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더스
밸 에미크, 윤정숙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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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상실, 기억, 가족, 우정, 삶 등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 자신이 뮤지션이자 배우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자전적 요소가 있는 모양이다. 작가는 두 인물을 번갈아 화자로 등장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두 인물 중 한 명은 어른이고, 다른 한 명의 열 살 소녀다. 어른은 현직 배우인 개빈 윈터스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함께한 모든 기억을 지우고자 관련된 물건들을 불태운다. 이것을 옆집 사람이 찍어 올리면서 더 유명해진다. 한 소녀 조앤은 매우 뛰어난 자전적 기억력(HSAM)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것은 모든 것을 영화처럼 기억하게 만든다. 처음에 카터에서 떨어져 생긴 증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이 부분을 읽고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떠올랐다. 장르도 다르고, 능력에도 차이가 있지만.

 

조앤은 ‘위대한 미래의 작사, 작곡가 콘테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조앤은 자신이 유명해지길 바란다. 또 하나 더. 음악을 만드는 아버지가 문을 닫으려는 스튜디오를 살리는 것이다.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벌면 최고지만 이렇게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좋은 음악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열 살 소녀가 좋은 가사를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때 부모님의 친구인 개빈 아저씨가 집에 온다. 그는 사랑하는 시드니 아저씨가 죽은 후 절망에 빠져 있었다. 화재 사건을 본 부모님의 연락을 받고 온 것이다. 개빈 아저씨는 아빠와 함께 학창 시절 밴드를 한 적이 있다. 개빈 아저씨가 가사를 다듬어준다. 이렇게까지 가게 가는 과정 속에는 조앤의 완벽한 기억이 한몫한다.

 

조앤의 놀라운 기억력은 모든 것을 잊고자 한 개빈에게 시드니 아저씨의 기억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입고, 말하고, 행동했는지 그대로 알려준다. 이 완벽한 기억력은 시드니가 개빈에게 알리지 않은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나게 한다.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와 같은 재미가 살짝 펼쳐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 조앤과 개빈의 사이는 더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 조앤에게는 좋은 작사가와 보컬을, 개빈에게는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자기에게 숨기고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작가는 이 과정은 아주 천천히 다룬다.

 

기억되길 바라는 조앤과 잊고자 하는 개빈의 만남과 동행은 잔잔하지만 조용히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작은 행동들과 교감은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지 않는다. 조앤의 작은 일탈이 부모나 개빈에게 큰 걱정거리를 안겨주지만 별다른 긴장감 없이 다른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개빈에게 숨겨져 있던 감정을 드러내게 한다. 이 감정의 표출이 큰 이슈가 될 수도 있지만 작가는 작은 에피소드로 다루고 넘어간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이 일을 어떻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일로 인해 개빈 등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가이기 때문이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선입견이 혼란을 불러왔다. 시드니 아저씨란 표현이 있었지만 개빈 아저씨란 표현과 나란히 나오기 전까지 이들이 동성애자였던가 하고 의혹을 가졌다. 흔히 사용하는 동성애자나 게이라는 표현이 없다 보니 바로 인식하지 못했다. 흔히 사용하는 표현을 자제하다 보니 좀 더 섬세한 독서를 해야 한다. 이 소설은 비틀즈의 큰 영향력 아래 있다. 조앤의 이름이 존의 여성 버전이고, 중간 이름도 레논이지 않은가. 비틀즈를 찬양하지만 소설 속에 그들의 가사를 직접적으로 녹여내지 않고, 작가의 가사를 풀어낸다. 하지만 각 장의 제목은 모두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다. 책을 읽으면서 비틀즈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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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나의 빈센트 - 정여울의 반 고흐 에세이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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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빈센트 고흐 마니아의 열렬한 팬심이 담긴 에세이다. 처음에는 이 팬심이 부담스러웠고, 약간 과한 해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 마음은 천천히 읽어가면서 조금씩 빠르게 사라졌다. 소개글에 의하면 10년간 빈센트가 머물었던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도시 곳곳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그의 흔적과 풍경을 담았다고 하는데 저자의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전문 사진가의 잘 찍은 사진과 고흐의 그림들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작은 화보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수많은 그림들은 나의 눈을 즐겁게 해줬다.

