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철학 스케치 1 -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
김선희 지음 / 풀빛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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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야기로 만나는 교양의 세계란 표지가 보인다. 그 이야기가 동양철학이다. 학창시절 잠시 동양철학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비록 그것이 수박 겉핥기였다고 하여도 말이다. 심오하다거나 난해하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동양철학의 경우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고, 그 흐름에 대해 깊이 있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소설 등에서 단편적으로 많이 만났는데 그 표현들이 상당히 나를 끌어당겼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문장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어떤 시대였는지 알게 되었다. 잘못 인용되거나 가져다 붙인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저자는 교과서적인 철학적 개념이나 이론을 목적하지 않았다. 그녀가 관심을 둔 것은 ‘철학들이 문제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바꾸고 실천하는 힘’(1권 15쪽)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연대순으로 이어진다. 중국 고대문명에서 시작하여 19세기 조선과 일본까지의 철학을 다룬다. 그 중심에 있는 철학은 유학이다. 어쩔 수 없다. 동아시아의 긴 역사 속에 유학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불교나 도교를 비교 대상으로 놓을 수는 있지만 사회구조나 정치권력을 생각하면 유학이 더 비중이 높다.

동양철학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중국철학이란 표현으로 바꿔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물론 시기상으로 불교를 다룬다거나 조선과 일본의 철학을 논의하지만 그 비중은 크지 않다. 처음 읽으면서 이 부분이 사실 눈에 거슬렸다. 동양철학과 중국철학이 거의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의미에서 동양철학으로 본다거나 조선과 일본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고 그 세부내용을 읽어가면서 그 빛은 점점 사그라졌다. 그리고 어떤 변천을 거쳤는지, 시대와 어떻게 소통하였는지, 그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개념에서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등을 돌아보게 되었다.

모두 6부 18장을 이루어져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철학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준다. 학창시절 단순히 외우기만 했던 이름이나 의미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철학의 세계로 이끈다. 피상적이거나 덧씌워져 있던 허상을 하나씩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와 유학과 불교와 도교 등이 어떤 길을 걸었고, 유학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조금씩 감을 잡았다. 이기일원론이니 이기이원론이니 하는 이론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단순히 학설에 대한 설명만 읽었다면 피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학의 발전과정을 통해 접근하면서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 것이다. 물론 이 한 권의 책으로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발전한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그 흐름을 통해 전체적인 윤곽이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동양철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비교적 쉽게 풀어내었다. 비교적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야기처럼 썼다고 하지만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양 철학사를 정리하는 과정에 저자의 의견이나 이해가 개념 정리나 본래의 의미를 넘어선 경우도 보인다. 동양 철학사를 통해 동양 역사를 다루니 이런 오해나 충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소피의 세계>만큼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아마도 이것은 지금까지 읽은 소설 등에서 단편적으로 얻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개념들이 낯설고 어렵다면 고역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 읽기를 권하고 싶다. 과문해서 다른 좋은 책을 만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정도의 재미와 흥미와 난이도를 가진 책을 만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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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야귀문 2 - 유행천녀
세가와 타카쯔구 지음, 김현숙 옮김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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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벼운 마음으로 단숨에 읽었다. 1권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조금씩 기억을 되살려 읽었다. 부담 없는 분량과 내용으로 한 편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번 권에서도 여전히 영어가 나오는 것을 보면서 언어까지 헤이안 시대의 모습을 재현한 것은 아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처음엔 상당히 이 부분에 눈에 거슬렸지만 그냥 받아들이니 큰 부담이 없다.

앞 이야기에서 왕자의 죽음이 저주로 인한 것임을 말했다. 이에 대한 해답이 이번 권에서 나온다. 하지만 다른 사건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진전이 있고, 우리의 불쌍한 주인공 나쯔키는 드디어 대장의 본심을 알게 된다. 결코 심각하거나 무시무시하지 않은 내용이다. 다시 등장한 말머리 귀신 아오에의 행동은 저승의 옥졸이 맞나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이찌죠와 이들 콤비들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형식이 되려나 보다.

음양사와 밀법승의 기우제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번 권에서 그 이면에 숨겨진 후궁들의 시샘과 질투와 권력 대결은 앞 이야기의 사건과 이어지면서 재미를 불러온다. 하지만 깊이 있는 묘사나 심리가 있기보다 일상적으로 보는 가벼운 전개다. 그러니 부담이 없다. 권력의 암투나 질투를 강하고 섬세하게 묘사한 소설도 많이 있지만 가끔 이런 식의 전개도 책의 내용에 따라서는 즐겁게 읽힌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일로 인해 일어나는 마지막 장면은 앞으로 더 많은 사건이 발생할 것을 암시한다. 지위가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시샘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앞으로 위사와 음양사와 귀신으로 이루어진 세 콤비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는 것도 이 시리즈의 재미가 아닐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가끔 읽는다면 좋을 책이다. 물론 역사의 사실성이나 탁월한 구성을 기대한다면 부족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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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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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스무 살의 맷 헌터는 맞고 있던 친구를 구하기 위해 공포로 휘감겨 있던 몸을 움직인다. 그러다 한 청년의 목을 잡고 스러진다. 그 청년 스티븐 맥그래스는 죽는다. 의도는 없었다. 하지만 한 청년이 죽었다. 이 때문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다. 4년. 긴 세월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를 변화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출소 후 9년이 지나갔다. 그는 사랑하는 올리비아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결혼 후 그토록 원했던 임신도 했다. 이런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그 전화 속에 담긴 동영상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백금 색 가발을 쓰고, 다른 남자와 호텔에 있는 것이다. 출장 간다고 떠난 그녀가 말이다. 그녀에게 휴대폰 연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불안감이 자라난다. 그리고 그를 몰래 뒤따르는 차 한 대가 있다. 이 정보들을 가지고 사설탐정 싱글에게 조사를 의뢰한다. 

