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맨
김펑 지음 / 마카롱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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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시를 준비한 적이 없다. 공무원 시험도 준비한 적이 없다. 하지만 신림동과 노량진은 자주 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는 선후배가 그곳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사시나 공무원 시험이나 CPA 시험을 준비했었다. 그 중 몇 명은 합격했고, 그 나머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장면들이 그들이 모습과 겹쳐 보였다. 요즘 불안정한 사회 환경 속에서 공시생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 소설은 사시를 준비하는 6수생 현우를 통해 그 시절 삶의 풍경과 그들이 가졌던 희망과 집착을 보여준다.

 

고시맨. 현재 우리는 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어벤져스와 저스티스리그만 해도 얼마나 많은 맨들이 나오는가. 솔직히 말해 나도 이런 맨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고시맨이라니! 뭐지? 또 미스터 앤서는 또 뭐야? 신림동 고시촌을 다룬다고 하길래 쩐내 나는 고시생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작가는 신림동 고시촌에 영혼이 묶인 고시생들을 도와주는 고시맨과 그에 대적하는 미스터 앤서라는 설정을 통해 그 시절, 그 동네의 삶을 들여다본다. 밖에서 제3자가 그들을 볼 때 불쌍하고 미련하다. 하지만 합격자가 나오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희망이 싹틀 때 그들의 영혼과 삶은 그곳에 더욱 강하게 묶인다.

 

표지와 고시맨이란 설정만으로 이 소설이 아주 무거울 것이란 예상은 하지 않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먼저 했고, 일정 부분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속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액자 구성인데 이 둘은 나중에 하나로 이어진다. 읽으면서 나의 시선을 강하게 끈 것은 고시맨이나 현우가 발견한 노트 속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미스터 앤서다. 어느 날 나타나 고시촌의 희망 전도사이자 하나의 아이콘처럼 자란 그의 모습은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다. 아쉬운 것은 작가가 이 미스터 앤서의 존재를 부각시키기보다 오히려 축소한 것이다. 그의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과 몰락은 약간 뜬금없는 느낌이다. 신림동 고시촌의 허상과 환상을 보여주려고 한 것일까?

 

현우가 주인공이다. 그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그의 원래 희망은 오지 여행가다. 부모의 기대가 그를 고시원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처음과 달리 이후의 삶은 그가 스스로 그곳에 자신을 묶는다. 몽유병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망과 현실의 집착이 충돌한 결과다. 성문고시원 총무 안선주는 권력의 대리자로 현우를 괴롭히는 악당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바로 <IQ350>이라는 노트 속 이야기다. 한 인물의 간단한 인생사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결국 고시맨의 탄생을 다룬 비록이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다.

 

합격에 목을 매고, 합격의 희망을 놓지 못하는 고시생에게도 자살의 위험은 존재한다. 이 소설에서 세 번 정도 나오는데 이때마다 고시맨이 출동한다. 그 극단적 선택은 희망 고문이 자신을 밀어붙일 때 일어난다. 희망의 끝은 절망이다. 자신이 진실로 바란 선택이 아니기에 이 희망은 더욱 힘들다. 현우의 몽유병도 그렇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 고시맨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나의 동네 전설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그는 존재한다. 위험한 순간 나타났다가 누군가를 도와주고 사라진다. 아미고 고시원의 존재가 그것을 증명한다.

 

어떻게 보면 무겁고 어둡기만 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작가는 이 무거운 현실을 가볍고 재밌는 글로 풀어내었다. 덕분에 단숨에 읽을 수 있다. 고시원에서 쫓아내려는 총무와 그곳에 버티려는 302호 현우의 대결이 숨겨져 있던 이야기로 분위가가 바뀔 때 조금 무거워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무거움을 계속 안고 갈 마음이 없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내용이 에필로그다. 고시 밖의 삶을 보여주고, 다른 선택이 진짜 자신이 원한 선택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작은 바람이 작은 날갯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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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말로 사랑을 했다
조성일 지음, 박지영 그림 / 팩토리나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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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한 이야기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몇몇 이야기를 읽자마자 사라졌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나 아름다움 대신 안타까움과 자책 등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누구나 헤어진 후에는 그 사랑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상황에 따라 그 감정들을 추스르게 된다. 그 사랑이 아름다웠고, 강렬했을수록 그 감정은, 여운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사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한 여자에 대한 사랑 후 이별만 다룬 것이란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가 풀어내는 감정들이나 이별의 말들이 바뀌기도 했기 때문이다. 먼저 이별의 말을 들은 적도 있고, 그가 먼저 내뱉은 말도 있다. 만약 이것이 남녀의 감정을 다루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면 조금 불친절한 편집이다.

