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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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김훈의 소설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김훈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재밌게 읽었던 것 같다. 소설도 몇 권 사놓았는데 쉽게 손이 나가질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의 이야기와 문체와 표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이야기가 아니고, 아마 집중해야만 그 의미와 재미를 누릴 수 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내 독법에 조금 변화가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다른 무언가를 발견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현실의 세계도, 과거의 역사도 아닌 가상의 역사와 공간을 배경으로 두 문화의 충돌과 그 충돌 속에 인간을 태우고 다닌 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유목 민족의 나라인 초와 농경문화의 단이 충돌한다. 이 충돌 전과 이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본 것과 닮았다. 작가는 전쟁의 참사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보다 역사의 흐름 속에 그것을 녹여내었다. 실제 참혹한 장면들을 자세하게 묘사하기보다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해 더 이상의 감정 이입을 막는다. 긴 역사에서 이런 일들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실제 소설 속에서 왕의 지시에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이어졌는가. 어쩌면 불필요한 표현이자 감정 낭비인지도 모른다.

 

<시원기>와 <단사>란 가상의 역사서와 민담 등을 인용한 글들은 이야기 자체에 환상을 가미한다. 기록의 파편은 상상력에 기댈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무한한 이야기의 공간을 열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인류가 최초로 말에 오르게 된 이야기다. 추가 총총이란 말에 올라타 바뀐 시야와 속도 등을 얻게 된 것과 이것을 자신들의 부족장에게 알리면서 생긴 이야기는 압축되고 현실적인 부분을 다룬다. 그의 딸 요가 총총과 교미하고 백산으로 들어가 무당이 된 이야기는 이후에 수많은 전설과 민담으로 이어진다.

 

두 문화 속에 두 마리의 말이 등장한다. 신월마 혈통의 토하와 비혈마 혈통의 야백이다. 토하는 초의 왕이 되는 표가, 야백은 단의 군독이 탄다. 이 두 말은 최고의 명마이지만 인간의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들의 힘과 정체성을 잃는다. 우연히 강가에서 만나 교미하는데 토하가 새끼를 가진다. 최고의 만남이지만 마의들은 교미 대상자가 잡종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낙태시킨다. 이 일이 토하의 몰락을 가져온다. 인간들의 두려움과 욕심이 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수많은 민초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두 문화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문화 차이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초가 개를 전쟁에 이용해 싸우는 것을 보고 단의 왕 칭은 개처럼 싸울 수 없다고 문화적 우월감을 내세운다. 하지만 단이 내뱉은 말(言)은 어느 순간 개보다 못한 말(言)로 초에서 취급된다. 농경 집단의 단이 굳세게 세운 성곽에 숨어 초의 공격을 막는 모습은 너무 낯익다. 이런 문화 충동과 차이는 몽골 대제국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말과 함께 병장기의 변화를 간결하게 표현했지만 이 변화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갈만 해도 어떤가. 말안장과 말발굽의 발명은 또 어떤가. 하나의 역사 속에 이런 발명들은 쉽게 묻힌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문장을 타고 무아지경으로 달리는 순간이 가끔 생긴다. 이 소설에서 신월마, 비혈마가 대지를 밟고 달릴 때, 연의 행동을 따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낼 때 나도 같이 그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이것이 깨어지면 단어의 파편 속에서 잠시 허우적거린다. 상상으로 그려낸 세계를 알고 있는 이미지로 대체하면서 생기는 파편들 때문이다. 익숙한 이미지가 작가가 그려내는 이미지보다 앞서 나가는 경우도 생긴다. 욕심 탓이다. 한동안 이 소설 속 이미지들이 나의 머릿속에서 강하게 꿈틀거릴 것 같다. 집에 있는 김훈의 소설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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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그림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9
히사오 주란.마키 이쓰마.하시 몬도 지음, 이선윤 옮김 / 이상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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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집은 세 명의 작가가 쓴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히사오 주란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단편집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이 아쉬움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하시 몬도의 <감옥방> 같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분량이나 해설 등을 보면 이 단편집의 주인은 분명히 히사오 주란이다. 소설의 마술사란 수식어로 불린다는 히사오 주란의 작품은 세 편이 실려 있는데 상당히 특이하고 재밌다. 다만 현학적인 용어의 사용이나 골상학을 이용한 이야기 등은 현재 시점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다.


