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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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추리소설이 아니라고 말한다. 좁은 의미로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추리소설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법정소설에 한 개인의 심리적 변화를 이보다 잘 표현한 작가의 다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 다른 작가라고 해도 흔하지 않다. 읽으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을 만나면서 몇 번이나 놀랐고, 무심코 넘긴 뒤쪽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 도달하는 과정은 또 다른 놀람의 연속이었다. 마지막을 덮는 순간에 이르게 되면 작가 최고의 작품이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현재 사법 농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덕분에 법원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소식을 듣는다. 전직 판사들이 법원을 나와 변호사가 되었을 때 하는 말 중 하나가 사회 경험이다. 처음 판사가 되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돌아보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회 경험을 쌓은 뒤 판사가 되었다면 더 좋은 판결을 남겼을 텐데 하고.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부장판사 현민우와 배석판사 민지욱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현민우는 민지욱에게서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더 많은 경험이 쌓이면 자신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합리적 의심. 살인 사건 재판에서 증거가 불충분할 때 판사들이 이 용어를 사용한다. 증거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현실에서 확실한 증인이나 증거가 없다면 단순히 논리만 가지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 요즘 나오는 판결의 몇 가지는 이런 증거보다 논리의 일관성 등에 의한 것이 상당히 있는 것 같다. 특히 성폭행 등과 관련해서는 시간이 너무 흘러 그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민 판사가 말했듯이 범인 한 명을 더 잡는 것보다 선한 한 사람의 피해가 없는 쪽으로 가야 할 텐데 현실에서는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민 판사가 현 부장판사에게 논리적으로 달려들 때 내놓은 것도 바로 이것이다. 감성과 이성의 충돌은 때로는 감성이 이성의 옷을 입었을 때 본질이 흐려지기도 한다.

 

젤리 살인사건은 연인 사이의 남녀가 모텔에 들어간 후 남자가 젤리를 먹고 질식한 사건이다. 바로 죽었다면 더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겠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후 며칠 후 죽었다. 이후 연상의 여자는 3억 원의 보험료를 수령했고,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가족의 의뢰로 수사가 더 이루어져 살인사건 재판이 벌어졌다. 이 재판은 현 판사의 첫 번째 형사재판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법원 시스템 중 일부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보는 판사 세 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설명해준다. 물론 현 판사가 과거 경험했던 황당한 판사의 경우라면 판사 세 명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 들지만.

 

김유선. 젤리 살인사건의 피고다. 그녀와 남친이었던 피해자 이준호의 관계를 누나가 설명해줄 때, 그녀가 보험에 가입한 이유 등을 설명할 때, 다급하게 모텔 프론트를 찾아갔을 때, 그녀의 증언이 몇 번이나 바뀌고 발전했다고 말할 때 의심의 씨앗은 점점 자란다. 하지만 피해자는 화장해서 시체가 사라졌다. 남친 이준호가 죽은 이유가 질식이 분명하지만 충분한 검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이 부분이다. 질식사의 경우 흔적이 남는데 이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야기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합리적으로 그녀가 법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법적으로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판사의 고충이 생기는 부분이다. 그런데 현 판사의 판결을 보는 순간 놀라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사실 이 소설은 다른 법정소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이야기를 소설 속에 녹여내면서 판사들 생활과 생각과 문제점 등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자신처럼 승진에 뜻이 없는 사람과 대비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은근히 사법부를 비판한다. 한국 재판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판례를 따른다는 것에 가끔 일침을 가한다. 실제 주변에서 1980년대 초 판결에 나온 배상금액을 2000년대 초반에도 그 한도액으로 정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고지식하고 사회 변화에 무감각한지 놀랐다. 징벌적배상이 왜 필요한지는 요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생각하면 더 분명해진다. 더 싼 값이니 그들이 굳이 더 많은 비용을 쓸 필요가 없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생각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전반부가 젤리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법정소설에 충실했다면 후반부는 판사 한 사람의 삶을 심도 있게 따라간다. 자신의 판결 때문에 배석판사의 눈치를 보고, 자신이 예전에 내린 판결에 고마워하는 사람과 그 시대의 문제점 등도 같이 보여준다. 그와 갈등을 일으키는 판사 동료도 보여주면서 법원이 하나의 직장이자 사회임을 나타낸다. 판사의 고민과 작은 실수가 빚어낸 일이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 얼마나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지 심리적으로 파고들 때 그 긴장감은 더 고조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왜 현 판사의 아내를 그런 악녀로 표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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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24
김유철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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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고생이 자살을 했다. 그녀가 죽은 이유를 검찰은 성폭행 때문이라고 한다. 가해자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살인죄로 처벌하려고 한다. 그런데 진실은 다른 곳에 있다. 여고생 해나가 근무했던 콜센터에 문제가 있다. 흔히 감정노동자라고 말하는 콜센터 직원이었던 해나가 왜 자살까지 갈 수밖에 없었는지 작가는 김 변호사를 통해 차근차근 보여준다. 이 과정을 보면서 혹시 내가 이전에 불만을 토로했던 콜센터 직원들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나의 감정과 그들의 업무가 충돌할 때 나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왜 이런 어린 여고생을 이런 힘든 일에 투입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때 우리 사회의 밑바닥 중 하나를 본 느낌이다.

