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성역 1 - 노아즈 아크, Novel Engine POP
카지오 신지 지음, toi8 그림, 구자용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지구의 멸망을 소재로 한 SF소설이다. 작년에 읽었던 <세븐 이브스>가 하드SF라면 이 작품은 SF 판타지에 더 가깝다. 지구의 선택 받은 3만 명을 태운 세대 간 우주선 노아즈 아크나 성간 전이 기술을 이용한 점프 등은 현실적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가가 관심을 둔 것은 이런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제목에서 나온 것처럼 지구를 버리고 몰래 떠난 미합중국 에디슨 대통령 외 3만 명과 이들을 저주하면서 위험한 기술인 점프를 통해 약속된 별로 온 인류의 갈등이다. 아직 이야기의 도입부에 불과하다보니 이 갈등을 극한으로 몰고 가지 않았지만 점프한 인류는 이것을 단결의 동력으로 삼는다.

 

이야기는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당연히 점프한 사람들의 생존이다. 172광년 떨어진 약속의 땅으로 인류의 70%가 점프한다. 이 기술을 쉽게 이해하려면 스타트랙의 한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무려 172광년이다. 자세한 과학으로 들어가면 거의 불가능하다. 별이 고정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물리적 거리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 소설에서 이런 과학적 가능성은 덮어놓고 가야 한다. 대신 이 점프를 통해 정상적으로 도착한 인류가 소수라는 설정과 이들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작가의 상상력은 여기서 과학보다는 판타지에 더 알맞음을 잘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노아즈 아크에 딴 인류다. 에디슨 대통령의 딸 나탈리와 그녀의 연인 이안 애덤스의 로맨스나 노아즈 아크에서 일어나는 일 등은 현실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인류를 버리고 몰래 떠난 선택 받은 인류의 고민이나 폐쇄된 공간 속의 삶, 계급 차이 등은 그 속에 살고 있는 계층들의 시선을 풀어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이들은 태양의 플레어 확장에 따른 지구의 소멸을 사실로 믿는다. 처음에는 영상 조작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을 우주선에서 관측한다. 이때 에디슨 대통령이 보여주는 모습은 아주 이중적이다. 세대가 지나면서 이야기는 우주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으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지구에 남은 사람들 이야기다. 당연히 작가가 다루는 국가와 사람은 일본이다. 인류의 70%가 점프한 후 남은 이들은 갑자기 바뀐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해피엔드라는 독약으로 자살도 가능하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서로 돕고, 사랑하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버섯 따기와 자연 속으로 여행에서 지구를 파괴하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인구 과밀화 문제가 해결된 지구의 놀라운 재생 속도를 보여준다. 이런 풍경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을 가지고 자살 여행을 온 사람도 있고, 이들의 죽음을 보고 다른 미래를 꿈꾸는 사람도 생긴다. 마지막 장면은 일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점프한 인류는 정보가 정말 불충분한 행성에 떨어졌다. 인류의 70%가 떠났지만 실제 도착한 인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점프한 곳에서 나무 등과 결합할 수도 있다. 이 과학 기술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점프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원시적인 도구를 만들고, 자신들이 살았던 문명을 다시 일구고자 한다. 하지만 자원이 너무 한정적이다. 다행이라면 중력이나 대기 상태가 지구와 같다. 이런 세부적인 과학 문제는 실제 이 소설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 미지의 존재와 싸우고, 공동체를 구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특히 미지의 존재인 스나크 사냥은 SF판타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작가의 설정 중 하나인 다른 지역으로 점프한 사람들 사이의 만남은 후반부의 재미다. 서로 오니와 식인이라 부르면서 경계하는 모습은 정보의 부재와 공동체의 결속이란 문제를 동시에 보여준다. 점프할 때 인류가 가지고 온 씨앗에 따라 경작할 농작물이 정해진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살다 보니 공용어란 것이 만들어진다. 아직 한 세대 밖에 진행되지 않아 그 경계가 멀지 않다. 도구 등을 보면 원시 공동체에 가까운데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설정도 살짝 끼워 넣었다. 다음 이야기에서 어디까지 점프한 인류가 나아갈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세 곳의 사람들 이야기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는 같다.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는 행복과 희망이다. 다음 이야기에서 이 두 인류가 만난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들의 과학 기술 차이가 어느 정도일지, 노아즈 아크에 대한 복수심은 세대를 지나면서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빨리 다음 권이 나오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나다 - 허균에서 정약용까지, 새로 읽는 고전 시학
정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 후기 여덟 시인의 시론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책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허균,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을 넘어 이용휴, 성대중, 이옥까지는 알겠지만 이언진은 낯설다. 이 낯설음 탓인지 아니면 다른 시인 이야기에서 많이 나왔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시가 많이 나온다. 시론을 다루면서 시인의 시가 한 편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정민의 글에 의하면 요절한 천재 시인이다. 아직도 시를 잘 모르는 나를 생각하면 이언진의 시가 지닌 매력을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시론들은 모두 ‘나’다.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목소리로 낸다. 이 중에서 제일 이 부분을 강하게 표현하는 인물이 이용휴고, 정약용으로 넘어오면 원론적인 인간 공부로 넘어오면서 더 딱딱해진다. 책 전체가 분량이 많지 않고, 한 시인의 시론을 간략하게 다루다 보니 진중하게 앉아 집중하면서 읽어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시인의 시론 원문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저자의 이해로 풀이하는 방식이다. 이전 같으면 원문의 한자를 조금 해석해보려고 노력을 했을 텐데 점점 이런 노력이 사라진다. 당연히 한자 실력은 퇴보한다.

