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밍 레슨
클레어 풀러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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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지금 결혼 생활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에서 그렇게 화목해 보일 수 없던 연예인 부부가 어느 날 놀랍게도 이혼을 한다. 그들은 윈도우 부부였다. 이런 경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밖에서 보는 부부의 삶은 그들이 보여주길 바라는 삶일 뿐이다. 그래서 그 꺼풀을 한 겹 벗겨내면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이런 삶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우리 주변에는 가득하다. 이 소설도 그렇다. 유명 작가의 아내가 수영을 하러 갔다가 사라졌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12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남편이 죽은 아내를 보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길 콜먼이 서점 2층에서 죽은 아내를 보고 따라가다 다친다. 이 사고 때문에 딸 낸과 플로라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다. 현재 시간 속에 콜먼 가족들의 삶이 펼쳐진다면 다른 한 편에서는 죽은 잉그리드가 새벽에 쓴 편지가 하나씩 드러난다. 번갈아가면서 등장하는 이야기 속에서 이 편지에는 숨겨진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길과 잉그리드의 만남과 연애, 임신, 결혼, 출산, 육아, 유산 등으로 이어진다. 행복할 것 같아 보였던 가족의 이면이 드러날 때 하나의 물음이 생긴다. 왜 이혼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다시 이혼해도 이상할 것 없는 부부들의 삶으로 생각이 이어진다.

 

플로라는 아버지 길을 좋아한다. 그녀는 자신이 길 콜먼의 딸이란 사실을 숨기고 남자들을 만난다. 서점 직원들이라면 더욱. 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서점 직원 리처드란 남자와 육체적 관계에 빠져 있었다. 그는 그녀의 성을 알기에 아버지 이름이 알려졌을 때 그 유명한 작가의 딸이란 사실을 바로 안다. 이 소설의 한 축은 바로 플로라가 옛집 스위밍 파빌리온에서 병든 아버지를 만나고, 기억을 더듬고, 현실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 추억은 엄마가 남긴 편지와 너무나도 다른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 이 추억이 잉그리드가 남긴 편지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윤리의 벽은 이 둘의 결합을 결코 축복해주지 않는다. 교수였던 길은 잘리고, 잉그리드는 불과 몇 주를 남긴 채 학위를 받지 못한다. 학교에 나쁜 소문이 나는 걸 막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길이 베스트셀러 작가였다면 생활에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장편 두 편을 낸 작가일 뿐이다. 그렇다고 강한 생활력을 가졌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만약 임신이 아니라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길은 여섯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잉그리드는 임신 전에는 여성의 자립과 세계 여행을 꿈꾸었다. 출산과 육아는 이 꿈을 산산조각 내었다. 길은 단편을 팔면 그 돈으로 여행을 하고, 현실의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집으로 여자를 불러 섹스를 탐닉한다. 외국 여행지에서 임신한 아내를 둔 채 다른 여자를 만난다.

 

잉그리드가 편지 끝에 남편 길이 어디 있는지 물었을 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란 핑계로 서재에 틀어박혀도, 런던으로 떠나 있어도 글쓰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드러난 진실은 다른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참으면서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1980년대 영국이 그 정도의 나라였을까? 의문이 생긴다. 그러다 또 아이가 생기고, 유산을 하고, 결국에는 낙태까지 한다. 그녀가 딸들을 볼 때 충만한 사랑을 담고 있지는 않다. 자신의 최소한 역할을 할 뿐이다. 아마 사회에서 만든 모성애와 의무감이 더 큰 동력이었을 것이다. 이혼이 해결책인 것처럼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는 이 또한 많은 시선과 문제를 안고 있다.