 

김 변호사는 후배 조 변호사의 의뢰로 한 살인사건을 맡는다. 위에서 말한 사건이다. 재석을 만나 해나가 죽기 전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유방암 수술을 받은 조 변호사의 자료를 통해 해나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된다. 콜센터에서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들을 뽑아 힘든 일에 투입한 이유도 알게 된다. 그들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다. 학교는 언제나 취업률 100% 달성이란 목표에 목을 맨다. 언제나 만나게 되는 학생의 인권은 여기서도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자신의 안위가 우선이다. 너무나도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는 학생의 바람을 학교는 짓밟는다. 출구가 막힌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최악이 자살이다. 저수지를 보면서 해나가 던진 한 마디는 지금도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답을 쉽게 알 수 있는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솔직히 긴박감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이 소설 속에서도 쫓고 쫓기는 긴장감이나 치열한 법정 싸움이 펼쳐지지 않는다.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한 꺼풀씩 해나가 마주한 진실을 밝혀낼 뿐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것과 같다. 읽으면서 내가 잘 몰랐던 사회의 한 모습을 들여다보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이런 정보만 제공한다면 소설일 필요가 없다. 원래 작가가 논문으로 발표하려고 했다고 한 것처럼 논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이런 문제를 극적으로 구성해서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 수 있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해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비법들이 인터넷에 난무한다. 내가 아는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인터넷 회사에 가입해서 그쪽에서 처리하게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문제의 회사인 콜센터 해지방어팀은 직접 해지하려는 고객을 대응하기 위한 팀이다. 해지를 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이라면 왜 고객들이 그런 반응을 하는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이다. 물론 정도가 심한 사람이 많다. 눈앞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고객이 왕이란 잘못된 인식이 만들어낸 막말과 욕설과 비하 등은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다. 나 자신도 실제 이것과 다르지만 비슷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이때의 스트레스는 지금도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만약 이런 일이 매일 여러 번 반복된다면 어떨까?

 

살인과 변호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법정도 나오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것은 한 콜센터 여직원의 죽음이 중요한 내용이다. 그런데 이 죽음의 원인이 법 앞에 올려진 것은 아니다. 그녀가 믿고 의지했던 선배가 살인죄를 적용받는지를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그녀의 자살 원인이 중요한 안건이다. 이 원인이 알려지면 그 비난의 화살이 대기업 본사로 향할 수 있다.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안다. 최근에도 얼마나 많은 외주 직원들이 업무 도중에 삶을 마감했던가. 그리고 왜 이들이 그렇게 스트레스 강하고 힘든 직장을 떠날 수 없는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사회 인식이나 통계 등은 이런 이면을 비춰줄 생각이 없다.

