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당나귀 현대지성 클래식 22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지음, 장 드 보쉐르 그림,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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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작가가 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장편 소설이자, 오늘날까지 원본이 완전하게 보전된 유일한 라틴어 소설에, 세계 최초의 액자 소설이다. 멋진 책 소개다. 보통 이런 작품들의 경우 읽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아주 재밌고 잘 읽힌다. 매우 선정적이고 방탕하다는 평이 덧붙여져 있는데 동의한다. 원색적인 표현에 그림까지 더해지면서 고대 작품들 중에 이런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물론 그림은 에로틱한 고전 작품들의 삽화를 그린 벨기에 태생 장 드 보쉐르의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적인 묘사에 놀란다.

 

루키우스가 화자인 1인칭 소설이다. 그가 여행을 하던 중 들은 이야기와 당나귀로 변한 후 모험을 다룬다. 인간들의 원색적인 욕망과 마법과 마녀와 신화 등이 뒤섞여 있다. 기발한 상상력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추악한 욕망이 만들어내는 비극도 같이 나온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어 그 상황을 설명해준다. 액자구성인데 이어지는 액자구성이 아닌 독립적인 이야기들이다. 단순히 액자 속 이야기만 놓고 보면 간단한 단편 소설로 간주해도 큰 무리가 없다. ‘쿠피도와 프쉬케의 사랑’ 같은 장은 실제로 아주 긴 이야기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루키우스가 당나귀로 변한 것은 마녀와 마법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원래 그가 원했던 것은 새인데 약을 잘못 사용해 당나귀로 변했다. 장미꽃잎을 먹으면 인간으로 다시 변신할 수 있는데 기회가 생기질 않는다. 외모가 당나귀이다보니 그를 잡아 짐을 싣는다. 이 소설에서 수많은 모험과 액션과 이야기들이 풀려 나오는 부분은 바로 당나귀로 변한 이후다.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외모는 당나귀인 그가 무방비의 사람들로부터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녹여내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속에는 인간의 탐욕, 색욕, 질투, 사랑, 복수 등 다양한 감정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이고 잔인하고 원색적으로.

 

당나귀로 변신한 이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주인들이 바뀌면서 그의 삶도 많은 굴곡을 겪는다. 몇 번은 살해의 위협 속에 노출되고, 또 어떤 순간은 거세될 뻔 했다. 처음에 도둑들에 끌려가 겪은 일들은 한 마리의 당나귀가 실제 겪는 일들이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죽이는 냉정한 도둑들의 행동은 화자를 바쁘게 움직이게 만든다. 이후에 다른 주인 밑에서 일하지 않기 위해 꾀를 부려보지만 현실은 매 타작 뿐이다. 인간 같은 행동의 결과가 파렴치한 살인자와의 공개 성행위로 이어질 뻔한 적도 있다. 이런 당나귀의 모험은 나에게 인간들이 동물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습고 비극적이고 외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황당하기까지 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간다. 그가 죽을지도 모르고, 거세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긴장감을 느낀다. 그가 뒷발로 사람들을 찰 때 잠시 통쾌함을 느끼지만 당나귀의 한계는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이 되면 다른 사건이 발생해서 그 위기를 벗어난다. 물론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인간으로의 변신이 갑작스런 종교로 넘어가면서 이야기의 힘이 약해진다. 다른 마무리도 가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데카메론>이 떠올랐는데 해설을 보니 연관성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등은 주석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조금 힘들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의 이름 비교표를 부록이 아닌 앞부분에 놓았다면 몇몇 이야기는 이해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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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오기 전에 - 죽음 앞에서 더 눈부셨던 한 예술가 이야기
사이먼 피츠모리스 지음, 정성민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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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언제 죽을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이 극소수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심한 병을 앓고 있다. 시한부인생이란 의미다. 이 에세이의 저자 사이먼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루게릭병을 앓았다. 통상적 생존기간은 4년이라고 하는데 그는 살고자 의지가 가득했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그 시간을 더 늘렸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더 쉬운 선택일 수 있는데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시간 동안 그는 놀라운 일들을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에세이다. 동공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아이게이즈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쓴 것이다.