 

플로라가 생각한 부모님의 모습은 현실과 다르다. 이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언니 낸이 한다. 아버지가 어떤 생활을 했는지 말해줄 때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가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달려갈 때, 아빠가 엄마의 환상을 이야기할 때 이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아빠가 리처드에게 자신이 산 모든 헌책을 태워달라고 한 것에 불만을 토로할 때 그 책들 속에 숨겨진 편지들이 생각났다. 길은 자신이 헌책에서 발견한 메모나 낙서들처럼 아내의 편지가 발견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책이 온전히 자신의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란 사실이 알려지길 두려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소설은 의문과 추측과 여운으로 가득하다. 물론 명확한 사실들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에필로그 장면은 이런 의혹을 더 부채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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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
윈스턴 그룸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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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영화의 성공은 원작 소설의 번역 출간으로 이어지는데 실제 이 소설도 그랬다. 지금 검색하면 그 당시 번역본 정보가 없는데 역자 후기를 보면 재출간된 정보가 나온다. 좋은 작품이 다시 나와서 좋은데 이 작품이 다시 출간될 이슈가 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엄청난 성공이 이런 종류의 소설을 발굴하고, 출간한 것 정도만 예상할 수 있다. 덕분에 영화의 이미지가 퇴색한 것과 맞물려 원작을 좀더 잘 즐길 수 있었다.

 

사실 포레스트 검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검프가 오랫동안 달리는 장면이다. 이 책의 표지가 영화의 이미지에서 빌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원작을 읽으면서 퇴색한 기억 속에서 꾸준히 떠오른 것은 역시 달리기였다. 그의 달리기에 의미를 부여한 수많은 사람들과 언론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 원작 소설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다. 백치로 불리지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그는 버스 등을 타고 움직인다. 원작 그대로 만들 이유는 없지만 모두 읽은 지금은 조금 아쉽다. 너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기에 당연히 원작에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원작과 영화가 맞지 않는 부분을 찾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기억이 퇴색한 현재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시 영화를 보고 하나씩 되짚어보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이 둘은 분리된다. 아마 영화를 다시 보면 원작의 내용을 내가 제대로 떠올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저질 기억력을 생각하면 이것은 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원작보다 영화가 훨씬 극적으로 만들어졌고, 현실적인 부분을 많이 삭제했다는 것이다. 원작과 다른 마무리란 점도. 어떤 부분에서는 영화가 너무 순화하면서 원작의 독특한 맛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드는 장면도 있다. 아마 이것은 개인의 취향 탓일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키는 198센티미터이고, 몸무게는 110킬로그램이다. 이런 몸을 보고 미식 축구부 코치가 그냥 넘어갈 이유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포레스트가 작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우 빠른 발을 가지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백치이다 보니 학업 성적이 좋지 않다. 그래서 대학 진학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코치가 그를 그의 팀에 넣는다. 큰 덩치와 빠른 발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만 우승으로까지 이끌지는 못한다. 낮은 학업 성적은 그를 대학에서 떠나게 만든다. 비록 수학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얻었다고 해도.

 

백치라 징병되지 않았던 그가 군대에 가고, 월남전에 참여하고, 군 탁구대회 우승으로 중국까지 간다. 그곳에서 마오 주석의 목숨을 구하는데 이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가는 과정도 황당하지만 추락한 이후 그가 경험한 아프리카 생활은 더 황당하다. 작가의 시각이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시 돌아온 미국에서 그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그 필생의 여인인 제니를 만나는 것이다. 사실 그의 삶에서 제니는 여성의 원형이자 이상향이다. 많은 남자에게 실망한 제니가 포레스트의 연인이 되었지만 마약과 그를 탐하는 여자 때문에 헤어진다. 이것은 다시 재회했을 때 또 다른 탐욕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백치라고 말하는 그는 순수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욕망과 욕심이 그를 뒤흔든 것이다.

