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파크 Nobless Club 22
김지훈 지음 / 로크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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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미디어 노블레스 클럽의 스물두 번째 소설이다. 이 시리즈 작가들은 거의 모두가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을 낸 전력이 있다. 그런데 작가 소개에는 그들의 작품 소개가 많이 빠져 있다. 이번 소설의 작가 김지훈도 역시 다른 작품에 대한 소개가 없다. 요즘은 거의 잘 읽지 않지만 예전에 판타지나 무협을 열심히 읽었고 문피아를 열심히 돌아다니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신인작가라고 착각할 정도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끼는 아쉬움이다. 이 아쉬움은 이 시리즈가 주는 재미 때문에 더욱 크게 다가온다.

<크레타 파크>는 무협에 판타지에 SF를 섞은 것이다. 주인공 렘지의 엄청난 능력은 무협이나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무협이나 판타지는 한국 것을 말한다. 처음에 책 소개 글에서 백 명의 사람과 백 가지의 사랑을 말할 때 연애소설인가 하고 착각도 했지만 이 시리즈를 생각하면서 다른 기대를 했다. 엄청난 속도감으로 읽히고 재미를 주면서 이 기대는 충족되었다. 당연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 관심이 갔다. 맞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위시리스트에 담아뒀다.

렘지가 영국의 조그마한 마을 도서관 앤티크에서 책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국이란 지명 때문에 고대나 이계 판타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경찰과 로커가 등장해 가까운 미래가 시대적 배경임을 알려준다. 이런 정보를 가지고 몇 장 읽지 않아 렘지가 분명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자신은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착각은 앞으로 펼쳐질 그의 활약을 생각하면 조그마한 에피소드 중 하나 일뿐이지만 유쾌하고 즐겁다.

렘지의 정체는 전직 영국 특수부대 소속 전투요원이다. 사실 현대물에서 그가 가진 능력을 보여줬다면 말도 되지 않는 판타지나 SF소설로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성격을 알기에 그냥 넘어간다. 사실 무협 등을 즐겨 읽은 나에게 이런 능력은 뭐 특별한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서부극 <셰인>을 좋아하는 나에게 렘지가 보여주는 모습은 호감을 사기에 충분하다. 다만 셰인이 큰 한 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반면에 렘지는 자주 출동하여 사건을 해결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잦은 출동이 재미와 읽는 속도를 높여 준 것도 사실이다.

백 가지 사랑은 단순히 남녀의 연애 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 타국에서 열심히 돈을 벌지만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죽었다면 어떨까? 자신의 아이가 살해당하고 가슴이 도려진 여자가 벌이는 살인은 절망이 만들어낸 사랑의 또 다른 형태다. 사랑했지만 그 사랑만으로 살지 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사연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사랑과 집착이 공존하면서 존재로서의 사랑보다 소유욕을 더 앞세운 사랑은 참혹한 사건을 만든다. 사랑하지만 조그마한 다툼으로 귀여운 사랑을 만들어 가는 커플도 등장한다. 이렇게 보면 아주 이상해서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문구가 맞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는 렘지의 활약을 돋보이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강화인간이니 파이트머신이니 투명인간 같은 은폐술이니 메탈실리콘이니 하는 것은 SF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끈다. 물론 그 중심엔 렘지가 있다. 가독성, 속도감, 가끔 나오는 유머, 신랄하지만 정도가 심한 것 같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비판 등이 어울려서 정신없이 읽게 한다. 재미있다. 하지만 이런 재미를 빼고 나면 역시 아쉬운 점이 많다. 앞에 나온 설정이 뒤로 가면서 바뀐다거나 어딘가에서 본 듯한 캐릭터라거나 너무 황당한 것 같다거나 하면서 말이다. 수많은 에피소드와 렘지의 활약보다 더 마음속에 와 닿은 것은 렘지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마지막 대사다. 그리고 혹시 렘지의 다음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듀크, 유진, 비앙카, 가디언 반장 등을 더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낯익고 친숙한 캐릭터이기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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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슬립
폴 트렘블레이 지음, 이소은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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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벌써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이 떠오른다. 필립 말로를 통해 탐정의 전형을 창조했던 그 소설 말이다. 사실 챈들러의 소설을 읽으면서 감탄한 적은 없다. 취향이 그런 쪽이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하드보일드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는 점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아마 챈들러가 보여주는 풍경이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 맞지 않는 반면에 다른 작가들은 소위 말하는 코드가 맞는 모양이다. 아마 영화로 본 장면들이 집중을 방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아직 읽지 않은 몇 권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다.

