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찬 여행기
류어 지음, 김시준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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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난 후 옮긴이의 말을 보니 나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많은 것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 그 첫 째가 풍랑에 휩쓸리는 거선을 묘사한 것인데 러시아와 일본의 대치와 전운과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 몸부림치는 중국을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배위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배경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읽을 당시 뭔가 비유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많은 비유가 있을 것이라곤 짐작조차 못했다. 이렇게 시작한 소설은 한 선비의 유랑으로 이어진다.   

 

 유랑이 단지 방랑으로 이쪽 저쪽을 보면서 관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실존 인물들을 풍자하고, 가혹한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고 고통 받는 민초의 삶을 잘 살려내었다. 가끔 읽는 중국이나 우리의 역사 소설이나 책에서 만나는 혹정과 폭정이 여기에 나온다. 읽는 순간 분노가 치솟고 연민을 느끼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 저렇게 태연하게 벌어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뭐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도 그런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조금은 이해된다.  

 

 책 속에 나온 비유에 대해서는 옮긴이가 잘 설명해 놓았으니 그것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대목과 관심을 둔 장면이 몇 곳 있다. 재미 측면에서는 역시 일가족 몰살 사건을 다룬 부분이다. 일가족이 모두 죽었는데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관리 깡삐가 소문과 자신의 아집으로 관계없는 며느리와 그 아버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고문한다. 이 관리가 청렴하지만 그 청렴함이 자신의 기준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일반 백성들이 조금만 잘못을 하여도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이야기 앞에 다른 관리 위센의 이야기에서도 만나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집착하여 좌우를 둘러보지 못하고, 다른 관료들의 조언이나 증언을 뇌물 등으로 이해하는 현실에선 청렴함과 강직함이 오히려 부패한 관료보다 더 위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두 관리가 실제 인물들을 모델로 하였다니 이 또한 재미있는 부분이다.  

 

 일가족 몰살 사건이 재미난 것은 이 대목을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처럼 전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잘 구성하고 멋진 반전이나 놀라운 추리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옛 이야기처럼 풀어져 나오는데 어느 부분에선 한 편의 무협 같은 부분도 있다. 마지막 해결 부분에서 과장되고 황당한 점이 있지만 읽는 재미가 가장 뛰어나고, 속도감과 그 시대의 풍경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은 그 사이마다 하나의 다른 이야기를 끼워 넣고, 백성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과 법보다 가깝다는 주먹의 힘이 동시에 드러나면서 양쪽으로부터 고통 받는 현실이 잘 표현되어 있다.  

 

 관심을 둔 장면은 갑자기 라오찬의 이야기가 아닌 그와 알고 있던 선쯔핑의 하루 때문이다. 힘들게 산골을 건너면서 한 산골처녀와 만나 고담준론을 펼치고, 새로운 사상과 철학과 현실 비판을 펼친다. 소설 전개 상 상당히 돌출된 부분이다. 무수한 한자와 고사성어와 인용은 얼핏 머릿속을 지나쳐가지만 그 정확한 맥을 짚을 수 없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 역시 저자가 태주학파라는 종교를 믿으면서 그 교리를 설파한 것이라고 한다. 북권남혁에 대해서도 작가가 그 시대를 어떻게 보는지 잘 알려준다고 하는데 이 또한 옮긴이의 말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기 전 먼저 이 부분을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라오찬은 작가 류어의 분신이다. 자전적 소설로 평가되는데 그의 이력을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 곳곳에 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나 용어가 나오는데 이것이 작가의 오류인지 아니면 시대를 잘못 알고 있는 나의 탓인지 불분명하다. 또 이런 문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상당히 읽는데 고역일 것이다. 만약 책 속의 수많은 주가 앞에 나왔다면 더 힘들게 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뭐 그 때문에 정확하게 그 뜻을 모르고 지나간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100년 전 소설이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도 적용될 내용이 곳곳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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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장조의 살인
몰리 토고브 지음, 이순영 옮김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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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있다. 그의 피아노 선생이 건반에서 그의 두 손을 떼어낸다. 그가 재능없음을 말한다. 피아노로 베토벤 소나타를 멋지게 치고 싶어 하는 이 남자가 화자이자 주인공인 프라이스 경위다. 그의 연주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으면 옆집에서 박자에 불만이 있다고 찾아올 정도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대단하다. 그런 그에게 그 날 밤 한 여자가 찾아와 편지를 전해주고 간다. 그 편지는 바로 로베르트 슈만으로부터 온 것이다.   