 

사랑한 사람과 이별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바로 새로운 사랑을 쉽게 찾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한동안 그 아픔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함께 걸었던 길을 홀로 걷다가 울컥하기도 하고, 함께 들은 음악이 나오면 자신도 모르게 그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감정들은 어쩔 수 없는 자연적인 반응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 이별을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글들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아픈 시간을 지난 후 돌아보면 한때의 추억이지만 그때는 그 무엇보다 가슴이 아프다.

 

내가 지나온 시간이라고 남들도 같이 지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몇 글들은 나의 감정과 이성에 반발을 불러온다. “마음에도 없는 말이 마음보다 먼저 나갔다.”라고 했을 때 ‘과연?’이란 의문을 달게 된다. 자신의 무의식 속에 이런 감정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감정 깊숙한 곳을 들여다봐야 한다. 말실수의 대부분은 이런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 아주 현실적인 말도 나온다. “우리는 서로 정말 좋아했지만 결정적으로 맞지 않았다.” (중략) “결국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행복인데, 너와 함께라면 그 한계가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정말 좋아했지만’이란 표현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없다. 그 정도의 관계였다는 의미일까?

 

우리가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때론 다른 이의 생각보다 읽기 어려운 것이 내 마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라는 문장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잘못된 예측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잘못 읽은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만큼 혼자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우린 가끔 이 단순한 사실을 잊는다. 지나간 후에 알게 되는 수많은 사실들 속에 쉽게 놓치는 일상의 한 모습이다. 작가는 두 번째 에세이 속에 이별 후 이야기를 잔뜩 풀어놓았다. 그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공감할 수 없는 부분도 역시. 이런 글들 속에서 결국 찾게 되는 것은 사랑이다.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거나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거나 상관없다. 제목처럼 남녀는 자신의 말로 사랑을 말하고, 그 속에서 오해를 키우고, 현실의 높은 벽들이 둘을 갈라놓는다. 지나간 사랑은 그 사랑의 깊이만큼 추억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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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이혼 1
모모세 시노부 지음, 추지나 옮김, 사카모토 유지 원작 / 박하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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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한때 미친 듯이 일드에 빠진 적이 있다. 화질도 좋지 않았던 그 드라마들을 얼마나 재밌게 열광하면서 봤던가. 그러다 시간이 부족해지면서 보는 편수가 하나 둘 줄었다. 마지막으로 본 일드는 사실 생각도 나지 않는다. 몇 년은 된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 본 일드는 머릿속에, 가슴속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일본 특유의 멜로나 코미디나 추리물 등은 나의 취향과 잘 맞았고, 가끔 그 당시 본 드라마가 리메이크될 때는 반가웠다. 동시에 과연 그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많은 경우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이번 <최고의 이혼>도 일본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린 드라마다. 물론 보지 못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소설화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미쓰오와 유카, 아카리와 료, 이 커플들을 보면서 예전에 본 일드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가상의 비현실적 이야기를 엮어 풀어내는데 솔직히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일드 <최고의 이혼> 속 등장인물들을 찾아봤다.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맞는 인물도 있고, 책 속에서 그린 이미지와 다른 인물도 있었다. 이 등장인물들을 보고 한국에서 리메이크되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과 연결하게 되었다.

 

미쓰오를 차태현이 맡았다. 첫 몇 쪽을 읽었을 때는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 차태현이 료 역할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배두나의 유카는 그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대충 맞아 들어간다. 다른 두 배우는 솔직히 잘 몰라 내가 평을 내릴 수 없다. 그나마 얼굴을 알고 있는 이엘은 좋은 캐스팅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미쓰오가 다시 아카리를 만났을 때 보여준 반응 때문일 것이다. 이엘이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하지만.

 

