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장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3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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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시리즈 세 번째 편이다. 이전 시리즈는 읽지 않았다. 이 작가의 도조 겐야 시리즈를 몇 권 읽었는데 민속적 호러를 미스터리와 연결해서 풀어내는 능력이 아주 좋았다. 이번 작품도 약간 그런 종류다. 이전의 작가 시리즈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 <사관장>은 도조 겐야 시리즈의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보면 호러적인 요소가 더 강하다. 화자가 다섯 살 때와 성인이 된 후 겪었던 기이하고 괴상한 경험은 갑자기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의성어와 화자의 심리 묘사를 적절하게 섞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공포를 조성하는 동시에 ‘왜?’ 와 ‘어떻게?’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사관장(蛇棺葬). 처음에는 집 이름으로 착각했다. 장례할 때 사용하는 장(葬)을 장원할 때 장(莊)으로 잘못 생각한 것이다. 한자를 대충 본 것이다. 뱀 사(蛇)자의 강렬함과 백사당이란 다음 책 제목 때문에 집으로 그냥 넘겨짚은 것이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언제 사관장이 나올까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기 진행되어도 그 장소는 나오지 않았다. 백사당에서 일어난 기묘하고 기이한 사건만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 햐쿠미 가의 장례를 중심에 두고 어린이와 성인의 각각 다른 경험을 어스스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성인되어 30년 만에 찾아온 화자가 어릴 때 느낀 공포와 의문을 다시 재현하면서 다른 위치 때문에 생긴 다른 경험을 들려준다.

 

화자 ‘나’는 다섯 살 때 처음 햐쿠미 가로 들어온다. 본처가 있는 아버지가 밖에서 ‘나’를 낳은 것이다. 어머니가 죽자 어쩔 수 없이 햐쿠미 가로 돌아왔는데 누구도 그를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새엄마의 시선은 냉혹하고, 할머니는 정신이 있을 때나 없었을 때 모두 소년을 괴롭혔다. 얼마나 차가웠으면 그 나이에 그것을 알았을까. 이런 와중에도 그의 편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 바로 다미 할멈이다. 아버지와 고모와 삼촌의 유모였던 다미 할멈이다. 유폐된 듯한 작은 방에서 결코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사는데 ‘나’가 나타나면서 이 둘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소년이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성인이 된 화자가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이야기는 둘로 나누어져 있다. 다섯 살 소년의 이야기와 30년이 지난 후 이야기다. 무대는 동일하게 햐쿠미 가다. 소년의 이야기가 기억을 더듬어 과거의 감정을, 느낌을, 공포를 글로 표현했다면 성인이 된 나의 이야기는 자신의 직접 경험이 공포와 어우러진다. 읽으면서 소년의 글이 너무 성숙해 진짜 소년의 경험이자 실제 있었던 일인지 의문이 생겼다. 반면에 30년 만에 돌아온 후 이야기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중에서 최고는 역시 백사당 안에서 새어머니 시체를 염한 것이다. 이때 잘 만들어진 시설물에 감탄하지만 초가 꺼지면서 과거의 경험이 현실 속에서 재현된다. ‘그것’이 나타난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은 의문을 품은 대목이다. 과연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고.

 