 

하나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는 한 사람만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일이 힘들어 떠난 콜센터 직원들은 이때 좋은 지원군이 된다. 실제 이들의 도움이 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반면에 조직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해나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고, 거짓된 소문을 퍼트린다. 내부고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나의 사실 중 진실로 밝혀졌을 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죽은 팀장을 위해 한 행동이다. 가장 열불 나는 장면은 해나의 담임이 보여준 반응이다. 그런데 이 담임을 보면서 우리의 선배들이 떠올랐다. 아니 나도 포함하자. 실제 많지 않은 분량이라 조금만 시간을 내면 금방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많은 생각거리와 여운을 남긴다. 이 작가의 다른 책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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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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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파라다이스 가든> 이후 첫 장편 소설이다. 희미한 기억 속에 상당히 재밌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무려 10년 이상이 지난 후 다음 작품이 나왔다. 이런 경우 흔하지 않은데 상당히 반갑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우주인에 대한 이야기다. 중력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지구라는 땅에 묶여 있다. 이 땅을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비행 역사에 잘 나타난다.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지구의 중력을 벗어났다. 달까지 갔다. 어릴 때 생각하면 지금쯤 달 여행이 상용화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가는 이런 우주인에 대한 도전을 그려내고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은 이소연 박사다. 그녀가 우주인이 되기까지는 많은 도전자와 경쟁해야만 했다. 방송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 자신이 별로 이런 홍보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러시아 우주선을 빌려 타고 가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 당시 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 이 소설의 작가다. 물론 작가는 이소연 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소설에 필요한 질문을 그녀에게 바로 던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많은 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하지만 이 기억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쌓여 적지 않은 부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샐러리맨 연구원 이진우가 주인공이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꿈꾸며 이 선발 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지원자들 중 한 명이다. 이 우주인 선발 과정은 방송으로 나왔고, 그가 최종 인원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얻는다. 실제 방송을 보지 않은 나도 이소연 박사를 기억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회사원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단순히 그 혼자만 다루지 않고 함께 경쟁하는 사람들도 같이 보여준다. 작가는 다른 지원자의 생각을 나중에 공개된 인터뷰 내용을 인용하면서 보여준다. 아마도 가장 치열한 경쟁 상태에서 지원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이 인터뷰가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하나의 단계를 넘어갈 때마다 우주인에 가까워진다. 고비도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신체검사다. 언제 어떤 검사를 했는지에 따라 실험에 영향을 미친다. 이 사실을 안 이진우가 강력하게 재검을 요청하는 모습은 흔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강력한 경쟁자가 같이 탈락한 상태에서 이런 정보를 알려줄 때 그가 고민하는데 아주 현실적이다. 이 소설에서 자주 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갈등과 고민들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목적지가 눈앞에 보일 때 이런 유혹은 더 강해진다.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우주인이 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될 수 없다. 최소 한 명, 많으면 두 명이 최선이다. 중반 이후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을 때 최초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를 분명하게 예를 들면서 보여준다. 기록의 세계에서 두 번째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최초보다 중요한 것은 우주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 꿈에 도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열정은 일일이 나열할 필요가 없다. 단지 몇 명만 예를 들어 보여주고, 이 경쟁을 마지막까지 펼치는 사람들의 모습만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단순히 경쟁 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기도 한다. 가슴 훈훈하지만 아슬아슬한 장면들이다.