1권만 읽었고 이야기의 중반까지 진행된 상태라 드라마를 본 사람들의 평을 머릿속에 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빠른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진행은 소설화 작업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미쓰오의 불평불만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투덜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는 영업사원이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한다. 아내 유카에 대한 불만을 터트리는데 이것은 그들의 삶과 생각의 방식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홧김에 둘은 이혼서를 써놓았고, 서류상 이혼한다. 한국보다 참 이혼하기 쉬운 나라라는 사실을 다시 느낀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이혼했지만 현실적인 몇 가지 문제 때문에 같은 집에 산다. 물론 잠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 규칙을 만든다. 그리고 이 둘이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이 나온다. 우리에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더 잘 알려진 동일본대지진 당시 불안감이 둘을 묶었다. 이후 이들이 느낀 감정은 서로 다르다. 유카가 표현하는 미쓰오에 대한 감정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 그 자체다. 유카가 미팅에서 만난 남자를 만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표현하는 것들도 아직 감정이 남아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1권에서 더 많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카리와 료 부부다. 미쓰오는 아카리와 사귄 적이 있는데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최악의 남친이었다. 물론 다시 만났을 때 미쓰오는 이 사실을 몰랐다. 문제는 료다. 잘 생긴 미대 교수인 그에게는 여자들이 많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다고 하지만 그의 공허한 매력에 여자들은 빠진다. 드라마 속 배우를 보면 약간 의문이 들지만 그것은 남자인 나의 입장일 뿐이다. 료의 바람기는, 공허함은 불안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결혼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법률상 둘은 부부가 아니다. 이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 미쓰오와 유카 부부가 휩쓸린다. 이 또한 일본 드라마에서 자주 본 설정이다. 이제 이들의 관계가 꼬이고, 묶이고, 풀리는 과정이 남았다. 과연 어떨지? 한국 드라마는 또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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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주 가는 길 - 사진가 김홍희의 다시 찾은 암자
김홍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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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홍희의 포토에세이다. 2년에 걸쳐 모토사이클을 타고 다니면서 암자 26곳을 찍고 기록했다. 사찰 이름을 보면 낯익고 가본 절도 상당히 있다. 하지만 암자로 한정하면 가본 곳이 없다. 어쩌면 한두 곳 정도 둘러봤을지 모르지만 기억에 남는 암자가 없다. 그리고 최근 내 마음 속에 가장 가보고 싶은 암자 한 곳이 나와 눈길이 갔다. 여수 향일암이다.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가 손에 꼽은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곳이었던 남해 보리암보다 좋은 평가를 내렸다. 그 평가라고 해봐야 한번 가볼만 한 곳 정도였지만.

 

기독교 신자인 그가 불교 사찰 등을 찍게 된 인연을 설명한 부분은 재밌다. 일 때문이지만 시간과 관계가 쌓이면서 불교와 예수에 대한 이해의 폭은 오히려 넓어졌다. 단순히 이 책만 보면 그가 크리스천이란 사실이 믿기질 않을 것이다. 오다가다 만나고, 여기저기에서 들은 몇 가지 지식이라고 해도 그 깊이가 예상을 넘는 곳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물론 이 깊이가 너무나도 낮은 나의 관점에서 본 것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색이 빛이고, 공이 그늘이란 대목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가 나에게 다시금 다가왔다.

 

스물여섯 암자를 찍었는데 모두 흑백사진이다. 컬러 사진만 보다 이런 흑백사진을 보면 느낌이 조금 색다르다. 전문사진가가 아닌 내가 구도를 잘 알지도 못하니 얼마나 잘 찍었는지 알 수 없다. 흔히 보는 반듯한 사진은 아니다. 이 사진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이야기 속에 잠시 녹여내었는데 시간의 흐름 속에 생각의 흔들림이 조금씩 보인다. 예술로서의 사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데 이것은 단순히 기술을 넘어선 부분이다. 시간과 공간을 한순간 포착해 셔터를 누르는 그 작업은 감안해야 하는 것도 많다. 거기에 자신의 철학도 담아야 한다. 아직 그 단계를 알 정도의 수준까지 내가 나아간 것은 아니다.

 

많은 사진들 속에서 나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은 것은 향일암에서 찍은 바다 사진이다. 빛과 그림자, 바다와 햇살, 그 눈부심을 흑백이란 색대비로 포착했을 때 단순히 눈부신 바다가 아닌 색다른 바다로 내게 다가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도는 다양한 문양을 보여주고, 높고 낮은 파도는 질감을 드러내었다. 무심코 보다 그 강한 인상에 계속 들여다보게 되었다. 다른 사진들도 빛을 통해 사물의 다른 모습을 포착하고, 원근법으로 사물의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흔히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잘 놓치는 모습들이다. 절에 갈 때 일반 관광객들이나 참배객들이 눈여겨보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많은 암자를 다니다보니 많은 스님들과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다시 찾아오다보니 옛 스님이 선종하신 경우도 있다. 이런 만남과 기억들은 그의 글 속에서 하나의 추억이 되고, 그 암자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하게 만든다. 최근 절 입구에서 생기는 주차 문제도 잠시 다룬다. 욕망을 벗어던져야 하는 절 아랫마을은 그 욕망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커피 좋아하는 스님이 오토바이 뒤에 타고 다방에 가서 일곱 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는 에피소드에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얼마나 질기고 강한지 살짝 엿본다. 더불어 나의 욕심도 같이 잠시 돌아봤다.

