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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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을 읽었다. 단 하나의 장편으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그다. 바로 그 유명한 <은하영웅전설>이다. 이 소설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등장인물과 장대한 전쟁 이야기에 완전히 빠졌었다. 지금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이 가끔 들었는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여전히 그 재미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이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를 보면서 역시!를 외쳤던 적이 있고, 이 소설에서 <은영전>의 향기가 그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지구의 북극점이 태평양 동북부로 바뀌는 대전도를 설명한다. 이 대목은 얼마 전 읽은 <문 로스트>를 연상시켰다. 물론 <문 로스트>와 이 소설이 다루는 내용도 대륙의 변화도 다르다. 하지만 대륙의 날씨 변화라는 점은 이 두 일본작가가 왜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혹시 지진 등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 특유의 환경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니면 이 원작들이 나올 당시 이런 종류의 대재앙을 다루는 내용이 하나의 유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 공부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전도 전 인류는 달에 월면도시를 만들고 거주했다. 대전도는 3년에 걸쳐 벌어진 대재앙이다. 이 때문에 100억 명의 인류가 죽었다. 대전도 후 월면도시의 사람들은 신의 강림처럼 내려와 완벽한 도시 및 자원 개발 계획에 따라 일곱 도시를 건설한다. 이 일곱 도시는 당연히 경쟁을 하는데 작가는 하나의 전제 조건을 단다. 월면도시 사람들이 지구 표면의 사람들이 지상 500미터 이상 날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 이상을 날아오르면 올림포스 시스템에 의해 파괴된다. 이 장치로 달은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하지만 월면도시가 달을 강타한 운석의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되면서 지배자는 없지만 시스템에 의해 제약되는 지구를 만들게 된다. 이 소설은 이런 환경 속에 벌어진 일곱 도시 이야기다.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각각 길지 않은 분량인데 전쟁과 영웅과 정치를 다룬다는 부분에서 많은 부분 <은하영웅전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본 구성은 간단하다. 정치 문제가 전쟁으로 발전하고 이 전쟁에서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한다. 재미난 부분은 군인을 철저하게 정치에 부속되게 그려내었다는 것이다. <은영전>에서 라인하르트를 통해 위대한 독재자가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보여주는 반면 양 웬리를 통해 민주주의의 혼란 속에 감쳐진 위대한 힘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약간 의외의 모습이다. 물론 이 소설 속 사령관들은 정치인들을 위해 전쟁을 하지만 가끔 태업을 하면서 조율을 한다. 그리고 독재자로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도망가게 만들어 정치에 대한 작가의 혐오를 느끼게 만든다. 이 부분은 <창룡전>에서 신랄하게 일본 정치를 비판했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앞 세 단편이 네 명의 개성 강한 사령관을 등장시켜 전쟁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그 이후 두 편은 이들의 미묘한 견제와 협력 속에 펼쳐진다. 군인 외에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이 있는데 류 웨이다. 첫 이야기 아퀼로니아 전쟁을 다룬 <북극해 전선>에서 날카로운 통찰력과 정확한 판단력과 인선으로 전쟁을 승리하게 만들고 다른 도시로 이주한 인물이다. 이 이야기 이후에도 그의 영향력과 그림자는 전편에 드리워져 있는데 낭중지추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정치인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가 충분히 활약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다.

이 소설 속 전쟁 영웅들은 공격이 아닌 방어로 명성을 얻었다. 예외라면 케네스 길포드 정도다. 첫 이야기에서 그가 이끈 대승도 상대 도시 최강의 인물 AAA와의 대결이 아닌 데 이런 직접적인 대결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의외의 전개라면 각 도시 최고의 군인들이 연합으로 한 도시를 공격하는 것이다. 독재자를 몰아내겠다는 목표에서 벌어진 <페루 해협 공방전>은 최강의 군인들이라도 하나의 지휘계통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면 그 위력이 반감됨을 보여준다. 하나의 명령 아래 긴밀한 협조와 치밀한 계획과 자기희생이 따랐다면 쉽게 승리했을 이 전쟁을 말이다. 그리고 재미난 부분은 이들이 정치인들의 욕심을 견제하고 부하들의 목숨을 더 챙긴다는 것이다. 가끔 전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무모한 공격을 감행하는 장군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예외적인 인물들이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는 변함없다.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고 고개를 끄덕이는 대화 두 개만 말하겠다. “어린애는 스스로 굶어서 장난감을 사지만, 군인은 타인을 굶겨 병기를 사게 한다. 어린애는 마르고 군수 기업은 살찌는 거야.”(162쪽)와 류 웨이가 ‘전쟁 개시 결의에 찬성한 정치가가 최초로 전선에 나올 의무를 진다’는 법률안을 내고 부결된 것을 아스발이 “그야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면, 전쟁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으니까요.(168쪽)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한국처럼 고위층의 병역비리가 특히 많은 나라에서 류 웨이의 법률안은 더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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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파더
이사카 고타로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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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 기발함은 우리의 윤리관을 그대로 뛰어넘었다. 그것은 네 명의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계사회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의 일본에서 이것이 가능할 수는 없다. 뭐 네 번 결혼했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일상적인 수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정공법을 선택했고, 이 네 남자가 한 여자와 동시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연히 한 여자의 남편으로 네 명을 동시에 올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들은 같이 산다. 그리고 같이 한 소년을 키운다. 그 소년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고등학생 유키오다.

