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LAST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 창작집단A.P 기획 / 애니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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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넘긴 후 읽은 후기를 보니 영화 프로젝트를 감안하고 그린 만화다. 그래서인지 구성은 간결하고 속도감 있다. 실제 이 만화 설정을 제대로 다루려면 지금보다 몇 권은 더 늘이고 주인공의 특성을 좀더 살려야 한다. 이 부분이 많이 빠지면서 무력에 기대게 되고 조직 안의 순위 상승을 위한 대결이 중심에 놓인다. 이 때문에 ‘100억이 오가는 지하경제의 중심지’란 문구에서 기대한 것이 사라졌다. 그것은 주인공이 펀드매니저였던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펀드매니저 장태호는 조폭 돈 70억을 바탕으로 작전을 펼친다. 성공하면 대박이다. 작가는 이 작전이 펼쳐진다는 것만 알려준다.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세부적인 정보는 없다. 그리고 장태호에 집중한다. 그는 1등을 위해 살아왔고, 어느 정도 그것을 이루었다. 그가 이 작전의 성공을 자신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그가 건 작전을 통해 또 다른 작전이 걸리면서 그는 무일푼이 된다. 성공의 가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이 추락이 그냥 돈을 잃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폭이 그냥 조폭이겠나. 그의 동료였고 여자친구의 오빠는 먼저 목을 메어 자살하고 그는 도망가다 잡혀 죽기 일보 직전이다. 겨우 도망가지만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 달아날 때 가지고 있던 지갑 속 돈들도 3개월 만에 사라졌다. 배고픔이 찾아온다. 참을 수 없다. 집 밖으로 나온 짜장면 그릇의 단무지에 눈길이 간다. 또 다른 추락이 진행되었다. 그러다 본 것이 서울역의 무료 배급이다. 이제 그는 서울역 근처에서 흔히 보게 되는 노숙자 중 한 명이 된다.

 

이번 추락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은 서울역을 둘러싼 지하경제체계다. 폭력에 의해 순위가 정해지고 그 가장 위에 있는 인물이 모든 부를 독식하는 구조다. 그 돈은 소위 말하는 맹인이나 거지 등이 구걸해서 모든 돈이다. 더 심한 것은 장기 매매를 통해 얻은 수익이다. 이 100억이 장태호를 유혹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장태호가 서열 6위를 때려눕힌 후 다가온 차해진이다. 이제부터 그는 100억을 얻어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깨부수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물론 100억에 대한 수수료도 지불해야 하지만.

 

흔히 펀드매니저를 연상할 때 가장 떠오르는 지적이고 연약한 모습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다. 지적인 것은 그의 삶이 알려주지만 운동 등으로 다져진 체력은 연약함과 거리가 멀다. 서울역 노숙자들의 대형이 되었지만 겨우 서열 6위다. 100억으로 인생을 바로 잡으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1위와 만나야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바로 그를 만나기 위한 수련과 대결과 음모다. 그리고 그 속에 이 노숙자 세계로 내려온 사람들의 삶이다. 누구 한 명 사연 없는 사람 있냐고 할 때 그 사연 말이다. 그리고 서열 2위 류를 통해 싸움 실력을 키운다. 작전 성공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처음 지하경제 100억을 말했을 때 그 돈이 한 번에 흐르는 돈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그 돈은 서열 1위가 이제까지 모은 돈이다. 그는 만화 속 서울역 지하경제체계를 만든 인물이다. 처음에는 그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둠 속에 존재한다. 그러다 장태호의 서열이 올라가면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엄청난 파워와 공포를 다루면서 지하경제를 지배하는 어둠의 왕으로. 이제 주인공은 그의 이력 때문에 더 눈길을 받는다. 그 앞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작도 그의 이력과는 별 상관없이 진행된다. 이제 그는 조폭과도 같은 세계에 발을 담군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영화로서의 매력을 발휘하는 부분이지만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지점이다.

