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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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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란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한자로 뭐일까? 였다. 破瓜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 작가는 후기에 破果도 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독자에게 어느 한자가 당신의 결론인지 묻는다. 정말 불친절한 후기다. 시작은 분명 破果인데 破瓜를 같이 놓으니 사실 헷갈린다.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도 어느 한자가 더 적합한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10대나 2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면 당연히 후자지만 65세 살인청부업자 할머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떻게 보면 전자에 더 어울릴 것 같지만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면 후자도 무시할 수 없다. 나의 결론을 말한다면 솔직히 상관없다. 둘 다 모두 가능하다.

 

65세 할머니 살인청부업자 조각. 그녀는 자신의 직업을 방역업자라고 부른다. 문맥을 보면 수많은 신부름센터 중 하나 같이 보이지만 할머니가 속한 조직을 보면 소지섭 주연의 <회사원>이 연상된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엄청난 조직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월급쟁이처럼 일하는 것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청부살인을 방역으로 부르는데 이것을 위해 그녀는 늘 운동을 한다. 나이를 넘어선 엄청난 근육을 보고 감탄하거나 놀라는데 이 때문에 방송작가도 엮인다. 그녀 직업 상 당연히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늙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점점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은퇴를 고민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바로 이때 과거의 한 방역으로 인한 인연이 슬며시 나타난다.

 

할머니 킬러 조각 이야기다. 동시에 그녀가 살아온 시대에 대한 극단적 현실 표현이다. 살인청부가 난무하는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할 수 없다. 대단히 비현실적인데 읽다보면 한국형 느와르 소설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 지점까지 작가가 나가지 않았다. 액션보다 조각의 심리 묘사와 변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액션 비중이 적다고 느와르 소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작가가 그런 지점까지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적기에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고 장르소설에서 빌려온 장치와 설정마저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이것을 잘 사용하여 재밌고 흥미로운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었다. 뭐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장르소설의 외형 속에 잔잔히 흐르는 조각의 마음은 순정소설의 그것과 닮아 있다. 자신을 킬러 세계로 인도한 류에 대한 애정이 바로 그것이다. 조각의 회상 장면을 보게 되면 그 시대 사람들의 삶 한 자락이 잘 나타나 있다. 많은 형제자매와 무관심한 부모. 식모 생활. 실수와 오해. 술집 생활 등. 여기에서 뻔한 전개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류의 존재 때문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 실력을 가졌고, 이것을 이용해 돈을 번다. 조각의 재능이 이 뻔한 역사의 전개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를 인도하는 새로운 세계는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보다 못하다. 삶의 안정을 전혀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류의 가정이 파괴되고, 류와 그녀마저 다른 업자들에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협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에 조그만 틈이 생기면 그 틈새로 수많은 변화가 들어온다. 조각에게 그 틈은 노쇠다. 노쇠는 일반적인 방역도 약간의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비밀을 엿보게 만든다. 살짝 드러난 비밀을 강 박사가 덮어주지만 불안한 그녀가 그의 주변을 맴돈다. 이런 그녀를 뒤따르며 엿보는 젊은 방역업자 투우가 등장한다. 먹이사슬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20년 전 방역의 피해자였던 투우의 호기심과 엇나감 감정이 변수를 만든다. 심리 묘사가 중심인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은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는 존재가 바로 투우다. 과거와 현재가 어느 시점에서 만나고 충돌한다. 그때 바로 새로운 인생의 실마리가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지지만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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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심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13
미하일 불가꼬프 지음, 정연호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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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볼가꼬프의 중편소설집이다. 표제작 <개의 심장>과 <악마의 서사시> 두 편이 실려 있다. 그렇게 긴 분량이 아닌데 읽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그것은 언제나처럼 러시아 이름 등이 입이나 눈에 익숙하지 않은 것과 내용과 전개가 상당히 난해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라도 좀 간단했다면 속도가 나고 좀더 집중하면서 재미를 누렸을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중반까지 상당히 고전했다. 이 고전 덕분에 머릿속은 복잡해졌지만 그 여운은 강하게 남는다. 몇몇 장면과 상황이 지금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작가의 출세작인 <거장과 마르가리따>를 읽기가 상당히 두렵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의 심장>은 어느 정도 설정을 알고 읽으면서 도입부를 오해했다. 개가 생각하는 것들이 이미 수술 후 상황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나 자신만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샤릭이란 떠돌이 개가 어슬렁거리는 장면은 의인화가 너무 잘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 개가 소시지에 유혹당해 필립 필리뽀비치 교수 집으로 들어간다. 이때만 해도 좋은 집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귀족개처럼 생각했다. 교수의 실험에 의해 새로운 존재로 바뀌면서 완전한 착각이었음이 드러난다. 이 실험방식의 실현 가능성 여부는 뒤로 하고 개가 사람처럼 바뀐다. 여기서부터 바뀐 존재 샤리꼬프의 전횡과 무례함과 파괴와 폭력 등이 펼쳐진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성향과 그 시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러시아 혁명 후 사회, 문화, 경제적 혼란과 어려움은 극에 달해 있었다. 과격한 사회혁명은 기존 삶을 완전히 바꿀 것을 강요하지만 이것이 모두에게 쉽게 적용될 리가 없다. 경제적 빈곤은 삶을 더 힘들게 만든다. 부르조아를 타도했지만 혁명세력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이것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 필립 교수의 집과 병원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소동이다. 주택위원회가 한 사람의 권력자에게 너무 쉽게 무너진다. 혁명이 뿌리내리지 못해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하기에는 그 후 러시아 역사가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의 법칙을 위반한 수술 때문에 필립 교수 일행은 고통 받는다. 샤리꼬프의 행동이 너무나도 많은 혼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때 “의사 선생, 인류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진화론적인 질서 속에서 매년 수없이 많은 대중으로부터 가치 없고 쓸모없는 사람들이 배출되어 나오면서도 이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유명한 천재들이 수없이 창조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오.”(191쪽)라고 말한 교수의 말 속엔 작가가 생각하고 느낀 혁명에 대한 반론이 담겨 있다. 어쩌면 이 말을 하기 위해 샤릭을 샤리꼬프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덧붙이자면 샤리꼬프가 된 후 이야기는 상당히 진도가 잘 나가고 흥미롭다.

