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탄두리
에르네스트 판 데르 크바스트 지음, 지명숙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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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예상하지 못한 엄마가 등장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우리의 엄마들 모습이 겹쳐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예상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의 억척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인도 엄마들은 모두 이런가 하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소설 중간에 아버지가 절대 인도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인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가 보여준 수많은 행동과 흥정과 구입 등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이런 억지가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왠지 모르게 웃게 된다. 슬며시 가슴 한 곳으로 공감할 부분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가방 두 개를 들고 그녀가 네덜란드에 왔다. 간호사란 직업이 그녀를 이곳에 오게 한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우리의 간호사들이 독일에 간 것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그녀는 작가의 아버지를 만나고, 그의 청혼을 받아서 결혼하다. 그런데 이 결혼은 아버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다. 억척스럽고 너무나도 검소하고 쉴 새 없이 닦달하는 그녀 앞에서 너무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병리학자가 되어 집에 와 밥을 먹을 때 시체 냄새 때문에 옆구리에 팔을 붙이고 식사를 해야 하고, 집에서 필요한 논문을 읽을 수 없어 화장실에서 몰래 읽어야 한다. 그러다 들키면 논문이 갈가리 찢어진다. 화장실에 책 들고 들어갈 때마다 아내가 하는 말이 떠올라 순간 움찔했다.

 

돈 못 벌어온다고 늘 구박받는 아버지를 인도의 직업군과 비교해서 말한다. 처음에는 두 나라의 경제 수준이 얼마나 차이 나는데 하면서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민 그 수준을 네덜란드로 옮기면 달라진다. 엄마 억척스러운 노력과 열정은 집을 살 때, 이사할 때 흥정으로 잘 드러난다. 지적 장애가 있는 형과 함께 다닐 때 그녀가 보여준 억지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아들이 공짜인 것은 이해하지만 동행자인 자신까지 요구하는 것은 순 억지다. 그런데 이것이 통한다. 물론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은 그 모든 시선을 견뎌야 한다. 이런 상황에 함께 있지 않았다고 다행이라고 말하는 작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엄마의 출생과 첫 사랑 이야기는 그녀도 한때 여자였음을 잘 보여준다. 그녀가 엄마임을 가장 보여주는 것은 큰 아들이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이다. 아들의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조그마한 가능성에 얼마나 큰 희망을 걸었는지 보여줄 때 아주 잘 드러난다. 기적을 바라고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곳으로 형과 함께 간다. 물론 이때도 그녀의 흥정과 억지는 결코 줄지 않는다. 호텔에 머물 때 사환이나 기차역 경찰 등도 그녀의 황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만다. 읽으면서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 정도다. 뭐 덕분에 아주 유쾌하게 읽게 되지만.

 