 

물론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작가는 섣부른 작업을 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갑작스런 변화를 다루지 않는다. 장태호 인생에서 1등이 어떤 의미인지, 그가 거기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감성을 자극할 장면으로 역전을 만들 것 같은 순간에도 반전을 만든다. 모든 실패의 원인이 다른 작전이 아니라 그의 탐욕에서 비롯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욕망이 너무나도 강하게 표현될 때, 상황이 극에 달했을 때 이 반전은 그에게 무작정 감정이입하는 것을 차단한다. 그 흔한 할리우드 방식의 승리는 없어진다.

 

인터넷 만화들이 보여주는 역동성을 이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색이 주는 강력함과 감정과 액션을 통해 드러내는 연출은 시선을 떼기 힘들게 만든다. 많지 않은 대사는 가독성을 높여 단숨에 세 권을 읽게 만든다. 개인적인 기대와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장 높이 오르려고 한 곳이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1위의 욕망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려줄 때도, 그가 이룬 부를 볼 때도 가슴 한 곳에는 그들은 지하 속에서 이전투구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 돈은 엄청난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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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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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제8권이다. 2009년에 출간되었다. 분량이 무려 781쪽이다. 아마 이 정도 분량이면 볼 때 먼저 질릴 텐데 이 책을 받았을 때 흥분부터 했다. 왜냐고? 전작 <스노우맨>을 읽었다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량에 상관없이 이야기 속에 빠져 다음 페이지를 정신없이 넘기게 되는 경험을 하니 말이다. 뭐 사람 따라 이런 소설이 싫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 강한 유혹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전작에서 큰 상처를 입은 해리는 오슬로를 떠난다. 그가 간 곳은 홍콩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수많은 홍콩 영화를 통해 너무나도 익숙한 그곳. 이곳에서 그는 반폐인으로 살아간다. 마약과 알코올에 절어서 무력하게 시간을 보낸다. 그를 찾아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카야다. 여경찰이다. 그를 찾아온 이유는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여자 두 명이 죽었다. 하지만 그의 상관이었던 군나르 하겐은 연쇄살인사건임을 직감한다. 노르웨이에서 이런 사건에 가장 적합한 경찰은 바로 해리다. 이 부분이 특히 강조된 작품이 바로 <스노우맨>이다.

 

해리의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움직일 마음이 없다. 단 하나의 방법은 그의 아버지 올리브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함께 돌아온다. 이 귀향으로 모든 사건이 해결될 것 같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경찰 내부의 알력이다. 살인사건을 전담하려는 크리포스와 일선 강력반의 대립이다. 내무부는 크리포스를 앞세운다. 하겐이 해리를 부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해리의 능력을 통해 이런 대립에서 우위에 서겠다는 의도다. 이제 해리는 전심전력을 범인을 쫓는 것 외에 경찰 내부의 권력 싸움도 같이 감당해야 한다.

 