 사실 서양 고전 음악가들을 이야기하면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모른다. 이름을 알고 있다고 하여도 음악을 듣고 아! 누구! 할 정도로 아는 사람은 또 극히 일부다. 한때 열심히 서양 고전 음악을 듣고, 나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나의 음감이 너무 형편없어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좋아하고 즐기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니 이 소설 속 슈만의 곡들에 대한 지식이 사실은 없다. 다만 그의 유명한 이름을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배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부족한 지식이 이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지만 충분한 재미를 누리는 데 약간 지장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슈만으로부터 온 편지를 받고 프라이스 경위가 찾아가서 듣게 되는 이야기는 조금 황당하다. 슈만은 자신에게 계속 A음이 들린다는 말한다. 주변에 있는 자신을 비롯해서 누구도 그 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 시대에 엄청난 호평과 찬사를 받던 천재 음악가가 정신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드러난 사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 증상에 의문을 던지고, 사건을 만들어낸다. 비록 그것이 사실과 같지 않다고 하여도 읽는 동안은 흥미진진하다.  

소설은 프라이스 경위의 시선을 따라 진행된다. 슈만의 정신병과 그의 과거와 아름다운 아내 클라라를 둘러싼 소문을 배경으로 19세기 독일 뒤셀도르프의 풍경을 그려낸다. 앞으로 새롭게 떠오를 브람스나 이미 그 이름을 떨치는 리스트를 등장시켜 우리에겐 전설처럼 느껴지는 인물들을 우리 곁으로 데리고 온다. 거기에 더해 하나의 살인사건을 등장시켜 미스터리 요소를 만들어낸다. 어떻게 보면 화려한 만찬을 펼쳐 보여준 것이다. 음악, 예술사, 정신의학, 미스터리가 녹여져 있으니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는 사실 모두 읽고 난 지금 불만이다. 사심 없이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지만 결과로부터 그 과정을 만들어낸 느낌을 준다.  

 이 소설 속에서 놀랍고도 관심이 생기는 장면이 있다. 하나는 슈만이 이중인격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때 그가 동성애자였다는 추측이다. 어디까지가 작가의 창작이고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슈만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동시에 브람스와 클라라의 연인관계는 앞으로 다른 책이나 정보를 더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그 시대와 장소를 잘 모르지만 전혀 주저 없이 진도가 나간다. A장조를 둘러싼 비밀은 사실 약간 억지처럼 느껴진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중요한 조연을 해줘야 할 듯한 인물이 힘없이 사라진 것이다. 후퍼를 미끼로 감옥을 나온 튀링어가 대표적이다. 중요한 단서를 전해주거나 그를 속였다는 문장이 나와야 하는데 보지 못했다. 혹 내가 놓친 것일까? 미스터리 소설로는 조금 힘이 약하지만 19세기 음악가를 등장시킨 소설로는 좀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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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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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방랑>의 완결편이란 설명에 혹했다. 물론 이것보다 후지와라 신야란 작가의 이름에 더 혹했다. 먼저 읽은 <동양기행>에서 그가 걸어온 길들과 사진은 기존에 여행서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산산조각내었다.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문장과 주저 없으면서 거친 듯한 사진은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찾게 만들었다. 그런데 <동양기행>에서 맛만 조금 본 인도의 완결편이라니 그냥 지나가기 힘들다. 그리고 사람의 시체를 먹고 있는 개의 사진 한 장은 이런 마음을 더욱 부채질했다. 물론 강한 인상도 주었다.  

 

 첫 문장과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도 여행의 진수를 만나겠구나 기대했다. 하지만 곧바로 1995년 일본 열도를 경악하게 만든 옴진리교 사건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정확하게는 옴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의 개인사와 그를 둘러싼 환경을 통해 그 사건을 다시 보기 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수많은 보고서와 자료가 일본에선 넘쳐났겠지만 나에게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참혹하고 거짓말 같은 사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 때문에 세부적이고 핵심적인 이야기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고 있다. 이후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이 사건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사건을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어린 시절 자랐던 고장으로 가서 한때 열심히 외었던 수은 중독인 미나마타병을 통해 그와 현대 일본을 보는 것이다. 옴진리교가 왜 그렇게 국가를 부인하는 무시무시한 테러를 하게 되었는지 작가는 하나의 병을 통해서, 그리고 그가 가르침과 깨우침을 받았다는 인도의 요기를 통해 풀어낸다. 그 과정이 조금은 기대했던 내용과 너무 달라 혼란스러웠지만 그 시도와 접근 방식은 상당히 신선하다.  

