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떨고 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채숙향 옮김 / 창심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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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지 않았거나 거의 읽은 책이 없는데 낯익은 작가들이 있다. 와타야 리사가 그렇다.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면 이 책 포함 다섯 권이 출간되었다. 모두 낯익은 제목인데 읽은 책은 두 권 정도다.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란 타이틀은 책소개에 항상 나오고, 이것이 나의 뇌리에 각인되어 이런 착각을 불러온다. 집에서 찾아보면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분명히 한두 권 정도 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각인이 신간이 출간되면 관심을 가지게 하고, 기회가 되면 읽게 만든다. 실제 그런 작가들이 몇 명 더 있다. 이 책도 그렇게 읽었다.

 

스물여섯, 아직 처녀고 오타쿠 기질이 있는 직장 여성 요시카가 주인공이다. 한참 일본 드라마를 볼 때 이 나이가 되도록 처녀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남자인 내가 이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한때 남자들이 군대 갈 때 총각 딱지를 떼 주던 시절이 있었다. 결코 부끄러워할 이야기가 아닌데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어지면 어쩔 수 없이 위축된다. 성경험이 없다고 연예경험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요시카는 이 시대의 희귀동물 같이 연예경험도 없다. 멸종동물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그녀 자신이 그런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를 하지 않고 짝사랑만 한 그녀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첫사랑의 남자와 결혼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부터가 황당하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하는데 이 상상의 원인과 상상 속에 등장하는 두 남자 이야기가 조금씩 펼쳐진다. 첫사랑의 이름은 ‘이치’이고, 두 번째 남자는 ‘니’다. 숫자로 표기된 이것은 1, 2를 뜻한다. 이치는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한 남자고, 니는 회사 동료다. 이치는 일방적으로 자신만 알고 있는 감정이고, 니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데이터를 요청했다. 좀더 고약하게 표현하면 일순위와 이순위란 의미다.

 

그녀의 짝사랑은 안보는 척 보는 것이다. 이 행동 때문에 딱 한 번 이치가 그녀에게 말을 건 적이 있다. 도쿄로 온 후 그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것을 위해 작은 음모와 계획을 세운다. 음모란 표현이 이상하지만 모임 자체가 그녀의 음흉한 의도가 깔린 것이다. 예상한대로 그와 함께, 물론 다른 동창생들도 있는 시간을 가진다. 이때 학창 시절 그를 살갑게 대한다고 생각한 친구들의 행동이 그에게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 알게 된다. 이보다 더 놀라운 장면은 그녀에게 강한 충격을 준다. 예상하지 못한 말 한 마디였다.

 

니는 직선적이다.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잘 표현한다. 그와의 만남은 교감보다 엇갈림이 더 강하다. 그녀가 바라는 곳에서 그는 견디질 못한다. 재밌는 점 중 하나는 그녀의 상황을 동기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상태로 만났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얼마나 화를 냈던가. 그가 키스를 위해 입술을 내밀었을 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가 그를 밀친다. 이후 그녀가 벌이는 황당한 사태는 이전에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 본 적조차 없는 행동이다. 어쩌면 이 현실에서 떨어져 나간 순간,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진심을, 바람을 제대로 봤는지 모른다.

 

