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 - 지금 우리에게 정의, 쿨함, 선악, 양심,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비에저 터커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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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크라테스를 생각하면 두 가지 명언이 떠오른다.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란 명언이다. 이 두 명언과 함께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은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악처도. 이런 몇 가지 흔한 기억만으로 소크라테스를 평가하기에는 그가 서양철학에 끼친 영향이 너무 크다. 실제 그가 어떠한 저서를 남기지 않았고 제자인 플라톤이 남겼다고 해도 말이다. 이 책의 원제도 ‘Plato for everyone'이다.

 

저자는 플라톤의 대화 중 다섯 편을 현대 소설처럼 각색했다. 그 다섯 편은 <크리톤>, <메논>, <에우티프론>, <변론>, <파이돈> 등이다. 이 다섯 편을 근거로 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해석으로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풀어내었지만 적지 않은 분량과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 인해 생각보다 힘들게 읽었다.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좀더 차분하게 읽고, 문장을 음미하고, 의미를 파고든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철학의 기초가 약하다면 이것을 비판적으로 읽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 얕은 철학 지식으로 제대로 된 반론을 펼치지 못해 그 답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저자가 바란 것은 ‘질문은 어떻게 하는가, 상식이나 일상적인 믿음이며 가정은 어떻게 의심하는가, 적극적 호기심은 어떻게 갖는가, 철학자처럼 생각하기는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철학자처럼 된다는 것은 어떻게 경험하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내용을 모두 찬성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설처럼 구성된 이 책으로 이런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 독자가 여러 번 읽고 저자가 바란 것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쓴 소크라테스라는 말이 무안해지는 것이 아닐까?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

 

플라톤의 대화 속에서 발췌한 다섯 가지 주제는 불의한 전쟁을 하는 군대에 가야 하는지, 쿨한 것, 하느님이 선악을 결정하는지, 양심과 일자리의 선택, 죽음 등이다. 군 문제의 경우 민주주의와 법 문제로 이어지면서 가야한다고 결정이 나는데 이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정의라는 것인데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면돌파를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논리가 과연 맞는지 하는 것은 의문이다. 대화법 속의 논리를 따르면 맞는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전제 조건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조건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보다 철학적 지식이 높은 사람과 이 문제를 깊게 토론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쿨하다는 것의 정의를 놓고 토론하는 장면을 읽을 때 그 본질을 향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대화법에 놀란다. 우리가 얼마나 두루뭉술하게 단어나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가끔 느끼기 때문에 더 그렇다. 종교를 다루는 것 같은 하느님의 선악도 결국에 다루는 것은 인간과 철학적 논증이다. 지옥을 각 종교의 지역과 함께 엮어서 설명해주는 부분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의 상상력이 어느 것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생각할 때 더욱 더. 양심과 일자리를 둘러싼 그의 논쟁의 결과를 보면서 현실은 철학자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임을 깨닫게 된다.

 

죽음은 영혼과 신체에 대한 논쟁과 논증으로 가득하다. 논리적으로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면서 ‘상기론’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분명히 논리적으로 따라가면 그의 말이 맞는 듯하지만 곰곰이 생각하고 현실의 상황 등에 비춰보면 어딘가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을 더 공부한다면 생각보다 많은 철학지식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가장 유명한 명언인 ‘너 자신을 알라’가 실제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있던 경구였다는 설도 있다. 이 책 속에 그 유명한 그의 악처가 죽을 때 잠시 등장하는 것밖에 없는 것도 조금은 아쉽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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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 - 배영옥 여행 산문집
배영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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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을 계획하고 갔다가 2개월을 더 연장하고 산 쿠바 이야기다. 그런데 저자는 쿠바에서 돌아온 후 쿠바에 대한 어떤 것도 떠올리기 싫었다고 한다. 덕분에 머문 시기와 책이 나온 시점에 큰 차이가 있다. 쿠바에 머문 기간이 2011년 11월부터 2012년 7월까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이 얼마나 늦게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에필로그에 따르면 쿠바와 지독한 연애를 한 후유증을 겪은 듯하다. 사랑은 독하고 힘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글 속에서 그 느낌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감정이 최대한 절제되어 있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감상이 가득한 글이라 더 그렇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쿠바의 모습은 이전에 본 책들과 다른 모습이 많다.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여행자고, 그녀는 거주자였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글 곳곳에 드러날 때 쿠바라는 환상에 덧씌워져 있는 이미지들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한다. 덧붙여 설명하면 ‘쿠바는 여행자 각자 원하는 모습을 개인에게 맞춰서 보여주는데 탁월’한 곳이다. 저자 자신도 여행자지만 오랜 시간 머물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쿠바의 현실을 만났고, 이 현실을 무조건 외면하고 싶어 했다. 여행자의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쿠바와 쿠바 사람들은 지금도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쿠바와 연애를 하고 왔다.