 

많은 분량이 아니다. 긴 문장보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문장이 많다. 아이게이즈 때문일지, 아니면 자신의 문장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덕분에 쉽게 읽을 수 있다. 문장의 의미를 곱씹어야 하는 글도 많다.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저자의 의지가 이 에세이를 통해 그의 삶을 그려낸다. 2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1부는 아내 루스를 만나고, 다섯 아이를 낳고, 병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2부는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를 다루는데 루스를 만나기 전 삶이 많이 나온다. 이 삶을 보면서 내가 살아온 삶이 얼마나 변화가 없는 밋밋한 삶인지 알게 된다. 많은 여행과 수많은 경험은 부럽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병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온다. 그에게 루게릭병도 마찬가지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이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영화감독에게 이것은 거짓말 같은 일이다. 아내 루스의 첫 인상과 다시 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행복한 삶은 이 거짓말 같은 병으로 인해 순식간에 파괴된다. 하지만 그는 살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공호흡기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현실과 의지를 충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병을 고치기 위해 그는 민간요법부터 사이비까지 하지 않은 것이 없다. 현실은 잔혹하게도 그에게 기적을 일으키게 만들지 않았다.

 

루게릭병을 앓는다고 금방 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은 예정되어 있다. 얼마나 조금 더 사는가의 문제다. 이 병을 앓으면서도 그는 넷째와 다섯째를 얻었다. 그의 병은 여전히 그의 삶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슬픔과 절망 속에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진실은 이것이다. 더 나은 삶이 우리 모두를 돕고 있다.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햇살처럼.” 그는 병을 앓고 있지만 여행을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기억에 새긴다. 그리고 글로 남긴다. 글쓰기가 나의 마지막 투쟁이다.”란 문장은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대신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가슴이 아린다.

 

살고자 하는 의지. 이것을 한 편의 영화 속에 녹여 내려고 했다. “인생이 안겨주는 슬픔을 안고 살아가려는 의지, 상실을 견디며 살아가려는 의지, 사랑을 품고 살아가려는 의지, 인생의 길을 찾으며,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의지.” 이것은 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내 루스에 대한 사랑은 곳곳에 남아 있다. 시점을 바꿔 루스는 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나는 살아 있다.”라고 말하다. “어둠 속, 깊은 어둠 속에서, 오직 음악과 나뿐이다.”란 문장을 읽고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깨닫는다. 어둠이 오기 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의지는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는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다. 짧지만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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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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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분류를 보니 자기계발서로 되어 있다. 몰랐다. 인문학으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다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소개글을 보니 자기계발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가 자기계발서다. 그런데 재밌게 읽었다. 이전에 아주 재밌게 읽었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때문에 박지원을 다시 보게 되었고, 고미숙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가끔 고미숙이란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착각한 순간도 있지만 최소한 책에서는 이름을 헷갈리지 않았다. 저서 목록 덕분이다. 그런데 이번 책이 자기계발서다. 그것도 청년을 위한 것이다. 이 착각은 잠시 동안 추억에 빠지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회사를 다니다 그만 둔 후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 백수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헌책방을 돌아다니고, 책을 사고, 읽고, 미드와 일드를 열심히 봤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시사회에 당첨되면 영화도 열심히 봤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쉬운 부분 중 하나는 언제 연락 올지 모르는 면접 전화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한 행동이었다.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하루 일과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나태함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는데 집중했다. 그 시간들이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이런 기억이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백수란 단어에 전혀 반감이 없다.

 

개인의 경험은 한계가 분명한 경우가 많지만 특정 사안에서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저자가 주장하는 백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량과 같은 백수가 아니다. 놀기도 하지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보고 읽고 쓰고 말하는 백수다.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소비를 하지만 그 소비를 위한 돈벌이도 한다. 기본소득이나 청년수당 같은 이야기를 중간에 넣었는데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적당한 금액이 주어진다면 청년 백수들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현재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자본 숭배 사상이 많이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같이 갈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4차 산업혁명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과대 포장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는데 이 부분은 개인들이 자신의 현재 위치 등을 관찰하면서 나아가야 할 부분이다.

 

저자는 백수였던 연암과 현대의 비자발적 청년 백수를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속된 말로 금수저 출신인 연암이 왜 백수를 선택했고, 어떤 생활을 했는지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현대의 청년 백수로 넘어와 새로운 백수의 정의가 만들어진다. 이것은 모두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밥벌이와 자존감, 우정, 길의 시대, 끝없는 공부 등이다. 1장에서 청년 연암의 백수 생활을 보여주면서 풀어내는 화폐와 노동에 대한 해석은 새로운 부분이 있다. 특히 노동 해방은 기존의 인식과 완전히 달리 한다. 인공지능 등을 너무 과도하게 해석했거나 당장 일어날 것처럼 풀어낸 부분은 백수를 옹호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해도 과한 부분이 많다.