엄마가 할인에 약한 모습을 보여줄 때 또 움찔했다. 내가 싸다고 산 수많은 책들(헌책 포함)과 아내의 쇼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료를 좋아하는 모습에 공감하고, 그 무료를 위해 감독관까지 된 그 순수한 욕망에 놀란다. 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엄마의 엄청난 행동력에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캐나다에 가서도 이런 행동력은, 어떻게 보면 갑질(?)은 멈추지 않는다. 경비원을 자신의 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인도인이었기에 가능한 것일까? 작가가 인도의 이모집에 갔을 때 본 장면들을 생각하면 약간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순히 엄마와 자식의 관계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왕할머니나 삼촌 이야기도 있다. 인도에서 만난 이모들은 또 어떤가. 장애가 있는 첫째 형 이야기도 큰 재미를 준다. 이렇게 다양한 가족들이 한 장씩 차지하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둘째 형 이야기가 너무 없다는 것이다. 이슬람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과 몇 가지 가족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희미하다.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이 둘째 형의 활약(?)도 보고 싶다. 물론 엄마의 밀방망이가 휘둘러지는 모습은 당연히 기다려진다. 그리고 저자의 어머니가 명백한 허구라고 한 말에 동의한다. 사람들은 늘 자산의 참 모습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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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개 장발
황선미 지음 / 이마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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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황선미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이렇게 적으면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것 같지만 딱 한 권 읽었다. 그 유명한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그때는 이 동화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다. 내가 읽은 후 몇 년이 지나자 아주 유명해졌고,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졌다. 솔직히 그 당시 얼마나 재밌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아내에게 권해서 읽게 했더니 아주 재밌다고 했던 것만 기억난다. 아마 그때는 지금보다 더 한정된 책에 빠져있을 때라 가볍고 빠르게 휙~하고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 뭐 지금도 가끔 그렇게 책을 읽는 날이 많지만. 하지만 황선미란 이름은 나에게 각인되었고, 이 신간에 눈길이 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완전 신작은 아니다. 이미 두 차례나 나온 적이 있다.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하니 그 책들에는 그림까지 실려 있다. 재밌는 것은 같은 출판사인데 그림을 그린 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출판사가 바뀌면서 그림이 빠졌는데 어떤 이유가 있는지 조금 궁금하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장발이 삽살개인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그림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이런 그림들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이전에 헌책방 순례 당시 작가의 이름을 보고 산 책들 중 한 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시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장소도 분명하지 않은 시골 마을이 무대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가 살았던 평택집이 무대인 것 같은데 이런 공간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탈바꿈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장발은 고물상을 하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장발은 그 할아버지를 목청 씨라고 부른다. 장발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검은 색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런 다름이 목청 씨가 이름을 붙어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힘이 약하고, 다른 형제에게 치여 어미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젖을 먹지만 형제들과 그렇게 친하게 지내지는 못한다.

 

이야기는 한 암컷 개가 태어나서 자라고, 강아지를 낳고, 죽을 때까지 과정을 다룬다. 이 과정 속에서 장발을 놀리는 늙은 고양이도 나오고, 장발과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는 목청 씨가 있다. 장발의 일생을 통해 우린 아주 현실적인 시골개의 모습을 본다. 강아지가 태어나면 그 새끼를 팔고, 씨어미가 될 개만 남겨두는 평범한 과정이다. 물론 복날에 일어날 수 있는 장면은 이 소설 속에서는 빠져있다. 개장수가 집주인 몰래 약을 탄 고기로 던져주고 개들을 실고 달아나는 장면은 장발의 활약 덕분에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친다. 마지막에 장발이 물고 온 신발 한 짝은 하나의 복선이 된다.

 

강아지들이 이빨이 간지러워 목청 씨 손자의 새 신발을 물어뜯는 것이나 약친 먹이를 먹고 죽는 것 등은 이전에는 그렇게 낯선 모습이 아니다. 집밖으로 나가 마을을 돌아다니고, 동네 개와 싸우고, 새끼를 밴 후 이 새끼들이 팔려나간다. 새끼들이 팔려갈 때마다 장발은 구슬프게 운다. 시골 마을에서 이 개들은 우리가 요즘 말하는 반려견이니 애완견이니 하는 것과 달리 하나의 자산이다. 태풍에 지붕이 날아갔을 때 목청 씨가 내뱉은 말에 이것이 아주 잘 드러난다. 물론 오랫동안 같이 살다보면 자산 이상의 감정이 쌓이지만 현실은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강아지 한 마리의 일생이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감정들은 그 이상이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이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자신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거칠게 저항하는 모습들은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 우리 또한 운명이니 하면서 이렇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장발의 대단한 모험을 다루지도, 목청 씨와의 진한 관계를 파고들지 않지만 그 일상과 현실이 어느 순간 쌓이고 쌓여 마지막 장으로 오게 되면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오래된 친구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큰 울림으로 울리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진한 여운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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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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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없는 출생이란 부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소설의 제목인 <XX>는 여자 염색체를 의미한다. 남자 없이 아이를 가지는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자의 난자와 난자를 결합해서 인공수정하는 기술이다. 여자에게 Y염색체가 없다보니 이 경우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모두 여자다. 이런 몇 가지 과학적 설정을 해놓고, 이 실험에 참가한 한 커플을 중심에 둔다. 이 레즈비언 커플은 줄스와 로지다. 줄스는 지방신문 기자고, 로지는 서점에서 일한다. 물론 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사생활은 파괴된다.