이것과 함께 단편 <사이좋게 지낼까?>도 같이 실려 있다. 표제작과 다른 느낌이라 조금 놀랐다. 분명한 이야기보다 이미지가 더 강하게 다가왔는데 조금 어둡다. 표제막의 황당하지만 발랄함이 이 단편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작가 자신의 내면을 표현한 것 같은데 차분하게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언제 시간되면 읽지 않은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물론 이 말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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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안전가옥 앤솔로지 2
시아란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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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의 두 번째 앤솔로지다. 첫 번째가 냉면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두 번째는 완전히 다른 주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놀라운 상상력과 재밌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다섯 편이 실려 있는데 대멸종이란 주제를 각각 다른 장르로 풀어내었다. 장르는 특성상 판타지와 SF를 주로 사용해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앤솔로지에서 다루는 대멸종 이야기 중 셋 가지가 한 인물에게 종의 멸종이 달려 있다. 그리고 세 이야기도 다른 방식으로 선택과 행동을 풀어낸다. 안전가옥의 다음 앤솔로지가 벌써 기다려진다.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은 대멸종을 다른 시각에서 본다. 인간의 종말이 사후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간다. 이 단편에서는 염라대왕이 나오는 한국 전통 저승의 모습을 다루고, 이 저승과 다른 문화 혹은 종교의 저승과도 교류한다. 인간의 종말은 우주에서 온 감마선이고, 갑자기 죽게 된다. 지구의 자전에 따라 시차가 있을 뿐이다. 환생이나 저승의 부활 등을 위해 저승에서 노력하는 모습은 인간 사회의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개인적으로 이승과 저승의 주인공을 만들고, 작은 희망을 담은 장편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고단한 프로그램 개발자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력을 갈아 넣어 만들어지는 프로그램 세계를 다루다가 갑자기 비약한다. 이 비약이 낯설지 않지만 방법은 황당하다. 무언가를 계속 먹다가 생긴 능력이라니. 하나의 게임이 제한된 점프 횟수 65,536번을 채우면 중단되는 버그를 고치기 위해 채용된 직원의 수사는 그 개발자와의 대화 속에서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매트릭스>의 세계관과 비슷하지만 그 규모는 훨씬 거대하고, 인간의 존재와 멸종을 다르게 풀어낸다. 이 앤솔로지에서 인간의 대멸종을 다루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선택의 아이>는 무대가 캄보디아의 작은 마을이다. 주인공 가나는 돌고래 뿌와 대화를 할 수 있다. 뿌는 여섯 번째 대멸종과 인류의 멸종을 구분한다. 이 구분이 소설의 핵심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나거나 인류가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가 선택되어야 한다. 이 선택이 가나에게 달렸다. 작가는 우리가 동남아에 가서 흔히 보는 최하층민의 삶과 가나가 가진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둡다고 해도 자신에게 작은 도움과 선의를 베풀어주는 좋은 사람이 있다면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악의가 넘치고 폭행이 이어진다면 그 희망은 너무 미약하다. 노아의 방주를 다르게 해석한 부분도 흥미롭지만 한 아이의 선택에 멸종이 달렸다는 설정은 조금 씁쓸하다.

 

<우주탐사선 베르티아>의 설정 중 하나는 작년에 읽은 <세븐이브스>와 닮았다. 그것은 달의 파괴와 지구의 파멸이다. 살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땅속이란 것도 닮았다. 하지만 그것과 달리 이 소설은 500년 전 우주의 중심으로 떠난 우주탐사선 베르티아 속 우주인들의 시선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류의 종말이 인간들에 의해 벌어졌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고, 남은 인류를 찾는다. 사실 이것으로 끝났다면 흔한 <혹성탈출> 같은 소설이 되었겠지만 승무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더 복잡해진다. 그들이 보지 못한 우주의 중심과 발견이 전부가 아니라는 설정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달을 불렀어, 귀를 기울여 줘>는 양판소 판타지의 설정을 빌려왔다. 마력 빈대의 줄임말인 마빈이 마계의 달을 불렀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가 이 달을 부른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마력을 빌리기 위해서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다섯 편의 단편 중 가장 취향에 맞지 않고 낡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대현자 마르테가 마탑에서 마빈의 발견하고 함께 길을 떠난 이유를 밝히는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괜히 10서클 대마법 중 하나인 운석을 불러와 공격하는 것에 현실 감각이 생겼다. 아마 이 단편에 작은 불편함을 느낀 것은 나 자신이 무협과 판타지를 열독하면서 이 장르와 분리하면서 생긴 문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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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서스
제시 볼 지음, 김선형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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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고 난해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특이한 것은 알파벳 A부터 시작하여 Z까지 이어지는 마을 여행을 풀어낸 것이고, 난해한 것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의 의미들이다. 아름다운 것은 문장과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들과 동행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읽으면서 일반적 소설에서 예상한 것과 다른 구조와 전개에 혼란을 겪었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알파벳 동네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소설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던 사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닮아 있다.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이야기는 아는 만큼 보인다. 아쉽게도 나의 역량이 그것을 모두 파악할 정도는 되지 않는다.

