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 - 현실 자매 리얼 여행기
한다솜 지음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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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한다솜, 스물다섯 살 한새미나, 이 자매의 세계 여행 이야기다. 이들의 여행은 기존의 배낭여행객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자매가 함께 한 여행이고, 짠내 가득한 여행기가 아니다. 자신들이 정한 목적에 충실한 여행이다. 가보고 싶은 곳을 갔고, 몇 곳은 친구나 친척이 살고 있어 숙박비 등을 절약할 수 있었다. 전체 일정을 보면 24개 나라를 돌았는데 걸린 시간은 215일에 불과하다. 한 나라에서 많은 도시를 돌기보다 자신들이 가보고 싶은 도시를 중심으로 여행했다. 읽으면서 기존의 세계 여행 책과 다른 느낌을 받은 것은 이런 이유도 있다.

 

내가 처음 세계 여행기를 읽은 것은 십 수 년 전 지구별 어쩌구 하는 책이었다. 사실 지구별 여행자로 검색하니 나오지 않는다. 점점 기억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책더미를 뒤지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귀차니즘이 온몸을 뒤덮는다.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 대기업을 박차고 나가 자신이 하고 싶은 여행을 하는 여행자에게 빠졌었다. 그 후 아주 많은 세계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듣다 보니 이제는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가슴 한 곳에서는 언제나 이렇게 떠나고 싶은 욕망이 살며시 고개를 쳐든다. 한 자매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해외에 사는 후배나 친구의 집들이 떠올랐다. 그곳이라도 가면 좋을 텐데...

 

이 자매의 세계 여행 결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언니가 동생에게 제안하자마자 결정되었다. 부모님의 반대도 없었다. 자신들의 직장을 정리하면 된다. 물론 세계여행을 떠나는 만큼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늘 그렇듯이 준비는 부족하다. 그 부족함이 첫 도착지 블라디보스톡과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바로 드러난다. 여행 초기의 작은 실수는 여행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문제에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큰 부족함이나 실수가 아니라면 나중에 즐거운 여행의 에피소드가 된다. 한자매가 음식을 시베리아 행단 열차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이나 큰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것들은 작은 식탐으로 이어진다.

 

기본적으로 여행지에 대한 감탄으로 가득하다. 버킷리스트에 비교적 충실한 여행이다 보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최악의 숙소를 경험한 후 이 자매가 허름한 숙소에 좀더 익숙해진 것 같다. 재밌는 것은 아주 좋고 합리적인 가격의 크로아티아 차브타브 숙소를 나선 다음 날 자그레브에서 마주한 것이다. 사진으로 본 숙소와 현실의 숙소가 다를 경우 느끼는 괴리감을 나 자신도 경험한 적이 있어 공감했다. 최근 여행 카페에서 눈여겨 본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풍경과 감상은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이 지역을 보게 만들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축구와 맥주를 즐겼던 그들이 멕시코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이유는 한국이 독일을 이겨 멕시코가 월드컵 16강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칸쿤과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이들이 이것을 어떻게 누렸는지 보여줄 때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과는 비교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 약빨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었는지 알 수 없어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한 달 살기를 페루 쿠스코에서 했다. 다른 도시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스페인도 바르셀로나 한 도시만 머문 듯한데 여행지 정보는 조금 부족하다. 남친이 와서 함께 한 것이 더 부각된다.

 