 

10년의 여행이라고 하지만 그 시간의 흐름이 과연 이 에세이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아쉬운 부분이다. 지역으로 나눠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것도 아니고, 시대 구분에 따라 편집된 것도 아니다. 단서라면 그림 정도랄까? 나의 무지함 때문인지 5부로 나눈 구성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짧게 쓴 글들은 하나의 그림과 이어지고, 그의 삶의 단편을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는 고흐의 삶을 객관적인 시선보다는 팬심에서 들여다보면서 그를 우상화하고,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저자가 고흐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듯하다. 이 서간집을 나 자신도 상당히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내용과 문장들에 얼마나 빠져들었던가.

 

솔직히 말해 고흐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저자가 아니다보니 글의 방향성이 눈에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가 어떤 공부를 했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등의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다. 각각의 에세이 속에 녹아 있어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 빈센트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조금 어지러운 구성이다. 시대 순이나 지역 순으로 엮어가면서 감상을 풀었다면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여행이 이 에세이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많은 자료들이 글 속에 녹아 있어 새롭게 알게 되는 이야기도 상당히 많다. 처음 보는 그림도 있다. 내가 생각한 화풍과 다른 그림도 보인다. 빈센트를 좀더 잘 알게 된다.

 

팬심 혹은 덕질은 한 사람이나 한 대상을 알기에 최고의 방법이다. 저자의 이 에세이는 빈센트의 죽음과 그의 그림을 둘러싼 의혹 등을 깊숙이 파고들지는 않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그 속에 자신의 의견을 풀어놓는다. 최근에 나온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란 것이나 정신병 때문에 그림을 그렇게 그렸다는 등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 두 소재만 가지고도 많은 사람들이 두툼한 책 한 권을 만들어내는데 저자는 이런 의혹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그가 겪은 고통과 고난과 고민 등에 더 집중한다. 당연히 그가 존경하고 배우려고 한 화가도 곳곳에서 나열된다.

 

밀레, 들라크루아 등은 그의 그림에 가장 강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한 명은 대상에, 다른 한 명은 색채에서 영향을 끼쳤다. 소설가들도 꽤 있다. 그가 디킨스 등을 좋아했다는 사실과 초기에 그린 그림 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이 모든 정보들은 저자가 빈센트의 편지와 그와 관련된 책과 정보들을 꾸준히 읽고 저장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금전적으로 힘들 때 산 화보집들과 첫 이야기에 나온 일본의 보험사 에피소드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좋아한다면 이 정도는 힘들지만 할 수 있는 일이고, 나 자신도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한 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에 읽었던 그녀의 책에 대한 반감을 조금씩 지워간 것도 이런 내용들이 큰 역할을 했다.

 

많은 사진이 실려 있어 예상한 것보다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앞에서 작은 화보집이라고 했는데 전작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그림들이 실려 있다. 아쉬운 점은 고흐가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들이 같이 배치되어 있지 않아 검색해야 하는 불편함이다. 특히 모사작일 때. 고흐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게 담겨 있는 문장과 이야기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정확하게 확인하고 냉정한 판단으로 다가가야 할 부분이다. 그가 자라고 머문 곳을 다루다 보니 작은 여행을 다녀온 느낌도 든다. 고흐의 그림을 현존하는 건축물이나 풍경 앞에 안내판을 세운 점은 반가우면서도 상업적이란 생각과 더불어 그의 불행했던 시절이 떠올라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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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사랑
이순원 지음 / 해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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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눈이의 정확한 이름은 붉은머리오목눈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말로는 뱁새다. 솔직히 말해 참새와 뱁새를 구분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새를 보면 참새, 비둘기, 까마귀, 까치, 제비 등으로 구분한다. 까마귀와 까치도 소리로나 구분이 가능하지 실물을 보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바다로 가면 갈매기를 아는 정도다. 이 수준에서 이 우화 소설을 읽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새들의 생태가 아니라 뻐꾸기를 자기 자식처럼 키운 오목눈이의 모성이기 때문이다. 이 모성애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오목눈이의 엄청난 여행으로 드러난다.

