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해 기억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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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롭고 재밌는 소설이다. 납치된 소녀의 잔혹 복수극을 보여주는데 그녀의 반격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차분하게 다룬다. 동시에 납치된 소녀들을 찾는 FBI 요원들이 등장한다. 이 둘은 교차하면서 진행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번역 제목처럼 복수하고, 기억하고, 복수하는 행동이 마지막 순간까지 멈추지 않는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에 소녀의 복수는 무섭다. 소녀의 잔혹한 복수는 결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읽으면서 혹시 시리즈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덱스터>와 맞먹는 안티히어로로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 소녀 리사 일랜드는 임신했다. 이 임신 소녀를 납치해 아이를 낳아 파는 조직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데 결코 평범하지 않는 리사가 이 조직에 납치된다. 리사는 학교에서 소시오패스로 불릴 정도로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있다. 필요에 따라 감정의 스위치를 켜고 끌 수 있다. 여기에 아주 뛰어난 기억력과 응용력을 가지고 있다. 납치범들은 리사를 그냥 십대 임신 소녀로 생각했다. 육체적으로 월등한 이 악당들은 리사를 다루는데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끔찍한 실수다. 리사는 납치되는 순간부터 탈출과 반격을 준비한다. 그녀 주변에 있는 모든 일상적 도구들의 용도가 바뀐다. 소설을 이 과정을 잘 보여준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위험한 도구들이 엄청 많다. 아이를 키우면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도구들이 주변에 늘려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하지만 보통은 이런 도구들이 크고 작은 상처에 작용할 뿐이다. 그런데 이 도구들이 리사에게 간다면, 그녀의 응용력이 힘을 발휘한다면 다른 용도로 변경된다. 리사는 이것을 속이기 위해 아주 천천히 하나씩 준비한다. 예전에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에서 이미 이런 응용과학을 본 적 있지 않은가. 그리고 리사는 자신을 연약한 임산부로 연기한다. 납치범들의 작은 폭력에는 그냥 당하기만 한다. 이 모든 상황과 인물들을 복수하기 위해 기억하고 결국 복수한다. 무서운 소녀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은 FBI요원 로저 리우다. 그는 약간의 과잉기억증후군과 엄청난 시력을 가지고 있다. 동료 롤라는 후각이 아주 뛰어나다. 이 둘은 납치된 소녀의 흔적을 쫓는다. 리우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스스로 원해 실종 혹은 납치 사건 담당자가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그가 경험했던 일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일들이 현재진행형이란 점은 그를 더욱 힘들게 한다. 독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리사의 잔혹한 복수에 공감하게 된다. 가해자들이 형기를 마치면 풀려나는 현실에 비추어 피해자는 영원히 고통받는 상황을 대비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단순히 리사의 반격 준비만 다루지 않고 그녀의 삶을 파고들어 그녀가 감정이 없는 괴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리사는 특수부대 출신 아빠로부터 주짓수를 배웠고, 엄청난 성공률을 자랑하는 변호사 엄마를 두고 있다. 결코 평범한 부모들이 아니다. 임산부라는 사실이 육체적 반격을 힘들게 하지만 그녀가 가진 지식들은 아주 무서운 한 방을 가지고 있다. 읽으면서 어떤 반격을 할까 계속 궁금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치로 복수한다. 물론 아직 사회를 잘 모르고 경험이 부족한 것을 드러내지만 그 한 방은 아주 강렬하다. 또 독하기는 얼마나 독한가. 복수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것을 실행에 옮긴다. 이 납치의 경험이 그녀의 육체마저 강인하게 훈련하게 만들었으니 어찌 다음 편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테이큰>의 리암 리슨처럼, 아니 어쩌면 더 위험한 엄마가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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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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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모리아티의 작품과 자주 헷갈리는 작가가 한 명 있다. 조조 모예스다. 이 책 이전에 두 사람의 작품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왜 헷갈리는지 모르겠다. 아마 로맨스 소설가라고 착각하고, 자주 가는 카페에서 두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제대로 보지 않았던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다 리안 모리아티가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는 글을 보고 뒤늦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워낙 두툼한 분량이라 <허즈번드 시크릿>을 사놓고 묵혀만 두었다. 물론 이 책의 분량은 그 책을 넘어선다. 요즘 왠지 두툼한 책이 부담스럽다. 책 읽을 시간이 점점 줄다보니 그런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장르상 추리 미스터리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전작들의 엄청난 성공을 떠올리면서 어떤 작품일까 기대도 많이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추리, 미스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과연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로맨스 소설이고 하기에도 뭔가 부족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약간의 스릴러 요소가 있는데 긴장감을 엄청나게 고조시키는 구조는 아니다. 결정적으로 단 한 명도 죽지 않는다. 스포일러인가? 소설 중 프랜시스의 말이 떠오른다.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아홉 명의 남녀가 최고급 건강휴양지 평온의 집에 온다.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한때 로멘스 소설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프랜시스, 복권 당첨으로 인생이 바뀐 벤과 제니퍼, 자살한 아들 때문에 고통받는 나폴레옹, 헤더 부부와 딸 조이, 험악한 외모를 가진 50대 중년남 토니, 네 딸의 엄마이자 자신이 뚱뚱하다 생각하는 카멜, 지나치게 잘 생긴 외모의 이혼 전문 변호사 라스까지 모두 아홉 명이다. 이들은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완벽한 타인들이다. 작가는 이 아홉 명과 휴양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섞고, 숨겨진 아픔과 비밀을 하나씩 밝히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느 순간 강하게 빠져든다.