저자는 카페 투어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유럽보다 더 많은 사진들이 나오는 곳은 동양이다. 치앙마이와 타이페이에 오면 카페 사진이 확 늘어난다. 코타키나발루의 석양이 예쁘다고 하지만 나는 보지 못한 풍경이고, 동생이 노래 부른 루앙프라방은 나 자신도 오랫동안 노래 불렀던 곳이다. 괜히 부러웠다. 예전에 타이베이에 가서 카페에 들어갈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다음에 가게 되면 몇 곳을 둘러보고 싶다. 부모님과 홍콩에서 만나는 장면은 아주 멋있었다. 그들의 여행이 이곳에서 끝났는데 생각보다 짧고 깔끔했다. 억지로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여행에 더 집중한 모습이다. 자매 간의 작은 문제도 있지만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가면서 어느 정도 해결된 모습이다. 한 도시의 끝에 언니의 동생에 대한 소소한 불만은 애정어린 반어법으로 표현된다. 이런 세계 여행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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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 없는 여행 - 환타 전명윤 여행 에세이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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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이란 이름은 낯설지만 환타는 아주 낯익다. 예전에 즐겨들었던 팟캐스트에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다른 팟캐스트에서도 자주 나왔는데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지 꽤 오래 되었다. 사실 라디오로 들은 목소리 이미지와 책 표지에 나온 이미지가 너무 달라 조금 혼란스럽다. 이런 경우가 워낙 많으니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때마다 이 둘의 이미지를 보정해줘야 한다. 아니면 이 괴리감에 나 자신이 빠져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환타(幻打)라는 이름이 환상을 때린다는 것임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라디오는 문자로 표현되지 않으니 당연한 것일 테지만.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은 가이드북에 얽힌 이야기들이고, 2장은 그가 경험한 각 지역의 뉴스들이다. 마지막 3장은 인사법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2장의 연장선에 있고, 그의 여행 안전 철학이 담겨 있다. 그가 각 지역 환타로 활약할 당시 방송을 들은 것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 반가운 동시에 좀더 자세하게 뉴스 등에 집중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좋았다. 인도와 홍콩과 오키나와 뉴스를 환타처럼 잘 알려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현실을 감안할 때 그의 목소리는 소중한 정보를 전달해준다. 한국의 뉴스조차 잘 보지 않는 나에게 이런 라디오 정보는 좋은 정보의 통로다.

 

가짜 환타 대소동은 이미 들은 적이 있어 새롭지 않지만 맛집에 대한 의견은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 한국인 여행객들이 자주 간 업체가 실제 한국 아울렛과 백화점 매장에 입점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로컬여행을 하다보면 현지인이 가는 곳과 관광객이 가는 곳이 다르다.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치앙마이에서 아침을 먹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과 너무 다르다. 지금은 인터넷 정보가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현지인의 추천이다. 환타의 가이드북에는 맛집 정보가 다른 식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하니 다음에 책을 들고 갈 일이 있으면 참고해야겠다.

 

국제 뉴스에 대한 이야기 중 현재 진행형인 사건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인도가 세계2위 소고기 수출국이란 소식을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이 이유가 나온다. 하얀 소를 제외하고, 특히 물소 등은 도축되어 수출된다고 하니 소들도 카스트제도의 아래에 있다. 마카오의 성공 이야기도 어딘가에서 들은 듯하지만 기억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카레와 커리의 차이를 설명하고, 아리가토 카레란 광고판을 내 건 이유를 듣고 현대화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때 대표적인 장수마을이었던 오키나와의 몰락을 일본 전통 음식 대신 햄버그 등을 먹으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했던 나의 지식을 이번에 바꾸어주었다. 일본 대표적인 관광지인 오키나와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주라고 할 때 먼저 살짝 반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동의하게 된다. 짜장면을 따라 간 여행은 솔직히 무지의 결과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재밌는 에피소드다. 노포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일본 미식가가 중국 음식에 대해 쓴 글에서 본 것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음식에 대한 스토리텔링은 거짓을 진짜 만들기다. 시간의 흐름과 매체와 사람들의 믿음이 결합하면 진실처럼 다가온다. 한국의 감자탕이 그렇지 않은가. 오키나와 음식이 맛이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슬픈 이유가 있다. 식민지 착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환타의 가이드북은 인문서적 같다고 했다. 이 에세이를 읽다 보니 조금은 알겠다. 여자에게 차여 간 인도가 그를 인도 환타로 만들고, 가이드북 저자로 만들었지만 계속 되는 여행은 그 지역민과의 관계도 지속적으로 이어주었다. 그가 추천했다는 이유로 한 동안 흥했다고 망하게 된 식당 사연은 또 어떤가. 잠시 머물다 떠나고 간단한 정보만 남기면 되는 책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그는 신중하게 글을 쓴다. 솔직히 처음 그의 글을 읽는다. 그런데 이전에 가졌던 이미지의 상당 부분이 깨졌다. 언젠가 그의 가이드북 한 권을 사서 조금 다른 여행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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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프 그래픽 컬렉션
엘린 브로쉬 맥켄나 지음, 라몬 K. 페레즈 그림, 심연희 옮김 / F(에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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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고전 소설인 <제인 에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그래픽노블이다. 아쉽게도 내가 <제인 에어>를 읽지 않았다. 혹시 읽었는데 기억하지 못하는가 하고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지만 제대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아마 원작을 읽었고, 더 많은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 책을 좀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처음 접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아주 낯익은 설정과 전개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본 것들이다.