 

오랜 백수 생활에 친구는 필수적이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지만 가끔 다가오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잊게 만드는 것은 바로 친구다. 그렇게 긴 만남이 아니어도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고,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자기감정에 매몰되는 것을 막아주고, 다른 세계를 엿보게 만든다. 책 속에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고시 등에 올인하는 학생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바로 집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갇힌 공간 속에서 개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돈이 없다면 길을 걸으면서 건강을 도모하고, 도서관에 가서 지식을 함양할 수 있다. 적은 돈으로 여행도 물론 가능하다. 가진 것이 없으니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가벼운가.

 

사실 공부처럼 지겨운 것이 없다. 하지만 돌아보면 공부처럼 재밌게 시간을 보낸 것도 없다. 게임이나 운동의 경우도 먼저 공부가 선행되지 않으면 그 재미가 반감된다. 몰입도도 달라진다. 저자의 말처럼 화폐를 좇는 삶은 힘들고 피곤하다. 꿈과 목적은 삶에 채찍질을 한다. 노력하고 노력하라고. 개인적으로 어떤 거대한 목표나 꿈을 세운 적도 없다. 그냥 하루를 산다.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생각하고, 앞에 놓여 있는 일들에 집중한다. 목표의식이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이 때문에 현실에 더 충실할 수 있다. 이것은 그냥 마냥 퍼져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저자가 끝없이 이야기 하는 것도 움직이란 것이다. 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솔직히 이런 백수 생활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먼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백수가 인류의 미래라는 말에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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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 - 사쿠라 마나 소설
사쿠라 마나 지음, 이정민 옮김 / 냉수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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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마나는 일본 AV 여배우다. 이쪽 문화에 밝은 사람에게는 낯익은 이름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에게는 한 명의 작가일 뿐이다. 내 경우로 한정하면 반반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잘 모르지만 얼굴은 아는 정도랄까. 아마 책 소개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이런 종류의 작가가 소설 등을 내었을 때 그 내용보다 출신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오고, 책이 팔리는 경우도 많다. 그녀의 첫 장편인 <요철>이 하루키의 신작을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 했다는 소식도 괜히 한 번 비틀어보게 된다.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읽은 지금 그 선입견은 사라졌다.

 

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네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가 화자인 것은 아니다. <모모코>의 화자는 <아야노>의 AV기획사 대표 이시무라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각 이야기마다 AV 배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야노, 모모코, 미호는 AV 배우고, 아야코는 AV배우였던 엄마가 낳은 아이다. 앞의 세 여자의 이야기에는 모두 이시무라가 등장한다. <모모코>에서 이시무라가 왜 AV 기획사를 세우게 되었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보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앞 작품 <아야노>와 <미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야노> 속 화자 아야노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부분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쿠라 마나의 삶을 잘 모르기에 단편적인 몇 가지만 가지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전문학교 출신이란 것과 자발적으로 이 세계에 몸을 담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꽤 많은 부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아야노는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언니나 엄마와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녀들과 다른 삶을 선택하고 우연히 AV에 입문한다. 이것이 고향에 알려지고, 일반 직장인을 만나 연애하는 감정을 느끼고,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작가의 작은 바람을 엿본 느낌을 받았다. AV계의 소소한 이야기는 작은 재미다.

 

<모모코>는 아주 예쁜 여자가 아니다. 덧니도 심하다. 그런데 AV 세계로 옮기기 전 이미 에이스였다. 이시무라가 세운 기획사의 첫 여배우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여자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보다 <아야노> 속 인물들의 과거를 엿보고, 이시무라가 어떤 인물인지 더 잘 보여준다. 동업자가 회사 돈을 횡령했을 때 좋은 고기를 산 후 이시무라를 위로하는 모모코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다. 모모코의 일을 두고 질투하는 이시무라와 그를 포근하게 감싸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과 함께 여운을 남긴다.

 

섹스리스 부부가 일본에 많다는 소식을 책이나 방송에서 보았다. 미호 부부도 마찬가지다. 아직 젊은 그 부부 사이에 성욕이 없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아내 미호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있다가 선택한 것 중 하나가 AV계로의 진출이다. 재밌는 것은 남편이 보는 비디오와 잡지를 보고 이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실제 AV 세계에서 이런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 떠오른다. 일과 아내의 역할을 동반하는 그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살짝 궁금해진다.