 

시 책을 읽다 보면 여덟 시인의 개성들이 간간히 보인다. 나이와 신분의 차이를 감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언진이다. 역관에 비교적 젊은 그가 박지원의 호된 비평에 폭사했다는 글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그의 울분을 조금은 이해한다. 그의 시가 지닌 재능을 염려한 선배의 에두른 비평이 그를 힘들게 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사후 왜 그런 평가를 했는지 따로 글로 지었다는 것을 보면 선배들이 그의 죽음을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아내가 그가 불 속에 던진 원고를 일부 건졌다는 이야기는 재밌는 에피소드다.

 

이용휴가 ‘나는 나다’라는 제목을 만들었다. 자신의 시를 짓겠다는 시인들의 시론을 읽다 보면 결국 그들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덕무와 박제가의 이야기는 서로 대비된다. 어린이와 처녀처럼 시를 짓고 싶은 이덕무의 순실함과 문체반정에 살짝 반격하는 박제가의 글은 개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성대중이 이언진의 병문안했을 때 부귀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사실 이 부분은 자신들의 생각을 토론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옥이 남녀의 정을 다룬 <이언인>을 내면서 고금의 시 형식들을 끌고 와 풀어낸 것은 그 시대의 완고함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정약용의 시는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이 한 편 있다. 전문은 아니지만 그 시대의 풍경을 잘 대변하는 그 유명한 <애절양>이다. 학창 시절 한문으로 이 시를 풀이해줄 때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강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어릴 때는 화려한 수식어에 눈길이 갔는데 이제는 그 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더 마음이 간다. 며칠 전 읽었던 백석의 시를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남북 분단 이후의 시들을 보고 얼마나 실망했던가.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자신만의 표현으로 시를 지을 때 그 시가 더 빛나고 진정성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책은 나 자신이 좀 더 공부하고 읽는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러드맨 모중석 스릴러 클럽 45
로버트 포비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아주 흉악하고 잔인하고 폭발적이다. FBI 특별수사관 제이크 콜의 아버지 제이콥은 미국 현대 화단의 천재였다. 그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기에 30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죽은 엄마를 생각해서 돌아온 것이다. 그가 왜 아버지를 혐오하는지는 그가 집을 떠난 후 겪어야 했던 아주 처참했던 삶을 말할 때 잘 드러난다. 아버지의 전용 화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아버지의 말 때문에 거절당했던 기억은 그 후 삶과 이어진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그의 빈 시간들을 다룬 소설이 나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제이크가 아버지의 집에 온 그때 아주 끔찍한 일이 둘 벌어진다. 하나는 산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살해당한 엄마와 아들이고, 다른 하나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태풍 딜런이 다가오는 것이다. 딜런이 다가오면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제이크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가공할 태풍이 만들어낼 풍경과 그 위험 속에서 분노와 두려움을 가진 채 단서를 찾아다니는 제이크 등의 모습은 긴박감을 높여주는 최고의 장치다. 거대한 군용 차량이 태풍과 파도에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여줄 때 혹시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가공할 태풍이 그 참혹한 사건을 언론의 시야에서 잠시 사라지게 만든다.