 

이 책에 나오는 쿠바는 여행자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니다. 물론 그런 곳도 나온다. 하지만 그곳에서 몇 개월을 살게 되면 단순히 여행자로 머물 때 몰랐거나 잠시 불편했던 것이 아닌 실제 삶의 모습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사회주의 국가가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이미지 뒤에 숨겨놓은 민낯을 만나게 된다. 단순한 물자 부족의 문제뿐만 아니라 빈부격차를 비롯한 사회 구조의 문제들이 조금씩 보인다. 그래서 어느 순간은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읽고 듣고 한 쿠바와 너무 달라 그들이 거짓말한 것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쿠바다. 쿠바에 대한 환상이 덧씌워져 있다고 해도.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역시 물자부족과 그 때문에 생긴 긴 줄이나 그것을 찾기 위한 방황이다. 의료와 교육이 완전 무료고, 하루에 빵 하나가 공짜로 지급되어 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것일 뿐이다. 휴대폰을 개통해도 충전용 전화 카드 사기가 쉽지 않다. 파는 곳을 운 좋게 발견해도 긴 줄을 서야 한다. ‘잠깐 동안의 편리함을 얻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쿠바’라는 감상이 나온다. 이것은 다른 물건을 사는 것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항시적 물자 부족은 사재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와 체 게바라는 생일이 같다. 다른 공통점이라면 둘 다 쿠바 태생이 아니라는 것 정도. 그 유명한 체 게바라가 아바나를 뒤덮고 있지만 가장 많은 동상은 자유의 시인이자 혁명가이자 사상가인 호세 마르티다. 조금은 낯선 정보다. 외국인과 내국인 사이의 이중화폐 제도나 이 때문에 생긴 부의 불균형이나 자신의 부를 감추기 위한 모습들이 흘러나온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흔적과 영향은 이미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런 모습들 사이에 쿠바인들의 삶이 밖으로 표현된다. 인종차별이 없을 것 같은 이곳도 백인들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한다. 의외의 모습이다.

 

물자부족과 결핍 등에서 비롯한 에피소드가 불편하다면 쿠바 남자와 여자들의 이야기는 한두 번 정도 들은 적이 있지만 여전히 재밌다. 우리의 가치관으로 그들을 평가하면 문제가 많을 것 같지만 그것 또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자 삶이다. 쿠바 여자를 다룰 수 있는 것은 쿠바 남자뿐이다(그 반대도)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다르다. 제목인 쿠바에 애인을 홀로 보내지 마라는 것도 바로 이 이야기에서 나왔다. 열정적인 혹은 습관적인 그들의 도발과 대쉬는 짧은 여행자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일 것 같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영화 장소를 현지에서 직접 본 후 나온 감상은 조금 충격적이다. 미국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있다는 대목에서는 특히. 한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란 노래가 일본에서 히트한 것도 바로 이런 향수 때문이란 글이 떠오른다. 여행자에게 중요한 음식을 이야기할 때 향신료나 소스의 부족이 잠시 머물다가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쿠바인들은 혀가 없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니. 그리고 한국 제품들이 상당히 많은 것에 놀란다. TV나 에어컨이나 자동차나 버스뿐만 아니라 인조손톱까지 다양하다. 이것을 중계무역으로 수입했다고 한다. 실제 이것들을 현지에서 보게 되면 조금은 다른 감정이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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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칠드런 - 2014 제8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6
장은선 지음 / 비룡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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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기술의 발달로 노화가 멈추고 젊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가까운 미래 이야기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죽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인구 문제가 심각해진다. 출산율을 낮추지만 죽는 사람이 없다보니 인구는 줄지 않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자식을 낳은 사람들에게 자식세를 걷는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부의 상징처럼 된다. 돈이 없거나 신념 등으로 아이를 몰래 낳거나 자식세를 부담할 재력이 없어 아기를 버리는 부모도 생긴다. 이런 아이들은 국가 보육시설이나 학교에서 자란다. 이 소설의 무대로 그 중 하나인 고등학교다.

 

문도새벽. 그는 부모가 사고로 죽으면서 비싼 자식세를 내기 싫은 친척들에 의해 버림받아 사립고등학교로 배정된다. 이 학교는 몰래 낳았다가 걸린 아이거나 버려진 아이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곳이다. 24시간 이 학교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 그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성인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나이가 되었다고 일반적인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에 의해 상위권 몇 할 정도만 성인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먹으면 성인이 아니냐고? 이 미래 사회는 성적이 떨어지는 낮은 등급의 학생들을 중성화시켜 밖으로 내보낸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바탕으로 조금 더 과격하게 나간 설정이다.