 

<아야코>는 갑자기 할머니가 된 지에의 시점에서, 아야코의 시점으로 변한다. 엄마 다카코는 한때 AV 배우를 했고, 딸을 낳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할머니 지에의 몫이다. 자라면서 반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그림이 입상하면서 관심을 불러온다. 신상 노출이 되면서 더 외톨이가 된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낸다. 소녀는 자라고, 연애도 한다. 그리고 생부를 만난다. 인생에 불안이 없을 수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어쩌면 자신의 다짐일지도 모르겠다. 덧붙여 나오는 작가 후기는 그녀가 어떻게 데뷔하고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다른 작품도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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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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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인상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토막난 시체와 누군가가 잘린 머리를 들고 사라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1986년, 열두 살 소년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것과 교차하는 현재 시간은 2016년이다. 이 30년의 시간을 더듬어 올라오면서 풀리는 이야기 방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이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구성이다. 앤더베리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1986년에 있었던 사건과 사고들이 시간 순으로 흘러나오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소년 에디가 성인이 되어 그 시간을 되돌아본다. 이 사건들 옆에는 분필로 그린 그림이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아이들 장난 같다. 핏자국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작가는 분필로 그려진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초크맨이란 이름과 교차하는 두 시대는 자연스럽게 잔혹한 살인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오랫동안 스릴러를 읽다 보면 이런 부작용이 가끔 생긴다. 실제 소설 속에서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해서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지 않는다. 3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민들을 공포에 짓눌리게 만드는 살인마도 없다. 단지 과거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숨겨진 비밀들이 놓여 있을 뿐이다. 이 비밀들이 하나씩 풀리면서 순간순간 섬뜩함을 느낀다.

 

십대의 나를 돌아보면 공부에 짓눌려 살았을 것 같지만 딴짓을 더 많이 했다. 혼자 잘난 척도 많이 했는데 돌아보면 멍청하고 유치했다.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허세로 가득했다. 나의 세상은 정말 좁아서 조금만 멀리 가면 다른 도시인 줄 알았다. 이런 십대 중 초반은 조금 더 순진했다. 열두 살 에디와 그 친구들의 행동을 보면서 내가 공감을 한 부분들은 바로 나의 경험과 조금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시대와 나라라는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지만 미숙한 소년들의 행동이 지닌 기본은 역시 변함이 없다. 가끔은 소심한 복수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상 외의 사실들은 바로 여기서 비롯한 것들이다.

 

소설 속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건은 당연히 프롤로그에 나오는 한 소녀의 죽음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가 놀이기구가 고장나면서 외모도 신체도 손상을 입은 일라이저가 바로 그녀다. 많이 다루는 방식 중 하나가 일라이저의 과거를 파헤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인데 이 소설에서 일라이저의 삶은 지엽적인 사실 중 하나일 뿐이다. 오히려 분필로 그린 그림들이 더 강한 인상을 준다. 과거에 이 분필 그림은 친구들끼리의 장난이거나 암호문 같은 것이었는데 현재에는 하나의 암시처럼 다가온다. 이 분필 그림이 잊고 있던 30년 전 과거의 비밀문을 연다. 그 문 안에는 추악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다.

 

살인 사건과 죽음 몇 개를 빼면 한 소년의 성장 소설과도 같다. 킹의 소설 중 <스탠 바이 미>와 분위기가 비슷한 대목도 있다. 물론 다른 장면은 <샤이닝>을 떠올려주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1986년의 에디가 겪는 일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가 살아온 동안 그 마을에서 일어난 가장 자극적인 사건들이 그 한 해에 일어났다. 놀이 기구가 고장 나 한 소녀가 크게 다치고, 다시 그 소녀가 토막 살해당한다. 낙태를 반대하는 목사가 죽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한다. 한 소년은 자전거를 건지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는다. 이 모든 사건들이 에디와 연결되어 있고, 이 죽음 이면의 진실이 30년의 시간이 흐른 후 하나씩 밝혀진다,

 

가독성이 좋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비밀을 소재를 하나씩 엮어가면서 이야기를 잘 만들었다. 현재의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에디는 실수를 몇 번 저지르지만 ‘예단’을 경고하면서 진실에 다가간다. 하나의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겉에 드러난 모습보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보통은 그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한다. 선입견과 편견이 사실을 파고들고 직시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은 토막 살인 사건을 다루는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그 진실이 드러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30년이다. 이것도 과거를 파헤쳐 돈을 벌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가끔 나쁜 의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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