 

로맨스 작가 프랜시스는 인터넷 연애사기를 당하고, 신작은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최악의 서평에 상처를 받았다. 천성적으로 활발하고 순진한 그녀는 이 생각에 고통 받는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 휴양지는 술과 인스턴트 음식 반입을 금지한다. 당연히 스마트폰도 사용불가다. 이런 환경 속에서 놓인 아홉 명은 묵언을 강요받고, 스무디 음식을 먹고, 필요하면 마사지를 받고, 태극권을 수련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이 평범한 휴식은 휴양지 원장인 마샤의 놀라운 계획에 의해 하나씩 깨어진다. 그녀는 휴양지에 들어온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고, 완벽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 완벽히 새로운 경험이 위험하다는 점이다.

 

스릴러 요소가 강하게 부각되는 순간에도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그렇게 고조되지 않는 것은 프랜시스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에 크게 한 방한다. 프랜시스보다 나의 시선을 끈 인물은 나폴레옹 가족이다. 쌍둥이 중 아들 잭이 죽은 후 이 가족은 영원한 고통 속에 빠졌다. 전날까지 문제없었다고 생각하고, 아침에 쓰레기까지 버린 아들이 자살한 것이다. 이 가족 세 명은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한 부분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괴로워한다. 아빠는 알람에 바로 일어나지 않은 것을, 엄마는 천식 약의 부작용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을, 딸은 쌍둥이 오빠의 이상함을 아빠에게 말하지 않은 것을 자책한다. 가족 내에서 억압된 감정은 대화와 감정의 교류가 사라진 채 함께 견디는 것으로 변한다. 자식을 잃는다는 상실감을 절절히 느낀다.

 

작가는 이렇게 아홉 명의 손님과 마샤 등의 과거와 현재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뒤흔들었고, 뒤흔들고 있는 사항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당연히 이 풀어놓은 이야기들은 예상하지 못한 전개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내가 스릴러라고 느끼지 못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결과들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유쾌하게, 무겁게, 서늘하게 엮어낸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이다. 왠지 모르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게 생각보다 빠르게 달려갈 것 같다. 아니면 신작이 나오면 위시리스트에 올릴지 모르겠다. 음, 읽을 책이 점점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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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새 스토리콜렉터 78
수재나 존스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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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읽자마자 이 작가의 독특한 문장에 빠졌다. 마지막 마침표를 읽기 전에는 그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알기 어렵다. 단순한 문장 같은데 두 번 꼬였다고 해야 하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오독의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는 문장 구조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더딘 속도로 읽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강한 액션이 있는 소설도 아니다. 일본하면 같이 떠오르는 야쿠자가 나오지도 않는다. 읽으면서 이것이 스릴러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루스 렌들을 말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된다.

 

제목 <지진 새>를 보고 내가 모르는 일본의 전설 같은 새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진을 알려주는 새라니 놀랍지 않은가. 외국인들이 일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을 읽는 것은 일본 소설을 자주 읽는 나에게 조금 낯선 시각으로 일본을 보게 만든다. 비록 작가가 오랜 기간 일본에 머물렀다고 해도 이국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그런 부분들이 많이 나온다. 일본어로 출간된 책이 아니고 모국어로 출간되었기에 이 낯선 문화에 대한 설명이 많이 들어있다. 릴리가 집을 구할 때나 음식의 어려움을 말하는 부분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고 루시의 남친 데이지가 일하는 곳이 국수 가게인 것도 의도적인 것 같다.

 

신원미상의 여성 시체의 토막이 발견된다. 경찰은 이 시체의 주인을 릴리라고 추정한다. 당연히 경찰은 주변인들을 수사하고, 루시도 이미 만났다. 그런데 다시 경찰이 나타나 그녀를 경찰서로 데리고 간다. 경찰이 오기 전 그녀가 지진 새라고 부르는 새가 울었다. 취조실에서 벌어지는 작은 해프닝은 낯익다. 영어로 질문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과 어려움이 나오고, 일본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그녀를 나중에 인식한다. 경찰들이 추궁하는 질문은 릴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루시고, 루시가 릴리와 다투었고, 조금 있다가 그녀를 뒤따라갔다는 사실이다. 이 정도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아닌가.