전편에 등장한 반가운 인물이 있는 반면에 낯선 인물도 적지 않다. 해리를 데리러 홍콩까지 온 카야와 해리를 무너트려 크르포스에 권력을 집중하려는 미카엘 벨만 등이 대표적이다. 하겐이 해리에게 조력자라면 벨만은 장애물이다. 벨만은 충분한 인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건의 핵심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직관과 통찰력이 부족한 것이다. 해리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은 바로 이런 능력들 때문이다. 사건을 들여다보고 숙고하고 관찰하고 분석하는 과정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직관은 증거물과 함께 범인에게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이것이 비록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놀라운 것은 범인의 잔혹하고 대담한 살인 방법이다. 고문도구다. 특히 레오폴드의 사과는 놀라운 고문도구이자 살인도구다. 입에 넣기는 어렵지 않으나 빼기는 너무 어려운 무시무시한 살인도구가 바로 그것이다. 소설 앞부분에 이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이 사과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떤 작용을 했는지 알게 된다. 상상력은 이 끔직한 고문도구가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 것인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무너진 해리 홀레다.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절제를 한다지만 그는 아편을 하고 술을 마신다.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범인을 꼭 잡겠다는 의지 정도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그가 자기 파괴에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 그의 모습을 보다 보면 왜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술을 마실까 하는 의문이 저절로 생긴다. 날씨 탓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행적이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주는 탁월한 수사 능력은 그를 적으로 돌린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다.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은 더 많은 분량뿐만 아니라 규모도 더 커졌다.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콩고까지 지리적 공간이 늘어났다. 단순히 무대만 커진 것이 아니라 이 속에 이 나라가 껴안고 있는 문제까지 그대로 노출한다. 단순한 배경처럼 다가왔던 것이 나중에는 중요한 설정이자 장치로 변하는 구성은 정말 일품이다. 만약 더 깊게 들어갔다면 그 나라의 비극을 잘 보여줄 수 있겠지만 긴장감이 다른 쪽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보여준 몇 가지 상황들은 나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게 만든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사실 이 정도 분량을 소설을 읽을 때면 중간에 범인이 잡혀도 이 놈이 과연 범인일까 의문을 가진다. 남은 분량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여기에 연쇄살인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어느 선에서 멈출지 추리하게 된다. 물론 범인도. 이 과정을 작가는 하나씩 보여주면서 진행하는데 나의 머리는 경험 속에서 먼저 범인을 찾는다. 가장 먼저 용의자가 떠오른다. 삭제한다. 다시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지면서 한두 명으로 줄어든다. 가장 유력한 범인이 보인다. 이것을 확신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노우맨이다. 이 긴 소설 속에서 잠시 등장해 한니발 렉테에 조금 부족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뭐 이 자체가 하나의 이벤트이자 트릭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많은 분량이지만 결코 부담스러운 분량은 아니다. 속도에 빠지면 시간을 잊게 만든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제대로 따라가려면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곳곳에 드러나는 해리의 성격과 특징은 중간중간 몰랐던 것을 깨닫는 즐거움을 준다. 단순히 하나의 장치로 설정했던 것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할 때 허투루 글을 쓰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의 냉혹하고 이기적이고 거침없는 성격도. 한 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가히 올해 읽은 최고 소설 다섯 권 중 한 권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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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뿔 1
고광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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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말할 때, 특히 80년대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80년 5월 광주고, 다른 하나는 87년 6월 항쟁이다. 시간이 지났으니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두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왜냐고? 이 사건의 주모자가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은 29만원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그를 추종하는 인물들과 종북을 외치는 정치인과 그 언저리들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올라가서 해방 후 친일잔재를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한 역사와 맞물려 돌아간다. 수많은 친일파들이 독도에는 열을 내어 흥분하지만 그 시절은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하는 불편한 현실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분명하다.

 

작가는 80년대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썼다. 현재로 진행되는 것은 87년 6.29 선언 이후다. 아마 이때 민주화를 외친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제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가 찾아왔다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 체육관 대통령이 아니라 직선제를 쟁취하고 수감되어 있던 양김이 풀려나는 것을 보고 그 옛날 4.19혁명 때처럼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것이다.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대로 흘러왔다. 지금의 정치현실을 혹자는 유신보다 더하다는 말도 할 정도다. 물론 외형적으로 유신보다 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정권을 한 번 맛본 사람들에게는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웹툰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강풀의 <26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80년 5월 광주와 복수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강풀의 원작이 좀더 감성적이고 자극적이고 감동적이라면 이 소설은 좀더 진중하다. 피해 당사자를 중심에 놓고 직접 그 당시 계엄군 지휘자와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해서 다양한 시각을 담아냈다. 강풀의 원작보다 더 많은 인물을 담아내었다는 점과 악당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소설이 지닌 힘이다. 하지만 가슴 울리는 감동은 사실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잘못 읽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등장인물 몇몇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박갑수. 그는 이 소설의 중심이다. 하지만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그러나 이 죽음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왜 그는 죽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이 의문을 가장 먼저 조사하는 인물은 친구인 양창우 기자다. 박갑수와 전날 술을 마셨고 자신도 모르게 단서를 가진 인물이다. 박갑수의 반대편에 선 인물이 있다. 광주 계엄군 장교였고 살인을 사주한 장상구 의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친일로 돈을 모았고 신분 세탁을 통해 다른 인물로 변신한 전력이 있다. 장 의원은 폭력배를 부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는 인물이다. 금력을 이용해 조폭을 부리고 권력과 금력을 통해 언론사 등을 주무른다.