유키오는 네 명의 아버지가 키웠다. 분명히 엄마가 있지만 그녀의 등장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만약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누가 이 역할을 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어떤 여자이기에 각각 다른 성향의 네 남자를 사랑했고, 그들을 함께 살게 만들었는지 여배우를 통해 그 이미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뭐 그 여배우가 나의 생각과 너무 다를 경우 심하게 실망할 수도 있지만 소설처럼 짧게 등장한다면 또 다른 느낌을 줄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한 여자를 사랑하여 그녀가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고 키우는 네 명의 남자들이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분명 신경 쓰이는 일이다. 네 명의 아버지라니 얼마나 특이한가. 아이가 자라면서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놀리는 사람이 나온다면 어떨까? 아마 끝까지 숨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최대한 숨기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살짝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도입부다. 타에코와의 하굣길에서 벌어진 조그만 에피소드가 이런 마음을 잘 표현해준다. 이 상황을 보고 반응하는 타에코의 대응도 상당히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1기 작품답게 개성 강한 인물들이 전면에 나온다. 가장 평범한 것 같은 유키오도 보통의 고등학생과 비교하면 상당히 특출나다. 시험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고, 어릴 때 받은 단련으로 농구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시비가 붙으면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허점을 찾는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실제 싸움은 하지 않는다. 다른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 이상 나아갔을 때 벌어질 상황을 배웠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등학생을 뛰어넘는 능력을 가졌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현실 감각을 가지고 있고 생각보다 오지랖이 넓다. 그 때문에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기지만.

네 명의 아버지는 각각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체육 선생, 대학교수, 도박꾼, 바 운영자 등이다. 이 다른 직업의 남자들이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중간중간 나오는데 상당히 많은 부분 공감대를 형성한다. 어느 대목에서는 깊은 통찰력을 보여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물론 저속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질문을 되물으면서 단숨에 넘어간다. 영리하다. 또한 기발하다. 이 장면을 넘어가면 이 아버지들이 과연 어떤 활약을 펼칠지 궁금해진다. 동시에 이 애정 넘치는 아버지 때문에 유키오가 어떤 고생을 했을지도 조금은 짐작된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사카 코타로의 구성 실력은 대단하다. 캐릭터를 만드는 능력뿐만 아니라 전체 이야기를 짜고 그 속에 복선을 깔면서 풀어내는 능력은 감탄을 자아낸다.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너무 강한 개성을 보여줘 부조화를 이룰 것 같은데 전체 이야기 속에 그것을 잘 녹여내었다. 당연히 지루함이란 없다. 잠시 쉬어가는 곳도 어떻게 보면 이상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웃게 만들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초반에 사건을 만드는 우엉들을 등장시킬 때마다 웃음을 유발시킨다. 여기에 둔감한 듯 집요한 타에코의 등장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혹시 속편이 나오면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하지만 더 궁금한 것은 유키오의 엄마 토모요와 네 아버지가 어떤 활약을 펼치고 놀라운 에피소드를 쏟아낼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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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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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와 더불어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황토>가 시대의 비극 속에 각각 다른 아이를 가진 점례의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1970년대 급속하게 진행된 산업화와 뜻하지 않은 불행으로 삶의 터전을 버리고 야반도주한 복천 영감 이야기다. 전작이 시대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무력한가와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힘을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병으로 아내를 잃은 후 너무나도 무력해진 한 가장의 이야기다. 그의 무능력을 사회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의 노력이나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농사꾼 출신인 복천 영감은 칼갈이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의 과거는 현재보다 훨씬 좋았다. 물론 해방 후 가담한 사회주의 활동 때문에 5년 징역을 살았지만 부지런하고 착한 아내 덕분에 자영농으로 살았다. 하지만 이 집안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은 고생만 잔뜩 한 아내의 병이다. 병원의 오진으로 돈만 날리고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을 지경에 이르고 큰 고통 속에 죽는다. 지금 같으면 의료사고로 병원에 고소라도 할 수 있을 텐데 그 시절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릴 때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아내의 병은 집 재산을 조금씩 없애고 결코 빚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 때문에 복천 영감이 선택한 것은 이웃 소를 빌린 후 그 소 판 돈으로 야반도주하는 것이다. 이 장면만 보면 상당히 영악하고 이재에 밝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영악함은 거기까지다.