 

통치자는 피지배자의 불만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막기 위해 피지배자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늘 자신과 붙어사는 사람들이 갈등의 대상이다. 이 소설 속에서 학생들의 적은 학생들이다. 하나의 무리는 몰래 낳았다가 잡힌 아이들을 헤이즈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넘버즈라고 부른다. 새벽 같이 부모가 자식세를 내는 아이들은 등록아동이다.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이들은 각각의 무리를 만들고, 서로 대립과 갈등을 빚어낸다. 그들은 성적순이라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스트레스와 불만 등을 수시로 표출하는데 그 대상은 항상 같은 학생들이다. 실제 자신들을 이런 환경 속으로 몰아넣고 그들을 이간질하는 성인들의 모략을 알아채지 못하고 말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인물이 바로 문도새벽이다. 새벽이란 이름이 의미하는 바도 바로 여기에 있다.

 

등록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과 구타의 대상이 되는데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학생이 있다. 바로 이오다. 전교 1등인 아이다. 그는 성인능력시험에 좋은 점수를 받고, 자신의 부모를 찾을 희망을 품고 있다. 새벽에게 잘 해 준 이유는 자신이 모르는 외부세계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다음 시험에서 새벽이 1등을 한다. 늘 1등이었던 이오가 2등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것이 이오에게 엄청난 충격이다. 새벽에게 멀어지고 질투하고 방해한다. 그리고 다음 시험에서도 1등을 하지 못한다. 결국 옥상에서 뛰어내린다. 그가 1등을 하지 못한 이유는 당연하다. 새벽은 유전자 조작으로 암기로 시험치는데 최적화된 아이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오를 통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들과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같이 풀어낸다.

 

작가가 자신의 모교를 방문하고 놀라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세상이 발전하는 와중에 학교는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잘 암기하고 더 빠르게 문제를 실수 없이 푸는 학생이 우수한 학생이다. 시험문제는 현실과 관계없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변별력이란 말로 포장한다. 학생들의 창의성은 사라지고, 기계적인 기술만 늘어난다. 토익마저 영어실력이 아닌 기술이라는 광고가 나왔을까. 내신이 있지만 선행학습을 한 학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부모의 재력도 일부의 학교에서는 중요한 평가의 대상이 된다. 디스토피아지만 우리의 현실이라는 문구 그대로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된다. 폭력은 현실적으로 다루어지고, 인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적의 등급이 계급처럼 작동하고, 아이들은 이것을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인다. 주요 인물 간의 갈등이 있지만 길지 않은 분량 속에 풀어내려고 하다 보니 깊이가 조금 부족하다. 새벽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어 그의 능력과 자각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새벽이 체제 속에서 가장 안락한 생활을 했던 인물인데 갑자기 학교로 왔다고 인권을 외치는 것은 조금 모순된 설정이다. 나만의 착각인가?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 절망이 아닌 희망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을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들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다. 문장과 설정과 진행 등이 너무 익숙해 신선함이 떨어진다. 그러나 학교와 학생들의 생활과 모습은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섬뜩하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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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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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작년에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이만큼 가까이>의 작가다. <이만큼 가까이>를 예상보다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작품도 그렇다.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번에도 변함없다. 삼남매의 각각 다른 이상한 초능력과 그들의 활약이 처음 예상한 것과 너무 다르지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고, 공감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초능력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도 없다. 추정하면 삼남매가 먹은 색깔이 미묘한 바지락 칼국수 정도랄까. 이것도 나중에 재인이 택배를 보낸 장소에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식당을 보고 유추한 것에 불과하다. 나중에 이 삼남매가 각각 다른 이유를 상상한다.

 

재인, 재욱, 재훈은 이 삼남매의 나이순이다. 가장 나이 많은 재인은 첫째 딸이고, 재욱은 둘째, 재훈은 나이차가 좀 있는 막내다. 위의 둘이 직장인이라면 재훈은 고등학생이다. 재인이 대전에서 연구원 생활을 한다면 재욱은 아랍 사막의 플랜트 공사장에 일한다. 재훈은 엄마가 신청한 교환학생에 당첨되어 조지아 주의 농장으로 간다. 각각 다른 나라와 환경 속에서 우연히 얻게 된 초능력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구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온 소포 속에 메시지가 있다. 재인에게 온 메세지는 SAVE 1, 재욱은 SAVE 2, 재훈은 SAVE 3이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지만 작가는 중간에 그 의미를 밝힌다.

