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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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문학상 수상작을 처음 읽는다. 이전 수상작들을 찾아보니 제목을 아는 소설이 몇 편 있다. 딱 그 정도다. 소설 <혼불>을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 이 문학상이 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는 모른다. 다만 <혼불>이 재간되기 전 절판되어 많은 독자들이 읽기를 원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장르 소설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대하장편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할 수도 있다. 진득하게 작품을 읽기에는 끈기가 너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늘 좋은 대하장편소설을 욕심내고 형편이 되면 산다.

 

구한말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했다. 요즘처럼 국정교과서로 역사 문제가 시끄러운 이때, 이 소설은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던 동학농민혁명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단순히 동학도가 남도에서 흥기하여 무작정 한성으로 진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그 당시 조선과 조선을 둘러싼 나라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간결하게 다루었다. 실제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인물 등을 생각하면 한 권으로 압축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가는 많은 가지를 쳐내고, 핵심 되는 내용과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재현해내었다. 그 속에는 동학농민군을 무식하고 미신에 휩싸인 무리였다는 속설을 뒤집는 것도 적지 않다. 아니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의지가 더 굳건하게 담겨 있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의 부산물인지 알 수 없지만 전봉준과 대원군의 만남은 아주 놀라운 일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상대와 힘을 합치고, 권력을 잡은 후 다시 내부적으로 싸우려는 의도가 나올 때 병법의 기본 원칙이 느껴졌다. 이렇게 소설은 조선 조정과 그곳을 둘러싼 권력의 관계자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다른 한 축은 전봉준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이 내용을 가득 채운다. 개인적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전봉준 측이 아닌 일본의 힘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김교진 등의 세력이다. 역사의 결과를 알고 있는 독자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소설을 조금 힘겹게 읽었다. 문체나 문장이 그렇게 가독성이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취향에 맞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문장에 호흡을 맞추다 보면 읽는 속도가 떨어진다. 최근 나의 독서가 이런 종류와 동떨어져 있다 보니 더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에 적지 않은 인물들이 주연 및 조연으로 등장하는데 어느 순간 한두 명씩 사라졌다.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데 그들이 개인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소설 속에서 비중 있게 나왔다면 그 어떤 흔적이라도 남았으면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가장 통찰력 있는 인물이었던 이철래가 너무 힘없이 사라졌기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힘의 역학 관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자신의 양심 때문에 고뇌하던 그는 시대를 앞선 모습이었다.

 

녹두장군, 전봉준. 민요로도 남아 있는 그를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의 모습은 아주 인간적이다. 동학 접주들을 만나 세를 규합하고, 그들을 이끌고 봉기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는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은 전봉준을 한양까지 끌고 가는 과정을 다룬 한승원의 <겨울잠 봄꿈>이었다. 이번 소설에서는 아주 짧게 다루지만 두 작품 속 전봉준과 그들 둘러싼 사건들이 조금은 다르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 있다. 바로 그들의 의지와 노력과 혁명이 역사에 의해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결과를 아는 작가의 의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큰 아쉬움은 분량이 적어 충분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가 한국근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머어마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역사와 작가의 상상력으로 세밀하게 채워 넣을 이야기가 너무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친일로 돌아선 사람들의 심리와 그 당시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다루었다면 아주 멋진 정치 소설이 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너무 방대한 이야기의 많은 가지를 쳐내면서 적절하게 풀어낸 것에는 박수를 치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고, 비교하고, 분석한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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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화를 내봤자 -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의 나답게 사는 즐거움
엔도 슈사쿠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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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소설을 좋아해 많은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최근에는 액션이나 추리 등의 장르물에 더 눈길을 두지만 그 이전에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중심으로 읽었었다. 물론 지금처럼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많은 소설을 읽었다. 영화로 만들어져서 읽었고, 유명한 작가라서 읽었고, 재미있다고 해서 읽었었다. 그 당시에 엔도 슈사쿠의 소설 중 한 편 정도는 읽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설마 한 편도 읽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하고 약간 의심도 해본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침묵>도 나 스스로 자신할 수 없다. 몇 번이나 살 기회가 있었지만 처음에는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다음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란 점 때문에 사지 않았다. 읽은 것에 대한 진실은 아직도 미궁 속에 있다.

