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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그린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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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은 두 번을 읽었지만 아직도 그 재미를 모른다. 이 때문인지 이 소설도 재미있는 이야기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야기로 구분된다. 나의 경험이, 삶의 방식이 작가가 경험한 혹은 살아온 것과 다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그가 글로 표현한 것이 충분히 나의 감성을 적시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되돌아보고, 비교하고, 공감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 이상 겪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열세 살 소년 제이슨이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입하면 중학생인 그는 말을 더듬는다. 그는 이것을 행맨이라고 부른다. 행맨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단어를 더듬게 하거나 다른 단어를 사용하게 만든다. 언어 교정을 위해 의사를 찾아가지만 이것이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행맨은 이후 그의 삶과 함께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교구 잡지에 엘리엇 볼리바란 필명으로 시를 쓴다. 이 시는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진다. 에바 크롬린크 부인이다. 그녀를 통해 시 교육을 받고, 자신의 정체성과 용기를 배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인연은 그렇게 길지 않다.

 

대처 시대 영국이 배경이다. 아르헨티나와 포클랜드 전쟁이 있던 시기다. 언제나 그렇지만 전쟁은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애국심은 고취되고 권력은 하나로 집중된다. 훗날 대처리즘이라고 불리는 정책이 시행되던 시기다. 하지만 아직 제이슨이 이 정책을 피부로 느끼기엔 어리다. 집의 경제도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다. 주변에서 실업자가 한 명씩 늘어나고 있지만 다른 집의 문제일 뿐이다. 그에게 닥친 문제는 또래들과의 관계다. 학교 서열에서 중간 위치를 차지해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학생들이 겪은 고통을 피하는 것이다. 이 목표는 엄마와 함께 영화관에 간 것을 들키면서 틀어진다.

 

십대 남자들. 이들은 과장된 남성성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표출하려고 한다. 제이슨이 필명으로 시를 보내는 것도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이런 일 중 하나다.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은 남자로 자라고 살아가는 동안 평생 듣고 살게 된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반대편에는 여자답지 못하다는 말이 있겠지만. 이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것은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처럼 말을 더듬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13개월 동안 13개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시간이 제이슨으로 하여금 성장의 고통을 겪게 만든다. 할아버지 유품인 시계를 스케이트 타다가 부수고,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사장에게 굽실거리면서 아부하는 아버지를 보게 한다. 시계가 부서졌다는 말을 할 용기가 없는 그와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 못하는 아버지가 겹쳐진다. 제이슨에게는 아버지의 화난 모습이, 아버지에겐 실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엄마와 함께 영화 본 것을 들킨 후 버러지라고 학교짱 패거리의 놀림을 받는다. 중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것을 정면으로 돌파할 용기가 부족하다. 그 용기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행동으로 표현된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뭐지 한 부분이 있다. 제이슨이 시계를 깨트리고 발목을 다친 후 찾아간 어떤 노파 집에서 벌어진 마지막 장면이다. 이 소설의 첫 장인데 여기서 혹시 다른 판타지 세계로 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이 의심은 마지막에 해결되는데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실로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가 행맨에 대한 것이라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소설 곳곳에 80년대 영국 가정의 풍경이 녹아있다. 허세와 과장된 표현이 가득하고, 유행과 과시도 그대로다. 진실을 마주하기보다 자신들이 보기에 편한 것만 보고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것이 쉽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정체도 아닌 퇴보로 이어진다. 제이슨이 성장한 만큼, 혹은 그 이상 어른들은 퇴보하고 있다. 조그만 세상에서 자신만 보던 제이슨에게 점점 넓어진 세계의 모습은 너무 낯설다. 이 낯선 풍경을 하나씩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는 겪고 있다. 그 속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들어있다. 마지막에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연민이 몰려온다. 동시에 그의 첫 키스 장면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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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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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의 단편집을 두 번째 읽었다. 첫 번째보다 훨씬 재밌고 상대적으로 쉽게 읽었다. 한 편의 분량이 더 많은 것도 이유일 것이고, 조금 더 익숙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첫작품이었던 <행복한 그림자의 책>은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작가에 대한 호평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집을 읽으면서 거장이란 평가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완전히’가 아니고 ‘살짝’인 것은 아직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충분히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도입부와 마지막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
 
모두 여덟 편이다. 이중 세 편은 연작이다. <우연>, <머지않아>, <침묵> 등이다. 이 세 작품은 줄리엣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첫 번째 작품인 <우연>을 모두 읽은 후 <머지많아>를 읽으면서 낯익은 이름이 나와 혹시 했는데 역시나 이어졌다. 그런데 <침묵>에서 또 이어졌다. 이 연작은 한 소녀 줄리엣이 사랑을 찾아가고, 아이를 낳은 후 부모의 집을 방문하고, 집을 떠난 딸을 기다리는 엄마를 시간 순으로 다룬다. 각각 다른 역할을 맡은 줄리엣을 보여 주면서 한 명의 여자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침묵>이 가장 마음에 들지만 그녀와 딸 퍼넬러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강요가 아닌 인내를 통한 그녀의 기다림이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지 의문이다.
 
