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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었다. 느낌을 간단히 정리하기 쉽지 않다. 그중 하나는 이 2권이 이제1부란 점이다. 2권 끝까지 오기 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마무리다. 물론 이야기 전개 상 중간에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1부 끝이란 단어를 보자 작가가 만들어낸 지구와 인류 역사가 되풀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대충 그려졌다. 실제 이 예상이 맞는지는 모두 출간된 다음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꺼번에 시리즈 전체를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완결되기 기다리라고 하고 싶다. 1부를 모두 읽고 다음 이야기를 추측하는 재미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더욱더!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들을 기반으로 장대한 서사를 구축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지구를 가이아로 본 것이다. 의식을 지닌 지구를 이야기의 한 축으로 삼고, 주인공 몇 명을 등장시켜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그 사이사이에 뉴스라는 매체를 통해 지구 상에 발생하는 몇 가지 중요한 소식을 삽입한다. 여기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암시하거나 정보를 제공한다. 구성만 본다면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지구 탄생에서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루면서 미래도 같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엄청난 작업임이 분명하다.

 

제목과 가이아의 의식이 교차할 때만 해도 제3인류의 모습을 가이아의 의식을 이어받은 초능력자 정도로 생각했다. 아마 영화 <X맨>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극 탐사에서 거인을 발견했을 때도 역시 현재 인류의 진화 정도로 생각했다. 거인이 인류의 10배 크기인 17미터란 정보를 제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다비드 웰즈가 피그미 족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갔을 때도 역시. 여기서 10배수란 숫자가 계속해서 그대로 적용될 것이란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인류의 키가 좀더 작아지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면서 17센티로 만들었다.

 

이 사이즈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기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인류의 탄생은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가져오고, 이후 각 나라의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연결해서 제1인류를 만들어낸다. 고대문헌과 성경을 재해석한다. 이 모든 역사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의식있는 지구 즉 가이아다. 가이아는 석유를 자신의 기억이라고 말하면서 현재 인류가 채굴하는 것을 거부한다. 아니 인류의 개발 자체를 거부한다. 이 반작용으로 해일이나 지진을 일으키는데 가끔 정확한 타격이 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더 진행되면서 더 정확해지기는 하지만.

 

핵무기의 개발과 무차별적 개발의 결과로 인한 자원 고갈과 환경 재앙,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본성과 종교적 광신 등이 현재 지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모습은 가이아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피부와 기억을 빼앗아 가는 제2인류가 가이아는 불만이다. 가이아는 인류를 진화시킨 이유로 외계에서 날아온 소행성 충돌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소행성은 그에게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대기를 만들어 조그만 소행성은 지표에 도달하기 전 타버린다. 하지만 거대한 소행성은 엄청난 충격을 준다.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공룡이나 다른 생명체의 멸종으로 이어졌다. 이런 과학적 상식을 가이아의 기억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가이아에게 현재 인류에 대한 불만은 인류가 우주선을 만들어서 소행성 충돌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각 나라의 정권 획득, 유지와 자본의 이익이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적은 종교적 광신으로 사로잡힌 이란이다. 무수한 핵무기 개발과 종교적 광신으로 뒤덮인 나라로 묘사하는데 이 때문에 새로운 인류의 탄생과 진화가 이루어진다. 이란이 만든 800곳에 달하는 핵무기 발사 기지를 파괴하기 위한 특공대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정보 부족 때문인지 모르지만 강한 불만이 있다. 이란이란 나라를 모르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인류인 에슈마의 탄생도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에슈마의 탄생과 인류가 가이아의 보복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과정은 끔찍하다. 전염병으로 엄청난 사람이 죽는다. 이 장면은 기아와 폭력으로 도배되어 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비해 인류의 감소는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류의 행동은 그 이전과 변함이 없다. 가이아의 다음 행동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이런 설정은 책 중간에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 조금씩 담겨 있다. 3보 전진과 2보 후퇴와 같은 방식이다. 인류의 오만과 무분별한 개발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작가는 그것을 가까운 미래로 설정했다. 무섭다. 이 모든 구성과 전개는 기존 설정을 빌려오면서 새롭게 각색한 것이다. 그의 최근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아 놓친 것들이 많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엄청나게 방대한 이야기를 소설 속으로 끌고 들어왔는데 과연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잘 마무리할지 모르겠다. 허술한 부분이 곳곳에 조금씩 보이지만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상한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많이 실망하겠지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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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앉는 자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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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솔직히 말해 초반에 밋밋한 전개와 상황 등으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비슷한 이름이 주는 혼선이 번거로웠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매년 있었던 반창회. 벌써 10년. 그들의 기억 속에 그 당시 학창시절은 자신들만의 것으로 왜곡되어 기억된다. 이런 그들에게 같은 반 친구였던 교코의 놀라운 성공은 단순히 이야기 거리를 넘어 질투와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이 소설에 화자로 등장하는 다섯 명의 반 친구들은 교코를 중심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술트릭이 자리잡고 있다.