 

작가는 이 취조실에서 루시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형사와 대화하는 와중에 그녀가 처음 릴리를 만났던 상황이나 일본인 연인 데이지를 만났던 상황을 되돌아본다. 어느 순간은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오빠만 일곱 명 있었던 일이나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던 부모의 기대나 예상하지 못한 사고 등이 간결한 이야기 속에 풀려나온다.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 가장 먼 곳으로 가고 싶어 떠난 그녀의 선택지에서 중국은 배워야 할 문자가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럼 한국은 하는 질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이렇게 도착한 일본에서 그녀는 기술서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일본 친구들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체류 기간 동안 많은 경험을 한다. 현악사중주의 일원이 되어 연습하고, 다도 모임에 가기도 한다. 사고와 분위기 때문에 그만 두게 된다. 이런 일상에서 우연히 마주한 인물이 빗속에서 사진을 찍던 데이지다. 그와 만나 금방 연인이 된다. 처음에는 그녀의 외모 설명이 없었지만 릴리가 등장하면서 어느 정도 묘사가 나온다. 이 소설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릴리와 만나고, 데이지와 사랑을 나누고, 데이지의 사진 속에서 옛 연인 사치의 존재에 빠져 집착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그녀의 심리 묘사는 계속 바뀐다. 특히 릴리에 대한 회상은 더욱 그렇다.

 

일상, 만남, 사랑, 여행 등이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이 소설이 스릴러인가 하는 의문이 들고, 살인자는 루시라는 의도된 길을 따라간다. 작가는 자신과 대비되는 릴리의 존재를 설명하면서 연인 사이가 틀어질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이 가능성이다. 외국 독자라면 낯선 일본 문화가 더 흥미로울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 뻔한 관계가 어디서 엇나갈까 하는 부분이 더 흥미로웠다. 실제 그 장면이 일어났을 때보다 루시가 받은 충격에 더 놀랐다. 이때의 감정을 풀어내는 문장은 앞부분과 닮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일상에서, 사건 속으로, 심리 묘사 등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아주 훌륭한 구성이며 연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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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시선 - 연대보다 강력한 느슨한 연결의 힘
김민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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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이란 이름은 낯설지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낯익다.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제목은 잘 알고 있다. 대학원생, 시간강사의 삶, 대학 사회의 적나라한 민낯을 고스란히 담았다는 평가를 받은 책이다. 대학이란 괴물이 어떻게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피를 빠는지 조금은 알기에 내용을 대충 짐작했지만, 그 대충 짐작과 다른 내용이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시간이 나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후 나온 <대리사회>도 눈팅만하다 시기를 놓쳤다. 요즘 이런 사회과학 서적들이 솔직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예전처럼 소설이나 에세이 이외의 책들은 읽지 않아 독서량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쓴 책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쓴 글을 모았다. 크게 대학, 청년, 사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대학을 다룬 부분은 저자가 가장 잘 아는 부분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엮이고 꼬이면서 아주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을과 을의 싸움이란 부분은 현대 사회의 갑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조교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그들의 정체성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대학 교수들이 어떤 존재인지 말로 듣고 봐서 알지만 그들이 외친 정의 속에 조교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은 신랄하다. 흔히 말하는 갑질을 넘어선 ‘괴물’이 된 교수까지 있다.

 

법은 언제나 가진 자들의 편이다. 대학이 기업화된 지 오래고, 선배들은 언제나 추억팔이를 한다. 대학이 정의롭지 못한 것은 그들이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모두 정의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이 대기업이나 종교단체의 사학재단인 것을 감안하면 그들의 이익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 조교와 시간강사들의 처우에 함구하는 것도 그들이 지켜야할 자리를 놓치기 싫기 때문이다. 많은 교수들이나 선배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말하며 지금 학생들을 질타하지만 그들은 바뀐 시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 애들이란’ 표현이 난무한다.

 

