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케어
구사카베 요 지음, 현정수 옮김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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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이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었다. 작가가 가공의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는 노인 의료의 문제는 현재 우리에게도 진행중이고 앞으로 더욱 많은 문제를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루시하라 다다스가 주장하는 폐용신의 절단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많은 거부감이 생긴다. 일반 사람들의 사지 중 하나 혹은 네 개를 절단한 사람을 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쉽게 이행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각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으면서 이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되었다. 작가가 가공의 인물을 통해 말하고 있는 노인 의료의 문제는 현재 우리에게도 진행중이고 앞으로 더욱 많은 문제를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루시하라 다다스가 주장하는 폐용신의 절단을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많은 거부감이 생긴다. 일반 사람들의 사지 중 하나 혹은 네 개를 절단한 사람을 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는 한 쉽게 이행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각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용어를 알아야 한다. 하나는 폐용신(廢用身)이고, 다른 것은 제목인 A케어다. 폐용신은 마비 증세로 손상을 입어 영구적으로 불구가 된 신체다. 불구가 되었다면 전혀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거나 통증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폐용신이 갑자기 움직여 문제를 일으키거나 움직이지 않는 신체 때문에 생활의 불편이 생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간호하는 사람들이 환자의 무게나 갑작스런 움직임 때문에 허리 통증이나 기타 병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환자가 가벼우면 상관없지만 무거울 경우 이동에 더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고 환자 자신도 욕창 등에 더 자주 걸린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 폐용신의 절단이다. A케어의 A는 amputation에서 따온 것이다. 절단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한 단어 선택이다.

 

사지절단이라고 했지만 대부분 A케어를 받은 사람들은 폐용신만 절단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지가 모두 절단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팔 하나 혹은 팔 다리 하나씩 정도다. 그런데 독자에게는 이 절단이란 단어와 절단된 노인의 이미지가 거부감을 준다. 점점 늘어나는 노인 환자들과 간호 및 간병인들의 피로도를 생각할 때 우루시하라의 방법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한다. 물론 이것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자료도 충분히 없다. 단지 우루시하라의 이진자카 클리닉에서 폐용신 절단 수술을 받은 노인들 13명의 데이터만 있을 뿐이다. 이 데이터를 어떻게 신뢰할 것인가는 독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다.

 

A케어라는 놀라운 제안이 소설 전체에서 중심을 잡고 있다면 구성은 기존 소설과 완전히 다르다. 앞부분은 우루시하라가 A케어에 대해 쓴 책이고, 뒷 부분은 이 책을 쓰게 만든 야구로 슌타로란 인물의 주석이다. 이 둘은 거의 비슷한 분량이다. 우루시하라가 쓴 A케어 주장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새로운 노인 의료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 의사의 학설에 더 가깝다. 읽으면서 이 책이 소설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다. 반면에 야구로의 주석은 A케어에 대해 비교적 냉정한 평가를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 호의적이다. 하지만 언론을 통해 폭로되는 기사와 A케어 환자의 친족살인과 자살 등은 본질적 문제를 제쳐놓고 자극적인 외양에 집착한다.

 

사실 소설의 가독성이 높아지는 부분은 주석이다. 우루시하라의 A케어를 폄하하려는 언론의 공격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객관성은 사라지고 자극적인 부분만 남는다. 기사에 증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뢰가 뒤로 가면서 하나씩 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하나씩 흘러나오는 우루시하라의 모습도 처음과 조금씩 달라진다. 가장 문제가 되는 노인 의료는 안중에도 없고 자극적인 A케어만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이 공격은 국민의 알 권리란 주장으로 왜곡되어 밖으로 드러난다. 일반 대중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볼거리에 빠져들어 그들에게 동조한다. 얼마 전 SNS의 부작용에 대해 언론에서 한동안 집중 공격한 적이 있는데 그들이 끼친 더 큰 부작용을 생각하면 참 얼굴의 철판도 두껍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주석을 통해 우루시하라의 시술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난 의사의 숨겨진 이면은 충격적인 대목이 많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를 옹호하는 무리가 대다수다. 그것은 그가 지닌 열정과 순수함 때문이다. 그의 과거를 세 사람의 각각 다른 경력을 지닌 간호사를 통해 드러내었을 때 분명해진다. 현장에서 닳고 닳은 간호사는 기존 체계에 안주하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그리고 개인의 평가는 평가자 상대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매스컴이 만난 사람들은 아마 자신들의 논조를 강조하기 위한 사람들로 혹은 왜곡한 상태로 발표된다. 이것은 우루시하라의 아내 기쿠코 부인의 방송 출연에서도 잘 드러난다. 편집은 악마라는 말이 생각난다.