표제작 <런어웨이>는 처음에 칼라의 나이가 많을 것이란 선입견에 빠졌다. 남편 클라크의 행동 때문이다. 이 부부의 관계가 평탄해보이지 않는데 유명 시인의 아내 실비아가 이 둘 사이에 끼어들면서 급박하게 변한다. 이 변화의 시작은 칼라지만 촉발한 것은 실비아다. 삶에 지친 아내의 탈출기가 되는구나 하는 순간 이야기는 또 변한다. 자기 앞에 놓인 자유를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찾아온 자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열정>은 어느 날 분위기에 휩쓸린 한 여자 그레이스 이야기다. 자신을 찾지 못한 그녀가 억눌렀던 감정이 조그만 사고로 폭발하는데 그 순간들이 비약처럼 다가온다. 이것은 결국 새출발로 이어진다.
 
<허물>과 <반전>은 미스터리 같다. 특히 <반전>은 제목처럼 반전이 펼쳐진다. 우연히 만난 남자와의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열정. 하지만 조그만 준비 부족과 큰 오해가 겹치면서 삶의 궤도는 완전히 뒤틀린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밝혀지는 사실은 되돌릴 수 실수다. 이 실수를 그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그녀의 순수한 감정이다. <허물>은 도입부를 유심히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장면을 무심코 지나갔는데 다시 읽으니 마지막 장면과 이어진다. 로렌을 두고 각각 다른 입장에 선 두 집의 이야기는 의문을 불러오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다 밝혀지는 사실은 오해의 중첩이자 사실을 숨겼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힘>은 낸시의 시점으로 읽는다면 올리의 이야기는 거짓말이 되고, 올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낸시의 이야기가 거짓이 된다. 낸시와 윌프의 결혼이 사실이지만 테서를 두고 각각 다른 기억이 존재한다는 것은 해석의 문제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녀가 만난 테서와 올리 모두 환상일 수도 있다. 마지막에 “자신이 그 두 사람의 인생에서 쫓겨나, 혹은 끌려 나와 자기 인생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깨달았다.”(500쪽)를 보면서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각각 다른 순간을 통해 풀어낸 이 작품의 무게는 읽으면서 또는 그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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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저 이상용 1 - 승리를 책임지는 마지막 선수
최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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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트윈스 광팬인 작가가 LG를 배경으로 그린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그렸던 <GM>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극악의 연재 때문에 완결을 보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완결이 되지 않은 줄 알았다. 작가의 <GM> 완결을 이력에서 보고 오늘 확인했는데 역시 아쉬운 완결이었다. 스카우트를 중심으로 풀어낸 야구 만화란 점이 흥미로웠는데 갑작스럽게 마무리된 느낌이 강하다. 연재 당시 매주 새로운 이야기가 올라오는 것을 기다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 놀라운 마무리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사실 이번 만화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데 현재 200화 이상 나왔다. 1권이 68화 분량인 것을 생각하면 3권 이상 연재한 것이다.

 

제목대로 주인공 이름은 이상용이다. 작가가 중간에 장난처럼 뽀빠이를 외치는데 아는 사람들은 이 이유를 알 것이다. 그의 최고 구속은 135킬로고 칼 같은 제구력은 없다. 그냥 외견상 평범한 투수다. 하지만 그에게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무기가 있다. 선수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분석이다. 야구복을 입으면 그에 대한 이력이 줄줄줄 흘러나오지만 운동복을 벗으면 누군지 알지 못한다. 한마디로 야구에 미친 선수다. 하지만 칼 제구도, 무시무시한 강속구도, 엄청난 변화구도 없는 그가 1군에서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다. 한 번 불려가 보여준 기록은 형편없다.

 

흔한 야구 만화처럼 한 선수의 성공 이야기를 그렸다. 그런데 혼자만의 성공이 아니다. 먼저 그와 배터리가 되는 진승남이 있고, 2군에서 같이 생활하는 유망주들이 있다. 10년 동안 2군에서 3점대 방어율을 유지했지만 그것은 단지 2군용이다.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감독과 코치는 제대로 활용을 못한다. 당연하다. 사실 그의 구속을 보면서 먼저 떠오른 선수가 있다. 두산 유희관 선수다. 선발로 멋진 2013년 시즌을 보낸 그를 생각하면서 혹시 하나의 모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지만 그는 선발이다. 그처럼 멋진 제구력도 없다. 참고는 많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은 이번에 커쇼가 갱신했다. 강한 투수력은 우승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최근 야구는 투수 분업 시대다. 선발은 당연히 강해야 하고, 중간과 마무리도 점점 더 중요성이 높아진다. 삼성의 3연패에 오승환이 있었다는 것은 기아의 몰락에서 잘 드러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마무리의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최고 연봉을 주지는 않지만 각 팀이 좋은 마무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마무리가 날린 승리를 연말에 정산하면 중요성은 더 높아진다.

