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
모리 아키마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현학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미스터리가 밋밋하지만 재미있다. 제목에 미학강의가 있기에 설마 했는데 주인공은 진짜로 현학적인 지식을 쏟아낸다.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것이 일반 미스터리와 다르다. 탐정 역할을 하는 것은 별명인 검정고양이로만 불리는 24살 천재 교수다. 화자는 검정고양이의 조수 역할을 맡는 동시에 그와 묘한 로맨스를 만든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시 한 편 포함)이 실렸는데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화자의 전공이 에드가 앨런 포라는 것과 각 단편 앞에 포의 단편소설에 대한 요약 해설을 간단하게 실었다는 것이다. 이 단편이 미스터리와 연결되면서 풀어져 나오는 현학적인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집중하게 만든다. 물론 어떤 순간, 어떤 사람에게는 지루한 강의일 수도 있다.

 

포의 다섯 단편과 한 편의 시는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 <검은 고양이>,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도둑맞은 편지>, <황금충>, <까마귀> 등이다. 너무 유명한 단편들이다. 이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 때 읽은 후 벽에 대한 환상으로 공포감을 느꼈던 <검은 고양이>다. 한참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검정고양이와 검은 고양이의 명칭이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아마 이 단편이 없었다면 끝까지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언젠가 한 번씩은 읽은 것 같은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뭐 우리의 검정고양이가 멋진 추리와 해석을 곁들여주니 상관없지만.

 

일상의 미스터리를 다루다보니 조금 밋밋한 부분이 있다. 물론 <검은 고양이>를 매개로 한 <벽과 모방>은 여전히 섬뜩함이 있다. 하지만 이 서늘한 감정은 화자의 이야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검은 고양이>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면서 생긴 것이다. 단순히 추리만 놓고 본다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는데 현학적으로 풀어내는 상황들이 독특하다. 이것은 검정고양이가 “아름다운 진상만이 진상이란 이름에 값한다.”고 한 것과 연결된다. 인물과 상황에 대한 분석이 탁월하고 신선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풀어내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가득 든다. 뭐 이런 부분이 큰 매력이기도 하지만.

 

여섯 미스터리가 일상에서 발생한다. 죽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 죽음은 살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묵은 혹은 숨겨진 마음을 찾거나 어릴 때 충격으로 모방자의 삶을 살거나 착각으로 오해하거나 독특한 방식으로 사랑의 감정을 지우거나 집착으로 인한 발전과 분열을 경험하거나 엇갈린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모든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탐정 역을 하는 검정고양이는 완벽하다. 이 완벽함이 주는 재미가 상당한데 이에 도전하는 화자의 모습은 귀엽다. 이 때문에 이 둘의 로맨스가 은근하게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의 재미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 미스터리를 해설해주는 검정고양이의 현학적인 미학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에 적응하면 재밌고, 아니면 지루한 철학이 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여선수가 스키를 타고 내려온다. 한두 군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이 장면은 히다 카자미의 캐나다 합숙 당시 활강을 비디오로 찍은 영상이다. 이 영상을 보는 사람은 카자미의 아빠 히로마사다. 이때 한 인물이 그를 찾아온다. 딸이 속한 회사 산하 스포츠 과학 연구소의 부소장 유즈키 요스케다. 그가 온 것은 카자미의 유전자에서 ‘F패턴 유전자’가 발견되어 아버지의 유전자도 함께 연구하고 싶다는 요청 때문이다. 히로마사는 이 요청을 거절한다. 그 이유는 딸이 자신의 친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앞에 내놓고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낸다.

 

카자미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내의 자살로 인해 알게 되었다.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 낡은 신문지 조각을 발견하고 신생아 납치 사건과 아내가 출산한 적이 없다는 기록을 본다.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려야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미루었다. 그 사이 딸은 아버지처럼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톱스키어가 된다. 물론 이것은 밖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자기 딸로 키운다. 만약 유전자 검사를 하면 이 사실이 단번에 들통난다. 숨길 수밖에 없다. 이때 그녀의 생부일 수도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

 

그녀가 타려고 한 셔틀버스가 큰 사고를 일으킨다. 이 이전에 소속사로 모든 경기의 출전 선수 명단에서 카자미를 제외하라는 협박 편지가 왔다. 그런데 이 버스에 그녀의 팬인 것처럼 접근한 생물학적 아버지 가미조가 타고 있었다. 이 사고로 그녀는 큰 상처를 입었다. 히로마사도 마찬가지다. 협박 편지가 드러나면서 이제 단순 사고에서 범죄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히로마사는 카자미의 과거를 말하고 자수할 생각을 한다. 동시에 경찰이 발견한 단서를 통해 유즈키는 하나씩 진실에 다가간다. 다가가면서 밝혀지는 사실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다.