 

레즈비언이 아이를 가지는 방법은 현재까지 하나밖에 없다. 남자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하는 것이다. 로지는 아기를 가지고 싶지만 줄스는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크레타 여행 중 만난 한 가족을 보고 줄스의 마음이 바뀐다. 이것과 동시에 포츠머스 대학에서 여성들의 난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이 가능하다는 인터뷰가 나온다. 이 커플에게 이 소식은 하나의 계시와도 같다. 대학에서 임상실험 대상자를 모을 것이란 것을 알고 열심히 준비한다. 공지가 떴을 때 지원서를 열심히 작성한다. 1차 대상자가 되어 인터뷰에도 참석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임상실험 대상 2커플 중 하나가 된다. 이때만 해도 이들은 아주 행복했다.

 

난자와 난자의 인공수정은 당연히 대중의 반감을 불러온다. 종교계와 보수 정치인들은 이것을 선두에서 반대한다. 반대 시위를 하고, 언론은 이 실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어한다. 처음 줄스의 신상이 알려졌을 때 한 언론이 찾아와 고액을 제시하면서 독점을 원했던 것도 이 정보가 대중에게 먹힐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론의 생리를 잘 안다고 생각한 줄스는 이것을 거절한다. 자신들과 태어날 아이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싶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반면 로지는 이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 정보가 뉴스화된 후 이들은 대중의 시선 아래 놓이게 된다. 집앞은 언제나 언론사가 머물고, 파파라치가 그들을 24시간 따라다닌다. 익명성이 사라진 삶이 시작된다.

 

누가 이들의 신상 정보를 언론에 알렸을까? 줄스는 로지의 남성 친구 앤서니를 가장 의심한다. 사실 이런 내용이 나올 때만 해도 이런 정보와 기술을 둘러싼 일반적인 스릴러 정도로 이 소설을 이해했다. 하지만 금방 그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갈등이 다른 곳에서 생기면서 예상한 전개로 이어지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거대한 비밀을 파헤치거나 공포를 자아내는 설정이 있거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무언가가 등장하는 소설이 아니다. 새로운 인공수정 기술을 둘러싼 한 커플과 그 주변과 이를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담고 있다. 내가 이것을 깨달은 것이 너무 늦어 줄스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쉽다.

 

난난수정으로 임신한 커플의 일상과 그 일상에 끼어든 사람들 혹은 언론의 모습을 담고 있다. 보수 정치인은 이것을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외치고, 일부 10대들은 레즈비언 커플을 공격한다. 원색적이 욕설이 난무하고, 경멸의 시선이 이들에게 와 닿는다. 만약 이 난난수정이 허락되면 남자 없는 사회가 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여자들만의 세상이 되면 전쟁이 사라질 것이란 말도 나온다. 물론 이 두 주장 모두 사실이 아니다. 남자 없는 세상이란 말에 예전에 본 일본 애니에서 남자만 사는 행성과 여자만 사는 행성을 다룬 것이 생각났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극단적인 설정도 가능하겠지만 동성애자 비율을 생각하면 현실성은 더 떨어진다.

 