 

결코 가볍게 읽을거리가 아니다. 의료 현장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동시에 무시무시한 대안 시술이 나온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철학을 주입받고 자란 우리나라에 이 시술은 엄청난 거부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힘겹게 부모 등을 간호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고민을 던져줄 것이다. 물론 의학적으로 A케어 후 좋아진 사람들의 모습이 검증된다면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마지막까지 새로운 소설 형식으로 포장한 구성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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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그녀
박수봉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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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한 쪽에 든 그림이 너무 작아 집중하기 힘들었다. 간결한 그림체는 보기 편안했지만 너무 많은 여백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었고, 주인공이 느낀 감정에 빠져들었다. 사랑에 빠진 20대의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연출은 보는 내내 설렘을 느끼게 만들었다.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타났을 때 서로 엇갈린 감정 때문에 이들 앞에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했다. 간결한 그림체와 많은 여백이 이 이야기에 상상력을 키워주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제목처럼 수업시간 주인공의 옆자리에 한 여자가 앉는다. 순간 그는 빠져든다. 상상력이 꿈틀거린다. 멋지게 보이려고 왁스도 바른다. 하지만 어색하다. 이것을 지적하는 친구가 나타난다. 그 친구는 여자다. 키가 커지도 않고 잘 생기지도 않는 주인공의 장점은 순수하고 착한 것이다. 그의 이 장점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빛을 발하지만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에게는 흔한 말로 호구다. 친구와 선배가 연애에 대해 그를 조언한다. 실질적인 도움은 별로 없다. 흔히 보았고 겪었던 과거의 추억이 생각난다. 그러다 둘이 하나의 조가 되어 과제를 해야 한다. 생각보다 쉽게 그녀의 전화번호를 얻는다.

 

사랑에 빠진 20대의 순수함과 열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든다. 그가 꿈꾸는 사랑이 하나씩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할 때 기쁨이 그대로 전달된다. 하지만 그의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친구가 등장하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삼각관계가 긴장감을 심어준다. 서로 다른 곳을 본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연출 속에 두 사람의 순수함은 엿보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을 간결하게 연출하면서 재미를 극대화시킨다. 감정의 세밀한 표현이 얼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눈이 사라진 자리를 간결한 움직임과 얼굴 윤곽과 절제된 대사로 가득 채운다. 볼 때는 몰랐는데 신기한 연출이다.

 

주인공과 수업시간 옆자리 그녀와의 관계, 주인공과 친구인 여자와의 관계가 뒤바뀐 위치에서 비슷한 감정으로 표현된다. 순수한 두 친구는 자신들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고백하려 하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한 여자의 선물을 사고 등록금에 조그만 돈을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에게 수업시간 그녀의 정체를 알려주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 여자도 그의 친절함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술 기운에 정체를 알려줄 때 둘 사이에 있었던 감정의 흐름이 주인공의 일방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는 친구의 감정을 알게 된다. 엇갈린 감정은 영화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둘이 맞다면 사랑이 꽃피겠지만 짝사랑은 언제나 엇갈린다. 이 감정을 정리하고 바로 잡으려고 할 때는 이미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런 사랑을 작가는 아주 멋지게 연출했다. 어떻게 보면 쉽게 보아왔던 이야기다. 하지만 평범한 이야기도 어떻게 구성하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전달되어지는 감정의 깊이가 달라진다. 많은 대사나 화려한 그림체는 없지만 감정의 깊이와 폭을 제대로 짚어내는 대사와 간결한 그림체는 왜 이 만화를 수많은 사람들이 극찬했는지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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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최진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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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이 질문 대신 ‘왜 죽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도달하면 ‘그것을 묻는 당신은 누구인가’하고 되묻는다. 이 물음들이 기억의 늪을 뚫고 하나씩 의식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 기억들이 명확한 실체를 가진 것이 없다. 가장 확실한 것 같은 죽은 아버지의 기억도 뒤로 가면 흔들린다. 자신의 기억이 자신만의 감성으로 덧칠되어 질 때 그 기억을 공유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그것과 차이가 생긴다. 이 차이를 확인해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다룬다. 결코 그 과정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원도. 왜 죽지 않았는가하고 질문을 던진 남자다. 답을 찾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뒤집어 재생한다. 어디에서 잘못이 생겼는지 찾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물을 먹고 죽은 아버지다. 그가 남긴 다섯 글자 ‘만족스럽다’는 그의 삶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의문을 던진다. 죽은 아버지가 있다면 산 아버지도 있다. 그는 경찰이다. 그는 선택과 자유를 강요한다. 얼핏 보기에는 맞는 것 같은데 그가 휘두르는 배트는 실제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다. 논리와 폭력이 공존한다. 아버지의 권위가 그를 짓누른다.