 

장 의원과 박갑수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나 하는 것이 주요한 미스터리다. 그런데 이것은 쉽게 앞에서 나온다. 이 미스터리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긴장을 심어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여기에 장 의원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고 또 다른 반대편에 선 두 사람이 등장한다. 장의원의 부하였던 서창수 중사와 북파요원이었던 구성도다. 이들이 과거의 부하였다면 현재 조폭인 박태춘이 있다. 그는 장 의원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이권과 과거 등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신문사 민 사장과 박갑수 마지막 술자리를 같이 했던 오 마담 등이 있다. 이들도 현재와 과거 속에 박갑수와 장 의원 등에 엮여 있다. 이런 관계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과정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대한 현대사를 정치, 언론, 조폭, 교육계, 공권력 등의 다양한 유착과 처참했던 과거를 연결시켜 풀어낸 것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시대 속에 개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권력을 위해서라면 인간이 어떻게까지 변하는지, 양심이란 단어가 이권과 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현실이 얼마나 지속적인지, 하나의 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너무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분량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특히 갑자기 비중이 줄어든 양창우 기자의 경우는 조금 당혹스럽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축소되고 80년 광주로 가면서 균형을 잃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감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인물들 속에 현대사를 제대로 담아낸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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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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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에 이제하의 소설을 읽었다.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가 생각난다. 영화나 소설도 모두 봤다는 기억만 있는데 왠지 모르게 제목만은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일까? 엄청난 걸작이라서? 아니다. 특이한 제목이라서? 역시 아니다. 그럼 왜? 사실 이유를 모른다. 이름과 제목은 학창시절 소크라테스와 ‘너 자신을 알라’를 같이 외우고 기억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추측해본다.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란 부제가 보인다. 판타스틱 미니픽션집이란 설명글도. 특히 하성란의 허를 찔리고 말았다는 표현은 첫 작품이자 표제작 <코>를 읽을 때 그대로 느꼈다. 이 느낌이 좋아 다음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솔직히 말해 첫 작품과 같은 재미를 누린 이야기는 많지 않다. 콩트집에 가깝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하나의 이야기 분량이 달라서 호흡을 놓친 것도 적지 않다. 뭔 말이냐면 여기서 반전이나 이야기가 끝날 것이란 예상을 가지고 읽는데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흐름과 재미를 놓치는 것 말이다. 거기에 좋지 못한 몸 상태에서 읽다보니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분량과 예상이 다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첫 작품 같은 소설들이 나오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지면서 재미를 준 경우도 많다. 황당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곰을 길들여 생활한다거나 기차에서 만난 마술사의 엄청난 마술까지. 어떤 이야기는 나의 이해력 부족으로 충분히 재미를 누리지 못한 것도 있다. 문장이 나의 호흡과 어긋나면서 헤맨 이야기도 있다.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어쩌면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역시 개인 역량 부족으로 소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서른아홉 편이 분량이 제각각이듯이 다루는 소재나 설정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이 다양함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가끔 이런 종류의 소설집을 읽을 때면 겪게 되는 내 개인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의 내공 부족이 만든 장애다. 만약 이 장애를 넘어가게 되면 다양한 재미를 누릴 수 있다. 그때는 아주 큰 장점이다. 작가의 평가 중 ‘경계 없음의 미악’을 지녔다는 평은 아마도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뒤적이는데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콩트집으로 불릴 정도의 분량을 넘어 한 편의 단편소설로 분류해도 될 정도의 소설이 몇 편 있다. 개인적으로 이 때문에 호흡이 깨진 것도 적지 않다. 문체가 바뀌고 묘사 방식이 달라지면서 고생한 것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 그려 넣은 작가의 그림들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끈다. 작가의 이력을 잘 모르고 봤어도 그랬었겠지만 이력을 읽고 난 후는 더 자세하게 쳐다본다. 어떤 것은 장난같고 어떤 것은 그 단순한 선이 여운을 남긴다. 이것은 아마도 각각의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일독을 한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머릿속에서 가끔 이 책을 들쳐보면서 짧은 이야기를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행동이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뒤적이다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짧은 글일수록 더 강하게 이런 느낌이 다가온다. 일상의 뒤틀림과 판타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 조금 다른 감성을 발견할 때 아! 하고 감탄한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내공을 쌓은 뒤 읽으면 더 풍성한 재미를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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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이윤정 옮김 / 포레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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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본다. 번역된 책이 단 한 권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이 소설집은 연작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면서 동시에 이어진다. sf소설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다. 뛰어난 완성도를 인정받아 제5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sf팬클럽회의가 주관하는 그해 최고의 sf에 주어지는 세이운상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이다. 언제나처럼 이런 내역은 시선을 끈다. 추천글이나 작품해설은 읽기 전 어떤 선입견을 가지게 만든다. 이것이 상태 좋지 못한 나에게 살짝 독으로 작용했다.