이런 작가의 대표작을 오마주한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다. 출판사 광고문구들이 늘 사람을 혹하게 만들지만 이번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또 한 명의 특이한 탐정이 등장하니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특이하냐고? 탐정 역할을 하는 마크 제네비치는 기면증 환자다. 때문에 그는 수시로 잠 속으로 빠져든다.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환상도 본다. 환상과 수시로 찾아오는 잠을 가진 탐정이라니 정말 기발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제목 <리틀 슬립>은 바로 마크의 기면증에 대한 표현이자 <빅 슬립>에 오마주로 부족함이 없는 선택이다. 

첫 문장부터 <빅 슬립>의 문장을 오마주했다. 하지만 이런 패러디는 마크가 본 환상으로 이어지면서 독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그 환상은 <아메리칸 스타> 결선 진출자이자 같은 지역 출신이자 지방 검사의 딸인 제니퍼 타임스가 자신의 잃어버린 손가락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그는 그 일이 환상인지 사실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니퍼의 사인회에 찾아간다. 현실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그의 이런 행동은 이야기 내내 나온다. 덕분에 독자는 미로 속에서 무엇이 환상인지 가려내느라 고생한다. 물론 이런 환상들이 하나의 재미를 주는 것은 분명하다.

기면증에서 깨어나 발견한 것은 두 장의 사진이다. 제니퍼를 닮은 사진인데 한 장은 누드다. 꿈과 함께 이 사진을 제니퍼의 것으로 생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제니퍼의 반응이 예상을 벗어나자 약간은 당황한다. 기면증 중에 메모한 것을 착각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다 집에서 담배를 피다 졸게 된다. 이런 그를 어머니가 발견한다. 그리고 어머니를 통해 제니퍼의 아버지 타임스 검사가 죽은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였음을 알게 된다. 이 소식은 사건에 새롭게 접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의 이름이 검사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만남을 통해 사진 속 여자가 제니퍼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굴까?

기면증 탐정 마크의 조사는 그녀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다. 그에게 사진을 준 사람에게서 다시 전화가 오면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단서를 찾지만 그의 죽음으로 사라진다. 이제 사건은 사진 속 여자 찾기에서 살인사건 혹은 자살사건 같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크 주변에 위협이 찾아온다. 이 와중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잠은 정말 제목 그대로다. 그가 이미 앞에서 환각을 보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연 어떤 것이 현실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일인칭으로 진행되는 소설에서 그가 모르는 것을 독자가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다. 바로 여기서 또 다른 재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뻔한 추리를 하면서 읽다가 한 방 먹었다. 마크가 내뱉는 냉소와 유머는 웃음을 자아낸다. 과연 기면증에 걸린 탐정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그가 보여주는 환상과 아슬아슬한 얕은 잠들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감을 불러온다. 이야기가 나아감에 따라 드러나는 과거는 자아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가 사고로 기면증에 걸렸고, 이 때문에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말이다. 기발하고 특이한 탐정 마크 제네비치. 광고 문구처럼 사건이 발생하면 과연 그에게 사건을 의뢰할지는 의문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활약이 기대된다. 그가 보게될 환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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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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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알바로 내 집을 산다고?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먼저 생긴다. 처음 책 제목을 본 후 떠오른 생각이다. 그리고 어떤 슈퍼 알바를 하기에 집을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이 이어진다. 알바로 집을 산다는 것이 로또 당첨이나 많은 유산을 물려받기 전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지키고 싶어졌다는 표지의 문구는 백수, 알바, 집, 가족을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뒤섞는다. 약간 만화처럼 그려진 표지는 알바로 집을 사는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만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알바가 하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결코 알바로 집을 사지는 않는다. 

다케 세이지는 재수로 이류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자마자 중견기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3개월 만에 그만둔다. 그만 둔 이유는 종교단체 같은 회사분위기나 요령 부족 등이다. 이후 그의 재취업은 연전연패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르바이트뿐이다. 이 알바마저도 끈기가 없어 금방 그만둔다. 백수의 타성은 남 탓과 끈기 부족 등으로 취업에서 악순환만 불러온다. 그러다 평온해보였던 집안에 엄청난 일이 발생한다. 그것은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한 백수의 내 집 장만하기라는 분투기가 시작한다. 

