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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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1996년에 나온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있었다. 한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빠져 있던 시기고, 이런 종류의 잡다한 지식 쌓기를 할 때였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늘 사 놓고 묵혀둔 책들이 있었고, 뒤로 밀리고 밀렸다. 그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란 두툼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시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 때였다. 잘 읽히지만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라 그때 나의 취향과 조금 달랐다. 이전이라면 당연히 사서 모셔두었을 텐데 이번에는 참았다. 그리고 다시 원래 제목으로 이 책이 나왔다. 훨씬 두툼한 분량으로. 사실 이전 책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책소개를 보니 아주 많은 내용이 보강되었다고 한다. 실제 처음보다 두 배 정도 늘었다. 워낙 두툼한 분량이다 보니 띄엄띄엄 읽었다.


처음부터 단숨에 읽을 생각을 못했다. 이런 종류의 책을 단숨에 읽기에는 나의 머리가 많이 부족하다. 새로운 정보, 감탄할 내용들이 나왔지만 읽다 보니 새로운 정보가 이전 정보 위에 덧씌워진다. 원래 의도는 정보의 축적인데 새로 쓰기가 되다니. 그래도 읽는 동안은 즐거웠다. 그리고 이번 책은 이전에 그가 낸 책들의 순서와 반대로 편집되어 나온다. ‘죽음’ 이후 나온 소설들도 많은 것을 생각하면 다음에 새롭게 덧붙여진 책이 나올 것 같다. 아마 그때 다시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 바람이라면 이 내용들이 새롭게 읽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의 저질 기억력을 감안하면 자신할 수 없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늘 에드몽 웰즈의 백과사전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가상의 책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실체를 마주하니 느낌이 새롭다.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몇 권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기에 다음에 읽을 때 이 내용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프롤로그에 이런 종류의 글을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좋아한다고 이렇게 계속 내용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의 예를 생각보다 많이 넣었고, 한국의 것을 거의 찾아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의 책이 한국에서 늘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감안할 때 더욱. 물론 이것은 그가 정보를 모을 자료들이 한국보다 일본 것이 더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542항목이지만 분량은 제각각이다. 많은 것은 몇 쪽이나 되지만 한두 줄로 끝나는 것도 있다. 긴 분량의 경우 관심이 있는 분야면 집중해서 읽게 되지만 어떤 항목은 대충 훑고 만다. 반성할 부분이다. 그리고 읽다 보면 기억을 새롭게 하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나의 기억과 비교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읽으면서 이 부분은 글 쓸 때 인용해야지 해 놓고 그냥 지나간 항목이 셀 수 없다. 이 놈의 귀차니즘은 어쩔 것인지. 귀차니즘을 뚫고 기록해 놓은 것이 딱 두 개 있다. ‘장거리 경주’와 ‘복식호흡’이다. 복식호흡은 최근 체한 듯한 몸 상태 때문이고, 장거리 경주는 실제 삶과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목표만 생각할 경우 그곳만 가는 것을 생각하다 더 높은 곳을 놓친다. 자신의 한계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자주 보게 되는 모습이다.


오랜 세월의 기록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 기록을 새롭게 변경해야 할 부분도 있는 듯한데 수정이 없다. 내가 수정된 것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죽음>까지만 반영되어 있다. 최근 <고양이> 등을 읽으면서 본 내용은 없다. ‘천안문 사태’ 같은 이야기는 기억을 되살리고, 놓친 부분을 채워준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 인물의 행방을 지금도 알 수 없다는 대목에서 중국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실제 중국인들을 만나면 공산당의 통제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계급 간의 다툼을 다룬 ‘이스터 섬’ 을 읽으면서 발해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책장에 두고 다른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끔 찾아보기에 좋을 것 같다. 제목에 상대와 절대 두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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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iller's Wife 킬러스 와이프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1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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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소설이다. 소개글에 법정 스릴러라는 대목이 나오지만 보통의 연쇄살인범을 다룬 소설들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의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는 살인범과 경찰의 치밀한 싸움이 주는 긴장감과 예상 외의 범인이 주는 재미로 이런 장르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장르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연쇄살인범 추적이 전반부라면 법정 싸움이 후반부를 차지한다. 여기에 중요한 설정 하나를 넣었다. 바로 연쇄살인범의 아내였던 제시카 야들리를 연방검사로 등장시킨 것이다. 제시카의 남편 에디 칼은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이 둘 사이에 높은 지능을 가진 딸 타라가 있다.