 

누가, 왜 이런 사건을 일으켰는지가 이야기의 한 축이라면 카자미나 신고 등이 가진 유전자 문제는 또 다른 한 축이다. 신고는 크로스컨트리를 하고 싶지 않지만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구소에 협력한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기타 연주다. 분명 그에게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경주에서 그 능력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없다. 열정이다. 목표다. 경쟁심을 느끼고 경주를 하지만 뒤쳐진다. 보통 열정과 목표가 있다면 더 노력해서 뛰어넘으려고 하겠지만 그에게는 없다. 타인에 의해 강제된 능력은 결코 빛을 발하지 못한다. 제목이 나온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스포츠 과학과 유전자와 숨겨진 과거를 이야기의 축으로 삼고 빠르고 간결하게 진행된다. 작가 특유의 구성과 전개는 역시 군더더기가 없다. 그만큼 빨리 읽힌다. 하지만 19년 동안 숨겨온 비밀도, 유전자 능력도 서로 유기적 결합으로 이야기의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숨겨진 비밀이 강하지 못하고 범인들이 결코 보통 사람의 범위를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약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도 실패했다. 어쩌면 내가 강한 내용에 중독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히로마사의 고뇌와 갈등이 깊이 있게 다루어져 있지 않다. 가벼운 읽을거리 그 이상은 아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멋진 책이다. 책에 대한 책 중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재미있다. 책에 대한 책이지만 모두 다섯 꼭지로 나눠 풀어낸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두 번째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읽기 전에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설명하는 것을 읽고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는 현재도 유효하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제대로 읽지 않고 해설서나 요약본을 읽은 책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책들에 영향을 받아서 아는 척한 것도 상당하다.

 

다섯 이야기 중 앞의 세 이야기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첫 이야기는 포르노소설과 프랑스 혁명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요즘 같이 직접적인 성묘사와 영상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프랑스 혁명 전의 포르노소설이 시시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다르다. 루소마저 포르노소설 <신 엘로이즈>를 썼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닐 것 같은데 책 속 그림을 보면 또 다르다. 노골적인 성묘사가 보인다. 이것은 다시 성과 권력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성과 권력을 관계를 아주 잘 풀어내었다. 래리 플린트의 멋진 비유가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앞에서도 말한 아무도 읽지 않는 책에 대한 것이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읽었지만 그 책이 인류사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코페르니쿠스뿐만 아니라 뉴턴의 <프린키피아>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 대한 멋진 해설을 붙인 번역서가 오히려 프랑스 과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은 두고두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여기서 우리가 가진 몇 가지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사례를 말한다. 그것은 뉴턴과 갈릴레오다. 현대 과학의 기초를 닦은 뉴턴이 연금술사였다는 사실과 실제 갈릴레오가 한 일이 그리 대단할 것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는 고전에 대한 해석이다.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란 제목인데 여기서 주로 다루는 두 저작물은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공자의 <논어>와 <성경>이다. 이 세 편의 고전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죽은 후 쓰인 책들이다. 제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말들이 글로 남은 것이다. 문헌학적으로 이 세 작품이 모두 소크라테스나 공자나 예수가 직접 쓴 것도 아니고 그 말들도 정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고전이나 종교적 권위에 기대야 하는 집단에게 있어 이것은 신성불가침한 말씀이다. 꿈보다 해몽이란 말을 이 책들의 해석보다 더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네 번째 이야기는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를 다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성과 양육이다. 쉽게 말해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교육에 의한 것인가다. 이 두 진영의 대립과 갈등은 읽는 내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현재까지도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내용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량도 가장 많다. 진화생물학, 우생학, 사회생물학, 유전공학,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이어지는 긴 이야기는 아주 섬뜩한 이야기도 가득하다. 특히 우생학이 사회생물학과 유전공학으로 이어졌다는 대목은 깜짝 놀랄 사실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의 번역 서문을 그대로 다시 실은 것이다. 이 이야기 역시 우리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상식을 깨트린다. 그리고 책의 학살이 과연 어떤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분명하게 보여주고, 현대 도서관 깊은 곳에서 보존만 된 책 학살되고 있는 책들이 있다고 할 때 진정한 학살자는 누군지 알려준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나 고전은 실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고정관념에 가깝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그 고정관념들은 어떤 논의의 출발점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책에서 갈릴레오를 다루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140쪽) 이런 통찰이 나오게 된 되는 책 곳곳에서 말하는 비판적 읽기와 하나의 사건이나 학설을 비교 대조해서 읽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일반적인 독자에게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균형 잡힌 독서도 어렵지만 원문에 대한 다른 번역을 비교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한두 번 거친다면 분명 그만큼 성장하고 나아갈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망아지.불만의 겨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존 스타인벡 지음, 이진.이성은 옮김, 김욱동 해설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존 스타인벡하면 내용도 잘 모르면서 신나게 읽은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가 먼저 떠오른다. 이 두 작품이 그의 대표적인 대작인데 굉장히 몰입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이 작품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 후 몇 작품을 더 읽었는데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취향이 바뀐 후에도 여전히 몰입이 잘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도 쉽게 생각했다. 하루 이틀이면 가능할 것으로. 약속과 산만해진 마음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역시 나의 입맛에는 잘 맞았고, 성장소설인 <붉은 망아지>보다 <불만의 겨울>이 더 흥미로웠다.