이 이야기 앞에 한 소녀가 스트리퍼 키미를 찾아온다. 자신의 친엄마 캔디스 포터를 찾아서 온 것이다.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고, 엄마와 친했던 키미에게 살인자를 찾고 싶다는 의지를 전한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소녀는 그녀에게서 한 장의 사진을 받는다. 엄마 사진이다. 소녀는 떠나고, 키미는 죽은 친구의 무덤을 찾는다. 과연 이 장면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짧게 나온 이 장면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에식스 카운티 강력반 형사, 로렌 뮤즈에게 검사는 하나의 사건을 맡긴다. 그녀가 다녔던 세인트 마가렛 고등학교의 교사이자 수녀였던 메리 로즈에 대한 과거를 조사하란 것이다. 그 학교는 결코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 학교의 교장은 죽은 메리 로즈 수녀의 심폐소생술 과정에 가슴확대수술용 실리콘을 발견한다. 수녀원에 들어올 때 정보와 다름을 알고 검사를 통해 정보를 얻고자한 것이다. 그런데 실리콘 속에 있던 정보가 다른 조직원을 불러오게 만든다. 자연사로 생각했던 죽음은 타살로 변경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사연을 좇는다.

어떻게 보면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죽은 스트리퍼 엄마와 바람을 피는 것 같은 아내와 과거가 수상한 수녀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아내가 의심스런 맷의 혼란과 추적은 사설탐정의 도움으로 하나씩 비밀이 벗겨진다. 실리콘을 가슴에 담고 있던 수녀의 정체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업체의 방해로 지지부진하다. 어느 순간 맷의 혼란은 조작된 영상에서 비롯한 것임을 깨닫게 되고, 로렌의 조사를 방해하는 조직은 이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하나씩 사실이 밝혀지고, 그 과정에 한 명씩 사람이 죽어나간다. 사건은 더 복잡해지고 전과자였던 맷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진다.

관계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엮으면서 반전에 반전을 만들어낸다. 한 번의 실수가 만들어낸 비극이 그를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 전과자에 대한 사회 인식이 어떤지 알 수 있다. 하나의 동영상과 수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이 밝혀지면서 손에서 책을 떼기가 힘들어진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달려온 비극과 사실은 결코 그들을 쉽게 놓아두지 않는다. 정교한 작업을 통해 전체 이야기가 맞물려 돌아가고,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그 작업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할런 코벤의 다른 작품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이다. 비록 전과자이고, 감옥에서 몇 가지 기술을 배웠다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그를 중심으로 사건이 소용돌이친다. 맷의 죄의식, 가족, 사랑, 상실, 신뢰, 우정, 용서, 용기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전체 윤곽을 파악하려고 했지만 그 정교함을 사전에 알기는 무리다. 단지 하나의 사실만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이전에 본 작품의 영향으로 대충 반전을 예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차원적이다. 다른 반전이 그 뒤에 숨겨져 있다. 역시 코벤이다. 속도와 재미와 반전이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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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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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형사가 강을 따라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밤이다. 길을 걷다 땅에 떨어진 돈을 발견한다.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다. 그런데 또 다른 지폐가 있다. 1달러짜리다. 이렇게 돈의 흔적을 좇아간다. 적지 않은 돈을 주은 그 앞에 한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달려간다. 그녀를 구한다. 이 만남이 앞으로 펼쳐질 긴 이야기와 비극의 시작이다. 그 형사는 톰 숀이고, 그 여자는 진 레이드다. 