 

결코 빠르지 않고 날카롭지 않은 투수 이상용. 그는 선발로 사실 부적합하다. 하지만 마무리라면 어떨까? 선수들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냉철한 분석력과 마운드 위에서의 모습이라면 1이닝을 잘 막아주지 않을까? 이런 그를 지켜보는 코치가 등장한다. 정학 코치다. 2군 마무리가 부상당하면서 이상용을 마운드에 올린다. 아슬아슬하게 마무리한다. 이 기록이 20이닝으로 이어진다. 특별한 주무기가 없는 그를 사람들은 단순히 운이 좋다고 평가한다. 여기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투수나 타자들에 대한 편견이 들어있다. 작가는 이 편견을 깨트리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을 데이터를 통해서 심리 게임처럼 풀어낸다. 수읽기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완간되는 것을 기다리기보다 연재물로 손이 먼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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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당하고 싶은 여자
우타노 쇼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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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납치해주세요” 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자신을 납치해달라는 소설이나 영화가 이전에도 있었다. 보통 자신의 납치를 통해 관심을 얻고 사랑을 확인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납치 사건을 펼치는 이유가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랑의 확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너무 위험한 일이지만 일단 시작은 그렇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사장 부인에 아름답고 멋진 외모를 지닌 그녀가 요청할만한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언제나 보이는 것 너머에 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두 남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진행한다. 한 명은 고미야마 다카유키, 납치를 의뢰한 고미야마 사오리의 남편이다. 또 다른 한 명은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화자 구로다다. 납치사건이 먼저 벌어지면서 다카유키의 행동과 심리묘사를 통해 사건 진행을 알려준다면 구로다는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이면을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다카유키를 통해 알려진다면 대중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구로다를 통해 나온다. 결국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쥐고 있는 인물은 심부름센터 소장인 구로다다.

 

미모의 유부녀 사오리의 의뢰가 위험성이 가득하지만 빚에 시달리는 소장에게 이것은 황금알을 낳는 의뢰다. 그가 꾸민 시나리오는 멋지게 성공한다. 물론 이것이 쉽게 성공하게 된 것에는 사오리의 내부 정보가 한 역할을 했다. 사오리의 납치를 통해 다른 가족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다. 경찰의 시선이 사오리 쪽으로 옮겨져 있을 때 다카유키의 누나를 공략해서 순식간에 집안에 있던 돈을 뜯어낸 것이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사오리를 풀어주고, 사전에 서로 계획한대로 사오리가 가공의 범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있어야 하는 사오리가 시체로 발견된다. 단순히 사랑을 확인하는 이벤트 같았던 납치가 살인으로 바뀐 것이다.

 

이벤트를 실제 납치 사건을 바꾼 후 희희낙락하던 구로다는 착한 인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악당도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이용해 빚을 갚으려고 한 것뿐이다. 사오리가 쉽게 사실을 밝힐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계획이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어떻게 선택되었고, 이 납치 뒤에 어떤 무시무시한 계획이 숨겨져 있는지. 시체가 발견된 후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 무척 닮아있다. 사오리를 죽인 인물이 요청한 시체 처리가 완벽하지 못해 얼마 지나지 않아 발굴된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직업을 이용해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기 시작한다. 재미는 이때부터 본격적이다.

 