 

원작과 비교해서 이야기할 것이 없다. 읽은 책 내용만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작가는 제인이 바다에서 부모를 잃은 후 친척집에 사는 과정은 아주 간결하게 보여준다. 그 가족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도, 감정 교류도 없다. 가족들의 시선은 텔레비전으로 향해 있다. 제인은 이 집을 떠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배를 타고, 생선을 수선하는 일을 한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이 돈 모두를 인출해서 뉴욕으로 떠난다. 그녀는 보이는 것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림을 그린다. 대학교에 등록하지만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급하게 찾는다. 조건 좋고 급여도 높은 일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보모 일이다.

 

새로운 직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집에서 아델이라는 외로운 꼬마를 돌보는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생각하지만 보통 이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평균 재직 기간은 일주일을 넘지 못한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집주인이 금지한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다가 잘렸다. 그곳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후반부에 가서 이 비밀이 펼쳐지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다. 개인적으로 이 설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충분히 납득할 수 없었다. 스스로 이 일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서 이해해야 한다.

 

다른 보모들이 자주 잘린 것을 보고 아델이 심술꾸러기인가 생각했다. 아니었다. 외로운 소녀일 뿐이다. 제인과 아델은 경호원을 옆에 두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문제는 집주인 로체스터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연히 만났을 때는 당돌하게도 그가 딸을 위해 학교에 면담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을 표시하고, 시간에 맞춰 학교를 방문하니 그가 교장과 면담을 한다. 거대 헤지펀드의 수장답게 아주 위협적인 말을 내뱉는다. 이 일을 통해 제인은 로체스터도 한 명의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발레 공연에 그녀를 초대한다. 공연 후 파티는 서로의 마음을 알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둘만의 시간이 지난 후 로체스터는 갑자기 사라진다. 아시아로 날아갔다. 몇 개월 후 돌아온 그의 모습은 그날 밤의 그가 아니다. 질투란 감정이 표출된다. 그러다 내용의 흐름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도둑이 들어와 3층 금지구역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격투가 벌어지고, 금지구역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이야기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바뀐다. 로체스터는 아이와 함께 떠나고, 떠나면서 제인도 같이 가자고 한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제인은 떠나지 않는다. 문제는 아델이 제인에게 연락을 했고, 제인이 그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이후 벌어지는 장면들은 할리우드 공식이다. 아기자기하면서 자기주장 강한 제인의 매력이 액션으로 묻혀버렸다.

 

자기의 삶을 살려는 여성이 결국 머물게 되는 곳이 엄청난 거부인 로체스터의 집이란 결말은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자주 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 일에서 성취감을 얻고, 꾸준히 그 일을 하려는 모습은 그녀 속에 있는 자립성을 잘 보여준다. 각색된 내용도 흥미롭지만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몰입도를 높인 것은 그린이의 능력이다. 흑백의 대비, 거칠고 굵지만 세밀한 묘사, 농도를 통한 표현,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화면 구성 등은 이 그래픽노블을 단숨에 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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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에느 리일 지음, 이승재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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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북유럽 스릴러에서 기대하는 액션이나 스릴러를 예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 예상은 읽으면서 점점 더 깨어졌다. 강렬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릴러도 일반적인 스릴러의 공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아빠가 할머니를 살해했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해서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아주 잔혹한 살인마를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는 다르다. 왜 아빠는 엄마를 죽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이 가족사로 먼저 들어간다. 뛰어난 목공 실력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두 형제가 자랐다는 것과 아버지가 번개를 맞고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