 

화자는 의사였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인구조사원이 되어 다운증후군 아들과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인구조사원이 되었다. 그런데 이 인구조사원이 우리의 상식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인구조사를 한 후 사람의 갈비뼈 위에 작은 문신을 남긴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읽고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구조사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밧줄 공장의 이야기도 얼마나 황당한가. 사실 이런 설정에 발목이 잡히면 나처럼 나무만 보고 숲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다.

 

다운증후군 아들과 동행하는 마지막 여행이란 소개글을 보고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가슴을 쥐어짜는 이별과 아픔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예상을 뛰어넘고 그 아픔을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삼킨다. 아들과의 교감을 무리하게 풀어내기보다 인구조사에 더 집중한다. 인구조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아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아내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먼저 죽은 아내는 행위예술가였다. 그녀의 공연 기억이다. 작가는 아내의 삶과 만남을 뒤에 남겨둔 채 여행을 이어간다. 기억의 단편들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을 보여준다.

 

가독성은 나쁘지 않지만 전체 모습을 떠올리면 파편적 이미지만 남는다. 덕분에 이 소설의 윤곽과 흐름을 풀어낼 수가 없다. 알파벳 순서대로 이어지는 인구조사, 이 조사의 의미,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여행 등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다. 아들과의 교감을 다룬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충분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죽으면 아들을 기차에 태워 돌볼 사람에게 보낸다고 했지만 그 사람이 누군지도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이 불확실 속에서 유일하게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이다.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가면 그가 심한 고통을 겪고 길 위에서, 다른 사람의 집에서 요양을 해야만 한다. 인구조사 대상과의 이야기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과거의 기억들이 조금씩 튀어나온다.

 

가마우지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솔직히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겠다. 가마우지 낚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지만 이 이야기가 담고 있은 의미를 현재로서는 모르겠다. 가마우지에 대한 오해, 이 동물에 대한 애정 가득한 글들이 담고 있는 바도. 작가가 형에 대한 기억을 담고 쓴 글이라고 하는데 현실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지 않아 살짝 당황스럽다. 아니면 내가 이해를 못했거나. 병의 급속한 진행으로 뒤로 가면 알파벳 동네 몇 개를 그냥 지나간다. 그리고 아들을 기차에 태워 보내면서 미래를 말한다. 물론 그의 미래가 아니다. 아들의 미래다. 창의적이고 초현실적인 이야기는 아직 나에게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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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온 Go On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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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다. 첫 번역 작품인 <빅 픽처>에 환호한 이후 많은 작품들이 나왔다. 그 중 읽은 작품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도 몇 권 있다. 가독성이 좋고, 지적인 부분이 있어 취향에 맞다. 두 권짜리는 <행복의 추구> 이후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번 작품은 이전 작품과 조금 다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다루고 있는 주제 등이 더 깊어진 느낌이다. 70년대와 80년대를 관통하는 이야기 속에 현대 자본주의의 변곡점 중 하나를 보여준다. 읽으면서 작가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깊이와 넓이에 감탄했다.

 

작은 오빠의 면회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번 면회에서 그녀는 오빠와 아빠의 비밀 하나를 듣는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녀는 공모자가 된다. 과연 이 이야기는 무얼까? 이 의문을 품고 달려간 시대는 1971년 9월이다. 뉴욕에 살던 앨리스 가족은 올드그리니치로 이사왔다. 엄마는 이 이사가 불만이다. 엄마는 히스테리를 수시로 부리고, 큰 오빠는 예일대에 입학하고 떠났다. 작은 오빠는 교통사고 후 하키를 포기했다. 앨리스의 친구 칼리는 동성애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옷차림을 하고 다니다가 학교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그러다 칼리는 사라지고, 이 여파는 가족과 그녀와 함께 한 상대방에까지 이어진다.