엄마의 우울증과 새집 마련하기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얼핏 보면 찾을 수 없다. 좀더 생각을 하면 가족 경제의 붕괴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은 사람이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20년 동안 한 마을에서 벌어진 비열하고 추악하고 섬뜩하고 은근한 집단 따돌림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 이기적인 아버지가 한 수 거든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표지의 밝음은 사라지고 어둡고 힘든 한 가족의 과거를 마주하게 된다. 그 과거는 너무나도 집요하고 노골적이다. 그런데 이 집안의 두 남자는 너무나도 무신경하게 이 일을 넘어간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를 모두 집에 하루 종일 머무는 어머니가 껴안는다. 그 결과가 바로 엄마의 정신이상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예상할 수 있는 다음 이야기는 주인공의 착한 변화와 효도와 노력과 성공 등이다. 반은 맞다. 그런데 작가는 이 과정을 하루아침에 이루게 그냥두지 않는다. 자기 밖에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을 만들고, 그들이 충돌하게 한다. 둘 다 현실의 어려움과 아픔을 그냥 변명하거나 외면하려고 한다. 이런 남자들을 정상적인 길로 나아가게 만드는 인물이 바로 결혼한 딸 아야코다. 엄마의 이상을 깨닫고 달려와 그녀의 결혼 후 너무나도 망가지고 이기적인 가족의 관계를 살피고 질타한다. 그녀의 이런 행동에 가장 먼저 반응한 인물이 다케지만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현재 백수 생활 등으로 몸에 붙은 타성이 쉽게 사라질리 없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현실의 한 단면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 찬다.

초반부터 유쾌하고 즐거울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엄마의 우울증과 동네 사람들의 20년 왕따 등으로 어둡고 무겁게 시작한다. 이런 분위기는 다케의 삶이 변하면서 바뀐다. 그가 착실하게 공사현장 알바를 지속적으로 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조언을 받아 아버지와 대화를 하려고 시도하면서 조금 더 변한다. 이런 변화는 그의 성장을 가져오고, 그 성장은 초반의 무거움을 떨쳐내고 경쾌하고 즐거움을 전해준다. 하지만 작가는 중간 중간 아직도 그가 더 성장해야함을 보여주면서 일방적인 흐름을 경계한다. 이런 진행을 따라가면 직장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에 대한 지침서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앞부분의 무거움은 머릿속에서 이미 사라졌다. 다만 소설 중간 중간에 나온 몇 가지 팁과 기본자세가 떠오른다. 직장 초년생이나 취업재수생들에게 많은 도움과 재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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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법칙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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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민음사 모던 클래식 중 한 권인 것도 있지만 20세기에 다시 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자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올려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은 두 번이나 읽었지만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았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어릴 때 애니와 어린이 축약본으로 본 것이 전부다. 사실 <톰 소여의 모험>을 더 좋아했는데 이런 광고 글을 보고 선택한 것은 역시 성장소설이란 단어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취향에도 불구하고 읽은 것은 아직 내가 이해하지 못한 소년들의 삶을 보고 싶다는 의지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열네 살 소년 채피는 처음부터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처음엔 정확한 나이를 몰랐다. 마리화나를 피우고, 그것을 사기 위해 집에 있는 것들을 팔려는 그가 낯설기만 했다. 그가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옛날 동전을 찾아내고 그것을 조금씩 전당포에 팔아넘길 때만 해도 그냥 약에 취한 한 소년 이야기인가 했다. 간략하게 자기 집안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이제는 흔한 재혼 가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동전 훔친 것을 들킨 후 집을 떠나 생활하는 장면부터 보통의 우리 삶과 다른 소년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때부터 채피의 방랑자적인 삶과 불안한 심리와 산산조각난 가족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집을 나와 친구 러스 집에서 폭주족과 함께 마리화나나 피면서 생활할 때는 그냥 조그마한 일탈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폭주족이 물건을 훔치고, 화재 사고가 발생하면서 또 한 번 채피의 삶에 변화가 생긴다. 이전에 했던 범죄는 장난 같은 것이라면 이제는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기의 감정의 폭주는 자신의 본래 마음과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뛰쳐나가면서 자신과 주변사람들을 상처 입힌다. 물론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놀라운 비밀은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처음엔 환상이 아닌가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읽으면서 그 추악하고 섬뜩한 현실이 그에 대한 동조와 이해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채피가 살던 동네에서 자메이카로 이동하면서 펼쳐진다. 이 문장만 놓고 보면 한 편의 로드무비 같은 장면이 연상되지만 그 과정은 간략하게 보여줄 뿐이다. 작가에겐 그가 어떻게 그곳에 가게 되었나 보다 가게 된 이유와 간 후의 삶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 두 지리적 차이는 한 소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이 살던 마을은 그가 활기를 찾지 못하고 가라앉아 있던 시기라면 자메이카는 함께 간 아이맨 덕분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곳이다. 이 두 곳은 보통의 우리가 결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낯설고 이국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년의 방랑과 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곤혹스러웠던 것은 소년의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이다. 환경과 상황이 다른데 나의 가치관이나 철학으로 채피를 자꾸 판단하려고 했다. 이런 작업은 소년의 행동과 심리 상태가 아무리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하여도 감정 이입에 방해만 될 뿐이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선 단숨에 나아가지 못하고 맴돌기만 했다. 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삶은 이성적으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상태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집중도를 많이 흩어놓았다. 