제시카에게 FBI요원 볼드윈이 다가온다.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두 건의 살인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감상을 말해달라는 것이다. 이 사건 현장이 야들리의 남편 에디 칼이 저지른 살인과 닮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14년 동안 잊고자 했던 전 남편의 기억이 다시 돌아온다.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참혹하게 부부가 죽은 현장을 돌아본다. 남편의 흔적들이 보인다. 볼드윈은 이 사건을 범인을 잡고 싶다. 그의 욕심이 야들리의 죄책감을 자극하면서 에디를 찾아가게 한다. 다시 에디를 만나 도움을 요청한다. 에디는 딸 타라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 거래 조건을 야들리는 거절한다. 감옥에 에디를 찾아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상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잡으려는 마음은 조급하게 상황을 이어가게 한다. 에디에게 온 메일 하나로 용의자를 잡지만 허술한 구석이 많다. 공범의 가능성을 남겨두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범인은 현장에 그 어떤 증거물도 남기지 않았다. 몇 가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지만 그것 만으로 범인을 잡기는 부족하다. 몇 가지 상황을 보면 수사 관련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 범인이 세부 사항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살인을 막기 위해서는 에디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요구 조건을 내세우면서 누가 범인인지 말하지 않는다. 에디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고, 어떤 음모를 꾸민다는 것을 살짝 풀어놓는다.


에디의 모방범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던 딸이 사라진다. 혹시 범인이 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던진다. 문제아와 사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 소리 했는데 사라졌다. 그 남자 아이도 사라졌다. 혹시 하는 불안감이 야들리를 사로잡는다. IQ 170대인 딸이지만 감정은 십대인 타라다. 에디에게 가 사라진 딸 이야기를 하면서 연쇄살인범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한다. 경찰에 연락해 실종자 명단에 올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동거남 웨슬리도 함께 찾는다. 웨슬리는 에디 때문에 남자에게 마음을 문들 닫고 있던 그녀를 보듬어준 남자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서 야들리가 이 사건에서 손을 떼기를 바란다. 둘은 충돌한다.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또 한 번 살인 시도가 생긴다. 아이가 많은 집이라 곳곳에 놓여 있던 장난감이 경보음처럼 작동한다. 남편과 살인자가 싸우고, 경보음이 울리면서 살인자는 달아난다. 경찰들은 더 조급해진다. 동시에 더 많은 단서가 나온다. 피해자 가정의 공통점이 보인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범인의 집에서 증거 동영상을 보고 놀란다. 범인이 잡히지만 끝이 아니다. 법정 싸움이 남았다. 작가는 여기에 연방검사실의 성차별과 정치를 뒤섞는다. 연쇄살인범이 뻔한데 법적 문제 때문에 풀려날지도 모른다.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풀려나려는 살인범과 검사의 대결이 펼쳐진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에디의 모습에서 <양들의 침묵> 속 한니발 렉터를, 법정 싸움은 한동안 열독했던 존 그리샴의 소설들을. 그리고 마지막 반전을 읽으면서 새로운 악의 탄생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설정을 넣고, 비틀면서 생략된 부분들이 순간의 비약처럼 다가온다. 더 풍성한 이야기를 보여주려면 후속작이 필요하다. 어쩌면 후속작 자체가 반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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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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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이란 공포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를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작가로 검색하니 낯익은 책이 한 권 보인다. 재밌게 읽은 <아마리 종활 사진관>이다. 최근에 나온 소설을 제외하면 네 권이 출간되었는데 3권이나 읽었다. 많다고 생각하면서 출간된 연도를 확인하니 처음 읽은 소설을 제외하면 모두 올해 출간되었다. 단순히 추세만 본다면 내년에도 상당한 소설이 번역되어 나올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기에 반가운 부분이다. 만약 추세가 꺽인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띠지의 문구가 상당히 자극적이다. “오늘 밤 그를 죽이지 못하면 그녀가 죽는다. 이번에도 신은 답을 알고 있을까?” 표지에 나온 두 소년을 생각하면서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는 과거의 사건과 성장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펼쳐 읽으니 그 속에 나온 이야기는 소년 명탐정 이야기다. 역자도 쓴 것처럼 소년판 셜록 홈즈다. 4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다섯 개의 사건을 다룬다. 죽는다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렇게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연작집이 아니다. 학원물과 성장을 같이 묶은 조금은 아기자기한 소설이다. 그렇다고 신이라고 불리는 미즈타니의 추리가 허술한 것은 아니다. 아주 뛰어나다.


