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도 - <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 페러그린 시리즈 4
랜섬 릭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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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러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네 번째 이야기이다. 앞의 세 권은 읽은 적이 없다. 영화로 나왔다는 것도, 그래픽노블로도 나온 것을 알고 있다. 오래 전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주 두툼한 세 권짜리 시리즈는 솔직히 요즘은 도전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 새로운 이야기란 말에 혹했다. 이 책으로 시리즈를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전편에 대한 궁금점이 강해지고, 이 책부터 읽어도 작품을 따라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음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하게 된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영화 속 캐릭터들은 예고편 등에서 봤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몇몇 캐릭터는 영화 속 이미지가 살짝 따라왔다. 하나의 사건이 끝나면서 완결된 시리즈로 생각한 것이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성공한 작품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있다면 이것은 더 쉽다. 전작을 모르니 소설 속 이야기만으로 앞의 이야기를 짐작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는 연속성을 가지지만 전작에 속박되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이 부분에서 성공했다. 전작을 몰라도 재밌고 빠르게 이 책을 완독했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정신 나간 아이 취급을 받으며 정신병원에 끌려갈 위기에 처했다. 이때 페러그린 원장과 이상한 아이들이 나타나 구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앞부분이 조금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들의 능력도 모르고, 왜 제이콥이 정신 나간 아이 취급 받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루프를 벗어나 현실 세계로 오면 보통 이상한 아이들은 급속하게 나이를 먹는데 이들은 십 대의 모습으로 하루씩 나이를 먹는다. 과거의 시간 속에 박제된 채 살던 아이들이 현재에 와서 마주하는 풍족함과 발전 등은 그들에게 이상한 세계다. 과거와 현재가 충동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이것은 루프 속에 살아가는 이상한 사람들과도 관계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한 제이콥이 할아버지의 집에서 발견한 지하 비밀 창고와 그가 남긴 업무 일지와 지도들은 새로운 모험으로 이끈다. 이번 책은 할아버지가 미국 대륙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와 관련 있다. 업무 일지는 그것을 알려주고, 할아버지가 남긴 조그마한 단서는 할아버지 동료와 연락하게 만든다. 그는 바로 H이다. H와 만나는 과정도 쉽지 않고, 이 만남은 새로운 모험 속으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을 이끈다. H의 시험은 제이콥의 새로운 삶과 이어져 있다. 친구들과 함께 이 모험에 뛰어 들어간다. 그 첫 번째 지역이 플로리다다. 제이콥과 친구들은 이 여행을 페러그린 원장 몰래 하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청춘 소설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전 3부작을 읽지 않아 낯선 부분은 이들이 현대 무기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흔한 판타지라면 총을 맞아도 이상이 없어야 하는데 이들은 이상한 능력을 가진 아이일 뿐이다. 이 특수한 능력이 상황에 따라 그 힘을 아주 크게 발휘하지만 바로 앞에서 총을 든 사람을 만나면, 그 총에 맞으면 무력하다. 그리고 제이콥의 능력은 물리적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주 취약하다. 육체적으로 아직 청소년이고, 그의 능력이 일반 사람들이나 이상한 사람들에게 물리적 타격을 줄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몇몇 위기 상황에서 그의 친구들이 큰 힘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모험 중에 제이콥과 엠마의 사랑 전선에 살짝 문제가 생긴다. 엠마는 제이콥의 할아버지 에이브와 한때 사랑했던 사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시간 흐름 속에 산 사람과 박제된 시간 속에 산 사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제이콥은 이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리고 설정에 따르면 이전 3부작은 유럽 대륙이 배경이었고, 새 시리즈는 미국 대륙이 배경이다. 왠지 모르게 제대로 된 통치권이 없는 무법 시대의 과거를 끌어들인 것이 서부 시대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갱들의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제이콥이 임무 수행 중 마주하는 현실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이 시리즈를 더 깊이, 더 잘 이해하려면 이전 3부작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는 기다려진다. 마지막에 던진 떡밥이 아주 강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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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감시 구역
김동식 외 지음 / 책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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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작가가 쓴 청소년 SF 단편집이다. 이 네 명 중 두 작가, 김이환과 정명섭은 이전에 몇 권 읽은 적이 있고, 다른 두 명, 김동식과 박애진은 처음 읽는다. 김동식의 경우 기존에 낸 작품 때문에 이름은 알고 있었다. 가장 낯선 작가를 꼽으라고 한다면 박애진이다. 가끔 낯선 작가의 단편을 읽으면서 새롭게 작가를 알아가는데 박애진이 그런 경우다. 먼저 솔직히 고백하면 아쉽게도 박애진의 <목격자>는 나의 취향과 조금 동떨어져 있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고속 성장 클론을 만들었다는 설정은 어릴 때 본 SF이 변주처럼 다가온다. 그 SF에서는 소년, 소녀들을 태웠지만. 사건의 목격자인 현경의 조사와 결론이 추리소설로 단련된 나에겐 왠지 긴장감이 부족하다. 소재가 좋으니 좀더 중편으로 만들고, 강한 인상을 주는 반전을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동식의 <살인 게임>은 실제 인간의 뇌 데이터를 이용해 살인 게임을 만든다는 설정이다. 인간이 가진 수많은 욕망을 자극해 게임 속에서 살인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세한 장면을 보여주고, 상황 이미지를 분명하게 만들지 않고 간단한 명령어로 사람을 살인으로 몰고간다. 솔직히 이 명령어들이 너무 투박해 살짝 아쉽지만 단편 속에서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 단순화 시키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두 중학생을 내세워 성선설과 성악설을 대결하고 만든 것은 약간 도식적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은 재미있었다. 실제 인간 데이터라는 점에서 나의 경우를 상상하면서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김이환의 <친구와 싸우지 맙시다>는 가장 기대한 작품이다. 작가 초창기부터 관심을 두고 있었고, 재밌게 읽은 장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SF 단편이란 설정 때문인지 비교적 쉽게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다. 2000년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리나가 인공지능 나나와 함께 다른 도시인 친구의 도시에 가서 마주하는 사건들은 약간 극단적인 모습이 있지만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만든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우주로 나갔고, ‘싸우지 않는 도시’나 ‘친구의 도시’나 ‘모험의 도시’ 등을 만들어 살고 있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이 도시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교류를 한다는 것은 약간 청소년들을 신경 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엄마에게 작은 복수를 하는 것도 그렇다.