 

<악마의 서사시>는 난해하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가 비약한다. 착각과 오해가 만들어낸 상황들이 이어지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파편적이라 전혀 몰입할 수 없었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넘어선 진행이다. 동문서답이 오가는 장면들이 이어질 때는 뭐지? 라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앞부분에서 급여 대신 생산품을 받을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전개다. 주인공의 착각에서 비롯한 실직이 새로운 모험으로 이어진다. 쌍둥이가 핵심인데 당사자는 이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또 그와 비슷한 이름을 둘러싼 오해는 다른 상황을 만든다. 이 두 상황이 뒤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읽으면서 하나로 연결하기가 어렵다. 그냥 달릴 뿐이다. 하나의 명령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인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라는 평을 제대로 감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뭔가 하나씩 머릿속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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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폴리스맨 - 자살자들의 도시
벤 H. 윈터스 지음, 곽성혜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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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정해진 세계를 다룬 미스터리다. 종말 직전에 일어난 한 의문스런 죽음과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는다. 자살처럼 보이는 죽음을 대부분의 경찰은 자살로 처리한다. 소행성 마이아와가 지구와 충돌할 것으로 예정된 세계에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거나 기존 생활을 포기한 상태다. 이런 사회 분위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살의 형태를 가진 죽음은 자살로 생각한다. 종말이 정해진 후 경찰력마저 엄청나게 약해진 상태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세상에 변수가 있다. 그것은 종말 때문에 정식 일정보다 빠르게 형사가 된 헨리 팔라스다. 그의 의심으로 모두의 죽음이 확정된 세계에서 살인자 찾기가 시작된다.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보험 회사 직원 피터 젤이 목매단 채 발견된다. 모두가 자살이라고 단정짓는다. 당연하다. 세계 곳곳에서 자살자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이 죽음에 더 이상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임무에 충실하고 강직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느끼는 헨리는 다르다. 이미 경찰의 행정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세계에서 숨겨진 진실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다른 동료나 상부 부서에서 이상한 놈 취급당한다. 누구도 그의 범인 찾기에 관심이 없다. 몇몇은 이미 경찰을 떠난 다른 사람처럼 떠나지 못해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참 형사가 제대로 된 수사를 한다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사건을 파헤치면 금방 단서가 나올 것 같은데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가 일했던 근무처에도 가고, 그의 집에 있던 메모를 단서로 누나를 찾아가보기도 한다. 근무처에서 하나의 과거 소식을 듣지만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다만 경비가 알려준 정보가 다른 단서를 쫓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누나는 왠지 모르게 자꾸 그를 피한다. 왜 피할까? 동료들의 비협조와 경찰 조직 붕괴와 사회 기본 시설 파괴에 따른 어려움 때문에 진도는 더디기만 하다. 어떤 때는 정말 자살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이런 의문을 부채질하는 것은 당연히 세계의 종말이다. 물론 이런 종말 때문에 사소한 범죄로 경찰서에 갇히는 것을 엄청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종말까지 갇힌 삶이란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다.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초반에 범죄자가 금방 잡힐 것 같았다. 아니면 자살로 결정되거나. 하지만 종말이 예정된 사회를 통해 삶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더디게 진행된다. 어쩌면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고 협업이 사라진 현실에서 결코 더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여동생 남편 실종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헨리 팔라스를 힘들게 만든다. 알 수 없는 사람에게 구타와 협박을 당하고, 종말을 피하기 위해 기도하라는 무리에 갇히기도 한다. 전혀 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이 없다면 앞으로 더 나가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소설은 바로 이 지점을 무리없이 연결한다. 단서가 하나씩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숨에 범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말을 다룬 수많은 소설이나 만화나 영화와 다르게 종말 전 세계를 다룬다. 죽음이 정해진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남은 시간을 보낼까 하는 의문을 하나씩 풀어낸다. 다른 곳으로 떠나는 사람도 있고, 자살로 현실을 바로 벗어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날까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 소설은 바로 후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풀어낸다. 금제가 풀린 세상에서 기본 욕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이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만든다. 그 와중에도 살인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강하고 깊은지 알 수 있다. 반면에 사회조직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현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뭐 이럴수록 더 강한 통제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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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보스 탐 청소년 문학 10
우르술라 포츠난스키 지음, 김진아 옮김 / 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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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게임이란 설정 때문에 예전에 읽은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이란 소설이 먼저 떠올랐다. 오래되어 희미해진 기억 속에 현실과 게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에레보스>나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이란 소설에서만 특별히 다루고 있는 설정은 아니다. 게임을 매개로 하는 스릴러 장르라면 거의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때문에 언론은 게임의 유해성을 부각시키는 기사를 내놓고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 하지만 소설이나 만화나 영화 등에서 이미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이 소설도 게임 중독에 의한 위험성을 강하게 부각시키지만 역시 과장된 부분이 많이 있다.