 

육분의 자리. 소설의 주인공 육분의의 어미새가 새기를 낳고 이름을 지을 때 분 하늘의 별자리다. 좋은 의도로 지은 이름이지만 발음이 꼬이면 육푼이로 들린다. 실제로 육분의란 이름보다 육분으로 더 불린다. 한 번 입에 익은 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처음 의도했던 머릿속 육분의 자리와 방향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실제 바닷가 전함에 가서 실제 육분의를 보고 오기도 한다. 어릴 때 이 작은 경험은 이후 그가 기른 뻐꾸기 아기새 앵두를 찾아갈 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소설에서 반복해서 이야기는 속도보다 방향이란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속도보다 방향이란 이야기가 이제는 너무 흔하다. 처음 들었을 때 ‘그렇지’하고 감탄했는데 너무 많이 나오다보니 반복으로 인해 식상해 보인다. 하지만 이 식상한 듯한 내용을 뱁새의 모성애와 함께 엮으면서 풀어낼 때 내 삶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철새처럼 빠르게 멀리까지 날 수 없는 오목눈이가 아프리카 대륙까지 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더 많은 위험이 있고, 더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오랜 여행길 자체가 주는 좌절감도 문득 찾아온다. 이때 우주에 나 홀로 떨어져 있는 느낌을 준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내어야만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여행이 길고 오랠수록 이것은 더 힘든 일이다.

 

오목눈이의 생태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중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뻐꾸기의 알을 자기 새끼로 알고 품고 먹인다는 점이다. 육분이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함께 더 큰 알에서 태어난 앵두가 다른 알을 밀어내고, 다른 새끼를 밀쳐도 홀린 듯이 먹이고 먹인다. 그리고 앵두는 뻐꾸기 어미새와 함께 떠난다. 이 상실감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세 번이나 뻐꾸기 알을 품고 키운 육분의를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 다른 오목눈이들은 두 번째부터 알을 깨트린다고 하는데. 이런 본성과 관련된 의문을 던지면서 뱁새로 알고 키운 앵두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난다.

 

철학하는 오목눈이와의 대화는 긴 수명과 종의 번식이란 철학적 문제를 풀어낸다. 지구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종들과 번식과 미래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매에 대해 잘못 알려진 정보도 수정해주고, 오목눈이가 바다를 건너 날아갈 수 없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보여준다, 어렵고 긴 여행이 무사히 끝난 후 앵두를 만났을 때, 앵두가 엄마라고 불렀을 때 갑자기 눈시울이 붉혀졌다. 육분이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억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앵두가 엄마를 태우고 가겠다고 했을 때 답변도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풀려나오는 현실적 이야기는 조용히 가슴 한곳에 자리잡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속도와 방향에 대한 반복이 살짝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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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노란 기차
한돌 지음 / 열림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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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중 가요의 원작자이자 가수인 한돌의 첫 에세이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그가 약 8년 여 간 다섯 번에 걸쳐 오갔던 백두산 여정에 대한 기록했다는 설명에 혹했다. 몇 문장을 읽은 후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그런데 전체적인 내용은 내 예상과 조금 달랐다. 최대한 외래어를 배제한 문장들은 읽기 불편함이 없고, 가독성이 좋은 편이지만 그 속에 담긴 몇 가지 용어는 낯설었다. 특히 타래라는 단어는 오늘 작가를 검색한 후 알게 되었다. 포크를 그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읽을 때 찾아봤다거나 주석이 달렸다면 좋았을 텐데. 혹시 있었는데 놓쳤다면 나의 실수다.