<호반>은 일본 귀족이 사라지기 전 자신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편지로 남기는 형식이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영국으로 유학가서 실제 한 일은 무엇인지, 돌아온 후 표절한 주장으로 어떻게 관심을 끌었는지 등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죽였다고 말한 여자를 어떻게 만났고, 그녀를 만나기 전과 후에 여자들에게 어떤 불안감을 느꼈는지 말한다. 사실 이 부분은 평이하다. 그러다 한 사건이 일어나고, 자수를 한 후 무죄로 풀려난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디고 혼란스럽게 느껴지는데 마지막 장면으로 넘어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숨겨져 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터다. 이런 구성은 <나비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표제작 <나비 그림>은 귀족이자 집안의 여성들에게 과보호 받던 한 남자가 전쟁에 끌려갔다온 이후 이야기다. 너무나도 연약해보여 전쟁터 비에 폐렴에 걸려 죽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생길 정도다. 당연히 편안한 자리에 복무하도록 집인의 권력이 동원된다. 하지만 살아 돌아온 후 그의 이미지는 이전과 다르다. 전범 재판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를 뒤따라온 현지 여성도 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가 전쟁터에 했던 행동들이 드러날 때 시작된다. 양심은 사실 고백보다 집안의 명예와 안녕에 짓눌린다. 묵직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햄릿>은 피서지 호텔에서 시작한다. 괴상한 노인이 나오는데 이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동행인이 들려준다. 이 노인은 돈 많은 귀족에 완벽주의자였다. 햄릿 공연을 위해 그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들려줄 때 이것이 문제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공연 중 사고가 발생하고, 그는 자신을 햄릿으로 생각한다. 이런 그의 삶을 그의 약혼자와 친구가 돌보고 있었다. 또 다른 친구가 유럽에서 골상학 등을 연구한 후 돌아온다. 그의 관찰에 의하면 이전 약혼녀와 친구는 악당들이다. 작가는 이 관찰을 사실로 만든다. 불편하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앞에 깔아둔 설정에 의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마키 이쓰마의 두 작품은 어떻게 보면 촌극이다. <사라진 남자>에서 사라진 남자가 나타날 때 앞의 긴장감을 사라진다. 하지만 작가는 이 긴장감을 다시 되살리면서 끝낸다. ‘상하이하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드러날 때 머릿속 기억들을 더듬는다. 용어는 낯설지만 이런 일이 그렇게 낯선 것은 아니다. <춤추는 말>은 읽으면서 오해와 진실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한 청년의 사랑과 한 여자의 임신을 둘러싼 이야기가 소문으로 엮이면서 사실 관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다음에 좀더 차분하게 읽게 되면 윤곽이 명확해질지 모르겠다.


하시 몬도의 <감옥방>은 짧지만 강렬하다. 높은 노동 강도와 열악한 환경 등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공사현장을 감옥방이라고 부른다. 이 폭압적인 현실을 고발하는데 실태조사가 온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이 현실을 고발을 위해 노력하고, 현장은 이를 막으려고 한다. 감찰단이 온다. 노동자들을 모으고, 그들의 불만 사항을 듣고 속기로 기록한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드러난 결론은 나의 예상을 벗어났다. 노동자들이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자본가들도 노력한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다시 노동자들이 용기를 낼까 하는 어두운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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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눈의 여자
박해로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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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 공포소설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박해로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번에도 무대의 배경은 경상북도 섭주란 가공의 도시다. 주인공 한기성은 9급 공무원으로 평택에서 근무한다. 섭주에 오게 된 이유는 공무원 연수 때문이다. 민원 업무를 맡으면서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고 있었다. 연수는 이 일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다. 즐거운 마음으로 섭주의 연수원을 찾아온다. 이곳에서 연수원 동기였던 준오를 만난다. 준오는 민원인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진상 민원인이 벌인 신나 사건은 목숨마저 빼앗아갈 뻔 했다. 공무원과 민원 상대라는 공통점이 동기라는 사실과 엮여 이들을 이어준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2000년대 초반임을 작가는 말한다. IMF 사태는 공무원에 대한 관심을 최고도로 높여놓았다. 그 이전까지 정리해고나 실직은 회사가 망할 때나 있던 일이다. 이 공포가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선호도를 높였다. 물론 이전에도 공무원에 대한 경쟁을 치열했다. 하지만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선호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기성의 여자 친구 화영이 계약직을 그만 두고 노량진으로 간 것도 이런 안정성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동사무소 직원들의 이미지가 전체 공무원의 이미지였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 직장의 유일한 문제는 바로 민원인들이다. 아니 일부 진상, 정말 진상 민원들이다.