 

제이크가 휴가를 내어 돌아온 고향에서 다시 업무로 복귀한 것은 모자 살인 사건 때문이다. 그가 현장에서 보여준 놀라운 능력은 살인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의 재현을 읽다 보면 너무 잔혹해서 할 말이 없다. 인간의 잔혹한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장면에 거부감이 든다. 왜 다른 독자들이 욕을 했는지 알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어머니 미아 역시 이렇게 죽었다는 것이다. 30년 만에 그 당시의 살인이 재현된 것이다. 그리고 살가죽이 벗겨진 모자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니 엄마와 아들인지도 불분명하다.

 

이 이야기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은 보안관 하우저다. 그는 음주 운전자에게 아들은 잃은 적이 있다. 제이크의 친구 스펜서가 경찰이 된 이유도 하우저다. 그가 술 먹고 운전했을 때 감옥에 넣지 않고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준 것에 감동했다. 이런 인품을 지닌 하우저지만 이런 사건은 처음 겪는다. 아니 누가 이런 일을 겪어봤겠는가. FBI의 노련한 수사관들이 아니라면, 아니 그들이라도 이런 사건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건 현장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실수들은 제이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제이크의 경험은 하우저가 이 사건을 보도하는데 도움을 준다.

 

천재 화가 제이콥이 보여준 기행과 공포는 의혹을 더하고, 미지의 존재를 두렵게 만든다. 그가 잠시 정신을 차린 후 병원 벽에 그의 피와 탄 뼈로 그린 그림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속물적인 나는 그 그림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제이크가 상상하는 가격을 보면서 작가의 전직을 떠올리면서 다시 한 번 더 놀란다. 더불어 이 그림 속 존재가 무엇일지,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아버지가 작업한 수많은 작품들의 이미지가 만들어낼 것의 정체는 또 무엇일까? 그의 두려움이 커질수록 그의 정체가 의문을 더한다.

 

이 위험하고 겁나는 곳에 제이크의 아내 케이와 아들 제러미가 온다. 모리아티란 별명을 좋아하는 아들은 어느 날 버디맨이란 존재를 만났다고 한다.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 것이지? 빨리 사건을 해결하거나 이 모자를 돌려보내야 한다. 내 마음은 그들을 위험에서 떠나게 하고 싶다. 그리고 제이크에게는 한 가지 질병이 있다.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를 심장에 달고 있다. 딜런은 전기를 품고 있다. 이 때문에 몇 번이나 그는 정신을 잃는다. 아내와 아들이 사라진 순간에도 딜런의 전기가 그를 위협했다. 그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점점 거세지는 딜런의 모습과 엮이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과연 어떻게 될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고백부터 하자. 사실 이 책의 중반까지 읽고 맨 뒷장을 힐끔 봤다. 그때 본 이름은 이후 더 읽으면서 그 인물의 행동과 표현에 신경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만약 읽지 않았다면 범인의 정체를 좀 더 유연하고 쉽게 추론했을 텐데 이 이름을 먼저 보면서 의식이 그쪽으로 흘러갔다. 혹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마지막 장은 끝까지 읽을 때까지 참으로라고 말하고 싶다. 뭐 나처럼 읽어도 그 끔찍한 반전에 놀라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들을 읽으면서 앞에 벌어진 사건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아주 멋진 서술 트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텨댜 : 알 수 없어 두렵지만, 알 수 없어 재밌는 내 인생
텨댜 지음 / 북치고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인스타그램에 연재되었던 작가의 만화를 묶은 책이다. 시작을 보면 그냥 할 일이 없어 시작했다고 하지만 학창 시절에도 그림 그리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 물론 그 시절 좋아하고 그렸다고 해서 나이가 든 지금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은 쉽지 않다. 스웨덴에서 남자 친구와 살던 시절 할 일을 찾다가 실패했던 이야기를 보면 나의 삶과도 닮아 있다. 너무 쉬운 포기, 뒤로 미룬 것 잊어버리기 등.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텨댜는 그림을 꾸준히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다. 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위해 그녀가 어떤 노력을 기우렸는지 뒤에 가면 나온다. 하루 5시간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이 꾸준함은 정말 대단하다.