 

아홉 편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작품 <천상의 음악을 듣다>는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정보를 먼저 내놓는다. 단편에서 이 정보를 제대로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 신화를 이용한 오스트레일리아 크기의 거대한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는 기존 sf소설이나 영화를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과연 이것과 비슷한 것이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거대한 박물관 행성이 엄청난 동식물, 미술품, 음악, 무대예술을 모두 모아 두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이런 배경이 작가의 상상력을 증대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 작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음악을 듣다>는 이 연작을 이끌어 나갈 주인공 다카히로를 등장시킨다. 그는 뇌수술을 받은 후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학예원이다. 그의 전문분야는 각 분야의 분쟁을 조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곤란한 일을 의뢰받는다. 그것은 한 음악가가 그린 음악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너무나도 졸작인 그림이 독설로 유명한 미술평론가에게 천상의 음악이 들린다는 극찬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본 병원의 환자들이 열광한다. 왜 일까?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시시하고, 또 어떻게 보면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온다.

 

이후 이어지는 작품은 노부부의 황당한 의뢰를 다룬 <이 아이는 누구?>다. 이 아이는 바로 인형이다. 인형의 이름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의뢰다. 이름을 찾는 과정과 왜 이름을 찾고자 하는지 알려줄 때 잊고 있던 중요한 몇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은 가슴이 아리다. <여름에 내리는 눈>은 범인이 누군지 금방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군지가 아니다. 왜?에 있다. 그리고 진정한 연주자가 어떤 것인지 말한다. 이 단편에 나오는 수많은 기모노와 문화는 사실 너무 낯설어 몰입하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다. 마지막 문장은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춤으로 신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게 하는 작품이 <꿈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한 무용가의 삶을 통해 본질이 왜곡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포옹>은 이 소설에서 문제유발자 매튜가 처음 등장한다. 사실 매튜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뒤편부터고 학예원들이 뇌수술로 심어놓은 기계의 프로그램 버전을 처음으로 다룬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작품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또 어떤 장애가 있는지도 같이 보여준다. 이것은 매튜에게서 더 심하게 일어나지만.

 

표제작 <영원의 숲>은 매튜가 본격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표절과 사랑을 다루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아마 영화로 만든다면 가슴 뭉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리사의 거짓말>은 인어를 찾는 소년과 다리를 잃은 조형가 이야기인데 예상하지 못한 엔딩에 놀란다. 그리고 인어전설을 작품에도 인용한 것은 재미있다. <반짝반짝 작은 별>에서는 황금비율과 짝사랑을 다룬다. 외계에서 날아온 씨앗과 오각형 채색조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마지막 작품 <러브 송>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왔던 97건반의 흑천사와 다카히로의 아내 미와코가 중심에 선다. 여기에 외계 씨앗에서 핀 연꽃이 연결된다. 일에 치인 사람이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가볍게 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용어와 설정 때문에 조금 고생했다. 무시하고 읽어야 하는데 주석에 눈길이 자꾸 간다. 덕분에 흐름이 깨어졌다. 여기에 좋지 못한 몸상태까지. 하지만 예술을 소재로 sf적 배경을 가지고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은 놀랍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선하다. 읽으면서 왜 다카히로가 상위버전으로 바꾸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생기지만 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한계와 순수함이 재미있다. 이것을 세대차이로 풀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그 재미를 누리지는 흥미로운 작품집이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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