 

가장 최근에 다른 소설을 읽은 정명섭의 <코드제로 알파>는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깜짝 놀랐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동우에게 갑자기 엄청난 능력을 가진 가정용 로봇이 나타난다. 이 가정용 로봇의 활동과 대화를 듣다 보면 미래에 이런 로봇이 나올 것 같다. 이 둘의 대화 속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외계 곤충 괴물이 등장하는데 지구의 미래도 이들이 바꿀 수 있다. 약간 음모론을 품고 있는데 중간에 액션을 가미해 신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영웅으로 바뀌는 동우의 모습은 전형적인 히어로의 탄생이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청소년을 위한 SF 단편집이란 설정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쉬운 전개와 구성이다.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들려고 한 모양이다. 쉬운 전개와 구성이라고 했지만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의 본성이나 클론 계획이나 환경 파괴 등의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것들이다. 가끔 이렇게 조금은 눈 높이를 낮춘 작품들을 읽고 처음 내가 SF를 만나 즐거워했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예상하지 못한 추억에 빠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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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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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에 대한 호평을 읽고 관심이 생겼다. 구해놓고 바로 읽지 않는 것은 나의 나쁜 습관인데 이 책도 그랬다. 작년 조국 법무장관 사태 시절 검사가 쓴 책이란 부분 때문에 솔직히 조금 마음이 멀어졌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나쁜 작용을 한 것이 있는데 이전에 검사 출신의 에세이를 읽은 것이다. 이때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가 당연한 듯이, 자랑스럽게 적은 내용이 나는 전혀 납득되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씻어낸 데는 다른 저자의 글을 읽고 나서다. 바로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민섭이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검사내전>이란 드라마가 하고 있었다. 왠지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부쩍 생겼고, 그 덕분에 매일 조금씩 읽게 되었다.