 

현재의 그를 보면 왜 죽지 않았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의 과거가 아주 특별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학창시절을 들여다보면 일반 학생과 별 차이가 없다. 그가 들려주는 학창시절의 풍경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장민석이다. 엄마가 돌보는 아이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엄마의 말을 실천한다. 그것은 웃음이다. 그의 등장은 원도를 뒤흔든다. 우연히 같은 반찬을 가져온 날 이에 대한 둘의 반응은 다르다. 나중에 장민석이 그의 집으로 들어왔을 때 이 둘이 경쟁과 다툼은 서로를 괴물로 만든다. 자신이 가진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한 원도에게 이 일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기억이 된다.

 

대학생 때 그에게 유경이란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가 추억 속 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진짜 영향을 미친 것은 이름이 나오지 않는 ‘그녀’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녀의 등장은 많지 않지만 그의 삶을 뒤흔들기 충분하다. 남자가 장민석이라면 여자는 그녀다. 그녀와의 미래를 설계하고 말로 내뱉는 순간 역설적으로 미래는 사라진다. 추억과 기억 속으로 빠져들수록 그녀의 영향은 점점 강해진다. 환상처럼 살아난다. 하지만 결국 왜 죽지 않았는가 하고 묻고 또 물을 때 이 과거는 빠르게 지워진다.

 

그는 결코 평범하고 착한 삶을 살지 않았다. 횡령과 사기로 쌓은 부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무의식적 행동은 살인으로 이어진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일상에서 그가 여관으로 들어간다. 그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여관 주인의 반응이 오히려 고맙다. 죽으려는 의지가 없는 그가 혹시 자살할까 두려워하는 여관 주인의 모습은 생의 의지로 가득하다. 만약 그가 여관 안에서 자살이라도 하면 여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삶의 의지는 이렇게 미래를 걱정하고 현실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할 때 강해진다.

 

원도는 엄마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아이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는 어른이었다. 이런 원도를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하나씩 끄집어낸다. 산 아버지와 죽은 아버지의 기억도 처음과 달라진다. 하나씩 나오는 사실들은 삶의 기억을 더욱 뒤섞어버린다. 읽으면서 혼란을 겪는다. 분명히 잘 읽히는데 그의 의식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문장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의식의 흐름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한 탓이다. 이미 망가진 몸을 지닌 그에게서 삶의 의지 한 자락을 발견했다고 하면 나만의 착각일까? 마지막에 그가 혼자라고 대답하는 순간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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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전설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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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제3 인류>에서 거인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단편집의 표제작 <거인들의 전설>에서도 역시 거인들을 다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구 가이아의 의해 거인족들이 진화하고 발전했다면 이 만화에서는 빙하기를 대비하기 위한 거인족과 현재 인류가 나온다. 그리고 사실 분량의 4분의 3 정도를 차지한다. 모두 세 편이 실려 있는데 뒤의 두 편은 그림체가 거칠다. 아마 초기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용이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거칠다. 같은 책으로 묶여 있지 않다면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거인들의 전설>은 과거와 현재로 이야기를 나눈다. 과거는 빙하시대 마지막인 여섯 번째 빙기 소위 뷔름 빙기 시대다. 기원 전 6만 년 전 거인족 타이탄은 신장 5미터가 넘고 능숙하게 정신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 에너지를 통해 비행선을 움직인다. 지구의 여러 곳에서 여섯 번째 빙기가 찾아오고 있다. 목성과 화성 사이에 불타는 제5 행성을 만들어 이 빙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성공 확률은 30%도 되지 않는 계획이다. 이것을 위해 피라미드 등을 만들어 정신 에너지를 집중하려고 한다. 성공률이 떨어지는 계획 대신 남반구로 이주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의 대립은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당연한 것은 타이탄의 멸망이다. 여왕의 예언도 그것을 가리킨다.

 

1981년 현재는 이미 빙하기가 점점 북반구를 잠식하고 있다. 현재 과학자들이 원하는 계획은 6만 년 전 타이탄의 것과 같다. 2부의 제목도 ‘거인으로 가는 길’이다. 이를 위해 레이저 과학자를 계획에 참여시키고 목성까지 우주선을 보낸다. 불타는 행성을 만들어 지구에 열을 보내 빙하기를 극복하고자 한다. 이 계획을 위한 준비와 내부적 갈등을 다루는데 이 사이 사이에 과학 지식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그의 장편에 비해 약간 힘이 떨어지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설정과 전개다. 인류 고대사의 전설과 신화를 현대 과학 지식과 엮어서 풀어내는 실력은 역시 대단하다.