 

<붉은 망아지>를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예전에 출간되었다가 절판인 상태다. 이번에 그의 마지막 소설과 함께 묶어져 출간되었는데 독자의 한 사람으로써 반가운 일이다. 한 권으로 두 편의 소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만의 겨울>도 역시 출간되어 있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서평을 보니 번역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이 책은 아직 절판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좋은 소설이 절판되지 않고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누구나 하는 말처럼 번역하는 시대의 문장과 생각이 번역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중편 분량인 <붉은 망아지>는 목장 일꾼 빌리 벅에서 주인공인 조디에게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첫 장면의 인상이 소년의 등장으로 바뀐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조디가 주인공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망아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중심이 옮겨간다. 조디의 심리가 더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 심리 묘사는 조디의 감정을 통해 잘 드러나는데 기대와 흥분과 두려움과 불안 과 슬픔과 그리움 등이 섞여서 나타난다.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이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조금씩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또 각 장의 이야기는 성장의 관문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파이사노 영감 지타노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왜 그랬을까?

 

<불만의 겨울>은 몰락한 가문의 후손 이선의 심리를 아주 역동적이면서도 세밀하게 다룬다. 동시에 이선이 살고 있는 읍의 문제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처음 이선과 아내 메리의 대화가 나왔을 때만 해도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이선의 농담이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근길에 만난 은행원과의 대화나 그의 행동도 역시 산만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만난 사람이나 그를 유혹하기 위해 온 판매원을 대하는 행동 등을 볼 때 너무 정직했다. 약간 따분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더 나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선의 내면이 드러났다. 이때도 역시 설마하고 생각했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실천으로 옮겨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몰락한 가문의 후예. 재산도 없고 미래도 불안하다. 은행장은 아내의 유산을 예금으로 묶어두지 말고 투자하라고 유혹한다. 그의 아버지가 투자로 그 많던 재산을 날려버린 것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고민은 깊어진다. 가문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하다. 냉소적인 지식인인 이선은 비열한 방법을 계획한다. 이탈리아인 가게 주인 마룰로의 불법체류를 신고하고, 어린 시절 친했던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땅을 빼앗는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은행마저 털려고 한다. 한 번 뒤틀린 감정과 욕망은 다른 사람에게 정직하다는 인상을 남겨준 그의 도덕과 윤리를 심하게 뒤흔든다.

 

이선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려고 하거나 한 것을 읽을 때 한 편의 멋진 심리 스릴러를 읽는 듯했다. 욕망과 도덕심이 충돌하고, 아이들은 물질적 욕망을 순수하게 그대로 드러낸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이 바탕에 흐르면서 사회문제를 조용히 나타낸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행해졌던 일들이다. 이런 모든 문제들에서 가장 순수하고 정직하게만 보였던 그가 가장 추악한 욕망을 숨긴 채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역설이기도 하다. 이것이 또 그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란 점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잘못과 부패 등이 이것을 변명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마지막에 진실과 도덕심이 욕망의 탑을 무너트리는 과정은 순식간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희망의 끈은 존재한다.