 

김민섭의 글에서 글을 잘 쓴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이다. 김웅 검사는 글을 잘 쓴다. 그것도 상당히 재밌게 쓰는 능력이 있다. 앞의 세 꼭지는 자신이 18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의 주제 아래 묶어 놓은 것이다. 사기 공화국이라고 말한 부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사기꾼은 목숨 걸고 뛴다.”는 대목이다. 법을 알게 되면서 그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자신의 안위를 챙기는 그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뻔한 이야기로 어떻게 사람들의 욕심을 부채질하고 그들의 무엇보다 소중한 돈을 갈취하는지 보여준다. 프랜차이즈 시장의 폭탄 돌리기 이야기도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인한 사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지옥 속에 살게 된 수민 씨 이야기는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돌아봐야 한다.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경찰들에게 알려진 이야기의 이면을 말한다. 우발적으로 아이를 살해한 남편 대신 살인죄를 뒤집어쓴 아내나 고소 왕이 되어 지역 경찰과 검사들을 두렵게 만든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것처럼 꾸며 피해자를 협박하고 위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년 범죄에 대해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고 한 부분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야 하고, 가해자는 남는다. 한 판사의 아름다운 연설을 삐딱하게 본 글은 검사의 시선이 깊이 개입해 있지만 현실적 판단이다. 언제부터인가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글들이 늘어나고 있다.

 

검사의 사생활에서 그는 자신을 당청꼴지 또라이 검사라고 말한다. 검사란 조직 속에서 상명하복을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검사와 판사의 황당한 내기에 그가 대처한 방법은 구식 권위주의에 대한 작은 반항이다. 그가 등산 일정을 짤 때 은밀한 반항심을 담은 것이나 검사장의 고향에서 체육회 등을 열 때 말한 내용은 결코 조직순응적인 인물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검사 생활이 추리 소설 속 탐정들과 다르다고 한 대목은 현실 수사의 한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 사건 현장에 나가는 검사도 드물다고 하지 않는가. 속독법이란 마공을 읽혀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속독법으로 집에 쌓여 있는 책들을 읽겠다는 나의 욕망을 단숨에 꺽어 놓았다.

 

법의 본질을 다룬 꼭지는 검사의 시선을 많이 담고 있다. 현행 법제도나 절차의 문제점을 하나씩 표현하고 있는데 동의하는 부분이 많다. 법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쟁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한 장을 할애한 판사에 대한 질타는 읽으면서 동의하는 마음보다 검사의 문제에 대한 지적은 왜 없는가 하는 반발을 불러왔다. 아마 자신의 직장 비리를 까발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목민관이 아니라 본질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 개혁의 일각을 가장 처참하게 짓밟은 것도 역시 검찰이다. 물론 그의 글대로라면 형사부검사들이 모두 책임질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형사 사건에서 전관예우란 이름으로, 불기소처분으로 검사들이 한 행동에 대한 비판과 반성과 제도 개혁을 말하지 않는다면 남탓만 하는 것일 뿐이다. 검사의 시선들이 잠시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잘 썼고, 재밌고, 웃기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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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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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승 민담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했다는 말에 먼저 혹했다. 개인적으로 민담이나 전설 등을 소재로 판타지나 공포물 등이 많이 나오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늘 아쉬워하던 부분이다. 최근 이런 작품들이 눈에 들어와서 반갑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간단하게 요약한 전래 민담은 조금 낯설다. “옛날 옛적 한 소녀가 호랑이 등에 올라타 바다를 건너오니 그 섬에도 그리하여 범의 자식들이 살게 됐도다.”라고 하는데 솔직히 이런 민담을 모르겠다. 아마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데 자신할 수 없다. 나의 무지 탓일 것이다.