 

이 에세이는 엔도 슈사쿠가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한 것을 묶어서 내놓은 것이다. 지면 사정이나 그 당시 요청에 따라 분량이 모두 달랐던 모양이다. 긴 것은 몇 쪽에 달하고 짧은 것은 두세 쪽에 불과하다. 이 분량 차이가 가끔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끝난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래도 지금부터 2~30년 전 작가의 생각과 문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때와 지금의 문화나 사회 분위기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들이 상당히 있는데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나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주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가볍게 풀어내었다. 병으로 힘들게 산 듯한데 글은 그 무게를 대부분 지워내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 그 중에서 몇 편은 읽다가 크게 웃었다.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그 중 한두 가지만 소개하자. 한 잡지의 어떤 학생이 원고 청탁을 가면서 먼저 전화를 해주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작가에게 집 앞 쌀가게에서 전화를 하면서 원고를 부탁한다. 황당하고 기가 막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작가가 이 요청을 수락하고, 그 잡지는 다 팔린다. 이 보다 더 황당한 이야기는 소변 검사용 컵에 똥을 담아온 친구에 대한 것이다. 왜, 어떤 생각에서 이런 일을 한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아주 즐겁게 웃게 만든다.

 

노작가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는 곳곳에 드러난다. 변화하는 세태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분도 있고, 자신의 경험담을 진솔하게 풀어낸 부분도 있다. 개인적으로 후자가 더 재미있지만 전자도 유념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록 2~30년 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도 현재 우리의 삶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도쿄 대학 진학에 힘쓰는 모교에 대한 글이나 빛바랜 경로의 날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기념일 등이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도 그가 보여주는 자신답게 살고자 하는 노력과 즐거움은 눈길을 끈다.

 

소설가라서 받게 되는 편지나 영어 실수담으로 경쾌하게 시작한 글은 마지막에 병문안과 인생관으로 마무리된다. 앞이 유쾌하고 쉽게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뒤의 글은 곱씹어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병문안에 대한 이 글은 잘 몰랐던 부분이다. 나의 욕심이 환자를 힘들게 한 적이 적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마지막 이야기의 제목이 ‘괴로운 즐거움’인데 이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작가 나름의 표현방식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도 이 길을 가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그의 이 표현은 개인적으로 삼하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즐겁고 유쾌하게 읽었다. 엔도 슈사쿠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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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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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이었던 놈과 함께 1주기 기일에 그녀의 유골함을 들고 튄다는 설정이 시선을 끌었다. 이 설정을 읽고 머릿속에서 시나리오 한두 개가 스쳐지나갔다. 소설과 비슷한 것조차 없었지만 이런 상상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연적이라고 하면 보통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던 남자가 먼저 떠오른다. 이 둘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연적은 그런 식이 아니다. 한 명이 먼저 사귀고, 다음 남자와 새롭게 사귄다. 연적보다는 오히려 이전 남자 친구들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다. 둘 다 그녀가 죽기 전에 차였으니 말이다.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출판사 편집자이자 죽기 전에 재연과 헤어진 고민중이다. 그는 어느 날 한 통의 문자를 받는다. 죽은 그녀의 번호로 부고장이 온 것이다. 운전을 못하는 그는 힘겹게 빈소를 찾아간다. 그녀와 헤어진 이유 중 하나로 결정 장애를 꼽는데 이름처럼 그는 생각이 많고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그리고 1주기 때 그녀의 납골당을 힘들게 찾아간다. 시외에 있고, 차가 없으면 찾아가기 힘든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재연의 또 다른 남자 친구 앤디를 만난다. 그녀를 추억하고 애도하기 위해 온 것이다. 앤디의 차를 타고 오는데 앤디가 우발적인 제안을 한다. 그녀의 유골을 그렇게 좁은 납골당 속에 놓아둘 수 없다는 것이다. 민중도 동의한다. 함께 간단한 작전을 짜고 유골을 훔친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앤디의 본명은 병균이다. 성은 강 씨다. 그는 재연이 일했던 헬스클럽 사장이었다. 몸 좋고, 허세가 가득하다. 머리가 좋지 않지만 행동 하나는 재빠르다. 그런데 허술한 구석이 많다. 그와 함께 유골을 훔친 민중은 약한 체격에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비루한 식자다. 앤디의 등치를 보고 약간 겁을 먹지만 나름 머리를 써 위기를 넘어간다. 왠지 모르게 이 둘이 어느 순간 잘 어울리기 시작한다. 앤디가 첫날 재연의 유골함을 들고 도망가려고 할 때 약간의 갈등이 있지만. 그리고 이때 유골함이 깨어진다. 그녀의 유골함이 단백질 통으로 바뀐 것도 이때다. 무작정 훔친 유골을 그녀가 바라는 곳으로 데리고 가자고 서로 동의한다. 그렇게 처음 간 곳이 남해다.