작가는 그의 다른 작품처럼 곳곳에 간단한 문장으로 단서를 심어놓았다. 물론 가장 중요한 단서는 숨겨놓았다. 의문을 품게 만드는 문장을 살짝 심어놓고 구로다를 통해 하나씩 그것을 밝혀낸다. 그가 한 발 한 발 실체에 다가가면 더 많은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결정적인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이때부터 작가는 모든 진실을 풀어낸다. 전체적인 사건의 윤곽을 알게 되는데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반전이 생긴다. 그런데 이 반전이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다. 시체로 발견된 여자에 대한 감상도 공감할 정도가 아니다. 왠지 모르게 만들어둔 구성 속에 억지로 이야기를 밀어 넣은 느낌이다. 최근에 나온 소설들에 비해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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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케어
구사카베 요 지음, 현정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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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이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었다. 작가가 가공의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는 노인 의료의 문제는 현재 우리에게도 진행중이고 앞으로 더욱 많은 문제를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루시하라 다다스가 주장하는 폐용신의 절단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많은 거부감이 생긴다. 일반 사람들의 사지 중 하나 혹은 네 개를 절단한 사람을 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쉽게 이행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각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이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었다. 작가가 가공의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는 노인 의료의 문제는 현재 우리에게도 진행중이고 앞으로 더욱 많은 문제를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루시하라 다다스가 주장하는 폐용신의 절단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많은 거부감이 생긴다. 일반 사람들의 사지 중 하나 혹은 네 개를 절단한 사람을 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쉽게 이행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각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용어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폐용신(廢用身)이고, 다른 것은 제목인 A케어다. 폐용신은 마비 증세로 손상을 입어 영구적으로 불구가 된 신체다. 불구가 되었다면 전혀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거나 통증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폐용신이 갑자기 움직여 문제를 일으키거나 움직이지 않는 신체 때문에 생활의 불편이 생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간호하는 사람들이 환자의 무게나 갑작스런 움직임 때문에 허리 통증이나 기타 병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환자가 가벼우면 상관없지만 무거울 경우 이동에 더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고 환자 자신도 욕창 등에 더 자주 걸린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 폐용신의 절단이다. A케어의 A는 amputation에서 따온 것이다. 절단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단어 선택이다.

 

사지절단이라고 했지만 대부분 A케어를 받은 사람들은 폐용신만 절단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지가 모두 절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팔 하나 혹은 팔 다리 하나씩 정도다. 그런데 독자에게는 이 절단이란 단어와 절단된 노인의 이미지가 거부감을 준다. 점점 늘어나는 노인 환자들과 간호 및 간병인들의 피로도를 생각할 때 우루시하라의 방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물론 이것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자료도 충분히 없다. 단지 우루시하라의 이진자카 클리닉에서 폐용신 절단 수술을 받은 노인들 13명의 데이터만 있을 뿐이다. 이 데이터를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는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다.

 

A케어라는 놀라운 제안이 소설 전체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면 구성은 기존 소설과 완전히 다르다. 앞부분은 우루시하라가 A케어에 대해 쓴 책이고, 뒷 부분은 이 책을 쓰게 만든 야구로 슌타로란 인물의 주석이다. 이 둘은 거의 비슷한 분량이다. 우루시하라가 쓴 A케어 주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새로운 노인 의료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 의사의 학설에 더 가깝다. 읽으면서 이 책이 소설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반면에 야구로의 주석은 A케어에 대해 비교적 냉정한 평가를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폭로되는 기사와 A케어 환자의 친족살인과 자살 등은 본질적 문제를 제쳐놓고 자극적인 외양에 집착한다.

 

사실 소설의 가독성이 높아지는 부분은 주석이다. 우루시하라의 A케어를 폄하하려는 언론의 공격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객관성은 사라지고 자극적인 부분만 남는다. 기사에 증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뢰가 뒤로 가면서 하나씩 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하나씩 흘러나오는 우루시하라의 모습도 처음과 조금씩 달라진다. 가장 문제가 되는 노인 의료는 안중에도 없고 자극적인 A케어만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이 공격은 국민의 알 권리란 주장으로 왜곡되어 밖으로 드러난다. 일반 대중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볼거리에 빠져들어 그들에게 동조한다. 얼마 전 SNS의 부작용에 대해 언론에서 한동안 집중 공격한 적이 있는데 그들이 끼친 더 큰 부작용을 생각하면 참 얼굴의 철판도 두껍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주석을 통해 우루시하라의 시술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난 의사의 숨겨진 이면은 충격적인 대목이 많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를 옹호하는 무리가 대다수다. 그것은 그가 지닌 열정과 순수함 때문이다. 그의 과거를 세 사람의 각각 다른 경력을 지닌 간호사를 통해 드러내었을 때 분명해진다. 현장에서 닳고 닳은 간호사는 기존 체계에 안주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그리고 개인의 평가는 평가자 상대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매스컴이 만난 사람들은 아마 자신들의 논조를 강조하기 위한 사람들로 혹은 왜곡한 상태로 발표된다. 이것은 우루시하라의 아내 기쿠코 부인의 방송 출연에서도 잘 드러난다. 편집은 악마라는 말이 생각난다.

 

결코 가볍게 읽을거리가 아니다. 의료 현장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동시에 무시무시한 대안 시술이 나온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철학을 주입받고 자란 우리나라에 이 시술은 엄청난 거부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힘겹게 부모 등을 간호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고민을 던져줄 것이다. 물론 의학적으로 A케어 후 좋아진 사람들의 모습이 검증된다면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마지막까지 새로운 소설 형식으로 포장한 구성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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