 

학창시절 예뻤고 지금도 예쁘지만 무명의 연극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다 사토미, 친구들에게 남자 한 번 사겨보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 사토미 사에코, 거짓말로 자신을 치장한 미즈카미 유키, 오랫동안 유키를 짝사랑해온 시마즈 겐타, 지역 방송 아나운서로 활약하고 있는 다카마 교코 등이 이 소설의 화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친구들에게 숨겨왔다.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친구란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던 추억 속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다. 작가로 바로 이 이야기를 현실과 엮어서 풀어낸다. 그들이 가진 민낯을 하나씩 밝혀낼 때 교코를 통해 이루려고 한 욕망은 산산조각난다.

 

이야기는 졸업 10년 후 반창회에서 화제가 된 교코에서 시작한다. 유명 배우가 된 그녀를 반창회에 불러오자는 것이다.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맡은 것은 사토미다. 그녀의 역할은 간단하다. 만나 소식만 전하면 된다. 하지만 학창시절 그녀보다 더 예뻤다고 자신했던 그녀에게 교코의 풍격은 자신이 지닌 비루함을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숨겨둔 현재의 비밀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서서로 무너진다. 이야기 첫 주자이자 이 소설에서 교코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한 명씩 반창회와 연락을 끊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가장 불쌍한 친구는 사토미 사에코다. 자기 외모의 결점을 잘 생긴 남자로 보충하려 한다. 과거 기억 한 자락은 기에가 자기에게 온 편지를 찢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로부터. 이후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재까지 온다. 학창시절 기에의 남친은 잘 생긴 마사키. 하지만 둘은 헤어지고 각각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그런데 이 마사키가 사에코를 유혹한다. 어린 나이가 아니지만 달콤한 그의 말에 넘어간다. 불안해한다. 불안은 오해로 이어지고, 결국 폭발한다. 그리고 숨겨져 있던 과거의 진실이 밝혀진다. 왜곡되어 있었던 기억은 질투에 의한 것이었을까?

 

이후 다른 친구들의 사연도 이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교묘한 서술트릭과 치밀하고 섬세하면서 미묘한 심리묘사를 통해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고 풀어낸다. 도입부에 복선처럼 깔아둔 이야기가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한 순간에 바꿔버린다. 자신의 틀에서 이해하고 묻어두었던 감정과 삶들이 산산조각난다. 추악한 비밀이 밝혀지고 엄청난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순간에 약간은 훈훈한 결말을 맞이한다. 교코를 통해 성장한 것이다. 반창회를 떠난 것이 성장의 한 징표처럼 다루어졌지만 사실은 과거의 나쁜 기억을 털어버리고 현재의 나를 찾은 것이다. 그 사이에 아픔이 가끔 자리한다. 섬세한 책읽기가 요구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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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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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말하는 마을에 빠져들게 된다. 이 책에서는 와온이다. 모두 네 꼭지로 구성된 책에서 두 번째 꼭지 제목이 ‘와온 가는 길’이다. 와온은 순천만에 자리잡은 조그만 해변 마을이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다. 늘 외국이나 한국의 유명 관광지만 눈여겨보던 나에게 아주 반가운 정보이자 강한 여운을 남기는 공간이 되었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 안에 갈 것은 아니지만 여수와 순천을 묶어 함께 움직일 때 기억날 것 같다. 책 속 작가나 다른 여행자들처럼 깊은 감명을 받는 것을 뒤로 하고.