 

다시 생각하니 아니다. 번개 맞고 죽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또 아버지가 관을 만들고 누워 있는 장면도 특이하다. 이것이 둘째 아들 옌스 호더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형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섬을 떠났고, 옌스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목공 실력으로 작은 생계를 유지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로 겨울을 날 돈을 번다. 이런 삶에 변화가 온 것은 홀데트 섬에 일자리를 찾아온 마리아가 오면서부터다. 마리아는 정치인과 결혼을 강요하는 부모를 떠나왔다. 그리고 섬에서 가장 잘 생긴 옌스와 사랑에 빠진다. 이때는 아직 옌스가 사람과 교류를 제대로 하던 시기다.

 

마리아는 쌍둥이를 낳았다. 옌스가 아버지에게 말했듯이 딸은 리우, 아들은 카알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어느날 이 쌍둥이 중 카알이 아기 침대 옆에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된다. 누가 죽인 것일까?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산후우울증을 의심하고, 며느리는 자신을 탐탁하지 않게 여긴 시어머니를 의심한다. 이 사건은 옌스가 엄마 엘세를 집밖으로 몰아내는 계기가 된다. 엘세는 여동생 집에서 몇 년을 살다가 말없이 집에 온다. 집은 엉망이다. 마리아는 엄청나게 비대해졌고, 리우는 학교를 보낼 생각조차 않는다. 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리우에게 할머니를 아는 아줌마라고 소개한 것이다.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죽기 얼마 전이다.

 

집은 아버지의 수집으로 사람이 살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 충분히 쓸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사람을 옌스는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점점 일을 멀리한다. 어느 순간 딸은 좀도둑이 되어 다른 집에서 물건과 먹을 것을 훔친다. 이 소설을 중반 이후 전직 학교 선생이자 현재 유일한 펍의 주인이 리우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냥 기억의 착오 정도로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야기에 반전이 펼쳐지는 것은 이 주인이 리우의 흔적을 쫓아가면서부터다. 후반에 그의 방문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이 가족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비롯한다. 앞에서 쌓아올린 이야기가 긴장감을 고조시킨 것이다.

 

제목인 송진은 송진에 갇혀 오랜 세월 동안 원형을 유지한 곤충들 모습과 이집트의 미라 제조법과 관계 있다. 특히 미라 제조법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리아가 두 번째 임신을 조산으로 사산아를 낳자 옌스는 이 아름다운 아이를 미라로 만든다. 이 과정을 리우는 옆에서 본다. 간략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이 섬뜩하고, 한 인간의 뒤틀린 마음과 죄책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에는 카알이 죽게 된 원인도 한몫한다. 작가는 이 원인을 끝에 한꺼번에 폭발시키지 않고, 중간에 알려주면서 옌스의 행동을 조금 더 이해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동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리우, 이 작은 소녀는 좀도둑이고, 훌륭한 사냥꾼이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부모가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고자 한 아이다. 옌스는 아이를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아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진다. 리우의 곁에는 언제나 죽은 쌍둥이 형제 카알이 보인다. 처음에는 카알이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카알의 행동과 반응 등은 리우의 또 다른 의식세계를 보여준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죽은 아기를 미라로 만들 때다. 너무 비대해진 엄마가 편지로 자신의 생각과 바람을 여기저기 남긴 것을 곳곳에 삽입했는데 이것이 현상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마지막 장면으로 가면 이 글들은 더욱 간결해지고, 현실은 더욱 참혹해진다. 읽고 난 후 머릿속에 복잡해지고, 이 가족의 뒤틀리고 잔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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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고바야시 히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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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만 놓고 보면 조금 긴 중편소설이다. 하지만 품고 있는 내용은 어느 장편 못지않다. 처음에 이 소설이 받은 상과 드라마 제작 등을 말할 때만 해도 보통의 흔한 범죄소설로 생각했다. <Q&A>란 제목을 보고 흔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일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기도 맞고, 묻고 답하는 내용도 있지만 범인과 피해자의 비밀일기 같은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라고 짐작했던 것은 Q와 &와 A라는 각각 다른 세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또 한 번 반전이 일어난다. Q와 A가 범인과 피해자일 것이란 예상도 벗어난다.