하나의 과학기술이 등장했을 때 사회는 그것의 의미를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해석한다. 이제는 흔한 일이 된 인공수정도 예전에는 금기시 된 시술이었다. 사회의 인식이 이것을 따라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일반적 인공수정과 달리 이 기술은 아직 유전적 문제의 가능성을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다. 실제 현실화되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사고 실험을 통해 하나씩 다루고 있다. 당사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반응은 사회 인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줄스의 심적 변화들은 아주 현실적이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아이를 무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란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감성과 현실의 차이와 스트레스는 굳건한 커플의 삶을 뒤흔든다. 선택을 후회하고,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는 계속 생긴다. 이 커플의 신상 정보는 계속 유출되고, 다른 커플의 유산은 대중의 관심을 다시 그들로 끌고 온다. 파파라치 때문에 이사한 이웃과 충돌하고, 줄스는 직장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견뎌야 한다. 이런 과정 속에 내 머릿속은 늘 반전을 예상한다. 앞에서도 말한 재미를 뺏는 생각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심적 고민을 받아들이면 다른 재미가 열린다. 후반부에 이것을 알고 빠져들었다. 다만 일반 SF스릴러를 생각한 독자에게는 조금 밋밋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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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 영혼을 깨우는 선승들의 일화 301
최성현 지음 / 불광출판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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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승들의 일화집이다. 농사짓고 책 읽고 번역하는 농부라는 작가가 20여 년 간 모은 선승들의 일화 모음집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보고 있으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놀랍고 기발하고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더 많다. 처음에 선승이란 단어를 보고 한국의 승려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일본 선승들이다. 속았다는 생각보다 일본 선승들의 일화가 이렇게 많은가 하고 먼저 놀랐다. 동시에 한국 선승들의 일화집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다. 시간 나면 한 번 검색해서 찾아봐야겠다.

 

작가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2000년에 출간된 <다섯 줌의 쌀>이란 일본 선승 일화집이 있었다. 새롭게 발굴한 일화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에 실린 일화도 있다는 말에 다른 일화들도 궁금해진다. 표지를 보면서 어쩌면 한참 헌책방을 순회할 때 사놓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연이 되고, 읽을 마음이 간절하다면 읽지 않을까. 이 선승들의 일화에서 자주 본 것처럼 말이다. 십우도를 인용한 것처럼 열장으로 구성되지는 않았다. 소를 잊고, 삶을 말하면서 끝난다. 일화들은 이웃과 나누고 싶은 좋은 구절과 이야기를 옮겨 적은 것들이다. 나의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일화들도 있다.

 

솔직히 일화의 숫자를 세어보지 않았다. 너무 많다. 그러다 표지에서 301이란 숫자를 봤다. 이전까지 무심코 본 숫자다. 일화의 개수다. 이렇게 우리는 무심코 보면서 넘기는 것들이 많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다른 생각에 빠져, 다른 곳을 본다고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선승들이 문제를 들고 온 수많은 사람들을 일깨우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제대로 보기다. 가까운 곳에 답이 있는데 다른 곳에 답을 구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간단한 일화 한 편으로 잘 녹여서 보여준다. 물론 이 선승의 행동이나 말을 듣고 금방 깨달은 사람도 상당한 내공이 뒷받침되어 있다.

 

힘들 때 열어보라는 편지의 내용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일화와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기발한 해결책이 등장하기 보다는 삶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무상(無常)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한 나에게는 고개를 끄덕일 일화다. 선문답을 다룬 일화의 몇 가지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 잘 모르겠다. 이것과 별개로 일본 선승들의 이야기는 재밌다. 어떻게 보면 기행이고, 어떤 모습은 괴팍해 보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모두 부처와 민중을 향해 있다. 좌선을 하고, 평생의 화두를 잡고 수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 쉽게 무너지는 나의 나약함을 돌아보게 만들고, 자세를 바로 잡게 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수많은 책들이나 방송 등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다. 이런 이야기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일화의 주인공을 작가는 적어 보여준다. 소중한 자료다. 이런 자료를 작가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많이 얻었다고 한다. 현재의 공부 흐름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하고 열정적인 의지다. 20여 년의 세월이란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일화 속 선승들이 얼마나 꾸준하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이었는지 봤기에 더욱 그렇다.