 

아버지의 알 수 없는 정치 사건으로 두 딸은 먼 섬으로 떠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두 딸 회현과 모현은 외딴 섬에서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 언니 회현은 어린 동생 모현까지 돌봐야 한다. 몰락한 가문의 맏딸이 어깨에 진 무게는 무겁다. 결코 신뢰할 수 없는 남편에 남의 자식과 자신의 아이까지 돌봐야 한다. 그 동안 동생은 철부지로 살았다. 이런 삶에서 한 번 자신의 무게를 동생에 떠넘긴다. 그것은 범의 제물로 뽑힌 자신 대신 동생을 내보낸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바로 이 범님의 신부로 희생되어질 모현이 산길을 걸어가면서부터다.

 

모현의 형부인 단오는 최악이다. 그는 범님의 신부인 모현을 겁탈하려고 한다. 아내가 제물로 뽑히게 하려고 무당 천이에게 요청한 것도 그다. 그의 욕망은 모현의 강한 반발과 처절한 몸부림과 어딘가에서 나타난 범에 의해 중단된다. 삶의 의지가 결코 사그라들지 않은 모현은 범을 공격한다. 범에게 어깨를 물린 그 순간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린다. 기절한다. 제물이 된 그녀를 산에서 데리고 온 인물은 마을 수령 홍옥이다. 범을 잡기 위해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악한 인물이었다. 모현과 함께 돌아온 그는 완전히 바뀌었다.

 

사실 홍옥은 무당 천이 무리가 호환 사건을 만든 후 범 사냥을 떠났을 때 죽이려고 했다. 그의 죽음을 확인까지 했다고 한다. 탐욕스러운 홍옥이 선량한 수령이 되었다니 이상하다. 무당 천이가 호환 사건을 만든 것은 단순히 마을의 권력을 쥐기 위해서 아니다. 이것은 이 섬에 자리한 검은 산의 전설과 관계있다. 과거 뛰어난 장수가 하늘로 가는 길을 이 검은 산에서 발견하고 천제가 보낸 군대와 99일간 싸운 곳이다. 그럼 천이가 모시는 장군이 이 장군일까? 그럼 범은 또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깔고 이야기는 천천히 진행된다.

 

모현을 두고 작은 갈등이 일어난다. 언니에게 단오가 한 짓을 말하지만 믿지 않는다. 회현은 천이가 한 거짓을 간파하지만 아픈 자신의 아이를 의원에게 데리고 가기보다 무당에게 맡긴다. 회현은 결코 무지하지 않다. 반면 모현은 철부지 이미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언니 대신 희생물이 되려고 했고, 단오의 진실을 말했지만 회현의 가슴 속 깊이 자리한 미움까지 걷어내지는 못한다. 저주의 주술이 그녀에게 걸리지만 우연한 일로 그 주물을 처리한다. 운이 좋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녀가 가진 선한 마음과 행동이 그녀를 도와준 것이다.

 

전체적으로 잘 읽힌다. 문장력도 좋다. 하지만 중간중간 긴장감을 심어줄 사건들이 너무 약하다. 공포물로 보기엔 그렇게 무섭지 않고, 로맨스라고 하기엔 그 밀당이 너무 없다. 갈등 구조와 인간관계를 더 깊게 연결해서 모호함을 많이 걷어내었으면 좋겠다. 음모의 주체가 갑자기 무너지고, 새로운 악이 등장하는 장면도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마지막 대결에서 강한 액션이 눈에 잡힐 듯 그려지지 않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소재를 엮는 것과 문장이 수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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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 미 백
A.V. 가이거 지음, 김주희 옮김 / 파피펍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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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SNS를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낸 스릴러다. 작가는 트위터를 관계의 중심에 놓았다. 개인적으로 트위터를 이용하지 않지만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고 있다. 미국 아이돌 스타인 에릭 쏜은 막강한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테사 하트는 에릭 쏜의 팬이자 그의 팔로워 중 한 명이다. 테사는 또 #에릭쏜중독이란 팬픽을 썼다. 이것이 아주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테사의 팔로워도 늘어났다. 에릭은 이 팬픽이 1위로 올라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에릭은 연예계 동료 도리안 크롬웰이 광적인 팬에게 살해되자 심한 불안과 공포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가 소속된 기획사의 생각은 다르다. 에릭에게 이런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트위터에 팬들을 위한 사진 등을 올리라고 한다. 이 충돌이 에릭으로 하여금 다른 계정을 만들게 한다.