 

포레스트의 삶은 바르다. 하지만 그의 주변은 현실의 욕망으로 휘몰아친다. 그의 이름이 높아지면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있다. 미식 축구부도, 베트남 전쟁도, 아프리카 귀환도, 레슬링도, 성공한 사업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후 그가 아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모습은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백치라고 무시한 사람들이 보여준 행동을 생각하면 더 대단하다. 좌충우돌하고, 황당한 사건들로 가득하지만 그 가운데 우뚝 선 포레스트 검프는 읽는 내내 나를 돌아보고 부러움을 느끼게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과 순수함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모험을 했기 때문이다. 원작을 다 읽은 지금 영화가 다시 보고 싶고, 영화와 다른 이미지가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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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에서 생긴 일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1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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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떤지 모르지만 한국의 공동 목욕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탕에서 때를 밀곤 했다. 아파트가 늘어나고, 집에서 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목욕탕으로 가는 발걸음이 점점 줄었다. 이제는 찜질방을 제외하면 동네 목욕탕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목욕탕의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생겨 목욕탕에 가면 그 냉탕, 온탕, 사우나실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어릴 때는 그렇게 가기 싫었던 공간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추억과 휴식의 공간이 된 것이다. 이런 바뀐 느낌들이 이 에세이에서 자주 보인다.

 

목욕을 마친 후 마시는 우유나 다른 음료수는 그 어떤 맛과도 비교할 수 없다. 실제로 마신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목욕비 이상을 받아서 오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 온다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가 사준 우유 등을 마시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갈망했던가. 이런 이야기를 지금 아이들에게 하면 그냥 사먹으면 되지 하고 쉽게 말할지 모르지만 그 시절에는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도 동생과 음료수 하나로 나눠 마시지 않았는가. 어떤 때는 엄마까지 가세하여 몫이 더 줄어든 경우도 있어 더 공감한다.

 

사실 남탕의 분위기는 알아도 여탕은 모른다. 한국 여탕도 모르는데 일본 여탕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몇몇 이야기를 읽다보면 남녀의 성별과 상관없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벌거벗고 잡답하고, 물이 좋다고 전해주고,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선 위치가 나의 눈높이이거나 하는 일 등이 대표적이다. 자주 일정한 시간에 가다 보면 한 사람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왜? 라는 의문을 달 정도의 행동도 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반복하는 일이 생긴다. 일상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작은 습관 같은 것들이다.

 

일본 욕실 문화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남탕과 여탕의 경계에 자리한 좌석이다. 나이 든 할머니가 옷을 벗고 젊은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야기나 여탕에 사람이 있는데 목욕탕 아저씨가 들어와 인사를 하는 장면은 솔직히 문화 충격이다. 작가는 이런 여유를 부러워하지만 쉽게 납득하기는 어렵다. 예전에 혼탕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하지 않는가. 뭐 북유럽의 어떤 곳에 가면 남녀가 벌거벗고 사우나실에서 땀을 뺀다고 하니 그렇게 이상하게만 볼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음~ 그런데 남탕의 경우에 아저씨가 없으면 아줌마가 들어오나? 만약 그런다면 남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남자 화장실을 생각하면 별거 없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짧게 풀려나오고, 다음 장에서 만화가 등장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 구성은 계속 반복된다. 실제 많은 분량이 아니다 보니 금방 읽을 수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목욕탕의 감성을 최근 세대들은 잘 모를 것이다. 실제 이 책이 출간된 것도 2006년이다. 그 사이 일본 목욕탕도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른다. 이전 일본 만화나 영화 등을 보면 이런 옥욕탕 장면들이 꽤 나왔는데 이제는 귀해지고 있다. 집에 욕실이 들어가면서 점점 사라진다. 사라질 문화이기도 하다. 화려하거나 멋지거나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잘 관찰해 풀어낸 이야기라 공감할 부분이 많다. 아직도 존재하는 고향집 동네 목욕탕에 한 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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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열대어 케이스릴러
김나영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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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끌린 이유는 간단하다. 2년 만에 코마에서 깨어난 연쇄살인범의 아내란 설정 때문이다. 2년 간 잠들었는데 기억은 4년이 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편은 연쇄살인마로 추정될 뿐이다.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이들 부부는 추락 사고로 혼수상태다. 프롤로그는 이들을 돌보는 간호사의 시선이다. 연쇄살인마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가 서늘하게 다가올 즈음이면 시간 속에 일상으로 자리잡은 반복이 그 감각을 무디게 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도입부가 지나면 이서린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그것도 2년 만에.