각각 다른 연령대의 주인공을 내세워 비슷한 전개와 구성으로 문을 열지만 모든 의문은 하나의 장례 속에 담겨 있다. 할머니의 장례식 때 아버지가 사라진 것과 새엄마의 장례식에서 새엄마의 시체가 사라진 것이 대칭을 이룬다. 과거엔 이야기였던 것이 이제는 자신에 닥친 현실이 된다. 햐쿠미 가의 장손은 어머니의 시체를 백사당 안에서 홀로 밤새워 염을 해야 장례 예법이 있다. 이 예법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 놀랍게도 다미 할멈이다. 이때가 유일하게 집안사람들이 다미 할멈을 찾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수많은 기담과 괴담을 들려준 인물이기도 하다. 화자의 현재 직업이 민속관련 출판사 편집자인 것도 햐쿠미 가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적지 않은 분량에 대칭적인 구성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난다. <백사당>을 읽지 않으면 <사관장>에서 받은 공포와 의문이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짝 펼쳐 본 <백사당>은 이번 소설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도조 겐야 시리즈에서 민속 호러를 해결하던 부분만 살짝 분리한 듯한 느낌이랄까. 책 속의 책이란 구성을 가지고 있어 어떤 부분에서는 이 <사관장>이 미스터리한 문제를 제출한 듯한 느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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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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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 100엔이란 금액으로 물건을 맡기는 것이 그렇게 저렴한지는 잘 모르겠다. 전철역에 있는 코인로커에 보관하는 것도 가능한 금액임을 감안하면 더욱. 물론 부피가 큰 물건의 경우는 다르다. 하지만 간단한 서류라면 어떨까? 책이라면? 이런 간단한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아시타 마치 곤페이토 상점가의 보관가게 사토를 만났다. 실제 주인이 지은 가게 이름은 ‘기리시마’지만 가게에 걸린 포렴에 쓰인 글자 ‘사토’ 때문에 사토로 불리는 그곳 말이다.

 

사토의 주인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설정이 아니라 이곳에 물건을 맡기는 사람들이 그 물건에 엮여 있는 사연을 말하는 설정이다. 이런 종류의 소설에서 흔히 보게 되는 설정이다. 그렇다고 주인이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물건을 맡긴 사람들의 모든 것을 껴안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100엔에 버릴 것을 맡기고, 누군가는 50년 동안의 장기 보관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곳은 그 물건을 맡긴 사람들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한다. 쓰레기장이 되거나 슬픔이나 아픔 등을 덜어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떤 것을 보관할까? 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 편을 제외하면 모두 사물이거나 동물이다. 의인화된 이 사물과 동물들은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하나씩 풀어낸다. 첫 이야기는 포렴이 하고, 두 번째는 자전거가, 세 번째는 유리장식장이, 네 번째는 이혼하려는 여자가, 마지막은 고양이가 한다.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관찰자이면서 화자 역할을 한다. 이들은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오래된 사물에 귀신이 깃든다는 일본의 이야기가 무섭지 않고 따스하게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토의 주인 도오루가 있다.

 

도오루는 어릴 때 시력을 잃었다. 글을 읽을 수도 색깔을 구분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한 번 들은 목소리는 아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상관없이.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관한 물건을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감정 등으로 오랫동안 기억한다. 이것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17년이 지났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경이적인 기억력이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 기억력이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다. 물론 이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단 한 번 그가 짝사랑했던 에피소드에서 나올 뿐이다.

 

감상적인 이야기다. 따스함이 조용히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어떻게 보면 영리한 선택일 수도 있는 구성이자 전개인데 의인화된 물건들이 이것을 재미나게 살렸다. 직접적으로 사연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관찰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사연을 말하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단지 몇 개월이 아닌 17년이란 시간의 흐름을 타고 나오는데 갑작스런 시간의 비약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어떤 의견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당사자들이 풀어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공감하게 되는지 모른다. 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혹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읽는다면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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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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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는 스웨덴에 살고, 차는 사브만 몬다. 나이는 59세이고, 6개월 전 아내가 죽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은 칼 같이 지킨다. 거의 웃지 않았고, 평생 한 여자만 사랑했다. 식당에서 웨이터가 계산을 잘못한 것을 발견하고 같이 간 친구 루네와 이 웨이터를 고소할 것인지 1시간이나 논의할 정도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우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매일 아침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돌면서 확인한다. 지금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자살해서 죽은 아내 곁으로 가는 것이다. 이 남자의 이름이 바로 오베다.