 

사실 김홍희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은 한 팟캐스트 때문이다. 그곳에 나온 그의 입담과 이 책을 생각하면 잠시 괴리감이 생긴다. 그 당시 그의 이름을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고 대부분 절판인 것을 봤고, 중고가가 상당히 높은 것에 깜짝 놀랐다. 이 사진가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하고. 그리고 그가 팟캐스트에서 한 말 때문에 착각하기도 했다. 우매한 중생이 자신이 듣고자 하는 말만 들은 것이다. 이렇게 쌓인 기억들 속에서 사진과 글로 다시 만난 그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잘 아우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가 암자를 다시 찾은 것처럼 나도 언젠가 절에 가면 암자로 발걸음이 옮겨질지 모르겠다. 그때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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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8-10-2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팟 캐스트 들었는데 재밌는 분이신 것 같더라구요. 책은 어떨지 궁금.. 향일암은 제가 갔다 온 2-3년 정도 후에 불에 타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울 정도로 아쉬웠던, 그만큼 좋았던 곳이네요. 다시 복구한 듯 하니 시간 되시면 꼭 다녀오시길요!
 
코하루 일기
마스다 미리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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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마눌님의 십대 이야기가 가끔 떠올랐다. 아마 이 글을 쓴 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할지도 모른다. 잠시 자신의 소녀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길 바라면서. 다른 시대와 나라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공통점이 별로 많지 않겠지만 십대 소녀라면 공감할 부분들이 많을 것 같다. 만화고, 분량이 많지 않아 공감하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전의 경험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한국 중년 남성의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코하루의 생각 중 몇 개는 십대의 나도 한 것들이다.

 

마스다 미리. 한때 카페 등에서 그녀의 이름을 자주 봤다. 덕분에 마일리지 등으로 몇 권을 사놓았다. 늘 있는 일이지만 그냥 묵혀뒀다. 만화의 경우 금방 읽을 수 있는데도 다른 책 때문에 뒤로 밀렸다. 사실 책을 살 때만 해도 이 작가의 작품이 어떤 성향인지 몰랐다. 그 당시는 한참 장르 문학 등에 빠졌고(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런 일상의 소소함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다. 아마 여성 독자들의 칭찬에 무턱대고 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과부터 말하면 그때 산 것이 잘 한 행동이지만 한동안은 그때 사지 않은 다른 책들이 더 아쉬웠다.

 

기억이 맞다면 처음 읽었다. 기억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예전에 읽었던 만화나 에세이에서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스다 미리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미리를 ‘마리’로 기억한 적이 대부분이다. 아마 잘못된 이름의 기억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다. 계속해서 이 미리의 책을 읽고 이름을 고치지 않는다면. 그런데 이 작가의 책이 나왔다고 하거나 서평이 올라오면 찰떡같이 알게 된다. 이것만 보면 이름 난독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잘못 읽고, 잘못 불러 큰 실수를 자주 하는 편이다 보니.

 

소개글에서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모두가 지나왔지만 이미 잊어버렸던 바로 그때 그 시절 우리 모두의 이야기’란 문구다. 남자인 내가 십대 소녀의 기분과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마는 나도 십대를 거쳤지 않은가. 작가의 십대 시절을 엿보고 싶은 마음과 지금 십대의 생각을 알고 싶은 마음에서 읽기 시작했다. 코하루 일기를 시작하는 대목에선 한때 열심히 일기를 쓴 나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 일기장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알 수 없고, 예전에 다시 읽었을 때는 몇 가지 단어 등은 전혀 알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알 수 있으려나? 하지만 코하루의 일기는 그 시대만의, 그녀들만의 용어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다.

 

열다섯 소녀가 고등학생을 지나 스무 살 전날 밤까지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내용들은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 이야기다. 하나의 키워드를 정하고 그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간결한 그림으로 표현했다. 솔직히 말해 잘 그린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부족한 그림을 내용이 충분히 채워준다. 예전에 이런 그림이 별로인 만화를 싫어해 읽지 않았다가 내용에 반해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림보다 내용에 더 눈길이 간다. 물론 내용에 빠져서 그림의 훌륭함을 잊는 경우도 있다. 뒤늦은 감탄을 자아낸 적이 적지 않다. 언젠가 마스다 미리의 그림을 보고 감탄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살짝 엿보기와 공감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왕따 이야기에 놀란다. “이야기 중에 갑자기 시작되는 이곳에 없는 아이의 ’단점 이야기‘. 가벼운 시작이 예기치 못한 왕따로 발전한다는 것. 학교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배운 것.“ 놀랍고도 슬픈 현실이다. 이런 성찰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코하루의 상상은 학교와 교육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어른이 만든 것을 받았을 뿐이야.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어.“ <5교시>의 상상은 그냥 상상만은 아니다.

 

“엄마는 엄마로만 있어주면 돼. 왜냐면 엄마는 나랑 언니만의 엄마니까.” 이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마음 뒤의 현실을 알고 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고, 그녀도 한 명의 여자이고 싶다는 것을.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깨닫는 수많은 부모의 모습들 중 하나다. 읽다 보면 이 생각을 십대에 했던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있다. “아빠와 엄마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고. 언젠가 아빠랑 엄마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가족’의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지”라고 언니가 있어 다행이란 표현에 덧붙인 내용이다. 남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릴 때 추억 이야기를 많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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