 

아내와 이혼한 형사 지성의 간단한 가정사가 등장한다. 지곡동 연쇄살인 사건의 담당 형사다. 수사 도중에 이들 부부가 추락 사고를 겪은 것이다. 3명이나 죽었고, 한태현은 용의자일 뿐이다. 형사의 활약을 쉽게 기대할 수 있는데 실제 이 소설에서 형사의 비중이 거의 없다. 형사의 끈기나 촉을 앞세운 활약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태현의 동생 정호가 나온다. 거짓말을 못하는 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뭔가 있을 것 같다. 2년 동안 병실 생활로 근력이 떨어진 이서린의 간단한 재활 후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인물이 그다. 그녀를 돌보기 위해 여친 희주를 데리고 온다. 그런데 이 희주란 여성이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작가는 여기에 한 명 더 등장시킨다. 강윤성이란 인물이다. 누군가가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이서린이 집에 왔다는 사실을 안다. 그의 형 준성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자해를 한다. 그리고 준성이 연쇄살인사건의 첫 피해자의 남자 친구라고 말한다. 뭐지? 이 형제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특히 동생 윤성의 정체가. 이렇게 이 간단한 소품 속에 용의자들이 우글거리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면서 세운 몇 가지 가능성들이 복잡하게 엮인다. 2년간 혼수상태였다가 그 앞 2년간 기억을 잊은 이서린의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 단서를 품고 있을까? 그런데 진행되면서 밝혀지는 사실들은 분명하지 않다.

 

가능성 있는 인물들의 등장은 기존 스릴러 방식으로 추리를 하던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한 인물을 깊이 파고들어 서늘함을 자아내기보다 다양한 인물의 사연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그런데 이 사연들이 앞으로 나와 입체감을 구성하고, 다른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엮이면서 실체를 가져야 하는데 왠지 뚝 끊어진 느낌이다. 이서린의 기억 상실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관계들은 또 다른 폭발력을 만들지 못한다. 많지 않은 분량 속에 다른 인물들의 비중이 너무 높다. 어떻게 보면 윤성의 존재가, 그의 실체가, 행동이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그 어설픔이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해도 소설 속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희주의 과거가 풀려나오고, 또 다른 비극적 사건들이 나열되는 장면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잘 보여준다. 법이란 것이 얼마나 가진 자의 편인지, 대중의 일시적 호기심이 만들어낸 몰카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 악의를 사회에 퍼트린 인물이 느끼는 희열과 중독성을 깊이 있게 파헤치고 들어갔다면 또 하나의 역작이 되었겠지만 살짝 만지는 선에 머문다. 어쩌면 너무 현실적인 행동이라 긴장감이 덜한지도 모르겠다. 문자를 그대로 믿고 너무 쉽게 낯선 곳으로 갔기에. 분량을 더 늘여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다면 각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더 쉽게 빠져들고, 공감하고, 서늘함을 더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온 느낌은 아쉬움과 부족함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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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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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고층아파트에서 한 남자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의 이름은 김민규, 직업은 변호사다. 진짜 직업은 설계자다. 설계자들은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그것을 유야무야로 만든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던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선배 변호사 우진이다. 그가 나서야 하는 사건이 생긴 것이다. 장면이 바뀌면서 사설 도박장에서 도박에 몰입하는 사람이 나온다. 조재명 형사다. 끝발을 바라지만 현실은 빚만 수억 진다. 이 도박장의 뒷배는 일개 형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돈을 만들지 못하면 그의 장기들이 팔려나갈 것이다. 이때 전화 한 통이 온다. 그의 정보원이 놀라운 사건 이야기를 한다. 잘만하면 빚을 모두 갚고도 남을 것 같다.