 

케빈과 함께 살던 시절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학창 시절, 워킹홀리데이, 배낭여행, 알바 당시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읽다가 유머 코드가 다르거나 세대 차이 등의 이유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크게 웃게 되는 에피소드도 참 많다. 텨댜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의 20대와 30대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나 자신도 마이 웨이로 살았지만 많은 부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기 때문이다. 아마 초반부터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수없이 경험하는 외모 지적 부분에서는 나 자신도 할 말이 없다.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그런 대상 중 한 명이다.

 

이 만화들에서 가장 좋은 점은 역시 솔직함이다.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솔직하게 표현한 부분들이 많다. 자기 삶의 경험을 알려주는 부분에서는 조금 재미가 떨어졌지만 디테일한 곳에서 소소한 재미가 꾸준히 생긴다. 장기 배낭여행을 한 탓인지 아니면 친화력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외국인과의 만남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앞 단어만 기억하고 다음 문장들은 그냥 배경 소리로 들렸다는 이야기는 결코 남 이야기가 아니다. 영어 꿈나무 19년차란 표현이 너무 절실하게 와 닿는다. 나는 도대체 몇 년 차인가? 그래도 텨댜는 케빈과 살면서 영어로 싸울 정도(?)는 되지 않았던가. 그 이후 영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성 씨를 둘러싼 에피소드의 경우 실제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빵 터지다니. 한국 응 씨의 실체를 아는 순간 웃음과 함께 나의 무지했던 순간도 같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운전면허증 에피소드는 기대와 의문과 실망으로 이어지는데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반전처럼 이야기가 이어졌다. 머릿속을 지나간 예상 이야기 중 어느 하나 맞지 않았다. 이런 의외의 반전들도 곳곳에서 펼쳐진다. 발리에서 자신을 알아 챈 독자를 닦달하는 모습은 과음과 초보 인기인의 흥분이 만들어낸 작은 이야기다. 혹시 내가 외국에서 작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피해야할 것 같다. 내가 텨댜처럼 작가에게 이런 저런 말을 주절주절할 수도 있으니까.

 

만화의 반 정도는 케빈과의 살던 시절 이야기고, 나머지는 한국에 살던 시절과 워킹홀리데이와 여행 중 이야기다. 앞부분이 알콩달콩하고 자신을 알리는 에피소드였다면 뒤로 가면서 교훈적인 경험담들이 나왔다. 중간중간 경험담들이 재밌게 풀려나오지 않았다면 흔한 선배의 경험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텨댜의 인스타그램을 본 적이 없어 몰랐지만 한동안 슬럼프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을 이겨내고 계속 그렸다는 점에서 박수를 치고 싶다.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놀면서 생각나는 걸 그린다고 하지만 이런 꾸준함은 결코 쉽지 않다. 세상에서 제일 알찬 한량이 되겠다는 말에는 고개를 절로 끄덕인다.