야반도주한 후 도착한 그에게 떡장수 아줌마는 한줄기 빛과 같다. 그녀와 남편의 도움으로 이런저런 일을 벌려보지만 치열한 삶의 경쟁은 쉽지 않다. 지게꾼이 되어서는 구역을 침범한다고 집단구타를 당하고, 막노동도 패거리 때문에 쫓겨난다. 소 판 돈으로 리어카를 구해 땅콩 등을 팔지만 이것마저도 사기꾼에게 당해 잃어버린다. 지독하게 운도 없다. 무엇보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그것에 빠르게 발맞춰 나가는 것인데 그것이 없다. 약삭빠르고, 뻔뻔하고, 능청스럽고, 아주 이기적이야 하는데 그는 선량하다. 이 선량함은 복권 구입에서도 드러난다. 이 복권은 단순히 어린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그마한 희망이 된다. 이런 삶의 여정은 순수하고 순박하고 진솔한 한 농사꾼이 어떻게 세상의 급박한 흐름 속에 묻혀버리는지 잘 보여준다.

전작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소설도 사회의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떡장수 아줌마, 식모 아가씨, 복권 파는 아이, 넝마지기, 지게꾼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의 삶은 하루살이와 비슷하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 주변사람에게 제대로 대우를 받지도 못한다. 삶이 너무 척박하여 남의 여유를 돌봐줄 조그만 힘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정을 나누는 사람이 생긴다. 떡장수 아줌마는 복천 영감네가 서울에 정착하는데 도움을 주고, 식모 아가씨는 잊고 있던 동향 사람의 정을 일깨워준다. 조그만 선행에서 시작한 복권 사기는 여흥이기도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삶에서 조그마한 탈출구 역할을 한다. 