 

동성애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힐 수 있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다. 7~80년대는 온갖 비난의 대상이었다. 앨리스의 친구 칼리가 의심스러운 복장으로 폭행에 시달렸다면 대학 동창 한 명은 성 정체성을 밝혔다가 큰 폭행을 당하고 학교를 옮긴다. 오해와 편견과 독설에 시달릴 수밖에 없던 시기다. 이것이 80년대로 넘어오면 AIDS문제로 이어지는데 이때의 공포를 동성애자 친구가 아주 잘 보여준다. 아직도 기억하는 한국에 전달된 AIDA의 공포는 한 미국 배우의 죽음으로부터인데 이 작품 속에서는 그 이름이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때도 많은 보수단체가 얼마나 많은 비난과 거짓말을 퍼트렸는지 모른다. 이 작품은 그런 문제까지 나아가지 않는다.

 

시간 순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미 제국주의의 모습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잘 보여준다. 칠레 피노체트 쿠데타의 모습을 보면서 작은 오빠의 비밀을 계속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답을 먼저 말하면 아니다. 믿었고 존경했고 사랑했던 행콕 교수의 죽음으로 간 아일랜드 트리니티대학교의 생활은 그녀를 즐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변수는 언제나 일어난다. 그 중에서 최악은 테러다. 이 비극의 대상이 타인이었을 때는 단순히 공감의 문제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났을 때는 삶의 파괴다. 아직 외상후스트레스란 단어가 없을 때이지만 그 충격과 공포는 이후 삶을 바꾸고 지배한다.

 