 

한국 최초 우주인이 현실에서 누구인지 안다. 하지만 소설은 끝까지 이 사실을 숨긴다. 중간에 탈락한 것 같은 장면은 보여주지만 앞에서 말한 재검 등을 통해 이진우는 부활한다. 연구소 직원인 그가 직장에서 겪게 되는 인사 문제는 공간이 바뀐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력과 열정과 의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실제 훈련 과정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경험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많은 부분 피상적이었던 훈련 테스트 등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해소되었다. 현재 과학이 지닌 한계도 분명하게 보인다. 내가 어릴 때 꿈꾸었던 우주여행이 어려운 이유도 알 수 있다.

 

꿈은 현실에서 시작한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현실이 사라지지 않는다. 중력을 벗어나 우주로 나갔다고 평생 그곳에 살 수 없다. 먼 미래에 중력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우주로 나간다고 해서 자신의 삶에 당장 무언가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돌아와야 한다. 무중력에서 늘어난 몸은 중력의 힘에 의해 제자리를 찾고,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선발 과정이 끝나고 누군가가 우주로 나갔지만 우주에 대한 새로운 꿈을 꾸는 누군가는 또 있다. 나 자신도 이 선발 과정과 우주선을 타고 나간 사람을 조금은 삐딱하게 봤는데 이 소설은 읽으면서 괜히 미안해진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과 의지에 박수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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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8 - 에이 설마~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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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이 시리즈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꾸준함에 비해 나의 기억력은 점점 퇴보하고 있다. 만화를 보면서 등장하는 동물들의 과거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아 그들이 내뱉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생긴다. 최근에 등장한 동물이라면 그래도 조금 낫다. 그리고 변함없는 콩고양이들과 두식이의 활약은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이들이 협력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때 그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개와 고양이의 협업은 높이와 힘과 목적이 결합한 결과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우~ 하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편에 등장한 폭군 같은 그레이가 왜 개들을 공격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이번 이야기에 나온다. 고양이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구나 하고 내심 놀란다. 그레이가 폭주할 때 몰래 뒤따라간 두식이는 섬세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한다. 이 사연이 나온 후 그레이가 보여준 행동은 그냥 상냥한 고양이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두식이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집밖의 활동 대부분을 두식이가 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식이를 돌보는 아빠가 비옷 등을 산 후 산책을 나가면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에피소드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내복씨의 모자를 쓴 후 모습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번 에피소드 중 하나가 다이어트다. 엄마와 두식이가 그 대상이다. 한때 고양이와 두식이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엄마도 이제는 완전히 적응한 것 같다. 아빠가 엄마와 두식이를 보면서 닮았다고 할 때 속으로 웃으면서 과연 이 둘의 다이어트가 성공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결론을 살짝 말하면 당연히 실패다. 사랑받는 개가 귀여운 몸짓을 할 때 그것을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엄마가 먹는 것을 참는 것도. 두식이가 콩고양이들과 함께 간식을 찾아다닐 때 보여주는 행동은 또 다른 재미다. 이들의 협력이 일어나는 장면도 대부분 이때다.

 

첫 몇 편을 읽을 때 가장 걱정했던 것은 할아버지의 생존 여부였다. 현재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는 듯한데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80세 생신을 기념하기 위해 가족 식사를 떠났다는 말에 조금 놀란다. 요즘 80살은 아직 정정할 나이이기 때문이다. 내복씨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 콩고양이들과 두식이가 이러저리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다행히 돌아와서 많은 동물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양이 집사인 딸이 할아버지 없는 동안 할아버지가 어떻게 이들을 돌봤는지 보여줄 때 그 포용력에 다시 놀란다.