친구들 사이에 미즈타니는 신이라고 불린다. 문제가 생겼을 때 상의하면 그 답을 내주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사토하라가 미즈타니에게 처음 도움을 청한 것은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벚꽃절임을 흘렸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을 찾아갔는데 사토하라가 이 절임을 만드는 방법을 잘 기억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며칠 여행 간 사이에 같이 절임을 만든다. 그리고 유기 고양이 한 마리를 할아버지에게 전달하기로 한다. 할아버지가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고 좋아하면서 고맙다고 벚꽃차를 만든다. 그런데 할아버지 몸에 이상이 생긴다. 약을 먹고 괜찮아진다. 여기서 미즈타니가 얼마나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난다.


띠지에 나온 이야기를 다룬 것은 2부다. 아이들의 작은 배려가 이상한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을 미즈타니가 알아챈다. 자신의 추론을 말하는데 그 대상이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한다. 파친코에 다니는 아버지를 멈추게 해달라는 것이다. 새로운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란 가와카미의 의견이다.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낸다. 하지만 실행일에 벌어진 사건 하나와 가와카미의 집을 방문해서 마주한 사실들은 단순히 파친코에 가는 문제가 아니다. 가정폭력 아래 놓여 있는 가와카미의 현실이 나타난다. 사토라하가 낸 아이디어는 정답에 가깝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이 이야기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도 조금씩 영향을 미친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학교 기마전과 학교 괴담 등을 다룬다. 약간 소소한 에피소드인데 학원물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재밌게 풀어낸다. 예상한 반전 하나와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가 나온다. 이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잠시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고 하면 과한 반응일까? 특히 기마전 이야기는 미즈타니의 전술과 상관없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학교 괴담은 가와카미와 이어져 있는데 괴담을 미즈타니에게 상담하러 온 소년의 진술과 허세가 재밌다. 그리고 찜찜한 사실 하나가 남는다. 그 찜찜함은 화자인 사토하라가 미즈타니에게 숨긴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캐릭터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시리즈가 계속 나와 ‘신’의 활약을 보고 싶다. 멋진 캐릭터가 활약하는 학원 미스터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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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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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 책을 사 놓고 잊어버렸다. SF 문학상인 네뷸러상을 수상했다는 소식과 좋은 평가가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늘 그렇듯이 사 놓고 묵혀두기만 했다. 다시 이 책을 받았을 때 예전 기억을 잠시 떠올린 것은 이번에는 완독할 기회가 생겼다는 반가움이다. 실제 읽으면서 예상한 것보다 더딘 속도를 보여주었는데 한 자폐인의 언어와 생각을 표현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상인이란 표현을 사용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소설 속 주인공 루 애런데일이 보여주는 행동은 이성적이고 훌륭하다. 다만 이성과 감성의 불일치가 만들어낸 상황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 소설이 SF가 맞는지 묻게 된다. 자폐인을 다룬 다른 소설과 순간적으로 비교한다. 그 소설은 <앨저넌에게 꽃을>이다.