 

그녀가 좋아했던 소요 해변은 개발로 변했다. 민중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둘은 술을 진탕 마시고, 앤디가 새로운 지역으로 제주를 말한다. 둘이 합의하고 여수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려고 한다. 여수는 앤디의 고향이다. 여기서 생긴 조그만 에피소드는 작은 재미를 준다. 허세 가득한 앤디는 중고 BMW를 팔아 여행 경비를 마련한다. 앤디의 멋진 몸과 붙임성 있는 말투는 여기저기에서 여자를 끌어당긴다. 재연 이전에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했던 민중에게는 부러운 일이다. 괜히 트집을 잡는다. 재연을 위한 여행이란 핑계를 댄다. 제주로 날아갔지만 그녀가 좋아했던 오름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앤디는 재연의 페이스북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이 번호는 새로운 사건을 여는 열쇠가 된다.

 

한 여자의 추억을 둘러싼 두 남자의 여행이 그렇게 긴장감 넘치고 재밌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지만 소소한 재미로 몰입하게 만든다. 남들이 볼 때는 홀쭉이와 뚱뚱이처럼 보일 정도로 극과 극의 외형과 성격을 가진 둘이다. 서로의 기억을 말하고, 비교하고, 자신들의 삶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둘의 사이는 가까워진다. 그러다 재연이 쓴 소설이 왜 출간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앤디가 제기한다. 소설 출간을 거부한 것은 사실 그녀가 먼저다. 명확한 이유를 민중조차 몰랐다. 하지만 앤디가 보여준 비밀번호가 이 답을 찾게 만들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사실은 추악한 문화계의 모습이다. 작가가 이미 경험한 것을 각색한 것이다. 인간의 비열함이 묻어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렇게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작가는 곳곳에 아주 현실적인 장면들을 넣어 놓았다. 운동권 출신 아버지가 학원장이 되면서 보수골통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유체이탈 화법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에서 우리의 현실의 살짝 비틀었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이면에 도사린 문화적 폭력 또한 현실의 한 모습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약하고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민중을 등장시켜 우리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것을 그대로 깨트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앤디다. 말보다 행동이다. 소설 곳곳에 이런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설정과 전개일 수도 있지만 이런 장면들이 균형을 잡아주면서 살짝 웃게 만든다. 소설 속 몇 곳은 바로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물론 소요 해변은 개발로 엉망이 되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꾼 한 명이 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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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첫 번째 태양, 스페인 - 처음 만나는 스페인의 역사와 전설
서희석.호세 안토니오 팔마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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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공저로 쓴 스페인 역사 이야기다. 스페인에 정착한 한국인과 스페인 역사학과를 졸업한 여행 가이드가 힘을 합쳐 썼기 때문이다. 모두 일곱 장으로 나누었는데 전설의 헤라클레스부터 대항해 시절까지의 스페인 역사를 다룬다.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역사와 전설과 야사를 적절하게 섞어 상대적으로 딱딱할 수 있는 역사를 부드럽게 풀어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역사고, 낯선 이름들이 나오면서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읽는 속도가 떨어졌다. 그렇지만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몇 가지 사실을 새롭게 하면서 이베리아 반도 이야기에 조금씩 젖어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스페인에 관심이 생겼다. 아마도 가우디의 건축물을 본 후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전에 스페인 영화를 볼 때 강한 끌림을 받은 영화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면들 때문에 봤다. 투우를 둘러싼 논쟁과 그것에 강하게 끌린 작가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단편적인 지식을 쌓았지만 거기에서 항상 멈추었다. 여행에 관심을 두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려고 계획을 짤 때도 그렇게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중해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스페인이라고는 가우디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등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그 궁금점을 이 책이 채워주길 약간은 바랐는데 나의 무지와 엮이면서 더 나아가지는 못했다.