 

많은 등장인물들이 있지만 가장 꾸준한 인물은 둘이다. 한 명은 당연히 케빈이고, 다른 한 명은 가영이란 친구다. 가영과의 만남과 함께 여행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는 가영의 캐릭터 때문에 더 빛난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녀의 블로그 표현은 너무 차이가 난다. 미남에게 끌리는 그녀들의 모습에 미녀에게 끌렸던 내가 보였다. 목차를 보다 거울의 배신이란 이야기를 떠올리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 이야기다. 음식 이야기도 내 이야기다. 한 번 사는 인생 열심히 노는 한량을 꿈꾸는 텨댜를 응원하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난골족 : 백석 시전집 한국문학을 권하다 31
백석 지음, 김성대 추천 / 애플북스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석 시전집이다. 시인 김성대가 쓴 서문을 제외하면 백석의 시만 실려 있다. 마지막에 실린 연보도 아주 간결하다. 백석을 잘 모르는 독자라면 이 시집만으로 그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백석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미 많이 들었다. 그리고 몇 편의 시도 읽었다. 다행이라면 제대로 그의 시들을 읽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읽기 전 들어서 알고 있던 그 느낌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몇 번이나 느꼈다. 왜 그들이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 알게 되었다. 또 왜 그의 남쪽 여행 속에 담긴 의미를 다시 한 번 더 찾아보게 되었다.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3부까지는 분단 이전의 시들이고, 4부와 5부는 북한에서 쓴 시들이다. 연보를 보면 첫 시집 <사슴>을 제외하면 출간된 시집은 없다. 북한에서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내었다고 한다. 이번 시 전집을 읽으면서 솔직히 4부와 5부는 많은 거부감을 느꼈다. 이전 시들에 비해 훨씬 규격화되고 알기 쉬운 단어들이 나와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조국, , 수령에 대한 찬양이 너무 많이 들어가 그의 시로 다가오지 않았다. 시의 영혼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연대와 혁명을 노래한 80년대 한국 노동시에서 본 열정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당과 수령을 찬양하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서정주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소위 말하는 이북 사투리가 많은 시들이다. 사투리를 쓰는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 거부감이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낯선 단어들이 너무 많다. 처음 읽을 때는 이 낯선 단어들 때문에 외국어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석을 읽고 다시 읽으면 시들이 보여주는 풍경들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표제작 <여우난골족>은 개인적으로 이 시대 가족들의 모임을 잘 보여주었다. 어릴 때 명절날 큰집에 갔을 때 기억이 났다. 더불어 맛있는 음식과 음식 냄새는 그 기억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미 음식에 대한 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많은 시들에서 이 음식과 냄새를 발견하고 느꼈다.

 

백석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음식이다. 어떤 방송에서 냉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시를 말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평양냉면의 원형에 대한 이야기였다. 뀡고기와 동치미와 메밀국수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레 냉면이 떠오른다. 거부감이 그렇게 많았던 4부의 시들에서 음식을 발견하면 아직도 그의 시가 살아 있구나, 하고 떠올리다가도 다음에 이어지는 찬양에 시들어버린다. 음식을 너무 부각시켰지만 일상을 담고 있는 시들은 그의 삶을, 추억을, 감정을 잘 느끼게 만든다. 시를 읽다 보면 만주로 간 그의 삶도, 그 당시의 기분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연애사를 다룬 시들이 꽤 있는데 그 중에서 <통영>이란 제목이 두 번 있다. <사슴>의 통영이 가벼운 감정을 내비취었다면 <함주시초>의 통영은 그 애모하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천희라는 이름을 보고 검색하면 그와 관련된 이름이 나오고, 왜 그런 단어들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에피소드를 시로 접하니 괜히 반갑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는 처음에는 읽기 힘들었지만 주석을 본 후 다시 읽으니 아주 재밌다. 집안과 밖에 귀신이 가득하다는 말인데 움직임과 귀신의 어우러짐이 돋보인다.

 

잘 정제되고 표준어로 쓴 시를 읽다가 이런 토속적이고, 자유분방하고, 뛰어난 묘사로 음식을 표현한 시를 읽으니 조금 어렵다. 시를 읽는 속도가 더디다. 이전에 멋모르고 읽었던 카프 시집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 번 읽고 그 느낌을 알 수 없어 다시 읽으면서 발견하고 느끼는 감성과 풍경들은 읽는 재미를 준다. 왜 한때 백석, 백석 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겠다. 많은 시를 한 권에 고스란히 담은 것은 좋은데 시와 관련된 정보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그의 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 백석 평전이나 다른 자료도 다음에는 한 번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