 

1부를 읽을 때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어 전체 구성이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2부로 가면서 바뀌었다. 여러 차례 백두산을 방문한 그의 기록은 그의 원대한 욕심이 바닥에 깔려있다. 겨레를 아우르는 아리랑을 캐겠다는 욕심이다. 처음에는 원대한 포부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욕심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그가 노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산에서 캐었다고 했던 그 순수한 마음이 조금씩 욕심으로 바뀐 것이다. 그 욕심을 덜어내기 위해 40대에 국토를 종단하기도 했다. 이때 그를 돌봐준 학생의 순수함과 그의 의지는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었다. 뭐 집에 돌아와 마신 시원한 맥주 한 캔에 금방 무너진 의지이기는 하지만.

 

그가 만주 벌판을 돌고, 백두산을 올라간 여정을 들여다보면 흔한 관광 일정과 다르다. 낡은 차를 타고 다른 동료와 함께 두만강을 돌던 장면은 이제는 아주 낯선, 혹은 무서운 장면이 되었다. 강 하나를 두고 인사를 건네고, 강을 건너 먹을 것을 구하던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아련하다. 어떤 중국 마을에서는 그가 찍은 사진이 문제되어 필름을 다 뺏기기도 했다. 도둑질을 했다고 총살당하고, 총알 값을 그 가족에게 청구하는 모습은 거대한 문화 차이를 겪게 만든다. 그것을 비록 이전에 어딘가에 얼핏 읽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중국과 비교하면 작가가 여행하던 시절은 큰 차이가 있다. 중국의 발전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상해를 방문했을 때와 작년에 방문했을 때는 10년도 되지 않는데 도로와 사람들의 모습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를 다룰 만큼의 시간 흐름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다시 방문한 도시에서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은 고개를 끄덕인다. 몇 년 전 다큐로 본 동북3성의 모습이 떠오른다. 화려하게 발달한 도시와 다른 한적함과 투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이 에세이에서 지엽적인 것들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노래를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요정처럼 자신 곁에 있던 타래가 떠남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장면들은 소설처럼 그려진다. 타래의 시점으로 자신을 보는 장면들은 또 다른 욕심의 파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월남한 아버지가 북에 남겨놓은 형제들을 그리워하고,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80년대 한국을 뒤흔든 이산가족 찾기가 떠올랐고, 이 모든 만남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눈길이 가는 나의 못된 마음씨가 불편하다. 그가 백두산 여행에서 그 형제들을 그리워하고, 자신과 닮은 사진의 이력을 궁금해 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 결과가 분명치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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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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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하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 이미지는 만화나 영화나 소설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식 건물은 없고, 일본 전통 가옥만 가득한 풍경이다. 그 동안 읽거나 본 수많은 소설 등에서 주로 근대 이전을 다루었기에 이 이미지가 고착되었다. 여기에 유명한 사찰 등의 이미지도 이것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가끔 현대물에서 교토가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이 문제 많은 머리는 아직 이 이미지를 쌓아둘 힘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열 곳의 오래된 가게 이미지를 보았을 때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어떤 부분에서는 익숙한 일본의 풍경이지만.

 

