서 윤곽이 잡힌다. 향이라는 개념과 쓰임새라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고, 이들을 로가라고 부르면서 천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말한다. 분명 이들이 지닌 조산력은 통제 가능할 때 축복이다. 하지만 감정이 조절되지 않을 때는 재앙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시에나이트다.

 

시에나이트는 알라배스터의 씨를 받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알라배스터는 펄크럼이 교배를 통해 만들어낸 열 반지 능력자다. 시에나이트는 네 반지를 끼고 있다. 이 반지의 개수가 흔히 판타지에서 말하는 몇 서클 마법사와 비슷하다. 펄크럼은 이렇게 인위적인 성교를 통해 오리진을 생산한다. 열 반지 능력자인 알라배스터의 아이들을 얻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둘의 첫 만남과 성교 장면은 조금 낯설었지만 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고 이 둘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면서 하는 행동과 만나게 되는 상황은 그 대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에쑨. 두 아이의 엄마다. 오리진임을 숨기고 있었지만 아들이 이 능력을 보여줬기에 남편에 의해 죽는다. 이 상실감은 그녀를 끝없이 우울하고 쳐지게 만든다. 만약 다른 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삶의 의지가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향은 큰 흔들이 생기면 무너진 향의 향민들 공격과 유입을 막기 위해 튼튼하게 세운 벽 뒤에서 향을 방어한다. 에쑨이 남편과 딸을 찾기 위해 나가겠다고 했을 때 오리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잘 드러나고, 그녀의 능력이 불러온 재앙을 살짝 던져놓는다. 그녀의 딸 찾기 방랑은 새로운 존재인 스톤이터와 만나게 하고, 소속된 향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다.

 

다마야. 그녀를 통해 수호자의 탄생 전설이 알려지고, 펄크럼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능력을 발현할 때 주변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게 된다. 어린 오리진 소녀가 합숙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새로운 만남은 이 거대한 시리즈의 가장 큰 의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알려진 역사의 이면을 파헤치는 것은 알라배스터이지만 알려진 역사를 알려주는 역할은 다마야가 한다. 수호자 집단의 힘과 쓰임새가 얼마나 중요한 신분제 역할을 하는지도 보여준다. 다마야가 지도자 신분의 비노프와 함께 작은 모험을 떠났다가 발견한 것과 경험한 것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첫 번째 연결 고리다.

 

기존 과학 지식으로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스톤이터나 하늘을 떠돌아다니는 오벨리스크의 존재 등은 비과학적이다. 오리진의 조산력도 마찬가지다. 육 개월 이상 겨울이 계속되면 다섯 번째 계절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이번 책에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마 이 계절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조금씩 나온다.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는 도구로 돌이 이용한다거나 승자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설정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솔직히 이 첫 권만 보고 제대로 이 세계의 감을 잡지 못했다. 복잡한 감정과 깊고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낯설 세계에 한 발짝 다가갈 뿐이다. 다음 권을 읽고 나면 에쑨, 시에나이트, 다마야의 삶을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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