 

오베가 컴퓨터를 사러 간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괴팍한 노인네가 직원들은 짜증나고 두렵기만 하다. 그가 쏟아내는 독설과 까칠하고 화난 말투는 쉽게 적응하기 힘들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이곳에 왔을까? 그 이유를 그 다음 장부터 하나씩 보여준다. 오베라는 남자가 어떤 성격이고, 어떻게 행동하고,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면서. 그리고 가장 원했던 것이 어떻게 방해받고, 외골수 삶을 살던 그가 주변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가 괴팍함을 보여줄 때마다, 그것이 더 완고해질 때마다 감탄하면서 이것을 간단하게 무너트리는 파르바네의 행동에 놀란다.

 

파르바네는 오베가 죽으려고 집 천장에 구멍을 뚫고 목매는 끈을 달 때 이사온 이란 출신 여자다. 남편과 두 딸이 있고, 현재 임신한 상태다. 남편 패트릭이 트레일러를 잘못 운전해 오베의 집 벽을 끍었다. 자신의 평온한 자살을 방해한 이들을 보러 나갔다가 트레일러를 후진시켜주고 인연을 맺게 된다. 이 인연이 오베의 자살을 끝없이 방해한다. 멍청한 남편이 창을 고치다 떨어져서 차고에서 자살하던 것을 중단해야 했다. 이전에는 목을 매달았지만 줄이 끊어졌고, 약을 먹으려는 순간이나 총으로 자살하려는 순간 등에서 파르바네나 다른 사람들의 방해로 시도조차 못했다.

 

그냥 죽으면 끝이 아니냐고? 무슨 소리! 그것은 오베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죽은 후 일어날 여러 가지 상황들을 정리해서 유서로 남겨두고 있다. 총으로 자살하려고 할 때 피가 사방으로 뛰는 것을 감안해 벽과 바닥에 비닐을 덮고, 정장을 입고 죽으면 매장할 때 입을 옷을 걱정하며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죽으려는 그의 시도는 늘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다. 이 실패가 우리에게는 큰 즐거움을 준다. 그의 실패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그 사이에 그의 과거가 하나씩 흘러나오면서 이 괴팍한 노인과 같이 산 아내 소냐의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완고하고 원칙적이고 과묵한 그지만 소냐와의 만남은 이전까지 그의 삶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소냐와 살면서도 자신의 원칙을 버리려고 하지 않았고, 주변사람들이나 권위주의와 싸웠다. 이 소설에서 가장 큰 권위주의 집단은 공무원이다. 몸에 이상이 있다고 사랑하는 배우자가 있는데도 요양원에 넣으려는 집단이다. 오베도 아내 소냐의 사고 이후 이들과 싸워야 했고, 지금은 이전 친구였던 루네의 문제로 그들과 대립한다. 한때 루네는 그의 유일한 친구였지만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들로 서로 갈라섰다. 루네도 완고하기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에 벌어진 대결은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한다.

 

홀로 남은 오베는 매일 소냐의 무덤가로 찾아가서 그의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말한다. 아내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이기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 외로움과 괴로움을 산산조각내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는 이전보다 더 주변과 소통하고 살게 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아내 소냐의 존재감이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의 원칙에 살짝 벗어나도 소냐의 눈빛이 마음이 떠올라 그냥 지나간다. 차도 자전거도 다른 기계들도 전혀 고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어느 새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고양이 어니스트를 사랑했던 아내처럼 야생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이 고양이 또한 그의 평화로운 자살을 방해한다.

 