 

선을 수행하는 스님들의 삶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스님은 큰 사찰의 주지가 싫어 뛰쳐나갔고, 어떤 스님은 그 속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렀다. 무술을 수련한 스님이 상대방을 무찌르는 장면도 있고, 도적의 칼날에 자신을 내던져 제자를 얻은 일화도 있다. 저자 거리의 차를 팔면서 자신의 절이 여기라고 말하고, 수행에 수행을 더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스님도 있다. 하나의 깨달음 뒤에 또 다른 깨달음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전이라면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깨달음으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그 너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수행이 필요하다. 이것을 잘 알려주는 문장이 “거의 모든 병은 스승이 하나뿐인 데서 온다.”라고 말한 라잔 겐마의 말이다. 하나의 깨달음에 묶인 순간 삶은 정체되고 썩기 시작한다. 너무 많은 일화를 읽어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읽는 내내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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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화이트 - Novel Engine POP
기바야시 신 지음, 엔타 시호 그림, 김봄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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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여러 필명 중 눈에 익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 아기 타다시다. 워낙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머리를 가지고 있지만 이쪽 장르를 많이 보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데는 필명 중 하나인 아기 타다시 때문이다. 그 유명한 <신의 물방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책 표지를 너무 자주 보았고, 이 이름으로 낸 한 편의 소설을 구입해놓아 익숙한 이름이다. 여기에 판타지 같은 설정의 진단의가 등장하는 소설을 썼다고 하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미스터리한 등장과 더불어 어떤 능력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나의 사건이 지나갈수록 머릿속에서는 미드 한 편이 떠올랐다. 한때 재밌게 봤던 <하우스>다. 이 미드를 보면서 진단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 이전 친구 어머니의 병명을 수많은 검사를 거친 후 노환이란 것으로 결론 내렸던 일이나 얼마 전 동료 직원 아이의 맹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형병원 소아과 전문의가 연속적으로 떠오른다. 보통 일상에서 우리는 이 진단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은 정확한 치료의 시작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수많은 의료사를 다룬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실제 병원에 있는 많은 검사기기들이 왜 있겠는가.

 

과학의 발달로 검사기기는 더 좋아졌다. 엑스레이가 나왔을 때 의사들이 환호했다는 자료를 보고 그들에게 이런 기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기계가 모든 병의 원인을 다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의사라는 전문직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분야 공부를 하고, 경험을 쌓아서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다. 물론 가끔 혹은 아주 자주 오진으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오진의 경우는 이미 주변에서 자주 본 것이라 그렇게 낯설지 않다.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다카모리 종합병원도 오진으로 그 명성이 하락했다. 이런 시점에 갑자기 등장한 바쿠야의 존재는 병원을 살릴 좋은 기회다.

 

안개 자욱한 이른 아침 조깅을 하던 마시키가 알몸에 백의를 걸친 한 여자 아이를 발견한다. 친구가 운영하는 병원에 데리고 간다. 이 병원이 다카모리 종합병원이다. 혹시 성폭행 등을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검사 결과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소녀가 마사키의 병명을 진단한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이름인 헬리코박터 균 감염이다. 마시키의 행동과 냄새만 가지고 진단한 것이다. 그의 친구이자 병원장의 딸인 마리아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검사 결과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바쿠야(白夜)라고 말한다.

 

바쿠야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인간관계나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판타지로 상상력이 펼쳐질 때 아주 멋지게 만들어진 사이보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다. 마사키와 살면서 예절과 인간의 감정 등을 배운다. 그녀가 입고 있던 옷 속에서 발견한 단서를 통해 누가 그녀를 그 공원에 그녀를 데리고 왔는지, 이 사실이 다른 이야기를 열어주는 서막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마지막 장의 제목이 ‘에필로그=프롤로그’인 것은 이것을 아주 잘 보여준다. 미드 <하우스> 시리즈처럼 다음 이야기가 예고되었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바쿠야의 진단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과학에 대한 엄청난 지식과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은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하우스 박사가 얼마나 많은 검사와 실패를 통해 성공했는지 봤기에 더욱 그렇다. 실제 이 소설을 읽으면서 후반부로 가면서 <하우스>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물론 병원 경영상 문제로 인한 갈등과 진단대결이란 설정은 다른 곳에 빌려왔지만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녀의 진단 능력만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녀를 둘러싼 미스터리와 함께 병원 내부의 알력과 의사 개인의 문제 등도 같이 다루면서 조금은 입체적인 병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또 어떤 병명이 나오고, 바쿠야의 출신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조금은 풀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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