 

<태양행성 이카로스>도 역시 빙하기를 다룬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식이 다르다. 문제의 원인을 지구의 환경 오염 등으로 태양열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태양 근처에 거대한 에너지 광열흡수익을 설치하여 지구로 보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이름은 지구해방전선이다. 그들은 에너지 독점을 외치는 세력이다. 재미난 것은 이들의 외양이 중동 사람과 닮아 있다는 것이다. 아마 70년대 있었던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이 작가의 그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영웅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앞의 두 편이 빙하기를 다룬다면 마지막 작품 <호라이즌 패트롤>은 좀더 오락적이다. 지구 전체를 빈틈없이 뒤덮은 교통망에서 활약하는 호라이즌 패트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이 도로망 위에서 벌어지는 범죄와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경찰이다. 두 명의 콤비를 내세워 이 도로망 위에서 벌어지는 사고를 해결하는데 이것이 과격해서 시민들의 불만을 산다. 여기에 레이저로 장난을 치는 악당들이 등장한다. 언제나처럼 이들의 사소한 장난이 엄청난 위기를 불러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고의 요원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비약으로 이어지는 해결방안은 약간 황당하고 과장되어 있지만 요즘 우리의 도로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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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비극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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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하여>란 작품의 자매편으로 평가되는 소설이다. <요리코를 위하여>를 읽지 않아 두 작품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제 시간이 되면 이 소설도 읽고 싶다. 노리즈키 린타로란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사실 이 작품 때문이다. 작가 이름과 같은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이번 소설에서는 출연 비중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뒤로 가면서 더 강해진다. 중간에 탐정이 알리바이 증명에 이용당하는 일까지 생긴다. 가끔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설정이 나온다. 물론 이런 트릭은 탐정들에게 금방 깨진다.

 

이야기는 야마쿠라 시로의 1인칭으로 이어진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다. 그런데 가장과 아버지의 위치가 다르다. 실제 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는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다. 그와 피가 이어진 아이는 다른 집에서 자란다. 도미시와 시게루. 납치되었다가 살해된 아이이자 그의 친아들이다. 소설은 납치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일이 어떻게 벌어졌고, 이 납치 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 사람들의 가면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뒤틀리고 꼬인 관계처럼 사건도 그렇게 펼쳐진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위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비겁한 아버지 야마쿠라 시로가 있다.

 

시로에게 전화가 한 통 온다. 아내 가즈미다. 아들이 납치되었다고 말한다. 회사를 나와 집으로 온다. 아들은 아파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럼 누구? 옆집 시게루다. 납치범이 착각한 것이다. 당연히 경찰 연락을 금지하고,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다. 몸값은 준비되었지만 경찰 신고는 이미 되었다. 시게루의 엄마 미치코는 미칠 지경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몸값을 가지고 오길 바란다. 수많은 노선 변경과 급박한 진행으로 시로는 피곤해진다. 그는 시게루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미치코의 은근하면서 노골적인 협박과 시게루의 존재는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돈을 전달하는 것을 실패할 수 없다. 다른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몸값 전달에 실패하고 아이는 시체로 발견된다.

 

미치코가 시로의 의도적인 실수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시게루를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의 외도로 낳은 아이를 그는 인정하지 못한다. 마음 한 곳에서는 그 아들이 사라져주길 바랐다. 마음 한 켠에 자신의 실수로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데 부검 결과는 그의 실수와 관계없음을 알려준다. 이미 전달 당시 아이는 죽어 있었다. 이 사실과 상관없이 그는 왜 그의 아들을 납치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1용의자 미우라 야스시를 찾아간다. 그는 바로 자기 가정의 아들 다카시의 친아버지다. 죽은 처제의 남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납치범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닐 당시 알리바이가 있다. 그가 바로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다. 그리고 탐정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은 아들과 가족에 대해 묻는다. 흔히 하는 기른 자식과 낳은 자식의 문제다. 작가는 무게를 가정과 기른 자식에 더 무게를 둔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 가즈미다. 그가 잠시 바람을 핀 것도 아내와의 관계가 나빴을 때다. 아니 아내의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을 때다. 이 가정에 위기를 가져온 것은 바로 미치코다. 그녀의 은근한 압박은 그를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납치사건은 그의 속내를 하나씩 밝혀내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숨겨진 속마음도. 그리고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사실들은 반전으로 이어진다. 또 그 속에 시로의 집착이 담겨 있다. 이 과정을 작가는 약간은 도식적인 구성으로 풀어낸다. 1인칭의 이야기가 풀어내는 속내는 어쩔 수 없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다카시와 그의 대화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속내와 집착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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