이 독특하고 괴팍하고 완고한 오베라는 남자가 나는 좋다. 그의 이웃이라면 어쩌면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그가 세운 원칙이 너무나도 완고하기에. 하지만 그가 투덜거리면서 보여준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가 경험한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있다. 파르바네의 운전 연습을 도와줄 때 보여준 그의 분노와 더불어 섬세하고 자상한 표현은 그의 또 다른 모습이다. 동성애자에게 호모라고 말하지만 그는 편견을 보여주지 않는다. 말자체가 편견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가 커밍아웃했을 때 재워주고, 아버지와 화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직설적이고 투덜거리고 누구나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삶의 균열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 파르바네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약하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삶을 산다. 그의 존재는 이제 그 동네 곳곳에 스며들고, 모두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 파르바네의 말처럼 그녀는 소냐에게서 그를 가장 잘 빌려 썼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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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카이
키릴 본피글리올리 지음, 성경준.김동섭 옮김 / 인빅투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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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로 상영했다. 배우들에게는 관심이 갔지만 요즘 영화를 잘 보지 않고, 평도 그렇게 좋지 않은 듯해 그냥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원작 소설이 있으면 관심이 생긴다. 이전에는 영화를 보았기에 원작소설에 관심이 그렇게 없었는데 요즘은 영화를 잘 보지 않아 원작에 관심이 많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이미지가 소설로 계속 이어져 그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원작을 먼저 읽은 경우도 그 피해는 어쩔 수 없다. 아직 나의 내공이 이 둘을 구분할 정도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영화가 더 궁금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구성이 나의 독서법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화를 선택했으면 한다는 의미다.

 

1970년대 5권의 시리즈로 나왔다고 한다. 그 중에서 두 작품을 모아 이 한 권으로 묶었다. 이어지는 작품인데 별도로 읽어도 문제가 없다는 말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작을 읽지 않고 뒤편인 <피스톨을 가진 당신 뒤에(After you with the Pistol)>를 읽는다면 이해가 갈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이것은 내가 연속으로 읽은 탓에 더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뒤편에서 시작하는 부분만 가지고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니라고? 그럼 당신의 놀라운 추리력이나 둔감함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모데카이. 그는 미술품 거래상이다. 이야기는 모데카이와 영국 특수경찰그룹 SPG 책임자 마트랜드가 만난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둘은 동창이다. 한 명은 정부의 특수경찰이고, 한 명은 스페인에서 도난당한 고야의 <웰링턴 부인>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되는 미술품 거래상이다.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이 둘은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눈다. 마트랜드는 모데카이를 납치해 고문까지 하는데 이것을 모데카이가 예상하고 있다. 이 부분을 볼 때만 해도 약간 심약한 그지만 적들의 공격을 잘 피하고 잘 이용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 진행되고, 뒤편으로 넘어가면서 이런 생각은 산산조각났다. 일반적인 주인공들과 다른 활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야의 그림만 해결하면 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어느 순간 한 장의 사진이 문제가 된다. 이것이 뒤로 넘어가면 헤로인으로 변한다. 개인의 문제가 조직과 엮이면서 커지고, 비밀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누군가가 이것을 계속 압박한다. 이 압박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모데카이가 놀랍지만 뭔가 깔끔한 느낌이 없다. 약간 붕 떠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잘 집중이 되지 않는다. ‘지난 50년 동안 가장 외설스럽고, 최고로 재밌으며, 즐길 만한 추리소설’이란 평가를 누가 한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줄리언 반스의 평을 보면 분명히 내가 제대로 느끼지 못한 재미가 있을 텐데 읽으면서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명확하게 진행되지 않아 조금 답답하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2부에서 모데카이와 결혼하는 조한나의 정확한 정체가 궁금해지고, 그녀에게 휘둘리는 그가 약간 맹하지만 귀엽다. 하지만 답답하다. 선이 굵은 주인공이라면 단호한 행동으로 자신에게 굴레를 씌운 적들을 무찌를 텐데. 그런 점에서 모데카이의 부하인 조커는 계속해서 시선을 끈다. 약간 무지한 듯하지만 강한 충성심과 강렬한 액션으로 모데카이에서 느낄 수 없는 통쾌함을 주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집중력이 좋지 않아 이 콤비가 만들어내는 상황과 액션 등에서 재미를 완전히 누리지 못했지만 가장 시선을 끈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에 모데카이가 오해와 실망에 잠겨 있을 때 툭 던진 한 마디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다. 곳곳에 재미난 상황이나 문장들이 나오지만 이것만으로 엄청난 극찬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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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세상에 순종할 수 없다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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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닌 산문집으로는 두 번째 만난다. 언제부터인가 산문집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이외수의 산문집은 손이 잘 나가지 않았다. 보통의 산문집과 다른 편집이라 쉽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읽다보면 그 의미심장한 내용 때문에 자주 숨을 고르게 된다. 이때마다 속도가 더디게 흘러간다. 그런데 이 더딘 흐름이 좋다. 이번 산문집은 쓰다가 찢어버린 원고지 종이더미를 뒤져 찾아낸 미발표 시, 그림,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중에서 이 시대 청춘들과 공유하고 싶은 글을 정리하고, 최근에 집필한 산문 등을 모았다. 당연히 그의 이전 삶이 녹아 있다. 글 쓴 시기를 제대로 표기해주지 않아서 내용으로만 그 당시 이외수의 삶을 추측해야 한다. 조금 아쉬운 편집이다. 쓰다가 찢어버린 원고지를 생각하면 당연할 수 있지만.