 

한 마을을 제외하면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다. 그의 시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려주는 사연을 듣다가 시를 읽으면 한결 쉽게 이해된다. 대표작인 <사평역에서>가 어떻게 쓴 시였고, 어떤 경로를 거쳐 신춘문예에 당첨되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 담긴 것은 그의 시에 대한 열정이자 사랑이고 운명이다. 치열했던 과거의 열정과 도전을 들려줄 때 나 자신의 과거를 자연스레 되돌아본다. 과연 그만한 열정과 도전이 있었는지 하고. 그리고 현재 나의 여행이 얼마나 편안함에 물들어 있는지도. 읽다보면 떠나고 돌아보고 장시간 한 곳에 머물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진다. 그 어떤 여행 산문집에서 느낀 감정 이상의 것이 불끈 치솟아 오른다.

 

시인 곽재구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보면 대단히 평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잔잔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 깊은 성찰과 여운이 담겨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자연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삶이 밖으로 조용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풍경을 볼 때 그의 시선은 과장된 표현보다 오히려 투박함이 더 느껴진다. 가끔 지명에 대한 오해도 하지만 그것도 새로운 곳에 도착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여자도 이야기는 나도 살짝 기대했다. 뭔가 전설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이 책은 이런 실수도 재미있고 정답게 풀어낸다.

 

지금은 대부분 차로 목적지에 바로 직행한다. 운전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풍경을 놓친다. 늘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기차로 움직이면 밖을 볼까? 아니다. 역시 책이나 다른 것을 보면서 지나간다. 아마 밖을 가장 많이 볼 때는 운전수 옆에서 이야기하면서 갈 때가 아닐까 싶다. 이런 여행을 하는 나에게 그가 권하는 입석 여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시간과 속도에 이미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여행이다. 풍경을 보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만의 시간을 더 깊게 가지기 위해서다. 그가 열 편의 시를 썼다면 나에게는 한 권의 책 읽는 시간이나 목적지에서 돌아볼 여러 곳을 검색하기 위한 시간으로. 아주 오래전 입석으로 집에 가면서 한 권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가볍게 단숨에 읽어도 좋고, 한 편씩 음미하면서 읽어도 좋을 것이다. 흙냄새, 바람, 햇살. 이것은 언제부터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이다. 봄바람이나 겨울 햇살은 가끔 느껴보지만 흙냄새는 정말 맡아보기 힘들어졌다. 도심에서 흙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단도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진한 흙냄새를 맡으려면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 시인의 기억 속에 남은 수많은 외국 마을들은 이런 것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도 불과 얼마 전까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던 것들이었다. 이런 기억들은 그가 길을 떠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다. 길동무 대신 길귀신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도 뭐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시인의 관찰력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정겹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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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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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의 2010년 작품이다. 실업자. 제목 그래도 주인공 알랭 들랑브르는 실업자다. 하지만 한국 기준으로 보면 그는 실업자가 아니다. 잔일거리를 하면서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일은 새벽 5시에 근교 약국에 배달할 약품을 선별하는 작업이다. 하루 3시간 일하고 받는 월급은 585유로. 한 가족을 부양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돈이다. 이전에 간부급 회사원이었지만 이제는 4년간 실업자인 그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한 실업자의 치밀하고 처절한 생존 싸움이 시작된다.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전, 그때, 그 후다. 이 구성은 두 사람의 시점으로 풀어낸다. 그전과 그 후는 알랭 들랑브르의 시점이고, ‘그때’는 가상 인질극을 실행하던 폰타나의 시점이다. 처음 폰타나의 시점으로 옮겨갈 때 약간 혼선이 있었지만 상황과 설명이 이어지면서 ‘그때’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다음에 이어질 ‘그 후’를 아주 긴박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면서 반전을 만드는 계기로 변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의 흐름이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냉정한 장이 바로 ‘그때’다. 아마 관찰자 시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4년 간 실직한 알랭에게 거대 기업 인력관리부서 채용 시험에 뽑히게 된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물론 그 이전에 의약품 배달회사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도 있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실업자 상태로 4년간 있었다는 것이다. 혹시 다시 정규직으로 채용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현실 밖으로 내몬다. 그 일이 지닌 위험성이나 그 뒤에 감쳐진 매니지먼트 회사의 속내는 둘째로 하고. 설상가상으로 이어지는 상황 속에 그의 열망은 어느 순간 광기로 변한다. 이 광기는 이 채용 방식이 가상 인질극이란 설정 때문이 아니다.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욕망이 가속화되고, 점점 더 늘어나는 실업자들의 숫자가 주는 미래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이 광기의 절정에 도달하는 것은 역시 채용회사의 정보를 얻고, 이 인질극에 참석할 고위간부들의 이력을 추론하고, 질문을 통해 그들을 극한 상황에 몰고 가 충성도 등을 실험하고, 이 평가를 통해 최종 합격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면서부터다. 이 자신감은 자신의 경력과 탐정 사무실을 통한 고위간부들의 숨겨진 비밀을 수집하면서 더 높아진다. 하지만 바로 이때 문제가 생긴다. 바로 정보 수집 비용으로 2만5천 유로 이상 들어가는데 이 비용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사위를 때리고 딸을 속여 돈을 빌리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문제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들에게 거짓말하면서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채용회사의 무급 인턴에게 합격자가 내정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새로운 파국이 벌어진다.