근미래에는 자폐를 모두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이 치료 전에 태어난 사람들만 현재 자폐인으로 살아간다. 루와 그의 직장 동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자폐인들은 특수부서에 일한다. 정상인처럼 소통하는 것은 힘들지만 패턴을 발견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수익이 상당하지만 새롭게 부임한 관리자 크렌쇼는 이들이 누리는 특별한 복지 혜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폐인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의료 기술을 이들에게 시험해보고 싶어한다. 만약 이들이 이 수술을 거부한다면 해고도 할 마음을 품고 있다. 이 부서를 관리하는 부하 직원에게 이 정상화 수술을 받게 하라고 명령한다. 이 부서가 얼마나 생산성이 높고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는지는 크렌쇼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루는 직장을 다니고, 운전을 하고, 취미 생활로 펜싱을 한다. 회사에서 자폐인 동료들과 잠시 피자 등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이외의 관계는 맺지 않는다. 외부에서 루가 펜싱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그의 진짜 친구들이다. 루는 펜싱을 하기 전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상대방의 움직임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훈련을 했기에 그의 실력은 점점 좋아진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 돈은 운동 전에 스트레칭도 하지 않고,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루보다 먼저 펜싱을 했지만 실력은 뒤쳐진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괜히 루 탓으로 돌리면서 그를 괴롭힌다. 돈을 친구로 생각한 루는 이 가능성을 애써 부인하려고 한다.


소설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는 루가 속한 회사가 자폐인에게 강요하는 수술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루가 배우는 펜싱과 그 친구들이다. 루가 펜싱 대회에 나가 보여준 실력은 첫 출연에 비해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그를 가르친 톰의 말 실수가 돈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이후 루의 차 타이어가 모두 터져 있거나 차 앞유리창이 깨지거나 배터리가 없어진다. 이 상황을 경찰에 신고한다. 읽으면서 범인이 누군지 금방 알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가 범인인지가 아니다. 누가 경험하는 일들과 감정들이다. 읽으면서 답답한 점도 있지만 그 순수하고 이성적인 마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루는 펜싱 모임의 마저리를 좋아한다. 자신이 자페인이라 사실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아주 이성적으로 상황을 마주하는 루이지만 마저리와 관계된 일에는 허둥지둥한다. 재밌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감정이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다가온 자폐 개선 수술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연구원이 주는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기초 공부를 하는데 이때 그가 보여준 놀라운 학습 능력은 어떤 기대를 품게 만든다. 작가는 천재의 기발한 발상이나 환상적인 치료보다 자폐인의 삶과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엮어 갈등 등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의 제목은 실제 작가의 아들이 물은 질문에서 비롯했다. 빛과 어둠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흔히 어둠을 장소로만 간주하는 것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이것을 조금 비틀면 자폐인과 정상인의 관계도 설명 가능할까? 앞으로 자폐인이 생길 가능성이 없는데 현재 있는 자폐인을 고칠 수술을 연구한다는 설정은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지만 뇌 수술을 둘러싼 과거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모습을 감안하면 이 소설 속 루와 자폐인 동료들의 대화 속에 드러난 감정들은 아주 솔직하다.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근미래 SF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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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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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보니 <저지먼트>가 보인다. 책소개를 보니 ‘동해복수법’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서늘한 이야기가 먼저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읽다 보면 복수에 긍정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법은 반대하면서 복수에는 찬성한다는 이상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는 소설 내용을 아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저지먼트>는 읽지 않았고, <죄인이 기도할 때>는 그 참혹한 소년 범죄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차이가 이런 괴리를 불러왔다. 학습된 이성과 부모의 감성이 충돌하고, 상황에 따라 이성이 다른 감정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소설 속 몇 가지 상황들이 나를 흔든다.