앨리스를 중심에 놓고, 그 가족과 친구들을 주변에 놓고 그녀가 산 시대의 모습을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이 시간 순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 작가의 의도와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작가의 의도는 ‘1971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중산층 가족의 모습을 그려 보인다면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가게 된 이유, 서로를 경멸하는 두 미국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 시기를 지나면서 완성된 ‘문화 전쟁’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 이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마도 미국의 정치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의도는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난다. 번역 제목이 <고 온(GO ON)>이지만 원래 제목은 <The Great Wide Open>이다. 책 마지막에 그랜드캐넌에 가서 본 풍경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텅 빈 공간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삶을 뜻하는 말이기도 해. 다른 말로는 ‘미래’라고 하지.” 이야기는 과거의 한 시점에서 끝나지만 이때까지 풀어낸 이야기들은 ‘미래’를 만들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앞에서 말한대로 이해의 폭과 깊이는 나에게 달렸다. 읽으면서 솔직히 이런 점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많은 부분을 되돌려보면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작은 노력들을 기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으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주제 중 하나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가족 간의 갈등과 사랑을 아주 자극적으로 다룬다. 칼리의 실종, 큰 오빠의 충격적인 내부고발, 60년대 아버지들의 삶, 엄마의 히스테리, 공익보다 가족 우선 등의 현실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후반부로 가면서 앨리스의 행동과 심리 속에는 가족이 우선이란 생각이 가득 담겨 있다. 이것이 한때 할리우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의도적인 연출인지, 아니면 앨리스의 행동에 대한 작가의 공감인지는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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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디자인 1 지식을 만화로 만나다 1
김재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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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나온 <디자인 캐리커처 - 유쾌한 20세기 디자인 여행>의 개정증보판이다. 서문을 읽고 난 후에 이 사실을 알았다. 이때마다 내가 책소개 글을 꼼꼼하게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사실을 알고 간단하게 구판과 개정판을 비교해보니 편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개정판이 좀 더 잘 분류되어 있다. 구판이 단순한 나열이었던 것에 비하면 개정판은 브랜드, 패션, 디자이너, 건축, 가구, 빛, 자동차, 비행기 등으로 구분해 이해를 더 쉽게 만들었다. 이 분류와 함께 간단하게 풀어낸 디자인 만화는 가독성을 높여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P.S 디자인’에 오면 많은 글자들로 인해 속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 만화를 보면서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들이 너무 간단하게 나와 아쉬웠던 부분이 많다. 작가가 핵심만 뽑아서 간단한 그림으로 디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판이 단순한 나열로 소제목을 붙였다면 이번에는 제목에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다. 덕분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더 쉽게 이해하게 되었다. 편집의 힘이라고 한다면 너무 나간 것일까? 표지의 차이도 상당하다. 개인적으로 기괴한 모습의 구판보다 개정판이 더 좋다. 이런 편집도 디자인의 영역이다. 캘리그라피가 새로운 글자체 디자인에, 표지에, 광고 등에 어떻게 인용되고 있는지 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구판과 달리 개정판의 첫 이야기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 이야기로 시작한다. 더하기보다 빼기로 성공한 애플 디자인은 이제 모든 스마트폰 업체의 표준처럼 보인다. 이들의 빼기는 늘 무언가를 더 넣어서 가격만 부풀리려는 한국의 가전제품 디자인을 생각하면 더욱 돋보인다. 실제 집에 있는 가전제품 중 상당수가 필요 없는 기능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다. 물론 스마트폰의 기능도 마찬가지다. 홈페이지를 보면 또 어떤가? 첫 화면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어 보기가 오히려 불편하다. 잡스의 생각을 디자인으로 만들어낸 그들을 보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샤넬과 리바이스 디자인이 시대를 해방했다고 하는데 일부 맞는 말이다. 샤넬의 드레스와 핸드백이 모든 여성의 워너비가 되면서 이제는 구속물이 되었다. 심플한 디자인이나 필요 없는 것 같은 것들 넣은 디자인이 시대를 넘어 유행하는 것은 제품의 특성도 있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유행하면서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디자인 문제로만 한정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I♥뉴욕’ 디자인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70년대에 나왔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 짝퉁을 만들어내었던가. ‘굿 디자인이 굿 비즈니스다.’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를 풀어낸 부분은 이 만화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디자이너 이야기를 하면서 안도 다다오를 넣은 것은 의외다. 건축물에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대한 극찬 등은 이미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것이라 별로 신선하지 않다. 바우하우스가 독일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부분은 조금 의외다. 나처럼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도 아주 자주 들은 이름인데 말이다. 이 디자이너 이야기 속에서 시대와 나라에 따라 호흡하는 디자인 정신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간결한 기능성 위주의 디자인 뿐만이 아니라 겉치레가 가득하거나 장식성을 입힌 디자인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실제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고 감탄하지만 기능성은 또 다른 문제인 경우가 많다.

 

지을 당시 많은 욕을 먹었지만 짓고 난 후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친 건축이 둘 있다. 하나는 에펠탑이고, 나머지 하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다. 한국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마찬가지다. 멋진 외형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져 많은 욕을 먹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낙수장 이야기에서 물소리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단 작은 컷 하나는 이 만화가 조금 비딱한 시선을 계속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컷들이 자주 나오면서 단순히 열광과 칭찬만으로 가득한 책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빛 이야기를 보면서 낯익은 조명기구가 누구의 작품인지. 왜 그것이 유행했는지. 그 후예들이 어떤 것인지 등으로 생각이 뻗쳐나갔다.

 

한 번도 콩코드가 에펠탑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영국과 합작으로 만든 비행기이고,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이 비행기를 보았을 때 감탄한 것은 기억난다. 2차 대전 당시 전투기에 대한 것은 사실 잘 모르겠다. 오히려 SF영화 속 우주선에 더 관심이 많다. 나의 취향이 그 쪽에 더 맞기 때문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덤고 있다.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현대 포니의 디자이너가 조르제토 주지아로란 사실이다. 그때는 참 멋없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안목이란 정말. 한때 열광했던 자동차들의 디자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 등은 또 다른 재미다.

 

그림이 사라지고 글자만 가득한 ‘P.S 디자인’은 작가의 고찰이 담겨 있다. 재밌는 에세이도 있고,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글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을 시대와 함께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이 부분을 다시 정독하고 앞의 만화를 보고 싶다. 2권이 나왔는데 솔직히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밀린 책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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