반가운 동기생에 진상 민원인을 경험한 이 둘은 연수 첫날 섭주 시내로 나가 회를 먹고 노래방에 간다. 주인이 맹인인 노래방에서 도우미도 부른다. 기성은 술을 먹다 필름이 끊어진다. 깨어났을 때 준오가 옆에 있다. 모텔이다. 항문이 아프다. 사실 그는 치질이 있어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이런 몸 상태와 함께 도우미와 핸드폰이 바뀐다. 딸이 핸드폰을 교환하기 위해 온다. 그녀의 외모에 끌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 동창인 연진이다. 연수원 오기 전에 꾸었던 기묘한 꿈 속에 연진이 등장한다. 그리고 권태 때문에 한 번 도우미로 나왔다는 엄마 주리가 그에게 질척거린다. 순간 이 막장 드라마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이 연수원에서 항문으로 피를 쏟아내고 아파할 때 준오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혹시 그가 게이가 아닐까? 그날 밤 자신만 술이 취한 이유도? 주리가 소개한 유명한 의사를 만나 항문에 외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의사가 준 연고를 바르니 통증이 사라진다. 병원 앞에서 질척거리는 주리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이전에 연진이 연주했던 음악에서 환상을 보았던 그는 주리에게 넘어간다. 이 음악은 그에게 걸린 주술이다. 이런 그에게 다가오는 한 인물이 있다. 같이 연수 받던 기석이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기성의 것과 비슷하다. 어지간해서 잘리지 않는 공무원이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올빼미 눈을 가진 여자를 만나는 것도 이 주술 걸린 음악을 들으면서다.


2부로 넘어가면 기성을 둘러싼 음모와 그가 선택된 이유가 나온다. 기성에게 일어난 일들이 치밀하게 꾸며진 일임을 하나씩 보여준다. 왜 이들이 이런 일을 벌일 수밖에 없는지, 이 일에 가담한 사람들은 누군지, 가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그리고 올빼미 눈을 가진 여자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려준다. 이 일은 두려움과 탐욕과 이기심이 뒤섞여 일어났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작가는 이전 작품들과 달리 이 일을 확장시키거나 과장되게 표현하지 않는다. 전작들에서 본 피 튀기거나 거대한 공포의 존재가 이 소설에서는 없다. 약간 아쉬운 대목이다.


전작들보다 더 매끄럽게 진행된다. 거칠고 투박하고 참혹한 장면들이 많이 사라졌다. 큰 한 방이 부족해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김동리의 <을화>가 소설 속에 인용된다. 실제 이 소설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다. 작가에게 이 작품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읽으면서 의문 하나가 생겼다. 양력 생일을 이용한 주술이다. 무당이라면 음력으로 계산하지 않나? 최근 무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니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후일담으로 나온 이야기들은 보통 여운을 지우는데 이 소설은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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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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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한때 열심히 읽은 적이 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의 소설 읽기를 멈추었다. 이 멈춤이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었다. 우선 순위가 다른 작가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그녀의 소설을 사고, 읽는다. 하지만 이전처럼 읽지는 않는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예전에 아주 많이 읽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몇 권 되지 않는다. 연달아 몇 권의 소설을 찾아 읽던 시절 이야기다. 지금은 한 작가의 작품을 몇 권 연달아 읽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한 권 읽으면서 이 시리즈 한 번 달려보자고 마음만 먹었던 적도 있다. 다른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서점 검색하니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가 몇 편 보인다. 이 책 이전에 한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출간된 책에 비해 적게 읽은 것은 내 취향과 그때그때의 사정 때문이다. 최근에 소설가의 에세이에 대해 이전보다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데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조금 더 사실을 덧붙이면 유명 작가의 에세이 한정이다. 아직 이 속물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에세이들을 읽다 보면 나 자신이 얼마나 작가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작가에 대해 몰랐던 사실은 또 어떤가. 에세이의 매력은 바로 이런 부분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느 정도 그 부분을 채워주었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쓰기, 읽기, 그 주변 등이다. 쓰기에서 나의 관심을 끈 부분은 일기처럼 쓴 글들이다. 매일 두 시간의 목욕과 씨 없는 피오네 포도를 먹는 생활의 반복이 시선을 끌었다. ‘비밀’에 다루어지는 지우개 이야기는 한 편의 짧은 소설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책은 에세이와 단편 소설이 같이 실려 있다고 한다. 그 차이를 찾아내는 것도 한가하면 재밌는 일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에세이들이 어디에 연재된 것인지, 나오지만 출처 불명도 몇 편 있다. 이런 글은 어디서 찾은 것인지, 아니면 소설인지 살짝 궁금하다.