학교 폭력은 그치질 않는다. 얼마 전에는 사립 초등학교 학폭으로 맘 까페가 난리난 것을 아내가 알려줬다. 이 소설 속 화자 중 한 명인 도키타도 학교 불량배 류지에게 공공연한 괴롭힘과 폭행을 당한다. 소년은 오히려 죽기를 바랄 정도다.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마구 때린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웃기도 한다. 이런 소년을 피에로 복장을 한 누군가가 구해준다. 스스로를 페니라고 부른다. 페니는 소년의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고 그 살인을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살인 계획을 잘 짜서 보여달라고 한다. 도키타는 살인계획을 세운다.


아들이 학교 폭력으로 죽은 후 아내마저 죽은 가자미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아들은 자신을 괴롭힌 동급생의 이름을 적은 후 목을 베어 자살했다. 피가 튀어 그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부모들은 확인할 수 있는 한자를 단서로 폭행범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모두 입을 다문다. 누군가 아내의 돈과 노력으로 한 아이의 이름을 말하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다. 업무 때문에 아들의 전화를 제 때 받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된 가자미는 자살의 진상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지만 아내는 진상을 밝히고자 노력하면서 그 속에 매몰된다. 결국 아내는 아들이 죽은 날인 11월 6일 자살한다. 한 가족의 처참한 파멸이다.


이야기 첫 부분에 11월 6일의 도시 괴담이 나온다. 가자미의 아들 시게아키, 그 자살한 아이의 엄마, 시게아키를 괴롭혔다고 자백한 학폭자 한 명이 같은 날 죽었다. 도키타도 이 전설을 이용해 자신을 괴롭히는 류지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실패했을 때 돌아올 보복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에 자주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처벌 문제가 나온다. 이 폭력 살인 청소년들은 소년원에 들어가도 전과가 생기지 않고, 사회에 돌아와 이름도 바꿀 수 있다. 다시 돌아와 그 신고자와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만약 성 폭력이나 이런 사진이 인터넷에 노출된다면 어떨까? 그 피해자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그 사진이 돌아다닌다.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는 모습이다.


소설은 자살자의 아버지와 학폭의 피해자를 내세워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도키타의 가족은 아버지의 불륜으로 가족이 깨어진다. 그는 아들이 공립에 간다고 할 때도 말리지 않았고, 아들의 학교 생활에 관심이 없다.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아들이 폭행에 시달려 누군가를 죽인다고 할 때 보여준 반응은 학습된 내용 외에 아무것도 없다. 가자미의 경우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지만 아들의 폭행 사실을 몰랐다. 아들이 피해가 가족으로 옮겨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가자미의 후회 중 하나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아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보다 그것을 피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먼저다. 현실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잊는 것들이다.


처음 읽다 보면 학교 폭력자들에게 치밀하게 복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은 복수가 목적이 아니다.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 그리고 학교 폭력의 진상을 파헤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지를 보여준다. 특히 학교가 보여주는 행동은 늘 그렇듯이 아주 방어적이고 기만적이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 빨리 이 사건이 지나가고 잊혀지길 바랄 뿐이다. 진상을 알고, 그 대상자가 처벌받기를 바라는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은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읽으면서 가장 울컥했던 부분도 이런 대목이다. 법을 내세워 말하지만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언론과 행정 사법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독성이 좋다. 예상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긴장감이 떨어져 아쉽다. 두 아버지의 모습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금방 알 수 있게 한다. 흔히 쉽게 말하는 죽을 마음이면 그 마음으로 살아라는 대목에 대한 가장 적절한 반론을 보여준다. 서늘함과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보다 오히려 감성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마무리한 것은 의미 있지만 개인적으로 약간 아쉽다. 가자미의 입장으로 많은 부분 읽었으면서 감정 이입을 많이 했다. 이런 소설을 읽다 보면 늘 소년법과 피해자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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