 

‘그전’ 장을 읽으면 알랭이 느낀 불안감과 그가 집착에서 광기로 변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이 겹친다. 알랭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현실과 함께 채용회사의 메일이 이 일의 이면을 하나씩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파국이 예견되는 현실에서 광기는 헛된 욕망으로 보이고 알랭 일가의 불안감은 더 높아진다. 한 실업자의 파멸이 어떻게 벌어지고 깊어지는지 아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종 합격자가 이미 내정되어 있다는 정보는 충격과 분노를 만들어내고 다음 선택은 또 어떤 위험 속으로 그를 이끌고 들어갈지 궁금하게 만든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오락적인 장면들은 ‘그 후’에 나온다. 이 장에서 수많은 계략이 오가고, 밀고 당기는 두 힘이 충돌하고, 극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사선에 선 알랭의 모습과 이를 극복하고 반격을 펼치는 모습은 통쾌하다. 물론 다시 되돌아오는 반격은 더 강도가 강해진다. 이런 롤러코스터같은 상황들이 몇 번이나 이어지고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어진다. ‘그때’장에서 깔아둔 복선과 설정이 하나씩 힘을 발휘한다. 과연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배짱과 폭력이 교차하고 정보가 구세주가 된다. 멋지고 재미있다.

 

이 재미를 만드는 과정 속에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은 계속 나온다. 대기업 회장의 퇴직금 금액이나 실업자들의 숫자와 미래에 대한 정보가 사이사이에 흘러나온다. 이 단편적인 정보는 알랭에게 더 공감하게 만들고 사회에 불만을 가지게 만든다. 알랭이 감금된 구치소에서 일반 범죄인과 VIP를 구분해서 수감하는 장면은 감옥마저도 계급사회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일하고 싶어도 감원이 더 많은 뉴스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고령의 실업자가 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나이가 들게 되면 점점 새로운 직장을 찾기 힘들어지는 혹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월급 585유로의 조그만 일조차도 폭력에 굴복하지 않으면 힘든 현실이다.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그 뒤에 남는 감정은 통쾌함보다 오히려 씁쓸함이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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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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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겐야 시리즈 네 번째 소설이다. 제10회 본격미스터리대상 수상작이다. 전작들과 달리 이번 작품은 도입부에 많은 설명을 해놓았다. 읽기가 한결 편했다. 동시에 전작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가볍게 말하고 지나가서 반가웠다. 이 시리즈를 계속 읽은 독자의 한 명으로써 살짝 기억을 되살려볼 수 있는 기회였다. 3인칭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어 객관적이면서 사실적인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아 술술 넘어간 부분도 많다. 도조와 아부쿠마가와와 시노 등이 함께 앉아 질문하고, 설명하고, 답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묘한 감정의 흐름들이 보인다. 특히 시노의 감정. 시리즈가 더 이어지면 과연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궁금한 부분이다.