 

 다섯 장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옴진리교 사건의 발생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고, 다음 부분은 한 독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경험한 인도의 풍경과 삶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놀라운 황천의 개를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계속 주입 받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이니 하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이며 관념적인지 알게 된다. 물론 인도의 풍경이 결코 올바르다는 것은 아니다. 수사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인간 본연의 모습보다 보여지기 원하는 모습으로 변한 인간의 허상을 자신의 경험과 명상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20대 인도여행의 경험을 말한다. 인도의 할리우드라고 할 정도로 상업화되고 변질된 수행을 보여준다. 60년대 학생운동과 히피 정신이 어떻게 변했고, 그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양의 종교에 귀의했는지 말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풀어내는 작가의 말을 백 퍼센트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 동의한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변한 종교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들을 믿지 않는 작가의 글들은 한두 해 인도를 다녀온 후 전문가처럼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삶의 경험을 통해 내화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너무 단순화한 듯한 점도 있다.  

 

 이 세 부분이 전혀 상관없는 듯 전개되지만 자세히 읽다보면 결국 옴진리교 사건과 연결된다. 미나마타병과 인도와 집단화된 요가의 풍경은 결국 현대의 굴절되고 왜곡된 현실의 파편이다. 나쁘지 않은 시도에서 만들어진 모임이 결국 종교로 발전하고, 엄청난 테러로 표출된 현실에서 작가의 과거 인도 여행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풀어낸다. 그런데 이것이 결코 낯설지 않다. 인도라는 장소와 그 영성의 경험이 과거와 현재의 작가를 거쳐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라 조금 낯설지만 다시 한 번 더 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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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걷다 - 2009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 Nobless Club 11
김정률 외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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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문학을 대표하는 열두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무협소설로 판타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들이기에, 혹은 이미 무협에서 그의 작품을 보기 힘들어진 작가도 보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그들의 초창기 작품과 최근에 나온 작품들의 발전을 본 경우거나 처음으로 만나게 된 단편들의 경우는 상당한 기대감과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호기심을 자아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재미있었고, 대부분 만족을 주었고, 새롭게 이 작가들의 단편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열두 작가의 단편 열셋이 실려 있다. 유일하게 두 편이 실린 작가는 진산이다. 아직도 기억하지만 그녀의 등단은 하이텔 무림동이다. 물론 남편인 좌백을 만나게 된 계기도 그곳이다. 얼마 전 이들의 지하서고(?)를 보았을 때 부럽고, 그들의 애정이 묻어나는 책들로 서고에 대한 나의 꿈을 다시 불태우기도 했다. 예전에 무림동에서 그녀의 작품들은 장편보다 단편이 너 낫다는 말들이 꽤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 자신이 무협의 단편 가능성을 그렇게 높게 보지 않았던 시기다. 이런 선입견 때문인지 그녀의 단편들이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의 판타지 두 편을 읽으면서 더 성숙해지고 매끄러워진 글들 때문에 그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음유시인을 주인공으로 한 권의 단편집을 내놓아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 읽을 때는 몰랐는데 다른 이의 지적으로 작가들의 순서가 가나다 순서임을 알게 되었다. 이 순서가 책을 읽는데 조금 들쑥날쑥한 부분도 있지만 나름대로 즐거움을 준다. 특히 김정률의 <이계의 구원자>는 자신의 특징인 이계 진입물로 지극히 남성적이면서 파괴적인 특성을 재미위주로 살려내었다. 장편은 취향에 맞지 않아 읽다가 말았는데 단편이라 부담이 없었다. 문영의 <구도>는 자객 형가를 형가의 시선이 아닌 개잡이의 시선으로 감상과 그리움을 풀어내었다. 형가 이야기의 새로운 접근이다. 민소영의 <꽃배마지>는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을 표현해내었는데 그 과정과 결말이 조금 아쉽다. 윤현승의 <인카운터>는 날로 발전하는 작가의 세계관과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흑호>에서 <하얀 늑대들>로 발전한 그 결과 이번에 다시 한 번 더 확인했다. 최근에 나온 장편 소설도 관심이 생긴다.

이재일의 <삼휘도>는 사실 가장 많이 기대한 작품이다. 언제 완간될지 모르는 <쟁선계>를 기다리다 이미 지친 나이기에 단편이나마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을 주었다. 그의 필력은 말할 것 없이 매끄럽고 화자를 바꾸면서 진행하는 복수는 끝을 알 수 있지만 무협 특유의 재미를 잘 살려내었다. 이미 그의 단편집 <칠석야>에서 충분한 재미를 누렸으니 개인적으로 단편들보다 죽기 전에 <쟁선계>의 완간을 더 보고 싶다. 전민희는 항상 그녀의 첫 작품을 생각하게 한다. <룬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1권과 끝 권의 발전과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단편은 처음이다. 이번 단편 <11월 밤의 이야기>는 조금 흐릿한 풍경이라 조금 아쉬움을 느낀다. 더 흐릿하면서도 이야기를 아련하고 아프게 풀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조진행의 <월아 이야기>는 꿈을 다룬 다른 이야기와 차별성이 거의 없다. 장편을 써 온 그에게 아직 낯선 모양이다.