 

에레보스는 소설 속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게임은 딱 한 번만 할 수 있고, 두 번째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 세 번째는 게임 내용은 비밀로 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에레보스 CD를 잘 보관해야 한다. 철저한 비밀 속에 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게임 속 캐릭터가 누군지 현실 속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자기가 에레보스 속 누구라고 말하는 순간 게임을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게임 플레이어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강한 게임 중독을 유발하고 딱 한 번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독자에게 엄청난 즐거움이자 위험이다. 때문에 게임 속에서 캐릭터가 죽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게임 CD를 빌려 다시 깔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결과는 거부다.

 

처음 닉이 이 게임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냥 보통의 게임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보통 게임이 아니다. 자신이 누군지 알려줘야 하고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 대가는 엄청난 몰입도와 재미다. 닉 친구 콜린이 이 게임을 한 후 변한 것은 이 게임의 강한 중독성과 재미를 알려준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볍게 시작한다. 자신도 모르게 점점 빠져든다. 게임을 하지 못하는 순간은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 자신의 캐릭터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 빠지면 에레보스 속 전령이 요구하는 것을 현실에서 실행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게임 속 전령의 요구가 현실 세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 전체적인 고리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그 미션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지만.

 

게임소설은 언제나 강한 현실성을 부여한다. 플레이어가 그 가상 세계에서 현실처럼 경험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게임을 전혀 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픽이 엄청나게 발전한 현재를 생각해도 게임 속 장면은 엉성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이 소설에서 중요하지 않다. 플레이어가 느끼고 빠져들고 경험하는 것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플레이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과 그 결과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이 부분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게임 플레이어와 같은 경험을 하는 듯하게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경험을 플레이어가 같이 하는지도 모르겠다.