 

형사가 일기를 가지고 범죄자를 쫓는 일반적인 설정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형사는 단순히 현장을 소개하고, 외국어로 작성된 일기를 번역하는 존재일 뿐이다. 실제 범인을 잡기 위한 어떤 액션을 취하지도 않는다. 일기를 더 읽기 위해 차를 더 움직일 뿐이다. 누가 범인인지 그 실체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왜 이런 살인이 일어났는지는 이 일기가 알려준다. 그리고 처음 살인 현장에서 본 이상한 부조화의 원인도 해결된다. 그 부조화는 피해자의 표정에서 비롯한다. 일반적인 살인 피해자가 짓는 고통이나 놀람이 없다. 오히려 평온하고 행복하다. 이런 표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일기에 담겨 있다.

 

일기는 외국 어느 나라의 수도원에 버려졌던 아이 이야기로 시작한다. 아!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Q와 A의 질문과 답변이 나온다. 이 설정 때문에 먼저 선입견이 생겼다. 수도원에 버려진 아이는 키 순서대로 숫자로 흔히 불린다. 9. 그의 별명이자 그가 불리길 원하는 이름이다. 열 명의 아이 중 두 번째로 작은 아이이자 아홉 번째로 큰 아이란 의미다. 성금이 없어 고아원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겨울이 되면 춥고, 늘 배고프다. 이런 아이들이 어느 날 부모와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지나가는 한 아이를 본다. 분노한다. 뭔가를 저지르려고 한다.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사실과 부모와 함께 행복하고 살고 아이가 비교되는 순간 증오의 감정이 폭발한다. 이 폭발은 전부의 동의 아래 작고 위험한 계획으로 변한다. 그들은 아이를 납치해 나무에 매달고, 때린다. 아이의 행복이 질투했기에 벌어진 행동이다. 하지만 아이의 울음과 애타게 부모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세상의 이치 중 하나를 깨닫는다. 세상은 잔혹하고 부조리하다는 현실 인식이다. 신부가 아이들을 이용해 설교를 잘 하면서 수도원은 부유해진다. 성장한 아이들은 각각 자신의 길을 간다. 아이들을 이용해 돈을 벌던 신부는 불안해한다. 이 아이들은 남을 사람을 뽑는다. 9가 선택되었다. 문제는 반복되는 설교에 지친 신도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아이에게 화를 푸는 신부다. 세상이 잔혹하다는 것을 아는 아이는 신부의 학대를 그냥 견딘다. 그러다 신부의 실수로 학대 사실이 드러난다.

 

기절한 9를 입양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세상이 잔혹하다는 사실을 깨닫은 소년은 무감각해진다. 하지만 그는 아이가 세상을 더 알길 바란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본명이 나오는 인물이다. 입양되어 새로운 세상을 알고 배운다. 학교에서는 친구도 만나지만 이 만남이 불러오는 후폭풍은 급속하고 비현실적이고 3류 소설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예상했지만 아니길 바란 설정으로 나아갈 때 아쉬움은 커졌다. 이 뒤틀린 상황은 부조리하고 잔혹한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극단적인 모습이 나는 불만스럽다. 좀더 세밀하고 현실적인 모습을 담으면서 잔혹한 부조리를 드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어떻게 각색되었는지 궁금하다. 원작 속에서 9와 Q를 같이 놓은 것은 일어 발음 때문인데 외국임을 감안하면 약간 억지스럽다. Q에 대한 재밌는 해석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라 신선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시체의 나이도 말하지 않은 것은 일기에 더 무게를 두기 위해서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중편 분량을 장편으로 늘려서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A의 이야기도 넣었으면 좋겠다. 그럼 아주 멋진 소설 한 편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이 자체로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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