농사꾼은 어딜 가도 변하지 않는다. 세태에 물들어 빨리 변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만큼 고생이다. 영악하고 약삭빠르지 못하면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 돈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 작가는 이런 세태와 더불어 그 시절의 삶과 풍경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었다. 겨울이 되면 뉴스 단골이었던 연탄가스 중독이나 주인집 남자들의 식모 겁탈 같은 조금은 뻔한 일들이 발생한다. 한번 전락한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식모 아가씨의 사연으로 드러나고, 불행은 바로 옆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떡장수 아줌마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낯익은 이야기들이지만 반갑지 않다. 지금은 없어진 듯하지만 변형되어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그렇다. 시대는 변했지만 상황은 큰 변화가 없다. 어쩌면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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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모던뽀이들 - 산책자 이상 씨와 그의 명랑한 벗들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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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이 이상 탄생 100주년이었다고 한다. 아마 작년에 이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가수 조용남이 이상에 대한 책을 내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나의 기억력은 참으로 형편없다. 이 책이 기획된 것도 바로 이상 100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일간지에 연재된 것이다. 물론 완성은 그 후로도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갔다. 한 인물과 시대를 조명하는 작업이 결코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이 이상 연구서도 아니고 그의 전기적 사실들을 재구성하는 평전이 아니다고 해도 말이다.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재미난 것은 각각의 제목이 한글로는 이상이지만 한자로는 다른 글자다. 이 언어유희가 의미하는 바를 탐색하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일 테지만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산책자다. 또 발터 벤야민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부제가 ‘산책자 이상 씨와 그의 명랑한 벗들’임을 생각하면 더 쉽다. 1930년대 경성을 돌아다닌 모던뽀이들의 삶을 이상을 중심으로 펼쳐낸 이 책에서 산책이 의미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산책은 근대의 선물이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도시에 산책자들이 출현하는데, 산책자란 거리의 풍경속에 스민 현란한 빛과 소리들을 통해 ‘근대’를 호흡하고 그것을 채집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산책은 현실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존재론적으로는 활발한 자기방기, 신체적으로는 느슨한 노동이다.“(329쪽)라고 정의한다. 산책자 이상이란 부제가 정말 잘 맞는 단어 선택이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어떤 노동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결핵을 고치기 위한 노력도 없어 보인다. 단순히 시대를 잘못 만났다고 하기에는 그의 삶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상은 천재다, 라는 문장을 자주 본다. 지금도 그의 시나 소설을 읽으면 난해하다. 이 책 속에서 해설해놓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것도 같은데 결코 쉽지 않다. 학창시절 이상이란 명성 때문에 그의 전작을 읽은 적이 있다. 단지 문장만 읽었다. 그렇게 이상은 나에게 이해 이상의 존재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아마 얼마가지 못해 포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상 해설서를 같이 놓고 차분하게 설명을 보면서 읽는다면 그의 명성에 공감하겠지만 처음 오감도가 신문에 연재되었을 당시 독자들을 조금은 이해한다. 뭐 읽지 않으면 그만이지 않나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이상 연구서도 평전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상과 그의 동료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일세의 귀재이자 아직도 난해함 그 자체로 남아 있는 그에게 한 발 다가가는데 비교적 쉬운 책이다. 그리고 동시에 1930년대 경성의 문인사회를 살짝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이상과 관련된 구인회에 대부분 한정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 인물 한 명 한 명이 한국 근대 문학의 거장임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이상의 삶을 현실 속에서 들여다본 것은 상당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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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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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나온 토니 힐 시리즈 첫 권이다. 연도를 표기하는 이유는 이 당시만 해도 프로파일러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지만 그 당시에는 쉽게 만날 수 없었다. 물론 FBI 관련된 자료에서 이 용어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익숙한 용어와 사건 전개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까? 의아했다. 출간연도를 보고 나의 기억을 헤집으면서 그 당시 소설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때 한국 추리소설에서 탐정 역할을 대부분 신문기자들이 맡아서 했던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앞선 작업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 당시는 분명 프로파일러 토니 힐이 새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유행 등으로 이 직업은 이제 익숙하다. 이 익숙함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작품이 지닌 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분명히 그 힘을 보여준다. 지금 보면 답답한 장면들도 있지만 그 시대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들이다. 특히 범인이 피해자를 납치할 때 사용한 수법은 요즘 같으면 잘 통하지 않을 방법이다. 그래도 뭐 범인이 또 다른 방법이나 유사한 수법으로 피해자를 납치했겠지만 말이다. 이런 몇 가지 시대를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많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의 일기와 그를 쫓는 토니 힐을 비롯한 형사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일기는 살인범이 어떻게 피해자를 납치하고, 그들을 고문하고, 죽이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은 엄청나게 자극적인 부분이 있는데 왜 토니 힐 시리즈 두 번째가 먼저 드라마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일기의 진행은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전형적인 구성이다. 당연히 마지막 장면은 범인과 그를 쫓는 형사들이 만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범인이 누굴까? 의문을 품고 추리하게 된다. 중간에 살짝 범인상이 나오지만 금방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전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역시 프로파일러 토니 힐과 브래드필드 경찰의 여형사 캐롤 조던이다. 이 둘은 서로에게 끌리는데 시리즈를 생각하면 어느 순간 불타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토니가 앓고 있는 발기부전증은 소설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성과 감성과 육체의 부조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또 다른 반전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캐롤이 전해 준 자료를 통해 프로파일링한 내용들은 점점 많은 자료가 쌓여가고, 범인상은 그에 따라 더 충실해진다. 물론 이 내용들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프로파일링이 통계에 의한 작업임을 감안해야 한다. 가끔 우리가 프로파일러를 엄청난 초능력자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교육에 의해 길러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캐롤을 보면서 예전에 여행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 영화들이 생각났다.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여형사가 당연하다는 듯이 나오지만 예전에는 여자 경찰이 형사계에 진출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힘들었다. 캐롤이 활약하는 이 시기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연대는 조금 더 찾아봐야할 것 같다. 여형사가 되기 힘든 만큼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공에 대한 욕망이 강하고 높다. 시리즈 첫 권임을 생각하면 앞으로 캐롤의 비중이 더 높아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 같다. 

시작 부분에 브래드필드 경찰은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부인한다. 시체가 발견된 장소가 게이들이 모이는 곳이고, 게이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 내부의 알력도 무시할 수 없다. 부서장 브랜든이 토니 힐을 데리고 와서 범인상을 잡으려고 한 것도 바로 이런 선입견 등을 바로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경찰의 시체가 발견됨에 따라 그들은 연쇄살인범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법의학 증거와 상황들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연쇄살인범의 존재를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계속해서 <양들의 침묵>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소설과 영화가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뭐 지금도 이 소설을 말하는 작품이 나올 정도니 어쩌면 당연한가.

연쇄 살인마와 프로파일러의 대결 구도로 광고를 하지만 실제는 연쇄 살인마와 경찰의 대결이다. 토니 힐이 하는 것은 경찰들이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범인상을 추론하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범인상이 경찰들의 협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범인이 고문 도구를 묘사한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감정의 과잉과 냉철한 판단력과 실천력은 결코 쉽지 않은 상대임을 보여준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또 다른 영화 한 편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시리즈이기 때문에 기다려지는 이야기도 많다. 경찰 내부에서 발생한 내부정보 유출 사건과 신문기자의 앞날뿐만 아니라 새롭게 이어질 로맨스까지. 빨리 시리즈 다음 이야기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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