 

초능력이라고 하지만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강화된 손톱이거나 문제가 있는 곳의 빨강 색으로 문제의 정도를 구분하거나 엘리베이터를 쉽게 타는 것 정도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염동력이나 독심술이나 빠르게 달리거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등의 초능력과 전혀 관계없는 능력이다. 하지만 그들의 초능력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정확하게 맞는 능력이다. 왠지 미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그들에게 맞게 능력을 배분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소포와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무얼까? 누구를 어떻게 구하라는 것일까? 이 의문의 답은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약간 평범해 보이지만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특히 그 당사자들에게는 더욱더.

 

나이 차가 있는 삼남매는 아버지의 바람기 때문에 고생하는 엄마의 폭언을 견디면서 살아야했다. 이것은 실제 생활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폭언이나 고성을 쉽게 넘어가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엄마가 이 삼남매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삼남매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단지 어떤 집이나 늘 있는 부모 자식 사이의 소소한 갈등과 다툼이 있을 뿐이다. 작가는 여기에 포인트를 맞추지 않고 삼남매의 삶을 간결하게 그려낼 뿐이다.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일상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말이다.

 

뭔가 의미를 찾자고 하면 못 찾을 것도 없다. 그들이 구한 사람이 그들 자신을 구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이 마지막에 나오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구한다는 것은 단지 그 누군가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구조자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때도 있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간결하게 말해진다. 작가는 이 모든 상황이나 설정을 간결하게 빠르게 풀어낸다. 분량이 많지 않아 단숨에 읽을 수 있다. 몇몇 분야에서 전문적 지식이 나오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후기를 보면 친구들의 직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또 다른 활약을 하는 시리즈가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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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비닐인형 외계인
서준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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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외계의 서사란 표현 때문에 선택했다. 소설집이란 것은 알았지만 단 두 편의 중편소설만 실려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책을 받았을 때 아담한 크기와 적은 분량 때문에 조금은 속은 느낌이었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소개글을 잘못 이해한 탓인지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러다 한 번 읽자고 마음먹고 책을 펼치니 예상보다 빠르게 읽혔다. 문장도 평이하고 내용도 그렇게 어려워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 읽히지만 구성과 품고 있는 의미들이 읽은 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표제작 <파란 비닐 인형 외계인>은 출장에서 돌아오던 한 남자가 외계인을 만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까칠한 수염 때문에 3중 면도날을 찾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찾을 방법이 없다. 꺼림칙한 턱수염의 느낌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온다.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후 이상한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만난 것이 외계인이다. 그들의 우주선에 올라타서 온갖 감각들, 기분들, 의지, 의욕 등을 태워버린다. 이 이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의욕도 의지도 없는 무력한 삶뿐이다. 직장도 나가지 않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다. 아내와 딸들은 집을 나간다. 그래도 그의 삶은 변화가 없다. 있다면 공원에서 줄넘기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명이 했지만 어느 순간 공원에 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작가는 영화 <매트릭스>처럼 해방군을 등장시켜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한 장치다. 마지막 장면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고, 나로 하여금 이 작품에 대한 혼란만 가중시켰다.

 

<마녀의 피>는 기억과 현실과 환상이 교차한다. 사도마조히즘이 그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데 사슬처럼 맞물린 이야기 구조가 생각보다 어렵게 다가온다. 쉽게 읽히지만 내용을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순간 사슬 고리처럼 엮인 이야기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아내가 본 호수공원의 마차나 남편이 맹인 소녀를 만나 다녀온 지하창고 등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제목과 첫 설정을 보고 다음 장면을 예상하면 그것과 완전히 다른 전개로 이어진다. 사도마조히즘의 역할 바꾸기인가 하고 생각하면 온라인과 환상과 현실의 시간과 공간이 뒤섞인다. ‘뭐지’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꿈속의 장면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놓은 것과도 같다. 묘한 경험을 주는 소설이다.

 

서준환이란 이름이 낯익다고 생각했는데 피에르 르메트르의 형사 베르호벤 시리즈를 번역한 번역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인데 이런 이력이 번역에 도움을 준 모양이다. 그 외 다양한 소설들이 출간되었는데 실제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 이 책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면 읽고 집어던지거나 뭐지라는 질문과 함께 도전 의욕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의 중편이 작가의 다른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문장과 이야기의 진행은 어렵지 않지만 전체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의문이 생기는 소설에 대한 관심 말이다. 장편소설도 몇 편 있던데 과연 이 소설처럼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하다. 10년 만의 재간에 대한 작가의 말은 역시 냉소적인 마지막 문장이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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