 

삼성역 사거리에 위치한 신설 카르멘 호텔의 고층 펜트하우스에서 10명의 남녀가 죽은 채 발견된다. 남자들은 상위 0.1%이고, 비밀리에 조직한 멤버쉽 회원들이다. 여자들은 콜걸들이다. 만약 이것이 언론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소문도 나지 않아야 한다. 보통의 부자들이라면 조금더 쉬울 텐데 그 중 한 명이 유명 아이돌 몽키다. 이런 일에 최적화된 인물이 바로 설계자 민규다. 국내 최대 로펌에서 일하지만 그의 일은 일반 변호사들과 다르다. 바로 이런 문제거리를 매끄럽게 해결하는 것이다. 열 개의 죽음을 각각 처리하고, 법적 문제가 생기지 않게 서류를 만들고, 관련자들의 입을 막는다.

 

재명은 정의감 넘치는 형사가 아니다. 불법 도박을 하고, 정보원을 통해 얻은 정보로 돈을 번다. 이런 대형 사건을 알고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민규를 만나고, 우진을 통해 그의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 어마어마한 사건이 어떻게 조용히 처리되는지, 어둠속으로 묻히는지 민규를 따라가다보면 잘 드러난다. 그러다 콜걸들을 통해 한 여자를 알게 된다. 바로 정혜주다. 몽키가 유난히 좋아했다는 그녀. 그녀를 찾아간 곳에서 마약에 빠져 혼음 속을 헤매는 연예인을 비롯한 사람들을 본다. 혜주를 찾지만 그녀에게는 포주가 있다. 검은 개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엄철우다. 그런데 엄철우는 공식 서류 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다.

 

재명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몽키의 실제 아버지인 강남 부동산 재벌 민경식이다. 그는 아들의 복수를 원한다. 재명이 도박을 한 하우스의 실제 주인이 그다. 빚 탕감을 약속하고 범인을 잡으라고 한다. 그가 가진 정보를 정보원에게 던져주고, 용의자를 찾는다. 그가 바로 검은 개들의 왕인 엄철우다. 이야기는 두 사람의 시각에서 시작하여 한 인물로 이어지고,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럽고 비열하고 추악하고 잔인한 장면과 어둠 속에서 이 사건의 설계를 의뢰했던 사람의 그림자가 조금씩 비춰진다. 그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참혹한 액션이나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그속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강남이란 지역을 욕망의 용광로이자 매혹적인 장소로 설정했다. 얼마 전 오랜만에 강남 와서 좋다고 한 사람의 반응을 보면 늘 출근하는 나에게는 낯선 감정이다. 높은 고층 건물과 엄청난 집값이나 임대료는 나 같은 서민에게 해당되지 이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자신의 원초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줄 대상만 있다면 자신의 돈과 권력을 언제나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실제 현실에서 버닝썬이나 김학의 사건으로 이런 문제의 일부가 알려지지 않았는가.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사건들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한정적인지 알기에 결코 소설이 소설로 읽히지 않는다. 아니라고? 글쎄.

 

설계자와 형사라는 두 직업이 하나의 사건을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하는지 보여주는 과정 속에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감각이 무뎌지는 순간도 있다. 이야기는 일반 스릴러에서 예상할 수 있는 방향과 다르게 흘러간다. 설계자를 고용한 사람(들)은 이 문제가 조용히 처리되길 원한다. 이 조용함을 넘어선 것은 용납할 수 없다. 하나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강남과 욕망을 극한으로 밀어붙였는데 어느 부분은 공감할 수 없다. 아마 내가 아는 강남과 너무 다른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천민자본주의란 용어가 나오는데 정말 그대로다. 돈이, 권력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곳이 강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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