 

닉이 게임에 빠져들고, 캐릭터를 구하기 위해 전령이 시키는 일을 한다. 이 과정에 이상한 몇몇 장면을 보게 된다. 어떤 순간에는 전령이 요구 사항이 너무 엄청나 고민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에레보스 게임이 그에 대한 정보를 너무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읽는 순간 가장 섬뜩한 부분이다. 게임 운영자가 플레이어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설정은 뭔가 거대한 음모가 깔려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에 대한 답이 나왔을 때 이 엄청난 게임과 설정들이 왠지 너무 비약한 것 같았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닉과 에밀리의 관계가 발전하고, 그 과정에 에레보스의 음모가 밝혀지는 부분에 이르게 되면 앞에 설정한 것들이 힘을 조금씩 잃게 된다.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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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우 헌터스 1 : 뼈의 도시
카산드라 클레어 지음, 나중길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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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다 영화 예고편으로 먼저 만난 소설이다. 예고편을 보면서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이 있었다. 그런데 그 원작이 영화 개봉보다 조금 빨리 무려 3권이 함께 나왔다. 원작이 있는 영화가 나오면 원작을 읽은 후 보려고 한다. 영화의 이미지가 원작을 읽을 때 끼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소설은 조금 실패다. 소설을 읽으면서 클라리의 이미지와 마법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고편이라서 자동적으로 어느 수준에서 차단되었다. 예고편 몇 장면은 원작과 왠지 모르게 달라 의아한 부분이 많지만.

 

결코 적은 분량이 아니다. 거의 600쪽에 육박한다. 재미있다는 먼저 읽은 사람의 평은 회사 다니는 시간을 쪼개 읽은 나에게도 단숨에 읽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그 분량은 역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피곤한 일상으로 며칠을 보내다 어느 조용한 저녁 커피숍에서 그 절반을 단숨에 읽었다. 앞부분에서 그 재미와 속도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면 후반부는 새로운 이야기와 예상한 출생의 비밀과 예상하지 못한 전개들과 전투 장면 등으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해졌다.

 

이제 곧 16살이 될 클라리는 절친 사이먼과 클럽에 간다. 이곳에서 클라리는 이상한 장면을 본다. 그것은 한 아이가 묶여 있고 3명의 아이가 둘러싸고 있다. 폭력의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을 말리려고 하는데 싸움이 벌어지고 묶여 있던 아이가 죽는다. 이보다 더 이상한 것은 자신은 이 현장을 보는데 사이먼을 비롯한 다른 사람은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세 명의 아이들이 그녀가 본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바로 이 장면이 영화 속 예고편으로 나온 것이다. 클라리가 섀도우 헌터스들과 처음으로 만난 장면이다.

 

예고편을 보면 클라리가 이들과 만난 후 금방 악마를 사냥하는 섀도우 헌터스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원작은 1권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그녀에게 이런 재능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반면에 작가가 창조한 세계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복잡하게 엮어서 시리즈의 기초를 탄탄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 나오는 뱀파이어, 늑대인간, 마법사 등은 기존 판타지 소설의 설정을 어느 정도 따라가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 개인적으로 발렌타인의 존재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를 연상하게 만들었고,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의 대립은 영화 <언더월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뱀파이어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고스트 라이더> 속 바이크가, 섀도우 헌터스들이 몸에 새긴 룬 문자는 기존 판타지 마법의 변주로 다가왔다.

 

세계를 기존 판타지 설정을 빌려와 새롭게 만드는 와중에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섀도우 헌터스는 천사 라지엘의 피로 창조되었고, 네피림이라고 불린다. 천사와 인간의 결합이다. 네피림을 검색하니 구약에서 거인들인데 왠지 이름만 빌려왔지 다른 존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것과 상관없이 10대 소년들이 악마 사냥꾼으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훈련되었다고 하나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약간 과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것은 중요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어른들이 큰 역할을 하지 않거나 이 아이들이 큰 위협에 처할 때면 문득 문득 드는 생각이다. 어른 섀도우 헌터스가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더욱 강해지는 의문이기도 하다.

 

클라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드는 첫 부분에서 시작하여 섀도우 헌터스로 자란 아이들과의 만남은 거대한 서사의 조그만 시작이다. 클라리에게 금제된 것에 대한 의문과 거대한 악의 존재인 발렌타인의 등장은 그녀의 기존 관계를 뒤흔들고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 곳곳에 벌어지는 다양한 모험과 사건은 이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예상한 출생의 비밀과 예상하지 못한 전개로 이어지고 엮이는 이야기는 기존 판타지 소설에서 잘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주인공들을 10대 설정한 만큼 그들의 이야기는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그만큼 재미도 있을 것이다. 다음 권도 조용한 커피숍에서 몰입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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