읽기에서 가장 많은 선입견과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표적인 선입견은 책을 많이 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읽고 추천하는 책들을 보면서 놀랐다. 그녀의 추천을 보면서 인터넷 서점에 검색한 책들도 상당히 있다. 번역된 책도 있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아쉽다. 이렇게 작가들의 추천 소설들이 항상 나의 독서 범위를 넓혀주지 않았던가. 물론 이렇게 해서 점점 더 많은 책을 사게 되고, 더 많이 쌓이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가 번역도 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의 많은 소설가들이 생계 때문에 번역가로 활동하는 것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먹는 것을 좋아하니 작가의 먹방은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사계절 꽃 이야기는 나와 조금 거리가 있다. 잠시 추억 속에 빠져들어 어릴 때 동네 풍경을 떠올린 순간도 있다. 성인이 된 그 동네에 가서 너무 작고 바뀐 모습에 얼마나 놀랐던가. 하지만 지금도 그 동네의 풍경은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아련한 추억이여! ‘메밀국숫집 기담’은 한 번 가서 배부르고 맛나게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취향에 맞지 않는 글과 문장도 있고, 너무 파편적이라 집중이 힘든 이야기도 있다. 결코 짧지 않는 기간의 글이다 보니 나중에 남편과 이혼한 이야기도 나온다. 취향과 상관없이 이래저래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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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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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메트르는 나에게 스릴러 작가로 강하게 인식되어 있다. 그런데 그가 콩쿠르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솔직히 말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장르문학도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놓고 몇 년을 묵혀두다 이제야 읽었다. 뭐 그의 대표작인 ‘형사반장 베르호벤 3부작’도 다 읽지 않았는데 말이다. 베르호벤 3부작도 이제 마지막 한 권 <카미유>만 남았으니 올해 안에 읽을 예정이다. 나의 중구난방 독서를 떠올리면 자신할 수만은 없다. 여기에 이 <오르부아르>가 프랑스 현대사 100년을 다루는 소설 중 첫 권이라고 하니 다음 작품들도 읽어야 한다.


기존 소설과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조금 취향을 탄다. 특히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등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종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프랑스 정찰병이 죽은 이유를 발견한 후 포탄 구덩이에 파묻힌 알베르와 우연히 그곳에 묻힌 알베르를 구하다 포탄 파편에 얼굴 반쪽을 잃은 에두아르가 대표적이다. 특히 알베르의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은 읽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다. 모르핀 중독에 빠져 방에만 머물고 생기를 잃고 얼굴 복원마저 거부한 에두아르는 ‘왜?’라는 의문과 함께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 전투를 촉발하고 돈을 위해 어떤 짓이나 하는 프라델 중위가 더 공감하기 쉽다.


소설의 앞부분은 전쟁 마지막에 벌어질 수 있는 사건과 참혹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냥 종전 합의를 기다리면 되는데 지휘관들의 욕심은 병사들의 피를 요구한다. 이 피는 자신들의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포탄 구덩이에 생매장될 뻔한 알베르가 말 머리 속 작은 공기와 에두아르의 도움 덕분에 생명을 구하는 장면은 급박함보다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둘은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는다. 알베르는 늑골이 부러졌지만 다른 큰 문제가 없는 반면 에두아르는 아주 큰 부상을 당했다. 마약만이 그의 고통을 잠시 잘 재울 수 있다. 상처 부위에서 풍기는 악취도 대단하다. 정석대로라면 후방 병원으로 후송된 후 가족의 품으로 가야겠지만 에두아르는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 겁쟁이 같은 알베르가 신분을 위조한다.