 

“여자들이 정말 어렸을 때부터 세밀한 관찰을 통해 자신들이 직감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초를 쌓는다는 것을 알았다.”(269쪽)고 했을 때 이 통찰이 단순히 여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작가가 이선을 통해 들어다보는 삶의 순간들이나 욕망 등도 바로 이런 세밀한 관찰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세운 세밀한 계획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읽는 내내 이선의 불안한 감정들이 가슴속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이 감정들이 나의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마음 한자락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주의 인물
수잔 최 지음, 박현주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가 일품인 소설이다. 읽는 내내 리 교수의 솔직한 감정과 심리 변화에 놀랐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고록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동료 교수에게 온 폭탄의 폭발이다. 이 폭발이 잊고 있었던 혹은 잊고자 했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심장과 머릿속에서 터트렸다. 작가는 이 과정을 아주 세밀하면서도 치밀하게 풀어낸다.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놓치는 부분이 많다. 가끔 리 교수의 심리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결론이 나올 때 혹시 하는 마음이 든다.

 

처음에 리 교수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분명히 한국인인데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그가 한국에서 와 학위를 딴 후 교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이 알려지기 전까지 피부색에 대한 묘사도, 인종에 대한 설명도 없다. 의도적인 연출인데 이것이 뒤로 가면서 그가 겪게 되는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인류라는 것으로 묶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 이 피부색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에서 그런 설명이 빠진 것은 역설적이다.

 

요주의 인물이란 설명이 나중에 나온다. 용의자 대신 사용한 단어다. 이 단어는 언론을 통해 발표되어지는 순간 용의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변하게 된다. 폭탄이 터진 후 리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용기 있는 지식인이 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이것은 자신의 의도와 감정에 몰입하면서 몇 가지를 속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FBI가 그를 주목한다. 그가 숨긴 것은 그의 아내 에일린과 그녀의 전남편 게이더에 대한 것이다. 사건 후 그에게 온 한 통의 편지를 그는 게이더가 보낸 것으로 생각한다. 답장을 보내지만 반송된다. 리 교수가 생각한 폭탄테러범의 정체는 바로 게이더다. 이 사실은 그가 FBI에게 숨긴 것이다. 그의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의 현재를 설명하고 묘사한 장면들을 보면 황량하다. 누구보다 미국인처럼 살아가는 것 같은 그의 삶은 비어있다. 두 번의 결혼이 남긴 흔적은 유물처럼 집에 남아 있다. 유일한 딸은 자신의 삶을 찾아 어딘가로 떠났고 제대로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일상의 반복은 외로움과 회고로 가득하다. 이야기는 과거 속으로 빠져들고 그 속에서 과거의 그를 만나게 된다. 미국 대학에 와서 결혼 전 친구처럼 지냈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들에 대한 개인 감상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독실한 선교를 꿈꾸는 게이더와 그의 아내 에일린이 나오면서 변화가 생긴다. 에일린과의 불륜, 그녀의 임신, 출산과 아빠인 게이더에게 빼앗긴 아들. 이 격렬한 감정의 변화 속에 리가 보여준 행동은 냉정하고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다. 어쩌면 이때부터 에일린과의 관계에 틈이 생긴 것인지 모른다.

 

그의 첫 결혼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반면에 두 번째 결혼은 거의 설명이 없다. 일본 여자였다는 것과 그와의 결혼 생활을 힘들어했고 영주권이 나오자 떠났다는 것 정도다. 길지 않은 결혼 생활이었고 그의 삶에 끼친 영향이 별로 없었다. 현재 그의 삶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내는데 중요한 인물이 아닌 것이다. 이 소설이 미스터리로 분류된다면 역시 가장 먼저 폭탄을 보낸 인물이 누군가일 것이다. 그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게이더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먼저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렇다면 누구? 단서가 전혀 예상 외의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금방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중반 이후 그 사실을 깨달았다.

 

폭탄범이 누군지 하는 것과 함께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그것은 리의 마음이자 숨겨져 있던 과거다. 그의 솔직한 속내가 용기와 더불어 드러나면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결혼의 실패 원인을 인정한다. 동시에 그의 삶 한 곳을 지배했던 망령에서 벗어난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하나의 사건을 통해 한 노교수를 성장하게 만드는 성장소설이다.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수많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의 해설에서 모티브가 된 폭탄테러범 유나바머, 테오도어 카잔스키 사건을 언급한 것도 또 하나의 해석이다. 지금까지 사놓고 그냥 놓아두기만 한 그녀의 다른 소설들이 나를 부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