 

에릭은 다른 계정으로 자신의 셀카를 나쁘게 찍어 올린다. 하지만 팬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가 연출한 장면도 하나의 멋진 선물이다. 에릭은 철저하게 기획사 관리를 받는다. 먹는 것도, 운동도 마찬가지다. 다행이라면 스마트폰은 자신의 것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정도랄까. 앞으로 2장의 앨범을 더 내어야 계약이 완료된다. 빡빡한 투어 일정은 또 어떤가. 물론 처음 가수로 인정받기 위해 유튜브에 자신의 노래를 올리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사라지고, 도리안 사건이 그를 뒤흔든다. 이때 디엠으로 테사와 대화를 하면서 에릭 내면의 목소리를 밖으로 낸다. 오직 테사와의 대화에서만 말이다.

 

구성은 간단하다. 에릭과 테사가 주고 받는 디엠과 그들의 삶과 생각들이 주로 나오고, 사이사이에 신문조서 파트가 끼어든다. 처음에는 이 신문조서 파트가 의미하는 바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분량이 늘어나고, 에릭과 테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면서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간다. 스릴러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도 바로 이 신문조서 파트의 역할이 꽤 크다. 물론 마지막에 이르면 독자를 약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치가 되긴 한다. 에릭과 테사 둘의 시각이 아닌 제3자의 시각이란 점에서 이 부분은 의미가 있다.

 

테사는 광장공포증이 있어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왜 이런 장애가 생겼는지 마지막에 알려준다.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온라인 상에서 에릭 쏜에게 더 집착한다. 그의 사진이 나오면 받아 폴더에 넣고, 음악도 다운 받아서 중요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실제 그녀는 #에릭쏜종독이란 팬픽을 쓰기 전에는 팔로워가 얼마 없었다. 그녀의 팬픽이 유명해지면서 갑자기 팔로워가 3만을 넘었다. 이런 증가에는 유명한 트위터들이 그녀의 글을 팔로우한 덕분이다. 이런 그녀에게 실제 에릭 쏜이 디엠을 보냈다. 물론 다른 계정이고, 미들네임인 테일러를 사용했다. 그와의 디엠 대화는 오해도 있었지만 에릭 쏜을 가운데 두고 서로 점점 가까워진다.

 

자신이 에릭 쏜임을 밝힐 수 없는 에릭은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테사에게만 한다. 테사의 외모를 알고 싶어 에릭 공식 계정으로 외모 사진을 올려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것이 오해를 불러온다. 테사는 테일러가 여자인줄 알았는데 남자임을 알게 된다. 그녀는 테일러가 자신을 낚기 위해 이런 글을 썼다고 오해한다. 언팔한다. 테일러와의 디엠 대화를 본 남친은 섹스팅으로 착각하고 그녀를 떠난다. 이 충격이 다시 에릭과 연락하게 만든다. 그리고 둘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진다. 신문조서 파트에서 에릭이 보여준 반응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에릭은 테사를 만나기 위해 작은 이벤트를 만든다. 이 이벤트가 경찰 조사의 시발점이다.

 

연예인들이 이제 SNS를 이용해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백 만 팔로워를 거느린 연예인들이 적지 않다, 실제 팔로워나 인스타친구들을 수천 만 명 거느린 연예인 등은 이미 그 자체로 팬덤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입고, 착용하고, 바르는 화장품 등이 이미 하나의 광고판이다. 이 소설 속 에릭은 노출 수위가 높을수록 더 많은 리트윗이 이루어지고, 관심을 받는다. 그가 그의 팬들에게 불만을 느끼는 대목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노래를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진성 팬인 테사는 다르지만. 읽다보면 이 소설이 옛날의 펜팔이나 PC통신 시절의 연애와 상당히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좀더 현대적인 연락 방법이란 것을 제외하면 잘 모르는 사람과의 연결, 대화란 점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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