전쟁이 끝난 1년 뒤 프라델 중위는 에두아르의 누나를 만나 결혼한 후 승승장구한다. 그 이전에 전쟁 물품을 팔아 사업의 기본 자금을 마련했다. 그의 주변에는 권력자의 자식들이 머물러 있다. 이들이 그의 사업에 좋은 배경이 된다. 그는 전쟁 당시 마구 파묻힌 병사들을 파내어 제대로 매장하는 사업에 뛰어든다. 사업을 따내면 큰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욕심은 정상적인 사업 진행이 아니다. 제대로 된 관을 사지 않고 크기를 줄여 비용을 줄이고, 프랑스어를 모르는 외국인을 싸게 고용해 대충 일을 처리한다. 이들은 신원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들키지만 않으면, 들켜도 보고서가 올라가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예상하지도 못한 한 공무원이 이 사업의 문제점을 파헤쳐 보고한다.


승승장구하는 프라델 중위와 달리 알베르는 전후 불경기에 직장에서 해고되고 샌드위치맨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그의 곁에는 에두아르까지 있다. 그를 위해 모르핀을 사야한다. 이 소심한 인물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행사해 대량의 모르핀을 훔친다. 에두아르는 현실에 돌아올 마음이 없다, 그러다 한 가지 엄청난 사기극을 생각해낸다. 이 사기극의 문제점을 회계사인 알베르가 지적한다. 이때 에두아르의 누나 마들렌이 그를 집으로 초대하다. 에두아르의 아버지 페리쿠르 씨가 아들의 상실에서 느낀 감정을 알베르를 통해 조금이나마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나중에 페리쿠르 씨의 은행에서 일하게 되고, 마들렌이 프라델 중위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두아르가 계획한 사기극은 전사자 추모를 이용한 것이다. 유가족과 지역 단체 등에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팜플렛을 보내고 선금을 받는 사기다. 돈은 받지만 물건 제작은 없다. 예정된 날까지 돈을 받은 다음 외국으로 도망치는 계획이다. 목표액은 100만 프랑이다. 그런데 이 사기를 위해서는 팜플렛 제작 등을 위해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하다. 페리쿠르 씨 은행에 취직해 돈을 조금씩 모은다. 돌려막기 방식이다. 팜플렛에 들어갈 그림은 에두아르의 작품만으로 충분하다. 그의 특이하고 탁월한 그림은 나중에 그의 아버지가 기획한 전승기념탑에도 채택된다.


에두아르가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을 준 인물은 주인집 딸 루이즈다. 이 소녀와 어울리면서 그는 마스크를 만들어 쓰고 활기를 뛴다. 에두아르가 이 대단한 사기극을 기획하게 된 시기도 이때다. 처음에 에두아르와 알베르는 이 사기극을 두고 갈등하고 대립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알베르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에두아르가 만든 말머리 마스크는 알베르에게 편안함과 용기를 준다. 표지에 나오는 말머리 마스크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이다. 과연 이 사기극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프라델 대위의 불법 행위와 비교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또 하나 읽으면서 사회에 나온 프라델 대위와 알베르가 어떻게 만날까 하는 부분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알베르는 그날 이후 프라델 대위만 만나면 오줌을 지리고 더욱 움츠린다. 이 프라델은 엄청난 바람둥이이기도 하다. 마들렌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프라델이 정부를 속인 것처럼 그의 작업부들도 그를 속였다는 사실이다. 그의 파멸을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장인 페리쿠르 씨인데 그는 결혼 당시 이미 혼전계약서로 사위와 딸 사이에 거리감을 두었다. 마들렌도 임신한 후 그에게 관심이 없다. 이런 인물들이 전후 혼잡하게 엮이고 꼬인다. 후회와 두려움과 대책 없는 자신감 등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와 뒤섞여 한 편의 멋진 소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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