 

머리말에서 내가 알고 있던 스페인의 이미지를 산산조각내었다. 그것은 스페인이 수많은 이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그들의 조상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 부분 때문이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스페인의 이미지는 보통 이슬람이 기독교 세력에게 쫓겨난 이후와 그 유명한 무적함대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전과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까지 자신들의 역사에 끌고 들어왔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 다음이 바로 로마 시대였는데 왜 이 반도가 중요했는지 알려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대에 이베리아 반도의 은광과 대항해 시대 아메리카 대륙의 금광이 묘하게 연결되면서 역사의 한 장면들이 겹쳐보였다.

 

서고트 왕국을 지나 이슬람 시대로 넘어오면서 몇몇 낯익은 이름이 나오고, 몇 장의 지도를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지명과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려웠다. 처음 접하는 스페인의 역사이다 보니 너무 낯설었다. 단편적인 지식으로 그 틈을 메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비슷한 왕 이름과 몇 세라는 단어가 붙게 되면서 더 어려워졌다. 외국 소설이나 역사를 읽을 때 늘 고전하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한국이나 중국 역사를 읽을 때도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익숙해지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축출되고 난 후의 역사도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단순한 분리주의 요구와 너무 달랐다. 스페인의 통일 이전에 왜 세비아가 중요한 도시였는지 알려주고, 이 작은 반도 안에서 어떤 왕국들이 대결하면서 권력을 잡았는지 보여줄 때 동북아시아의 그것과 너무 비교가 되었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구축되지 않음으로서 일어난 수많은 반란과 전쟁은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리고 이 지역을 두고 주변 국가들이 보여준 대결 구도는 짧게 나오지만 그 시절 유럽사를 공부할 때 아주 재밌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권력을 잡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몰아내고, 형이나 동생을 죽이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역사를 보면서 권력의 비정함을 다시 한 번 더 느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콜럼버스가 식민지에서 어떤 악행을 펼쳤는지 다시 보여줄 때 우리가 배운 역사란 것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왜곡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요즘 정부가 추진하는 국정화가 역사를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 책에서도 수많은 정사와 함께 야사와 전설이 같이 다루어지는데 정확한 사료가 없다보니 해석에 따라, 혹은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바뀐다. 전설과 함께 다루어진 역사 이야기이다 보니 딱딱함은 덜하지만 약간 산만한 부분이 곳곳에서 보인다. 스페인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가 입문용으로 차분하게 읽는다면 나쁘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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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유나 린나 스릴러
라르스 케플레르 지음, 이정민 옮김 / 오후세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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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 <샌드맨>하면 닐 게이먼의 그래픽노블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유나 린나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이 나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악당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유레크 발테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이 연쇄살인범의 무서움을 작가는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한니발 렉터와 견주어도 조금의 손색이 없는 악당이다. 어쩌면 더 잔인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살인을 하는 방식이 더 무시무시하기 때문이다.