 

사랑, 춘천, 가난, 문학, 낭만, 여자, 청춘, 예술, 종교 등에 대한 그의 단상을 모아놓았다. 그냥 얼핏 읽으면 꼰대의 말처럼 다가오는 것도 있지만 조금만 음미하면 풍자가 엿보이는 글들로 가득하다. 그가 겪어야 했던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과 현실과의 괴리는 최근에 대중적으로 변신한 그의 모습이 아닌 소설 한 편을 위해 골방에 자신을 가둔 채 글을 썼던 그 시절의 이외수를 자연스럽게 떠올려주었다. 그 치열한 문장과의 대결은 담배로 이어졌고, 몸은 꼬챙이처럼 마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처음 그가 텔레비전 예능에 나왔을 때 너무나도 낯설었다. 내가 읽은 소설이나 그에 대한 정보와 엄청난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기 마련이다. 자주 보니 그의 이런 모습도 반갑고 재미있다.

 

모두 열 꼭지로 나누었지만 제목만 보고는 그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어떤 짧은 산문은 두 번이나 나오는데 활자의 크기 차이인지 눈으로 보이는 길이가 다르다. 내용도 어떤 것은 한 줄로 끝나고, 어떤 것은 몇 쪽을 채운다.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역시 한 줄이다. 그가 경험했던 것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여자는 난해하다. 그 어떤 현대 시인의 난해시보다 더 난해하다.”고 했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아는 척해도 결국 자기 여자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요즈음은 소크라테스보다는 돼지 쪽이 더 인기가 있다.”라는 말처럼 현실을 그대로 요약해서 들려주기도 쉽지 않다. 읽으면서 ‘나는?’이란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춘천에 대한 애정, 젊은 날의 고생, 변한 세태 등이 곳곳에 나온다. 자살에 대한 충동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 같다. 젊을 때 나 자신도 자살 생각을 해보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깊은 허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렸던 그를 세상 밖으로 건져올린 사람이 누굴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의 아내였을까? 아니면 다른 누구? 술집에서 안주값이 없어 소주에 김치를 몇 번이나 시켜 먹다가 더 이상 리필이 되지 않은 사연은 처절하다. 구질구질하다.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다. 그의 요청에 회 안주를 포장해준 횟집 주인이 있는 것이다. 그의 이십 대 이야기다. 읽으면서 처음에는 깡소주에 새우깡 안주로 집에서 혹은 야외에서 먹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술집이란 공간이 그들을 어떻게 끌어당겼는지 생각하면 짠하다.

 

그의 단상은 정제된 문장을 통해, 시를 통해, 짧은 이야기를 통해 계속 나온다. 세상과 손을 잡고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면 좀더 편안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그는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싸웠다. 세상과 타협하려는 자신과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실제 삶을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글 속에 드러나는 치열함과 고민과 고뇌는 나의 가슴 한 곳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 묵직함이란. 현실 세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나올 때면 반갑고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눈물이 과거 속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희망을 말하며 ‘우리도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이다’고 했을 때 그가 겪었던 어둠과 암흑에 조용한 빛 한 자락이 스며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결코 세상에 순종하고 방황만 할 수는 없다. 나도 살아가야 할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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