 

두식이가 개들이 노는 곳에 갔을 때 보여주는 반응은 예상외다. 친구들처럼 잘 놀 것 같은데 고양이와 다른 행동에 놀란다. 콩고양이들이 집사에게 애정 어린 손길을 받는 것을 보고 신발장 위에 올라간다.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장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의 기억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다양한 종의 동물들이다. 그들의 의인화된 표현들은 이 만화를 더욱 훈훈하게 만든다. 특히 할아버지 내복씨와 관련해서 이것이 아주 잘 나타난다. 복잡한 이야기도 아니고, 화려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가족의 행동과 마음에 잊고 있던 감성을 떠올린다. 계속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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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 내 기억이 찾아가는 시간
하창수 지음 / 연금술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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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은 좋은데 내용은 어렵다. 이런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더 어려울 수 있다. 작가가 인용한 문장들과 그가 설정한 과학 기술 등을 이해하려면 제목처럼 미로 속을 헤맬 수 있다. 가까운 미래인 2041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뉴사이언스 소설이라고 하는데 세계의 변화가 너무 심하다. 물론 이런 급격한 변화가 가능하다. 이 가능성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데는 급속한 과학의 발전이 한몫했다. 중국의 몰락 이유를 사막화라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20년 만에 가능할까? 그리고 이 몰락을 중국이 그대로 받아들일까? 현재 중국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미로. 이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아름다운 길(美路)이란 의미와 미로 찾기에서 말하는 미로(迷路)다. 설정 속 미로는 천재형이다. 그의 아버지 윤승준 박사는 과학자보다 소설가로 더 유명하다. 필명은 닥터 클린워스다. 재밌는 설정 중 하나는 닥터 클린워스의 소설을 원전 삼아 쓴 혼성모방 소설이 더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작가는 데일 볼룸이란 영국 작가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돌리는 수준을 넘어 새롭게 해석하고 이야기를 더 멋지게 만든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보다 더 귀중한 존재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생존 작가를 이렇게까지 평가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미래의 한반도는 통일되었다. 세계는 크게 두 개의 권역으로 나뉜다. 미국과 유럽이다. 중국이 몰락하면 이렇게 권역이 나뉠 수밖에 없다. 통일 한국의 서울은 자유구역으로 바뀌고, 원산은 첨단산업도시가 된다. 다국적기업들이 원산에 모인다. 슈퍼퓨처사도 이곳에 회사를 둔다. 미로가 일하는 곳이다. 미로가 하는 일은 그의 아버지가 소설에서 주장한 스피릿 필드를 구현하려는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서 작은 스피릿 공명 위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조금씩 입력한다. 조금씩이라고 하지만 그 데이터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이런 작업이 가능한 것은 슈퍼퓨처사의 회장이 아버지의 글에 감명 받은 것도 있지만 돈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시간과 죽음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14년 전 죽은 아버지로부터 온 메일, 아버지의 의문사, 그리워하는 죽은 친구 유리, 유령 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이상한 존재 등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여기에 죽은 사람의 혼령과 만날 수 있는 ADM이란 장치가 등장하여 더욱 미로 속을 헤매게 한다. 후반으로 가면서 이 장치의 존재가 더 큰 의미로 다가오고, 닥터 클린워스의 꿈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작가는 작가인 닥터 클린워스의 소설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복잡하고 풍성하게 만든다.

 

작가는 인턴벤션이란 설정을 통해 작품에 강하게 개입한다. 이 설정을 위해 프롤로그에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건 2019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인 쓰인 것은 2041년이다.”라고 말한다. 출간 작가와 쓴 작가가 동일한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작은 장난을 친다. 인턴벤션의 과도한 개입은 미로의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고, 작가의 주석들이 이야기 속에 난입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가 설정한 세계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주지만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한다. 이야기 사이마다 끼워드는 대신 가끔 짧은 한 장을 통해 한꺼번에 설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다른 작가들이 보통 사용하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지만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재밌게 만든다. 키가 큰 해커 큐릭과 유리의 동생 마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통해 이 가까운 미래의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되고, 미로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그리고 작가가 얼마나 과학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도 보여준다. 인상적인 것 둘을 꼽으라면 달리는 기차에서 공중으로 던진 공이 떨어지는 이야기와 마리의 투명인간 프로젝트다. 진보와 발전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과학과 철학을 이야기 속에 녹였다. 하지만 몇 가지 설정과 모호한 마무리 등이 여운보다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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