 

유나 린나라는 이름을 보고 여자라고 착각했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남자 형사다. 13년 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연쇄살인범 유레크 발테르를 잡은 것도 그다. 하지만 유레크의 죄를 완전히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그가 묻혀있던 사람을 끄집어내는 것을 발견하고, 실종자들과 그의 관계를 파악하는데 성공했지만 딱 거기서 멈추었다. 법원은 현장범이었던 관계로 그를 구속하고 특별 보호 관찰하는 격리구역에 가둔다. 그는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불린다. 물론 그에 대해 아는 사람에 한해서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 그를 잡은 유나임을 감안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이야기는 바로 유나가 아내와 아이를 죽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유레크의 무서움은 유나에게 직접 피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실종이다. 보통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협박하면 약간의 두려움을 가질지 모르지만 무시할 것이다. 하지만 유레크는 다르다. 그와 함께 유레크를 잡은 사무엘의 아내와 자식들이 실종되고, 이들을 찾던 그가 절망에 빠져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그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항상 자기 가족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앞 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공포가 그대로 전달된다. 이런 공포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주는 사연이 하나 더 나오는데 정말 무시무시하다.

 

유레크가 격리수용된 구역에 한 명의 정신과 의사가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안데르스 뢴이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유레크의 방에서 그가 만든 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가 일반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연쇄살인범이란 것을 알려준다. 근육주사를 놓아 무력한 상태의 유레크지만 안데르스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있다. 그의 상사는 옷을 뒤져 편지를 찾으라고 하지만 유레크가 주장하는 의견에 동조한 그는 편지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 편지를 붙인다.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편지 한 통이 지금까지 잊고 있던, 13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한 아이를 현실 세계로 불러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된다. 하나는 유나, 다른 한 명은 여형사 사가, 마지막은 레이다르다. 13년만에 나타난 아이의 아버지가 바로 레이다르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아이들의 실종과 이혼과 아내의 자살로 살아있는 시체처럼 사는 인물이다. 다른 사람처럼 그가 자살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그의 삶은 피폐해져 있다. 아들이 살아 돌아오자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깨닫고 딸이 돌아오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초반과 마지막에 상당한 비중을 지니고 등장하는데 이 사건의 원인을 알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가는 일반적인 형사가 아니다. 비밀경찰이다. 미카엘이 살아서 돌아온 후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유레크로부터 동생 펠리시아를 구해낼 방법을 찾지 못하자 차선책으로 선택한 대안이다. 격리구역에 넣어서 유레크로부터 정보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사가는 아주 아름답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다. 격리구역에서 유레크와 만나면서 그녀의 내면은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유레크와 접촉했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잘 아는 유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사가가 격리구역 안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은 이 소설의 또 다른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유나. 그는 유레크를 잡았지만 그의 그 어떤 정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카엘의 귀환과 그에게서 얻게 된 정보와 사라가 잠입한 후 설치한 도청으로 13년만에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의 두려움과 경계심과 끈질긴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사건을 하나씩 밝은 곳으로 끄집어낸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한 순간도 유레크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는다. 이미 파트너 사무엘의 죽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그가 느끼는 공포는 읽는 내내 긴장감을 준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잠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형사다.

 

읽는 내내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유레크는 사람들을 납치한 후 바로 죽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미카엘이 동생과 함께 캡슐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13년 동안 살았던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 그리고 자식들의 실종과 죽음이 과연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정도의 강한 충격을 주었을까 하는 것이다. 레이다르처럼 거의 시체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잊으려고 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의문이 이어지는 와중에 드러나는 진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소설로 가장 특이하면서도 잔혹한 살인마를 한 명 만났다. 쉽게 잊을 수 없는 연쇄살인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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