열 개의 가게. 많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일본 노포라고 생각할 때 이 정도는 너무 적은 숫자다. 저자는 이 열 곳을 음식점만 다루지 않고, 목욕탕, 술도가, 게스트하우스, 카페, 도장 가게, 서점 등까지 포함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다. 현재까지의 가게 역사와 주인 인터뷰를 넣지만 업종 등에 따라 시작하는 방식이 다르다. 특히 도나미 츠메쇼의 경우는 혼간지가 불탄 역사를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그 집에 머문 사람들 이야기가 더 많다. 당연히 이 역사 속에서 일본 억불 정책의 한 모습을 보게 되고, 불자들의 노력도 같이 읽을 수 있다. 현재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되는데 얇은 칸막이벽을 떠올리면 현대 삶의 방식과 좀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초밥과 소바를 좋아하는데 이즈우의 초밥과 혼케오와리야의 소바 맛이 궁금하다. 이즈우 초밥의 경우 문인들의 기록과 에피소드가 노포의 힘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현재 일본 스시의 원형일수도 있는 고등어 초밥과 이 맛을 지켜내려는 노력은 일본 장인 정신을 확인하는 기회다. 다른 식당에 보내 초기 훈련을 시키고, 일정 수준 이상 올라온 후 점포를 이어가는 모습은 한국도 배울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너 가문의 일원이라고 낙하산처럼 내려와서 고속 승진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은혜 갚기라는 부분에서는 시각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미국에서 사진작가로 활약하던 아줌마가 직원 300명을 거느린 소바집 주인이 되었다. 그녀의 삶을 잠시 보여주고, 이 노포를 이끌고 성장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은연중에 보여준다. 전통에 따르데 새로운 메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새롭게 온 주방장의 교육에 온힘을 다하고, 매일 육수의 맛을 보는 가장 기본적인 일들을 잘 보여준다. 오래 가는 식당들 이유를 간결한 설명 속에 녹여내었다. 마쓰이 주조가 보여준 모습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새삼 일본의 저력을 생각하게 된다. 좋은 술과 소바에는 좋은 물이 필요한데 교토의 물맛이 좋다고 하니 언젠가 한 번 맛보고 싶다. 뭐 먹고 나면 그 깊이를 제대로 알 수 없어 실망할지 모르지만.

 

니시키유 목욕탕 내부 사진을 보고 어릴 때 다니던 동네 목욕탕이 떠올랐다. 며칠 전 읽은 마스다 미리의 <여탕에서 생긴 일>이란 목욕탕 에세이를 본 후라 그런지 눈길이 많이 갔다. 점점 줄어드는 목욕탕의 숫자를 보고 조금씩 공감한다. 노포를 살리기 위한 주인의 다양한 이벤트와 그 곳의 추억은 아련한 기억의 한자락을 들춘다. 전통 베이징요리를 만드는 토카사이칸의 주인은 화교다. 이제 일본에서 중국인의 숫자가 재일조선인의 숫자를 넘어섰다고 한다. 놀랍다. 한 중국집이 이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음식을 맛보고 싶다. 괜히 음식 가격을 걱정해본다. 이 가게의 외관은 나의 잘못된 교코 이미지와 너무 달라 낯설게 다가온다.

 

프랑수아 찻집은 노포라고 하지만 연역이 그렇게 오래된 가게가 아니다. 토카사이칸도 마찬가지지만. 찻집의 역사보다 일본 근현대 공산주의 이야기가 솔직히 더 끌렸다.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 다른 방식으로 이 부를 나눈 부분에서 이 오래된 찻집이 존경스럽다. 500년을 이어온 전설 속 사탕 가게라고 하는 미나토야 유레이코소다테아메는 이제 직접 사탕을 만들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만들어 와서 팔고 있는데 레시피는 그대로라고 한다. 하루에 하나도 팔지 못하는 날이 있다고 한다. 마쓰리가 있는 날이면 사탕이 동 난다고 하지만 결코 쉬운 경영이 아니다. 마루젠 서점이 문을 닫았다 새로 연 것처럼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다.

 

출판 불황일까? 전통 유통구조의 몰락일까? 마루젠 이야기를 읽다가 한국 도서 정가제가 떠올랐다. 확실히 주변을 둘러봐도 책보다 게임을 더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일부 장르의 경우는 완전히 전자책으로만 발간된다. 예전 종로서점을 기억하기에 마루젠이 문을 닫았을 때 있었던 감상들에 공감한다. 도장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다. 한국도 일본처럼 인감증명서가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사인으로 점점 대체되는 분위기다. 다마루인보텐의 도장들도 이제는 전통적인 도장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컴퓨터로 도장을 파는 현실에서 손으로 도장을 파는 이곳이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할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다양한 칭찬 도장이나 동물 도장은 나도 하나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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