사실 나의 20대에 좌백처럼 강한 인상을 준 작가도 드물다. 무협의 신세대 기수였던 그가 이제는 완숙한 경지에 도달했을 텐데 아쉽게도 그의 무협작품은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절필 상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협소한 무협시장에서 발을 뺀 것은 현실의 어려움 탓일 것이다. 진산이 로맨스 소설을 최근에 더 많이 낸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최근에 좌백이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단편은 sf와 판타지의 결합물이다. 조금 낯설다. 무협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이것은 나만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면 <천마군림>이라도 빨리 완성해주길.

<앵무새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의 하지은은 이름도 낯설고 처음 만난다. 그녀의 장편의 이름은 만난 적이 있지만 그녀는 기억 못한다. 이번 단편을 읽으면서 한때 판타지에서 유행했던 가볍고 재미있고 톡톡 뛰는 문장들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다른 작품들의 성향이 어떤지도 궁금하다. 한상운은 이번에도 비열하고 비정한 강호 세계를 보여준다. <거름 구덩이>란 한 장소와 등 돌리면 칼을 꼽는 강호 현실을 극대화시켜 인간 속에 숨어 있는 어둠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무협작가 중 단편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작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홍성화의 <마그니안>은 큰 기대가 없었는데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상당히 재미있다. 특히 마지막 저주에 대한 마녀의 설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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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2010-03-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좌백님, 이번에 교보 북로그에 새 무협 연재 시작하셨더라구요. 혹시 보셨어요? 기대중입니다.
 
링컨의 우울증 - 역사를 바꾼 유머와 우울
조슈아 울프 솅크 지음, 이종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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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마지막 장에 자신의 목적을 밝힌다. “링컨이 생활하고, 고통받고, 성장하던 모습을 가능한 명석하게 보여 주자는 것”(396쪽)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책의 목적이자 저자가 계속해서 말하는 것은 링컨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우울증을 통해 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화려한 링컨의 업적이나 전설을 기대했다면 아마 책을 빨리 덮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우울증이 어디에서 왔는지, 유머로 우울증을 맞서 싸운 그와 우울증이 그의 위대함에 끼친 영향을 주제별로 연대순으로 그려내고 있다. 시간 순으로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후대에 그를 칭송하고 전설화한 수많은 이야기가 아닌 인간 링컨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젊었을 때 사랑했던 여인 애너 메이스 루틀리지가 죽은 후 친구들이 그의 자살을 걱정했다는 일화나 우울증으로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들은 피상적이자 하나의 이미지로만 알고 있던 링컨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울증. 사실 어릴 때는 이 병이 얼마나 위험한 병인지 몰랐다. 이 증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다 책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위험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증상으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가끔 역사 속 위인들이 힘든 고난과 병마를 이겨내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을 보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한 나에겐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증상이나 병에 대한 경험과 사실들을 만나면서 그 위대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이제 그 위대함에 한 명 더 이름을 올린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미국의 역사에 대해 사전 지식이 있다면 좀더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링컨에 대해서는 어린이용으로 나온 위인전 중 일부와 전설이나 신화처럼 부풀린 이야기만 알고 있던 사람에겐 그도 우리 같은 평범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물론 그의 삶이 나처럼 평범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사랑에 아파하고, 자신의 삶을 잠식하는 우울증과 함께하면서 유머로 이를 승화시키고 이겨내는 장면들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저자는 링컨만을 이야기하기보다 그 시대의 풍경과 삶도 같이 보여준다. 그 시절의 의학이나 사람들의 삶을 현재의 관점이 아닌 그때의 관점으로 보여주면서 현재와 달랐던 그들을 그들의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그렇다고 현재의 시선을 없앤 것은 아니다. 기본 시각에선 변함없이 현대의 성과물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다만 그 시대의 한계를 말해주면서 그를 똑바로 보게 만든다. 이것은 역사나 한 인물을 바라보는데 매우 중요하다.  

 

 책 속 많은 이야기 속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들이 있다. 그가 성취한 위대함을 개인적 고통에 대한 승리로 보지 않고, 우울증이라는 기질로부터 자연스럽게 성취된 것으로 본다거나 그의 생애를 변모의 스토리가 아닌 통합의 스토리로 보고 이 내면의 힘이 위대한 사업의 불을 계속해서 발화시키는 기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남북전쟁에서 양측의 공통 잘못을 인정하고 공통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고 그 누구에게나 자비를!”(352쪽)를 외친다. 이 연설문의 일부가 대중적인 표어가 되지 않고 그들이 끝없는 징벌을 바라면서 그 당시에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왔고 현재까지 그 여파를 미쳤다는 점에선 그의 암살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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