자살하려 했던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신을 관찰하고 미래를 결정하려는 운명이다. 처음 만났고, 그녀를 몰랐던 그에게 그녀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고백한다. 비록 열네 살에 어머니를 잃었지만 부족한 것 없이 부유하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는 그녀가 왜 그랬는지 말이다. 그것의 발단은 사실 그 집 하녀의 한 마디에서 시작했다. 진의 아버지가 사업상 비행기를 타고 서부에 갔다 올 예정인데 하녀 아일린이 돌아오는 날짜를 바꾸거나 비행기를 타지 말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냥 웃어넘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조차 그렇다. 그리고 아버지는 비행기를 타고 떠난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진의 마음속엔 불안이 싹튼다. 이성의 힘이 불안을 몰아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약해진다. 그 과정에 아일린은 해고당한다. 아버지가 돌아오기로 한 그날 비행기 사고가 발생한다. 예언이 맞았다. 그녀는 공황에 빠진다. 아일린을 찾아간다. 그녀에게 예언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한다. 그를 만난다. 그는 아버지가 집에 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힘겹게 돌아오니 죽었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비행기를 타려는 순간 그를 찾는 방송 때문에 비행기를 놓쳤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기차로 돌아온 것이다. 그녀를 통해 예언을 다시 확인한 그는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그 예언자를 물리치려고 한다. 그를 방문한다. 하지만 이 한 번의 방문으로 그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가 처음 예언한 것을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상 판단을 그에게 묻게 된 후부터 열렬한 믿음의 신봉자가 된다. 그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이익을 얻게 되니 그 믿음은 이제 결코 깨어질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다 그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듣게 된다. 믿음이 강한 만큼 그 공포는 절대적이다. 그의 공포와 절대적 믿음은 딸 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 예언된 시간까지 이틀이 남았을 때 진은 숀에게 구출되고, 이 초자연적인 예언을 풀고 막기 위해 경찰들이 동원된다. 그들은 그녀가 확인한 예언들의 사실 여부와 조작 가능성을 조사하고, 예언을 막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과연 그 예언은 실현될까? 아니면 조작된 다른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서서히 전염되는 공포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숨 가프게 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잠식된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과연 그 예언이 정말 실현될까? 아니면 형사들이 그것을 막아낼까? 호기심이 생겼다. 진의 아버지가 예언을 통해 수많은 성공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그 예언들이 초자연적인 진짜인지 의문이 생긴다. 믿음이 강한 만큼 공포도 강해지고, 그것에 잠식되어 삶의 의지를 잃고 살아가는 그 가족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그렇게 행동할까, 생각해본다. 이성적 판단에서 본다면 억지주장 같다. 하지만 현실은 알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소설의 재미는 그 운명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있다. 예언을 좇아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예언자를 감시하고, 불안 요소를 뒤좇으면서 그 가능성을 하나씩 제거한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신이 죽을 시간만 기다리며 시계만 보는 그를 통해 예언의 힘은 유지된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공포는 주변으로 퍼져나가고, 점점 강해진다. 불안을 물리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점점 굳건한 뿌리는 내리는 공포는 이미 이성과 몸을 지배해버렸다. 운명, 죽음, 사랑, 이성, 과학 등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마지막 순간을 향해 나아간다. 

작가에 대한 해설을 통해 이 작품과 작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만약 CSI 같이 모든 것을 과학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작품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고,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것도 아니란 사실에 조금 놀란다. 예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 당시 초점이 소설과 달랐다는 정보는 이 소설에 접근하는 다른 방법을 알게 한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호불호를 벗어나 이야기를 만들고, 풀어내고, 묘사하고, 진행하는 방법에선 대단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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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나는 중세 이야기 에듀 픽션 시리즈 5
귄터 벤텔레 지음, 박미화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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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중세 이야기를 만난다고? 재미있는 기획이자 시도다. 흔히 암흑 시대로 분류하던 중세이다 보니 그 관심은 더 높았다.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보여줄까, 기대도 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먼저 느낀 것은 나의 무지다. 유럽 중세사에 대한 지식 부족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명이나 지명의 차이가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다행이라면 열다섯 꼭지 하나하나가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말해지면서 그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 중 몇몇은 재미까지 가득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다. 역사는 진실을 기록해야 한다고. 진실이 왜곡된 경우도 있다고. 그리고 공식적인 문헌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전승된 전설이나 일화 역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그러면서 이 책에서도 전설과 일화를 통해 역사를 조명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나 일화와 작가의 상상력이란 결합을 통해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과 그 직업은 흔히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황제의 호위병, 역사편찬가, 학자, 농부, 시종, 수도원 수습 수녀와 견습 기사, 의사, 상인 등이 이 책에선 중심에 있다. 그들의 생활과 생각과 행동과 시선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른 높이,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단편적인 정보지만 단순하게 암흑 시대로 알고 있던 중세의 삶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분명히 시대의 한계로 인한 무지와 공포와 비과학적이고 헛소문으로 가득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도 역시 그런 경향이 곳곳에서 보인다.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 중 하나인 과거 속에서 현재를 본다는 의미를 조금 더 알게 한다.

신성로마제국의 건국과 흑사병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책 속에서 카롤루스 대제로 표기한 것은 흔히 샤를마뉴 대제로 익숙한 이름이다. 이 이름의 차이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연대표를 제외하면 이에 대한 설명이 더 없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단편이다. 하지만 긴 시대를 통해 이어진다.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삶과 생각을 해석하고 보여준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역사 지식을 얻고 싶게 만든다. 심도 있고 깊이 있는 역사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겐 부족하지만 역사 속에 익명으로 존재한 사람들의 삶을 알고 싶다면 딱 알맞다. 일반적인 역사서적의 딱딱함을 벗어던지고 직접 그 시대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 풍부한 사료와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경쟁은 나의 무지로 살짝 빛을 바랬지만 그 시대를 암흑 시대로 부르면서 뭉뚱그려 표현한 것 이상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활기차게 살아가고, 삶의 의미를 찾고, 고민하고, 사랑하고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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