채피 혹은 본 주변 사람들 중 누구 한 명 제대로 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일상생활 속에서 만난다면 우리 주변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들의 숨겨진 삶이, 욕망이 드러나게 되면 다르다. 모성애보다 이성보다 자신의 욕망이 더 중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라면 가족이나 친구도 하나의 소모품이다. 기존 가치관과 윤리의식은 이미 사라졌다. 사실을 그대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이 더 우선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아이맨을 통해 채피가 진정한 자신을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 드러나는 사회와 삶의 다른 모습들은 현대 사회의 모순과 어둠을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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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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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하지만 이 작가의 다른 장편 <리나>가 너무나도 좋은 평을 받아서 선택했다. 왜 <리나>가 아니고 이 작품이냐고? 그것은 바로 글쓰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서평을 올리기 시작한지 몇 년이 되었지만 최근에 정체감을 많이 느낀다. 처음엔 단순히 읽은 책을 정리하는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하나의 일처럼 되었다. 읽으면서 도저히 서평 쓸 수 있는 감을 잡지 못해 미뤄둔 책도 있고, 억지로 서평을 쓰면서 다시 그 책의 가치를 발견한 적도 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글쓰기는 하나의 공부이기도 하다. 멈출 수 없기에 계속 쓸 것이고, 좋은 문장과 책의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의 이런 글쓰기에 비해 소설 속 김 작가와 나는 전문가로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뭐 그렇다고 그들이 큰 성공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삶을 따라가면 글쓰기의 어려움과 함께 얼마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단순히 쓴다는 것을 넘어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어내고, 그 문장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여줘야 한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사실에 충실해야 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내야 한다. 그것은 소설 속 ‘나’가 성장하는 속에서 천천히 깨닫게 된다.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문장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여고생 ‘나’가 중요한 것은 의지가 아니라 테크닉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나가 테크닉을 이야기한 것은 글쓰기 때문이 아니라 연애 때문이다. 강렬한 의지로 좋아하는 남자에게 들이대는 그녀를 어떤 남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아름다웠다면 다르겠지만 그녀는 70킬로그램의 거구다. 그래서 연애 상대를 남자에서 여자로 바꾼다. 처음 선택한 R에게 연애편지를 보내지만 미친년 취급을 당한 후 그녀에게 오히려 연애편지를 보내는 K가 나타난다. 이 편지를 보면서 그녀가 쓴 글이 얼마나 조악했는지 깨닫게 되는데 사실 이 글도 나중에 좋은 글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그 사실을 모르고 연애에 목말라하던 그녀는 K와 사귄다.

이렇게 시작부터 그녀의 연애는 비일상적이다. 성 정체성 때문에 여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없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물론 뒤에 남자와 동거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으로 분명히 성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녀의 연애가 보통이 아닌 것처럼 집안 내력도 평범하지 않다.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것이나 아버지를 모르는 것은 두 번째로 해도 김 작가 불리는 엄마가 도통 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동네에서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뛰어난 필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어떤 잡지사에 에세이 하나가 실리지만 단지 책 팔아먹기 위한 방편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리고 그녀 주변에 몰려드는 수많은 시인이나 작가라는 사람들 중 한 명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등단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책을 내지 못했다고 작가가 아니라거나 실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테크닉의 숙지로 남을 가르치는 정도 뿐 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이 배우는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그 빛을 발하는 것은 개개인의 노력과 재능에 달렸지만 말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나와 김 작가의 글쓰기를 이야기하면서 나의 삶을 보여준다. 그녀의 삶은 주변 환경처럼 결코 쉽지 않고, 다양한 인생 역정은 훌륭한 글쓰기 소재가 된다. 하지만 그녀가 쓴 수많은 글들은 쓰레기라 불리고 버려진다. 이런 일을 경험하고도 그녀는 결코 글쓰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태어날 때 유전자 속에 심어져 있던 운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먼 미국에서 핵켄색 라이팅클럽을 결성했는지 모른다.

한 소녀의 성장을 글쓰기가 겹치면서 풀어낸다. 그 성장은 단순하지 않다. 많은 어려움과 경험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간다. 그리고 여자로서 엄마와 딸의 관계를 함께 이야기한다. 너무나도 무심한 엄마라도 그 속에 담긴 애정은 잔잔히 살아있다. 딸도 엄마의 병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온 것을 보면 혈연의 질김을 알 수 있다. 이 소설 속 ‘나’가 배우고 실천한 글쓰기에 대한 것은 사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나 에세이에서 한두 번 정도 본 것들이다. 하지만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쓴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아주 재미난 등장인물들을 등장시켜 흠뻑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성공한 자들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변두리 삶속에 품어져 있는 열정과 사랑은 대단하다. 전문적인 작가가 되기 위해서 체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또 다른 직업인의 실체를 보여준다. 가독성이 좋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간결하고 분명한 문장이다. 글쓰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기보다 작가 강영숙의 이름을 더 기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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