 

이 시리즈는 도조 겐야를 다양한 방법으로 등장시킨다. 사건 처음부터 등장시키거나 중반부터 투입해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그 마을 고유의 긴 역사와 전설과 공포 등이 엮여있다. 이번 작품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마을에 도착한다. 그가 나라의 산골마을에 오게 된 것은 선배 아부쿠마가와 때문이다. 원래는 그가 도조와 시노 둘을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일이 생겨 둘만 보낸 것이다. 잡지 편집자인 시노는 그들을 마중 나온 사람 세이지에게 도조를 명탐정으로 소개한다. 이 때문에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거대한 이야기 속에 세부적인 부분까지 많은 신경을 썼다.

 

도조 일행이 이 마을에 온 것은 앞부분에서 다룬 물의 신 미즈치 님을 외경하는 마을의 기우제를 보기 위해서다. 이 마을은 모두 네 곳의 신사와 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먼저 생긴 사요촌과 미즈시 신사를 비롯하여 모노다네 촌과 미즈치 신사, 사호 촌과 스이바 신사, 아오타 촌과 미쿠마리 신사 등이다. 이 네 곳의 신사는 비가 오지 않거나 많이 오면 돌아가면서 의식을 치른다. 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곳은 마을 가로지르는 미쓰 천이다. 미쓰 천이 범람할 정도가 되면 감의, 반대로 비가 오지 않으면 증의 의식을 지낸다. 이번에는 증의 의식을 보기 위해서 왔다.

 

도조의 이야기가 현재를 다룬다면 쇼이치는 자기 가족의 과거사를 말한다. 패전 이후 만주에서 힘겹게 일본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도착한 후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과정에 쇼이치가 본 뭔가가 있다. 이 뭔가가 계속 쇼이치 주변을 맴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만이 그것을 본다. 아주 어린 아이인데도. 바다 한 가운데에서 쇼이치가 본 것을 다른 사람이 큰 파도라고 설명한 것은 논리적일 수 있지만 엄청난 위험이 도사린 파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이야기 속에 혹시 그것이 미즈치 님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사요 촌에 왔을 때 그가 본 몇 가지 괴이한 일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는 과거에 있었던 사고와 현재에 일어난 사건을 연결시키고 외눈 광이나 신찬과 통이란 장치를 통해 괴이한 현상과 사실을 뒤섞는다. 광이란 밀폐된 공간이 공포를 만들고, 통에 담긴 신찬은 제물로 이 공포를 억누른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신공양 이야기를 중간에 넣어 분위기를 띄우고, 13년 전 있었던 팽것에 당한 사건을 통해 미즈치 님에 대한 환상과 공포를 점점 고조시킨다. 이러다가 미즈시 신사 신관 류지가 주관한 증의에서 그의 아들 류조가 신남으로 나섰다가 죽는다. 이렇게 되면서 이야기는 급하게 진행된다. 곧이어 다른 신사의 신관마저 죽게 되면서 연쇄살인사건으로 바뀐다. 이 과정 속에 도조의 활약은 없다. 단지 류지의 협박과 음모 속에 명탐정으로서의 추리만 존재할 뿐이다.

 

명탐정 도조의 활약이 없다고 했지만 범인을 추론하는 과정은 숨겨져 있던 마을과 제의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는 계기가 된다. 진실에 한 발 다가갈 때 범인이 누군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반전이 일어난다.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다. 여기서도 도조는 다른 명탐정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결코 처음부터 범인을 예상했다거나 단숨에 범인을 찾거나 하지 않는다. 사건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통해 가장 논리적이면서 가정에 맞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리고 결코 진실을 우선으로 한다거나 범인 잡기에 더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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