웹툰에 대한 저자의 기억 중 일부는 나와 닿아있다. 이제는 웹툰을 거의 보지 않지만 한때 나 자신도 성게군의 팬이었다. 그의 이야기가 나 자신과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공감하고 그 세대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몇몇 장르 웹툰을 빼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완전히 아재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의 말들이 길어지고 있음을 깨닫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조직의 논리에 동화된 괴물이란 표현에 흠칫하는 것은 떠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더치페이와 꼰대가 되어달라는 말에서 이것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성향이 문제란 사실을 확인한다. 비율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글을 삶이라고 표현한 것에 동의한다. <검사내전>에 대한 평이 나오는데 요즘처럼 검사에 대한 불신이 높은 시점에도 유효할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검사의 자랑이 아니라 고백이라고 하니 예전에 읽었던 검사의 책과는 다른 모양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월드컵 경험에 대한 글이다. 2002년의 경험은 사실 너무 강렬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때의 광장을 2016년의 광장과 연결시킨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다. 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행진을 ‘산책’이라고 표현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다시 한 번 흠칫했다. 과거에 머문 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과 구호만으로는 그 한계가 명확히 보였다.”란 문장을 보았을 때 왜 많은 사회운동이 확장성을 가지지 못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증오사회란 표현이 요즘 많이 보인다. 나는 분노한 것 같은데 말이다. 대리기사를 하면서 경험한 것을 풀어낸 이야기에서 갑을을 넘어선 ‘나이’가 부각될 때 한국의 뒤틀린 위계질서가 떠올랐다. 생활고에 최영미 시인이 시달린다는 사실에 현재 문학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지만 베스트셀러 작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오인이 부끄러웠다. 책을 만드는 일에 대한 글은 작가가 아닌 편집자의 몫을 많이 내세웠다. 흔히 외국 유명 작가들이 훌륭한 편집자를 만나 명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사회과학 서적을 쓴 저자에게 듣기는 처음이다. 그리고 부제인 ‘연대보다 강력한 느슨한 연결의 힘’에 관심을 두었는데 결국 연대로 돌아온 부분을 보니 연대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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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아주 따듯한 떨림
김인숙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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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시인과 소설가의 산문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여행 작가의 여행기는 자주 봤지만 소설가의 여행기는 사실 그렇게 많이 보지 못했다. 사실 이 산문집 이전에 출간된 북경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제국의 뒷길을 걷다>에 관심이 많이 뒀다. 하지만 읽을 타이밍을 놓치면서 그냥 묵혀두고만 있다. 아마 내가 여행기에서 바라는 것 중 하나가 혹시 간다면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이 여행기가 결코 정보 전달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되어 이전 책에 관심이 부쩍 되살아났다. 언제나처럼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사오싱이란 중국 발음보다 소흥이란 한자 독음이 더 익숙하다. 아마 중국 지명 대부분을 무협이나 중국 역사소설에서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오싱은 일만 개의 다리가 있는 도시라고 하는데 아마 어딘가의 여행 프로그램에서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한때 여행 방송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지금도 관심 있는 지역이 나오면 채널 고정할 정도다. 사오싱이란 이름보다 소흥이란 이름으로 불리면 그 유명하다는 소흥주가 떠오른다. 중국의 명주로 이름 놓은 술이다. 이 책을 보면 소흥주의 종류도 상당히 많은 모양이다. 술을 잘 먹지 못하는 내가 몇 잔이나 마실 수 있을지 괜한 걱정을 해본다.

 

몰랐던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하나는 루쉰이고, 다른 하나는 월나라다. 루쉰의 고향이 사오싱이고, 이 고향에서 이 고향을 배경으로 루쉰은 좋은 글들을 남겼다. 그 유명한 아큐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그의 흔적들이 당연히 유적으로 남아 있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한 것도 적지 않다. 와신상담의 월나라 구천 이야기도 나오고, 월나라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간단하게 알려준다. 이런 인문학적 정보들이 이 산문집에는 가득하다. 일반적인 여행 정보를 생각하고 펼치면 쉽게 낭패를 볼 수 있다.

 

검은 호수 묵지와 왕희지를 연결하고, 다시 문화대혁명을 이어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그가 소설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묵지가 검은 것은 왕희지가 붓을 많이 씻어 그렇다고 하는 단순한 노력만을 강조하지 않고, 여기에 타고난 재능까지 담아 이야기를 풀어낸다. 재능은 노력이 함께 할 때 그 빛을 발한다. 상하이에서 고속철도로 1시간 조금 지나면 도착하는 도시라고 하는데 왜 이 사실을 이전에 몰랐을까. 알았다면 이전에 출장 갔을 때 한 번쯤은 다녀왔을지 모르는데. 당일치기 여행으로 가볍게 다녀올 정도의 거린데 말이다. 아쉽다.

 

소설가의 문장은 이 산문집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여행 작가들이 쓴 비교적 가벼운 감상기에 비해 묵직한 느낌이다. 여행지 정보보다 사오싱과 관련된 역사와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그런데 글과 다른 풍경 사진에 놀란다. 나의 머릿속 사오싱 풍경은 근대화 이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중국 소설가의 작품을 글 속에 녹여 낸 것은 루쉰의 고향이자 문화대혁명의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전에 읽은 글들인데 아주 낯설다. 문화대혁명기에 많이 것이 파손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역사 유물이 남아 있다. 작가처럼 천천히 걸으면서 일만 개의 다리 중 몇 개를 건너고 싶다. 물론 한 손에는 루쉰의 책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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